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QS 2024. 2. 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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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보선생님
시한부 인생 심근경색
선생님과 제자
학생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교사
한발치물러나면 아이들이 보인다

문경보 소장(문청소년 교육상담연구소 소장)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안녕들 하시죠 제 딸도 고3이거든요. 오늘 수능을 쳤어요. 이렇게 있는데
일단은 제가 학교 선생을 오래 하다 보니까 이런 친구들이 옆에 있으면은 말씀을 잘 전하지를 못해요.
왜 그러냐면 다시 학교 가고 싶어 갖고 그래서 죄송하지만 이 친구들하고 잠깐 얘 기 좀 하고 말씀 나누겠습니다.
사실
얼굴은 좀 잡히죠. 저희 딸한테 오늘 했던 말이고요.
고3 담임으로써 수능 끝나고 난 그다음 날 가채점 끝나고 오면 했던 말입니다.
갓 채점이라는 단어를 들으니까 또 경기가 일어나는군요.
네 많이 미안합니다. 20살 이후에 세상을 위해서 19살을 반납시켜서 정말 미안합 니다.
근데 정말 더 미안한 건 20살 이후의 세상도 그렇게 예쁘지가 않아요.
그리 정의롭지도 그리 공정하지도 않아요. 어른들은 좀 더 좋은 세상 만들어서 여 러분들 주고 싶었는데 숙제로만 떠넘겨서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거기까지가 어른들이고 그다음에는 기도의 힘밖에 없어요.
그런데 반납시킨 그 시간이 여러분들을 살아나게 할 수도 있어요.
그게 역사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교회에서 길이 안 보일 거예요.
어차피 길이 너무나 좁은 입시 길이니까 길을 잃어버릴 수 있어요.
근데요. 길은 원래 앞에 없고 뒤에 있어요. 돌아보면 걸어온 길이 있는데요.
앞에는 안 보여요. 길을 잃어버려도요. 꿈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근데 가다 보면 꿈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싶을 때 있어요.
삶이 뭐 이래 앞뒤 꽉 막히고 너무 무섭고 떨릴 때 있어요.
화나고 그래도요. 사람은 잃지 마세요. 죄송하지만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나

를 잃지 마세요.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내가 얼마나 귀중한 존재이고 내가 얼마나 대단한 존 재인지는 살아보면 알아요.
따라서 인생은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생을 살아내는 게 더 중요해요.
싸움은 센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에요.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길이 보입니다. 그 말씀을 좀 드리고 싶었어요.
이제 앞으로 갈게요.
제가 감정이 올라오면 좀 안 숨기거든요. 지금 뭐가 올라오고 있어서 이해를 해 주 십시오.
한 45년 숨기고 살았으니까 됐죠. 이제는 다 표현하고 살고 싶어서요.
앞으로 한 45년 더 살 것 같은데 이제 표현하고 살아야지 그래야 셈셈 되지 않겠어 요 한 3년 3년 반쯤 전에 우린 교회를 제가 왔었어요.
어떤 아는 분이 예배를 같이 드리자고 그러셔서 왔었어요. 근데 그때는 저는 그때 5개월 산다고 선고받았어요.
그게 2009년인가쯤 되는 것 같은데 2010년이군요.
2010년 근데 저 지금 살아있어요. 오늘 그 말씀드리려고 해요.
그러니까 이 장소이니까 제가 마음이 어떻겠어요 아무 생각 안 나죠.
오래 사니까 세상이 다 예뻐 보여요. 제가 학교에서 교사를 20년 했는데 23의 선생 을 시작했거든요.
맨 처음에 선생할 때는 누가 제일 예뻐 보이냐면 교생 선생님 특히 미대 여자 교생 선생님 오시면요.
선생님들이 막 이렇게 해줘요.
부부 교사 살면 준재벌 된다. 문 선생 그러면서 막 저희 반의 담당 교생으로 막 주 세요.
그럼 성심성의껏 지도하면 지도 끝나고 이제 한 달 끝나고 가시면 그 여러분들이 하는 말씀이 선생님 열정적으로 도와주시면 좋지만 다음부터는 그렇게 교생한테 하지 마세요.
그래요. 그러다가 저희 집사람이 심하게 예뻐요.
아주 격하게 예쁘고요. 처제가 8명이에요. 근데 더 예뻐요.

종자 개량 차원에서 다 165 넘는 사람들 저희 집사람 169거든요.
그래서 종자 개량 성공했고요. 그래서 처제들이 더 예쁘고 그래서 장모님도 미인이 시고 장인어른도 완전한 미남이시고 해서 예쁜 여자에 대한 욕망은 저는 다 채워졌 어요.
그러니까 그다음부터 30살 되면 교생들이 오니까요.
교생들이 오니까 지적질을 하기 시작해요. 제대로 하라고 왜냐면 우리 반 애들 3월 달에 사람 만들어 놨는데 교생이 왔다 가면 잠깐 사람이 외출해요.
애들이요. 그래서 막 지적하다가 40살이 넘으니까요.
교생이 예뻐 보여요. 남자 교생도 예뻐 보여요. 젊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저도 마흔이 되니까 아이들한테 줄 수 없는 그 젊은 분들이 그걸 준 다는 감사함 너무너무 예쁜 거예요.
그래서 제가 모교거든요. 대광고등학교가 저희 국어 선생님 했던 은사님한테 그랬 어요.
60이 넘으신 분인데 선생님 마흔 되니까 교생들이 예뻐 보이네요.
그랬더니 그 은사님이 저보고 그러시더군요. 나는 니도 예뻐 60살 넘은 할아버지 눈에는 40살 난 이상하게 생긴 아저씨도 예뻐 보이는 게 세상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래 살아보세요. 정말 예쁜 것만을 정말 예쁜 거 많고요.
얼마 전에 이제 인터뷰를 했는데 앞으로 계획이 뭐냐고 저한테 물어보셨어요. 리포터분이 제가 그랬어요. 오늘 같은 내일 살고 싶다고 그게 제 계획이에요. 전에는 아니었거든요. 아침에 눈 안 떴으면 좋겠다 하고 저녁에 잔 적이 많았는데 요.
이젠 아니에요. 너무 좋은 게 많아요. 따라서 이 좋은 세상을 다 누리지 못하고
제가 가슴에 묻은 놈들이 7명이에요. 제자가 20년 선생하면서 먼저 하늘나라로 가 버린 친구들이 7명이에요.
스스로 이 좋은 세상 다 못 보고 주님이 만드신 진짜 이 아름다운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자연들 다 못 보고서 하늘나라 먼저 가서 너무 속상해요.
그래서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다 이 땅에서 누릴 거 다 누리셔도요. 저기 올라가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아요. 미움도 예뻐지더라고요. 나이가 들다 보니까 저희 어머니하고 오기 전에 지금 싸웠거든요.

저가 우리 어머니 싸우다가 둘이서 할머니하고 아저씨랑 싸우는 거예요.
싸우다가 저희가 둘이서 막 웃으면서 무슨 이야기했냐면 싸우는 것도 우리가 힘이 있으니까 싸우는 거죠.
엄마 그랬더니 그레이마 그러고 다 끊으셨어요. 근데 좀 웃으셨어요.
끝에 어떻게든 살아내시기를 바랍니다. 파워포인트 좀 볼 수 있을까요?
제 이야기를 이것저것 좀 드리겠습니다.
제 얼굴 창피하니까 좀 이렇게 넘어가 주세요. 오늘 성경 말씀이 이제 다 쉬래요. 다 아시겠지만 여름에는 음식들도 지치니까 막 쉬잖아요.
죄송합니다. 참 이상한 얘기를 했나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와서 쉬라.
그렇게 말씀하신 걸 왜 그렇게 몰랐을까요?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해야 모든 게 이루 어지는 줄 알았을까요?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강요했을까요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집이 상당히 가난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를 제 인생에서 한 6년 봤나 봐요.
늘 방랑 생활을 하셨고요. 너무너무 가난해서 그것이 어릴 땐 자랑이었습니다. 아시겠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 다시 말해서 역기능 가족이라고 얘기를 하는데요. 예를 들면 아버님이 편찮으세요? 그럼 어머니가 경제를 담당하셔야 되잖아요.
근데 어머니가 직장에서 일하다가 집에 딱 들어와 보면 집이 엉망일 때가 많잖아요. 그럼 막 신경질을 내실 거 아니에요
그러면은 자식들이 엄마 눈치를 보거나 화를 내거나 하겠죠.
그러니까 기능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지금 다시 말해서 어려운 집안의 가정 여러 가지로 부모님이 헤어졌다든지 할머님 하고 둘이 산다든지 아니면 이렇게 아버님이 편찮으시든지 어려운 집안의 아이들 은 둘 중에 하나의 방법을 택합니다.
첫 번째가 뭐냐 하면 부모님 말씀을 무지 잘 듣는 거예요.
부모님 입에 혀처럼 놀아요. 왜요? 부모님이 나 버릴까 봐 두 번째는 부모님 말씀 무조건 안 들어요.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부모님이 나한테 끝없이 관심 가지시잖아요.
내가 가만히 있어도 담임 선생님이 관심 갖게 해주잖아요.
경찰서 아저씨가 연락 다 해주잖아요. 국가기관에서 그러니까 부모님께 말을 잘 듣

