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제목사 다니엘기도회

저는 기구하게 사셨던 저희 어머님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충청도 한 시골 마을에서 가난한 집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렇게 아들을 바랬던 집이었던 것 같은데 첫째도 딸 둘째도 딸 둘째 딸로 태어나셨습니다.
초등학교도 가보지 못한 채로 조금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남의 집에 식모살이를 하셨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식모살이를 하시면서 열심히 꿈도 키우시고 소녀로서
그리고 돈도 조금씩 모았는데 멋있는 남자를 만나셨습니다.
그 남자분과 함께 서울로 와서 열여덟 살에 결혼식을 올리고 서울로 올라오셨습니다.
꿈은 크셨습니다. 이 남자와 함께
아무것도 없지만 열심히 살면 행복한 가정 혹은 훌륭한 가정을 만들 수 있지 않겠나 라는 소박한 꿈으로 올라오셨습니다.
근데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게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그것은 불임이라는 어려움이었습니다. 어머님이 열여섯 살 때 결혼하셨는데 첫 아이를 서른여덟 살에 낳으셨으니까 이십 년 동안 거의 불임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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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까 그 당시에 저희 어머님 연세에 불임이셨으면은 아기를 낳지 못 낳는 못하는 거죠.
근데 문제는 저희 아버님이 사대 독자라는 사실입니다.
아들 아들 오직 아들만 기다렸던 집에 부임을 불임인 상태에 몸을 가진 여성이 시집을 왔으니 얼마나 집에서 어려움을 겪었겠습니까 저희 아버님은
굉장히 자유로우신 분이셨습니다 가정을 너무너무 사랑하셨어요.
그래서 가정을 하나 더 갖게 되십니다.
아들을 갖고자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 어머님은 소박을 맞은 채로 시어머니랑 사시고 저희 아버님은 가정을 하나 더 가졌었다고 제가 태어나기 전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님은 그 혼자 남았던 몸으로 어떻게 이 어려운 생활을 벗어날까 하는데 그 당시에 이렇게 교회가 있었고 누가 전도를 했었으면 교회를 다녔을 텐데
저희 어머님은 시어머니의 권유로 절에 가게 됩니다.
저희 할머니께서 저희 어머니에게 애야 네 남편 내가 어떻게 난 줄 아냐 절에 가서 천일기도 해서 놨어 너도 해버려서 저희 어머님은 남편도 없고 그러니까 용기를 내서 절에 들어갔습니다.
3년 정도 머리를 깎으시고
정식 스님은 아니셨는데 이게 아궁에 불도 떼시고 청소도 하시고 하시면서 이제 밥을 얻어먹으시면서 하루에 천 배씩 삼 년을 채우셨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삼 년 채운 이후에 시어머니한테 할 만큼 다 효도를 다 마쳤으니까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머리가 다 자라지도 않았을 때였는데 저희 아버님이 네 삼 년 만에 절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저희 집에 놀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아버님은 아 오종 세트를 갖고 계셨습니다.
이게 사실상 뭐 좋은 것은 아니지만 알코올 중독이셨어 도박 중독이셨고 그리고 어머니를 많이 구타하셨습니다.
그리고 평생 무직으로 사셨고 여자 문제가 있었던 오종 세트를 갖고 계신 분이었어요.
저희 아버님이 이제 오셨는데요. 어머님의 아버님 무섭잖아요.
그러니까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약주를 대접했습니다.
그러니까 돈도 없으시고
구멍가게에서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제 막걸리를 몇 병 갖고 와서 열심히 대접해 드렸는데 삼 년 만에 어머님을 봤던 아버님은 되게 기쁘셨던 모양이에요.
그런 약주를 드시고 소위 요즘 아이들 말하는 표현으로 필름이 끊기셔서 집으로 못 가시고 저희 집에서 주무셨습니다.
근데 그날 그냥 안 주무셨던 것 같습니다.
그날 제가 잉태가 되었습니다.
정말 이제 그 어떤 아주 운명의 장난 같은 그래서 태어나 보니까 아들이었습니다.
제가 별명이 어렸을 때 오독이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대 독자의 주주는 말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아들 이런 별명을 갖고 자라면서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염주를 갖고 다녔고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천수경도 맨날 외워드려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어머니를 기쁘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중학교 되었을 때 제 짝꿍이 교회 골수분자였습니다.
아침마다 일찍 와서 성경책 읽고 밥 먹을 때 도시락 밥 먹기 전에 기도하고 그래서 제가 오른쪽에 이제 이 친구가 저한테는 굉장히 재수가 없으니까 염주를 오른쪽에 넣어놓고 돌리면서 항상 이 친구를 좀 저주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 그러다가 한 번 염주를 들켰는데 이 친구가 제 눈을 쳐다보면서 주기도문을 외웠고 저는 천수경을 외우면서 예 싸웠다.
아 싸웠던 기억이 납니다. 니까 무슨 종교인지도 모르고 사실은 무슨 제가 기독교를 잘 알거나 불교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어떻게 태어났다는 것을 어머니한테 하도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어 저한테 불교를 그렇게 강요하시거나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학교를 바꿀 때마다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한 천 배 중학교 들어갈 때 이천 배 고등학교 들어갈 때 삼천 배 이렇게 시키시면서 저를 준비시켜셨어요.
절에 가는 날은 삼천배 하는 날은 지금도 기억하는데 새벽 세 시에 저를 목욕을 시키시고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쌍방울표 새 그 속옷을 흰색 속옷을 뜯어서
아래 위로 입히시고 절에 가셔서 새벽 한 4시 반부터 절을 시키면 밤 아홉시 반이 되면 삼천 배가 맞춰집니다.
그거 삼전배를 마치고 신발을 신으려면 이게 구부러지지가 않습니다.
이게 그래서 제 생각에는 요즘 남학생들 이렇게 뭐 홈트도 하고 그러는데 삼천 배 한 달만 하면 왕짜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어머님은 불심을 강조하기보다는 저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고 그리고 제가 안전을 위해서 그렇게 저에게 시키셨던 것을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가정을 위한 경제 활동을 거의 안 하셨던 아버님께서 알코올 중독이셨기 때문에 집안이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어머니 생활비를 버텼지만 어머님이 벌어온 돈 모자 어머니 아버님께서 그걸 뺏어다가 술을 드셨기 때문에 집안은 늘 가난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보면서 아버지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를 속으로 많이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우유를 사서 마시거나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같이 딱 꺼냈을 때
뚜껑을 딱 열었는데 거기에 계란 프라이가 하나 있는 친구 집이 제일 부러웠습니다.
어 어릴 적 소원은 짜장면 곱빼기를 먹어보는 게 소원이 아닌 소원이었습니다.
근데 저희 집에는 다른 집과 다른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뭐냐면 제가 태어나기 전에 한 누님이 더 태어났었습니다.
6년 전이었습니다. 누님이 태어났을 때 정상 아이로 태어났지만 6개월 만에 소아마비가 오게 됩니다.
예전에 의술이 별로 발달하지 않고 잘 몰랐었던 저희 부모님은 소아마비인 아이를 데리고 한의원에 갔는데 약을 녹용과 인삼을 속여서 싸주면서 아리한테 힘을 주라고 그리게 먹였는데 그것이 부작용으로 뇌성마비가 오게 됩니다.
저희 누님은 생후 육 개월 만에 소아마비와 어 뇌성마비가 생긴 정신박약인 장애인 누나가 에 되어 있었습니다.
저희 누님은 생후 6개월 만에 그런 병을 갖고서 태어났기 때문에 에 밥을 스스로 먹거나 소대병원을 가리거나 하지 못합니다.
그 날마다 저희 집에서는 항상 오물 냄새가 났습니다.
이게 이 입은 채로 쌓기 때문에 누나 누나가 소리를 내면서 오줌을 싸면은 얼른 바깥에 나가서 걸레로 가서 이렇게 댐을 만들어서 이렇게 오줌을 모아서 요강에 짜고
그리고 3일에 한 번씩 많은 변을 놓게 되면 그것을 어머니가 보시든 아버님이 먼저 모시든 아니면 제가 먼저 보든 그걸 치우는 그런 생활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제가 누나 바지를 벗겨서 똥을 치웠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 누님은 처음합이 없기 때문에 다리가 이렇게 꺾어져 이렇게 계십니다.
