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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선교사 본문
이재훈선교사
길에서 만난 하나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소개받은 마다가스카르 의료선교사 이재훈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광야를 건너온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해 주셨는지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제가 선교사가 된 지 딱 20년째입니다. 아직 광야를 다 건넌 것 아닌 것 같은데 지금 그동안에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인도해 주셨는지 기억하면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제가 어떻게 의료 선교사가 되었는지 말씀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 때 선교사가 된다고 하는 사람들은 믿음이 되게 좋고 훌륭해서 그렇게 되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저는 그 반대였습니다.
저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렇지만 혼자서 5살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어느 때부턴가 교회에서 전도하면 주는 책갈피 성구가 적혀 있는 책갈피를 모으는 게 취미였습니다.
그래서 반 친구들 새로운 학년이 될 때마다 우리 반 친구들은 저의 책갈피 수집을 위해서 한 번씩 교회를 왔습니다.
그런 친구 가운데 5학년 때 온 가정이 불교 가정인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를 전도하기 위해서 거의 6개월을 매주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 친구 어머니가 야 재훈이 불쌍하니까 교회 한번 가줘라 그렇게 해서 그 친구가 교회를 나왔고 저는 책갈피 하나를 더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와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베프가 되었습니다.
그 친구와 내기를 했습니다. 누가 먼저 가족을 전도하느냐? 저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녔기 때문에 당연히 제가 이길 줄 알았는데 제가 졌습니다.
그 친구의 할머니부터 어머니, 아버지 두 형과 한 여동생 하나 모두 불교 신자였는데 모두 다 교회를 나왔습니다.
저는 유일하게 우리 집에서 말을 꺼냈던 동생이 형 같은 사람이 교회 다니면 나는 평생 교회 안 가 그랬습니다.
그 후에 집에서 교회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성경책을 읽다가 사도행전 16장 31절에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 말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하나님 내가 주 예수를 믿는데 왜 우리 집은 구원을 못 받습니까? 그때 소리가 들렸습니다.
너의 믿음이 가짜니까 그렇다. 아니 제가 왜 가짜예요? 이렇게 전도도 열심히 하고 이렇게 성경도 열심히 읽고 그러는데 왜 가짜예요? 그런데 제가 가짜라고 따질 때부터 제가 진짜 가짜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잘한 것들은 모두 다 하나님께 잘한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잘했습니다.
내 내면에는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욕망이 있었습니다.
가식과 위선과 그런 것들이 확연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진짜 가짜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진짜 가짜인 걸 알게 되니까 겁이 덜컥 났습니다. 가족 구원을 못하는 거는 고사하고 내 자신이 지옥에 갈까 봐 너무나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판 사판 한번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우리 성경책에 보면
어
베드로가 그 제자들이 노를 저을 때 그 풍랑 가운데서 예수님이 무리를 걸어오는 거가 있습니다.
그 베드로가 나도 물위를 걸어서 주님께 가게 해주세요 하고 바다에 내려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 당시 제가 했던 결단이 좀 이와 비슷한 결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판사판 무리로 뛰어들기로 했습니다. 무리로 뛰어들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합니까? 물속에 빠져서 캄캄한 바다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길도 보이지 않는 곳에 가라앉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이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크리스찬들은 세상은 이 길이 잘 되는 길이다.
저 길이 잘 되는 길이다 이야기하는데 이 말씀을 생각해 보면 우리 크리스타는 길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물에 빠지면 길이 옵니다. 그래서 길이 손을 잡아줍니다.
우리는 그 길 위에 서 있기만 하면 안전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제가 물에 빠진 결단을 했을까요?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아프리카의 선교사가 될 테니까 나를 진짜로 여겨주세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중학교 1학년 때만 해도 그 당시만 해도 아프리카는 식인종이 있고 각종 맹수들과 뱀과 심지어 식물까지도 사람을 잡아먹는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데서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겠다고 한 것은 거의 저의 전 인생을 걸었다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선교사가 되겠다고 결단을 하고 나면 모든 것이 싹 변해서 아주 좋은 크리스탄이 될 거라는 착각은 하지 마십시오.
저의 인생을 보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제 성질머리 그대로 쓰실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법궤를 만드는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아세요? 아카시아 나무라고 합니다.
씨딥나무라고도 하는데 제가 그 인터넷에서 씨딥 나무를 보니까 굉장히 꼬불꼬불해요.
목재로 쓰기 되게 어려운 나무 같아요. 그걸로 성괴를 만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나무만 있으면 안 되고 정금으로 그걸 쌉니다.
정금으로 싸는 이유가 그 구부러지고 그렇게 휘는 그런 것들을 아마 막기 위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정금으로 산다는 말을 우리가 다른 말로 하면 예수로 옷 입는다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예수로 옷을 입는다 하는 건 뭐냐 저희가 인생을 돌아볼 때 예수께서 옷 입혀주신다고 하는 게 무엇이냐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가 보니까 우리들의 인생의 경험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 그리고 그런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예수로 옷 입는다 하는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슨 선교사가 될까 하다가 의료 선교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 하나님께 이렇게 걸었잖아요. 걸었는데 하나님이 내가 선교사가 되면 진짜로 여겨주실지 안 여겨주실지 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뭔가 내가 약속을 지킨다는 표를 해야 될 것 같은데 그 당시에 학생으로서 최선을 다해야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러면
저는 좀 문과적 기질이 있었는데 어떤 것을 하면 될까 했는데 이제 공부를 잘해야 되잖아요.
학생이니까 근데 공부 잘하면 두 가지 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의사가 되거나 하나는 법관이 되거나 근데 아프리카의 법관이 되면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의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에 안암동에 있는 기숙사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처음 서울에 올라오고 나니까 아는 사람도 없고 어느 교회를 가야 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듣기로 저희 어렸을 때 주일학교 전도사님이었던 분이 인천 백운역에 교회를 개척하셨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인천 백운역에 갔습니다. 처음으로 전철을 타고 갔습니다.
2시간 걸렸습니다. 다시는 여기에 안 오리라 이렇게 나는 바쁜 의대생이니까 열심히 공부를 해야 되겠다.
기숙사에서 제일 가까운 교회를 후딱 갔다 와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 순간에 제 마음속에
아니 아프리카에서 선교사 하겠다는 놈이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개척교회를 섬기는 것도 못한다고 그러느냐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결혼하고 애 셋 낳을 때까지 그 교회를 다녔습니다.
형 같은 사람이 교회 다니면 나는 평생 교회 안 가 했던 동생도 교회의 멤버가 됐습니다.
