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성도목사 2022년 다니엘기도회 4일차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저는 통일소망선교회에서 북한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는 온성도 선교사입니다.
반갑습니다.
제 이름을 듣고 많은 분들이 가명인 줄로 얘기를 이렇게 합니다.
저희 아버지가 지어주신 본명입니다. 저는 전라남도 영광군 염산면 옥실리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염산 제일교회를 제가 다니고 있었는데요.
저희 아버지께서 교회 가실 때마다 목사님께서 늘 두 손을 들어서 온 성도에게 복이 있기를 이렇게 축도를 하셨답니다.
그래서 아들 이름을 성도라고 지으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많이 부으시겠구나라고 생각하셔서 제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제 이름도 참 좋은데 저희 고모님의 이름도 참 좋습니다.
온 신자입니다. 그리고 제 조카들 또 있는데요.
온 누리 온 사랑 온유도 있습니다. 여러분 온 성도 온 신자 다 함께 우리가 온 누리에 온 사랑을 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옆 사람과 한 번 이렇게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한 번 더 이렇게 인사할까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저는 군대에서 북한 선교에 대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강원도 화천이라는 곳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요.
굉장히 춥고 열악한 곳이었습니다. 사진에 보면 굉장히 높은 고지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늘 제 앞에 보이는 것은 북한 땅이었습니다.
제가 90년대 중후반에 군 생활을 했는데요.
그때 뉴스를 가끔씩 보게 되면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이어지는 영상이 가끔씩 나왔습니다.
저는 그 영상을 보면서 너무 가슴이 아파서 북한을 위해 계속 중보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제 마음에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저 북한 땅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해라 고민이 되었습니다.
철조망을 넘어서 북한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되나라는 고민이 많았는데요.
제대하고 나서 북한 선교를 하는 단체와 함께
중국으로 이제 단기 선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가장 끝에 있는 지역이 훈춘 지역이고 또 가장 반대 쪽이 단동 지역입니다.
이곳을 접경지역을 따라서 쭉 여행을 하면서 중국 각 전역에 특별히 북한에서 탈출해 나온 탈북하신 분들을 사역하신 곳들을 많이 가게 되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미션 홈은 장춘이라고 있는 곳에 세워진 미션 홈이었는데
중국 국경선에서 탈북해서 나온 청년들을 더 말씀으로 양육하기 위해서 이들을 더 내지로 와서 양육을 시키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곳에 미셔놈의 이름을 물어봤더니 이름이 세상에 천독반이었습니다.
성경을 천독을 목표로 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한 곳이죠.
제가 신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 청년이 나이가 저와 비슷한데 성경을 200쪽 이상을 하면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북한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암송하고 최대한 많이 읽어서 산송가도 외우고 해서 북한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청년을 보면서 제가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신학교를 다니면서 이렇게 준비가 안 되어 있구나라는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결혼을 했고 2004년도에 한 탈북민 전도사님을 모임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전도사님은 굉장히 열정적인 전도사님이었습니다.
한국에 온 지 2년도 안 되었는데 교회를 개척하겠습니다라고 저희 몸에 와서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 교회가 바로 열방샘 교회였습니다.
2004년
9월 7일에 이 열방샘 교회가 개척이 되었는데요.
이 전도사님은 사실은 국가 보위부 한국으로 하면 국정원 출신으로 북한 땅에서 중국으로 파견 나온 분이었습니다.
근데 이분이 숨어있다가 하나님을 믿게 되고 성령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인의 임무를 하지 않고 열심히 양육을 받았습니다.
선교사님에게 근데 공안들이 급습을 해서 체포돼서 북한으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본인은 보이브 출신이기 때문에 살아날 수 없겠다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살려주셨어요.
그리고 다시 탈북해서 나왔는데 또 체포됐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살 수 없겠다 하면서 감옥에서 하나님께 기도했다면 하나님 저를 살려주시면 제가 하나님을 위한 종이 되겠습니다 라고 하고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또 살려주셨어요.
그래서 한국까지 오게 된 것이었고 오자마자 신학교에 들어가고 교회 개척에 꿈을 가지고 주변 사람 탈북하신 분들을 열심히 전도하는 일들을 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그 교회 개척할 때부터 찾아가서 너무 열정적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신방도 돕고 전도도 돕고 했는데 어느 날 전도사님이 저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 나만 사역자가 필요합니다.
함께 사역합시다라고 얘기를 하셔서 저는 흔히 우리가 많이 하는
말이 있죠. 한번 기도해 보겠습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분이 하루에 적어도 세 번씩 전화를 하는 것입니다.
왜 기도했다더니 안 오는 것입니다. 예 우리가 우리 북에서 오신 분들을 만나면 말을 참 조심해야 됩니다.
다음에 한 번 식사합시다라고 하면요.
기다립니다. 일주일 안에 식사를 해야 합니다.
한번 기도해 보겠습니다 하면 응답받은 줄로 압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을 참 조심해야 됩니다.
그래서 정말로 하나님께 그때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열방샘 교회라는 탈북민이 모여서 만들어진 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님 이 교회를 위해서 제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이사야서 43장 19절 말씀을 계속해서 마음에 떠오르게 해주셨어요.
한 100번 정도는 계속해서 떠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아내와 상의를 하고 결국에 그 교회에 가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은 이 교회를 개척한 전도사님도 오살리 기도원이라고 파주에 있어요.
그 교회 기도원에 가가지고 열심히 하나님께 남한 사역자를 보내주십시오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동일한 구절을 주셨다는 겁니다.
