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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기도회/목사 다니엘기도회 간증

이본목사 다니엘기도회

generalQS 2024. 1. 3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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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인생의 장애물
본문 ꞉ 사무엘상 17꞉41~49 설교 ꞉ 이본 목사
현) 서울 남부교도소 인성교육 강사, 현) 인천 하늘문교회 담임목사

할렐루야 오늘 제목이 인생의 장애물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저 인천에서 이렇게 우리 일행 5명의 목사님과 함께 왔는데 오다가 웬 그렇게 신호등을 많이 만나고요.
또 차가 그렇게 밀리는지 우리가 신호등을 만날 때마다 여러분들은 어떤 감정이세 요?
빨간 불 앞에 서 있을 적에 파란 불이 빨리 켜지기를 기다리죠.
가만히 내가 거기서 교훈을 얻어서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런 빨간 불 바로 그게 우리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 같다는 생각을 들었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파란 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되잖아요.
인내하고 참고 오늘 우리 목사님들이 거기에 대해서 차 안에서 이거 잘못하면 늦겠 다 했는데 다윗처럼 만군의 여와로 이름으로 무찔렀더니 약속했던 시간보다도 20 분 더 빨리 와 가지고
우리 담임 목사님 우리 함께해 온 일행의 목사님들과 제가 생각지 않은 한방차를 대접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장애물을 이겼을 적에는 이렇게 한방차와 같은 큰 복을 받아요. 오늘 다윗이 누굽니까? 양치기 소년이잖아요. 양치기 소년과 잘 훈련된 블레셋 장 군 골리엇과 이것이 싸움이 됩니까?
모두 포기해버리고 엄청난 장애물 앞에 모두 포기해버리고 뒤돌아설 것 같은데 48 절 보면은 뭐라고 그랬어요?
빨리 적을 향해 달려갔다고 그랬습니다. 도대체 뭘 믿고 45절에 만군의 여호와 이 름으로 했었습니다.
이서 우하에 보면은 토끼와 거북이 경주가 나와요.
여러분 이것이 게임이 된다고 믿습니까? 느림보 거북이는 왜 그 경주를 허락했을

까 이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은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래서 거북이는 느리다는 그 고정관념이라는 장애물을 넘고 싶었던 거예 요.
그런데 그 장애물을 넘고 나니까 뜻밖에도 토끼를 이기는 복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양치기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넘겼을 적에 어떤 복을 받았어요? 양측의 소년에서 사울랑 사이가 됐습 니다.
그러나 말이죠. 장기물은 골리앗을 넘어뜨렸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거기서부 터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나는 너무나도 연약한데, 세상은 칼과 창과 단창으로 무장돼 있 어서 내가 자신에 대한 한계를 느낍니다.
내 원하는 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내 뜻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 그런 고백을 토로하신 분들 참 많을 거야.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내 뜻대로 살고자 하니까 많은 장애물 앞에서 주저 앉고 마는 거예요.
누구 뜻대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뜻대로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는데 자꾸 그것을 잊어버리고 내 뜻대로 내가 바라는 원대로 살다 보니까 장애물 앞에 좌절을 느끼고 두렵게 느끼고, 아까 신호등이 자꾸 걸렸을 적에 신호등만이 장애물이 아니라 늦으면 어떡하지 하는 근심 걱정 그 보이지 않는 장애물이 더 큰 거였어요.
우리는 장애물 앞에 보이는 장애물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장애물이 우리를 자 꾸 압박해오고 공격해 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했을 적에 광야를 다니면서 그들은 장에 많은 장애물을 통해서 다듬어져 갑니다.
먹을 게 없을 때는 하나님께서 만나러 보내셨고, 또한 마실 물이 없을 때는 능력의 지팡이를 통해서 생수를 얻어 마셨고, 또 홍해 앞에서는 뒤에서 잘 훈련된 애굽 군 사가 쫓아오는데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을 때 진태 양자이잖아요.
그때 우왕좌왕했을 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어요?
너희들은 가만히 있어라. 그럼 가만히 있으면 어떡하라고요?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말이 여러분들 장애는 장애물은 무 엇입니까?
보이는 장애물도 있고 보이지 않는 장애물도 있고 이 모양 저 모양의 말 못하는 장 애물이 숱하게 있을 것입니다.
내 장애물은 과거였습니다. 과거 내 지나온 과거가 내 발목을 잡고 있었고, 내 지나 온 과거가 내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습니다. 도대체 내 과거가 어떻길래 저는 꼭꼭 숨기고 싶었던 과거가 있 었고, 아주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고요.
씻을 수 없는 죄 지었던 과거가 있었습니다. 저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그리고 또 저는 무기수였습니다. 여러분 무기수가 뭔 줄 아시죠?
무기수는 평생 감옥에 갇혀서 철창 안에서 죽여야 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여기 나와서 간증하는 것은 무기수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 에 여러분들 앞에서 간증을 하는 겁니다.
그런 자격증 잃어도 좋아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저는 노숙자였습니다. 노숙자로서 2년 8개월간 노숙자 수임터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뻑뻑 숨기고 싶었던 과거를 제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앞에 털어놓으니까 그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저는 무기수였지만 한국교도소에서 무기수가 아니라 미국 교도소에서 무기수였습 니다.
저는 1980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에
이민을 갔습니다. 1980년대를 살아보신 여러분들은 잘 알 거예요.
얼마나 우리나라가 가난했는가를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 10개국 안에 들지만은 그 당시에는 너무나 가난했어요.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저는 소주를 마시면서 한탄을 했습니 다.
나는 왜 그 많은 나라 중에서 이렇게 가난한 나라에 태어났을까 나도 미국처럼 잘 사는 나라에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그것 소원대로요. 저는 미국 이민을 갔습니다.
그때가 1980년도였습니다. 미국 갔더니 정말 잘 살더라고요.
그리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 당시에는 열심히 일할 때도 별로 없었고