니 바지를 벗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게 벗기다 보면 이게 쫙 묶게 되는데
그리고 저희 어머니께서 하셨던 거 본 것처럼 연탄불에다 주전자에 물을 끓여서 다라이에다가 온도를 맞춰갖고 안고 들어가서 먼저 똥을 다 털어내고 물로 닦고 빨래비누로 닦아서 바지를 입혀놓고 입혀놨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손을 이렇게 열심히 씻는 거죠.
막 그 막 수세미로 닦고 흙도 문지르고 막 이렇게 닦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꼭 냄새를 맡아봅니다.
아주 냄새가 나죠 왜 손톱 밑에 다 들어갔기 때문에
근데 이걸 닦고 닦고 닦아도 한 삼일 지나야 냄새가 없어지는데 저희 누님은 삼일에 한 번씩 반드시 제가 치우게 만드셨습니다.
이제 그런 배경이었습니다. 그래도 저한테 이제 소망이 하나 있었던 것은 그런 환경에 있던 사람이 저 혼자가 아니라 그 산동네에는 다 비슷한 사람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아무 소망이 없이 살아가던 때에 같은 동네에 사는 형님이 있었습니다.
그 형님은 완전히 저의 롤모델이었습니다.
형편은 좀 비슷했습니다.
그 아버님이랑 저희 아버님이랑 비슷했는데 딱 하나 달랐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어머니를 때리셨지만 그분은 어머니한테 맞고 사셨던 분이었습니다.
근데 그 형님이 너무나 비슷한 환경이었는데 저랑 달랐던 것은 뭐냐면 놀 모델이 될 만한 그러니까 같은 환경 속에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주 좋은 대학을 당당히 합격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한양대학교 전기공학과를 학교 가서 가셨습니다.
저희 동네는 오천년 역사에 처음으로 대학생이 나온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을 롤모델 삼아서 그 형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그 형이 저를 동생 삼아주셔서 남자가 인생에서 꼭 알아야 될 여러 가지 요소를 알려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술이었습니다. 어 술을 어떻게 마시는지 어떻게 하면 조금 마시고 취할 수 있는지
그리고 담배와 그리고 인생의 재미인 당구를 알려주셨습니다.
그 형을 좋아하고 따라다니면서 아 나도 대학에 갈 수 있겠구나라고 노력해서 그 형이 공부했던 독서실을 찾아가고 그 형이 앉았던 그 자리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왜냐면 그 당시 풍수 지리서를 믿었기 때문에 그 자리가 명당자리라 생각해서 그 자리를 빌리고 그 형이 입었던 교련복을 어깨에 걸치고 기운을 받으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근데 그렇게 재수까지 했지만 예 제가 워낙 기초 실력이 없어서 한양대학교 전기공학과는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아무 소망 없이 그렇게 버티고 버텼는데 아 대학도 다 떨어지고 제소에서 떨어지자 이제 공장을 가야겠구나 생각을 하는데 그날 뉴스를 보게 되는데
아나운서 여자분 앵커셨어요. 그분께서 이제 간단히 뉴스 클로징을 하면서 멘트를 날리셨는데 여러분 내년에는 재수하는 사람들이 대학에 가기가 더 어렵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대학 입시 제도가 크게 바뀌기 때문에 재수를 하게 되면 불리합니다.
올해 웬만하면 대학을 다 가시기 바랍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저보고 하는 얘기 어땠어요.
근데 저는 그때 어떤 힌트를 얻게 되냐면 아 그 당시엔 전기 대학과 후기 대학으로 나눠줬을 땐데 야 후기 대학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겠구나 어쩌면 후기 대학에 굉장히 좋은 대학에는 사람들이 겁나서 지원 안 해서 미달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공장을 가겠다는 마음을 접고 배장 지원을 하게 됩니다.
그 당시에 명지대학교 전기공학과가 가장 높은 대학이었고 후기 대학에서는 아무나 갈 수 없는 대학이었습니다.
거기에 배짱 지원을 하고 오직 믿는 거 부처님밖에 없어서 절에 갑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 손잡고 저를 드리고요 그리고 미달이 되도록 기도를 많이 했는데 아 기도 응답이 안 됐습니다.
미달은 안 됐습니다. 그런데 육십오 명 모집에 67명이 지원을 했습니다.
근데 제 성적이 안 되니까 제가 떨어진 게 뻔하잖아요.
그래서 믿음이 부족해서 다시 명지대학교를 버스 타고 가서 제가 갖고 있던 500원을 땅에 묻으면서 공약 및 300석처럼 드리고 왔습니다.
삼배를 하고 왔습니다. 삼일 뒤에 학교 갔는데 기적같이 제 이름이 벽에 붙어 있었습니다.
에 그렇게 학교하고 들어간 명지대학교는
예수 믿는 미션 학 슈쿨인지를 들어가서 알게 됩니다.
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천팔백 명의 학생들을 이렇게 모아놨는데 아 총장님이 나오지 않고 목사님이 나오시는 겁니다.
저는 태어나서 목사님을 처음. 봤습니다.
그분은 마이크를 잡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로 이 학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그다음 말이 더욱 꼈습니다. 여러분 이 학교가 미션 스쿨인 거 알고 오셨죠.
전 몰랐습니다.
그 자리에 앉아서 막 땀이 나면서 부처님 제가 이 학교를 다녀야 하나요.
말해야 하나 많이 묻고 있는데 부처는 늘 웃고만 있지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가 없어서 이걸 어떻게 해야 되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제가 어느 대학을 또 가겠습니까 그래서 제 믿음을 지켜달라고 기도하면서 그 자리에 오랜 자신을 지켰습니다.
제가 처음. 맞이했던 기독교는요 굉장히 강압적이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의견을 묻지 않고 그냥 무작정 두 시간 반짜리 예수 영화를 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추운데 저 문마다 선배들이 지키고 있고 천팔백 명이 앉아 있습니다.
예수임이 나오고 한 이런 영환데 지금처럼 뭐 컴퓨터 그래픽에 있는 영화도 아니고 되게 딱딱한 영화 노랑노리한 예수임이 나오는데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또빙이 돼갖고 나오는데 정말 재미없었습니다.
소녀가 죽었는데 소녀에 일어나라 그러니까 소녀가 일어나더니 예수님이 살려주셨어요.
이런 너무나 이런 뻔한 얘기를 대학생들은 천팔백 명한테 보여주면서 예수 믿으라는 이 첫 번째 강압이
예수님 믿는 사람들에게 가졌던 제가 첫 번째 인상이었습니다.
여러분 미션스쿨 다니 분들들은 아시겠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체풀이라는 걸 드리게 됩니다.
예수님 믿든 안 믿든 와서 출석표를 쓰는 거예요.
근데 저는 또 이게 그 당시는 제가 독실한 불교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부처님의 자비하심으로 예배에 꼭 참석했습니다.
출석을 쓰고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럼 부처는 자비로우시다 이렇게 쓰면 되는 거죠.
그래서 출사표를 꼭꼭 내면서 다녔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를 다니면서 어떨 땐 필름이 끊겨서 집에 들어가고 어떨 땐 눈 떠보면 학교 벤치고 거의 술에 쩔어서 저희 아버님 대를 이어서 이렇게 주세를 많이 내면서 그렇게 살게 됐습니다.
근데 어느 날 5월 21일 날 제 일기장에 기록해 놓은 날인데요.
에 예배를 이렇게 마치고서 이제 나가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밀려나가갖고요 아이 좀 천천히 나가자 그리고 이제 그 출석표 체크하는 거 거기다가 설교 요왕란에다 이제 만 하나 그리고 이렇게 있다가 사람들 다 나간 다음에 이렇게 출석표를 딱 내고 나갔습니다.
근데 뒤에서 누가 형제님 이렇게 부르는 겁니다.
여러분 형제님이란 단어 기독교 영혼한 거 아시죠 예 딱 돌아봤는데
얼굴이 딱 얼굴에 교회 담임 이렇게 써 있어요.