제가 이 교회에 가서 지금 18년째 함께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함께 만난 그리고 남한 성도님들과 통일민 성도님 북에서 오시면 성도님들을 우리는 통일민이라고 부르는데요.
함께 모여서 매주마다 160명 170명이 함께 통일을 미리 맞이하고 있습니다.
3년 정도 교회가 조금씩 성장해 나갈 때 교회 성도님들이 저희에게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도사님 중국에 가면 수많은 탈북한 자매들이 있습니다.
이 자매들이 인신매매 당해서 농촌에 가서 얼마나 어렵게 사는지 남편에게 매맞고 또 팔려 다니고 너무나 어렵게 삽니다.
우리가 이들을 좀 도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성도님들이
저희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그냥 들어갈 수 없으니까 여러분 물건들을 모아주십시오 했더니 교회에 옷도 가져오시고 수건도 가져오시고 수많은 생필품들을 모아주셨어요.
그래서 이 짐들을 한 사람당 85kg씩 이민 가방에다가 채워지고 중국에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짐들을 가지고 들어가니까 택시도 안 태워주고 너무 이동하기가 어려웠지만 질질질 끌면서 그 옷이 막 터지고 하면서 지역에 찾아갔는데요.
자매님들이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한국에서 본인들을 만나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와줬다는 것만도 감사하고 특별히 복음을 그분들에게 전했는데요.
이 생명의 복음을 그분들이 받아들이고 얼마나 기뻐하는지 저희가 놀랐습니다.
그리고 함께 수련회를 하고 저희가 돌아왔는데 약속을 했어요.
여러분 우리가 1년에 적어도 두세 차례씩은 여러분을 만나러 오겠습니다.
그분들이 어떤 분이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자기는 오천 위안에 팔려왔어요. 그때 당시에 5천 위안이면 한국 돈으로 90만 원도 안 되는 돈이었습니다.
그 적은 돈에 농촌에 팔려와서 남편이 하는 말이 너는 돈을 주고 사온 우리 집 물건이다.
그래서 부인 대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 취급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여성들이 중국 땅에 너무나 많았어요.
그래서 저희는 그 여성들을 위에서 계속 교회에서 기도했습니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자주 그분들을 놓고서 기도하면서 기도 모임을 많이 열었어요.
그리고 해마다 그분들을 찾아가기 위해서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이렇게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저희가 드디어 그곳에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통일 소망 선교회를 기도하다가 세웠고 그 선교회에서 기도하면서 선교사님 한 분을 파송하게 되었어요.
그분이 바로 우리와 함께 지금도 12년째 사역하고 계시는 임천국 주향기 선교사님입니다.
중국에 직접 파송되어서 들어가니까 중국에 나와 있는 수많은 탈북 여성들을 매달마다 심방하고 전도하고 그들을 양육하는 일들이 시작되었고 특별히 북한에서 금방 넘어와서 팔려 다니기 일보 직전인 분들을 구출해서 그분들을 양육하는 센터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곳을 저희는 예재원이라고 불렀어요.
예수 제자 훈련원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이곳에서 양육을 받으면 이분들을 저희가 모금을 해서 구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당 필요한 금액이 한 200만 원 정도 들었어요.
다섯 명을 양육을 하면 한국에서 천만 원을 보내야 했어요.
때론 돈이 없었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속 저희에게 이런 마음을 주셨어요.
만약에 니 친 여동생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면서 모음을 해서 그분들에게 보내고 구출하는 사역들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구출이 되었어요.
그리고 한국에서 팀을 조직에서 아웃리치를 들어가서 그분들을 섬기고 중국 각 지역들을 돌면서 많은 분들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들어가니까
어떤 분들은 가서 오히려 상처를 주시는 분도 있었어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저희가 북한 선교학교를 열었습니다.
12주 동안 북한 선교학교를 통해서 그분들에 대해서 알고 북한에 대해서 알고 들어가니까 조심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 그분들을 어떻게 섬겨야 될 것인지 알고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분들도 얼마나 좋아하는지 많은 열매들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총 세 가정의 선교사님을 중국 땅에 파송했고 계속 많은 사람들이 구출되어 오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4년도에 저희 선교에 어려움이 발생했습니다.
저희가 파송했던 선교사님들이 두 가정이나 중국 공안에게 체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가셨어요.
지금 예제원 센터에 탈북한 자매님들이 두 군데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또 다른 선생님들이 오시기를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준비된 북한 선교에 대한 마음을 가진 선교사님을 보내주십시오 라고 열심히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셨습니다.
니가 들어가라
어 그런데 제 마음에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7년 만에 기도해서 쌍둥이 일란성 자녀를 낳았습니다.
이 아이들을 여섯 살 되었는데 애들 손을 붙잡고 들어가려니 쉽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기도하다가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고 아들을
부모님께서 맡아주기로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맡기고 딸만 데리고 중국으로 저희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중국에 들어가니까요. 얼마나 많은 탈북한 분들이 나와 있는지 실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백두산을 12일 동안 밤마다 이동해가지고 건너오신 분들도 있었어요.
어떤 분은 여덟 명 일가족이 탈북을 했는데
공안에게 쫓겨가지고 네 명은 붙들려가고 네 명은 도망쳐가지고 오신 분도 있었어요.
어떤 자매는 친 자매인데 물살에 밤중에 떠내려갔어요.
헤엄쳐 나오다가 그래서 손을 놓치고 간신히 헤엄쳐서 동생만 저희 센터에 구출돼서 온 분도 있었어요.
와서는 계속 우는 거예요. 언니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고 했을 때 나중에 언니도 찾아서 구출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들을 나누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많이 부어주셨어요.