동생이 교회 멤버가 된 이유가 있는데 얘가 대학에 이제 처음에 시험 보러 왔잖아요.
제가 얘를 맡아서 시험장에 다음 날 데려다 주는 일을 맡았습니다.
저보다 형이 하나 더 있긴 한데 형보다는 제가 더 잘할 것 같아서 그렇게 했습니다.
근데 그날 밤에 왜 동생이 나한테 그런 원망을 했을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제가 동생한테 잘못한 건 딱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어렸을 때 이렇게 엿 같은 거 사면 저는 한쪽을 이렇게 뭉퉁 그리고 또 한쪽은 길게 내놓고 동생한테 고르라고 하면 100% 동생은 가늘고 긴 데를 선택했습니다.
그거야 동생이 선택한 거니까 그걸로 형 같은 사람이 교회 가면 나는 안 가 이런 말은 할 필요 없겠지만 두 번째는 아마 좀 마음에 걸렸습니다.
우리 사명제가 있었는데 제가 형하고 싸우면 부모님들은 어린 것이 형한테 덤빈다고 혼내고 동생하고 싸우면 큰애가 동생을 어린 동생을 이렇게 건든다고 혼났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동생을 찝적집적해서 덤비게 해가지고 패줬습니다.
아마 그것이 한이 맺히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날 집에 와서 제가 이제 동생이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끓여주고 잠자기 전에 사과를 했습니다.
재건아 형은 너를 참 사랑한다. 형이 너한테 어렸을 때 잘못한 거 용서해줘 그랬더니 동생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용서를 안 해줬습니다.
합격자 발표가 돼서 동생을 데리고 그 신촌에 있는 학교를 갔습니다.
동생이 보니까 가슴이 덜컥 해서 고개를 떨구고 떨어졌구나 그러는 겁니다.
저는 제 눈에 동생 이름이 너무 잘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재권아 축하해 합격했다 하고 안아줬습니다. 동생은 어디 나 떨어진 줄 알았어 이렇게 찾다가 결국 자기 이름을 봤습니다.
금요일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동생이 하는 말이 형 내일 교회 어디가 그래서 어 이게 무슨 소리야? 어 나 좀 교회가 좀 멀긴 한데 나랑 같이 가자.
그때부터 동생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은 늦게 예수 믿은 것이 억울해서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신학을 부전공으로 했습니다.
방위라고 하나요 집에서 이렇게 출퇴근하면서 다니는 그것을 하게 됐는데 방위를 하면서 어머니 아버지를 앉혀놓고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를 전도했습니다. 형은 유학을 가서 교회를 나갔다고 합니다.
근데 지금도 약간 까리합니다.
제가 개척교회를 다니면서
어
21살의 청년 집사가 되었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청년 집사가 되니까 수요 예배도 나가고 토요일 청년부 예배도 나가고 주일 학교도 하고 성가대도 하게 됐습니다.
여름방학 때는 인형극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손가락으로 하는 인형인데 두통이의 마음 다윗과 골리앗 이런 걸 해서 인형극을 하면서 전도도 했습니다.
가장 제가 감동 깊게 개척교회를 섬겼던 기억은 목사님과 사모님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 두 분이 아직도 자립하지 못한 그 개척교회에서 날마다 얼마나 성실하게 기도하는지 얼마나 말씀 준비를 철저히 하는지 그 말씀대로 본인들이 살아내시려고 하시는지 한 영혼 한 영혼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런 것들을 너무 가까이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인 수가 없다 보니까 너무 가까이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억이 제가 마다가스카르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어떤 그런 모델이 그분들이 되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카시아나무 같은 절을 감싸고 있는 정금 같은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의대를 다니는 동안에 평생 동지를 만났습니다. 처음에 의대에 입학하니까 너의 꿈이 뭐냐 이렇게 묻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의료 선교사가 되어야만 해 안 그러면 난 이제 지옥 간다는 말은 빼고 의료 선교사가 되어야 해 그랬더니 재훈아 의료 선교사 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랬습니다.
그 당시에 저희 학년에서 의료 선교사가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한 15명 정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한 140명쯤 됐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조사를 해봤습니다.
모든 학년에 다 10명 이상 의료 선교사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실제로 선교사가 된 사람은 전 세계에 한국 의사로서 선교사가 된 사람은 열 손가락에 뽑을 정도밖에 안 됐습니다.
왜 그럴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와 함께 우리 서로 돕자 우리가 이 의료 선교의 꿈을 포기하기 쉬운데 서로 지켜주자 그렇게 해서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저희가 이제 캠퍼스 찬양 모임도 하고 선교사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1일찻집도 하고 그룹 과외도 했습니다.
그룹 과외를 이렇게 친구들끼리 나눠서 파트별로 나눠서 가르치니까 인기가 되게 좋았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들한테 차도 사드리고 오토바이도 사들이고 선교비도 많이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친구들이 우리 회비를 모았습니다. 회비를 모았는데 우리는 두 가지를 꼭 해야 된다 하나는 교회에 11조를 해야 되고 회비를 11조를 내야 된다.
그러니까 그 회원들이 모집이 많이 되지 않았습니다.
소수 정예의 회원들이 지금까지 저희를 위해서 후원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저의 굉장히 귀중한 동지를 만났는데 저의 아내입니다.
아
제가 그동안에 다니면서 이쁘고 지혜로운 수많은 이라고 하면 은혜가 안 되니까 몇 명의 자매들에게 아프리카에 같이 가자고 제가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랬더니 잘 다녀오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선교사로 나가고 싶은데 결혼을 하고 가는 게 좋을까요 안 하고 가는 게 좋을까요 하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하고 할까요? 하나님께서 답을 주시지 않고 책을 주셨습니다.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이 쓰신 하나님의 지하 운동이라는 책인데 범브란트 목사님이 공산치하에 있던 루마니아 교회에서 감옥에 가서 있었던 간증을 이렇게 써놓은 책입니다.
그런데 왜 이 범브란트 목사님이 감옥에 갔느냐 사모님 때문에 갔습니다.
사바나라고 하는 사모님 때문에 가셨는데 어느 날 교회에서 루마니아가 공산치하가 되니까 제3자 교회에서 공산당이 지명한 목사가 설교를 하는 겁니다.
거짓 복음을 전하니까 사모님이 목사님 옆구리를 툭 쳐서 당신이 가서
예수님 얼굴에 있는 모욕을 씻어주세요.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이 또 뚜벅뚜벅 광대상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예배가 끝나니까 교회 안에 왔던 그 뭐라 그러죠? 이렇게 경찰 비밀 경찰들한테 그 자리에서 잡혀서 감옥에 간 겁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아프리카의 선교사 아내 되려면 적어도 이 정도 배짱은 있어야 되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내는 결혼의 유일한 조건이 하나님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남자였습니다.