어 그런 교회 아니면 거의 환영 받지 못할 그런 얼굴에 있잖아요.
그러니까 교회 다니 형제님 그 얼굴이 확 웃는데 키는 저보다 작으신데 이렇게 웃는 얼굴에 침범 못 뱉을 만한 그런 얼굴로 저한테 얘기하는 겁니다.
형제님 제가 형제님을 몇 개월 동안 관찰했습니다.
왜요
어 예수 믿는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이 있죠.
아 시키지 않아도 자기 얘기를 한다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제가 이 학교에 들어온 목적이 있습니다.
이 학교를 보금하러 왔습니다. 형제님이 같이 믿음이 좋은 사람을 찾아서 함께 이 학교를 보고하시고 싶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얼른 빨리 얘기했습니다.
왜냐하면 희망을 갖게 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아 전자공학과 3학년 선배님이라고 그랬으니까 형님 저는 불교인입니다.
그랬더니 어이 불교인이 배 예배를 참석했냐 그리
부처님의 자비하시는을 듣습니다. 그리 그렇지 말고 하나님을 믿어봐라 아니다.
이렇게 옥신각신 잠깐 얘길 나눴는데 그 화난 얼굴로 하나님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면 어떻겠냐 수업 끝난 다음에 자기를 찾아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자기가 기동 학생 회장이라고 그래서 학생회관 사칭했으니까 기다리겠다고
그러셨습니다. 너무 열심으로 저한테 말씀하시니까 수업 끝나고 시간 되면 찾아뵐게요 그리고 이제 헤어졌는데 수업 마치고 집에 가는 거죠.
그런 약속은 별로 지킬 필요가 없잖아요.
근데 집에 가는데 스쿨버스에 맨 앞자리에 앉았는데 그 형 얼굴이 떠오르면서 약속한 게 떠오르는 겁니다.
그런 약속은 웬만하면 안 지켜도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기독교인과 불교인이 서로 약속을 했는데 불교인이 안 나타나면 불교의 가오가 안 쓰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버스에서 내려서 부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기 위해서 그 학생관을 올라갑니다.
그래서 학생회관 이제 사층을 찾아가서
제 기독교회를 한 번도 안 다녀봤던 저는 기독동아리라고 이렇게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곳을 찾아가면 되겠다고 올라갔는데 그 아직도 제가 가보니까 그 명지대학교 사층에는요 기독동아리가 다 모여있습니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거 어딘지 몰라서 이게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씨씨씨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그렇게만 써 있었으면 제가 안 갔을 텐데 그 밑에 해석이 붙어 있었어요.
한국 대학생 선교회 맨 뒤에 글자가 교회입니다.
그래서 아 여기가 교회구나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여기 다니는가 보다 하고 똑똑 두들겼습니다.
문을 열고 이제 들어오세요. 그래서 들어가 봤는데 거기에는
남학생 색과 여학생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제가 찾던 이런 사람이 있습니 찾아왔습니다.
그랬더니 아 그런 사람은 없지만 일단 앉으세요.
그래서 주의 사랑을 환영합니다. 막 이렇게 손 그래서 이렇게 분위기가 있잖아요.
나도 손을 내밀어야 될 것도 손을 내밀고 가만히 있었는데 딱 눈치가 빠르신 거예요.
교회 안 다니시죠 왜 안 다닙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했더니 교회 다니는 사람이 이 노래는 다 아는데 이 노래 모르는 거 보니까 교회 안 다닙니다.
혹시 사영이에 대해서 들어보셨어요. 아니 안 들어봤는데요.
어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이 기독교의 세 번째 특징은 너는 무식하니까 들어야 된다 이런 느낌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사영이를 계속 읽어주는 거죠.
여러분 그게 그렇게 해서 사람이 예수님을 쉽게 믿을 수 있다면 누구나 다 믿었겠죠.
그냥
그 얇으니까 망정이 이제 계속 기다리는 거예요.
끝날 때까지 쭉 있고 뭐 뭐라고 한참 하는데 기도문이 나옵니다.
이 기도문이 마음에 드십니까 기도문을 딱 보니까 예수라는 무슨 영을 마음속에 막 받아들이고 이런 겁니다.
함부로 할 수가 없죠. 그래서 서 더듬거리고 있는데 머뭇거리고 있는데 에 솔직히 제 마음은 전 전기공학과는 일학년부터 사학년까지 여학생이 한 명도 없습니다.
제 공대 건물엔 여학생이 한 명도 없어서 여자 화장실도 남자가 쓰던 시대였어요.
근데 그 아까 있던 그 여학생 한 명이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사형 일 계속 읽는 동안에 땅을 쳐다보니까 신발이 보입니다.
어 내가 그동안 나이트 클럽에서 봤던 아가씨랑 신발이 다르네 펑펑한 운동화예요.
그다음에 조금씩 조금씩 눈을 들어서 이렇게 보는데 아주 펑펑한 바지를 입었고 손이 보이는데 손이 아무것도 안 차려져 있어요.
야 수녀다 이런 느낌이 드는 이렇게
그래서 눈을 딱 마주쳤는데 안경을 쓰고 머리를 뒤로 깨끗하게 한 화장 하나 없는 생얼로 한 수녀 같은 여학생이 앉아 있는데 그 분이 환하게 저를 보고 웃고 계십니다.
이 기도문이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듭니다.
그래서 손을 잡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근데 마음의 진심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빨리 이런 이 갑갑한 환경을 빨리 모면했다 싶어서 예수님 영접하고 빨리 집에 가서 저랑 기독교랑은 아무 관계 없는 그런 생활로 다시 돌아가는데 여러분 씨씨씨 혹시 아시죠 독합니다.
찾아오고 또 찾아오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는데 어디를 가냐 계속 성경 공부 보고 또 성경 공부 뭐 이렇게 합니다.
그러더니 여름방학이 다 된 그때 저한테 대학생들이 모이는 여름 수련회가 있는데 같이 가자고 저를 초대합니다.
그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떤 수련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저는
대학생이 모인다니까 귀가 번쩍 했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팜플렛을 이렇게 보여주는데 대학생들의 배낭을 막 메고 쭉 가는 뒷모습을 보였는데요.
그 당시가 외국 여행이 자유롭지 않을 때니까 배낭 여행 무전여행 이런 거 좋아할 때입니다.
아니 대학생들이 이렇게 외국 가는 모습을 보고 나서 제가 너무 이게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예요.
몇 명이나 모여요 그랬더니 만 명이 모인답니다.
제가 공대지 않습니까 오천 명은 여학생일 것이란 생각이 딱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기로 결정하고 얼마예요. 그랬더니 만 이천 원이에요.
여러분 사박 오일을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만 이천 원이면 굉장히 싼 겁니다.
그래서 그걸 들고서 어머니한테 가서 어머니 저 대학생들이 몰리는 수련회 가는데 만이천원 좀 시주 좀 부탁합니다.
그랬더니
머뭇거리시는 거예요. 그 만촌은 그 당시에 저희 집에서 컸으니까 그래서 어머니한테 한 말씀 더 했습니다.
오천 명은 여학생일 것인데 며느리감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만 이천 원을 쳐서 저한테 주셔서 수련의 비용을 완납하고 수련이를 기다렸습니다.
근데 그냥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이제 평상시에 아 사박 일이면 담배 두 각이면 충분하지만 손님 접대용으로 한 세 각 더 준비하고
아 평상시에 마시던 이게 나폴랭 꼬약과 이런 거 두 병 조그마한 거 알코올 준비하고 혹시 노래를 시키면 좀 할려고 아 두 곡을 준비했습니다.
앵콜 성까지 아 윤수열이 아파트하고 네 개 사랑을 넘어서 이거를 이제 열심히 열심히 준비해서 스린에 당당히 갔습니다.