이분들을 모시고서 나중에는 태국까지 이렇게 모셔가는 일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태국까지 가냐면 태국에 가면 국제 난민 수용소가 있습니다.
유엔에서는 탈북한 분들을 난민으로 인정을 했어요.
그러나 중국에서는 이들을 밀입국자로 취급을 해서 잡자마자 다시 북한으로 북송을 시키는 것이죠.
그들이 북한에 끌려가면 수많은 고문을 당하고 정치범 수용소에 가게 되고 심지어는 총살도 당하게 됩니다.
이런 끔찍한 일들을 막고자 선교사님들이 열심히 기도하면서 또 한국 교회 성도님들이 모아준 헌금으로 이분들을 구출하는 일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한 200명 정도의 탈북하신 분들을 만나고 구출하고 양육하는 일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분들에게 전해질 때 두렵고 너무나 힘든 마음에 이 말씀이 심어지니까
얼마나 많은 열매가 있는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3개월이 지날 때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처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완전히 새로워지는 은혜를 경험시켜 주셨습니다.
북한에서 또 북한에서 탈북하면서 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면서 중국 땅에 나와 쫓겨다니면서 팔려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상처들을 복음으로 회복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그들이 경험하면서 저는 너무나 신났습니다.
너무 행복했어요. 하나님 이 은혜를 계속 부어주십시오 라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어쩔 때는 기차로 이동을 했는데요. 저희가 네 명의 자매님과 기차를 타기 위해 가는데 늦은 거예요.
시간이 그래서 밤새도록 이제 기차역 밖에서 하얼빈이었어요.
기다려야 돼요 너무 추운 겨울에 큰일 났다 하고 갔는데 마침 기차가 연착이 된 거예요.
우리 눈앞에 기차 문이 열려있었어요.
타니까 문이 닫히고 출발하는 은혜를 경험했어요.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분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때로는 공안들의 감시를 피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지혜도 주시고 담대함도 주시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로 이동을 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작은 탈북민 교회에서 세워진 통일소망선교회 이 선교회를 통해서 지금까지 천사백오십 명이 구출이 되었습니다.
그냥 구출된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이것을 복음 구출사역이라고 합니다.
양육을 받고 3개월을 채 양육을 다 받고 오신 분들이 850명이 넘습니다.
그 것을 채우지 못하고 어려움 가운데 그냥 오신 분들까지 하면 1450명이나 구출이 된 것이죠.
하나님께서 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중에 한 분을 좀 소개를 해드리고 싶은데요.
혹시 사진 볼 수 있으면 보면 좋겠는데 많은 사람들이 거쳐갔으니까 그 사연들을 제가 다 소개하긴 어렵고 이 할머니만 제가 잠깐 소개하기를 원하는데요.
할머니가 옆에 있는 손녀 딸을 업고서 압록강을 밤중에 건너왔습니다.
제가 그 진리를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진리를 잘 알고 있는 조선족 사역자를 그곳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건너오다가 다른 곳으로 건너온 거예요.
그래서 조선족 사역자가 그곳을 찾아갔는데 없는 거죠.
할머니가 숨어서 계속 기다리는데 만나지 못한 거죠.
만날 수가 없죠. 그런데 옆에서 손녀 딸이 이야기합니다.
할머니 우리 이러다 잡히면 할머니도 죽고 나도 죽는데 할머니 우리 그냥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요 이 할머니의 딸이 한국에 먼저 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이 손녀딸을 어떻게든 한국에 먼저 간 딸에게 데려다 주려고 손녀딸을 엎고 나온 거예요.
그런데 만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밤새도록 손녀 딸을 달래고 얼리면서 밤새도록 시간이 지났는데 아침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옆에 무언가 있어서 보니까 거기에 어린아이 죽은 시체가 있었대요 할머니가 얼마나 놀랐는지 머리가 뻣뻣해지더래요
안 되겠다 싶어서 소녀 딸의 손을 잡고 다시 북한으로 건너가려는데 그 모습을 조선족 사역자가 발견한 겁니다.
그리고서 이 할머니와 손녀 딸을 데리고서 이동을 했고 제가 가서 모시고 저희 센터에 데리고 왔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 할머니가 저희 집에 와서 긴장이 풀리니까 기절하셨어요.
그리고 일어나질 못하셔요
열은 펄펄 끓고 온몸이 마비가 됩니다.
알고 보니 중풍병의 그러한 증상이었어요.
뇌출혈이 온 거죠. 탈북해서 오신 분들을 저희가 병원에 입원시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할머니를 살려주십시오 손녀 딸도 울면서 또 먼저 온 자매들도 같이 울면서 살려달라고 기도했어요.
할머니도 매일매일 기도하면서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손녀 딸과 북한에서 그렇게 힘들게 살다가 엄마에게 데려다 주려고 나왔는데 제가 여기서 죽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 절 살려주십시오 할머니가 계속해서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할머니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된 것을 보고서 제가 제일 놀랐습니다.
너무 놀랐어요. 아침에
완전히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밤과는 다른 모습으로 앉아 계신 것을 보고서 너무 놀랐어요.
할머니가 3개월 있다가 손녀 딸과 함께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할머니에게 박수를 쳐주고 꽃다발을 걸어주더래요 내가 농촌에서 그렇게 숨어 지내고 살다 왔는데 왜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나라고 봤더니 그때가 2016년 가을이었습니다.
2016년 가을에 이 할머니가 도착할 때가 3만 번째 탈북자니다.
그래서 기념행사를 한 거예요. 그 손녀딸이 삼만 일 번째입니다.