그래가지고
남편을 사지로 보낼 수 있는 여자라면 선교사 될 선교사 아내 될 자격 있다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결혼을 했습니다. 우리 아내가 실제로 사지로 남편을 잘 보냅니다.
저희가 그 마다가스카에 처음 갔을 때 노엘리라고 하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노엘리가 성탄절날 태어나서 이름이 노엘리입니다.
성서 유니온하고 함께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 노엘리가 선교사들한테 편지를 보냈습니다.
하나님 내일이 당신 예수님과 나의 생일인데 나한테 생일 선물을 주려면 저 무당 좀 치료해 주세요.
그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를 남아공에 있는 어떤 선교사가 보고 저한테 연락을 했습니다.
닥터이 내가 어젯밤에 기도하다가 성령의 음성을 들었는데 니가 가서 고쳐주래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때 우리 팀 리더한테 상의를 했습니다.
가야 될까요? 저 선교사가 저렇게 말하는데 저 말을 믿어도 될까요?
우리 팀 리더가 우기라서 비가 너무 많이 오니까 길이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내는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갔습니다.
갔는데 길이 비에 쓸려나가서 도로가 패여가지고 절벽이 됐습니다.
아슬아슬하게 빠지지 않고 돌아서 갔습니다. 내리막길에서 차가 미끄러져서 그 수로에 빠졌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차가 빼지를 못해서 밤새 찻속에 있었습니다.
그다음 날 아침에 비가 그치긴 했는데 여전히 길은 미끄러워서 차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니 그 무당을 치료해주러 가야 되는데 차가 이렇게 꼼짝을 안 하고 있으니 어떻게 치료해 주러 갑니까? 기도하고 시동을 걸었더니 차가 빠졌습니다.
그래서 그 무당을 만나러 갔습니다. 무당은 다리에 궤양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정체성 궤양이라고 그래서 뭐라 그러죠? 정맥 울혈성 궤양 같은 겁니다.
제가 해준 거는 별로 없습니다. 그 탄력붕대로 잘 감아줬습니다.
나았을까요? 안 나았을까요? 나았죠.
노엘리가 편지를 보냈습니다. 몇 주 후에 이 무당이 치료가 돼서 자기 성경공부 반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답장을 보내주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저한테 조금씩 조금씩 믿음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주 신실하고 용감한 남성분들에게 하는 이야깁니다.
아내를 맞이하시려거든 조심하셔야 됩니다. 각오가 좀 있으셔야 됩니다.
특히 그 아름다운 여자들이 갈수록 강해져서 아줌마가 됩니다.
아내와 우리의 같이 기도했던 동지들은 아카시아 나무 같은 저를 정금같이 싸는 정금이 아니었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사람들뿐만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제가 선교사가 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주셨습니다.
제가 처음 의사가 되어서 경북 예천군 호랑이가 운다는 뜻을 가진 호명면에서 공중보건일을 했습니다.
아주 환자가 얼마 안 오는 그런 동네였습니다. 아침에 면사무소 있는 대로 차가 나오면 밤에 들어갈 때 차가 한 번 있기 때문에 바쁘신 그 농부들께서
시간이 없어서 보건지소를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동 진료를 했습니다. 각 리마다 일주일에 한 번 두 번씩 계획을 짜서 찾아가서 환자들을 봤습니다.
한 번 갈 때마다 수백 명씩 환자를 봤습니다. 환자를 보고 나서 보건지소에 오면 제가 치료한 게 맞았나 틀렸나 의심을 했습니다.
제가 환자를 치료할 때는 굉장히 능력 있는 의사인 척하고 약을 줬지만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죽어라고 공부를 했습니다. 잘못 처방한 거는 다음에 가서 지난번 약이 조금 안 됐죠.
이걸로 바꿔드리겠습니다 하고 몰래 또 약을 바꿔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수원 가족교육협회로 임지를 옮겼습니다.
수원 가족계획협회에서는 제가 하는 임무가 있었는데 경기도 내에 있는 모든 직업 여성들의 성병 관리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성병에 대한 강의를 정기적으로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가족 계획하고 가난해서 돈이 없는 산모들의 출산을 돕는 일을 맡아서 했습니다.
이게 마다가스카르에서 이동 진료할 때 성병 환자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저는 그 당시에 이게 무슨 뭐 선교의 준비인가 이런 걸 상상도 못했는데 미리 이렇게 준비시켰습니다.
이동 진료도 제가 마다가스카르에서 이동 진료를 했는데 너무 쉬운 거예요.
공중보건이 때 해봐서 또 다른 경험이 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외과 레지던트와 펠로우를 했습니다.
레지던트 때는 항상은 아니지만 침대에 어떤 때는 침대에 누워서 자본 게 14시간 일주일에 하루가 아니고요.
일주일에 14시간 잔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고단하게 일을 한 거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이동 진료할 때 환자들이 끊임없이 와도 지출 줄 모르고 이렇게 일할 수 있는 어떤 그 끈기를 심어줬던 것 같습니다.
펠로우는 세브란스 외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저를 아프리카 보내신다고 위장관 대장학문 간담도 유방갑상선 소아외과 파트의 펠로우를 하게 해 주셨습니다.
원래 그 펠로우 전 전인가요? 이런 과정은
위장 위암 전문의 대장암 전문의 이렇게 훈련을 받는 건데 저를 위해서는 이 모든 파트를 다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응급의학과에서 외상 환자를 다룰 수 있었고요.
차병원에서 산부인과 수술을 배웠습니다. 하나님 제가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왜 그런 일을 하고 그렇게 배우는지 잘 몰랐는데 마다가스카르에서 환자를 치료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그 만나는 환자들이 그때 그렇게 배우지 않았으면 치료할 수 없었겠다 그러니깐요.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시기 위해서 되게 인내심을 가지고 준비시켜주시고 훈련시켜주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막 힘들다고 하니까 빨리 구원해 주시는 게 아니라 한 아기가 태어나고 물에 빠져서 죽을 뻔한 애를 갈대상자에 구해주고 그 애가 40살 때까지 살았는데 도망가서 또 40년을 더 있다가 이제 구원하는 인도자로 오게 합니다.
얼마나 답답한지 모르지만 그런 철저한 준비를 하셔서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제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교를 직접 하십니다.