이제 캠프 파이어만 돼봐라 이 아 그런데
제가 얼마나 철이 없는지 아시죠 그 예수 믿는 수련에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침에 예배하고 점심 때 강의 듣고 저녁 때 예배하고 기도하고 숙소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또 은혜 나눈다고 얘기 안 하고 열한 시에 취침이라고 시간표는 돼 있는데 열한 시에 잔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기독교의 네 번째 특징 시간을 되게 안 지킨다 이런 것들을 너무너무 체험하면서 그냥 수련을 막 버티고 있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뭐 말씀을 외워야지 주고 너무 지옥 같았습니다.
야 이런 앤 줄 알았으면 내가 못 왔겠다.
이런 생각하면 이제 포기하고 막 막 버티고 있는 거예요.
저를 버티게 했던 것은 많은 여학생들이었습니다.
근데 이제 삼 일 지나니까 그 여학생이 다 그 여학생 다 생활에다가 다 수년 갖고 다 똑같아 보여요
그래서 이제 넷째 날 됐을 때는 마음을 먹고서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
내일은 가야 되겠다. 마음을 먹고 저 같이 안 믿는 사람끼리 모여 하는 그 소그룹 기초반이라는 거 있습니다.
거기 앉아 있는데 저 집에 가고 싶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들이 갑자기 울면서 기도해주는 거예요.
아니 집에 간다는데 왜 뒤 그 뒤로 울고 그러는
근데 저희 어머님이 뭐라 그러셨냐면 너 승재야 남의 눈에 눈물 내면 니 눈에 피눈물 난다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아유 울지 마요 남을게요 그랬더니 사람이 주님께 영광의 박수 돌리면서 저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기독교의 기도 응답이 뭔지 그날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이제는 아무것도 안 하고 밥 먹고 담배 피우려고 여러분 제 재수할 때 배웠던 영혼데 식후 연초 불로장생이
밥을 먹자마자 담배를 피우면 장수한다 이런 뜻입니다.
이젠 대놓고 담배 피우고 혼자 막 다니고 낮에는 강의 같은 거 안 듣고 저기 그 전주대학교에서 수련을 가졌는데 그 개천 같은 게 바깥에 흘러요 그럼 거기 가면 송사리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송사리들이 너무 미운 거예요.
송살이 발로 차고 막 이러다가 밥 먹고 다시 발로 차고 이런 이제 낮에 시간을 때웠어요.
에 스무 살 때였으니까요.
근데 저녁 때 가는데 갈 데가 없는 거예요.
숙소에 전기가 안 들어옵니다. 깜깜하고 그 학교 강당을 빌려서 막 자고 이랬을 때였는데 갈 데가 없어서 이렇게 좀 더 헤매다가 아 그래서 사람 있는 데가 낫잖아요.
저기 보니까 사람들 막 서서 찬양하고 막 이렇게 합니다.
여러분 찬양 시간이 너무 싫었던 건 뭐냐면 그냥 찬양만 하면 좋은데 율동이라는 걸 합니다.
니 남자가 솔직히 따라하기 좀 이렇게
제가 제가 볼 때는 그 기독교의 정신병적인 좌우 대칭 운동 이쪽 한 번 하면 반드시 이쪽 한 번은 이쪽 한 번 그걸 해야 마음이 열린다고 시키는 게 너무 싫어갖고 그때 잘 안 가고 막 뒤에서 버티고 있다가 찬양 시간이 끝난 다음에 뒤에 가서 이제 사람들 쭉 앉을 때 뒤에 앉았습니다.
이제 설교만 버티고 가면 되는데요. 에
삼일 동안 들리지 않았던 설교가 귀에 들립니다.
마지막 날 저녁 저녁에 설교하신 목사님의 목소리는 예전과 다르게 굉장히 높여서 목소리를 전 목소리를 높여서 말씀을 전하셨는데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아무리 예쁜 미스코리아라도 예쁜 죄인일 뿐이고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도 똑똑한 죄인일 뿐입니다.
성자일수록 자신의 참매력을 씁니다. 우리의 양심이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알려줍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자신의 죄로 인해 죽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십일세기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 지옥이 없다고요 지옥과 천국은 분명히 있습니다.
삼십년 넘 전에 들었던 설굔데 지금도 기억에 날 정도였습니다.
처음에 죄와 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죄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근데 자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죄에 대한 자극을 주면 줄수록 죄 속에 떠오르는 죄가 있었습니다.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심하게 다투시던 날 밤에는 처음에는 말렸지만 제가 어린 시절에 그걸 말릴 수가 없잖아요.
그리 입을 뒤집어 쓰고 자거나 부엌에 가서 그냥 못 들은 척하고 숙제를 하는 게 제 어린 시절의 일상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되고 제 속에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굉장히 계속 심해져 갔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일학년 되던 때에 가장 인생이 어려웠던 그때였는데
아버지의 어머님이 그날은 더 특히나 심하게 다투셨습니다.
어머니 얼굴에 피가 날 정도였는데 어머니를 심하게 구타하시던 아버지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오늘이 그날이다 하고 부엌에서 수박 자르는 식칼을 들고 방에 들어갔던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렇게 더 살면 뭐 할까 저 인생도 내 인생도 끝나자
그리고 칼을 들고 왔는데 어머니는 아버지를 말리는 것이 아니라 제 손을 붙들고서 피 흘리는 얼굴을 가지고 웃으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승재야 내가 이렇게 매를 맞으면서 이 바보를 데리고 살면서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딱 한 가지야 너가 뭐 유명한 사람 되거나 이런 사람보다도 그냥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오늘 밤에 사고를 치면은
엄마가 이렇게 사는 이유가 없지 않니 라고 붙들면서 울면서 사정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래서 그 칼을 아버지 배가 아닌 장목에다 꽂아놓고 집을 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밤새도록 돌고 돌고 돌아다니다가 아침이 돼서 7시 정도에 엄마 아빠가 나간 시간을 틈 타서 집에 들어갑니다.
학교는 가야 되기 때문에
저희 집은 이렇게 마당에 있어 여러 집에 살고 있는데 마당 가운데 이렇게 수도꼭지 하나 있는 집이었습니다.
옛날 한옥집들이 그리 한옥들이 이렇게 생겼었는데요.
그래서 이제 도시락 싸고 가방에서 어제 숙제 해놓은 거 방에다 놓고 씻고서 이제 도시락 싸갖고 이렇게 방에 들어갔는데 저희 바보 누나의 취미가 제 책을 찢어 먹거나 무슨 비닐봉지 갖고 노는 것이었어요.
장난감 같은 게 없으니까 나이는 많았지만 정신 바격이니까 어린 아이죠.
근데 그날은 제가 했던 하필이면 그 숙제 했던 그 페이지를 찢어서 다 먹고 있는 거예요.
그날 이렇게 인생에 이렇게 여러분 수련회 같은 데 가보면 하이라이트 로 라이트 게 그리는 날이잖아요.
제 인생에 가장 어두웠던 그날 그날에 그 누나가 제 숙제 하는 걸 찢어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데 제 속에 갖고 있던
청소년 시절에 갔던 수많은 불평과 불만과 막 화가 막 올라오면서 그 누나를 구타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아버지한테 가 풀지 못했던 수많은 그 막 욕과 내 속에 갔던 분노를 그 누나한테 아무 저항도 할 수 없는 장애인을 누나를 막 때리는 겁니다.
내 속엔 아버지보다 더 심한 이 잔인성이 있다는 걸 그날 막 발견하게 됩니다.
바보 누나가 입술이 펄해지면서 벌벌 떨면서 그만 좀 때려달라는 눈빛을 저를 쳐다보는데 이 병신아 뭐를 봐 너 때문에 난 친구 하나 집에 데리고 올 수 없고 왜 우리 집에 온 거야 그리도 누나를 막 구타를 합니다.
제 인생에 가장 잔인했던 날이었어요.
그리고 학교 가서 숙제를 못해서 대신 혼나고 밤에 왔습니다.
저희 누나는 이게 늘 침을 흘리고 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이렇게 목욕을 시켜야 되는데 그날 제가 또 연탄불에 물을 끓여서 이렇게 고무다리를 준비해서 어머니랑 10시에 오시는 어머니랑 이렇게 같이 씻기는 게 있는데 그날은 제가 씻긴다고 옷을 이렇게 쭉 벗겨봤는데 가슴 썹도 덩어리 섭도 시커멓게 먹는 자식이 막 많이 보이는 거 제가 얼마나 많이 때렸으면
그래서 어머니 오기 전에 목욕을 시켜서 옷을 입혀놓습니다.
