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진간사 2024다니엘기도회 12일차

1. 은혜의 찬양
1-1.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 기도하며 주님을 찬양하는 시간을 갖기를 희망함
- 미국 달라스의 세미안교회에서의 천사다니엘 기도 찬양회에서 만난 기도 제목을 소개함
- 제목이 '다니엘 기도'임을 밝히며, 다니엘 기도의 가사 안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묵상하도록 권유함
- 기도 제목을 통해 참석자들과 함께 찬양과 이야기를 나누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함을 밝힘
- 참석자 김윤진 전도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함
1-2. 미국 이사 후의 천사다니엘 기도
- 2020년 달라스 이사 후 미국으로 이사 갔음을 밝힘
- 이사 전 서울에서 10년간 예배 인도자로 사역했음을 밝힘
- 출산했던 딸이 셋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네'라는 아이가 있었음을 언급함
- 출산 과정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고민, 결정 등 아이를 책임질 수 있을까 고민하던 상황을 설명함
- (중요) 미애 엄마, 전도사님, 김윤진 전도사의 조언으로 아이를 인도할 수 있었다고 밝힘
1-3. 모태 신앙인으로서의 삶
-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사소한 일로 다투고 우정이 깨진 경험을 공유함
- 친구와의 우정이 사라진 후, 브릿지가 삼
- 동생이 찾아와서 자신의 브릿지에 대해 얘기하던 중, 친구와의 우정이 다시 회복되었음을 밝힘
- 동생이 이끄는 함께 믿음의 공동체에 들어와 함께 신앙생활을 함
- 사모나오는 집 안에서의 여러 가지 고민과 결정들을 회상하며, 이 모든 고민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했다고 밝힘
2. 학창시절과 꿈
2-1. 학창시절의 어려움과 희망
- 초등학교 때는 아이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고 사람과 멀어짐
- 결국, 학교에서 왕따가 되어 다른 학생들에게 외면당하는 느낌을 얻음
- 이로 인해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로운 시간을 보냄
- 교실에서 학생들 사이에서 물건을 빼앗거나 욕을 하면서 고생함
- (중요) 하지만, 힘들 때마다 주님을 의지하고 꿈을 키우며 버티는 삶을 살아감
2-2. 중학교 시절의 괴롭힘
-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동네 초등학교와 모여 입학했고 왕따가 됨
- 더는 희망이 없고 괴롭힘과 폭언, 폭행이 심해짐
- 점심시간에 피난처로 온 도중, 학생들끼리 싸움을 하고 다닥다닥 붙잡아둠
- 선생님께서 지나가셨을 때만 참아내고, 그렇지 않으면 피난처로 도망침
- (중요) 점심시간 후, 수업 시작까지 10분도 남지 않았고, 학생들이 다닥다닥 붙잡아둠
2-3. 가난한 가정과 교회에 대한 믿음
- 가난한 집에서 엄마와 딸을 뒤로하고 아버지께서 집을 나가셨음
- 집을 나간 아버지의 뒤를 잃고 더욱더 힘들어짐
- 학업을 하면서도 어려움에 시달리고,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으려 노력함
- 주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움과 사랑을 믿으며 삶을 버티고 성장함
- 고등학생이 되자,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함
3. 학교 폐기와 심리적 변화
3-1. 학교 생활과 초기 상황
- 입학 후에는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않아 놀람을 느낌
- (중요) 학교에서 친구를 만나면서 그에게 막 붙인 별명에 대해 웃음
- 학교 폐기 후, 교회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낌
- 주일 예배 시간에 교회로 가기 위해 친구들과 먼저 친해짐
3-2. 교회에 대한 애정과 고민
- (중요) 교회로 가기 위해 친구들과 먼저 친해짐
- 초기에는 주일 예배 시간에만 만나는 것이 고민이 됨
- 친구들과 더 친해지기 위해 교회에 데려가려고 고민함
- 교회에 데려가기 위해 친구들을 기다리는 것이 너무 힘들어짐
3-3. 생활 변화와 분노
- (중요) 강도 높은 엄마의 노동과 비인격적인 태도에 분노함
- 하나님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상처와 분노가 더욱 커짐
- 학교를 졸업하고, 엄마와 함께 가사도우미로 일하려고 함
- 집에서 생활하며 집안일이 점점 힘들어짐
- 자신이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에 분노하고, 사람들을 원망함
4. 내적 변화와 천사의 도움
4-1. 아침 풍경과 회개
- 버스 정류장에서 일상적인 아침 풍경을 달리 보고 슬퍼함
- (중요) 예레미야 말씀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을 버린 것을 회개하고 슬퍼함
- 행복하지 않았던 생활과 감사하지 못했던 마음을 반성함
- 슬퍼하면서도 이상한 일을 해도 행복해지기를 원함
- 아무리 행복해도 잠시 후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표현함
4-2. 자살 시도와 신앙의 회복
-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고 밝힘
- 그 결정적인 순간이 자신의 신앙을 깨닫게 해준다고 말함
-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위해 죽음을 선택하겠다고 다짐함
- 전도사의 도움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함
- (중요) 자신의 연약함과 죄책감에 대한 용서를 얻어 새로운 삶을 시작함
4-3. 변화와 새로운 인생
- 전도사의 도움으로 용서를 얻어 새로운 삶을 시작함
- 자신의 열정적인 예배 인도 사역을 시작하고, 기독교회 모교회에서 콜링함
- 기독교회 모교회의 소개로 더욱 큰 병원을 찾게 됨
- (중요) 자신의 근육 경련 장애의 일종인 연축성 발성 장애에 대한 정밀 검사를 받음
- 전성적인 회복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함
5. 고난의 기쁨
5-1. 고난과 성대
- 성대는 작은 근육들로 움직이는 기관임
- 뇌의 잘못된 신경 신호로 인해 성대에 문제가 생김
- 작은 근육들이 경련을 일으켜 목소리가 허스키해지고, 음이 잘 나지 않게 됨
- 진행이 심화되면 언어 소통이 불가능해짐
- 치료를 시작하더라도 완치는 불가하며, 치료를 통해 경련을 일으키는 근육을 주사하여 없애야 함
5-2. 마음의 변화
