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기도회/목사 다니엘기도회 간증

하귀선 사모 다니엘기도회

generalQS 2024. 1. 1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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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표현중 ”색색거라는“ 표현은 폐가 1개여서 숨쉬기 곤란한 강사님이 말씀하시다가 숨이가쁜 소리입니다)

우리 생애 다시는 오지 않을 2016년 11월 20일 기도의 페스티벌이 열리는 이 축제 의 현장에 영상으로 저도 20일 동안 함께하다가 여러분과 함께 예배자로 현장에 있게 해 주신 그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 하귀선 사모입니다.
반갑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저는 이번에 다니엘 기도의 전단지를 받고 두 번 놀랐 습니다.
첫째는 다니엘 기도의 전단지에 나와 있는 제 사진을 보고 제 얼굴을 보고 깜짝 놀 랐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은 외모를 보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진짜 대단하다. 참종교에 뿌려질 줄 알았으면 이쁜 사진 하나 찍어 놓을 건데 하는 그런 아쉬움 때문에 그게 사실 얼굴에 놀랐고요.
또 하나는 제가 마지막 날 강사라서 놀랐습니다. 어떤 집회든 첫날과 마지막 날 강 사가 제일 중요하거든요.
첫날 강사님이 김은호 목사님이셨더라고요. 사실 세상적으로 보면 저는 세상적인 조건으로는
건강하지도 성공하지도 유명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 이 영웅을 알아보시고 이 마지막 시간에 간증자로 세우신 다니엘 기도의 이 영웅을 알아 보는 해안에 놀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기도하기는 오늘 특별히 다니엘 기도회를 완주하신 여러분들에 게 제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함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결핵 이라는 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제가 횟수로 17년 동안을 이 결핵이라는 병을 앓게 되면서 제가 결핵계에 17년간 을 몸 담고 있다 보니까 제가 이런데도 결핵계에서는 고성입니다.
그래서 결핵계에서 저를 2병동 색색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는데요.
17년이라는 긴 세월 삶과 죽음의 그 사투 속에 수없이 많은 죽음의 고비들을 넘기 고요.
제가 몸무게가 30kg도 나가지 않는 정말 뼈밖에 없는 해골 같은 몸을 가지고

전국의 결핵병원이라는 병원은 몇 달씩이라도 다 입원을 해봤는데 마산결핵병원은 제가 3년을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고칠 수 없다는 진단을 받고 제가 그 죽음 앞에서 하나님을 한번 만나보 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또 음성도 들었다는 간증을 하는데, 저는 한 번도 하나님을 만나보지 음성을 들어보지도 못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하나님께서 분명히 나를 간절히 찾는 자를 내가 만나주시겠다고 약속 하셨기 때문에 내 간절함을 주님 앞에 어떻게 보일까 고민하다가 사실 평지를 걸어 가는 것도 숨차고 몇 걸음만 걸어가도 피를 토해내며 가야 하는 그런 호흡인데 제 가 병원 안에서 새벽 기도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새벽 기도를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어지던 날이었는데요.
그날도 여느 날처럼 기도하는 자리에서 하나님 살아계시다면 나 한 번만 만나달라 고 정말 눈물로 기도하는데 정말 주님이 제 마음속에
혼내는 목소리도 아니었어요. 무서운 목소리도 아니었어요.
정말 부드러운 목소리로 너는 보는 걸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 여러분 저는 그 순간에 그 짧은 시간 안에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서 볼 수 없지만 시원한 것으로 바람의 존재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주님 내 눈에 보이지 않아서 내 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어도 언제나 우리 주님은 늘 평안함으로 내 안에 늘 나와 함께하고 계셨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아파하고 힘들어할 때 그 고난 속에 저 혼자 울고 있는 줄 알았는데, 우 리 주님은 제가 아파할 때 저보다 더 많이 아파하시고, 제가 힘들어 통곡하고 있을 때 저보다 더 많이 안타까워하시면서도 너무나도 저를 사랑하셔서 제가 건강했다 면 하나님 떠나서 살 사람이라는 거 너무나도 잘 아시고 그 17년이라는 긴 세월을 질병으로 연단하고 징계하시면서 어긋난 세상
의 길로 나가지 못하도록 우리 주님 곁에 꼭꼭 붙들어 두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 셨습니다.
건강한 자로 지옥 가게 하는 것보다 비록 불구인 채로라도 천국 가게 하는 것이 아 버지의 뜨거운 사랑의 방식이었음을 제가 그때 깨닫게 되었어요.

여러분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이 병을 앓게 되다 보니까 저에게는 학교 친구 가 하나도 없어요.
워낙 휴학을 많이 하고 다녀서 정상적으로 제가 학교를 별로 다녀본 기억이 없어요. 늘 혼자 집에 오면 외토리로 지내야 되고 또 엄마가 친엄마랑 이렇게 함께 살 때는 그래도 행복했는데요.
제가 성장하면서 어머니라고 불러야 했던 새 엄마들이 다섯 분 나 계셨어요.
저희 아버지 대단한 분이셨죠 그래서 지금은 좋은 새 엄마들 많이 계시지만 저희 집에 오셨던 새 엄마들은 무서운 새 엄마들이 많으셨어요.
제가 이 전염병을 앓고 있으니까 새 엄마들은 오시면 제일 먼저 이제 뒷방에 격리 시켜 놓으셨어요.
그러면 식사 시간 외에는 그 방에는 아무도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어요.
여러분 그렇게 혼자 하루를 보내면 그 하루 애가 얼마나 긴지 아세요? 그렇게 혼자 이렇게 지내면서 생각을 했어요.
내가 이렇게 가난하고 병드니까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구나.
내가 만약에 유명해지고 건강해지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 줄 거라는 생 각이 들었어요.
여러분 그래서 저는 어릴 때부터 정말 유명해지고 싶었어요.
제가 유명해지고 싶어가지고 제 나름대로 제일 먼저 연습하고 준비한 게 뭐냐 하면 사인 연습하는 것부터 해서 유명한 사람들 오면 막 사인 받으러 가잖아요.
저는 하나님 앞에 유명하게 해달라고 했으니까 언젠가는 하나님이 나를 유명하게 해주실 거라는 그 믿음을 가지고 그 격리된 방 안에서 혼자요 하루에도 달력 비가 하루에도
우리 생에
여러분 그렇게 혼자 하루를 보내면 그 하루 해가 얼마나 긴지 아세요? 내가 만약에 유명해지고 제가 유명해지고 싶어가지고 제 나름대로 제일 먼저 연습하고 언젠가 는 하나님이 나를 유명하게 해주실 거라는 그 믿음을 가지고 그 격리된 방 안에서 혼자요 하루에도 달력 뒤에다 하루에도 수백 번 수십 번 이 사인하는 거 연습했어 요.
오늘 끝나고 저한테 사인 받으러 오면 제가 사인 연습을 하면서 생각을 했어요.