요나 이야기를 보면 저는 이 요나는 정말 선교사들이 꼭 배워야 되는 성경책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서 이렇게 도망갔잖아요.
안 도망갔으면 어쩔 것 같아요. 요나는 아시리아하고 그 당시 유대하고 이렇게 비교해 보면 아시리아는 미국 유대는 어떤 나라라고 해야 됩니다.
이게 여기서는 함부로 말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격차가 나는 나라에 어떤 사람이 가서 아시리아 사람들한테 니네 회개해라 니네 멸망한다 이런 말하면 듣겠습니까? 안 듣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느느웨의 해변가에 엄청나게 큰 물고기가 나왔는데 무엇인가를 싹 토해놓고 갑니다.
근데 그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 있는 게 뭔가 살아서 일어나 가지고 니네들 멸망한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쇼킹하고 놀랬겠습니까? 그래서 그 하나님의 선교 방법은 이런 식입니다.
내가 거역해도 잘못해도 내가 실력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뭔가를 극적인 어떤 것을 만드셔서 선교를 합니다.
앞으로 제가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나눌 이야기들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제가 잘라서 한 것은 하나도 없고요. 많은 동역자들을 보내시기도 하고 또 내가 한 조그마한 일을 엄청나게 부풀려서 사람들이 정말 놀랍도록 만드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개척 교회를 섬기며 공중보건위로 인턴으로 외과 레지던트로 펠로우로 바쁘고 피곤할 때 그 힘든 시간을 지나게 하신 이유는 오랫동안 당신들을 광야에 머물게 하신 것은 당신들을 단련시키고 시험하여서 당신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보려고 그랬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우리 후배들이나 우리 애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빠가 경험해 보니까 그 당시에는 잘 모르지만 오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 일하는 준비야.
그러니까 지금 너한테 어떤 일이 닥쳐도 최선을 다해서 해라.
어렵고 힘든 일일수록 더 좋아 그러면 니가 더 크고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리고 또 미래에 우리가 그렇게 하는 위대한 일은 그 후에 미래의 준비가 됩니다.
저는 그래서 우리가 지금 닥치고 있는 이 순간, 그리고 우리에게 벌어진 이 모든 환경, 이 환경이 혹시 다른 사람들보다 너무 나쁘다고 생각하면 더 좋습니다.
이러한 환경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이런 무대라고 생각하시고 여러분들이 최선을 다해서 주인공처럼 연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연기하는 것이 예수로 옷 입는 겁니다. 우리의 실체를 보여주면 너무나 부끄러워서 보여줄 게 하나도 없는데 우리는 연기할 수 있잖아요.
예수로 옷 입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여지는 게 아니고 옷 입은 예수가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저는 학생 때 과천에서 살았습니다.
결혼하고 장인 장모님이 계신 반포로 이사를 갔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쉽게 부탁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펠로우 때는 장인 장로님이 멀리 남양주로 이사를 가셔서 우리가 남양주로 이사를 갔습니다.
과천 반포 그러면 여러분들 뭐 생각나는 거 없으세요? 아주 비싼 아파트 맞습니다.
문제는 저희가 이사 간 다음에 값이 올랐다는 겁니다.
남양주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결같이 아파트값이 겸손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남양주로 이사를 가니까 애들 셋을 데리고 인천에 있는 교회까지 가기가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너무나 바쁜 의사 외과 의사 생활을 하는데 특별히 그 아내가 애들 셋 데리고 이게 저는 이제 가끔 병원에서 당직 걸려서 못 가면 아내가 손이 두 개밖에 없잖아요.
하나는 없고 하나는 잡고 하나는 잡고 이렇게 갑니다.
너무너무 힘들어서 제가 이제 미안하다. 교회에 미안하다.
그래서 오랫동안 다니던 개척교회를 사임하고
교적을 남양주에 있는 산흥에 있는 한 교회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산흥에 있는 한 교회에 남성교회에 속해서 남성교회 활동을 했는데 거기서 또 굉장히 큰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 남성 교회분들이 제가 병원에서 늦게 끝나고 늦게 오니까 구역 모임을 10시에 시작을 했습니다.
10시에 시작해서 새벽까지 이렇게 모임을 해 주셨습니다.
제가 펠로우를 마치고 이제 선교사로 나간다고 했을 때 그때가 마침 그 교회 50주년
어
개교라고 하나요? 교회 건축 50주년이 된 때입니다.
그래서 저희를 50주년 기념 파송사로 파송 선교사로 전액을 후원해서 저희를 선교사로 보내주셨습니다.
만약에 그 교회가 없었으면 저희는 선교사로 첫발을 내딛기가 굉장히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의사니깐 의사 친구들한테 후원을 쉽게 받아서 잘 갈 것이다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화 걸 시간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그렇게 우리를 후원해 주셔서 저희가 이렇게 선교사가 되었고 오늘 이렇게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다가스카르에 갔는데 제가 외과 의사니까 수술도 하고 치료도 해야 되니까 도구가 있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또 우리 제가 모임을 하고 있는 그 모임에 있는 어떤 분이 산부인과 선생님이셨습니다.
저희 선배님이셨는데 산부인과를 정리하시면서 그 병원에서 쓰던 모든 수술도구며 재료를 저희한테 보내주셨습니다.
이게
제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하실 일이 있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제가 그 도구를 가지고 마나카스크에서 15년이 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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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진료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것이 없었으면 어떻게 환자를 치료하고 다녔겠습니까? 그런데 그 뭐 이렇게 한 번 온 물건이 15년 동안 계속 쓸 수 있겠습니까? 또 한 NGO 단체가 있었습니다.
그 NGO 단체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때 맞춰서 마다가스카르를 직접 오셔서 저에게 저와 함께 환자를 봐주시기도 하고 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시기도 하고 마다가스카르에서 치료하기 굉장히 어려운 환자들이 있으면 그 단체에서 환자를 초청해서 한국에서 치료도 해주셨습니다.
이런 분들을 왜 만나게 하셨을까 이분들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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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들을 하나님께서는 주변에 모이게 해 주시고 엮어주셔서 함께 일하게 해 주셨습니다.
마다가스카르에는 의사가 굉장히 부족합니다. 인구가 3천만 명 되고요 땅은 우리나라 남한의 6배 정도 됩니다.
의학 교육의 인프라도 굉장히 부족하고 국가 재정도 부족합니다.
의사들 대부분이 어디에서 일하겠어요? 돈을 벌 수 있는 도시에만 있고 인구의 80%가 살고 있는 시골 지역에는 의사 만나기가 아주 힘듭니다.