- 초기엔 설거지나 갈아입다가 막 울기도 하고, 제 마음에 찬양을 주시겠다는 기도를 드렸음
-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안 좋아지는 게 나와서, 예배를 드리러 갔더니 사람들이 열심히 예배하고, 나만 예배가 안 드려지고,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해짐을 깨달음
- (중요) 이를 통해 하나님이 삶의 예배, 즉 찬양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에게 초청해 주시는 계기를 갖게 하셨음을 깨달음
- 불안함과 시간이 지나면서 예배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고, 하나님이 선하시고, 선하신 주님이 내 목자 되심을 고백하게 됨
5-3. 소망과 감사
- 예술을 믿지 않아도 고난은 유한한 시간을 사는 인생의 계절이나 날씨와 같음
- 하나님이 선하시고, 하나님이 내 목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은 소망임
- 하나님이 삶의 갈피와 추억을 사진첩에 붙여주셨고, 그걸 지켜본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싶음
- 삶의 문제와 고민 속에서도 주님을 의뢰하고,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고백을 함
- 어려움과 아픔을 통해 오직 주님만을 의뢰하겠다는 고백을 함
이하 간증전문
이 행복한 밤에 우리 함께 기도하며 또 주님을 찬양할 수 있음이 제 삶에 또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과 은혜인 줄 믿습니다. 오늘 이봐 함께 찬양을 먼저 나누면서 여러분과 제 삶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눌 텐데요. 잘 모르시는 곡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사 안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와 그 사랑을 함께 묵상하며 찬양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영호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다음은 네 안녕하세요. 네 아무도 안 계시네요. 안녕하세요. 네, 네, 반갑습니다. 네 저는 미국 달라스에 있는 세미안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윤진 전도사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네 제가 기억으로 2020년 때 처음으로 이 다니엘 기도에 찬양을 이렇게 섬기게 됐었는데요. 그때 이후로 이제 매년 거의 섬겼던 것 같은데요. 어 제가 갑자기 미국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아 이 은혜 다니엘 기도에는 이제 앞으로 함께하기가 좀 어렵겠구나 했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저를 또 오늘 간증자로 세워주셔 가지고 올해도 어김없이 은혜의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고 큰 영광입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과 함께했던 제 삶의 그 소소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면서요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희 가정이 지난 8월에 이제 미국으로 이사를 갔는데요. 이제 미국에서의 삶을 시작한 지 오늘로 91일째입니다. 그 전에는 서울에 있는 신정동의 한선교회에서 10년간 예배 인도자로 이렇게 사역을 했었습니다.
사실 한성교회가 제 모교회거든요. 어머니 아버지께서 결혼하실 때 할머니께서 너희 이 교회 다녀라 하시면서 교회 옆에 작은 셋방을 얻어주셨어요. 근데 그 셋방 옆에 교회가 한성교회였고 어머니 아버지 신혼 때부터 저희가 출석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저희가 딸만 셋이거든요. 퀴즈가 나갑니다. 제가 몇째게요 네 맞아요. 제가 듣고 싶은 대로 들을 거니까요? 제가 몇 째게요 네 맞습니다. 맞습니다. 셋째예요. 그쵸. 셋째로, 보이죠. 뭐 때문인지 모르지만요 네 늦둥이 막내 셋째, 딸로 태어났는데요. 제가 태어날 때 정부 정책이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이런 산아 정책이 산아 제한 정책이 있었던 거죠. 계획하지 않은 제가 생긴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께서 고민하셨습니다. 아무래도 경제 상황도 많이 어렵고 우리 집에 벌써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이 아이를 우리가 정말 책임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시다가요 아무래도 안 되겠다라고 생각하신 거예요. 그때 정부 정책에 따라서 여성들이 보건소에 수술을 신청하는 제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저 너무 떨리나 봐요. 여러분 여기 안 서보셔서 잘 모르시나요? 네 빨리 집에 가고 싶고 지금 막 지금 혀가 계속 꼬이고 네 감사합니다. 네 이렇게 격려받는 자리인데 왜 이렇게 떨릴까요? 네 그때 정부 정책에 따라서 여성들이 보건소에 수술을 신청하는 제도가 있었대요 임신하지 않은 여성이 신청하게 되면 임신을 할 수 없도록 수술을 해주는 건데요. 어른들이 배꼽 수술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임신한 여성이 신청을 하게 되면 낙태 수술과 함께 다시는 임신할 수 없도록 하는 수술을 해주는 거죠. 어머니 아버지께서 고민하시다가 그 수술을 어렵게 신청하게 되셨어요.
날짜가 흘러서 수술 날이 되었고 어머니께서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서시는데 그때 동네에 미애 엄마라는 분이 계셨대요 엄마한테 물어보신 거죠. 어머 어디 가세요. 그래서 아무래도 어머니께서 좀 얘기하기가 그러셔서 이렇게 저렇게 돌려 말하시려고 하다가 또 거짓말을 못 하셔가지고, 이러이러해서 갑니다 라고 말씀하신 거죠. 그랬더니, 미애 엄마라는 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어머 그럼 잘 됐네요. 기도 받고 가세요. 라고 하신 거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희 어머니 아버지께서 교회를 그냥 왔다 갔다 문턱을 밟는 정도셨기 때문에 고민하셨어요. 이런 일을 기도 받으러 기도 받고 가도 되는 일인가 고민하시다가 결정하셨죠. 그래 기도 받는 건 무조건 좋은 거니까 기도 받고 가자 그래서 그 미혜 엄마라는 분을 따라가신 거죠.