어머니가 이제 승자야 목욕시켜야지 마 제가 다 시켜놨어요.
저희 어머님은 제가 더 착해진 줄 알고 계십니다.
그다음 주도 그다음 주도 그 먹는 자죽이 없어질 때까지 제가 몰래 했습니다 한 달 보름 점 넘어가니까 먹는 자죽이 다 없어졌습니다.
제 속에는 나름대로 완전 범죄였습니다.
그렇게 해도 아무 일 없이 아무도 모르게 지나갑니다.
그리고 삼 년 뒤에 제가 제수하던 해에 저희 누나는 스물여섯 살 나이로 돌아가시게 됩니다.
예전에 정신 바이아가 수마이고 집에서 이렇게 아무 요양 없이 자랐던 사람들은 오래 못 사는데 저희 어머님이 그리도 정성 들여서 키워서 스물여섯 살 때까지 살았던 것입니다.
스물여섯 살 되던 해에 누님이 돌아가시고 제수하던 학원에서 와서 누나랑 같이 이제 장례를 치르고 화장터에서 화장을 다 했습니다.
완전 범죄입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 누나가 살아있다. 할지라도 자기가 방해인이고 바보기 때문에 저 사람이 나를 구타했어요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근데 그 누나마저 완전히 화장터에서 죽었습니다.
완전 범죄입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수련의 마지막 날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죄값은 사망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 양심이 우리가 죄인인 걸 말해줍니다 하는데 여기서 막 올라오면서 제 삼자가 삼자의 눈이 돼서 제가 저의 누나를 막 때리는 장면을 눈을 감았는데 양심의 눈으로 막 보여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 가슴이 막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막 올라옵니다.
어쩔지는 모릅니다. 여러분 전 어렸을 때 뭘 잘못했다고 친구에게 돌을 던져서 이 말을 여기에 찐 적이 있는데 그 어머니께서 돈으로 변상하지 않고 백8 계단을 올라서 저에 가라고 그래서 백팔 계단이 무릎하게 깨지도록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죄가 씻어지는 줄 알았어요.
근데 학교 가보니 그 친구가 꼬매고 찢어진 자죽은 평생 갖고 살고 있습니다.
죄를 그렇게 백팔 계단을 무릎하고 올라가서 씻을 수 있다면
제가 벌써 씻었을 텐데 이미 죽은 누나에 대한 죄를 씻을 수가 없는 것이 너무나 너무나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삼천배를 다시 할까요. 어떡할까요.
고민하고 있는데 마음은 그거를 통해서 죄를 씻을 수 없다는 걸 너무나 내가 알고 있는데 한 번도 교회 나가서 성경 읽어보지 않은 제게 설교 말씀이 들렸습니다.
여러분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 있습니다. 죄를 짓지도 않으신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 반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점거 받으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여러분 그분을 믿기만 하면 그 분을 믿기만 하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짊어주는 그분을 믿기만 하면 용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죄에 대해서 고민해보지 않았던 시절에는 그냥 교회에서 외침이었지만 그날 많은 자극을 통해서 제가 얼마나 죄인인 것을 우리 아버지보다 내가 더 잔인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그 그 순간에는 나중에 돌아보니 교회에서 말하는 기쁜 소식 복음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 얘기를 듣게 됩니다.
마음이 막 찢김이 옵니다.
그 때 설교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드려서 죄를 용서받고 새 인생을 살고 싶은 분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여러분 그 사람들 앞에 일어나는 것은 굉장히 용기가 필요합니다.
근데 깜깜한 밤이었고 그 시간에는 제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과연 될까요. 그래서 손을 모아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예수님께 기도합니다.
제 입에서 나온 기도는 첫 번째로 예수님 저희 바보 누나 천국 보내주세요.
이런 기도였습니다. 말도 안 되는 기도였지만 그게 첫 번째 저의 죽은 누나에 대한 가장 미안한 마음이었고 그리고 저 같은 것도 용서받을 수 있나요.
그런데 눈 갖고에서 막 물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목사님 말씀은 계속됩니다. 이 시간에 용기를 갖고 예수님을 나의 꾸준하여 하나님으로 받아 드릴 분은 자리에서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여러 사람들이 일어납니다. 니 저도 거기서 일어나서 용기 있게 예수님을 주인으로 맞아들이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체험인데 저한테만 있는 체험인 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눈을 감고 눈과 콧물을 흘리면서 예수님을 받아들였는데 제 마음속에는 이제 파란 빛 같은 게 들어오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눈과 눈 코입은 없는데 환하게 웃는 어떤 얼굴 같은 것이었어요.
저는 그 빚을 가운데 마음에 품고서 다른 사람들 들키지 않게 숙소로 들어갑니다.
그 벽을 보고선 이제 제 먼저 잠을 들었습니다.
새벽 다섯시 정도에 눈이 떠져서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어서 이제 이렇게 바깥을 나가게 됩니다 해는 이제 막 떴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없는데 에 근데 수련회 기간 때에는 내내 비가 왔거든요.
수련회 집회하는 동안만 비가 안 오고 딴 시간에 계속 비가 와서요.
밤새도록 비가 내렸단 말이에요. 그래서 비가 내려서 바깥에 딱 나가보니까
비가 내린 땅바닥이 다 물에 젖어 있는데 아스팔트가 새로 까는 아스팔트 검정색 아스팔트인데 그 위에 물이 묻어있으니까요.
제가 볼 때는 완전히 흑진주예요. 흑진주 어떻게 진주를 이렇게 깔아놨지 그래서 아스팔트 감히 밟지 못하고 만져보는 겁니다.
너무 예뻤어요. 그리고 눈을 들으니까 남은 이파리가 아 아침 햇살이 반짝이는데 영화의 빛보다 더 아름답고 바람이 불어서 가지가 흔들리는데
나를 향해서 춤추고 내가 어제 예수 믿는 걸로 온 자연인 나를 위해서 춤추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제 마음에 양심에 걸리는 것이 어저께 송사리들 너무 괴롭힌 게 미안해갖고 아 슬리퍼 슬리퍼를 쓴 채로 송사리들한테 사과하러 갔습니다.
물을 담갔는데 송사리들이 내가 어제 예수 믿는다고 고백할 때마다 한 마리씩 나와서 대 자리에 막 뽀뽀를 해주는 거예요.
내가 예수 믿은 걸 송살이도 알아주고 막 이러는 거죠.
이게 막 자연이 막 춤추는 거 같았어요.
그리고서 이제 혼자서 이제 숙소로 다시 들어가는데 제 마음 속에 떠오른 분은 아버지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어머니 얼굴보다 아버지 얼굴이 떠어오면서 미움의 대상이었고 심할 때는 죽이고 싶기까지 했던 그 아버지가 갑자기 이해가 되면서 서울에 가면 아버지랑 식사 한 번 해야 되겠다.
그러면서 했었던 이야기들이 쭉 떠오릅니다.
저희 아버님은 저희 아버님 다섯 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다섯 살 때부터 고하러 사셨고 일본에 끌려가서 강제 노동도 하셨고 돌아오셔서는 살 길이 없으니까 월남전에 가서 사도 사살하는 장면도 경험하시고 어떤 전쟁 트라우마와 고아처럼 사셨던 분이에요.
그날 아침에 숙소로 돌아가면서 서울에 가면 아버지랑 같이 식사 한 번 해야 되겠다는 생각 속에 수많은 감정이 교차되면서
이거를 지금 보면은 아버지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왜 나는 아버지가 가장 잔인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저는 아버지보다 더 잔인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가져보게 됩니다.
그때 숙소에 들어갔더니 한 저를 잘 모르는 사람인데 저를 관찰했던 분 같아요.
저한테 성경책을 주면서
이거 한번 읽어봐 파란색 기도원 옆에서 나온 신약 성경에 나온 책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고맙습니다. 이렇게 받아서 처음에 넘기려고 그랬더니 그분이 요한복음부터 읽어봐 요한복음 마태복음이 딱딱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요한복음부터 1장씩 읽는 거예요.