그럼 내가 뭐가 돼서 유명해질까 생각을 했어요. 여러분 저는 어렸을 때 꿈이 영화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어이가 없으니까 웃지도 않았습니까? 저도 철이 들면서 아 이 얼굴 가지고 영화 배 우는 안 되는구나 빨리 깨달았어요.
그래서 못 생겨도 되는 게 뭘까 생각해 보니까 남을 웃기는 코미디언은 못 생겨도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내가 코미디언이 돼서 한번 유명해지자 생각을 하고
그때 MBC나 KBS에서 코미디언을 뽑는다는 광고만 나오면 밤잠을 설치고 원고를 준비했어요.
나름대로 딱 준비해서 대회에 출전하려고 하면 이상하게 하나님께서 그 대회를 나 갈 수 없도록 길을 막으시더라고요.
하나님께서는 제가 코미디언이 되어서 세상적으로 유명해지는 걸 원하시지 않으셨 던 것 같아요.
사실 그때 하나님이 못 나가게 해서 제가 안 나가서 그렇지 그때 나가기만 했다면 그냥 1등은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으니까 고개를 갸우뚱하고 계신데요.

제가 한 번은 경주교도소에 간증을 하러 갔어요. 경주교도소는 남자 제소자들만 있 는 교도소거든요.
교도관 안내를 받아가지고 강당 문을 딱 열고 들어가니까 정말 수백 명의 깍두기 아저씨들이 정말 여름이었는데 문신 막 용 그려지고 같이 줄 맞춰 앉아 계시는 거 예요.
그분들을 딱 보는 순간에요. 제 마음속에 순간적으로 동병상련의 마음이 탁 생기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분들이 교도소라는 이 험한 곳까지 오기까지는 저들이 자라온 환경이 나 살아온 세월들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었을까 저도 어린 시절에 참 새엄마에 대 해서 많이 설움 당하고 외롭게 살았던 제 처지가 생각나서 저도 하나님 함께하지 않았다면 제 환경에 저분들과 저런 자리에 같이 있어야 될 사람인데 그런 생각이 드니깐요.
그분들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형제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근데 이분들이 인생을 포기하고 이렇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까 제가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그래서 간증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막 울면서 얘기를 했어요.
여러분 여러분들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가 진흙 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기가 막힌 상황 속에는 있지만 나는 적어도 여러분들이 이곳에 서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꿈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를 봐라. 나는 여자고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 죽음 앞에서도 나는 하나님 앞에 유명하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내가 대회를 안 나가서 그렇지 내가 나갔다 하면 1등 했다 막 그러면서 그분들이 좀 희망을 가지라고 과장되게 막 얘기를 했어요.
이렇게 저는 막 울면서 감격이 내가 막 얘기를 하고 있는데 제일 뒤에 앉아 있던 억 수로 무섭게 생긴 제소자 아저씨 한 명이 간증하고 있는데 뒤에서 손을 딱 들더니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면 개인기 한번 보여보세요. 딱 이러는 거예요.
제가 잘못 들었는 줄 알고 예 뭐라고요? 그러니까 이분 대답을 듣고 제가 이해를 했어요.
그분이 뭐라고 하시냐면 우리는 하도 사기를 많이 치고 돌아다녀서 눈에 안 믿는 거 눈에 안 보이는 건 못 믿겠어요 개인기 한번 보세요.
보여주세요. 그럼 자기가 믿겠다는 거야? 여러분 한 영혼이 제가 개인기를 보여주 면 예수를 믿겠다는데 제가 누굽니까? 개인기 보여줘 부렀습니다.

그랬더니요. 경주교도소가 난리가 났습니다. 경주교도소 생기고 저보다 예쁘게 생 긴 여자는 다녀간 적이 없었다면서
그 남자분 일어나서 제가 기립박수 받았습니다.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개인기 보여드리기 전에 중요한 얘기를 나눠야 돼요.

여러분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누군지 모르겠습니까? 자기가 누군지 우리가 누구이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들은요.
중요한 얘기니까 잘 들으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가 잘 못하는 사람이 앞에 나와서 개인기를 보여줬을 때 개인기가 재미가 하나도 없어도 그래도 저 사람 이 쌕쌕거리면서 열심히는 하려고 하네.

이러면서 뜨겁게 박수를 쳐줄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 들이다.
예 감사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거 기억하시고 이제 개인기 들 어가겠습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가다 보면 스튜어디스들이 안내 방송을 하죠.
어떻게 하냐면 이렇게 하죠. 네 감사합니다. 다 알아들으시는군요.
예. 그래서 제가 비행기를 타거나 기차를 탈 기회가 있어서 이렇게 안내 방송을 듣 다 보면 안내 방송하는 사람들은 목소리가 정말 예쁘잖아요.
저도 이렇게 기침을 많이 해서 기관지가 망가지기 전에는 저도 옛날에는 목소리가 정말 예뻤습니다.
물론 지금도 예쁘긴 예쁩니다마는 그러다 보니까 목소리 예쁜 사람을 참 부러워했 어요.
여러분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안내 방송을 하는데 어떻게 하냐면 이렇게 하죠. 청도밀양, 삼당진, 부산지 무궁화 열차 타는 곳 이 되겠습니다.
선로 가까이 계신 분은 안전한 쪽으로 ....박수 칠 때까지 하겠습니다.
이렇게 안 제가 제가 그 방송을 들으면서 생각을 했어요.
우리나라는 각 지역마다 사투리가 있는데 그 지역의 사투리로 안내 방송을 하면 정 말 재밌겠다.
그게 저희가 고향이 여러분 대구거든요. 근데 동대구에 가면 안내 방송을 했는데 어떻게 했냐면 이렇게 했어요.
동대구역에는 동대구역입니다. 내리실 손님 잊으신 물건이 없으신지 다시 한 번 살 펴보시고 천천히 차례대로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동대구 여기는 동대구역입니다. 이렇게 방송을 하는데 이 방송을 이렇게 하지 말고 경상도 사투리로 하는 거죠.

어떻게 하냐면 이렇게 하죠. 대구입니다.

대구 다 왔어예~ 내리실 손님은 예 뭐 일과 아픈 물건은 없는가 단디 한번 살펴보시고 천천히 차례대로 내려주소 대구입니다.


뭐 이렇게 방송하 근데 근데 이 방송이 전라도 광주 목포 이쪽으로 가면 또 방송이 달라져요.
어떻게 하냐면 이렇게 하죠.