일해도 그렇게 많은 소득을 얻지 못했었는데 거기 가니까 막 일하니까 일하면 일하 는 대로 대가가 엄청 났었어요.
저는 8시간이라 12시간 16시간씩 일해도 벌써 피곤한지 모르게 열심히 일했었습 니다.
그리고 한 3년 지나서 장가 가야죠. 총각대 갔으니까
그래서 결혼을 했는데 그 결혼이 잘못된 결혼이었습니다.
여러분 만남에는 좋은 만남이 있고요. 잘못된 만남이 있어요.
좋은 만남은 축복이지만은 잘못된 만남은 평생 웬수라 그래요.
그런데 저는 결혼이 잘못된 결혼이었습니다. 상대방 여자는 나를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영주권을 얻기 위해서 가짜 결혼을 했던 거예요.
소위 말해서 사기 결혼이죠. 그러니까 우리나라 주민등록증을 높기기 위해서 어떤 사람이 결혼을 해가지고 결혼 후에 주민등록증 온 후에 이렇게 도망가는 그런 결혼 을 했던 것입니다.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직장 갔다 오니까 집안이 좀 허해요.
이렇게 느낌으로 받는 게 그래서 알고 봤더니 영주권을 받고 결혼으로 인하여 영주 권을 받고 가축을 헤어버린 겁니다.
보따리 싸고 가져버렸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즉시 변호사를 찾아갔습니다. 어떡하면 좋습니까?
그랬더니 LA 한인타운은 이런 사기 결혼이 빈번하다.
이게 우리 교포사의 문제인데 이혼을 할 게 아니라 결혼 혼인 무효 소송을 하면은 영주권 받은 게 취소가 되어서 그 사람은 한국으로 추방이 된다 이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하겠습니다. 했어요. 그런데 그게 여자 쪽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까 그 소식이 들어가니까 법적으로 나를 이길 수 없으니까 물리적인 방법을 택하기 로 했습니다.
물리적인 방법이란 그 미국에 만연해 있는 갱들을 고용했습니다.
그래서 갱들을 고용해서 어느 날 저한테 전화가 왔어요.
너 아무게지 하면서 그 혼인 무효 소송한 걸 취소하지 않으면은 너는 곤란한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러니까 네바다 사막 같은 데다가 죽여서 묻어버리면 뭐 깨끗하니까 소수 민족 하 나 죽었다고 그래서 미국 경찰이 눈 하나 깜짝하잖아 그리고 증거도 없이 사막에

묻었는데 어떻게 알겠느냐 하고 겁을 줬습니다.
저는 겁이 나서 교포한테 교포들한테 우리 물어봤더니 막 고민이 돼서 물어봤더니 그래요.
미국은 이혼이 흔하니까 그까짓 것 영주권 하나 줘버린 셈 치고 이혼을 해라.
그 생명까지 위험해서 되겠느냐 그런데 저는 오기가 있어 그때까지만 해도 하나님 을 모르던 사람이라서 맨날 술 마시면서 괴로움을 달랬었습니다.
그럴 때에 저는 도저히 그럴 수 없다. 나는 어떻게서든지 혼인 무효 소송을 내서 이 겨서 그 사람을 한국으로 추방시키겠다라고 했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저에게 깽들의 위협을 했습니다.
저는 직장을 옮겼고 집을 옮겼고 또 찾아 내밀 것 같으면은 또 이사를 하고 옮겨다 니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인 저는 계속 술을 마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는 술을 좋아했던 사람이 하루도 빠지 않고 계속 술을 마시고 술 마시고 운전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어떻게 집에 들어왔지 서 집 밖을 나가면 차가 멀쩡하게 있었어요.
그만큼 술을 많이 마셨었습니다. 술을 아무리 마셔도 내 고민이 해소되지 않았습니 다.
저는 저도 똑같이 곤충을 샀습니다. 곤충을 옆에 죽이고 술을 마시니까 제법 든든 해요.
근데 그런 생활이 1년 6개월간 됐어요. 몸과 마음이 피폐될 때로 피폐해졌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라서 이제 도망갈 만큼 도망가가지고 어디로 피신할 데 가 없어서 85년 3월달에 한국으로 도망을 왔어요.
도망간 사이에 사람이 비행들 3명을 끌고 저희 LA 한인타운에 있는 저희 부모님 아파트로 찾아왔어요.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저기 저 걔 어디 가세요? 그러니까 걔는 니가 하도 괴롭혀서 한국으로 도망갔다.
그러니까 어머니요. 그 혼인 무효 소송한 거 취소하라고 꼭 좀 전해주세요.
그러고 갔다는 거예요. 내가 두 달 만에 한국에 왔더니 그 말을 전해.
그러니까 너무나 괴로운 거예요. 그래서 또 괴로울 때 마시는 또 술을 마시고 있었 습니다.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때 마침 친구한테 전화가 와요.

너희 아내가
아무야미의 밥집에서 어떤 남자랑 밥을 먹고 있더라 그래요.
저는 그런 소식을 수시로 들었어요. 한인 타운이라는 게 손바닥만 해가지고 한인들 이 다 서로서로 다 봅니다.
근데 밥을 먹고 있다는 식당이 내가 술을 마시는 집에서 한 병 가정밖에 안 돼요. 가까운 곳이야. 그리고 친구들이야. 오늘 니 와이프를 우체국 옆에서 봤다.
오늘 니 와이프를 저기 마켓에서 봤다. 그럴 때마다 자극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술을 마시는 이 장소에서 한 블락 떨어진 곳에서 어느 남자랑 밥을 먹 고 있다고 그러는데 내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도망댕기나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내가 항상 쫓겨다니게 알고 도망댕겨야 되는 것인가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도망댕길 게 아니라 아니 내가 쫓아 다니고 내가 이번에 한번 찾아가 보자.
그래서 용기를 낸다고 술을 좀 더 마시고 권총을 옆구리에 차고 찾아갔습니다.
자동차를 몰고 운전을 해서 1년가량 되는 곳에 찾아갔더니 거기 어떤 남자는 밥을 먹고 있을 적에 한 5초 정도 시기가 일어난 후 총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술이 취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잠자는 새벽에 저는 살인죄로 체포가 됐습니다. 저는 잘 살아보겠다고 아메리칸 주 림을 가지고 미국 갔으나 저는 그때 5년 만에 속에 수갑을 찬 살인죄로 체포가 되 었던 것입니다.
재판이 시작이 됐습니다. 한인사회에 있는 한인 교포신문에서 대서 특별했습니다. 처음엔 저를 비난하는 것 같더니 이튿날부터는 한인사회의 만연한 사기 결혼 드디 어 올것이 왔다.
하루 12시간 16시간씩 아메리칸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일한 한 청년이 왜 이런 일 을 당했나 해가지고 기사가 이상하게 또 저를 동정하는 기사로 이렇게 변화가 돼가 지고 많은 사람들이 저를 돕겠다고 그러고 변호사도 돕겠다고 그러고 한인사회에 있는 목사님들이 또 이렇게 탄원서도 써주고 그랬었습니다.
이번에는
지난번에는 밖에 있을 적에는 술을 먹고 술에 의지하더니 이번에는 사람을 의지하 는 거예요.