거나 완전히 부모님한테 못되게 하는 거예요.
둘 중 하나로 가요. 그래서 저는 어느 쪽을 택했을까요?
당연히 1번을 택했으니까 학교 선생을 했겠죠. 부모님한테 말을 잘 듣는 쪽을 택했 죠.
학교에서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집에서 부모님 말 잘 듣는 친구들 운동을 꼭 시키셔야 됩니다.
그 공격성을 터뜨리지 않으면 이상한 데서 나오는데요.
이랬죠. 제가 동생 막내 동생이 제 첫 제자예요. 선생 됐을 때 우리 반 학생이었어 요.
근데 저하고 너무 다르게 생겨갖고 날씬하고 예쁘고 아주 날카롭게 시크하게 생겼 어요.
그러니까 이름이 비슷한데도 제 동생이라고 아무도 안 믿는 거예요.
원래 그 불법이거든요. 자기 친동생을 가르치고 수업 가르치고 그러면 당연히 국어 100점이죠.
그거야 뭐 할 수 없죠. 다들 아니라고 자꾸 하시니까.
그런데 제 동생하고 10살 차이가 나고 남동생하고 중간에 여동생하고 6살 차이가 났어요.
초등학교 한 5학년 때로 기억이 돼요. 남동생을 등에 없고요.
등에 업고 여동생을 손에 잡고 제가 오후 3~4시만 되면은 가는 곳이 있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어르신들 기억나실 텐데 옛날에 지하실에 물 많이 터져서 방수액 바르는 소위 말하 는 막노동을 많이 했거든요.
어른들이 그래서 지하실에 물 터지는데 방수 바르는 일명 노가다 막노동을 어머님 이 하고 계셨어요.
어머님이 간식 받는 시간이에요. 새참 보름달 빵하고 서울우유 하나 나와요. 그러면 그걸 가서 제가 하는 일은 뭐냐 하면 보름달 빵을 정확히 3등분해서 여동생 주고 저 하나 맡고 어머님 드리고 어머니가 간식을 제가 빼앗아 먹은 거예요. 그리고 그 우유는 어머님과 어머님이 젖이 안 나오시니까 안 나오니까 남동생에게 조금 조금씩 먹이는 그런데 한 번은 이렇게 시멘트를 바르니까 시멘트가 이렇게 막 쌓여 있잖아요.

그 공사장에 근데 어머니가 저한테 더 먹으라고 주신 거예요.
당신 걸 그래서 제가 엄마 먹어 하면서 이렇게 둘이 왔다 갔다 하다가 이게 시멘트 속으로 뚝 떨어져버렸어요.
그래서 둘이 원격거에 손을 확 집어넣었거든요.
엄마 손하고 제 손이 만났어요. 근데 상황이 뭐냐면 막내 동생 저기 나동그라져 있 고요.
여동생은 빵을 입에 문 채 울고 서 있던 장면이었어요.
지금도 그 장면이 눈에 선해요. 어려웠어요. 너무나 힘들었어요.
그런데요. 힘들고 괴롭고 아프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상황인데 그것이요. 그것이 지금 제가 상담사의 길을 가게 만들었어요.
저는요. 아픈 사람 해결 못 해줘요. 근데 손 잡고 같이 울어줄 수는 있어요.
느낌 아니까 진짜로 그게 뭔지 아니까 단 한 사람이 그리운 때거든요.
그때가 그리고 그렇게 가난한 집에서 말 잘 듣고 큰 큰 아들은요.
눈치가 되게 빨라야 살아요. 상황 판단을 막 해야 돼요.
큰아들은 상황을 판단해야 돼요. 상담사의 최일 조건이 뭐겠어요?
눈치 아니겠어요? 내 삶의 어떤 마이너스적인 부분도 살아보면 그게 긍정적으로 돌아갈 때가 있어요.
그대로 소위 말하는 기핑을 하고 있어야 돼요.
버리면 안 돼요. 다 인생이지 그렇게 해서 이럭저럭 해서 저희가 초등학교를 이제 마쳤습니다.
그리고 중학교도 거의 끝내고 중학교 때는 악바치게 공부를 해서 꽤 인근에서 유명 했던 기대를 받았던 사람이 됐었죠.
그런데 중3 어느 날 사건이 또 하나 터집니다. 다음 부탁드릴게요.
중학교 3학년 때 대광고등학교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고 특히 축제가 유명했거든 요.
특히 합창반이 노래를 잘했어요. 그래서 친구들하고 합창 구경을 갔는데요.
남성 복 4중창 8명에게 중창을 하는 거 처음 봤어요.
대광고등학교 합창반이에요. 중창팀이 나와서 소리가 너무 좋은 거예요. 에라스트라는 노래였는데 그중에 한 명이 솔로를 하는데 진짜 저게 사람 소리인가 중3짜리 빡빡 대가리가 그래서 저희 어머님을 졸라서 제가 원래 대광고등학교 들

어갈 주소가 아니거든요.
근데 위장전입을 했습니다. 하나님은요. 위장전입을 통해서도 역사하십니다.
대광고등학교 안 갔으면 제가 교회를 못 다녔거든요.
저희 어머님한테 학교에서 교회 가래 그래서 다닐 수 있었거든요.
어머님이 교회를 좀 반대하셔서 대광고등학교 들어갔죠.
들어가자마자 그 형을 만나고 싶은 거예요. 그 형이 가장 좋았던 이유는 키도 고 못 생겼어요.
근데 노래를 저한테 스타예요. 스타 여학생들이 다 넘어지고 보니까 그때 그 복 4 중창했던 그 형들이 고3들이었어요.
고3이 축제 때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학교야 이거 멋있다.
그리고 그 형의 이름이 김광석이었어요. 상황이 그렇게 됐어요.
그래서 이제 거기서는 못 만났고 이제 졸업한 이후에 이후에 동창회 활동하면서 만 났다가 이제 막 이렇게 이렇게 해서 먼저 이제 하늘 꽃자리로 갔잖아요. 대광이라는 나라 나라라 죄송합니다. 대광 왕국이 자꾸만 입에 배서 대광이란 학교 가 그래요.
제 친구는요. 혹시 아시나요? 예민이라고 어느 산골 소년의 작은 사랑 이야기에
제 친구입니다. 친구들 많이 보죠. 하여튼 그런 학교였습니다.
그래서 그 학교를 갔죠. 근데 아시겠지만 어릴 때는 부모 말을 잘 듣는 게 쉬워요. 공부도 조금만 노력하면 성적이 되고요. 고등학교 들어가면 이게 만만치가 않아요. 날고 기는 애들이 다 오는데요. 인간 각차에서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너무 힘든 거예요. 그리고 부모님이 저한테 원하는 건 점점 많아지시고 고등학생이 됐으니까 그래갖고 고 일대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선생님한테 그랬어요. 선생님 나 너무 힘든데요.
죄송하지만 학교 안 나오고요. 집에도 안 들어가고 싶어요.
세상 사람들하고 다 멀어지고 싶어요. 해서는 안 될 소리를 한 거죠.
보통 그러면 선생님들이 뭐라고 할까요? 애가 와서 죽겠다고 죽을 만큼 힘들다고 얘기하면 선생님들은 뭐라고 하죠?
기한해야 되거든 바쁘니까 내일 와 그런 선도 있어요.
근데요. 저는 그 선생님이 뭔가 멋진 말 충고를 해줄 줄 알았어요.