음이 징허게 반갑구만 아~따 요거가 목포라 게 싸게 싸게 왔으니까 후딱 내리으쇼


막 이렇게 방송을 하죠.

감사합니다. 근데 근데 이 방송이 충청도 대전 이쪽으로 가면 또 방송이 달라져요. 어떻게 하냐고 이렇게 하죠.

대전이요 대전이라니까요.근디 안내 방송도 덜 끝났는디 기차 볼 수 도 없네유


죄송. 제가 비행기를 괜히 보여드렸으니까 제가 오늘 여러분께 보여드린 비행기는 제가 가진 비행기의 빙산의 일각입니다.
전 정말 건강했다면 하나님 떠나갔을 사람이었어요.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제 상품을 잘 아시고
그토록 오랜 세월 어긋난 세상의 길로 나가지 못하게 우리 주님 곁에 붙들어 두셨 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니까 여러분 병이 고쳐지고 안 고쳐지고는 둘째 문제였어요.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이 바뀌어졌어요.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고 나면 하나님 제대로 만난 사람은요.
앉아서 신세 한탄이 나오고 울고만 지내지 않아요.

나도 누군가에게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제 가쁜 호흡으로 하나님 앞에 무슨 일을 할까 기도하는데요. 하나님이 저희 병실 바로 앞에 있는 중환자 병실을 기억나게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 중환자 병실에 가서 산소를 먹는 환자들 산소도 조절해드리고 또 피를 토하는 환자들 피도 받아내주면서 정말 저의 최선을 다해서 그 중환자실에 환 자들을 섬기고 돌보고 또 죽음을 앞두고 불안해하고 있는 중환자들에게 죽음이 끝 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거
사람에게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 영원히 산다는 거 제가 만난 하나님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하나님 얼마나 멋진 분이신지요? 화장실 교우 도우러 가는 그 색색 거리는 몸으로 중환자 병실 봉사를 오래 하지 않아서 그다음 달 검사를 하는데요.

어떤 약을 먹고 어떤 주사를 맞고도 치료되지 않았던 17년 동안이나 저를 괴롭혀 왔던 결핵균들이 그달 검사결과 모조리 떨어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하셨습 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지금 저는 이 왼쪽 폐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게 수술을 해서 없어진 게 아니라 17년 동안 앓아오면서 결핵균들이 다 갉아 먹 어버려서 다 녹아내려서 왼쪽 폐는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받쳐주는 폐가 없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서 있을 때만 걸어다닐 때 왼쪽 어 깨가 언제나 기우뚱해서 있어요.
그리고 그남아 있는 오른쪽 폐도 정상적인 여러분들은 상엽충 중엽충 이렇게 하엽충 의 폐가 있는데요.
저는 상엽충은 하나도 없어요. 하엽충만 그것도 거의 폐 기능을 상실한
능막염까지 동반된 작은 뼈를 가지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결핵이라는 병이 다 낳았다고 해서 금방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없어진 만큼의 폐활량을 못하기 때문에 제가 지금 완쾌된 지가 10년 이 훨씬 지났지만 지금도 평지를 걸어가도 숨이 차고 2층 계단을 오르려면 몇 번을 쉬어야 합니다.
제가 참 조심하지만 이제 말하는 숨소리가 여러분에게 전달되어질 것입니다.
근데 이렇게 말하는 것도 숨차고 평지를 걸어가는 것도 천재가요.
하나님을 찬양할 때는 별로 숨차지 않아요. 오늘 하나님께서 시편 150편 말씀을 통 해서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하셨어요.
목소리 예쁜 사람들만 찬양해라. 악기를 잘 연주하는 특별한 사람들만 나를 찬양하 라 하지 않으시고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하셨어요.

여러분은 혹시 그 귀뚜라미하고 바퀴벌레의 차이점을 알고 계세요? 둘 다 어둡고 침침한 곳에서 살아가는 벌레들이지만 사람들이 귀뚜라미는 사랑을 하는데요.
바퀴벌레는 얼마나 싫어하는지 몰라요.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는데 물론 다른 이유도 많습니다만 바로 귀뚜라미는 노래를 한다는 거였어요.

그렇죠 귀뚜라미 귀뚤귀뚤 노래는 있어도 바퀴벌레 바퀴 바퀴 이런 노래는 없죠 귀 뚜라미 보일러는 아직 있어도 바퀴벌레 보일러 제 그래요.
여러분들 하물며 벌레들일지라도 노래하는 것을 사람들이 예뻐하고 사랑하는데요. 여러분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지으신 우리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고 찬 양받으시기 위함이라 하셨는데 여러분 여분들이 가지신 그 넉넉한 호흡으로 립싱 크 남이 찬양하는데 목소리 내지만 입만 뻥긋뻥긋한 립싱크가 아니라 내 부르는 찬 양의 소리가 우리 주님 귓가에 울려퍼지도록 우리가 얼마나 목소리에 최선을 다해 주님 앞에 불러들였던가 이 시간 축복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호흡으로도 찬양할 때는 별로 숨좋지가 않아요. 그래서 이제는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당부하셨던 아버지의 당부의 말씀 저는 늘 기억하면서 저는 저를 살려주신 하나님께서 행여라도 제 생명 연장시켜주시고 후회하시지 않도록 저의 남은 삶을 정말 주님 기뻐하시는 일에 아름답게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몇 년 전부터 저희 같은 결핵 환자들에게도 장애인증을 주도록 법이 바뀌어 졌어요.
그래서 제가 마산결핵병원에 장애 진단을 받으러 갔어요.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이 자기들이 배운 의학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환자래요. 당신이 결핵 환자들만 전문적으로 봐오는 의사인데 의사 생활을 수십 년간 해왔지 만 이 조금 남은 폐를 가지고 이렇게 살아있는 사람을 자기가 처음 본다는 거예요. 그때 의사 선생님이 저보고 그러셨어요. 하귀선 씨는 치료 대상이 아니라 연구 대 상이다 그러셨어요.

그래서 장애인증을 받으려면 여러 가지 검사를 해야 되는데요.
검사를 다 해놓고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제가 의사실에 들어갔더니
선생님이 자료를 보면서 그러세요. 이 까다로운 보건복지부 규정대로 한다고 해도 저는 의학적으로는 1급 장애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래요.
근데 어떻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조금 남은 폐를 가지고도 이렇게 건강하게 살 아가니까 1,2급 별 차이 없으니까 2급 정도면 무난하겠다고 그러면서 제게 2급 장애를 주셨어요.
여러분들이 지금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2급은 여러분 1급 다음에 2급입니다. 중증 장애거든요. 항상 보호자가 따라다녀야 되는 중증장애인데 이건 제가 2급 장 애인입니다.