그 미애 엄마라는 분은 저희 동네에 있는 구세군 교회를 다니시는 분이셨대요 그분이 다니시는 구세군 교회에 가서 구세군 교회 전도사님 미애 엄마 저희 엄마 이렇게 세 분이서 막 기도를 하게 되신 거예요. 열심히 기도를 한 후에 이제 어머니께서 가시려고 하는데 전도사님이 저희 어머니한테 얘기하시는 거죠. 어머니 어머니 제가 기도해보니 하나님께서 이 아이가 나중에 큰 일을 할 거라고 합니다. 치우지 마시라고 저희 어머니를 막 설득하셨어요. 여기서도 박수를 받네요. 네, 네 감사합니다. 어 그러셔서 저희 어머니께서 흔들리셨게요 안 흔들리셨게요 네 정답이 너무 뻔하죠. 제가 여기 있잖아요. 네 흔들리셨어요. 나중에 큰일을 한다고 하시면서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시간이 또 지났습니다. 벌써 아이가 둘이나 있고 경제적 상황도 쉽지 않고 여러 가지 어려움 가운데 이 아이를 정말 우리가 책임질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이 계속 되셨던 거죠. 그러다가 결국에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또 어렵게 수술을 신청하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수술 날짜가 다가와서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서시는데 누가 있어요. 미아 엄마가 있어요. 이번엔 정말 얘기를 안 하시려고 이렇게 저렇게 돌려대시다가 이러이러해서 간다고 또 어쩔 수 없이 얘기하니까 이번에도 기도 받고 가시라고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안 쫓아가시려고 한사코 거부하시다가 또 따라가게 되셨어요. 그렇게 구세군교회 전도사님을 또 만났습니다. 미애 엄마 저희 엄마 그리고 전도사님 이렇게 세 분이서 또 막 기도를 하신 거죠. 이번에는 전도사님께서 뭐라고 얘기를 하셨길래 제가 여기 있을까요? 모르시겠죠. 막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시더니, 전도사님께서 저희 엄마한테 하신 말씀이 어머니 어머니 기도해보니 이 아이가 하나님께서 아들이라고 합니다 라고 하신 거예요. 딸만 둘이었잖아요.
은근히 그 아들을 바라는 제가 늦둥이라서 또래 친구들보다 부모님이 한 10살 많으시거든요. 어르신들의 그 아들을 바라는 그 마음을 간파하신 거죠. 아들이라는 그 말에 어머니 아버지 마음이 막 흔들리셨어요. 아들이라고 아들이라고 그러면서 아들이라고 아들이라고 고민하시는 사이에 제가 막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저를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제가 뿅 하고 태어나는데 예쁜 여자예요. 남자예요. 네 예쁜 여자죠 예쁘다는 거에 동의를 못 하시지만 괜찮습니다. 제가 성인이 돼서 어머니께서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 이야기해 주시면서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세요. 하나님께서 니가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너를 지키셨어 보호하셨어 인도하셨어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웃곤 했습니다. 제가 간증에는 이제 아무래도 스토리상 한 2번 정도로 축약을 하는데요. 이런 미아 엄마와의 스토리가 4번이나 넘게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 어머니가 그 미야 엄마를 정말 너무 찾고 싶은데 아직도 못 찾으셨어요. 오늘 간증을 보게 되신다면 꼭 만나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그렇게 모태 신앙인으로 자랐어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나는 얼마짜리 예수님 짜리 이런 걸 주일 학교에서 듣고 배우고 외치고 그렇게 자라난 모태 신앙인입니다. 제가 이렇게 듣기만 하고 배우기만 했던 하나님을 제 의지로 좀 붙들게 되는 계기들을 제 삶에 만나게 됐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인데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너무너무 사소한 일로 같은 반 남자 학생과 좀 다투게 됐어요. 뭐 때문에 그랬는지 기억도 잘 안 나는데요. 그렇게 다투고 나서 그 친구랑은 이제 사이가 좀 서먹서먹해졌죠 거리가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친구가 어느 날은 학교에 왔는데 이렇게 머리에 막 브릿지 하나씩을 넣고 온 거예요.
그때 그게 유행이었거든요. 그러면서 뭔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친구 뒤에 쫄쫄 쫄쫄 추종자들이 막 생기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면서 약간 세력이 있는 친구가 됐습니다. 그런데 반면에 이 친구랑 약간 거리가 생긴 저는 주변에 저랑 같이 어울렸던 친구들이 저랑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는 듯하더니, 3학년이 끝날 때쯤 되니까. 제가 반에서 왕따가 되어 있는 거예요. 사람에게 외면당하는 느낌을 경험하니까 이제 쉽게 사람한테 다가가지 못하겠는 거죠. 그렇게 엄청 충격적인 상황들을 맞이하게 되면서 처음에는 반 왕따로 시작했던 것이 4학년 5학년 6학년 올라가면서 제가 속한 학년에서 왕따가 되고 나중에는 전교에서 왕따가 되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저를 인사해주거나 아는 체 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거예요. 혼자인 거 외로운 건 괜찮은데요.
괴롭힘이 너무 힘든 거죠.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이들이 저인 걸 확인하면 막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해요. 그리고 또 어느 날은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이제 수업 준비하려고 제 책상 밑에 제 소지품을 꺼내려고 손에 넣었는데 제 물건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어떡하지 어디 갔지 나중에 찾아보니까 아이들이 쓰레기통에 다 갖다 버려놓고 또 어느 날은 교실로 들어가서 제 책상과 의자가 있는 자리로 갔는데 제 책상과 의자만 없는 거예요. 당황했어요. 어떡하지 어떡하지 이제 수업은 막 시작해야 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들이 이 학교 창고에다가 갖다 버린 거죠. 이렇게 해서는 도저히 학교를 다닐 수가 없겠다. 그래서 제가 꾀를 냈습니다. 그때 학교 주번이 8시까지 학교를 와서 준비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주번보다 더 일찍 맨 처음 학교를 가기 위해서 7시 반까지 학교를 가기로 했어요.
다짐을 한 그날부터 7시 반까지 학교를 가느라고 막 부지런을 떨면서 학교를 갔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이 맞았게요 틀렸게요 또 안 계시네요. 맞았어요. 제가 제일 먼저 도착하니까요? 문을 열 때 소리 지르는 사람도 없고요. 제 책상과 의자 물건 모두 안전한 거예요. 그래 앞으로도 이렇게 7시 반까지 일찍 일찍 오면 되겠다. 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계속 등교를 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그날도 어김없이 일찌감치 일어났습니다. 초등학생이 막 7시 반까지 학교를 가려고 부지런을 떨면서 막 학교를 갔어요. 그렇게 딱 학교를 들어서면 운동장이 고요하고요. 저만 있어요. 정문을 지나서 교실이 있는 건물로 막 걸어가는데 어 이상하게 그날따라 저 멀리서 저희 반 교실 창문에 불이 켜져 있는 거예요. 어 이상하다 전날 주번이 정리하면서 불을 안 끄고 갔나 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교실이 있는 그 건물에 다 도착을 했습니다. 실내화로 갈아신고 들어가려고 신발을 막 벗고 있는데, 갑자기 제 머리 위 그 창문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갑자기 어 뭐지 하고 신발을 갈아 신다가 얼굴을 이렇게 하늘로 들었는데 제 머리 위로 돌과 모래가 막 쏟아졌습니다. 아이들이 성실했어요. 제가 일찍 오니까 저보다 더 일찍 오더라구요. 괴롭힘이 가장 심한 시간은 점심시간입니다. 저는 1년 내내 배가 아픈 친구가 되는 거예요. 점심시간 종이 땡 하고 치면 후다닥 달려서 양호실로 피해서 배 아프다고 하고 점심시간 내내 누워 있다가 수업 시작하는 종이 땡 울리면 또 올라가서 자리에 앉는 거죠. 그때부터 저는 교실에서 점심을 먹은 게 열 손가락 안에 꼽는 것 같아요. 도시락을 쌌었는데요.