2006년부터 마프라고 하는 미션 에비에이션 펠로우십 그것을 비행 선교단이라고 비행 청소년 말고요.
비행선교단이라는 단체하고 하버에이드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하버에이드는요 수륙 양용 보트 하버크라프트라는 배가 있거든요.
이렇게 수륙양육보트를 타고 복음을 전하는 그런 단체가 있습니다.
그 단체하고 제가 속해 있던 아프리카 오지선교회라는 단체가 세 단체가 연합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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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르 메디칼 사파리라고 하는 공동 선교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마프는 비행선교단은 우리를 오지에 데려다 줍니다.
오지에 가면 활주로가 이렇게 있는 게 아니고 그냥 풀밭에 경비행기가 이렇게 내립니다.
하버에이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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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를 치고 숙식을 해주고 우리를 그곳에서 필요한 곳으로 이렇게 하버 크라프트를 타고 옮겨주는 일을 했습니다.
저희는 약품과 수술 도구와 이런 것들을 챙기고 가서 환자를 치료해 주는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러한 사역을 116번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처음 그 사역을 시작한 곳은 마다가스카르 남서부의 만국기라고 하는 커다란 강이 있는 베르루아라는 곳에서 했습니다.
하루는 하버크라프트를 타고 어느 마을에 갔는데 하버크라프트가 딱 그 모래를 지나서 모래톱에 탁 정박을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혼비백산이 돼서 다 도망갔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지나니까 그 마을에 추장이라고 하나요 족장 촌장 어른께서 젊은 청년들을 잔뜩 데리고 왔는데 청년들이 창하고 도끼하고 칼 이런 거를 딱 차고 왔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딱 우리를 둘러싸고 여기에 뭐 하러 왔습니까? 이렇게 물어보는 겁니다.
제가 나는 의사여서 아픈 사람을 치료하러 왔다. 한 동네 사람들 전체를 봐도 한 300명 400명 정도밖에 안 될 텐데 이 사람들이 평생 한 번도 의사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의사가 뭐 하는 직업인가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한참을 설명했더니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아 딱하니 운비아싸 그러는 거예요.
운비 아싸가 뭐냐 하면 움비는 소라는 뜻이고 아사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소 잡는 일을 하는 사람인데 백정이 아니고요. 거기에서는 소 잡는 일을 굉장히 신성하게 합니다.
피를 뿌리고 옛날로 치면 제사장 역할을 하는데 무당입니다.
그래서 아프면 100% 무당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이제 딱 하니 운비하사 그래서 제가 그날부터 외국에서 온 무당이 되었습니다.
저희 촌장이 우리를 웰컴 하면서 우리를 환영하면서 자기 집에 머물게 해주고 우리가 이제 그 나무에 소를 잡을 때 쓰는 신성한 나무 곁에 이제 진료대를 설치하고 이제 환자를 기다렸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안 옵니다. 그렇지만 동네 사람들이 또 가지도 않아요.
우리들이 뭐 하는지 구경거리 났어요. 그냥 쳐다보고 있고 우리가 가지고 온 그 어떤 것도 다 이 사람들한테는 신기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며 뭐 이런 것들은 정말 이 사람들한테는 정말 신기한 거였습니다.
한참 후에 청년들이 들것에 혼수상태에 빠진 청년을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가 그 청년을 보니까 그 말라리아 테스트를 하니까 두 줄이 쫙 나왔습니다.
말라리아로 이렇게 혼수 상태면 한 80~90% 죽습니다.
저희가 수액을 주고 말라리아 약을 주었습니다. 그다음에 오해는 한 4살 5살 정도 된 남자아이인데 애가 설사를 너무 해서 거의 쇼에 빠진 상태로 축 늘어져서 왔습니다.
그 마을에서 설사가 그렇게 되면 하루 이틀 만에 죽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이제 치료를 했는데 그 설사한 아이에게 먼저 수액을 주고 항생제를 주고 있었더니 애가 한 해열제를 주고 좀 있었더니 애가 조금 지나서 마당을 걸어다녔습니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이제 우리들에게 와서 진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각종 병을 치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날 거기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가 또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환자를 보고 있는데 혼수 상태였던 그 말라리아 환자가 일어나서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평생 한 번도 의사를 만나지 못한 사람이 약을 써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준 그 당시만 해도 말라리아는 저항균들이 많다고 했는데 이 사람들은 평생 한 번도 말라리아 약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냥 우리가 준 약에 너무나 잘 반응을 한 겁니다.
그래서 그 현대 의약품 때문에 제가 아주 영엄한 무당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소 강도들이 한 수십 명이 몰려들었습니다.
마다가스카르 베르루아 지역은 바라 족속이라는 족속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분들은 목동들입니다. 그런데 이 목동들끼리 서로 소를 훔치는 그런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그 소년이 장가를 갈 수 있는 청년이 되려면 마사이 케냐의 마사이족들이 사냥을 해가지고 오는 것처럼 이 사람들은 소를 훔쳐야 합니다.
그래서 좀 어떻게 보면 좀 낭만도 있어요. 이렇게 소를 훔치고 오면 잘 성공적으로 훔치면 그날 맥주 세 병 그리고 젊은 아가씨 한 명을 이제 주면서 너는 어른이다 이렇게 하는 그 풍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어떤 사람들이 소를 돈을 현금을 주고 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이 서로 소를 훔쳐서 팔다가 점점 규모가 커져서 떼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과 소를 훔치려고 하는 사람들끼리 총으로 칼로 창으로 도끼로 이렇게 싸워서 상처가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수십 명의 속 강도떼 같은 사람들이 왔는데 어깨에는 검정실과 빨간 실로 죽음이 피해가라는 부적을 다 붙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이 뛰어다녔기 때문에 엄청난 채취를 풍기면서 돌아왔습니다.
저는 중환 환자부터 치료를 했습니다. 중환 환자부터 한참 정신없이 치료를 하고 있었더니 한 반절 정도 되는 사람들이 사라졌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사라진 사람들은 동네 마을 소를 잃어버린 마을 사람들이었고 이 사람들은 강도였는데 내가 강도를 치료해 주니까 외국에서 온 무당이 강도편이구나 이렇게 생각해서 다 도망갔던 겁니다.
그러니 그런 오해를 풀기 위해서 다음 날 그 사라졌던 환자가 있는 마을로 저희가 찾아갔습니다.