말씀드리기 전까지 여러분 2층에 계시는 분들 보이시나요? 이렇게 예쁜 장애인 보 신 적 있으세요? 여러분들이 저게 정신장애도 있나 막 이런 생각 저는 하나님이 제 게 주신 이 장애인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것이오.

제 간증으로만이 아니라 제 얘기로만이 아니라 의학적으로도 하나님이 저를 치료 해 주셨다는 게 우리에게 검증받았다는 것
때문에 장애인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이렇게 가쁜 호흡을 가지고도 제가 이렇게 찬양 사역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제가 1989년도에 국립마산결핵병원에 세 번째로 입원을 했어요.

그때 고칠 수 없다는 진단을 받고 제가 새벽 기도를 시작하면서 새벽 기도 시간만 아니라 시간만 있으면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일이시지 않았어요.
근데 낮에 교회에 기도하러 올라가 보면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 몇 명이 모여 가지고요.
자기들보다 더 중한 자들 그러니까 걸어서 예배당에 예배도 드리러 올라올 수 없는 중한 자들에게 우리가 찾아가서 찬양도 해드리고 예배도 드려드리자 해서 복십자 찬양단이라고 찬양단을 한 자들이 만들어 놓았어요.

그래서 제가 낮에 기도하러 올라가 보면 이 환자들이 피아노 옆에서 기타를 치면서 막 한복을 입고 찬양 연습을 하는데요.
여러분 찬양하는 사람들은 참 아름다워 보이잖아요. 그렇죠 오늘 찬양 인도하신 분들
자세히 보니까 잘생긴 얼굴은 아니잖아요. 그죠? 근데 찬양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 름답지 찬양하는 사람들은 정말 아름다워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 환자들을 볼 때마다 기도하러 가면 만나니깐요.
제 마음속에 하나도 저 찬양단에 너무너무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에 소원이 생겼어 요.
그래서 하루는 큰 맘 먹고 그 찬양단 이들을 찾아갔어요.
그래서 쌕쌕 거라면서 나도 이 찬양단에 좀 들여달라 부탁을 했어요.

그랬더니 이 찬양단 리더가 제가 2병동 색색인 줄 알고 있는 거라 그래서 찬양단에 넣어달라는 소리도 쌕쌕거리면서 얘기하니까 나중에 숨 좀 덜 차면 그때 오면 찬양 단 넣어줄 테니까 지금은 가서 누워 있으라면서 그러는 거예요.

그 소리를 들으니까 틀린 소리도 아니고 해서 그래 그러면 좋다
내가 정식 단원은 곤란하면 내가 악기 들어 나르고 마이크 정리하고 하는 소품 담 당이라도 할 테니까 나를 찬양단에 좀 넣어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랬더니 이 찬양단 리더가 저를 이렇게 쳐다보더니 이거 뭐 소품 담당이 아니라 소품이 한 개 더 늘겠다 하면서 아무도 저를 찬양단에 넣어주려고 하지 않았어요. 해서 너무 자존심 상하는 거예요. 그래서 좋다 내 속으로 그랬잖아 너희들에게 부 탁해서 안 되면 내가 우리 아버지한테 기도한다 하면서 제가 하나님 앞에 또 다른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하나님 제가 몸이 건강해서 하나님 앞에 몸으로 헌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나님 제가 물질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 물질로 드릴 수 있는 것도 없고 하나 님 아무리 살펴봐도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거라곤 이 조금 남은 패 이 옷밖에 없는 데 하나님 제가 이 옷으로도 하나님 찬양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저를 저 찬양단에 넣어주세요. 간절히 기도를 드렸어요.
그런데요. 이 찬양단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기도 시간에 허락하셨어요.
여러분은 기도 응답을 어떻게 받으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우리 주님은 늘 제게 기쁨과 평안으로 제 기도를 응답해 주시거든요.
이제 하나님 앞에 응답을 받았으니까 이 찬양 단원들 연습하는데 따라다녔어요. 왜냐하면 저도 곧 들어가게 될 거기 때문에 미리 따라다녔어요.

그래서 정식 단원들은 막 악보를 보면서 찬양 연습을 하는데 전 찬양단이 너무너무 하고 싶어가지고요.
그 찬양 단원들이 부르는 악보를 구해다가 제가 그 많은 곡들을 달달달달 다 외워 버렸습니다.
제가 얼마나 머리가 좋게 생겼어. 근데 그때 어떤 일이 있었냐면요.
여러분 결핵병원에 있다 보면 참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아요.
긴병에 효자 없다고요. 가족에게 남편에게 아내에게 버림받아서 오갈데 없는 불쌍 한 환자들이 참 많이 있었어요.

그럼 이 사람들이 퇴원을 하면 당장 갈 곳이 퇴원수속을 받고 나면 갈 데가 없으니까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병원 안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참 자주 일어났어요.
그러니까 신앙 있는 환자들은요. 일단 수속을 해서 퇴원은 해요.
이제 나갔다가 다른 환자 면회 오는 것처럼 다시 들어와요.
그래가지고 교회에 목포 하나 깔아놓고 이제 환자들이 자기 얼른 밥 먹고 집 안에 밥 가져다 주면 그거 먹으면서 숨어 지내는 정말 오갈 데 없는 불쌍한 한 자들이 그 때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우리 찬양 단원들이 연습하러 와서 그분들을 보면서 의논을 했어요.
우리가 이렇게 몸에 병든 것도 서로 먹고 자는 거 걱정되어서 자살하는 사건이 있 어서는 안 되겠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우리가 먹고 자는 것은 걱정하지 않도록 자활촌을 하나 건립을 하자.

그래가지고 무위탁 결핵 환자 자활증 관리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KBS 홀에서 그 때 KBS 창원홀에서 콘서트를 가지게 되었어요.
그때 박종우 씨, 다윗과 요나단 손영진, 최인혁 씨 하여튼 그 시절에 대한민국에서 유명하다는 지금은 거의 저하고 비슷하게 유명합니다마는 그 유명하다는 복음송 가수들을 다 초청을 해서 KBS 홀에서 콘서트를 하게 되었어요.

우리 복식자 찬양단이 주최를 하다 보니까 저희들이 제일 많은 다섯 곡의 찬양을 그 KBS 홀에서 부르게 되었어요.
근데 우리들이 불러야 될 이 다섯 곡 찬양 안에 솔로 나오는 부분이 있었어요.
나는 당신이 좋을 수밖에 없어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요.
간절히 솔로여야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저 이제 KBS 홀에서 콘서트를 한다고 하니 까 이제 정식 단원들보다 제가 더 바빠졌어요.
찬양 단원들 연습하는 데마다 미리 가서 딱 앉아 있었어요.
근데 하루는 이 찬양단 리더 정식 단원들 앞에 딱 끝에 정식 단원이 10명 정도 되었 거든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 솔로를 다 시켜보는 거예요.
그런데 아무도 이 솔로를 정말 은혜스럽게 간절하게 소화시켜서 불러내는 사람이 정식 단원들 중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뒤에 앉아서 구경하고 있다가 주님 이때를 위함이니까 하면서 제가 딱 나갔습니다.