어머니께서 싸주신 도시락은 하교길 하수구에 다 처리를 하고 집에 가곤 했습니다. 그런 지경이다. 보니 제가 이렇게 골목에 그냥 지나갈 때도 다른 초등학교 아이들이 저를 보면서 막 수군대는 거예요. 채원 학교도 그래 하면서 그렇게 아주 어려운 초등학교 생활을 하다가요 시간이 흘러서 제가 드디어 중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건물과 또 교복을 입는다는 것 때문에 제 안에 아주 작은 희망 기대가 있었어요. 중학교에 가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고 중학교에 입학을 딱 했는데요. 제 기대와는 달리 동네 초등학교에서 모여서 입학을 하잖아요. 모두가 다 저를 알아보는 거예요. 왕따라는 꼬리표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괴롭힘이 더 업그레이드 됐어요. 더 심한 폭언과 폭행이 시작됐습니다. 하루는 점심시간인데요. 미처 저의 피난처 간호실로 피하기 전에 이 친구들 수업이 너무 일찍 끝난 거예요.
뒷문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함께 갔습니다. 그때 학교에서 학생들 담배 피지 말라고 화장실 들어가는 문을 통유리문으로 안과 밖이 훤하게 보이도록 바꿨을 때인데요. 그 친구들과 제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고 문을 잠그면 이제 아이들은 신나는 싸움 구경이 생긴 거죠. 막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해대면서 그 통유리문 아래부터 꼭대기까지 몇백 명의 아이들의 얼굴이 다닥다닥 붙어서 막 소리를 지르고 화장실 앞 복도에 의자랑 책상을 끌고 와서 그 위에 올라가서 구경하는 아이들도 있고요. 흥분 상태가 된 거죠. 너무 무서웠습니다. 생각했어요. 선생님이 어떻게 좀 우연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아니면 빨리 종이 울렸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지만, 선생님이 지나가시지도 않았고 빨리 종이 울리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렸고 수업 시작까지 10분이 남았어요. 전 만신창이가 됐죠 그런 저를 보면서 아이들은 여전히 다닥다닥 얼굴을 맞대고 모여서 저를 보면서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혼잡한 틈을 비집고 어떤 아이가 유리문을 똑똑 하고 밖에서 두드려요 그럼 안에 있던 아이들이 문을 열어서 그 아이만 쏙 들여보내 줘요 그때 저희 학교에서 아나바다 운동이라는 걸 했습니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 뭐 이런 운동이었는데요. 선배들이 깨끗하게 입고 물려주고 간 교복을 천 원이면 상의 하나 하의 하나를 살 수 있었어요.
그 친구가 제 사이즈에 맞는 헌 교복을 천 원을 주고 상의 하나 하의 하나를 사오면 원래 저희 어머니가 맞춰주신 제 진짜 교복 찢어진 교복을 환복해서 그 헌 교복으로 다시 바꿔서 입혀주고 머리도 묶어주고 피도 닦아주고 저를 정돈한 다음에 다시 교실로 돌려보내는 거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렇게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때에 이미 오래전에 imf가 터졌고 상황이 많이 좋지 않은 때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실직을 하셨어요. 아버지께서 집에 있는 돈을 어떻게든 막 끌어 모아서 아주 작은 트럭 하나를 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어요.
윤진아 아빠가 가서 무슨 일이든 해서 돈 벌어 오겠다고 다 같이 기다리라고 그렇게 엄마와 저희 딸 셋을 뒤로하고 아버지께서 집을 떠나 차를 끌고 그렇게 전국을 누비시면서 정말 돈이 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하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집을 나서신 후로 아버지의 얼굴을 아주 오랫동안 볼 수 없었고요. 형편은 더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너무 어려운 가정 그리고 학업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힘든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저한테는 진짜 마지막 남은 한 가지 오로지 교회밖에 없는 거예요. 주님밖에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지만, 하나님이 나를 지키신대요 나의 도움이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래요.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내가 가난해도 못생겨도 심지어 하지 말라는 그 죄를 지어도 하나님 절대 나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끝까지 사랑하신다고 전도사님 목사님 주일학교 선생님들한테 들었던 그 이야기들이 자꾸만 떠오르는 거예요. 그리고 꾸역꾸역 이 삶을 버티게 하는 거죠. 견디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6년이라는 시간을 버텼습니다. 그리고 제가 조금 더 자라서 고등학생이 될 나이가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집이 많이 어렵고 하다 보니까 빨리 기술을 배워서 취직을 해야 되겠다. 생각을 가지고 직업 학교 상업 계열 쪽으로 가게 됐습니다. 그 학교는 집에서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꽤나 먼 거리에 있는 곳이었어요. 입학을 하고 학교를 딱 갔는데요. 처음에 그 학교를 가고 나서 깜짝 놀랄 일이 생긴 거죠. 아무도 저를 모르는 거예요. 늘 어디를 가나 저를 보고 수군수군대던 사람들 뿐이었는데.