지금 인천에서 건강하게 아주 신앙생활도 잘하시고 잘 살고 계십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경험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한국에 와서 또 신학교에 들어가고 또 신앙생활도 잘하고 너무나도 잘 지내고 계십니다.
너무 행복했어요. 이 생활들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지냈는데 2017년도에 그만 저희가 구출하고 양육했던 여덟 명이 공안들에게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본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선생님 위험하니까 잠시 피신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는
헤어진 지 2년 정도 지난 아들도 중국에 같이 데리고 들어간 때였습니다.
그래서 같이 살고 있었는데 이러한 전화 연락을 받고 가장 첫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청도라고 하는 공항으로 갔습니다.
제 앞에는 대한항공 첫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 비행기를 타면 저는 한국으로 무사히 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수십 명의 공안들이 저를 덮쳤고 수갑이 채워져서 끌려갔습니다.
제 뒤에서 아이들이 울부지면서 외쳤습니다.
우리 아빠 잡아가지 마세요. 우리 아빠 잘못 없어요.
잡아가지 마세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저는 끌려서 취조실로 들어갔습니다.
수많은 협박과 욕설
그리고 제가 말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까 왜냐하면 제가 괜히 잘못 말했다가 아직도 남아 있는 탈북한 형제 자매들이 해가 되면 안 되고 또 아직도 저와 협력했던 선교사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말을 실수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한마디만 계속 외쳤습니다.
팀부동 핑구동 모른다는 뜻입니다. 난 모른다
계속해서 그 말만 외쳤어요. 이 사람들이 답답하니까 나중에는 철 의자에 저를 안쳤습니다.
다리도 움직일 수 없고 손도 움직일 수 없고 옆에는 완전히 방음 시설이 되어 있어서 이제 나를 고문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고문하지는 않고 공안국 책임자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당신은 한국에서 목사라고 하는데 왜 중국에 들어와서 이런 큰 범죄를 저질렀느냐
라고 저에게 따져 묻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제가 계속해서 팅부동 팅부동만 외쳤는데 이 사람이 이렇게 물어보는데 갑자기 성령님께서 제 안에서 역사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에게 큰 소리로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왜 탈북자들이 국경을 넘어서 그렇게 넘어오는지 알고 있느냐 북한에 자녀들을 놔두고 그 엄마가
돈 몇 푼 벌겠다고 나왔다가 인신매매 당해서 팔려가고 술집으로 팔려가고 수많은 고통 당하는 것을 당신이 알고 있느냐 아빠가 가정을 책임지겠다고 산속에 숨어서 일을 하는데 중국 사람의 돈의 3분의 1도 받지 못하고 그 돈도 주기 싫어서 주인이 신고해가지고 잡혀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당신이 알고 있느냐
제가 말 안 하고 있다가 막 큰소리로 얘기하니까 이 사람이 놀라는 거예요.
옆에 통역관이 얘기를 해줍니다. 제가 한참을 이 탈북하신 분들에 대한 얘기를 했어요.
그중에 두 명의 모습이 제 앞에 떠올랐습니다.
한 자매는 영양실조로 구출된 자매였어요.
이 자매는 한 번 나오다가 체포되어서 북한에 끌려 들어갔는데 그 감옥에서
도저히 살 희망이 없고 너무 힘드니까 자살을 결심한 겁니다.
그래서 머리에 있는 핀을 빼서 동맥을 긁기 시작했어요.
밤새도록 걷는데 피는 막 나는데 끊어지지 않으니까 나중에는 이발로 동맥을 끊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기절했습니다. 죽지 않았어요.
응급으로 치료를 받고 계속 감옥에 가둬두고 더 오히려 힘든 일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엄마가 소식을 듣고서 사람들에게 돈을 있는대로 빌려가지고 다행히 자매를 감옥에서 꺼냈다고 해요.
엄마가 말하기를 너 이렇게 살지 말고 중국에 다시 가라라고 해서 다시 탈북해서 나와서 성공한 겁니다.
그래서 저희가 구출해서 저희 집에 왔던 자매였어요.
북한에 끌려 들어가면 어떤 일을 당하게 되는지를 얘기했어요.
또 한 자매 얘기를 했어요. 이 자매는 중국에 와서 자녀들을 놔두고 중국에 왔는데 40대 중반이었는데
식당에서 일을 했어요. 그 돈을 차곡차곡 모았는데 나중에는 체포됐어요.
북한에 끌려가서 3년을 감옥에 있었답니다.
이 자매도 영양실조가 걸려서 내가 이제 살지 못하겠구나 했는데 그 자매를 그 안에서 돌봐주던 언니가 너 이러면 죽는다라고 해가지고 그 자매를 데리고서 어디론가 갔습니다.
감옥 안에 거기에 가보니까 시체들이 쌓여 있는데
그 시체들마다 구더기가 바글바글하더랍니다.
니가 이거라도 먹어야 산다 라고 해서 구더기를 먹고 살아난 자매였어요.
다시 탈북해서 구출되어서 저희에게 온 자매였어요.
지금은 모두 한국에 잘 와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공안 책임자에게 하는데 공안 책임자가 너무 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한국말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도 북한 사람 불쌍하다 분명히 중국 공안 책임자인데 한국말로 그 말을 하는 것입니다.
너무 놀랐어요. 알고 보니까 조선족 중학교를 다니면서 한국어를 배웠던 분이었던 거예요.
자기는 청도 있기 때문에 탈북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알지 못하지만 과거에 단동에서 조선족 중학교를 다니면서 북한 사람들을 봤는데 불쌍한 마음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뭘 도와주면 좋겠느냐라고 저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두 가지를 얘기했어요.