그러면 그거 내가 한번 해보자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 찬양단 리더가 지금 KBS 홀 에서 콘서트 날짜는 가까워지는데 제일 중요한 솔로자가 정해지지 않아서 안 그래 도 신경이 날카로워 있는데 색색 거리면서 “그럼 그거 내가 한번 해보자”고 하 니까 이 찬양가 리더가 화를 버럭 내는 거예요.

이게 말이야 다 함께 부르는 곡도 아니고 혼자서 솔로해야 되는 곡인데 그래 쌕쌕 거리면서 부를 수 있겠어요 하고 막 고성을 지르는 거예요.

다른 환자들 옆에 있는데 얼마나 소리를 지르던지 정말 창피해서 눈에서 눈물이 뚝 뚝 떨어졌습니다.
그 사람 이름이 영삼입니다. 박영삼이라고 지금 목사님 내가 오늘 이거 보고 있습 니다.
이거

너무너무 자존심. 제가 하나님 앞에 막 그때 너무 창피해서 옆에 가서 울면서 기도 했어요.
하나님 둘러준다 해놔놓고 응답해놓고 이게 뭐냐 하면서 내 챙피시러워 죽겠다 하 면서 막 울면서 기도하고 있었어요.

그때 병원에 계신 원목 목사님께서 그걸 이렇게 지켜보시다가 그 찬양단 리더를 부 르셨어요.

아무래도 하귀선 자매 저러다가 병이 더 심해지겠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오디션이라도 한번 받아보게 해라.
지가 못 불러가 떨어지면 더 이상 우리를 귀찮게 안 할 테니까 죽은 사람 소원도 들 어준다는데 원이 없도록 오디션이나 한번 받아보게 하라고 그랬어요.

이제 찬양단 리더가 목사님 말씀이니까 할 수 없이 순종을 하고는 제가 울면서 기 도하고 있는데 옆에 오더니 어깨를 툭 치면서 점심 때 안정 시간 맞추고 오디션 할 테니까 준비해 와요.
딱 성질 내면서 그러는 거야 그 소리를 들으니까 안 그래도 숨 차는데 숨이 더 차는 거라 진짜가 아니까 정말이라 그러면 그렇지 하고 그날

병실 올라가는데요. 다른 날 같으면 수십 번 더 더 쉬어가 색색 거리면서 올라가는 그 길을요.
여러분 그날은 제가요. 너무너무 이성을 잃어버렸어요.
얼마나 보람찬하고 씩씩하게 올라갔던지 나중에 얘기 들었는데 환자들이요.
제가 그날 그렇게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제가 입원해 있는 위에 병동에 불 났는 줄 알았대.
근데 사실 저는 여러분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단지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 때문에 저에게도 기회를 주셨다는 그 기쁨 때문에 제가 그 길을 그렇게 올라갈 수가 있었어요.
여러분 결핵병원이라는 것에는요. 안정 시간이 있어요.
뭐 하는 시간이냐 하면 하루에 세 번 있는데요.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침대에 가만 히 누워서 잠을 자야 되는 시간이 안정 시간이에요.
이 안정 시간만 맞추고 나면 오디션을 받으러 가야 되는데
여러분 제가 그 안정 시간에 안정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간호사가 순찰을 돌고 난

다음에 이거 연습을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하나님이 제게 지혜를 주셨어요.

여러분 그 왜 오렌지 주스 먹는 긴 빨대 있죠? 이 주름 들어가져서 앞으로 구부러 지는 스트롱 있잖아요.
그게 이제 급한 김에 마이크예요. 이제 그거 마이크라고 들고 화장실을 찾아가세요. 그래서 화장실 창문 딱 열어놓고 그 빨대 마이크처럼 들고 다른 환자들 조용히 안정하고 있으니까 소리는 내지 못하고 저 혼자 찬양 연습을 시작했어요.
이걸 빨대 들고 화장실 건반을 하고 있었어요. 누가 화장실에 오면 그 빨대 뒤로 딱 숨겼다가 또 가고 나면 여러분 얼마나 찬양이 하고 싶었으면 그 2병동 색색이 가 냄새 나는 화장실에서 소리도 내지 못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연습했겠습 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참 예쁘게 보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날 안정 시간을 마치고 오디션을 받으러 내려가는데 병원에 소문이 났습 니다.
2병동 색색이 오늘 오디션 받는단다 이래놓으니까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이 할 일이 뭐 있습니까? 교회 안 다니는 환자들도 구경하러 왔습니다.
제가 또 결핵의 거성이기 때문에 그때 교회를 올라가려면 이렇게 경사가 져 있는데
요.
밑에서 예배당 위를 올려다 보니까 그날이 평일인데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는 거예요.

저는 그날 바깥에서 위문 공연 오는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병원에 바깥에서 교회나 성당 에서 위문을 올 때는 떡이랑 빵, 우유 이런 거 빈손으로 안 오고 가지고 오시거든요. 누가 온다 그러면 그때는 종교를 초월해가지고 막 환자들이 거기 몰리거든요. 그러지 않으면 그 오후 시간에 안정 시간 맞추고 교회에 그렇게 많은 인원이 있을 수가 없어요.
그래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하고 쌕쌕 거리면서 올라가니까 문 앞에 있던 아주 지궂은 환자 한 명이 야 저 봐라 저 2병동 색색이 올라오고 있다 이러니까 웅성웅성 하고 있던 환자들이
놀라서 쌕쌕 거리는 저를 보더니 확 웃는 모습이 보여졌어요.

여러분 저를 구경하러 온 그 많은 환자들의 비웃는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그 손가락 질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하나님 앞에 저절로 무릎이 꿇어졌어요.

하나님 제가 이솔로이고 부르고 저 여기서 죽어도 좋습니다.
하나님 제가 얼마나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원하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저의 찬양을 받으시기를 기뻐하시는지 하나님 이모인 사람들 앞에서 확인시켜 주십 시오.