기운 내 임마 할 수 있어 이런 거 해주실 줄 알았어요.
그래서 간 거예요. 정말 좋은 선생님이시거든요.
그랬더니 가만히 저를 보시더니 밥 먹었냐 그러시는 거예요.
가만히 생각보니까 7기를 안 먹었어요. 7끼를 죄송하지만 돈이 없어서 안 먹었어요. 못 먹었어요. 아니요. 그랬더니 자장면이나 먹자 가니까 얼마나 맛있겠어요.
물론 나중에 체했습니다. 7개 먹고 짜장면 먹으면 안 되죠.
막 먹고 있는데 갑자기 고개를 딱 들어보니까 선생님이 절 이렇게 보시는데 남자 아저씨가 울고 있는 거예요.
근데 뭐라고 하시냐면 미안하다 그러시는 거예요.
미안하다. 힘들 때 짜장면 사주는 것밖에는 선생님이 해줄 게 없네.
우리 문경고 많이 힘들겠네. 이러시는 거예요. 그건 아니야야 이렇게 이렇게 해 왜 할 수 있는데 왜 그래 그 말 안 하셨어요 그런데요.
그 선생님이 그렇게
충혈된 눈하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진짜 이 학교 다녀볼 만한 학교라는 어떤 울림이 저한테 왔어요.
그래서 이 악물고 다녔어요. 1학년 마칠 때 선생님이 저보고 그러셨어요.
너희 다음에 선생 해라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싫어요.
선생님 힘든 애들 많은데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랬더니 그게 왜 힘든데 선생님은 다 해결해 줘야 되잖아요.
선생님처럼. 그러니까 해결 안 해도 돼. 그냥 옆에만 있으면 돼.
너 옆에 있을 수 있잖아. 됐어요. 그래 안 했어요.
교사 되려고 안 그랬어요. 그런데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니까 선생이 됐어요. 아마 전 세계에서 제가 교사 되게 쉽게 됐을 거예요.
4학년 2학기 때 그냥 강사로 갔는데 그 학교에서 그냥 뽑아줬어요.
제가 술을 전혀 못 마시는데 레크레션 강사라서 술차에서 사회를 잘 보거든요. 우리 이사장님이 마음에 들어서 그냥 비리로 뽑았어요.
비리를 통해서도 역사하시는 게 하나님이십니다. 그것들 다 하나님 밑에 있는 것들이에요.
거의 갔어요. 가고 한 2년간 근무하고 저의 소망이었던 교사의 소망은 아니지만 저 의 일종의 고향이었던 원래 제 고향은 제주도입니다.

보시면 이제 도라라방 스타일이잖아요. 저의 고향이었던 대광고등학교 대광중학교 교사가 됐어요.
다음 PPT 좀 부탁드릴게요. 그런데 대광고등학교 교사가 됐는데 책선전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학교 교사가 된 첫날이었습니다.
첫날 첫날 수업을 딱 했는데 재미있었죠 기억나실지 모르겠는데 그때 움직이는 쇼 비디오 자키라는 심형래 씨가 많이 나왔던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제 별명이 첫 시간 수업 끝나니까 움직이는 쇼 비디오 자키가 됐습니다.
진짜로 한 명은 배가 고파서 나오시에 실려갔고요.
애들은 좀 웃겨줬더니 그러더라고요. 이제 두 번째 반 들어가게 됐어요.
얼마나 애들이 이제 기대가 많겠어요 이제 막 이상한 사람이 와서 이상한 얘기하는 데 어쨌든 수업은 안 한대 이래가면서 이제 막
첫날 첫 시간에 수업하면 그 죄죠. 범죄의 범죄건 딱 들어갔는데 첫 반부터 이상한 게 있었어요.
뭐가 이상한가 봤더니 교실이 너무 어두운 거예요.
두 번째 반도 이거 뭐야 이거 그래서 제가 굉장히 직선적이에요.
곧바로 교장 선생님한테 달려갔어요. 은사님이신데 선생님 조명이 너무 어두워요. 이 나라의 희망들한테 조명을 어둡게 하면 되나요?
이렇게 농담 비슷하게 건의를 했더니 교장선생님이 지긋이 웃으세요.
한 번만 더 가보세요. 그래요. 무슨 말인가 해서 그다음 수업을 들어갔죠.
1시간 쉬고 출석을 부르는데요. 출석 부르다가 중간에 울었어요.
중동 중학교는 강남에 있는 거예요. 대광중학교는 강북에 있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면 아이들의 얼굴에서 흘러나온 빛이 어둡게 만든 거예요.
교실을 형광등은 오히려 한 세트가 더 많았고요. 두 개짜리 남양이라서 햇빛은 더 많이 들어왔어요.
근데 교실은 어두웠어요. 그리고 제가 그걸 왜 발견했냐면 저도 가난이 뭔지 알잖 아요.
가난한 집 아들이
걸어가면서 만나야 될 건요. 경제적인 어려움만이 아니에요.
좌절 변절 그리고 쓸데없는 고집 외고집 이런 것들이거든요.
그건 너무 힘든 거거든요. 그러고 나니까 출석부를 부르다 말고 저축 창가에 서서

계속 운 거예요.
눈물이 앞을 가려서 그러면서 제가 마음속으로 그랬어요.
아이들 앞에서 말은 못하고 하나님 미쳤어요. 나 혼자 가난한 것도 힘들어 죽겠는 데 집단적으로 가난한 곳에 집어넣고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저하고 그랬더니 하나님의 소리가 들려요. 미안하다.
근데 너는 걔네들 옆에 있어줄 수 있지 않니 지금 그게 무슨 소리인지 지금 짐작 가 시지.
담임 선생님이 저한테 하셨던 말씀이에요. 즉 저는 고 일 끝날 때 이미 담임 선생님 을 통해서 하나님 음성을 들은 것 같아요.
근데 어떡해요? 대장이 시키면 쫄병 따라가야죠.
옆에 있어 임마 그런데 어떻게 해요? 네 그래야죠.
그거는 이유가 없잖아요. 알았어요. 이러면서 애들 보고 그랬어요.
니네들 사랑이 뭔지 아냐
애들이 뭐라 그래요? 중등학교 2학년짜리 중이들은요.
이거 없어요. 이거 크린 아주 크린 브레인이에요.
걔네들한테 뭐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조금 이상한 분들이에요.
그게 크는 과정이에요. 근데 애들한테 사랑이 뭔 줄 아니까 애들이 톰과지에 나온 아기 고양이들처럼 이 그게 뭔데요?
러브 러브 막 이러고 이제 난리가 났어. 선생님 울고 있는데 근데 제가 그랬어요. 나 딴 건 모르는데 사랑하는 거 진짜 힘들거든. 진짜 무섭고 무거운 거거든.
근데 니들하고 하겠다 나 사랑하겠다 시작해보자.
그런데요. 그 아이들이 지금 38살이거든요. 제가 들어간 반 중에서 1개 반 치고 가 장 잘된 애들이 걔네들이에요.
그 어려운 동네에서 포항공대 팍팍 붙고요. 그리고 꼭 좋은 대학 안 가더라도 나름 대로 자기 사람 구실하고 있고 지금까지 저하고 연락하고 전 한 번 울었을 뿐인데 그게 그래서 그다음부터 느꼈어요.
그 아이들이 제가 만난 하나님이에요.
그리고 그 아이들 이야기를 책으로 썼어요. 책 쓸 때 그랬어요.
너무 불쌍한 아이들이 많고 공부를 잘해도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많으니까 상담 전 혀 모를 때예요.