쉬는 시간마다 읽는데
요한복음 1장 뭐 내용이 어려운 건 어렵고 모르는 거 모르는 건 아는 건 아는 거예요.
불경보다는 쉬워요. 그래서 읽습니다.
근데 요한복음 1장 읽다가 오늘 이 구절을 읽었는데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보니요.
내가 온 곳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는 것이라는 이 구절이었습니다.
이렇게 또렷이 기억은 나지 않는데 거기서 생명이란 단어가 확 눈에 들어오면서 이게 아버지를 용서하고 싶고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고 싶고 자연이 춤을 추고 세상에 어저께랑 똑같은 세상인데 내 눈에 너무 깨끗해 보이고 아스팔트마저 흑진주처럼 보이는 이 세상이 새로운 생명이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저는 생명이란 단어를 성경 공부 해 해보거나 헬라오나 히브리어로 배워본 적은 하나도 없지만 그게 생명이 무엇인지 압니다.
근데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아 우리를 뭘 써먹거나 우리한테 뭘 얻어내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러 오셨다는 것을 아주 체험적으로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열심히 해갖고 절에 가 갖고 막 제가 했을 때 늘 끝나고 나면 어머니께서 정성이 부족하다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나의 정성을 하나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것을 기쁨으로 주시는 분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생명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것이 생명만 주실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오늘 이 본문에는 풍성한 삶을 위해서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그저 생명을 주실려서 오신 분이 같으면 저 같은 사람 예수님 믿고서 바로 지옥 갈 사람 천국으로 그냥 데려가시면 되는데 이 땅에 지금도 살게 하셨습니다.
그 그럼 풍성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믿었더니 갑자기 부자가 되거나 안 되던 일이 막 풀리거나 불치의 병이 낳는 것은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한테는 그런 사건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더 풍성히 얻게 하라는 그 말씀에는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대박 나는 삶은 아닐지 모릅니다.
사람마다 다른 기대감이 있겠지만 제게 풍성한 삶이라는 것은 어떤 정의가 있냐면요.
제게 결핍된 것들을 채워주는 것 저한테 가장 큰 결핍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어요.
그건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그게 테레비전을 보거나 뭐 옛날 프로를 봐도 가장 행복하게 사는 집은 저는 아예 쳐다도 안 보 안 봅니다.
차등으로 사는 사람 그냥 같은 식구끼리 모여서 밥만 먹는 사람 그 그 집만 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서 텔레비전을 보게 됐는데 그러니까 예수를 믿고 나서는 그 꿈이 더 커졌습니다.
하나님 저 행복한 가정 갖게 해주세요.
근데 제 마음에 싸움이다. 어떤 싸움이 있냐면 행복한 가정을 가지려면 빨리 결혼을 해야 되는데 제가 인문학 강좌를 듣고 책을 읽을 때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구타하고 하는 것을 보고 자란 사람은 결혼해서 아내를 구타한다는 거예요.
열이면 열 명 당 그리고 저희 어머님이 제 머릿속에 심어놓은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렸을 때 못 알아듣던 말인데 정수리에다 분물 발뒤꿈치로 내려간다는 거예요.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는 얘기에요.
너도 저희 어머님은 거꾸로 표현하시는 거죠.
너도 결혼하면 바람이나 피다 술 먹다가 길거리에서 객사할 놈이다.
이러시는 거예요. 근데 저희 어머님들 옛날 분들은 그렇게 세게 말씀하셔서 그런 삶을 살지 말라고 하는 건데 들었던 우리들은 그 말이 남아 있잖아요.
그래서 막 술을 먹고 제가 잘 안 취한다든지 이러면 내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그런 것에 대한 갈등 가정은 빨리 갖고 싶은데 가져서 깨진 가정 만드는 이런 두려움이 많아서 대학교 다니면서요.
가정에 관한 책 자녀에 관한 책 자녀도 없는 사람이 막 그 양은순 교수님의 테이프 막 들어가면서 가정이 되면 막 꿈을 꿉니다.
여러분 제가 예수 믿고 나서 무엇이 변했을까요.
솔직히 말해서 변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 당시에 술 담배는 끊었고 교회는 갑니다.
근데 속에 음란하고 그리고 갖고 있던 약점 똑같고 자아상 낮은 거 똑같고 그렇습니다.
아무한테도 도전하지 못하고 이게 혼자만 끙끙 앓았었는데 그 기독교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던 그 누님에게 부탁을 합니다.
누나
잠이 좀 있으면 소개 좀 해주세요. 미팅 좀 시켜주세요.
계속 졸랐습니다. 누님이 대답했습니다.
기도해 볼게 기다렸습니다. 근데 기도 기독교에서 기도해 볼게는 안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졸랐는데 누님은 너무 착하셔서 다른 대학교 시시씨 자매들을 소개해주고 이렇게 막 미팅도 시켜주고 열심히 소개해줬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교제했던 자매는
저는 그냥 교재 그럼 사랑 결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죠.
너무 단순하니까 근데 처음에 교제했던 자매는 미국에 유학에 대한 꿈이 너무 컸습니다.
데이트 할 때마다 토플 점수 나오는 거 미국 가는 거 그래서 결국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해서 헤어지게 되고요 두 번째 사귀었던 자매는 이 신앙관이 너무 달라요 우리 동아리에 있지 못하고 이제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대학교 졸업해서 한 사람 더 사귀게 되는데 제가 중국 선교사가 되겠다는 것이 꿈이 있어서 선교를 하겠다고 계속 하는데 그 자매는 선교의 꿈이 없어요.
그래서 여기에 대한 갈등이 있어서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이제 혼자서 시시시의 간사라는 간사 생활을 이렇게 계속 하면서요.
총각으로 지내는데 그 누님은 저한테 계속 사람을 소개해 주려고 노력하셨어요.
근데 어느 날 저한테 편지를 써서 습니다.
장장 7장 편지였는데 저를 관찰한 걸 다 쓰셨어요.
형제의 장점이 뭔지 실망스러운 점이 뭔지 거룩하지 못한 게 뭔지 다 쓰시면서 더 이상 소개해 줄 자매가 없다.
그리고 끝에 나는 어때 이런 얘기를 좀 담아놓으신 거예요.
그래서 이건 뭐지 그래서 그 누나를 찾아가서 지금 결혼한 지 이십구 년째 살고 있습니다.
신혼 살림을 시작할 때 어쩔 때 의견 충돌이 나거나 제 속에 아버지로부터 갖고 있던 막 이런 게 올라오면요.
아 이래서 아버지가 엄마를 때렸구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걸 보고 자란 사람은 그러니까 막 이게 올라 딱 오르락 내리락 오르락 내리락 하죠.
근데 제 아내는요 화가 났는지 기뻤는지 똑같으신 분이에요.
4대째 믿는 집안에 태어나서 제가 그래서 성경 말씀 읽다가
아 이 말씀이다.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구나 이렇게 똑같아 이런 성품을 가진 분입니다.
그래서 한 번도 화를 내거나 그런 적이 없어서 다행히 결혼 생활 거의 만 삼십 년 되는 이때까지 언어 폭력 한 번 쓴 적이 없습니다.
대학생을 전도하는 선교단체로 살며 간사로 살면서 신혼 살림을 용인에 꾸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임신을 하고 첫 애가 딱 요 때 십일월 요맘때 만삭이 돼갖고 요때 이제 나을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저희 집을 전세를 줬던 그 집주인이 집을 팔고 도망을 가게 됩니다.
전세금을 안 주고 그래서 이게 쫓겨나게 됐는데 만삭된 아이를 아내를 데리고 어디 갈 데가 없어서 고민스럽잖아요.
너무 무섭고요 근데 이 집이 경매로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돈을 조금 더 꿔서라도 이 경매를 살면은 쫓겨나지 않을 수 있겠다고 해갖고 준비해서 경매 자리를 갔는데 우리 집을 와서 관찰해 본 사람이 있어요.
아내가 임신을 했고 만삭이고 저희 와서 이 집 내놨어요.