그곳에 가니까 제가 누군지 왕따였는지 이런 거 아무도 모르는 거죠. 그러면서 처음으로 교회가 아닌 곳에서 저한테 친구가 생긴 거예요. 너무 좋은 거죠. 아이들이 저를 막 얼음공주라고 부르더라고요. 분위기가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네 제 간증에 웃을 게 별로 없는데 네 제가 말을 어떻게 걸어야 될지 몰라서 막 우물쭈물하고 가만히 있는데, 이 친구들이 저한테 그런 별명을 막 붙여주고 무리에 저를 이미 끼워놨더라고요. 친구가 생기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급식을 먹을 때도 같이 먹고요. 쉬는 시간에 매점도 가서 빵도 사 먹고 하교길에 떡볶이도 먹고 다 먹는 얘기예요. 그렇게 친구가 생기고 친구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하는 것이 너무 즐겁고 행복한 거예요. 그러면서 친구가 좋아지니까 자꾸 뭘 해주고 싶은 거죠. 우리한테 제일 좋은 거 뭐예요? 여러분한테 저한테 제일 좋은 거 예수님이죠.
이 친구들한테 자꾸 뭘 해주고 싶은데 저한테 제일 좋은 거 예수님 얘네한테 예수님을 선물해 주면 얘네 진짜 행복해지겠다. 이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친구들을 전도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혼자 머릿속으로 막 생각하면서 이제 친해지고, 어떻게 교회를 데리고 가고 막 혼자서 작전을 짜고 있었어요. 그런데 첫 번째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친구들이랑 더 친해지고, 시간도 보내고 해야 교회에 데리고 갈 텐데 이 친구들이 주일날 제가 예배를 가야 되는 그 시간에만 만나는 거예요. 고민했어요. 어 나 이 친구들이랑 친해져야 교회 데리고 가고 전도도 하는데 예배는 드려야 되고 어떡하지 어떡하지 막 고민을 하다가 이제 결정했죠. 그래 친구들이랑 먼저 친해지고, 나서 교회로 데리고 가자 그래서 처음에는 약속을 갔다가 예배를 한 5분 막 이렇게 듣다가 다음에는 그러다가 나중에는 막 한 줄을 빼먹기도 하고요. 죄도 즐거움이 있어요.
저만 아나요? 처음엔 막 5분 늦었을 땐 벼락을 맞을 것 같고, 너무 무서웠는데요. 그렇게 점점 죄의 즐거움에 빠지면서 하나님과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뭘 낳아요. 사망을 낳죠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진짜로 제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편,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그 사랑받고 싶은 욕심 때문에 제가 그 욕심에 끌려 타협하기 시작했고, 죄를 선택하게 된 거죠. 집이 더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언니 둘 엄마 저 이렇게 딱 누우면 따뜻한 단칸방에서 살고 있었는데요. 근데 이제 그 단칸방에서도 저희 모두 나와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저희 어머니의 평생직업은 가사도우미세요.
파출부라고도 불렀죠 제가 늦둥이다. 보니까 또래보다 부모님이 나이가 많으신데, 저희 어머니께서 7살 때부터 외할머니 손에 이끌려서 가사도우미 일을 시작하셨고 평생 그 일을 통해서 저희 딸 셋을 다 먹여 키우셨습니다. 근데 imf가 터지고 경제 상황이 너무 많이 안 좋아지니까 이제 돈이 있는 사람들도 가사도우미를 쓰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딱 하나 남았습니다. 좀 더 어려운 일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회장님 사모님 이런 분들이 사는 저택에 들어가서 숙식을 하면서 일을 하는 가사도우미 일이 하나 남은 거죠. 남들이 잘 안 하려고 하는 어머니께서 물어보셨어요. 윤진아 엄마가 이러이러해서 갈 건데 너 같이 갈래 거기 가면 먹는 것도 더 좋고 자는 것도 더 좋고 이런 이점들을 저한테 막 이야기하셨어요. 생각했죠.
엄마를 혼자 보내자니 보낼 수 없고 또 저도 혼자 어딜 가겠어요. 그래 같이 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어머니께서 일하게 되신 그곳으로 함께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는데요. 세상에 엄마 말이 진짜 다 맞는 거예요. 정말 그곳의 환경이 엄마가 말한 대로 매끼 반찬 다 다르고요. 매끼 고기가 있고요. 이거 중요하지 않나요?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고 이거 되게 어려운 거 아시죠. 여러분 여름에 진짜 시원하고 겨울에 진짜 따뜻하고 침대 화장 화장실 욕실 바닥만 번쩍번쩍 너무 좋은 거예요. 와 엄마 말이 맞았구나 그래 여기서 엄마랑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면 되겠다. 라는 철이 없는 생각을 하면서 그곳에서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눈치를 주는 누군가와 눈치를 보는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거기서의 생활이 조금씩 조금씩 힘들어지기 시작했어요. 학교가 끝나고 그 집에 들어가려고 할 때 저도 모르게 대문 앞에서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들어가게 되는 거죠. 그 집에 들어가서도 배가 고파서 냉장고 문을 한번 열어볼까 싶다가도 생각을 하게 되고 자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이렇게 눈이 떠져도 생각하는 거죠. 화장실을 갈까 말까 그러면서 그곳의 생활이 점점 불편해지다가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 중 하나는 엄마의 강도 높은 노동의 모습을 이제 제 눈으로 좀 목격하게 되면서 마음이 많이 상하게 되었고요.
또 하나는 엄마를 고용하셨던 분들의 엄마를 대하는 비인격적인 태도들을 목격하게 되면서 제 안의 원망과 분노가 막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없는 마음에 환경을 자꾸 바라보니까요? 제 안에 원망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안에 있던 상처와 분노 아픔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한평생 우리 엄마 저렇게 기도해도 아무 소용도 없구나 나 이렇게 사람들이랑 잘 지낼 수 있었는데, 그때 왜 나를 괴롭혔지 지난 시간 괴롭혔던 사람들에 대한 증오 왜 나여야 했을까? 왜 내가 바보같이 당하고 있었을까? 이런 물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에는 하나님을 막 원망했어요. 교회와는 완전히 단절되었고요. 학교도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수업일수가 모자라서 너 조금 있으면 퇴학이야 막 이런 전화가 계속 걸려왔지만 잘 가지 않았어요. 담배도 피우고요. 술도 마시고요.