내가 너희들 이야기를 글로 써서 그 책을 파면 인세가 나온대.
그리고 그 인세를 갖다가 공부하는 애들 장학금으로 돌릴 거야.
가장 약한 자를 들어서 가장 강한 자를 넘어뜨리는 하나님이 누군지 내가 너희들한 테 보여줄 거야.
한 14명 정도 대학 등록금이 계속 나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쓴 책으로 그리고 재미있는 것이 그때 첫 제자들이 그 모금에 동참도 하 고 있고요.
첫 혜택자이기도 했고요. 그다음 좀 부탁드릴게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중학교 1학년짜리인데 외소증에 걸렸어요. 키가 130 안 커요.
근데 아버지 연세가 78 그러면 이제 짐작이 가시죠 업덩이 업동이 동네에서 그냥
기르신 거예요.
할머니 안 계시고 아버님은 그 연세까지 개인택시 운전하시고 언제 어떻게 되실지 모르는 연세죠.
하시는 것도 신기해요. 94년도 이야기인데 근데 이 아버지가 이제 바쁘고 기원에 가서 맨날 바둑이나 드시고 약주 드시고 하니까 애를 키울 수가 없으니까 애 머리 맡에 돈 만 원짜리를 놓고 늘 나가시는 거예요.
근데 아시겠지만 돈 만 원이면요. 그 당시에는 꽤 많은 걸 할 수 있는 돈이에요. 그러니까 얘가 그걸 들고 있으니까 옆에 애들이 막 달라붙는 거예요.
그래서 막 나중에는 자기 밥값도 점심도 빵 사먹을 돈도 없을 정도로 다 뜯기는 거 예요.
노래방도 가고 오락실도 가고 돈이 없으면 애들이 안 놀아주고 돈 갖고 오라고 때 리고 그래서 이 아이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학교를 안 와서 이상해서 가정 방문을 해보니까
그 당시 한 30만 원쯤 30만 원이면 꽤 고급 PC인데요.
PC가 한 데 있더라고요. 컴퓨터가 이게 뭐냐 그랬더니 게임 중독에 걸린 거예요. 죽으라고 게임하고 있는 거예요. 아버지한테 이거 하나만 사주고 한 달치 돈 안 줘 도 된다 그랬대요.
아버지가 그걸 사주셨대요. 그러고 이제 학교도 안 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화나서 나와 그러고서는 삭제하시겠습니까?

얘 삭제하 얘 포맷을 어떻게 하는 거냐 막 애가 뒤에 있다가 뭐라고 하냐면 선생님 선생님이 삭제하셔도 저한테 CD 있어요.
r로 인마 내일 와서 내가 또 삭제하면 돼. 갈 때까지 가자고 그러다 보면 졸업하겠 지 뭐 이 농담을 했어요.
이 조그만 아이가요. 뒤에서 저를 껴안아요. 근데 뭘 하는 줄 아세요?
선생님도 졸업하면 저랑 헤어지시잖아요. 저희 아버지도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요. 그리고 친구들은 다 떠났어요. 그런데 게임 속의 사람들은 가면 언제나 기다려줘요. 선생님 고맙긴 한데요. 그만두세요 하면서 저를 껴안고 울어요.
중독은 말입니다. 중독은 일상생활 속에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어떤 일이 벌어졌 을 때 글로 갑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일상이 완전히 흐트러지지 않은 아이들은 중독이 아닙니다. 중독이 아니고 사인입니다. 사인 중독으로 갈 수 있다는 사인입니다.
퀴즈 문제 한번 내드릴까요? 수업시간에 자는 날 깨워야 됩니까?
말아야 됩니까? 너네들은 가만히 있어야지 가서 깨워 되게 웃긴 애들이요.
지들 수능 다 봤다고 애들 때려야 되고요. 애들 그러면 안 되고 요령이 필요한데요. 이래요 우리 네파 데시벨의 흥분도가 0에서 10까지 있다고 그러면 3시간씩 3일 연 속 게임하면 90에서 안 떨어져요.
학교와도요. 평상시에 5~67에서 왔다 갔다 하거든요.
기도하고 명상하면 2 자거나 죽으면 0이고요. 자거나 하면 0에서 1 왔다 갔다 하는 데 얘가 학교에 와서 계속 게임만 했던 애가 학교에 와서 자발적으로 눈 부릅뜨고 이렇게 쳐다보면요.
자기를 해치거나 남을 해치는 행동을 하게 돼 있어요.
지금 견디질 못해서 흥분 상태가 계속돼서 약간 재워줘야 돼요.
그래야 친구들 내신도 받침이 되죠. 어차피 걸로 성공 못할 것 같은데 친구 내신 받 쳐줘 친구 잘 되면 그 덕에 따라가고 그런 거 아니에요.
인생이 대신 한 15분쯤 지나면 슬슬 깨워도 주고 또 그걸 반복하면 이야기도 해주 고 그것도 안 되면 애정어린 벌점도 주고 편리성을 주는 게 아니고요.
자는 깨우면은 별 내용이 다 나오거든요. 자는 애 깨우면 입에서 이상한 얘기가 막 나와요.
그걸 선생님들은 자기한테 한 욕인 줄 알고 흥분해서 애하고 더 붙어요.
어른하고 아이가 싸우면 창피한 건 어른이에요. 한 걸음 뒤에서 지는 척하면서 상 황을 만들어주셔야 되는데 잘 안 되시죠?
그게 아이들은 잘 때는 좀 자야지요. 어쨌든 그 인터넷 중독 걸린 아이가 있었고요. 그래서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사는지 솔직히 모릅니다.
근데요. 죄송한데 저는
아무것도 못했는데요. 결국 학교 나오게 하고 2학년 올려보냈어요.
보냈는데 제가 도시락 싸주고 다 해서 보냈는데 그것 이외는 할 게 없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저 느꼈어요. 뭘 느꼈냐면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안 내려오시는지 사랑의 끝이 뭔 줄 아세요?
바라보는 사랑이에요. 오늘 수능 시험장에 대신 가서 시험 쳐주고 싶은 분들 계시 지 않았어요.
그렇죠 아이가 아가가 어릴 때 열로 시달리고 막 아플 때 내가 대신 아팠으면 하는 마음들 있잖아요.
너무 사랑하면 그 사람 대신 뭘 해주고 싶어요. 근데 해줄 수가 없이 가만히 바라봐 봐야 되는 거 얼마나 아프실까 모르겠어요.
못자국이 더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 하는 예수님이 그 생각 많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바라보는 사랑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그 꼬마 아이 를 작은 아이를 저한테 보내주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다음 또 하나 볼까요?
가사는 크게 신경 쓰지 마시고요. 정우승 님이 쓴 술 한 잔이라는 신인데 안치환 씨 가 노래로 불렀습니다.
저 두 줄이요.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는 그 두 줄이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 문학을 전공한 국어 선생이 들어가서 문제집 풀면은 인생에 대한 모 독이죠.
비 오는 날은 좀 젖어줘야죠. 빗방울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더 기울 이고 내 마음의 평화도 찾아보고 그래야죠.
그다음 날 시험하고 상관없어요. 어차피 못 보는데 뭘 그게 농담이고요.
그래서 그런 날 들어가서 이렇게 합니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두 줄만 바꿔서 한번 해보자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 재밌는 이야기 많이 나옵니다. 여친은 나에게 입술 한 번 주지 않았다 이런 말
도 나오고요.
엄마는 나에게 용돈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러면 옆에서 삥 뜯어 막 그러고 나오고 이 제 막 얘기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 최고의 싸움꾼이 있었어요.
키 197입니다. 그런데 되게 말랐어요. 생가치로의 행방 불명의 가오나시라고 아시 나요?
꼭 똑같았어요. 근데 얘가 뭐라고 하냐면 아버지는 나의 손 한 번 잡아주지 않았다 그래요.
짠하시죠 그래서 저도 가슴 짠 유아파도 메리 굿이었나 보다 굴인가 보다 이러면서 좋다.
아버지하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원하니까 아버지하고 손 잡았으면 좋겠다 이렇 게 제가 너스를 막 떨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교실이 격하게 먹먹해 있는 거예요. 아이들이요.
갑자기 눈 깜빡깜빡하면서 창 보고 있고요. 어떤 놈은 한숨을 팍 쉬고 있고요.
어떤 애는 책상을 주먹으로 툭툭 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막 헛소리하다가 이게 수습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야 회장 상황 설명 나 지금 왕따 기분 빨리 헬프미 했더니 회장이 씩 웃으면 서 일어나더니 참고로 저는 말씀드리면 대광고등학교 아이들은 저보고 맨날 선생 님 언제 철 드세요?

그래
그거 아세요? 선생님 수업 안 하고 막 있으면 애들이 공부하자고 악악대는 거 선생 님이 공부하면 애들이 안 해요.
그래서 그런데요. 회장애가 그러는 거예요. 선생님 제 이름이 영철이라면 영철이 아버지 두 달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영철아 너 진짜 아버지 돌아가신 게 슬픈가 보다 그랬더니 우리 영철이 가오나시가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그 인간 잘 돼졌어요.
그러고 순간적으로 멍했어요. 경건한 교실이잖아요.
대통령이 와도 수업을 나는 한다고 거짓말했던 선생님들이 있던 교실이잖아요. 거기서 수업시간에 일종의 수행 평가였거든요. 근데 거기서 나오는 이야기가 자기 아버지 잘 되셨대요.