그래서 안 내놨다고 그런데 집을 보고 가시더라고요 어떤 분이 근데 경매에 갔는데 그 사람이 나와서
저희 집을 제가 부른 가격보다 조금씩 높여서 결국 사사 가버리는 거야 그날 제 속에는 예수 믿는 거 안 믿는 걸 떠나서 그 사람이 막 죽이고 싶은 생각이 막 여기까지 오르는 겁니다.
막 벌떡벌떡 뛰고 제가 갖고 있는 심령이라는 것이 아직도 예수님의 온녀한 성품이 되지 않을 때라서 너무 그런 거예요.
세상에
이렇게 만삭된 사람이 길거리 이 엄동설한에 용인에서 쫓겨나게 생긴데 그 집을 사는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이 어디 있어 막 이렇게 흥분해서 잠 못 자는데 제 아내는 얼른 자 자 자 자 자 그 사 우리보다 그 과정에 이 집이 더 필요했었나 봐 너무 미워하지 말고 그냥 자요 아기가 곧 태어날 텐데 겨울이 다가오는데 우리 집보다 더 필요한 사람이 어딨어 이 자
이런 성품이에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한 번도 그렇게 큰 다툼 없이 살아올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동아시아 선교사를 했던 시절 이야깁니다.
제 가정에는 연년생으로 아이가 셋이 태어났습니다.
너무 무섭게 잠만 잤다. 하면 애기가 생겼습니다.
이게 일 년에 하나씩 세 명이 나서 첫 해가 세 살 때 되었던 해에 저희들은 동아시아 선교사로 떠나게 됩니다.
그 당시 평신도 선교사였고
파 성격이 없이 선교 생활을 할 때라서 늘 재정은 압박이 없습니다.
다 선교사님들 대부분 그렇지만 그래서 저희 집은 이제 한 방에 애들 세 명이서 이렇게 자고 이랬었는데 어느 날 초등학교 육학년 땐 큰 딸이 아빠 저 친구 집에 가서 파자마 파티를 하기로 했어요.
파지만 파티는 집에 가서 그 친구 집에서 자고 생일 파티하고 돌아오는 거죠.
마음이 하나 걸렸습니다. 그 집이 대기업의 주재원의 집이었거든요.
제가 그 집에 차를 먹으러 한번 가 마시러 갔었는데 거실만 우리 집 전체보다 넓은 집에 그 네 가지 네 방에 애들 방을 공주방처럼 꾸며놓은 그 집에 아이들이 세 명이 함께 자는 그 집에 살던 애가 갔다.
오면 주눅 들까 봐서 조금 점려도 했지만 애를 그리 잘 놀다 와라 그래서 택시 태워서 보냈다가 그다음 데리고 왔어요.
근데 아이가 여섯 그 6학년 애가 혼자 혼자 말 비슷하게 하는 거예요.
아빠
난 결혼하고도 아빠랑 아빠랑 근처에 살고 싶어요.
왜 제가 아기를 낳으면 우리가 어렸을 때 아빠가 우리랑 놀아줬던 것처럼 우리 애기들이랑도 똑같이 놀아주세요.
그러는 거예요. 그냥 아이가 혼자 하는 말이에요.
근데 저는 그게 너무나 감격스럽게 들렸어요.
어떻게 하는 것이 가정인지 모르고 아버지를 어떡하지 저는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아이가 태어나 아빠가 너무 기뻐하는 게 너무 이해가 안 됐어요.
이게 무섭지 이게 무섭지 어떻게 아이가 태어나 더 기뻐할 수 있을까 어떻게 아버지 하는 것이 하나 질 모르고 살았던 제가 근데 큰 딸이 아직 어렸을 때지만 자기가 애기 낳아서 아빠 옆에 살아서 손주를 봐줬으면 좋겠다.
같이 놀아주는 그게 좋았던 것이
아이 마음속에 남았구나 이게 막 올라오니까 화장실에 들어가서 막 물을 털어놓고 혼자 꺼이꺼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 저한테 풍성한 삶은 물질의 풍성함이라도 또 당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랑 소통되고 아내가 아직도 사랑하고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우리 가정이 좋은 가정이라고 숨겨졌다는 사실이 저한테는 풍성한 삶이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자녀들이 다 자라서 하나 둘 독립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직장이 집에서 2시간 넘게 걸린 거 왕복 4시간씩 다니다가 3년 전에 독립을 했고 아들은 지난주에 독립을 했습니다.
오늘도 오후에는 셋째 딸이 청년 조그만 룸 같이 가서 집 보다가 왔습니다.
청년 우리 아이들이 여섯 평 짜리 청년에 독립해서 나가는 자체가 요즘 청년들이 6평짜리에 나가서 저렇게 독립하는 게 좀 안타깝긴 합니다.
근데 저희 아들은 늘 걱정하는 거예요.
평생 집 같은 거 살 생각도 안 하고 이렇게 사셨던 분 우리가 나가면 우리는 알아서 살 텐데 엄마 아빠가 어떻게 사시지 걱정이 돼요.
이런 소리를 저한테 해서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그러니까 아들 걱정시키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여보 우리 집도 한번 알아볼까 우리 평생 무주택자인데 막 집 알아보고 있는데 아들이 와서 그러는 거예요.
왜 평생 집 없이 잘 사시던 분이 갑자기 형편도 안 되는 집을 알아보고 계세요.
그래서 솔직히 얘기했어요. 지금 너희들한테는 아무것도 못해줄지 모르지만 우리가 부동산 투기 같은 건 아니더라도
야 평생 무두척잔인데 한 번 집 하나 이렇게 당첨돼서 살게 되면 그리 죽을 때라도 너희들한테 뭐라도 물려줄 수 있냐 그랬더니 아 됐어요.
그러다 사고 치지 마세요. 우리들한테 믿음의 유산 주셨잖아요.
믿음의 유산 그거면 충분해요. 두 분만 잘 사세요.
그러는 거예요. 저는 그것이 아 자녀들한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준 것이 전부라는 그 사실이
예전엔 정말 믿음으로 이렇게 고백했는데 현실에 막 흔들렸던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믿음의 유산을 하나만 받고도 충분하다고 말하는 그 속에서 굉장히 기쁨을 느끼고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여러분 우리가 애들한테 뭘 물어 물려줄 수 있겠어
믿음의 유산 준 거 꾸준히 주님과 동행하도록 가르키고 옆에서 계속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됩시다 여러분 풍성한 삶이 저한테 이런 것이 풍성한 삶이었습니다.
지난 삼십 년 간의 사역을 돌아보면 저는 제가 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스물다섯 살에 캔버스 5개의 책임자가 됐습니다.
그래서 5개 캔버스를 개척하고 다니는데
차가 없으니까 자전거를 타고서 용인에 있는 다섯 개 캠퍼스를 페달이 닳도록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아시아에 가서 동아시아에선 리저널 디렉터라는 것을 어쩌다 하게 됐는데 그게 한 다섯 개 성 책임자였습니다.
그래서 캔버스 백마흔여덟 개의 캔버스를 마음에 품고 다섯 개 성의 이억 명의 인구를 품고 사역하는 책임자로 살게 되어서
야 여기 선교사가 더 필요하구나 그래서 홍콩과 대만과 싱가포르가 미국의 선교사들을 리쿠르팅에서 팀 사익을 이루었구요.
이천팔 년도에는 귀국해서 삼백오십 개 캠퍼스 대학의 운동의 책임자로 살면서 사백여 명의 사역들을 훈련시키는 책임자의 자리로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교한국 대회 조직위원장으로 총회장으로 지내는 시간도 그런 총회장으로 시간도 보내었습니다.
지금은 교회를 개척하여 만 육 년 째 미션할 처치를 오십여 명의 성도들과 함께 재미있고 아름답게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아직도 청소년 집회를 다니고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훈련하고 그리스한 사장님들과 함께 삶 속에서 선교적 삶을 살도록 격려하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사역의 중심은 조금 전에 예약했던 그 사역도 열심히 잘해서 목숨을 다해서 했지만 제 사역의 중심은 늘 가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가정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지 않는다면 그 어디에도 하나님 나라가 임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었었습니다.