한 가지는 우선은 내 가족이 일주일째 잡혀있는데 우리 가족을 한국으로 보내달라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나와 함께 붙잡힌 8명의 탈북자들 그들은 북한으로 북송되면 한국으로 가는 길에 잡혔기 때문에 그들은 살아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을 어떻게든 빼달라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 사람이 나가더니 우선 가족들의 비행기표를 사왔어요.
그리고 가족들을 한국으로 보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덟명의 탈북자들을 이 사람이 돕겠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까
이미 북중 국경으로 이송이 된 상태였어요.
그래서 자기가 더 이상 도울 방법이 없다라고 얘기를 저에게 하는 것이었어요.
어쨌든 감사하더라고요 그리고 저도 북중 국경으로 이송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감옥에 갇혔습니다. 제 바로 옆에 탈북한 사람 8명이 잡혀 있었어요.
예 사진에 나오는데요. 그때가 2017년 2월 24일이었습니다.
밤중에 중국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감옥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희 선교회는 저뿐만 아니고 여러 명의 선교사님들이 이미 감옥을 경험했기 때문에 익히 그 사실들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제 감옥 생활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밤에도 불을 끄지 않고 환하게 불을 켜놓고
cctv로 저희를 감시합니다. 그리고 매일 하루 일과가 가운데 통로에 작은 의자들을 나눠주면서 앞사람과 무릎을 붙이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앉혀옵니다.
그리고 듣는 말은 런주이후이주의라고 합니다.
죄를 인정하고 죄를 뉘우쳐라라고 하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앉아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옆에 갇혀있는 탈북한 분들 여덟 명 북송되지 않도록 주님 도와주십시오 저들 북송되면 살아날 수 없는 사람들인데 하나님 저들 살려주시고 담대한 마음을 주십시오 저들이 들었던 복음이 얼마나 능력 있는지 저들에게 하나님 역사해 주십시오라고 매일매일 기도했어요.
싸움도 많이 벌어지고
그리고 먹을 거를 제대로 주지 않으니까 점점 몸은 가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있을 때 임시로 이발 치료를 하고 들어갔는데 감옥에 갈 줄을 몰랐잖아요.
감옥에 가서 치료한 게 땜질이 떨어졌어요.
신경을 건드리기 시작하니까 부어오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어떤 사람하고 부딪혔는데 안경이 깨어졌어요.
앞이 잘 보이지 않고 이발은 너무 아파오기 시작하고 매일 앉아 있으니까 엉덩이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는 빡빡 깎고 죄수복을 입고 손톱은 기르고 수염도 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위생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화장실을 좀 제대로 갔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늘 소원이었습니다.
26명이 한 감방에 있었는데 작은 화장실을 정해진 시간만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저처럼 금방 들어온 사람은 차례를 맨 마지막까지 기다려야 되니까 참다가 참다가 변비가 왔습니다.
하루하루 시간들이 지나는데 하루가 일주일처럼 느껴지고 한 달처럼 느껴졌어요.
앞에 시계가 걸려 있는데 얼마나 시간이 안 가는지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또 싸움은 얼마나 많이 벌어지는지 욕설과 매일같이 싸움이 벌어지는 그곳에서 우선은 재판이 3개월 이후에 있을 것이다라고 해서 3개월이 되면 한국으로 추방될 가능성이 많다라고 얘기를 들어서 저는 그렇게 알고 3개월을 버티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고 쪼그려 앉아서 말씀을 묵상하고 속으로 찬양하고 이런 생활들이 지속이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 앞으로 3개월 만에 통지서가 날아왔어요.
다른 죄수들을 보니까 그 통지서에 보니까 날짜가 적혀 있고 시간이 적혀 있어요.
몇 날 몇 월 며칠에 몇 시에 재판을 한다 저도 그게 나온 줄 알았더니 제 통지서는 좀 달랐어요.
거기엔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당신은 중범죄자이기 때문에 재판을 6개월을 연장한다 삼개월을 간신히 버텼는데 또 6개월을 버텨야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없었습니다.
날마다 앞에 있는 쇠창사를 바라보고 앉아 있는데 가끔씩 그 철문이 열리면서 방 쇼동식 하면서 이름을 부릅니다.
그 사람은 밖에서 일이 잘 처리되었기 때문에 그냥 석방이 되는 것이었어요.
혹시나 한국 외교부에서 나와서 나를 꺼내주지 않을까 라는 마음으로 팡이라고 부르면 귀를 번쩍 들고서 쳐다봤지만 한 번도 제 이름이 불려진 적이 없었습니다.
뒤에 작은 창이 있었는데
하늘을 나는 새가 그렇게 부러웠던 적이 없습니다.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마음껏 화장실에 갈 수 있다는 것 마음껏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안국에서 제 사건이 이제는 검찰국으로 넘어갔습니다.
검찰국에서 제 사건을 재조사하면서 저에게 중국의 법들을 보여주면서 얘기했습니다.
당신은 우리 중국 법에 의하면 10명을 밀입국을 조직을 하면 7년형에 처한다 당신을 보니까 이 탈북하신 분들 그리고 브로커들도 많이 잡혀왔거든요.
그 사람들의 증언을 따져보니까 최소 40명 이상을 미 입국을 시킨 게 조사가 되었다.