근데 이 아들이 별로 모범생도 아니야. 학교에 일주일에 두 번 나와주는 그거 아세 요?
지각하고 조퇴하면 두 개가 하나로 되는 거 지각 세 번이면 결석 하루잖아요. 그래서 어떤 애가 아침에 지각을 해요. 1교시에 그래서 담임한테 저 왔습니다. 그러고 저 조퇴한다고 그래요. 왜 그러는지 아세요?
버스 카드 환승해야 되니까 돈 없다고 나 지금 집에 갈 수 없다고 없어 막 세상에 그렇습니다.
선생님들은 이렇게 맛있는 거 많이 사드려야 돼요.
근데 애가 그렇게 얘기해서 제가 가만히 봤어요. 그 아이를 그런데 그거 아세요? 그 큰 놈이 어떻게 보이냐면 비에 맞아서 떨고 있는 참새보다도 더 가련하게 보이 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영철아 부모는 하늘나라로 먼저 갈 때 자식이 좋은 사람들 과 함께 사는 모습 보고 하늘나라 가는 게 제일 행복하대.
다시 말해서 형제 간에 사이 좋게 지내고 좋은 친구 있고 이렇게 부부 간에 사이 좋 게 지내고 그런데 봐라.
니가 진짜 되졌을 정도로 못된 인간인 그 아버지의 죽음 덕분에 니가 슬퍼하니까 같이 슬퍼해지는 친구들이 있고 그리고 이 중에 몇몇은 니 평생 친구가 될 거니까 얼마나 좋으니 그 못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까지 너한테 이렇게 막 험한 소리 하 게 만든 그 아버지가 너한테 주시고 가신 선물인 것 같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제 그만 아버지 놓아드려라 이거 되게 웃겼어요.


이렇게 하면 낭만적인 것 같죠. 아이들 안 그래 속으면 안 돼요.
수업 안 해요 이런 헛소리 하는 놈도 있고 이 상황에서 근데 그 영철이가 그랬어요. 선생님 저 하고 싶은 거 해도 돼요. 울더군요. 걔 몸 안에 소가 한 17마리 들어가 있 는 줄 알았어요.
울어대는데요. 진짜 이게 무슨 고무풍선 있어 선전할 때는 그것처럼 막 몸 위로 우 는데요.
아버지 떠나는 작업하고 있는 거죠. 인생은요. 잘 헤어지는 게 중요하다고 저는 아 이들하고 늘 이야기합니다.
자식 때문에 많이 힘드시죠 엄마 아빠 때문에 속상하죠.

뭐 한다고 그랬더니 돈 안 된다고 딴 거 하라 그러시고 그런데 나와는 다른 생각과 다른 뜻을 가져서 서로 불편함이 만들어질 때 어른들은 그런 생각을 해 주셔야 됩 니다.
이제 이 아이와 내가 헤어질 때가 됐구나.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존중해 줄 때가 됐구나.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잘 헤어지는 거지 거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되셔야 되죠.
그래서 그 아이가 다 울고 나서 한마디만 더 하고 싶대요.
그래서 이제 그만 시켰으면 좋겠어요. 수업 시간도 있고 해서 빨리 끝날 수 있더니 빨리 끝날 수 있대요.
그래 더 해봐라 그랬더니 선생님을 아버지로 불러도 되네요.
근데요. 그게 학생들은 3년 지나면 땡이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맺어 평생 이걸 데리
고 살아야 되잖아요.
저 싫거든요. 일단 기록지 긴 것들에 대해서 염증이 있어 갖고 그래서 알았어.
내가 고민은 좀 해볼게. 근데 일단 불러봐라. 이번 시간에는 아빠라고 부르더군요. 아버지라고 안 부르고 그때 알았어요. 아빠라고 부르던 그때는 아버지하고 사이가 좋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제 아버지하고 이렇게 된 거죠.
그랬더니 아빠 안아주세요 그러는 거예요. 어떻게 안아줘야죠?
안아줬는데
저는 63이에요. 키가 걔는 1910 제 얼굴이 어디 묻혔겠어요?
힘은 또 오라지게 세갖고 확. 근데 이제 반 애들이 막 같이 나오고 햄버거라는 놀이 있어요.
위에 막 올라타는 거 그거 하고서 아버지가 됐으니 어떡해요 아들 책임져야 되잖아 요.
그래서 영철이 아버님에 대해서 여쭤보니까 한쪽 다리가 불편하신 분이었더군요. 그래서 너 물리치료학과 가라. 대학교 선생님 저 돈 없는 거 아시잖아요 입학금은 대줄게 내가 되는 게 아니고 동창분들 좋은 분들 많으니까 연결해 줄게 그다음은 니가 알아서 해라.
그래서 선생님 입학금만 대주세요. 지금 병원에 취직해서 잘 살아요.
제 다리는 될 거예요. 이제 그렇게 남는 장사합니다.
세상은 이렇게 박수를 받기가 이제 민망한 상황이 그다음 벌어질 텐데 다음 부탁드

리겠습니다.
선생을 오래 하다 보면 제가 좀 유별난 것 같긴 한데요. 드라마틱한 제자들을 많이 만납니다. 북한에 있는
탈북 학생도 한 서너 명 담임을 했고요. 북한에서 와서 제가 담임하고 다시 북한에 가 있어요.
이해 안 되시죠? 세상은 다 이해할 수 있어요. 방법 많아요.
그 말씀은 여기서까지 다 드리기는 그렇고요. 그다음에 혹시 남보라라고 아시나요? 헤르프문달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쭉 나오는 얼마 전에 상호에서 예쁜 여동생으로 나왔던 남보라 씨의 오빠가 있어요.
오빠 거기가 왜 신동엽 씨 일요일을 방해서 천사들이 합창해서 12명 아이 키우는 집 나왔던 그 오빠를 제가 또 담임하는 바람에 언론에 집중 포화를 받았고요.
맨날 왔어요. 난 모라 씨 때문에 그다음에 아까 목사님과도 한참 이야기 나왔는데 우리 강의석이라는 친구를 제가 담임했거든요.
누군지는 나중에 생각하시고요. 그 덕분에 기자분들하고 매일 인터뷰 해드렸고요. 방송 체질인가 봐요. 그런데 이런 일이 있었어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막 건너올 때였는데 뇌성마비 3급 아이를 담임을 맡기게 됐어요.
상관없죠. 그거야 뭐
애들 담임해 보면 아시겠지만 다 비슷비슷해요. 몸 불편한 애하고요.
정상적인 애하고 제가 보기에 행동하는 거 똑같아요.
저게 사람인가 저게 그러면서 이제 아이들도 그러고 왜 그러세요?
그러고 같이 노는데요. 그 아이는 중3 담임을 맡았는데 중2 때도 잘 알던 아주 좋은 친구입니다.
머리도 좋고요. 뇌성마비지만 공부 잘했어요. 반에서 한 7등 잘했죠.
근데 걔네 형을 제가 가르쳤는데 형이 2월달에 예비 소집하는 데 왔어요.
그래서 웬일이냐 그랬더니 걔도 영철이라고 할게요.
선생님 영철이가 3학년에 못 올라가는데 어떻게 해야 되죠?
그래서 왜 왜 그랬더니 동네에서 가다가 그냥 길 가다가 그냥 넘어졌는데 온몸에 마비가 오더니 고대 병원에 실려갔는데 지금 현재 뇌사 상태래요.
갑자기 멍해진 거예요. 쟤가 근데 병원에 면회가 안 돼요.