많은 사람이 날 돕겠다고 그러네. 그러니까 변호사도 돕겠다고 그러고 목사님도 이 렇게 막 탄원서를 보내주고 하니까 이번에는 변호사가 뭐라 그러냐면은 이건 정당 방위이기 때문에 백인 같으면은 정당방어에서 무죄까지 가능하지만은 우리는 당신 은 소수 민족이기 때문에 한 3년 받아야 될 것 같다.
그래서 저는 3년 받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재판이 자꾸 길어집니다.
그래서 2년씩이나 재판이 길어진 끝에 2년 만에 최종 결론 선고 떨어지는 날이었 습니다.
저는 밖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오늘 선거 떨어지면 난 3년을 받을 거야.
3년을 받으면 난 즉시 석방이야. 왜 3년을 받는데 2년 밖에 넌 즉시 석방되느냐 하 면은 미국에서는 무기수를 제외한 일반 형사범들은 반을 살아요.
그것을 헤타임 인메이라고 그러는데 헤타이멀 즉 반만 10년을 받으면 5년을 살고 5년을 받으면 2년 6개월만 살
그러니까 저는 3년을 받게 되면은 변호사가 약속한 대로 3년을 받게 되면 저는 이 미 재판한다고 하면서 2년을 살았기 때문에 이미 저는 3년을 받음과 동시에 거기 서 석방이 돼요.
그래서 친구들한테 나 3년 받으면 나갈 테니까 우리 한인타운에 자주 가던 룸사룸 대학에 둬라고 약속까지 해놨어요.
그리고 내 신발이랑 옷이 갖고 와라. 그리고 법정에서 딱 떨어졌는데 3년이 아니라 무기를 받았습니다.
내 인생은 이걸로 끝났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나는 무기수로 말도 안 통하는 미국에서 교도소에서 평생을 무기수로 살다가 무기수로 죽을 수는 없다. 차라리 그럴 바엔 죽는 게 낫겠다 싶어서 감기 걸렸다고 거짓말하고 타인의 노 매 일 하루치밖에 안 주니까 매일매일 모아서 백몇십 개를 모았어요.
이게 이만큼 돼요. 한꺼번에 못 내니까 여러 개로 부셔가지고 여러 번에 걸쳐서 먹 었습니다.
그런데 죽었다 생각하고 깨어나 봤더니 병원이었습니다.
침대에 저를
양발을 침대 모서리에다가 쇠사슬을 묶어놓고 손도 이렇게 양옆에 묶어놓고, 옆에 는 교도관이 옆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화장실만 간다고 그래도 바로 병실에 있는 화장실 데려갔는데도 교도관이 따라와 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간을 치료한 후에 퇴원했습니다. 이번에는 타인을 양기와 갖고 아무 리 먹어도 안 주는구나 하는 지혜를 그때 얻어가지고 그후부터는 그런 방법을 안 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침대 시트를 찢었어요. 침대 시트를 찢어서 밧줄을 만들었습니다.
1층과 2층이 있는 2명씩 들어가는 방인데, 거기서 2층 침대에 있던 나는 밧줄을 만 들어서 매트리스 밑에다가 숨겨놨습니다.
룸메이트인 흑인이 잠을 자야 내가 목을 맬 거 아니에요?
그 친구를 내가 알아요. 그 친구는 저녁 밥 먹으면 그냥 쓰러져서 잠을 자거든. 그래서 난 너만 자면 난 죽는다 그러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날따라 잠을 안 자요. 잡지 부르면서 콧노래까지 불러요. 그래서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전해준 성경책을 조금 간간이 심심해서 봤던 성경책을 그때 처음으로 열었 습니다.
맨 앞에 사도신경이 있었고 주기도문이 있었습니다.
주기도문 10번만 읽으면 자겠지. 10번을 읽었습니다.
아직도 안 자요 또 10번 읽었습니다. 아직도 안 자요.
그래서 또 10번을 읽었어요. 10번째 읽다가 그냥 괜히 눈물이 나는 거야 괜히 아니 뭐 이렇게 받은 것도 없이 그냥 울면서도 아니 내가 왜 울고 있지?
근데 내 의지로 웃는 게 아니라 내 의지로 그 눈물을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시험에 들지 말고 시험에 들지 말고 거기 부분에서 땅 안에서 눈물이 막 나요. 그러면서 무슨 생각이 나냐면 죽기는 내가 왜 죽어 한번 살아보자 그래가지고 눈물 을 닦고 내려와서입니다.
그때 룸메이트가 그때 자더라고 그때 자고 있어요.
나를 하나님 만나게 해놓고 룸메이트는 잤던 것입니다.
두 번째 자살하려다가 제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어머니가 저에게 저희 어머니는
서울에서 이민 가기 전에 권사님이셨고 또 미국에 가서도 권사님이셨습니다. 그때부터 저희 어머니의 기도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저는 저희 어머니 기도로 인하여 제가 성경책 주기도문 읽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재판이 끝났기 때문에 2개월 후쯤인가 이게 교도소로 배치를 받아 가 야 돼요.
2개월쯤 지나니까 나를 깨우더라고요. 새벽 3시쯤에 깨워서 이제 너는 4급 과목으 로 간다 그래요 미국 교도소는요.
급수가 있어요. 1급 2급 3급 4급 레벌 1 2 4 저는 레벌 4 4급 과목으로 갑니다. 잔지수나 무기수는 한 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을 수 없다는 사극 과목으로 가는 거 예요.
저 새벽에 깨워서 한 10m 정도의 호송버스가 있는데 여기서 제 옷을 다 벗기는 거 예요.
그리고 입안 조사도 하고 머리 털도 털게 하고 혹시 마약 같은 거 묻혀갈까 귓속도 보고 입속도 보고 발가락 벌도 보고 내 항문도 열어보고 다 조사한 다음에
종이 펜트를 입히고 또 종이 페인트 위에 종이 원피스 위아래가 붙어 있고 그 색깔 이 오렌지 색깔이에요.
왜 그러냐면은 야간이 된 거기 때문에 밤중에 도망가도 다 보이지 새벽 3시니까 그 리고 발에는 족쇠를 채우고 허리에는 새사소를 두 번 감고 이쪽에다 기마 자세로 수갑을 채우고 그리고 버스 호송버스 있는 데까지 한 명 한 명씩 걸어가는데 발에 서는 걸을 적마다 철커덕 철하다 하는 쇠사슬 소리가 났습니다.
그때 서러워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 포송버스까지 가는데 발밑에서 나는 척하다 척하다 하는 소리가 그때 나는 뭘 봤어요?
내가 참 열심히 일하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내 자신을 자부해왔었는데 참 나 는 죄인이었구나.
보이지 않는 죄악의 사슬에 이렇게 묶여 살아왔구나 하는데 죄악의 사슬에 묶여 있 는 내 모습을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호송버스를 타서 7시간이나 되는 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생퀸틴 가옥으로 갔었습니다.
그 생킨틴 가목은요.
한 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 없다는 150년 된 건물인 우중충한 건물이에요. 거기 갔더니 모든 제소자들이 흑인, 백인 멕시칸 선글라스 기구 전부 귀걸이하고 코걸이하고 혀에다도 뭐 하고 그냥 턱에다도 하고 온몸이 다 문신 문신이에요. 그리 왜소한 동양인 하나가 버스에서 내리니까 다 나를 쳐다봤는데 웬 에산 사람이