당신을 이십년에 구형한다 이제는 6개월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십년 제 인생이 이제는 끝난 것처럼 느껴지고 마음의 낙심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감옥에 갇히기 전까지 제가 아주 강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아주 큰 착각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매일같이 쪼그려 앉아서 그렇게 욕설을 들으며 싸움이 벌어지는 것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제 모습이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지는지 그리고 사탄이 저를 부정적인 생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밤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꿈속에서
그 옆에 탈북하신 분들 잡혀 있는 분들이 8명이 북송이 되어서 고문을 당하고 총살을 당하는 꿈을 계속 꾸는 거예요.
꿈에서 깨면 온몸이 식은땀으로 가득합니다.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 못하고 몸은 점점 여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사랑으로 양육했던 그 형제 자매들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저들 살려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가족을 위해서도 또 저의 남은 형기를 위해서도 하나님께 계속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저의 마음 가운데 오늘 우리가 읽었던 고린도후서 4장 7절 말씀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여러 차례 수없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 말씀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이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질 그릇은 어떤 그릇입니까 굉장히 약하고 볼품 없고 깨어지기 쉬운 그릇입니다.
질 그릇은 말 그대로 흙으로 만든 그러한 그릇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값싼 그릇이죠.
여러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슈퍼맨이 아닙니다.
우리는 질 그릇입니다. 제가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서 갇혀 있으면서 이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았어요.
완전히 한계 상황에 부딪혀서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너무나 힘이 든데 하나님께서 이 구절에 다시 한 번 말씀 읽어볼까요.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힘이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질 그릇인데 우리는 연약한데 우리 안에 보배 되신 예수님이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옆 사람과 한번 인사할까요. 우리 안에 보배 되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감옥에 갇혀서 이제는 모든 소망이 끊어진 때 내 인생 끝났구나라고 생각하고 때로는 하면 하나님을 원망도 하고 마음에 낙심이 가득할 때 하나님께서 그때부터 일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우리가 끝이라고 생각할 때 그때가 하나님의 시작인 줄로 믿습니다.
저는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때부터 일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제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위로를 부어주시기 시작하셨어요.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이 위로가 얼마나 큰지 이제는 밤에 꿈을 꾸는데 악몽이 아닙니다.
제가 춤을 추면서 예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오셔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용기를 잃지 말아라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해서 이제는 예수님을 주목할 수 있도록 그 전에는 감옥을 바라보고 내 인생을 바라보고 잡혀 있는 탈북 형제 자매들을 바라보고 내 가족을 생각했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주먹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저를 계속해서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 사랑이 얼마나 큰지 내가 비록 감옥에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은혜를 부어주셨어요.
제가 그때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이 정도라면요.
하나님이 이만큼의 위로를 부어주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이 정도라면 하나님은 더 큰 위로를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았던 사도 바울은 외치고 있어요.
고린도후서 1장 삼절 말씀에
또 5절까지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라고 외치면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 그냥 어느 정도의 은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주님이면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자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20년 있게 한다 할지라도 나를 이곳에 선교사로 보내셨구나 이 죄수들도 복음을 들어야 될 대상이구나 그런 하나님께서 복음에 대한 확신을 부어주시기 시작하셨어요.
그래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몇 날이 지나서 이 감옥에는요 수많은 죄수들이 있는데
아주 흉악범들이 많이 있죠. 살인범 수많은 죄수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아주 우락부락하고 험상궂은 죄수가 한 명 있었습니다.
조폭 두목입니다. 부하들도 많았어요.
간수들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그런 조폭 두목이 있었어요.
이 사람은요 저도 키가 큰 편입니다.
저보다 훨씬 커요
몸도 얼마나 좋은지 거기서는 키로그람으로 말하지 않고 근수로 말하더라고요 자기가 이백사십근이랍니다.
이 사람이 어느 날 두 아들을 시켜서 죄수들이 잔뜩 모여있는데 저를 끌고 나오라고 했어요.
제가 두 사람에게 앞으로 끌려나가면서 내가 뭘 잘못했나라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끌려나가는데 그 조폭 두목이 저희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내가 감옥에 들어오기 전에
한국 노래 중에 싸이의 강남 스타일 노래를 들었다 한국에서 왔으니까 그 노래 할 거 아니냐 그 노래 부르라는 거예요.
수많은 죄수들이 저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갑자기 끌려나와가지고 강남 스타일 노래를 부르라는 겁니다.
저는 그 노래 가사를 모릅니다. 그래서 얘기했습니다.
내가 그 노래 가사를 모른다 그랬더니 다른 노래 부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은혜를 주시고 군대에서 제일 많이 불렀던 노래를 제가 떠올리면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얼 산 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실로암이라는 노래 아시죠 이 노래를요 끝까지 불렀는데요.
이 조폭 두목이 아 그 노래 좋다고 한 번만 더 불러달라는
그래서 한 번도 매일 쪼그리 앉아 있다가 앞에 나와가지고 노래를 부르게 되었어요.
근데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요 한국 사람 나오라는 거예요.
또 다른 노래 없냐는 거예요. 아 있다고 나의 등 뒤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저를 나와가지고 또 다른 노래 또 다른 노래 부르라는 거예요.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면 손을 높이 들고 줄을 찬양 지금은 엘리아 때처럼 수많은 노래들을 불렀는데 그때마다 내일 특송은 뭘 부를까
그리고 그 종국 조폭이 자기에게 한국말을 가르쳐 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가나다라마바사 가르쳐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하고 친구가 되니까요.
저를 건드리는 사람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감옥 생활이 편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정말로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사형수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고
그 사람이 제가 한국말을 가르쳐주고 그 사람은 저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줬어요.
중국어를 많이 배웠어요. 나중에 한 사실은 대부분의 중국어에 욕이 섞여 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중국어를 하면 안 됩니다.