어머니 아버지는 나중에 오시고 해서 일단 이제
기다려 보겠다고 나을지 모르니까 기다려보겠다고 했는데 그리고 이제 대광중고등 학교는 학급 아침에 경건회라는 걸 해요.
큐티 비슷하게 하거든요. 근데 그걸 하는데 제가 그랬어요.
다 친구들이니까 야 영철이가 이렇대 그러니까 너네들 오늘부터는 그냥 기도만 하 자 우리 다 생략하고 그 아이를 위해서 그래서 쭉 릴레이 기도를 했어요. 살려주세요 이러면서 5월 중순쯤 되면요 될 때까지 애가 살아날 기미가 안 보였어 요.
아버지가 큰 건물을 2개 갖고 계셨는데 한 건물이 날아갔어요.
치료비로. 근데 아시겠지만 출석 일수가 모자르면은 유급이 되거든요.
즉 퇴학이 된다고요. 퇴학 그래서 빨리 자퇴를 시켜야 돼요.
그래 다시 복학이 되는 거예요. 자택 원서를 들고 그 아버지한테 갔는데 아버지가 도장을 못 찍으세요.
왜냐면 이거 찍는 순간 우리 아이는 끝났다는 생각이 드실 거 아니겠어요?
제가 뺏어가고 제가 찍었어요. 찍고서 갈게요. 그러고 와서 3일간 학교를 제가 결근 했어요.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리고 애들 보고 그랬어요. 견곤했때 기도하지 마.
내가 보니까 제가 가서 봤거든요. 온몸에 주사바늘 꽂혀 있고 막 사람 못 알아보고 심장은 뛰는데 사랑할 가망 없어 그냥 너희들 거 찾아 먹어.
나 위해서 기도하지 마. 그랬더니 아이들이 선생님 저희 친구인데요.
그냥 그럼 나 아침에 못 들어오겠다. 니들끼리 해 끝나면 회장님 와서 나 불르러 와 전달 사항 해야 되니까.
그래서 두 달 동안 아침 조회를 안 들어갔어요. 쪽지만 적어서 주고 그런데요. 계약을 했는데 우리 반 애가 오더니 선생님 영철이 집에서 지금 밥 먹어요.
뭐 무슨 말이야 그랬더니 추석 전 일주일 전인가 그때 퇴원했대요.
근데요. 그 아이 영철이네 집에 전화를 거는데 그때 제 심정 아세요?
죽었어요. 살았어요. 전화를 걸어야 되잖아요.
만약에 영철이가 만에 하나라도 죽었으면 담임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엄마 또 이렇 게 힘들게 만드는 거야.

그래도 그냥 저 어머니 저 문경본데요 하니까 어머님이
선생님 안녕하세요 했는데 목소리가 아주 아주 맑으세요.
근데 옆에서 아 소리가 막 들려요. 저거 뭐예요? 이랬더니 영철이가 화장실에서 휴 지 달라고요.
어머니 똥도 싸요. 예. 밥도 먹고요. 예 막 뛰어다녀요.
그럼 연락을 좀 하시지 어머니 그랬더니 아니 그래도 경과를 좀 지켜봐야 되니까 그러셨대요.
학교에 왔어요. 정말 반갑죠. 그리고 그다음에 제가 우리 반으로 달라고 그랬어요. 내 자식이니까 내가 품고 가겠다. 뇌성마비 애가 한 명 학교 반에 들어오면 나머지 애들이 피해 많이 보는 거 아시죠?
그때 그 아이들이 하나님입니다. 저 혼자였으면은 영철이 케어 못했어요.
옆에 짝꿍이 돌봐주고 얘가 왜냐하면 퇴행 현상을 일으키기 시작했어요.
수학을 엄청나게 잘하는 아이였는데 사적 연산도 몰라요.
나중에 자꾸 질문해 나머지들 수업에 방해받잖아요.
괜찮니 그랬더니 괜찮아요. 복습되고 좋아요. 애들이 그래요.
진짜 천사들이었어요.
소풍 가면요. 88열차만 타겠대요. 영철이가 자기 몸 못 가누는데 근데 안전바로 안 내려 그거 아세요?
그때 그 옆자리에 앉은 내 마음 이거는 사람이 몸이 불편하거나 마음이 불편해서 서로 도와준다는 게 쉬운 일 아닌 거 아시잖아요.
그거 진짜 진짜 사랑 없으면 못해요. 근데 어찌어찌 하여 졸업은 했어요 했죠.
근데 사람 욕심이 부모 욕심이라는 게 그래서 아이를 좋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보내 고 싶으신 거예요.
근데 성적이 좀 안 되거든요. 그래서 경기도 지역에 있는 옛날에 10시에 수업을 하 는 야간 학교들이 있었어요.
인문개혁 거기를 갔어요. 근데 제가 그리고 저는 고등학교 올라왔는데요.
문제는 얘가 아침에 한 7시 반 되면 고등학교 제 책상 옆에 와서 앉아 있는 거예요. 그리고 9시쯤 되면 안녕히 계세요 하고 학교 등교하는 거예요.
한 달 동안 반복하는 거예요.

세상 잘 헤어지는 것 있잖아요. 세상에 나가서 잘 적응해야지 저하고 완전하게 살 순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만 오라고 그랬어요. 말 안 듣죠. 왜요?
이러죠 할 수 없이 결론적으로는 교문까지 제가 강제로 끌고 나가고 출석부로 머리 통을 몇 대 때리고 다시 오지 마 하고 막 정 뛰느라고 저는 그게 맞는 일인 줄 알았 어요.
올바른 일인 줄 알았어요.
걔가 아파트 7층에 살았는데요. 일주일 후에 떨어져서 죽었어요.
있죠 나쁜 놈이 저 세상의 윤리와 잣대로 한 영혼의 소중한 마음을 몰라보고 교육 한다는 미명 하에 내가 귀찮으니까 학교를 몰아낸 학교 밖으로 몰아낸 애예요. 걔가 오다 오다 지치면 자기가 알아서 갈 텐데 뭐 그리 잘 가르치려고 너무 힘들었 어요.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더 힘들어할 정도로 저희 아내가 더 힘들어할 정도로 너무너 무 힘들어하니까 나들목 교회라고 있어요.
그 교회가 대광고등학교 안에 있는데요. 거기에 하늘 연어라는 극단을 하는 젊은이 들이 있어요.
저하고 비슷했던 나이에 연극 패거리들인데 물질은 없으니까 재능의 십일조를 바 치는 그 대표되는 분이 김수영이라는 연출하시는 분인데 친구인데 그분이 선생님 너무 오래 영철이를 품고 계시네요.
우리 연극을 통해서 좀 풀어봅시다. 그래서 그분 저도 이제 시나리오 작가거든요. 그래서 같이 둘이 만들어서 세미 뮤지컬 나무야 바람이 불면이랑 뮤지컬을 만들어 서
한 1년간 공연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거기서 그 아이가 했던 독백이라고 하면 서 김수영 씨가 썼던 것.
선생님 저 여기서 잘 살고 있으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그랬어요. 저는 자꾸요. 애들 세상의 규칙하고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거요. 부모가 안 해도요. 학교나 사회나 여기저기서 애들을 사방에서 당해요. 쟤네들이요. 지긋지긋할 정도로 당해요. 증거대 볼까요?
아침에 안 좋은 일이 있어요. 근데 7시 반까지 학교는 가야 돼요.
학교 갔어요. 마음 놓고 울 장소 있나요? 학교에 펑펑 울고 선생님 저 너무 힘들어

요.
할 장소가 있냐고요. 고3이에요. 모의고사 너무 중요한 모의고사를 했는데 그 전날 아버지가 약주 드시고 와서 집에서 행패를 부리는 거예요.
깨고 나면 미안하다고 그러시지만 그 아이가 그다음 날 모의고사 망쳤을 때 걔가 망친 건 모의고사가 아니고 인생이에요.
근데 자꾸 점수 이야기하고 해야죠. 이 악물고 하긴 해야 되는데 그래도 단 한 사람 쯤은 모든 것 다 없이 받아주는 그게 주님 아닌가요?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좋아하는 거 아닌가요? 다음 부탁드릴게요.
친구란 영화에서 한 컷 딴 거고요. 제가 그래서 막 힘들어하니까 3일간 밥도 안 먹 고 잠도 안 자고 교회 기도실에서 뒹굴면서 기도를 했어요.
근데 하나님 이 양반이 도대체 응답이 없는 거예요.
그분 하여튼 침묵엔 대가 아니에요. 부르짖어도 이게 응답이 없으시네 이게 그러다 제가 병원에 실려갔어요.
대광고등학교가 목회자를 많이 키우는 학교입니다.
제 친구에서 목사님들이 많은데 제일 친한 목사님이 딱 오더니 거기 왜 자 빠져 있 어?
이제 그래요. 제가 그랬어요. 김 목사님 왜 하나님 없지?
하나님이 계시면 내가 3일간 목숨을 바쳐가면서 절교하면서 기도했는데 왜 응답이 없으신 거야?
그건 가라지 그랬더니 그러면 문 선생 당신 3일 내내 막 소리 질렀어.
목이 쉬었거든요. 그래 그러니까
아니 하나님이 말할 틈을 줘야지. 자기 혼자 떠들어놓고 듣지도 않고 대답 없다 그 러면 어떡해 했더니 지금 장난해 그랬어요.
머리털까지 세시고 무서무지하신 분이 그걸 모르죠.
제가 그렇게 되드니까 그 친구가 저보고 그러더군요.
문 선생 많이 힘들었나 보네. 근데 그 말이 울컥하더라고요. 너 많이 힘들었구나. 너 많이 힘들었구나.
그 목사님이 친구가 저한테는 하나님입니다. 다 필요 없고요.
그냥 힘들었단 말씀 하나만 줘도 저는 이겨내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요.