찾아갔더니 동네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원래 누가 외국인이 찾아오는 것도 되게 영광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우리가 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찾아온 걸 보고 굉장히 놀랐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다친 환자들을 다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 마을은 그때부터 우리하고 가장 협조적인 주민들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 크리스탄이 한 명도 없다는 베르루아에 교회가 5개가 생기고 특별히 그 이 소강도에 당했던 마을의 사람은 그러니까 그 베르루아는 군이라고 하면 면 정도 되나요? 면이나 동네 정도 되는데 그 동네에서 처음으로 교회가 생기는 마을이 됐고 그곳 사람들은 예수를 믿느냐고 물어보면 10명 중에 3명이 예수 믿는다고 대답하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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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루아 지역에서 남자들은 소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자들은요 애를 많이 낳으면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통 애를 한 13살 4살 5살 때부터 애를 낳니다.
남편이 없어도 애가 많으면 되게 자랑스러워 합니다.
그리고 애를 많이 낳은 미혼모는 아주 부자한테 시집을 잘 갑니다.
왜냐하면 부자들은 자기가 또 소도 많고 지켜야 되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필요합니다.
딴 사람 말고 자기 자식들이 있으면 되잖아요. 그래서 애를 많이 낳은 여인이 애를 데리고 시집을 오면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그리고 또 얘를 많이 낳기 때문에 다음에 또 얘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을 증명했기 때문에 인기가 좋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자들이 여러 명이 모여서 저한테 왔습니다.
저한테 와서 하는 이야기가 우리도 애기를 좀 낳게 해달라 저한테 애를 낳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겁니다.
제가 무슨 재주로 그래서 도대체 이 사람들 말이 무슨 말인가? 어떤 사람들이
자기네 동네 무당이 너는 평생 아기를 못 낳을 거라라고 했던 여인이 우리한테 치료를 받고 나서 임신을 했다는 겁니다.
자초지종을 살펴보니까 성병에 걸렸었는데 우리가 항생제를 주고 치료한 여인 몇 명이 낳아서 임신을 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막 떼로 몰려와서 애 낳는 약을 달라고 그런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그 현대 의약품으로 이렇게 영엄한 치료를 하기 시작하니까 원래 있던 무당들이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저희가 베이스 캠프에서 환자들을 치료를 했는데 치료를 한 다음에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났습니다.
외국에서 온 무당이 아이의 눈을 빼가고 어떤 사람의 간을 빼갔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눈 수술한 적도 없고 간은 커녕 배를 열어보는 수술을 한 적도 없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제가 언청이 아이를 수술했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 언청이 아이를 수술을 하는데 얘가 마취를 하려니까 너무 이렇게 무서워서 얘가 벌떡 일어난 거예요.
벌떡 일어났는데 얘 머리를 이렇게 천으로 감쌌는데 왼쪽 눈이 천으로 가려져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얘가 벌떡 일어나니까 그 야전 침대에서 이렇게 수술을 하고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삥 둘러서 힐끗힐끗 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얘가 벌떡 일어나니까 우하는 소리가 났었습니다.
그래서 저 사람들 왜 저래 하고 계속 수술을 했는데 아마 그걸 보고 눈을 빼갔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옆구리에 그 간이 오른쪽에 있거든요.
그 사람은 왼쪽을 수술을 했습니다. 왼쪽에 주먹만한 고름 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고름 주머니를 이렇게 돌려내고 그 고름 주머니를 검정 쓰레기 봉지에 제가 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이 간하고 반대편인데도 불구하고 간을 빼갔다고 이렇게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당들은 그런 소문이 난 것을 자기들의 권위를 회복하는 기회로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기 마을에 오면 독살시키겠다는 소문을 공공연히 퍼뜨리고 다녔습니다.
함께 우리랑 일을 하는 마프 디렉터 독일 사람 제이콥이라는 디렉터가 있었는데 외국 사람들은 우리는 너 죽어 이런 말 해도 별로 안 무서워하잖아요.
하도 그런 말 많이 하니까 그런데 이 독일 사람들은 너 죽여 그런 소리를 하니까 굉장히 심각하게 이걸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불러서 다음 달에 미션 그 캔스를 해야 되겠어 닥터리 너는 다시는 베르르아 가지 마 너 갔다가는 독살당할 위험이 있어 그러는 거예요.
근데 그때 제 마음속에 하나님이 너 아프리카에 선교사 된다고 그랬는데 무당이 너 이렇게 협박하면 안 갈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제이코한테 이랬어요. 제이콥 난 선교사야 무당이 그런다고 내가 선교사가 안 가면 어떻게 선교를 하겠니? 나는 죽어도 갈 테니까 가자 지급이 어 그래 그래도 안 되겠는데 그러면서 조건을 걸었습니다.
네가 가서 그곳에 헌병대장 경찰 도지사 시장 마을 어른들한테 너희 팀이 가면 보호해 주겠다는 사인을 받아 갖고 와라.
사인을 받아오면 우리가 계속 거기서 하자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팀을 안 데리고 가고 그 사인만 받으러 저희가 그 베르루아에 다시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이제 각 단체장들을 찾아다니면서 우리를 보호해 주겠다는 사인을 받았습니다.
동네에 갔더니 동네 어른들은 글을 몰라요. 그래서 이게 뭐냐 그러니까 우리가 오면 우리를 보호하겠다고 한다 사인을 못해요.
사인이 없어요. 그래서 손으로 이렇게 우리가 이렇게 해줬습니다.
이렇게 동그라미를 막 몇 개 이렇게 그렇게 해서 우리가 이제 그 베이스 캠프로 이렇게 돌아왔는데 베이스 캠프에 돌아오니까 어떤 한 어른이 아이 환자를 한 명 데리고 왔습니다.
그 아이 환자는 목에서부터 허리까지 고름이 이렇게 가득 찬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미안하다. 오늘은 우리가 약을 안 가져왔네.
다음 달에 우리가 올 테니까 그때 아이를 데려오면 우리가 치료해 줄게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그 어른이 아니 너네가 기도해주면 되잖아 그러는 거야.
저도 여러분같이 이 사람이 크리스찬인가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 크리스찬이냐 물어봤어요. 왜냐하면 그 당시에 거기는 크리스찬이 없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아니 근데 왜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까? 그러니까 너네들 기도로도 치료를 하잖아 이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저희가 이제 의료팀이 이렇게 치료를 할 때 선교팀이 환자들 한 명씩 한 명씩 놓고 이렇게 기도를 해주니까 우리 팀은 기도로 치료를 한다 이런 소문이 났던 겁니다.