이렇게 오지 그리고 나를 다 쳐다봤는데 내가 얼마나 밥을 먹었겠습니까?
그리고 그날 밤 방을 배치받았습니다. 방은 침대가 있고 더운 물 따순 물이 나오는 세면대가 있고 양백미 하나가 있고 그리고 종이불이 있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손님이 하나 찾아왔어요. 자기는 멕시칸 갱스터 누벅 아블리라고 그래요. 난 아브인데 에치노 그래서 내 이름은 리라고 해. 이씨 리 파울 마이 리 그랬더니 뭐 이래 그러면서 너한테 새로운 사람한테 꼭 필요한 게 있다는 겁니다.
뭐냐 그랬더니 자켓을 착착 했는데 칼이 주렁주렁해.
니가 이 한 번 들어와서 살아서 나갈 수 없다. 가만 해서 오래 살고 싶으면 너 자신 을 지켜줄 것은 칼이다.
이 칼을 몇 자루 사서 하나는 품고 당기고 하나는 방에 두고 하나는 식당 식당 밑에 테이프를 붙여놓고 하나는 저 야드 운동장에 잔디밭이 쫙 넓으니까 거기다 푹 박아 놔서 너만 아는 것을 보아 둬라.
너는 금방 와서 돈도 없을 테니까 싸게 해줘 마. 그런데 그 사람은 칼향소에서 감옥 에서 마약 장사를 하는 사람, 마약을 하는 사람이에요.
그거 팔아서 마약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 아브라테 그랬어요.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서 밖에 있을 적에 권총을 차고 다니다가 내가 이런 무기름 을 받고 여기서 왔는데 또 칼을 산다면 나는 이미 하나님 만난 사람이기 때문에 나 는 믿는 건 성경이고 하나님이다 그랬더니 비웃고 니가 스스로 나를 찾아와서 그 살
그 칼을 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요.
감옥에 소문이 쫙 퍼졌어. 이 천여 명 되는 그 장기술들 중에 동양인은 통틀어서 30 여 명밖에 안드레요.
필리핀 중국인 리아나 캔보디아 이렇게 있는데 한국인은 저 혼자였습니다. 교도관은 3명씩이나 되더라고요. 한 분은 한국말을 잘하고 두 분은 한국말을 못하 는 3명의 교도관이 있었는데 제소자는 저 혼자였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소문이 퍼졌느냐면은 새로운 에샤네 한 명이 어저께 아버지 찾아가서 칼을 사라고 그랬더니 안 샀대.
그러니까 안 샀다니까 우리가 생각에는 내가 밥이 될 것 같으죠.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래 하면서 긴장이 풀려버린 거예요.
왜 새로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까 혹은 눈빛만 서로 잘못 봐도 저 사람이

왜 나를 쳐다봤지 혹시 나를 찔러 죽이면 어떡하지 하고 먼저 찌르는 것이
사극 과목에요. 혹시 이철수 씨 사건을 아시는지 모르지만은 이철수 씨가 똑같은 교도소에서 무기형 받고 갔다가 백인이 쳐다본다는 이유로 자기가 먼저 찔렀어요. 그래서 사형 선고를 받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에이션 한 명이 왔는데 아무리 칼을 사라니까 안 사더래.
근데 새로운 사람이 갱스터 출신도 아니더래. 그리고 한국인이라고 그러는데 한국 인이 한 명밖에 안 되더래.
알고 봤더니 뭐 맹출신도 아니고 약한 사람인가 봐.
그거부터요. 날 건드리지 않아. 하나님은요. 내가 당하기를 원하셨던 게 아니에요. 내가 약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강한 사람끼리 맨날 자기네들끼리 찔리 고 죽지 나같이 약한 사람은 곁에만 가고도 창피하다고 피해.
그러니까 나는 성경 만들고 교도소 교회만 가는 덴소서요.
교도 한 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 없다는 생킨둥 과목은 유명한 과목이었어요. 150년 된 과목인데 내가 있을 당시 88년인가 87년인가
샌프란시코 지진이 났을 적에 고가도로 이중으로 녹아들어가 주저앉겨서 그 밑에 차들이 세무치처럼 그냥 팍 눌려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었는데 그 교도소는 꿈쩍 도 안 해요.
다른 과목 다 무너져도 꿈쩍도 안 했어. 옥문이 안 열리더라고.
바울의 옥문이 그렇게 3년을 보냈습니다. 3년을 보내고 저는 도저히 4급에서 벗어 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대 천여 명의 4급 제소자들 중에서 30여 명이 3급으로 교도소를 갔는데 그 30명 중에 제가 포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4급에서 3급으로 갔습니다. 3급과 4급은 하나 차이지만은 하늘과 땅 차이 예요.
상금만 가도요.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위험성은 항상 도사리고 있었어요.
거기 갔더니 거기에도 한 30여 명의 네시아인들이 있었어요.
항상 네시인들이 몰려다녀요. 다른 저기 천여 명의 제소자들 중에서 30%가 멕시칸 이고요.
30%가 흑인이고 20%가 백인이고 10%가 기타예요. 그 기타 중에서도 소수가 우리 에시앤드림.