정서가 너무 불안하니까요? 어쩌다 어쩌다 한 번 가는 그 학교도 학교에 술을 싸가지고 가서 술을 먹고 그냥 자는 거예요. 그렇게 지내고 있던 중에 어느 날 한 번은 술을 먹고 큰 시비가 붙었습니다. 싸움이 난 거죠. 경찰서로 연행이 되게 되었습니다. 괜찮으세요. 이제 없어요. 이게 마지막이에요. 네 제가 같이 있었던 여자친구들 중에 한 명이 운동선수였거든요. 저 말고요. 권투 선수였는데요. 그 여자친구가 1명 그 여자친구 1명이 이제 다수의 성인 남성을 이렇게 얌얄 해가지고 이제 같이 가게 됐어요. 네 갔는데 이제 이분들이 여자한테 좀 맞고 막 그래가지고 자존심이 많이 상하셨나 봐요. 합의 못 해주겠다고 막 고래고래 난리가 났는데요. 조사받다 보니까 이 녀석들이 고등학생인 거예요. 그래서 막 더 화가 나신 거죠.
그래서 끝까지 막 조사를 받으면서 막 괴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제가 친구들 중에 제일 먼저 조사를 받고 풀려나왔습니다. 1층 2층 이렇게 큰 건물의 경찰서였는데요. 조사받고 나서 이제 경찰서 2층 그 로비에 이렇게 딱 나오니까 저쪽 왼편 창가 쪽에 쇼파가 있는 거예요. 술도 막 덜 깨고 행색도 막 엉망이 돼가지고 막 질질질 기다시피 해 가지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어 그리고 이렇게 창문에 고개를 탁 기댔는데요. 깜짝 놀란 거예요. 제가 분명히 깜깜한 밤에 왔거든요. 대낮인 거예요. 그러면서 그 경찰서 2층 창문 아래로 펼쳐진 아침 풍경이 제 눈에 이렇게 들어오는 거죠. 예쁘게 교복을 입은 여학생 학생이겠죠. 그 둘이서 막 걸어가는데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막 깔깔깔 웃으면서 막 어딘가 가고 있어요. 아마도 학교 가는 거겠죠.
또 어떤 사람은 통화를 하면서 막 이렇게 바쁘게 걸어가요 아마도 회사원이겠죠. 그리고 저기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보이구요. 버스 정류장에 줄을 선 사람들 그리고 신호에 맞춰서 왔다 갔다 달리는 차들 그런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활기찬 아침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 반해 그 아침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제 모습이 보이는 거예요. 18살 고등학생의 화장 옷 매무새 막 머리 다 헝클어지고 난리가 나서 술 냄새를 풍기면서 창문에 기대서 그 아침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제 모습이 보이는 거죠. 행복하지 않았어요. 슬펐습니다. 마음이 고파서 허덕였어요.
아무리 채워도 마치 소금물을 마시는 것처럼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예레미야 말씀입니다. 생수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제가 버린 거예요. 우리 마음속에는 하나님만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하죠.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이 저를 채우시고 하나님이 저를 붙드실 때는 제가 견딜만 했어요. 근데 이제 아무리 즐겁다는 걸 해도 잠깐이에요.
친구도 있고 이젠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데도 너무 행복해지고, 싶은데 무얼 해도 행복하지 않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데 너무 멀리 왔고 내 삶은 망가졌고 나는 왕따와 폭력에 시달렸던 패배자고 나에겐 미래가 없고 의미 없는 하루하루가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살고 싶지 않은 거예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나 같은 건 없어지는 게 낫겠다. 내 모든 걸 알고도 도대체 누가 날 사랑할까 난 가망이 없어 난 엉망진창이야 마치 낭떠러지 끝에 흔들흔들 위태롭게 서 있는 것처럼 그런 위험한 시간들이 지났습니다. 그러던 중 몇 차례 자살을 시도하게 됐고요. 실패하던 중 그날이 결정적인 날이 되었습니다.
삶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고 모든 걸 내려놓고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요. 그때 거짓말처럼 제 마음에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칠흑 같은 어두움으로 새까만 제 마음에 마치 바늘로 콕 찔러서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처럼 그 빛은 마치 폭풍 속에 흔들리는 가녀린 촛불처럼 제가 귀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때 그 빛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어떡하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 거예요. 허 이게 뭐야? 하고 있는데, 그때 다시 한번 들려왔습니다. 윤진아 그럼 나는 어떡하니 이게 뭐야? 하고 있는데, 다시 한 번 더 분명하게 들려왔습니다.
윤진아 내가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었는데 니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해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엄이나 가리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관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기품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아메 우리 아버지 어떤 믿으십니까 그 마음의 음성이 들리고 나서 제 머릿속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그림이 이미지로 막 그려지는 거예요.
마주님이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셨는데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내가 살아봐야겠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예수님을 위해 죽지 말자 이렇게 다짐을 하고 다시 교회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교회에 돌아가도 상처와 낮은 자존감 죄책감 때문에 예배를 드릴 수가 없는 거예요. 너무 괴로운 거죠. 정말 하나님이 내 아픔을 내 죄악을 아시는데도 나를 사랑하실까 그날도 금요 예배를 가서 막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요. 이런 마음들 때문에 너무 괴로운 거예요. 그때 저를 케어해 주시던 전도사님이 계셨어요. 예배 중에 제가 전도사님께 제 죄를 막 고백하면서 이런데도 저를 용서해 주실까요? 저를 사랑해 주실까요? 그러면서 제가 막 엉엉 울었어요. 그랬더니, 전도사님께서 제 손을 이렇게 꼭 붙들고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아무래도 용서하기 쉽지 않은 죄였나 봐요. 굉장히 오래 기도하셨거든요. 막 이렇게 기도하시더니, 제 귀에 대고 전도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은진아 죄에는 크고 작음이 없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이 덮지 못할 죄가 없다는 거죠. 그 사랑이 너무 크셔서요 그때 그 말을 듣고 나서 저를 묻고 있던 죄와 죄책감의 사슬이 끊어지는 해방감을 느꼈어요. 너무 감사한 거예요.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신다고 저한테 아직 기회가 있는 거죠. 그 은혜를 힘입어서 회개하고 저는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에게 아주 큰 힘이 되어준 찬송가가 있는데요. 여러분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3절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 연약할수록 어떻게 하신대요 아는 높은 모자 위에서 연약하고 또 실수하고 또 넘어져도 어디에 써 있을까?