친구는 그래서 좋은 겁니다. 그 목사님 제가 이제 48인데요.
그 목사님하고 저하고 만나서 요즘 저희 맨날 하는 얘기가 뭔 줄 알아요?
뭔지 아세요? 우리 다음에 커서 뭐 될까 그거 얼마나 예쁜 말인 줄 아세요?
저희 둘이 가 유언으로 삼기로 했어요. 유언 죽는 그날에 유언하시죠 그러면 글쎄 요.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될까 죽음 이후의 세계도 우리는 예쁠 것 같아요.
확신이 있어요. 그건요. 그렇긴 한데 그다음 보여주세요.
그러다 보니 어떤 일이 벌어졌냐면 아주 값진 선물이 주어졌어요.
저희 아버지가 계속 저를 버리고 집안을 비운 상태였기 때문에 제가 많이 힘들었다 고 그랬잖아요.
그리고 그래서 불쌍한 아이들하고 이 마음으로 만났다고 그랬잖아요.
근데 그 모든 과정이 지나니까 저희 아버지가 월남전에 참전하셨었거든요.
저 내년에 베트남 갑니다.
저희 아버지가 십자성 부대랑 헌병부대에 계셨는데 십자성 부대가 활동했던 그 자 리에 탐방 갑니다.
우리 아버지 만나고 싶어서 23살 난 젊은 청년이 저희 아버지하고 저하고 21살 차 이고요.
저희 어머니하고 저하고 18살 차이예요. 그러니까 저를 뱃속에 만들어놓고 군대 갔 다 월남장 가신 거예요.
23살 난 그 청년이 자기 자식과 늙으신 부모님이 있는 고향을 바라보면서 그 밀림 지대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 더운 나라에서 그 젊은이는 얼마나 추웠을까요?
혼자 있는 것 같아서 그 아버지 안아드리고 싶어서 베트남 갑니다.
많이 힘들고 나면요. 그 선물은 주변에 있는 것들을 갖다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그다음 부탁드릴게요. 저고요.
옆에 계신 분이 저희 어머님입니다. 국화방이란 말이 있죠 우리 만일 제주도 난방 형법 부인할 수 없는 저는 저희 어머님이 편찮으시면 15년 후에 제 몸이 아픕니다.
그대로 어머니 몸 물려받았습니다. 딱 하나 안 주셨습니다. 고혈압 제가 심근경색 간암 위암입니다.

근데 우리 어머니는 저에게 너무나 당당하세요. 제가 학교 선생님 그만두고 6개월 지나서 교육부 장관상을 받았어요.
애들 상담 잘한다고 이제 격려 차원에서 주신 건데 어머니한테 자랑을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엄마 나 교육부 장관상 받았어 그랬더니 우리 어머님이 뭐라고 하시냐면 야 주는 자리에 있어도 지금 시원치 않은데 받았다고 좋아해 전화 끊어 그러세요 정말 엄마 들의 욕심 도대체 언제까지 그게 참 근데 너무나 당당하신데 가난한 집안에서 아픈 몸까지 물려주셨는데 너무 저한테 함부로 대하셨어요.
따라서 저는 40살까지 마음속으로 어머니가 이 세상에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루에 12번 더 돌렸어요.
근데 그거 아세요? 제가 받은 가장 많은 상이 효행상이라는 거 반동형성이라는 겁 니다.
이상한 사람들 있잖아요. 씨 엄마가 우리 친정엄마보다 좋아해요. 헛소리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때 반동 형상이죠.
근데요. 심근경색으로 진짜 탁 쓰러지고 왔는데 시술을 다 하고 치료 다 하고 이렇 게 왔어요.
왔는데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어요. 처음이에요.
저한테 직접 전화 먼저 하신 건 미안하다. 좋은 건 못 주고 불편한 것만 물려줘서 정말 미안하다.
봄눈 녹듯이 한 방에 다 나가더군요. 그게 40년 동안 쌓여 있던 게 그래서 됐어요. 엄마 왜 그래 그러면서 끊었어요. 제가 전화 먼저 끊은 것도 40년 만에 처음이에요. 끊었어요. 근데 그거 아세요? 그러고 나니까 갑자기 열이 확 올라오는 거예요. 어머니하고 화해는 됐는데 40년간 엄마한테 시달렸던 내 속에 어린아이 있잖아요. 눈칫밥 먹고 살 것 같은 불안했던 어린아이 시험 잘 보면 더 잘 봐야 되지 않냐고 막 힘들었던 아이 그 아이는 누구한테 가서 그 화를 풀죠?
밀양에서 전도연 씨가 왜 그 용서한다니까 그분이 다 용서하셨다고 그래버리니까 화가 난 거 그 심정이 뭔지 알겠더라고요.
근데 그러고서 일주일 후에 저희 아버지 추도 예배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추도 예배 마치고 영정사진을 이렇게 보다가 제가 그랬어요.
아빠 엄마랑 사이가 좋잖아. 아빠하고 그러니까 내가 맨날 추도 예배 드릴 때마다

아빠 빨리 데려가면 안 될까 그랬잖아 실제 그랬거든요.
경건하게 추도 예배드리면서 아버지 빨리 데려갔어요.
막 이랬거든요. 근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나 엄마한테 쌓인 거 많다 많으니까 앞 으로 한 40년은 더 풀고 아버지한테 가시라고 할게.
엄마 40년만 더 살게 해주라. 나랑 이제 진짜 엄마가 어떤 분인지 알 것 같은데 벌 써 돌아가시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오래 사실 것 같아요. 제가 그랬어요.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15년 후에 내가 죽겠다 고 그럼 100살까지 살아야지 뭐 그러시더라고요.
아 그랬습니다. 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요. 그다음 부탁드릴게요.
제 몸은 계속 안 좋아졌습니다. 저분이 누구시냐면 고려대학교 한성열 교수님이십 니다.
저분이 이제 모교 선배이기도 하고 제 책의 애독자이기도 하시는데 저분이 문 선생 너 그렇게 살다가 죽는다 와서 마음 공부해라.
그래서 고려대학교 상담심리 교육학과를 제가 들어가게 됐습니다.
저분은 저의 또 다른 아버님이십니다. 그리고 저분 덕분에 제가 지금 이렇게 된 겁 니다.
제가 아팠기 때문에 저렇게 좋은 분을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아픔이 나에게 준 가장 빛나는 어른이십니다. 아버님이 이제 한승우 목사님이라고 우리나라 목회 상담의 대부시거든요.
얼마 전에 소천하셨는데 선생님이 들어와라 그랬는데 그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졌 냐면요.
그다음 부탁드릴게요. 2011년 재작년 4월에 한 교실에서 제가 세 번 쓰러집니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그때 이제 심근경색 그거 이제 이렇게 했거든요.
병원에 가서 시술 다 받고 학교로 다시 돌아오니까 제가 일주일 만에 돌아와 버렸 는데 사실은 보름 정도 쉬어줘야 되는데 일주일 만에 왔습니다.
제가 수업을 하다가 쓰러졌던 같은 반에서 세 번 쓰러졌는데 그 친구들이 그 친구 들이 다 운동장으로 나와서 수업 거부를 했습니다.
우리를 나쁜 새끼로 만들지 마라 이게 현수막 제목입니다.
문경보 선생님은 학교를 나가라 회장 아이가 저보고 직접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선생님 좋은 선생님인 거 아닐까요? 저희들 나쁜 제자 만들지 마세요.