거기서 30명이면은 천 명 중에 30%면 300여 명이에요.
거기에 우리는 10분의 1밖에 안 돼. 그러니까 우리가 당하지 않기 위해서 30명이 똘똘 뭉쳐서 운동도 같이 하고 30명이 똘똘 뭉쳐서 운동장도 이렇게 같이 배회하 고 돌고 30명이 똘똘 뭉쳐서 몸에 문신도 하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거기 가서 딱 한마디 그들에게 나는 너희들하고 모든 걸 다 한다. 식당에 가서 같은 자리에 앉아서 밥도 같이 먹고 운동도 같이 하고 대화도 같이 하 고 어떤 햄버거라든가 농구 거는 게임 같은 게 있으면 모든 걸 다 하되 딱 두 가지 나 문신은 안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일날 교회는 간다 그랬더니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들이 내가 교회 가는 것까지는 봐주는데 몸에 문신하는 것만큼은 용서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에요.
그들끼리 회의를 했어요. 거기서 해결사를 즉 해결사 영어로 그러니까 슬랭으로 샤 칼라라고 그러는데 젊은 필리핀애를 샤칼라로 지정했어요.
니가 한국의 리를 차단해라.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샤워룸에 가서 샤워를 얻어 샤워를 하려고 이제 팬티를 걸리고 타워를 수건에 걸고 들어가려 했는데 누가 날 불리하고 불러서 뒤를 돌아보 더니 갑자기 타월이 내 얼굴을 향해서 오는 거예요.
근데 그 타울이 얼굴을 가리는 게 아니라 내 어깨를 떨어주면서 다가오는 칼을 칼 은 내 목덩이를 찌르려는 칼을 팠어요.
그래서 내가 손으로 탁 잡았습니다. 칼날을 잡고 칼잡이는 손잡이는 그 필리핀 게 스터가 자랐습니다.
또 한 손은 공격을 마땅에 자랐습니다. 그때 저는 급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가 기도를 하면요.
응답은 몇 년 걸릴 때도 있죠 몇십 년 걸릴 때도 있죠.
그런데 급하면요. 금방 응답을 주세요. 박치기왕 김일 선생이 생각나더라고요. 박치기 잘하는 국민은 대한민국 국민밖에 없어요.
딱 잡혔는데 박치기를 한다고 하는 게 그 피니핑 게스트 이 눈자를 잘못 헤딩한 게 찢어져가지고 피가 얼굴에 낭자하니까 그냥 손을 놓는 거예요.
그래서

소리에서 피가 이렇게 흘렀지만은 다 찢어지지 않고 이렇게 기도하는 데 아무 이상 이 없을 정도로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3개월간의 독방을 가고 필리핀 갱스터는 칼을 사용했다 해서 1년간 독방에 갔습니다.
저는 그런 위험을 많은 수많은 죽음에 대한 위험을 많이 받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항상 주일날 교회는 가지만은 어느 날 교회에서 이렇게 앉아서 목 사 외부에서 들어오신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나요.
저렇게 외부에서 들어와서 이 어두운 영혼들 앞에서 병들 영혼들 앞에서 복음을 전 할 때 저분의 마음은 어떨까 얼마나 행복할까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니라미 하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었을 때 유노왈라비 내 내가 사랑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 부탁을 받은 제자 베드로의 마음과 그 외부에서 들어오신 목사님의 마음이 동일 할 것 같아요.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 영혼들을 사랑하면서 저렇게 말씀을 전할 까 그러니까 얼굴이 화나죠.
나도 어쩌면 하고 겨자씨보다 더 작은 꿈이 내 심장 안에 푹 떨어졌습니다.
그것이 자라고 있음을 저는 그때까지는 몰랐어요.
그렇게 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자꾸 흘러갔습니다.
어느덧 많은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상급에서 2급 교도소로 갔습니다. 2급 교도소 갔더니 3급보다 훨씬 좋아요. 그래도 거기도 갱스터들이 만연하고 항상 위험한 건 역시 마찬가지고 또 에시안이 적은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22년간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 한국 사람하고 같이 생활해 본 것이 40% 정도 밖에 안 돼요.
60%는 혼자 살아왔습니다. 항상. 그런데 우리 한국인 제소자들이 꽤 있어가지고 다른 캘리포니아 교도소에 한두 명씩 혹은 3명씩 또 있었는데 나만 유난히 한국 사 람이 없는 곳에서 살았습니다.
근데 2급 간호에 갔더니 환경도 좋고 한국 사람도 한두 명이 있었는데 저는 또 무 기 장기술이다 보니까 잠깐 있다가 가는 사람 한국 사람들이 왔다는 가요.
그래서 한국 사람이 2~3명 정도까지 있다가 또 금방 나가면 또 혼자 되고 그런 생 활을 오랫동안 했었습니다.
이번에는 멕시코하고 멕시코 게스트하고 또 문제가 생겨서요.