여기 섞여 있다는 거예요.
될 수 있으면 중국 말을 안 하려고 제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감사했어요. 복음을 전할 수 있어서 그래도 계속 제 마음에 갈급함이 있었던 것 중에 하나는 성경이 읽고 싶었어요.
하나님 성경책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러나 저는 아직 재판을 받기 전인 미교수이기 때문에 성경책을 받아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늘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저희 한 번은 아버지가 중국으로 면회를 오셨습니다.
비행기를 타시고 그런데 미결수이기 때문에 면회가 안 된다는 거예요.
아버지께서 그냥 어쩔 수 없이 돌아가셨어요.
근데 가시기 전에 쪽지를 하나 써놓고 가셨어요.
근데 그것도 미결수라고 주지 않는 거예요.
읽으라고 하면 철창 밖에서 읽으라는 거예요.
사랑하는 아들아 아버지가 이 먼 곳까지 왔지만 너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너무 안타깝구나 그렇지만 용기를 내라 내가 너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너무 감사했어요. 그러나 그걸 좀 달라고 했더니 안 주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책을 받고 싶으니까 더더군다나 안 된다는 걸 제가 알았죠.
그러나 제가 늘 앞에 나가서 이렇게 노래하고 특성화할 때마다
저를 잘 대해주는 간수가 한 명 있었어요.
그 간수에게 제가 계속 말했어요. 성경책을 좀 구해달라 어느 날 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품 속에서 작은 책을 하나 꺼내 주었습니다.
무슨 책이었을까요. 성경책이었는데 신약만 있는 성경책이었어요.
이 말씀을 읽는데요. 얼마나 좋은지 다윗이 고백합니다.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이 말씀이 얼마나 단지 매일 저녁마다 그 말씀을 읽으면서 너무 풍성한 은혜를 경험했어요.
그 전에는요 이 불만 좀 끄면 좀 편하게 살 텐데라고 생각했는데 불 켠 게 그렇게 고맙더라고요 밤마다 누워서 성경을 읽는 거예요.
너무너무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배고픈 것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걱정 근심도 완전히 사라지고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밤에는 성경 봐야죠
또 중보 기도도 해야죠 그리고 한국어도 가르쳐야죠 가끔씩 특성도 불러야죠 복음도 전해야죠 바빠지니까요.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감옥 생활이 막 너무 바쁜 거예요.
이렇게 시간들이 흘러다 보니까 일 년 만에 재판 날짜가 잡혔습니다.
그리고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탈북하신 분들 여덟 명은 아직 북송되지 않았다라는 이야기를 제가 계속 듣고 계속 기도했어요.
그리고 20년이었던 제 형이 15년으로 10년으로 7년으로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것만도 감사한데 마지막 최종 판결에서 2년 6개월 판결을 받았습니다.
제가 나중에 안 사실은 수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너무너무 감사했는데 그것만 아니고 저에게 공안 책임자가 면회를 왔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다는 거예요. 어 제가 구출했던 사람들 중에 한 자매가 임신 초기였습니다.
이 자매가 감옥에서 갇혀있으면서 애기를 낳았어요.
그리고 어 생활을 그분들이 너무 잘했어요.
그리고 그 사이에 또 잡혀온 탈북한 분들이 있었어요.
총 20명이 바로 옆에 감옥에 갇혀 있었어요.
여기는 북중 국경이기 때문에 바로 북송을 시킬 수 있는데 공범이기 때문에 아직 북송이 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분들이 생활을 잘하고 또 저는 이제 재판을 끝났기 때문에 그 공원이 하는 말이 저들이 북한에 끌려가면 다 죽는다고 하는데
우리가 저들을 그냥 풀어주자 라고 얘기를 하고서 그렇게 풀어주기로 얘기가 나왔는데 또 이런 얘기가 나왔어요.
이들을 그냥 풀어주면 어디 가겠느냐 또 잡혀서 들어올 거 아니냐 한국에 가게 되면 한국에 가서 집도 받고
잘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이들을 동남아로 이동을 시켜서 한국까지 가게 해주자 할렐루야
너무너무 감사했어요.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하나님께서 이들의 마음 가운데 역사해 주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는 하루에 여덟 시간씩 노동하는 그런 감옥으로 이송이 되었습니다.
그 감옥에 가서 하루 여덟 시간씩 노동을 하면서 남은 형기 일년 육 개월을 채우고 이제 나오는 것이었어요.
근데 이 감옥에 가서 일을 할 때 몇 개월이 지난 다음에 한 간수가 저에게 전화 통화를 시켜주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한 4개월 정도 일한 때였어요. 아내가 전화를 받고 나서 너무 반가워하는데 제가 너무 궁금했던 것 여보 분명히 약속하기를 그 스무 명을 한국으로 보내준다고 했는데 혹시 그 사실 들은 거 있어요 라고 제가 아내한테 물어봤습니다.
아내가 저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여보
바로 얼마 전에 그 20명 다 한국에 도착했어요.
한 명도 아니고 두 명도 아니고 20명이 다 한국에 도착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제가 그 사실을 듣고 나서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이 나왔어요.