그리고 우리 고3이잖아요. 아픈 선생님한테 수업받기 싫어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그 회장 아이는 작년에 재작년이군요.
동국대 국문과를 들어갔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제가 거기 나왔는데 제가 그 아이의 롤모델입니다.
저를 전교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이입니다. 제 아들이라고 애들이 막 했던 정도 비 슷하게 생겼습니다.
둘이서 동그랑땡 둘이서 그 아이가 그러니까 선생님 수업 안 받을래요?
학교 나가세요? 제발 되게 예뻤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제 마음 건강 걱정해줘서
그래서 제가 이제 거래를 했습니다. 그래도 한 학기는 맞혀야 되지 않겠니? 그런 각서를 쓰래요. 1학기 마칠 때까지 안 아픈다고 썼죠.
그리고 이 양 물고 안 아팠습니다. 집에서 쓰러지고 학교에서는 안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나왔는데요. 명예 퇴임식 하는 날 다 끝나고 나오는데 그 인조 잔디 구장이 있잖아요.
학교마다 여름이었는데 아이들이 하복을 입었는데 3학년 4반 그 아이들이 다 큰절 하고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
제가 다 지나갈 때까지 인조잔디 공장에 하얀 옷 입고 광해라는 영화를 보면 차라 리 저희를 밟고 지나가시옵소서 하니까 진짜 이렇게 이병헌 씨가 밟고 지나가잖아 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장면이었는데 저는 슬펐습니다.
그때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생각나서 성균관 유생들의 도포자락 색깔과 우리 아이 들의 하복 색깔이 너무나 닮고 상황이 비슷해서 그래도 아이들한테 큰절 받고 학교 나왔고요.
건강은 많이 유지됐습니다. 예 좀 정리를 할게요.
그다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딱 나왔을 때 의사가 그때 나오는 그 시점에서 그러거든요.
그러더군요. 3개월 남았습니다. 2011년 8월 31일 날 이죠.
아무 생각도 안 들어요. 그래서 아무 얘기도 안 하고 배낭 둘러매고 지리산하고 제 주도를 걸었습니다.
친척들한테도 이야기 안 하고 제주도 가서 그냥 올레길 한라산 막 걸었습니다.

그때 어느 여관에서 만난 할머니한테 제 신세 타령을 하니까 막 우시더니 아침 떠 날 때 제주도에 빙턱이라고 있거든요.
이만큼 떡하고 생수를 주시면서 이 말씀을 하시더군요.
던져버리려고 하면 할수록 덤벼드는 게 인생입니다.
힘든 일도 그냥 껴안고 가다 보면 다 친구가 됩니다.
버리려고 하지 마시고 그냥 친구하면서 가세요. 하지만 끼니는 거리지 마세요. 제주도 말로 하셨는데 이렇게 서울말로 번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데껴보려고 하면 대표값으로 덤벼드는 게 인생이 워낙에 광어지 말고에 자연 모루 카지 양 이게 제주도 말입니다.
그래도 그냥 좋으신 어른 덕담을 알고 그냥 갔어요.
갔다가 가다가 가다가 마지막 코스가 그다음 보여주시겠어요?
제주도에 가파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청보리로 유명한 저 길을 갔더니 가파도 분교 가 있더군요.
거기서 초등학교 수업 끝나는 종소리가 딱 울리는데 이 차인 벨 소리가 대광고등학 교 차인 벨 소리와 같은 거예요.
청보리 밭에 들어와서 2시간 동안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러고 나서 툴툴 털면서 그 할머니 음성이 생각나는 거예요.
그냥 안고 가세요. 오케이 주님 그러면 할머니를 통해서 말씀하셨으니 한 달 남았 는데 이 한 달 동안은 내게 뭘 하면 좋을지 응답해 주세요 하고 거기서 무릎 꿇고 앉아 기도했습니다.
이상한 응답이 내려왔습니다. 니 두 딸이 세상을 미워하게 하지 말라.
내 두 딸이 세상을 미워하게 하지 말라 알았어요. 첫 번째는 경제적인 거예요.
경제적으로 힘들면 안 되고 두 번째는 그래도 아빠가 열심히 살았다는 걸 보여줘야 되는 거예요.
막판에 휘둘리지 말고 그래서 서울 올라가서 한 달 동안 한번 궁리를 해봐야지 그 랬습니다.
그런데요. 다음 부탁드릴게요. 외로워서 그랬어라는 책이 나오는데 이게 와보니까 대박이 터져 있더군요.
두 달 동안에 저희 식구가 1년 반 동안 먹고 잘 생활비가 마련돼 있더군요.
인세로 근데 저건 애들 이야기예요. 우리 아이들이 나를 먹고 살게 해주고 내 딸들

은 먹고 살게 해주는 거예요.
너무 기분이 좋은 거예요. 그러고서는 곧바로 17개의 강의 요청이 들어와 있더군요. 강의를 하고 막 떠들고 나서 이제 한 보름쯤 남겨놓고 얼마나 초조하겠어요? 병원에 갔더니 의사 하는 말이 3년쯤 사시겠는데요.
그러는 거예요 뭐예요? 이게 뭐예요? 그랬더니 그걸 저도 논문으로 쓰고 싶어요. 그러
그 의사가 제 주치의가 고등학교 동창 놈입니다. 그 아이가 제가 병원에 7개 다니 거든요.
7개 그걸 다 모니터링해서 정리를 해서 저한테 얘기를 해줘요.
작년 미리 박수 받으니까 좀 죄송하긴 한데 작년 12월에 마지막 검진을 했는데 앞 으로 10년을 더 산대요.
그래서 그래서 그건 또 무슨 말이냐 그랬더니 친구니까요.
골고루 80 잘 관리하면 제가 어떻게 골고루 80을 살 수 있었을까요?
이런 친구들 덕분입니다. 제가 퇴임식 때 그 얘기했습니다.
대광이 그 당시에 개교 65주년이었는데요. 개교 100주년 때 우리 다 만납시다 그랬 어요.
제가 3개월밖에 못 산다는 건 전교생이 다 알고 있었어요.
개교 100주년 때 우리 건강하게 다 만납시다. 그땐 내가 정심 쏠게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다 기립박수 쳐주시면서 쳐주면서 그런 편지를 계속 보냈더군 요.
선생님 기도할게요. 졸업생들은 기도 안 했겠어요 기도는 힘이 있어요.
죽은 사람 살려요. 저는 많이 봤습. 이제 제 이야기를 정리를 하겠습니다.
청소년 문제에 대해서 이런저런 좀 필요한 말씀들을 드려야 됨에도 불구하고 제가 살아온 나날들을 말씀을 드렸어요.
청소년들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버티면 예쁜 게 보여요.
기다리면 한걸음 물러서면 빛나는 것들이 보여요.
그게 뭐냐 하면 자기 자신이에요. 그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기 자신들 부모님들은 어른들은 교사들은 앞선 자들은 그들에게 거울이 돼줬으면 좋겠어요. 백설공주에 나온 거울처럼 잘난 척 대하다가 이상한 일 만들지 말고요.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웃으면 웃는 대로 울면 우는 대로 먼지 묻어서 힘들어서 왔

어 그러면서 그대로 비춰주는 그러면 그때 그 거울이 자기를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 에 고마워하는 우리 친구들이 거울에 낀 먼지를 잘 닦아낼 겁니다.
더 잘 보고 싶은 것이 부모님을 잘 모시는 게 자기를 더 잘 보는 거니까 그래서 자 원의 부모님을 경외하는 게 오래 사는 거의 근본이라는 말씀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잘 살기 위해서 부모님을 잘 모시는 거죠. 기다려 주시고 바라봐 주시고 그렇 게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기도하고 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지금 이 자리에 우리들 의 숨결마다 온몸마다 임하시고 안수하시고 함께 우시고 껴안아주시고 함께 웃어 주시는 아직은 우리가 눈으로도 보지 못하는 그 세상을 만들어놓고 우리를 기다리 시는 주님 감사드립니다.
오늘 만남을 통해서 저의 많은 것들을 말씀을 드렸고 제가 드린 말씀들이 많은 분 들의 가슴에 씨앗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 씨앗이 엄청난 숲을 이루고 그 숲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평화와 안식을 얻기를 주님 함께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 수능을 마친 친구들, 청소년들, 이 자리에 있는 친구들, 이 자리 밖에 있는 친 구들은 모두 그들의 미래에 그들의 앞날에 그들의 마음에 주님 함께 늘 그러셨던 것처럼 함께 걸어가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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