제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풍성한 삶은 깨진 가정 결핍한 가정에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는 그 행복감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가지 잊지 못할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동아시아 선교사로 십여 년 사역할 때 한국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본부의 요청을 받게 됩니다.
고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선교제로 부르심을 받고 나가는 것도 소명을 갖고 나가야 되지만 다시 들어오는 것도 소명 없이 들어오기 어렵습니다.
첫째로는 아이들이 세 살 두 살 삼 개월 때 떠났다가 그 소명을 받고 다시 돌아와야 될 때가 고등학교 일학년 되는 겁니다.
큰 아이가
큰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한국에 들어가서 아이들이 한국 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까 얘네들이 한국에 돌아가서 아무 특혜도 없이 들어가면 전문대라도 갈 수 있을까 매달 매달마다 통장에 잔고가 제로인데 한국 들어가서 살 단 한 칸 방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솔직히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갖고 밤새도록 고민하면서 뒤척이고 있는데 선교제의 걱정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생각에 다섯 식구가 모여서 가정 예배를 통해 온 가족이 함께 순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돌아가는 건 우리 가정만 결정하면 되잖아요.
그건 간단했습니다. 근데 가정의 방향이 정해지자
동아시아 땅에서 그동안 사역했던 남겨질 사역에 대한 걱정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이곳에 남아있는 현지에서 개발된 현지 사역자들과 후배 선교사님들을 생각하면 든든합니다.
그들은 저보다 훨씬 더 젊고 현지어도 훨씬 잘하고 사역의 기술이라는 것은 아주 심플하기 때문에 열정이 있으면 할 수 있는 것들인데
제 리더십의 자리를 이양해 줄 때 뭘 함께 떠넘기게 되냐면 사역에 대한 녹음에 대한 책임을 뛰어넘게 됩니다.
캠퍼스가 그냥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 캠퍼스가 하나하나 월 월 1만 원 정도는 사역 비용이 들고 캔버스를 방문할 때마다 드는 비용과 사무실을 운영해야 되는 모금을 책임자가 해야 되는데 모금이 쉽지가 않습니다.
근데 이것까지 물려주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하나님 아버지 제가 이 리더십의 자리를 후배들한테 물려주는 건 아주 간단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제가 이들에게 선물을 줄 수 있도록 기회를 허락해 주십시오 이들에게 모금의 짐을 좀 내려놓고 갈 수 있도록 하나님 제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라고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저는 동아시아 땅에서 신분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인교회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야 이 땅에 한인 교회가 있지 않냐 한인교회 후원을 요청하면 이 땅의 사역이니까 후원해 줄 수 있어라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동네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 떨어진 곳에 한인들이 많이 모여 살거든요.
거기에 가장 큰 한인교회가 있다는 걸 듣게 됐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을 통해서 전화번호를 수소문하고 거기에 전화해서
약속을 잡고서 찾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후배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내가 처음 보는 목사님인데 우리 캠퍼스 사역을 소개한 다음에 후원을 요청하면은 잘 응답이 될 수 있도록 기도 꼭 부탁한다고 갔습니다.
이 두 시에 약속인데 한 시 반에 가서 기다렸습니다.
목사님이 들어오라고 그랬습니다. 속으로 하나님이 제가 예전에라도 한 번이라도 봤거나 아는 분이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기도하고 들어갔습니다 말하기 편하게 근데 그 그 목사님을 보는 순간 너무 놀랬습니다.
그 목사님 제가 아는 분이었습니다.
그 목사님 누구였냐면 저 어렸을 때 술과 담배와 단고를 가르쳐주는 그분이 거기 목사님이셨습니다.
세상에 그 형도 거기에 있어는 안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고 저도 이 거기에 있어선 안 될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놀라 보면서 너가 맞냐 라고 서로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형님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그랬더니 야 말도 말라 대학 들어가서 여자친구 잘못 사귀는데 수련이 데리고 가다니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어
형 저도 똑같아요. 그리고 막 껴안고 밤새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그 형이랑 얘기를 밤새 나누고 그 형이 집에서 자고 형수님께 이 형을 구원시켜주셔서 감사하다고 얘길 나누고 그 다음 날이 토요일이었어 뭐 금요일이었는데 승재야 가지 말고 오늘 저녁 때 철야 기도 때 한 400명 나오는데 너 간증하고 한번 모금 요청해봐라
내가 아무리 담임 목사라도 니가 한 번 간증해봐라 그래서 삼십 분의 시간을 얻어서 철학 기도때 사백 명 정도 모인 그 자리에서 하는데 울으면서 나와서 말을 못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한 이십여 분 거야고 울다가 맨 마지막에 맨 마디만 들렸습니다.
여러분 저는 한국에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여러분의 후원금은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근데 여러분
이 땅에서 개발된 현지 사역자들은 한 달에 생활비 십만원을 모금해서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제가 떠나더라도 이 사역이 지속될 수 있도록 이사역에 헌금을 해주시고 후원해주시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하고 눈물로 기도 부탁을 드렸습니다.
갑자기 임시당회가 열려서 만장일치로 이사역을 후원하기로 그 자리에서 결정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형께 감사를 드리고 교회에 감사를 드리고 기차를 타고 이렇게 돌아오는데 기차에 서서 혼자 울고 있는 거예요.
그 중국 사사 동아시아 사람이 저를 쳐다보고 있죠 이 사람이 왜 우나 울고 있는데 저는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 이 사역은 제 사역이 아닙니다.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 사역인 줄 알고 사역했어요.
제가 노면 안 될 거 같고 내가 떠나면 안 될 거 같고 근데 주께서 다 책임져 주시는 걸 보고 하나님 정말 이 사역은 주님의 사역이군요.
그렇게 고백하면서 계속 눈물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풍성한 삶이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나와 동행함을 체험하는 삶임을 깨달을 수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많은 실수와 미숙함에도 하나님은 함께 계셨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그 시절에도 어머님이랑 아버님이랑 심하게 다투고 있을 때 어린 시절 내가 이불 속을 뒤집어쓰고 혼자 호눅게 울고 있던 그 순간에도 주님은 함께하고 계셨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환상적인 삶은 아니더라도 주님이 인도하시는 삶에는 실수가 없으신 삶임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은 누구나 다 인용하는 좋은 구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알거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미국 사람들이 재밌게 표현했습니다.
데어리스 노트레시빈 인 헤븐 하나님 나라에는 쓰레기통이 없다였습니다.
우리 삶을 돌아보면 쓰레기통에 쳐 받고 싶은 사건 순간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고 보니 그 사건들도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 아니라 고쳐 쓸 수 있는 것들이 될 수 있다는 말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장애인 누나를 구타했던 그 그 날은 제 인생에 지워버리고 싶은 가장 어둡고 수치스럽고 미안한 날입니다.
그러나 그 날이 아니었으면 제가 죄인인지 알지 못했던 날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심하게 다투시던 날들은 무섭고 직면하기 싫어 이를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자는 척 했던 밤들도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은데 그 사건들로 인해 가정의 소중함과 아버지의 중요성을 뼛속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크레옹을 살 돈이 없어서 청소 시간에 남들이 버린 조각을 몰래 주머니에 담았다가 그것으로 미술 시간을 버텼던 챙피했던 그 사건들이 그 가난한 그 사건들이 쓰레기통에 쳐박고 싶지만 그 사건들로 인해서 가난이 무엇인지 무엇이 사람들 앞에 부끄럽게 살게 되는 요소인지를 깊이 깨닫게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고통들도 하나님 안에서 해석하면 비록 고통스럽지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이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인생이 재해석될 때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삶의 눈이 열릴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저와 여러분의 생명과 풍성한 삶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은 일양 물푸셔서 우리를 꾸준히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 전서부터 먼저 사랑해 주셔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혹시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분이 있다면 주님 찾아가 주셔서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너에게 생명과 풍성한 삶을 주게 주게 오셨다고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이미 예수님을 알고 있는 그 분들에게도 저희들에게도 똑같이 날마다 이 풍성한 삶이 있음을 고백하며 주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저희들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