주님 제가 이 솔로이고 부르고 저 여기서 죽어도 좋습니다.
제가 그 결단의 기도를 하고 솔로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좋을 수밖에 없어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사실 그 자리에 구경 와 있는 많은 환자들이요. 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병 때문에 고통당하고 고난당했는지 다 아는 사람들이거든요.
그 사람들이 저를 볼 때 제가 하나님이 좋을 이유가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주님 그 래도 나는 당신이 그래도 나는 당신이 좋을 수밖에 없어요. 주 예수  당신이여를

숨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연결해서 부르는 저의 그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 구경와 있는 많은 환자들이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건 찬양을 잘하고 못하고 문제가 아니다. 화장실 길도 겨우 가는 저 2병동 색색이가 저렇듯 가쁜 호흡으로도 솔로를 할 수 있다는 거 저건 하나님의 은혜다.

우리 저 자매 찬양도 넣어주자. 그래가지고요. 소품 담당으로도 안 넣어주려던 제가 그 3천 명 모인 KBS 홀에서 제가 이래도 솔로 했습니다.

여러분 그때 솔로 했던 곡을 한번 들어보고 싶지 않아.

빛이 없어도 환하게 다가오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음성이 없어도 똑똑히 들려주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당신이 계심으로 나도 있고
당신의 노래가 머물므로
나는 부를 수 있어요.
주여 꽃처럼 향기 나는 나의 생활이 아니어도
나는 다시 좋을 수밖에 없어요
주예수 당신이여
나는 없어도 주님이 곁에 계시면
나는 좋을 수밖에 없어요
주예수 당신이여



여러분 저는 그때 그 콘서트를 마치면서요. 하나님께서 얼마나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소외된 자들을 사랑하시는가를 알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그 보잘 것 없는 결핵 환자들이 주최한 그 콘서트를 통해서 그래도 먹고 자는 것은 걱정하지 않도록 자활촌을 작게 건립이 되어졌어요.
그래서 지금은 개발이 되어 없어졌지만 그곳에서 참 오갈데 없는 자들이 많은 위로 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셨어요. 그렇죠 여러분들이 아무도 앵콜을 안 하셔도 저는 앵콜곡 이 또 준비가 되어져 있기 때문에 고맙습니다.
그러니까 저희 찬양단원들이요. 그때 전국에 흩어져 있었어요.
근데 퇴원하고 3년 6개월 동안을요.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전국에 흩어져 있었는데 매주 토요일이 되면 국립마산결핵 요양 모여서 환자들하고 함께 예배를 드리고 찬 양 연습을 하고 주일은 그분들하고 함께 예배를 드리고 주일 오후에는 중환자 병실 방문하는 사역을 이제 4년 6개월을 했어요.

근데 이제 주일날 이제 토요일날 이렇게 병원에 가다 보면 병원 안에서 6살인가 7 살 되는 여자아이가 어른이 입고 있는 환의복을 이제 이렇게 걷어가지고 입고 걸어 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목사님께 원목 목사님께 저 아이가 누구냐 했더니 엄마가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데 아이가 전염이 되어서 아빠하고 이혼하고 보살필 어른이 없어서 그 중환자실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거예요.
사실 그 아이가 오기 전까지는 제가 결핵병원의 최연소 결핵 환자였거든요.
그 아이가 제 타이틀을 뗀 거예요. 그래서 관심이 가더라고요.
이렇게 이제 지켜보 고 지냈는데 여러분 이 마성결핵병원은 11월이 되면 우 리 이렇게 한국 다니엘기도회가 있는 것처럼 마성결핵병원에는 11월이 되면 낙엽제 라는 큰 행사가 있었어요.
그 낙엽제가 뭐 하는 날이냐 하면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이요.

치료한 병원 생활에서 링거 맞고 나면 남는 그린 것을 가지고 십자가도 만들고 판 지도 만들고 목걸이도 만들어 가지고 이제
시도 쓰고 수필도 써가지고요. 이렇게 전시회를 하는 그런 프로그램이 낙엽제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근데 제가 그날 그의 낙엽제를 봤는데 벽에 그 중환자실에 있는 아기 엄마가 찬양 시를 하나 비틀비틀 서서 산소를 꺾고 이제 기운이 없으니까 글씨체가 완전하지 않 는데 글을 써서 출품을 했더라고요.
제가 글씨를 읽으면서 가슴이 무너졌어요. 그 시의 제목이 뭐냐 하면 주님께 띄울 편지였어요.
제목이 내용이 이렇습니다. (아래 시)

뭐라고 시작을 하나? 주님께 띄울 편지 너무나 감사한 마음 먼저 적어야겠지.
두 손 모아 봉투를 삼고 믿음으로 우표를 삼아 하늘나라 띄워 보내면 언제쯤 도착 을 할까? 뭐라고 맺어야 하나 주님께 띄울 편지 너무나 감사한 마음 다시 적어야겠지.


여러분 자기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 중환자 산소를 굽고 있는 중환자가 그 어린 딸을 남겨두고 가야 될 엄마가요.
주님께 편지를 띄우는데 시작하는 말도 감사하는 마음, 믿는 말도 감사의 말로 이 렇게 맺어놓았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렇게 완전히 폐가 이제 이미 망가져 있기 때문에 병원에 1년에 한 서너 번은 정기적으로 입원을 하게 되어 있어요.

제가 한 번은 제가 병원에 폐렴이 와가지고 입원을 했는데요.
한 달 반 두 달 가까이를 병원에 입원을 해 있었어요.
한 달 정도 지났는데 이 산소를 꺾고 있는데 호흡 곤란이 와가지고요.
새벽 2시에 호흡 곤란이 온 거예요. 제가 산소를 얼마나 많이 먹어봤겠어요 산소 조절하는 건 간호사들보다 더 잘하거든요.
산소를 최고로 높였어요. 그런데도 이 호흡이 편해지지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고통스러워 가지고 간호사를 불러서 배를 불렀어요.
너무 상태가 심각하니까 막 얼굴이 붓고 숨을 못 쉬고 있으니까 당직 의사분들 막 와서 비상이 걸렸어요.
의사 선생님의 상태를 보더니 산소 수치 농도를 재워 보더니 이제 코에 있는 산소 기를 빼내고 입속에다가 이 몸속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빼내고 고단위 산소를 넣어 주는 기계를 꼽더라고요.
근데 보통은 그 기계를 꼽으면 수치가 조금씩 조금씩 올라가야 되는데 그 기계를 꼽고 있는데도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거야.
여러분 물론 다른 고통도 아픔의 고통이 다 많겠지만 숨을 못 쉬는 이 고통은 말할 수가 없어요.
정말 차라리 죽음을 원할 만큼 너무너무 고통스럽거든요.
정말 견딜 수 없어서 컥컥컥 넘어가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하고 간호사가 옆에서 얘 기를 하는 거예요.
저 기계를 뽑았는데도 산소 수치에 변동이 없으면 중환자실에 옮겨서 인공호흡기