진짜 이건 죽음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죽기 1분 전이었었어요.
이 미국 교도소에서는 밖에 가족들로부터 30파운드의 음식 선포를 받아요.
그러면 우리 가족들이 고추장도 보내고 저런 한국 음식 통조림, 꽁치통조림도 보내 고 또 라면도 보내고 합니다.
특히 사발면 같은 거 사발면은 내가 맛 한 번 보고 주위 사람들한테 나눠줬어요. 그랬는데 옆에 방에 우리 멕시칸 갱스타한테 친구라고 하나 줬더니 하나를 더 달래. 그래서 한 박스가 12개밖에 안 됐는데 다 놓아주고 이젠 없는데 너에게 두 개 줄 것 이 없다 그랬더니 이 사람이 거기에 아침을 벗고 이제 멕시칸들한테 헛소문을 퍼뜨 린 거야.
저 한국인이
우리 멕시칸 여자를 죽였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멕시칸들이 굉장히 자존심이 상한 거야.
아니 어디 감히 치노가 그 사람들은 에시아는 전부 치노야.
이름이 없어 치노 치노 그냥 필리핀 사람도 친노 중국 사람도 친노 일본 사람도 친 노 뱀, 월남 사람도 진노 다 그래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말해 다 각자 이름이 있고 국적이 틀리니까 이름을 불러달라고 그랬는데 진 노 그러면서 놀리는 거예요.
그러면서 니가 너는 멕시칸 시작하려고 그러니까 해결사가 와서 30일간은 시간을 줄 테니까 그때까지 다른 데 다른 과목으로 가라 이거예요.
그러지 않으면은 30일이 넘도록 이 과목에 있으면 나는 우리는 이렇게 하겠다 그 러더라고요.
그런데 다른 과목으로 이송해달라고 그러면 그 즉시 이송해줍니다.
나 위험합니다 하고 하면은 그런데요. 내가 가기 전에 이미 상대쪽 교도소에서 정 보가 얼마나 빠른지 기다리고 있어요.
가면은 죽는다는 게 뻔한데 내가 왜 갑니까?
그래서 한국 사람 한 명이 9군데를 옮겨다니다가 9번째 교도소에서 결국은 죽었어 요.
내가 그걸 알거든요. 그래서 저는 여기서 끝내겠다.
그리고 죽으면 주리라 하고 매일 30일 동안 기도를 뱅글뱅글 돌면서 운동장글뱅글 뱅글 웃으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멕시카들이 다 비웃으면서 나를 쳐다봅니다. 니가 이제 20일 남았네.
15일 남았네. 일주일 남았네. 닷새 남았네. 이틀밖에 안 남았습니다.
저는 이제 칼 맞아 죽을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이틀째 되던데 어느 멕시칸이 운동 장을 이렇게 돌고 있는데 딱 앞을 가로막아요.
이게 봤더니 아주 깨끗한 복장을 단정히 한 멕시칸이고 머리도 이렇게 기르고 성경 을 옆에 이렇게 끼고요.
나를 치노라고 부르지 않고 미스터리 브라돌리 그러더라고 블라드 형제님 형제님 하고 불러요.
브라돌리 하고 불러요. 그래서 아니
깽스트 아닌 크리스천이 물론 난 모르겠어. 이렇게 나 기억을 못하느냐 그래 아무 리 봐도 기억이 안 나요.
그러니까 내가 치본인데 치보라는 것은 이제 염소라는 뜻이에요.
그 사람 얼굴이 염소같이 생겼다. 그래서 치본인데 지보를 모르겠느냐 면서 이렇게 보니까 깜짝 놀랐어요.
우리가 재판받을 때 같은 방에 한때 있었던 갱스터 부두목이었었는데 나를 그렇게 좋아했었어요.
나를 좋아한 이유는 중국 와칭깽이 그 사람은 친구야.
그러니까 그 사람은 에시아는 다 똑같은 줄 알아 그래가지고 내가 그 친구인 줄 알 아요.
그러니까 그 갱스터들의 최고 우상은 같은 깽들이에요.
근데 그 중국 와칭깽이 경찰을 죽였어요. 그러니까 살인도 똑같은 살인이 아니라 경찰을 죽인 사람은 최고 우상이 되는 게 교도소예요.
그러니까 그 우상의 친구라 이거야 아무리 설명해도 안 믿어 그래가지고 솔직히 내 가 그 깽스트 친구한테 나는 그렇게 좋아하는 거예요.
그렇게 사귀다가 그 사람과 나는 갔다 헤어져서 그 사람 폴송이랑 가면
갔는데 갱뱅이라고 그 폴슨 가에서 갱들끼리 싸우는 것을 갱뱅이라고 해 우주가 뻥 터지는 걸 빅뱅이라고 그러는 것처럼 갱들끼리 싸우는 것을 갱뱅이라고 그러는데 그 사람이 칼 맞고 거의 죽게 됐어요.
그래가지고 병원에 갔는데 의사들이 하는 소리를 자기도 들었대요.
이 친구는 안 되겠군. 너무 중요한 것은 너무 깊이 했기 때문에 안 들 거예요.

그런데 그 소리를 듣는 순간에 자기 말 어렸을 적에 외할머니가 찬송 부르는 소리 성경 보는 소리가 들리도록.
그래서 하나님 우리 외할머니가 간절히 믿던 하나님 만약 살아계시다면은 나를 살 려만 준다면은 내가 전도를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기적처럼 살아났어요. 그래가지고 그때 목숨을 구해가지고 이거목저거먹 떨면서 전도를 하다가 내가 있는 감옥에 들어와서 코리아 니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나를 찾는다고 돌아댕기다가 운동장에서 나를 만난 거예요.
그래서 얘기하다가 보니까 내가 고민을 해했더니 깜짝 놀랬더니 가만히 있으라고 내가 부두목인데 어딜
그러더니 그날 이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그 옆방에 나를 모 함하던 옆방의 친구가 친노 지도하던 옆방의 친구가 내 방에 아주 공손하게 쳐서
미스터리라고 불러요.
그래서 나 이제 벌써 눈치를 알고 어깨에 힘을 딱 주고 나가서 그러고 나갔죠. 그랬더니 이 친구가 뭐라고 그러냐면은 암사오리 미스터리 나는 니가 최고의 친구 인 줄 정말 몰랐다.
그리고 그다음 날 운동장에 나갔더니 완전히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티고의 친구가 나오신다고 그냥 멕시칸 밴들이 그냥 나를 그냥 얼마나 크게 대접하 는지 그런 위기 속에 세월은 20년이 흘렀습니다.
30대 초반에 들어갔던 저는 어느새 좋은 나이에 교도소에서 다 보내고 50대가 되 었습니다.
근데 이번에는 제소자하고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20년째 되는 교도관하고 문제가 생겼어요.
그 교도관이
항상 나를 괴롭히고 인종차별을 하는 흑인이었는데 그 건물 담당하는 교도관이 내 가 이제 이렇게 저는 봉개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재봉틀이라는 근데 찾아오면 너는 다시 사극 감옥으로 보낼 거야.
나는 아예 헤즈 나는 너를 경멸해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그게 오래 됐어요. 2년 동안을 전 그 소리를 들었어요.
아침 10시 되면 재봉투를 봤다가 그 사람이 오는 발자국 소리를 저는 기억해요. 10시군 하면 그 사람이 틀림없이 옵니다. 그래서 아이큐 레버 프리즘 그래요.