그래서 이제 저한테 기도를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갑자기 기도를 내가 한다고 얘가 나을까 생각을 했지만 선교사니까 선교사가 기도를 해달라 그랬는데 안 해줄 수도 없고 그래서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기도가 딱 끝나고 제가 주머니에 손을 이렇게 넣었는데 주머니에 그 물에 타먹는 항생제가 한 명 있는 거예요.
아 이 항생제가 왜 여기 들어있지 저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나중에
생각이 났는데 우리 마다가스카르에 보면은 공항에 가는 길에 깜씨기네 주막집이라는 한인 식당이 있습니다.
그 집 아저씨가 자기네 막내딸이 편도선이 부어서 많이 아프다고 그래서 전화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러면 내일 아침에 어차피 공항 가는 길이니까 가다가 약을 주고 갈 테니까 기다리세요 했는데 제가 깜빡 잊고 주머니에 약만 넣고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약이 있으니까 그 약을 물에 타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사실은 그런 약을 한 14병쯤 먹어야 낫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음 달에 저희가 이제 의료팀을 꾸려서 이번에는 비행기로 안 오고 차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베르르가 들어가기 전에 강을 건너는 그 전 마을에 판자카나라고 하는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까지 저희가 왔더니 갑자기 누가 우리 차를 세우는 겁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도 우리를 독살한다는 위험이 없어졌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저희는 겁이 덜컥 났습니다.
아무도 차에서 꼼짝을 못하고 있는데 어떡합니까? 제가 대표니까 제가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이 남자가 뭐라고 하는데 저도 겁이 나서 하늘이 하얗게 느껴지는 걸 느꼈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그랬는데 내가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까 이 남자가 어떤 아이를 부르더니 옷을 막 벗기는 겁니다.
그 아이가 보니까 한 달 전에 왔던 그 아이 그런데 그 피부병이 어린아이 피부같이 싹 나아버린 겁니다.
문제는 제가 항생제를 안 주었으면 진짜로 기도로 치료한 영엄한 선교사가 되는 건데, 항생제를 줘서 이게 기도 때문에 나왔는지 항생제 때문에 나왔는지 아직도 미스테리입니다.
아마도 주님께서 나의 기도의 능력이 조금 부족한 것을 아시고 항생제를 좀 더해주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이제 그 마을을 찾아갔습니다. 어떤 마을을 찾아갔더니 그 마을의 이장이 우리한테 니가 그 피부병 걸린 아이를 치료한 그 의사냐 이렇게 물어보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다고 하니까 우리를 동네 그 중앙에 딱 데리고 가서
그 동네에서 가장 좋은 의자들을 쫙 놓고 상을 해놓고 동네 여자들이 모여서 전통 춤을 막 추고 환영식을 한 다음에 닭하고 쌀을 가져와서 우리한테 이렇게 줍니다.
그리고 아주 진수성찬을 해서 진수성찬이라는 게 이제 닭을 삶아주는 겁니다.
진수 성찬을 해서 우리한테 대접을 하고 우리가 치료를 합니다.
다음 마을에 갔는데도 여전히 똑같이 니가 그 피부병 아이를 치료하는 의사냐 이렇게 물어보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다고 하고 이제 우리가 치료를 하고 베이스 캠프에 돌아와서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동네에서 뽑은 레아씨라고 하는 스텝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스텝이 그러는 겁니다.
이 아이가 피부병이 걸린 지 3년이 됐는데 베르루아의 온 무당이라는 무당은 다 찾아가서 치료를 해봤지만 안 됐다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기도하고 난 다음 날부터 낳기 시작하더니 이렇게 낳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닥터리가 아주 영엄해서 이 동네 무당들이 우리를 독살하기로 했는데 저 사람을 잘못했다가는 자기가 저주를 받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우리를 감히 독살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어느 날 저희가 또 환자를 치료하는데 그 베르루아 지역에서 가장 센 무당이 저희를 찾아왔습니다.
암바투불이라고 하는 동네에서 무당이 찾아왔는데 바두부리가 무슨 말이냐면 이 바라 족속은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 위에다가 돌을 막 쌓아놓니다.
그러면 이제 시체가 다 썩고 뼈가 다 이렇게 이렇게 진토가 되고 나면 그 흙을 항아리에 이렇게 담아놓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대표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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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 같은 돌을 하나 이렇게 세워놓니다. 그리고 다음 사람이면 돌을 세워놓고 그런데 그 돌을 둥그렇게 세웁니다.
바투부리가 돌이 둥그렇게 있는 마을 그런 뜻입니다.
일종의 종묘 같은 곳이에요. 그런데 특별히 이 무당은 그 베르아에 옛날에는 다 나름대로 왕이라고 부르는 판자카라고 하는 그 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왕족의 종묘가 있는 곳에서 무당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오니까 동네 사람들과 이런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예를 표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왜 왔냐면 양쪽에 탈장이 있어서 옵니다.
아무리 지가 죄송합니다. 아무리 영엄한 무당이래도 이런 수술을 해야 되는 그런 병은 치료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왔는데 저희가 이제 수술 동의서를 받아야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 그 무당님 보호자분 계세요. 이렇게 하니까 12살 먹은 꼬마 여자애가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아니 너 말고 할머니 옷이라 그래라 그러니까 이 여자가 정색을 하고 저한테 제가 부인입니다.
저희가
여러분들 놀랐죠. 저도 그랬습니다. 너무 놀래서 한동안 말을 못하다가 어떻게 된 거냐 물어보니까 이 12살 여자 애가 귀신이 들렸는데 무당의 귀신을 쫓아낸 다음에 이 여자의 부모한테 소를 두 마리인가를 갖다 주고 부인을 삼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소녀가 아니죠. 이제 그 무당의 부인한테 수술 동의서를 받고 이제 우리가 수술을 했습니다.
국소마취로 수술을 하니까 가끔은 따끔거리고 아프기도 할 텐데 이 무당은 수술이 끝나는 동안 정말 꿈쩍도 안 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볼 때도 약간 경외심이 들었다고 해야 되나요? 좀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저희가 이제 수술받은 환자에게만 그냥 일반 진료받은 사람들은 그 사영리 같은 쪽복음을 주고 수술받은 사람한테는 성경책을 주고 있었습니다.
무당도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성경책을 주는데 아까 그 사진 좀 보여주세요.
무당이 성경책을 봤더니 손을 사시나무 떨듯이 떠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그렇게 의연하던 이 사람이 왜 사시나무 떨듯이 떠는가 그래서 시간이 많이 갔군요.
죄송합니다. 그래서 이게 무슨 일인가 이렇게 물어봤더니 이 무당이 갑자기 내가 지금부터는 우디가시로 약을 만들지 않겠다.