뽑아야 되니까 준비하라 그러시는 거예요.
제가 의식을 잃어가는 그 고통 가운데 제가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저도 모르게 주 르륵 흘렸어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정말 하나님 사랑하고 이제 까지 살았는데 내 마지막이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 끼고 있다가 주님 만나고 싶 잖아요.
하나님 저 좀 도와주세요. 저 좀 살려주세요. 말은 할 수 없으니까 가슴으로 정말 간절히 기도했어요.
그런데 여러분 정말 거짓말처럼요. 이건 제 개인적인 신비이기 때문에 모든 환자에 게 다 적용되는 건 아니에요.
정말 간절히 기도했는데 거짓말처럼 산소 수치가 조금씩 조금씩 올라가는데요. 이거 완전하지는 않지만 중환자실에 옮겨서 인공호흡기 끼만큼은 안 되게 이제 조 금씩 괜찮아진 거예요.
그러니까 간호사랑 의사 선생님이 한숨 돌리고 이제 돌아가고 난 뒤에 이렇게 숨을 쉬고 있는데 저희 남편이 연락을 받고 달려왔어요.
산처럼 부운 얼굴을 하고 이상한 기계를 끼고 그리고 있으니까 저희 남편이 저를 보더니 펑펑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
제가 결혼하고 20년 됐는데 저희 남편이 그렇게 우는 거 처음 봤어요.
펑펑 울더니 제 손을 잡더니 기도를 하는 거예요. 하나님 3년만 더 살려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했어요. 근데 제가 그때는 급해서 아멘을 했어요.
정신을 차리고 나니까 이게 3년이 너무 짧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신랑한테 그랬죠. 아니 기도하는데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좀 더 쓰지 3 년이 뭐냐고 제가 그랬어요.

아마 그때 저의 상황이 석 달도 석 달도 말할 수 없는 믿음이 없으면 말할 수 없을 만큼 위급한 상황이었었어요.
그러니까 남편 믿음으로는 3년은 정말 큰 믿음으로 기도한 거였죠.
그래서 남편하고 제가 합의를 해서 3년 너무 짧다.
우리가 30년으로 이제 합의하자 그래가지고 지금 일단 30년으로 연장시켜놨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기도해 주시면 그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시리라 믿습니 다.

그래서 이제 퇴원을 하고 계속하는데 여러분 제가 병원을 일주일 간격으로 계속 입 원을 하게 되면 이 숨이 차지만 호흡 곤란이 오면요.
삶의 질이 너무너무 떨어지거든요. 화장실 가는 거 외에는 침대에서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지내다가
병원에 또다시 입원을 했어요. 입원해 있는데 제 옆에 옆 병실에 1인실에서 그날 사람이 한 명 돌아가셨어요.
여러분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은요. 누군가가 죽게 되면 그 죽음이 남의 일처 럼 느껴지지 않아요.
자기의 죽음하고 이렇게 연결시켜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날 제 죽음은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참 많이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이제 퇴원을 했는데요. 퇴원해서 집에서 지내다가 일주일 만에 호흡 곤란 이 와서 또다시 병원에 입원하러 갔어요.
그때가 한창 메르스가 유행할 때였어요. 입원했는데 첫날부터 열이 나기 시작하는 데요.
항생제를 맞고 해열제를 아무리 맞아도 열이 떨어지지 않고 숨이 더 아픈 거예요. 그러니까 그다음 날 되니까 의사 선생님 간호사들이 완전 무장을 하고 제 주위를 탁 둘러싸더니 아침 일찍 저승 사자처럼 갔다 딱 불러서 더니 제가 메르스 고위험 군인데 지금 증상이 딱 메르스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당신을 격리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격리한 병동이 어디였냐면 일주일 전에 입원했을 때 사람 죽었던 1인실 거기로 격리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격리해서 방에 딱 들어갔는데요. 여러분 이게 믿음과 상관없이 모르면 괜찮 은데 저 침대에 시체가 누워 있었는데 내가 있어야 되고 아무도 들어오지 않고 격 리되어져 있어야 된다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너무 무서웠어요.
무너졌어요. 정말 혼자 이렇게 침대에 앉지도 못하고 서서 눈앞에 서서 많이 울었 어요.
울다가 보니까 지금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가 없는 거예요.
내가 내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자유 의지로 내가 어떤 건 결단을 해야 되겠는데 저 는 하나님 앞에 감사할 거리를 찾아봤어요.
근데 감사할 걸 생각해 보니까 감사할 조건이 너무너무 많은 거예요.

첫 번째는 내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게 감사했고, 메르스가 아직 확진되지 않은 거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게 감사했고, 이 환경 속에서도 내가 감사할 거리를 찾게 되는 이 믿음 주신 하나님 너무너무 감사했어요.
여러분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지낸 것처럼 그 독방에서 격리되어졌어요. 참 혼자 많이 주님과 독대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어요.
그래서 3일이 지나고 이제 메르스가 아니라는 검사 결과가 나오고 격리 병실에 문 이 딱 열리는데요.
제가 6인실을 걸어가는데 신부 입장하듯이 걸어갔어요.
여러분 병원에 오래 있다 보면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아플 때가 참 많아요.
저는 남아 있는 배가 워낙 작기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 어요.
저에게는 엄마라고 불러줄 아이도 없고 제가 엄마라고 불러야 될 부모님도 아무도 안 계신 거예요.
병원에 하루 종일 있으면 낮 시간은 이렇게 지났는데요.
저녁이 되면 이제 엄마 만나러 딸들이나 자녀들이 병원 안에 다가와요. 찾아와요.
엄마하고 도란도란 얘기하는 걸 보면 참 많이 서러울 때가 많이 있어요.
혹시 제가 병원에 입원했던 열을 받으면 한번 은원에 와주세요.
그렇게 지냈어요. 근데 여러분 사람이요. 자기의 재능과 소질을 최대한 발휘해서 죽을 곳이 있어서 죽을 곳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은 그 일이 고상하든 유치하든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하나님은 제게 육신의 자녀는 주시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제 마음속에 이 땅에 작은 교회 사모님들을 품게 하는 사모님들을 품게 하셨어요.
그래서 그 사모님들을 위해서 정말 목회의 무게 위에 가난의 짐까지 안고 살아가는 작은 교회 사모님들을 어떻게 하면 위로할까 고민을 하다가 매년 3월 5일을 사모 의 날로 지정했어요.
그래서 3월 5일 사모의 날 멋지지 않습니까? 내가 사모데인 막 이러면서 사모데이 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삼촌 교회 여러 많은 한국교회 성도님들 특별히 작은 교회 성도님들이 이 영상을 보고 계실 텐데요.