그러다가 그런데 22년째 되는 날 제가 기도를 했어요.
너무 괴롭습니다. 하나님 나를 저주하는 저 입술에서 축복의 말씀이 나오게 하시고 두 번째 기도는 이렇게 답답할 때는 한국 사람이 있었으면 한국 말하고 같이 이렇 게 좀 했으면 좋겠는데 다른 교도소에도 서너 명씩 있는 한국인을 저한테 하나 보 내줘서 한국말 좀 해주기 위해서요.
그리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교도관이 찾아왔습니다.
헤이 하고 부를 줄 알았어요. 그 사람들은 항상 날 헤이라고 그래 옛날에 노예 시절 에는요 노예들한테 이름이 없습니다.
헤이 나이 먹은 흑인 노예한테도 헤이 뭐 뭐 그래 그렇게 야 쳐서 부릅니까?
그 버릇이 있어가지고 나한테도 헤이 그래요. 근데 그날 따라서 미스터리 그래요. 그리고 표정이 항상 잔인한 미소를 띠면서 하던 사람이 표정이 굳었어.
내가 왜 이런 소리를 이 친구한테 해야 되나 하는 곤혹스러운 표정이에요.
그러나 자기가 해야 돼. 왜 그 사람이 내 담당 교도관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하는 말 이 유고홈 그래요 고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이 사극 과목으로 보낸다고 그래서 나를 사극 과목으로 가라는 뜻인 줄 알고 그것을 고음이라고 알아들었고 오스랑 뭐가 잘 못됐느냐 그랬더니 어 그게 아니라 석방이라고 유포로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을 통해서 석방 소식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왔습니다. 내가 두 번째 제목이 뭐였죠?
제발 한국 사람 좀 보내주세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저를 아예 한국으로 보내버리 라니까 한국에 왔더니 죄다 한국 사람이야.
죄다 이렇게 한국말만 하고 그런데요. 그런데요.
장애물이라는 것은요. 항상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멀리 있는 장애물은 장애물이 아니야. 대한민국의 장애물은 북한 김정일이지만 대 한민국의 국민이 나 한 사람이 내 장애물이 김정일이라면 난 실감이 안 가요.
너무 멀어. 그 사람은 그러면 내 장애물은 뭡니까?
내 가까이 있는 거야 인천공항에 와서 사람들이 여기다 대고 뭘 말해 저게 tv로 봤 더니 휴대폰 이러구나.
휴대폰이 저렇게 생겼네. 너무 신기했어요. 난 휴대폰이 뭔지도 모릅니다.
내 나이는 33살에 들어갔다. 교도소에 들어갔던 자는 어느덧 55 55세가 돼 있었습 니다.

인터넷이 뭔지도 모르고 이넬이 뭔지 모르고 당장
지금 어디 가서 잠을 자야 되겠는데 잠잘 데도 없고 주머니에 돈도 없고 아는 사람 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없고 없고 밥을 먹어야 되는데 2007년 2월 13일날 진눈깨 비가 내렸는데 저녁 7시경 진눈깨비가 나갈 수가 있어야죠.
나갈 데가 있어요. 갈 데가 없으니까 돈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그런 사람 사람이 쓰겠습니까?
지금은 하나님이 저를 쓰지만은 그래서 찾아간 것이 노숙자 쉼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알코올 중독자에서 무기수에서 노숙자 되었습니다.
근데 그 노숙자 쉼터가 이렇게 선교단체에서 하는 쉼터였어요.
그래서 제가 제가 가장 간절했던 게 먹는 거와 자는 게 해결이 됐어요.
목자 쉼터가 초라하긴 하지만은 그렇다면 내가 간절히 바랐던 게 먹고 잠자는 것이 해결이 되었다면은 내가 이 나이에 돈 벌어서 얼마나 벌겠느냐 하나님이 나를 노숙 자 쉼터
또 성교에서 경영하는 저희 쉼터로 봤을 적에는 분명히 하나님 뜻이 있을 것이다. 돈을 벌 것이 아니라 이 가치 있는 노숙자를 위해서 내가 선교를 하자.
그래서 거기서 가까운 제기동에 있는 저기 동부시립병원이라고 있어요. 동부시립병원에 가면은 가난한 사람과 서민들과 저희 행령 환자들 술 먹다가 떨어 져서 빼내려다가 거기서 치료해 주는 거 병실이 있었는데 그 병실에 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선교 활동을 하면서 그들을 선교하다 보니까 많이 부족함을 느껴서 신학교를 입학 을 했습니다.
신학교 다니면서 그들을 선교하다 보니까 그 앞에 있는 종암경찰서 성북경찰서에 서 불러요.
아니 그러지 말고 우리 유치장에서 와서도 선교를 하고 유치장에 막 체포돼가지고 가장 힘들 때예요.
사복을 입고 쭈구리고 앉아 있을 적에
그거 뭐 때문에 그 누구를 폭행해서 들어왔습니다.
나는 누구 돈을 빼먹어서 들어왔습니다. 나는 자동차끼리 부딪혔는데 이렇게 들어 왔습니다.