하나님 잡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약에 잡히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공안 책임자를 내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그 사람을 만났을 때 내가 가만히 있었더라면 만약에 우리 자매 중에 한 명이 임신이 아니었더라면 재판이 1년 동안 연장된 것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고 모든 것이 다 오차 없게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이라는 것을 그때서야 제가 알게 되면서 하나님 잡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들어야 될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은혜 주신 것 하나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나머지 감옥 생활 하나님께서 얼마나 은혜를 부어주시는지 은혜 가운데 잘 하루도 빼주지 않더라고요 2년 6개월을 채우고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감옥에서 나오고 나니까 얼마나 좋은지 걸어 다니는 게 우선 좋더라고요
마음껏 걸어다녔어요. 그러니까 나중에 다리가 마비가 되기 시작했어 의사가 하는 말이 근육이 파열됐다는 거예요.
기부스를 했습니다. 그래도 좋았어요.
전화 할 수 있잖아요. 너무 좋았어요.
마음껏 화장실 갈 수 있고 마음껏 김치도 먹을 수 있고 마음껏 손톱도 자를 수 있고
모든 게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특별히 감옥에 갇혀 있던 분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한 청년이 제 손을 잡고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선생님 13개월 동안 매일 북송당할 그 두려움을 안고 살면서 하나님을 많이 원망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었지만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느껴져서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히 느낍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고난이 유익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부둥켜 안고 울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놀랍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질 그릇과 같지만 질 그릇 같은 우리 안에 보배 되신 예수님 계셔서 우리가 그 주님을 바라볼 때 놀랍게 역사하시는 것들을 우리는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단일 기도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답해를 받고 거꾸로 뜨림을 당하여도 그럴수록 내 안에 주님께서 더욱더 빛을 발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제가 어릴 때 장난감을 아이들에게 사준 것이 있었는데 오뚝이 장난감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넘어뜨려도 또 일어납니다. 얼마나 좋은지 애들이 계속 넘어뜨리고 넘어뜨립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일어나지 못하는 거예요.
누워 있어요. 왜 못 일어나나라고 오뚜기를 분해해 보니까 가운데 추가 떨어진 것이죠.
추를 단단하게
접착제로 붙이고 나니까 또 일어서는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안에 보배 되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는 일어설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기도는 핵무기보다 강합니다. 북한 땅은 계속해서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무기를 만들어내고
여러 가지 많은 위협을 하고 있지만 그 어두운 땅은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감옥에 나와서도 계속해서 믿고 기도하고 있고요 계속해서 탈북 사역들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랍게 역사하시는 줄을 날마다
느껴지고 깨닫게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 민족 가운데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 방법으로 통일을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지금 코로나로 인해서 북한 선교가 많이 어렵습니다.
한국으로 탈출해서 나오다가 붙잡혀 계신 분들이 중국 감옥에만 천 명 이상이 갇혀 있습니다.
공안들의 마음을 바꿔주셔서 감동시켜주셔서 그것들 다 풀려나 한국으로 와서 마음껏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북송되지 않게 해달라고 여러분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지금도 저희들은 중국에 나와있는 탈북 여성들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탈북한 여성들이 중국에 나와 있는지 모릅니다.
공식적으로 통계는 잡히지 않지만 대략 십만 명 정도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아까도 우리 영상에서 보았죠. 그런 여성들이 한국에 올 수 없고 또 한국에 오려고 하지 않고 그냥 그곳에서 사는 자매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원래는 성도사님들이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지만 코로나로 막히다 보니까 저희가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온라인 사역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팀장으로 세우고 팀장님들이 지역들을 돌면서 예배를 인도하고 북한 자매님들을 중심으로 예배가 드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온라인으로 그들을 양육하고 사역을 하는데요.
얼마나 많은 열매들이 맺혀지는 줄 모릅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자녀들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는데요.
또 대학생이 되었는데 엄마의 고향인 북한 땅에 내가 복음을 전하겠다 라는 비전을 가진 청년들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여러분 통일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북한 선교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약 3만 4천 명 정도의 탈북민들이 입국했습니다.
우리 주변 아주 가까이서 살고 있어요.
혹시 오늘 이 자리에도 오신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열방샘교회를 사역하고 있는데 열방샘교회 성도님들 탈북민들도 열심히 모여서 단일 기도에 참석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친구가 되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주신 너무나도 귀중하고 소중한 분들인데 통일의 마중물들이고 미리 온 통일인데 여러분들이 가족이 되어 주십시오
그래서 함께 웃고 함께 관계하고 함께 사랑을 나누면서 예수님의 그 은혜를 풍성하게 나눌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북한 선교 하는 통일소망선교회 안에 수많은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저만 감옥에 갔다 온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다녀왔고 어려움들을 겪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무릎이 아파도 일어나서 또 이런 사역들을 감당하시고 어떤 분들은 암에 걸려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치료받으면서 계속 이 일들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면 그것으로 족하다라는 마음으로 열심으로 목숨을 걸고 사역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 북한 땅에 갇혀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중국 땅에 이 사역을 하다가 갇혀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이 풀려날 수 있도록 또한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소망이신 줄로 믿습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그 주님을 의지하면서 간절히 기도하면서 질그릇 같은 내 안에 법에 되신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다니엘 기도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도배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과의 깊은 사귄 가운데 날마다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다니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힘이 큰 능력으로 우리의 삶 가운데 이 민족 가운데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한 번 이 민족에게 부흥을 허락하여 주옵시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 방법으로 복음 통일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다음 세대 시대적 사명자들을 잘 키워낼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열망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제사장 민족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직도 감옥에 갇혀 있는 천 명이 넘는 탈북자들이 있습니다.
저들과 함께하여 주시고 중국 공안들의 심령을 변화시켜 주소서 다 석방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매일 밤 눈물로 지새우는 중국 내에 있는 탈북 여성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믿음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저들도 다 주님을 영접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대한민국에 입국한 모든 탈북민들 다 예수님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생명의 주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