3월 5일이 사모에 아니라는 거 기억하시고 저는 기도하는 사람들은 좀 따뜻한 분 들이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온기가 있으면 사람이 모여들지 않아요. 우리는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가슴으로 따뜻하고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분들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내년 3월 5 사모의 날에는 우리가 근사하게 비싼 선물하는 게 아니라 수고 하시는 사모님 손 한번 잡아주시고 꼭 안아주시면서 수고한다고 고맙다고 그렇게 격려해 주시는 여러분들이 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제가 이제 간증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저는 여러분 저희 집에는 산소가 늘 박스로 쌓여져 있어요.
힘들 때는요. 지금도 산소를 먹어야 되고 자주 여전히 병원에 입원을 해요. 다니엘 기도회 첫째 날부터 오늘까지 하루도 안 빠지고 영상으로 함께 했거든요. 16일차 개근상 주는지 모르겠어. 16일 차 되는 날부터
호흡 곤란이 왔어요. 그래서 가슴에 통증이 오는데 다니엘 기도회를 어떻게 인도할 까 이 간증을 생각을 해야 되는데 과연 이날 내가 설 수 있을까 걱정인 거예요. 주위에서 병원에 입원해야 되지 않겠냐 그러셨어요.
근데 병원에 입원하면 외출을 안 보내주거든요. 저녁 시간에 특히나 그래서 이게 죽어도 단일 기도 끝나고 죽어야 된다고 하면서 제가 기도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오늘 아침에 일어났는데 도저히 못 일어날 것 같은 거예요.
너무 가슴이 아프고 숨이 차거 그래서 진통제를 먹고 그래도 아플수록 더 예쁘게 가야 되지 않겠나 해가지고 화장도 이렇게 예쁘게 하고 이렇게 여러분 저는 늘 죽음을 준비하면서 살게 돼요.

여러분 죽음을 준비하면서 사는 사람은요. 그다지 이 땅에 거 욕심 나는 거 갖고 싶 은 거 없어요.
저는 늘 저녁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그래요. 하나님께서

오늘 밤 내 생명도로 찾으시면
이 수고한 모든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늘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내일은 내 날이 아니고 오늘만 내 날이다. 그래서 오늘 내게 만나주신 사랑 그분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사랑을 베풀고 그러다 보니까 인색해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내가 내일은 내 날이 아니니까 오늘 내게 있을 때 나누어야 되겠다 해 서 열심히 생활을 하는 그러다 보니까 늘 죽음 앞에서 죽음을 준비하게 되는데 저 는 늘 주님을 만날 걸 생각을 하죠.

우리가 물론 이 땅에서도 주님을 만나지만 죽음 앞에 서서 하나님을 만나면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 내가 그토록 그리웠던 주님 사랑했던 그 주님을 내가 만나면 무 슨 말을 해야 될까 참 많이 생각했어요.

여러분은 주님을 만나면 무슨 말씀을 제일 먼저 하시고 싶으세요? 저는요.오늘 밤이라도 우리 주님 내 생명 도로 찾으셔서 내가 주님 만나게 되면 제 첫마디 가 주님 감사합니다.
그 고백일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 주님이 제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다 아시잖아요.
그렇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입양을 앓고 17년 동안 피를 토하고 산소를 굽고 늘 119에 실려서 산과 죽음을 오가면서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았는데 그리고 새 엄 마들이 5명이나 되는 그 말할 수 없는 어려움들을 겪었고 또 결혼해서 육신의 자녀 도 없이 이렇게 살아가면서도 정말 하나님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감사하며 찬양 하며 살은 거, 행복하게 웃으면서 살았던 거 주님이 아실 텐데 주님이 저를 보고 주 님 감사합니다.
고백했을 때 주님이 보좌에서 내려와서 그러실 것 같아요.

제가 상상을 해요. 주님이 보좌에서 내려와서 저를 꼭 안아주시면서 그러실 것 같 아요.
아니야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는데 잘 살아줘서 내가 너 때문에 더 고마웠다.
제가 우리 주님 앞에 꼭 칭찬받고 싶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주님 앞에 서게 될 터인데요.
여러분 며칠 가지 않는 사람의 칭찬 때문에 행복했다가 불행해진 그런 사람이 아니 라
아무도 우리의 수고한 거 알아주지 않아도 머는 날 우리 주님 내가 그때 너 때문에 그때 나 때문에 손해 보고 양보해줘서 정말 내가 너 때문에 고마웠다.
우리 여러분 그 칭찬 받을 수 있도록 이 땅에서 기도한 만큼 삶으로도 그렇게 살아 드리는 저와 여러분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제가 여러분 행복하게 보이지 않으세요? 참 행복해 보이죠.
호흡기 2급 장애인이고 자식도 없이 이렇게 살아가는 제가 이렇게 웃으면서 행복 하게 쓱쓱 끓면서 진통제로도 이렇게 먹고도 이렇게 쓱쓱 끓이고 감사하고 사는데,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못한다면 우리 주님이 보실 때 여러분이 장애인 이고 제가 정상인이고 그렇겠죠.
우리가 여러분 힘들 때마다 제 쌕쌕거리는 호흡 생각하시고 저 사람도 저렇게 쌕쌕 거리면서도 감사하고 찬양하고 사 복음 전하고 사는데 나도 더 열심히 감사해야겠 다.

죽음 앞에서도
그 어린 딸을 남겨두고 가는 중환자실에 있는 애기 엄마가 시작하는 말도 감사, 마 지막 믿는 말도 주님 앞에 감사를 드렸던 것처럼 우리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행복 하게 사는 우리가 감사를 잃고 산다면 하나님 앞에 책망받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감사하면서 이렇게 승리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앵콜곡 준비했던 거 제가 찬양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한 분밖에는 아는 사람 없어요. 없어요. 가슴 깊이 살고 있는 주를 사랑하는 마음 주님 한 분밖에는 없어요 기억하지 못해요.
깊이 숨어있는  주를 사랑하는 마음, 주님 한 분밖에는 기억하지 못 주를 만난 그날 울며 고백하던 말
나는 행복해요. 사랑 받았으니 아버지 품 안에서 떠나 살기 싫어요.
나는 행복 해요  이 세상 무엇이든 채우고도  냄아요 주님 한 분밖에는 사랑
지금 가슴 뜨거 주님 피가 흘러요. 주님 한 분밖에는 약속한 일이 없어요.
나를 믿고 따르는 자 반석 위에 서리라. 나는 행복해요.
아버지 품 안에서 떠나 살 길이 있어요. 나는 행복해요 이 세상 무엇이 든 채우고 남아요
나는 행복해요. 그 사랑 받았으니 아버지 안에서 떠나 살기 싫어요. 나는 행복해요. 사랑이 살 수으니 이 세상 무엇이든 채우고도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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