다 그게 마치 그냥 자기네 인생이 끝난 것처럼 막 고민을 해요.
그럴 때 내가 말을 합니다. 누가 와서 말을 해도 위로가 안 될 때 뭘 끝까지 그걸 가 지고 그러세요?
나는 교도소에서 바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교도소에서 무기수로 살았습니다. 그러면 일단 깜짝 놀라가지고 쳐다봐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그래서 저는 이러이러했습니다.
그럼 그 사람들이 힘을 얻고 위로를 받으라. 그래서 내가 해야할 일이 바로 이 일이 구나.
그래서 그때부터 교도소 선교를 하고 세월은 자꾸 흘러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도 안 쓰던 날을 하나님께서 쓰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나를 어떤 시선으로 보냐 하는 게 중요치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 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저희 어머니에 대한 간증을 좀 하죠. 저희 어머니가 제가 석방돼서 한국에 오셔서 제가 왔어도요.
어머니께서 한국으로 못 오시는 거예요. 왜 그러냐면 연농하셔가지고 80이 넘으셔 가지고 팔에 힘이 없어가지고 여행사에서 비행기표를 안 팝니다.
안 되겠어요 권사님 그래가지고 한국 못 가고 만약 비행기 내에서 무슨 사고가 나 면은 기 여행사와 비행기 회사에서 모든 책임을 지기 때문에 안 됩니다. 그래가지고 어머니가 막 보약까지 먹으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22년간 저희 어머니가 기도해서 내가 석방을 시켰는데 우리 아들 얼굴 한번 볼 수 없다는 게 이해됩니까?
딱 하나님 기도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마엘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던 하갈과 같은 부르짖는 기도를 했었습니다.
많이 기도했었습니다.
저희 저한테는 사형제가 있어요. 우리 여동생같이 4남매인데 위로는 형님 시애틀 에 있는 어느 한인교회의 장로님이고 제 동생은 미국 LA에 있는 어느 교회의 장로 님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는 장로님의 어머니예요. 근데 우리 어머니는 장로님의 어머니 를 거절했어요.

우리 둘째 놈이 교도소에 있는데 내가 장로님의 어머니로서 높임 받아서 뭘 하겠느 냐 무기수의 어머니로서 나를 위해서 기도좀 해줘라.
난 무기수의 어머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가 엄청나게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22년 만에 풀렸죠. 그런데 그 아들을 보러 와야 되겠는데 올 수가 없는 거예요.
건강상의 문제로. 그리고 저는 어느덧 신학교를 졸업해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한국에 온 지 7년 만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때 우리 어머니가 또 기도를 해 서 목사 안수를 앞두고 어머니가 막 기도를 했습니다.
아들이 이제 저희 어머니는 90을 바라보는 88세였어요.
그때 기도를 했었으면 우리 아들이
무비스 유니폼을 22년을 입다가 목사 가운을 입는 것을 내가 왜 볼 수가 없느냐 잘 좀 건강을 허락하셔서 갈 수 있게 해달라.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희 어머니가요.
그 여행사 계단을 올라갔어요. 그랬더니 그 비행기표를 팔았어요.
그래서 82~3세 때도 안 팔리던 비행기표를 88세 때 팔으셨어요.
그래서 비행기 타고 오셔서 저희 목사 왔을 때 오셨어요.
그때 목사 한수시 때는 좀 특별했던 목사 한수시였습니다.
30년간 내가 미국 교도소에 있을 적에 편지를 주고받던 문서 선교를 하시던 미국 교회 권사님이 특별히 오셨고 그 미국 교회가 베델 한인 무슨 교회였었는데 그 교 회를 그 당시에 담임하던 저희 추리플 신학교 총장님이 누구시죠?
칠천 미라클 하는 그 목사님 이름을 오늘의 양식 번역하시는 목사님 그 목사님이 찾아주셨어요.
그 목사님한테 연락을 해서 그 목사님이 85년 재판받을 적에 탄원서를 써줬거든.
내가 그 목사님한테 전화를 했더니 나를 기억하시라고 아니 무기형 받았는데 어떻 게 나왔어요?
하나님이 풀어주셔서 나왔습니다. 제가 목사님 곧 봤습니다.
근데 그때 그 권사님을 찾고 있는데 못 찾겠습니다.
연락이 돼 주세요. 그래서 그 목사님이 연락을 해 주셔서 권사님이 직접 오셔서 내 목사 소식 때 함께 찬양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열심히 쓰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희 어머니랑 함께 만날 수가 있

었고 저는 정말 아까도 말했듯이 꼭꼭 숨기고 싶었던 과거, 부끄러웠던 과거, 나의 죄 지었던 과거 그것을 지금은 어떻게 됐어요?
목사 또 교도소 선교를 하는 법무부 교정위원 나처럼 인성이 아주 못된 사람을 교 도소 인성 교육 강사로 또 쓰시고 다윗처럼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인으로 열심히 쓰 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여러분들한테 어떤 장애물이 있습니까? 저는 교도소 선교를 간다거나 어려 운 노숙자 선교를 할 적에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상처는 능력입니다.
저는 항상 하는 이 버릇이 있어요. 나만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다 상처 갖고 살지 않느냐 내가 내 몸만 십자가 밑에서 죽은 게 아니라 내 상처도 죽어 서 능력으로 거듭나서 여러분들 앞에 와서 복음 전하게 하셨다.
근데 요즘에는요. 또 한 가지 늘었어. 상처는 능력이다.
왜 상처는 향기다 이사야 53장 오조별의 발음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 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오. 그가 징계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얻었고, 그 가 채찍 맞음으로 우리가 남을 받았도다.
찔리고 상하고 징계받고 채찍 맞은 그분의 상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향기인 것입 니다.
지금 저는 여러분들한테 향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에베소서 야고보서 1장 2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들이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여러 가지 시험 여러 가지 장애물이죠.
장애물이라는데 어디 종류가 딱 정해져 있어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장애물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내가 받은 무지무지하게 많은 장애물, 그 종이로도 해결 사라 할 수 없는 장애물 또 나이라는 장애물.
우리 한국에서 55세라면 그냥 멋진 회사 다니다가 은퇴를 했어도 그다음부터는 할 것이 없어요.
그러니까 등산만 가는 거야. 좋은 거 먹어가면서 등산만 다니는 거야.
그런 그 나이에 제 나이는 어느새 10년이란 세월이 흘러서 저는 꿈이 있어요. 50대 때 꾸었던 꿈을 지금 60대 때 하고 있습니다.

저는 또 꿈을 꾸고 있습니다. 70대가 되면 나는 이렇게 하겠다는 60대 꿈을 꾸고 있습니다.
저는 70대가 되면요. 무슨 꿈을 꾸고 갈까요? 80대 꿈을 꿀 거예요.
80대가 되면 90대 90대가 되면 우리 100세 인생이라 그러죠.
그럼 100세가 되면 뭐 할까요? 그만해야죠. 무슨 꿈을 그만 하죠 무슨 꿈을 10세 다 갑니까?
이젠 천국 가야죠. 여러분들 앞에 있는 장애물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여러분 들한테 앞에 놓인 장애물은 장애물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낼 수 있는 아름다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를 함께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가겠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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