네 믿으십니까 아 네 저는 한동안 대중 목욕탕을 다니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자해했던 부분들이 딱지가 앉고 새살이 올라왔을 때 온도 차이가 많이 나는 물에 노출되게 되면 빨갛게 채찍 맞은 것처럼 온몸이 다 막 이렇게 일어나더라고요. 샤워하러 들어가서 변하는 몸을 막 부둥켜 안고 참 많이 울었습니다. 이랬던 나였는데 한순간도 온전히 숨 쉴 수 없는 나였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살려주시고 살아가게 하시는구나 참 감사하다 이런 고백들을 많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너무 부족한 삶인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선하신 하나님의 근도하심을 느꼈습니다. 어릴 적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전 세계 다니면서 찬양하게 해주세요. 막 이런 기도를 했었는데요.
제가 뒤돌아보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셔서 ccm 사역팀을 이렇게 함께 섬겼었거든요. 보통 1년에 3~4차례 정도는 해외를 다니면서 해외 여러 교회들과 함께 예배하고 찬양할 수 있는 그런 걸음들을 허락해 주셨었는데요. 뒤돌아보니까 하나님께서 또 이렇게 응답하셨구나 하는 고백을 했었고요. 또 결혼하기 2년 전에는요 엄마와 저희 세 딸 다시 모여서 이렇게 살고 있는데요.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서 아버지께서 다시 집에 돌아오고 싶으셔도 집에 누울 곳이 없어서 주무실 곳이 없어서 돌아오실 수가 없는 거예요. 어머니와 제가 아주 오랫동안 기도했거든요.
아버지가 함께 살게 되기를 그런데 너무 감사하게 갑자기 저희 보금자리를 옮길 수 있는 그런 상황들을 하나님이 열어주셨고 아버지께서 12년 13년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셔서 아버지와 한 지붕 아래서 다시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날을 맞이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20살 때부터 네 그리고 20살 때부터 예배 인도 사역을 이렇게 꿈꿨는데요. ccm 팀을 내려놓고 기도하던 중에 한성교회 모교회에서 먼저 콜링해 주셔서 이렇게 예배 인도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예배인들을 하던 중에 목에 좀 불편함을 느꼈어요. 2016년 10월 정도 경에 주변에서 너 여태까지 노래를 10년 정도나 해왔고 한번 검진을 받아보라고 권유를 받게 돼서 그래 관리 차원에서 검진을 한번 받아보자 하고 목 전문 병원을 찾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에서 저를 보시더니, 더 큰 병원으로 저를 추천해 주시는 거죠. 그 병원에 갔더니, 이번에도 더 큰 병원을 추천해 주셨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아주 가장 좀 이름이 나 있는 그런 큰 병원에 가게 됐는데요. 거기 원장님을 만났을 때 검진 한번 해보자고 하셔서 정밀검사를 하게 됐습니다. 목에 관련된 정밀검사를 막 다 마치고 나서 이제 원장 선생님을 만나게 됐는데요. 갑자기 원장 선생님께서 만나자마자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노래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근육 경련 장애의 일종인데요. 연축성 발성 장애라는 병입니다. 성대를 움직여주는 근육들이 있거든요. 성대는 목에서 아주 미세하고 작은 기관인데요. 그 작은 기관을 움직여주는 아주 작은 근육들이 있어요.
근데 뇌에서 잘못된 신경 신호를 자꾸만 보내서 그 성대를 움직여 주는 근육들 중에 아주 작은 일부가 자꾸 마음대로 움직이는 거예요. 경련 현상을 일으키는 거죠. 쉽게 생각하면 뭐 수전증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이게 성대다 보니까 그런 떨림과 경련 때문에 처음에 발병을 하게 되면 목소리가 좀 허스키해지구요. 그러다 어느 정도 진행이 되면 저는 노래하는 사람이잖아요. 음을 잘 맞춰야 되는데 그리고 그걸 연습하고 또 일을 하는 사람인데 나중에는 음치처럼 제가 생각한 대로 음이 잘 나지 않는 거예요. 픽사리도 막 아무 데서나 나구요. 그러다 이제 병이 더 진행되게 되면 나중에는 언어 소통 말하는 목소리도 잃어버리는 병이라고 합니다. 노래하는 직업이면 당장 그만두어야 하고 원인이 없어서 완치를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해서 제가 치료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교회 사역을 잠시 멈추고 그렇게 치료를 받게 되었고 1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여러 차례 정밀검사를 받고 치료를 하고 또 약물을 하고 재활을 하면서 계속 이렇게 애를 쓰다가 나중에 최종 판정을 받게 됐어요. 완치가 불가하다 경련이 지속되고 있고 이제 저한테 쓸 수 있는 약물이 더 이상 없다. 그러면 남아있는 목소리라도 지키려면 그 경련을 일으키는 근육을 주사를 놔서 없애버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노래하는 직업군으론 살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할래요. 선택의 기로 앞에서 저는 주사 치료를 하지 않고요. 일주일에 딱 한 번씩만 찬양하고 일주일간 회복하는 기간을 가졌다가 또 한 번씩 노래를 하면서 목이 나빠지는 속도가 더뎌질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 병이 발병했을 때 많이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막 눈물이 나고 옷을 갈아입다가도 막 눈물이 터지는 거예요. 어느 날도 약속이 있어서 나가려고 옷을 막 갈아입다가 갑자기 주저앉아서 막 엉엉 울었어요. 하나님께 낫게 해달라는 기도가 나오질 않더라구요. 분명히 내 삶이 하나님 안에 있는데, 이 일이 나한테 왜 일어났을까? 소화가 되지 않는 거예요.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엉엉엉 바닥에 엎드려서 울고 있는데요. 그렇게 울고 있는데, 갑자기 제 마음에 그런 마음을 주시는 거예요. 윤진아 앞으로 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내게 영원히 노래하는 사람이야 왜냐면, 너는 삶으로 노래할 수 있잖아. 네 삶의 무대에서 하나도 와닿지 않았어요.
낫게 해줄게 이런 거 막 기다렸는데 근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는 안 괜찮은데 어 그러면서 삶의 무대 이게 무슨 말인가 막 하면서 울고 있는데, 그 마음을 주시고 나서 갑자기 생각해보게 된 거예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잘했거든요. 좋아했어요. 저희 딸만 셋이잖아요. 언니들 포함해서 저까지 다 노래하는 사람을 꿈꾸면서 자랐습니다. 왜요 아빠가 노래를 너무 잘하셨거든요. 그러면서 저희 딸 셋이 나이 차이가 좀 또 있다 보니까 교회에서 노래 잘하는 자매들 하면서 차세대에서 한 명씩 막 솔로도 하고 또 노예 대회도 나가고 하면서 그렇게 예쁨을 받으면서 컸거든요. 그래서 저는 언제나 사람들이 저를 보는 자리에서 찬양하는 게 익숙했어요. 그리고 심지어 제가 지금 뭘 해요. 사역을 하잖아요. 찬양 사역을 예배 인도를 찬양하고 있잖아요. 근데 그게 아닌 거죠. 찬양이 뭐예요? 예배가 뭐예요?
하나님을 위해 그분을 인식하며 우리가 삶의 하는 모든 선택과 순간이 예배입니다. 찬양입니다. 근데 제가 들었었는데 알고 있었는데, 그걸 간과한 거예요. 그리고 생각했어요. 찬양이라는 게 가사와 멜로디로 국한되지 않은 게 얼마나 감사한가 그래 나 계속 노래할 수 있구나 감사하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삶의 예배로 초청해 주시는 계기를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렇게 깨달았으면 좋아져야 되잖아요. 흐름상 뭔가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안 좋아지는 거예요. 제가 막 심술이 났어요. 뭔가 사역을 앞두고 있을 때 이렇게 목이 안 좋거나 건강상의 이런 힘듦이 막 다가오면 제가 마음이 너무 불안한 거예요. 그러다가 이제 어느 날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갔는데요. 사람들이 막 열심히 예배하는데 저는 예배가 안 드려지는 거예요. 하나님하고 화목하지 못한 거죠. 마음이 불편했어요.
그래서 제가 하나님께 이야기 했어요.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거 원하지 않으시면 저 이거 안 할게요 내려놓겠습니다. 막 이런 기도를 했는데요. 약간 원망 아닌 원망 아닌 척을 하면서 말은 이랬지만 제 태도는 사실 그렇지 않았어요. 하나님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면 저 이거 안 하겠습니다. 막 이러면서 떼를 부리면서 막 억울해하고 있는 거죠. 제가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막 억울해하고 있는데, 자꾸 눈을 감으면 누가 저를 쳐다봐요. 눈을 뜨고 막 둘러보면 사람들은 다 예배하고 있고 또 눈을 감으면 마치 하나님께서 너무 안타까운 눈빛으로 저를 뜨겁게 바라보시는 것 같은 거예요. 그리고 제 마음에 또 이런 마음을 주시는 거죠. 윤진아 내가 목숨도 아끼지 않았는데 너에게 무엇이 아깝겠니 그리고 제가 기대했어요.
낫게 해줄게 들렸을까요? 안 들렸을까요? 원하는 말은 잘 안 하시더라구요. 하나님 저랑 마음 잘 안 맞아요. 그런데 그 마음을 주시고 나서 갑자기 제 마음에 기대라는 단어가 이렇게 떠오르는 거예요.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목숨도 아끼지 않으셨는데 내게 무엇이 아까우실까 주님이 선하시고 선하신 주님이 내 목자 되시고 내 삶이 그분 안에 있으니 이 일 또한 선하겠구나 그래 하나님께 감사하자 하나님께서 그렇게 저에게 감사를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는 제 현재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예술을 믿으나 믿지 않으나 이 고난이라는 건요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인생에게 마치 계절처럼 날씨처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아마 살아가면서 우리 삶에 닥친 고난의 이유를 아마 끝까지 알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단 한 가지 무엇일까요? 주님이 선하시다는 것 선하신 주님이 내 목자 되신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양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어떤 삶을 꿈꾸세요. 저는요 제 삶이 한 치 오차 없이 너무나 견고하고 아름답게 지어진 그런 으리으리한 건축물 뭐 그것도 좋겠죠.
하지만요 제가 살아온 삶의 갈피갈피마다 걸음 걸음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마치 사진첩에 사진 하나씩 오려 붙이면서 이런 은혜가 있었지 하나님과 이런 추억이 있었지 고백하는 하나님과 저의 손때가 가득 묻은 그런 사진첩과 같은 인생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 사진첩이 나만 좋음으로 끝나지 않구요. 그 곁에서 그걸 지켜본 이들에게 그 삶을 그 걸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게 될 겁니다. 우리 모두 예수로 할 말 많은 사람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알 수도 없는 평안 가진 사람 뭐가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 삶으로 선택으로 예배함으로 보여주는 우리에게 소망합니다. 삶의 어떠한 문제와 고민 가운데 계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드려야 할 고백은요, 그럼에도 주님 우리가 주님으로 인해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이 어려움을 통해 이 아픔을 통해 오직 의뢰해야 하는 분 주님만을 의뢰하겠습니다. 그 고백인 줄 믿습니다. 우리 이 시간 함께 찬양할 텐데요. 이 찬양에 우리의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고백하면 좋겠습니다.
누가 지켜주세요.
우리 시간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간증을 듣기 전에 읽었던 10편 23편 너무나도 잘 아는 말씀인데요. 그 말씀 가운데 사절의 이론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아니하시나이다. 믿으십니까 그런데요. 우리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함께 하시는 그 목자에 대한 말씀인데 어울리지 않는 말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이거 뭘 말하는 걸까요? 그 푸른 풀밭에 놓이시는 내 선한 목자가 인도하는 양에게도요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죽음과 같은 순간을 지나는 때가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상황은 죽음 같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주 엎드려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있어요. 왜요 주님이 함께하시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있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손으로 더듬더듬 거리더라도 그렇게 더듬으며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가면 되는 거예요. 괜찮아요.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구경하지 않으시는 하늘아버지와 함께 걷는 삶 세상의 가치 판단 기준 아닌 세상이 말하는 즐거움 더 좋은 거 더 멋진 거 더 높은 거 말고요. 매일 주님만 예배하는 채로 삶의 초점을 그분께 맞추는 자로 자녀 잃은 애통하는 아버지 마음 헤아려 드리는 자녀로 내 잃어버린 형제 아버지 품에 안길 수 있도록 그 사랑 전하는 자로 우리 끝까지 함께 살아내길 기도합니다. 훗날 그렇게 주님 품에 당기네 저와 여러분에게 소망합니다.
이 시간 주님 이름으로 베어 기도할 때 주님 우리의 삶에 닥친 당면한 문제로 인하여서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삶을 살아가는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우리의 선함 먹자 되신 신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함께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