보통 무당이 이제 사람들이 아프면 약을 주잖아요.
그 약을 만들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보는 겁니다.
내가 정기적으로 그 마을에 제사를 지냈는데 내가 그 제사를 지내도 되냐 안 되냐 이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 그 무당에 내가 선교사인데 제사를 지내라고 할 수도 없고 저렇게 부탁을 하는데 안 하라고도 할 수도 없고 이러는 상황에서 같이 갔던 그 전도팀의 말라가시 목사님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지금 이 사랑하는 여인이 있지 않냐 예 있습니다.
당신이 이 여인을 사랑하는데 이 여인이 당신 말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면 어떻겠느냐 무당의 눈빛이 바뀌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는데 당신이 창조주 하나님 말고 다른 신을 섬기면 어떻겠느냐 그러니까 무당이 한참 있다가 알겠습니다 하고 일어나서 아내의 손을 잡고 갔습니다.
가기 전에 저희한테 우리 마을에 꼭 와주십시오 그랬습니다.
우리는 또 속으로 독살하려나 이렇게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아마 치료를 받았으니까 융성한 대접을 해주겠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가려고 할 때마다 비가 오고 그래서 못 갔습니다.
그 마을까지는 걸어서 하루 반을 가야 됩니다. 몇 년 후에 오랜만에 제가 베루라에 다시 갔는데 동네 사람들이 저한테 와서 그러는 겁니다.
닥터리 무당이 닥터를 엄청 찾아다녔어 왜 저는 또 무당이 재발해서 화나서 저를 찾는 줄 알고 왜 그랬더니 무당이 성경책 있으면 좀 더 달래 그래서 제가 이제 마프에 전화를 걸어서 한 박스에 20권 들어있는 성경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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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달라고 했습니다. 저희가 현대의학의 도움으로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환자들을 치료할 때 정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아
도우심이 있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특별한 훈련을 받게 하신 이유는 그 환자들의 기도와 고통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이 그 환자들과 그 장소에서 딱 그 시간에 만나게 해서 치료받게 해주신 줄로 이렇게 믿습니다.
제가 의료 선교를 하게 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저를 비난했습니다.
닥터리가 하는 것은 선교가 아니고 봉사활동이야 복음을 전해야지 그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저한테 복음을 전하라고 하면 저를 목사를 만드시지 왜 의사를 만들었겠냐 저는 또 이렇게 반박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다 뜻이 있어서 그런 거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다고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한 부족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마다가스카르 남서부에는 지금도 나무를 막 이렇게 막 비벼서 불을 피우는 부족이 있습니다.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는 미케아 부족이라는 부족이 있는데, 그 미케아 부족은 그 미케야라고 하는 숲 속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미케아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주누르라고 하는 말라가시 선교사가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미케아 부족은 다른 사람이 숲에 들어오는 걸 무척 경계하고 만나는 것도 싫어합니다.
누가 들어가면 다 숨어버리거나 자기들끼리 막 특별한 리듬의 신호를 보내서 경계를 합니다.
그래서 이 준누르 목사가 그 미케아 숲 속에서 한 7km 떨어진 마리 마시구리 족속이 있는 마을에 살면서 이제 접촉점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시꾸리 족속들이 외부에서 온 이 주누르 목사와 그 동료들을 싫어했습니다.
준우 목사가 아내하고 같이 온 선생님 한 분하고 이렇게 조그마한 학교를 했습니다.
자기 아들 3명, 그리고 동네 애들 4명 해서 7명 있는 학교를 했는데 어느 날 그 선생님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준누르의 막내 아들이 마당에서 막 거품을 물면서 이렇게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마프 비행선교단이 주누르를 좀 서포트하고 있었는데 주누르에게 그 햄 무전기를 주어서 주누르가 sos를 보냈습니다.
마프가 주누르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닥터리가 같이 가서 그들이 건강한지 안 건강한지 좀 살펴봐 줄 수 있겠니 그래서 제가 이제 같이 갔습니다.
그리고 이 가족을 수도 타나로 데리고 와서 저희 집에 며칠 머물렀습니다.
머무르면서 주누르가 제가 외과 의사이고 선교사라는 걸 알고 자기 사역을 좀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제 안자베트룽그라고 마시꾸리가 사는 그 마을에 내려갔습니다.
저희가 가서 치료를 하니까 난리가 났습니다. 현대의학의 도움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말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많은 무당들이 주누르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칸드레라고 하는 미케아 숲속의 친 사람인데 그 마을에 와서 살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어느 날 미케아 족장 중에 한 사람인 판다라가 큰 위험에 빠졌다고 주누르한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면 여러 유엔 단체에서 마다가스카르의 숲을 보호하기 위해서 많은 자금을 줬는데
이 사람들이 정부에서 그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화전민들 숲에 불지르는 사람들을 다 내쫓는 정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판다하라 족속도 화전민으로 여겨져서 쫓겨날 판이었습니다.
이때 주누르가 그 관리들 앞에서 이 판다라 부족은 숲을 사랑하는 부족이고 불도 안 가지고 다닌다 이렇게 나무로 비벼서 피는 사람들이지 뭐 불 지르는 뭘 들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변호를 해주어서 이 사람들이 이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숲속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아프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주누르가 저한테 숲에 들어가서 진료를 해달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서 이제 진료를 해주니까 또 난리가 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해열제 같은 걸 먹고 막 열이 펄펄 끓고 머리 아프던 사람들이 이 사람들의 표현은 그렇습니다.
우리가 해열제 먹으면 머리가 개잖아요. 머리가 개는 느낌을 위에서부터 이렇게 발끝으로 신이 내려오는 느낌이라고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러니까 막 얼마나 그 영엄해요. 이 사람들이 볼 때는 그러니까 문제는 이 판다하라랑 같이 살고 있는 무당이 괴로워졌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섬기고 있는 신의 이름이 뚠뿌니 알라라는 신이거든요.
번역하면 숲의 주인이라는 뜻인데 숲의 주인이 화가 나서 너희를 떠났기 때문에 나도 떠난다 하고 이 무당이 떠나버렸습니다.
그런데 무당은 몇 주 후에 바닷가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무당이 떠난 다음에 실제로 이 미케아 숲 속에서 나쁜 일이 생겼습니다.
이 약탈을 당했습니다. 이 약탈을 당했는데 이 중에서 가장 아끼는 게 뭐였냐면 람부라고 하는 멧돼지 뼈를 다 뺏겼습니다.
지금 그 판다하라 추장 뒤에 뼈들이 이렇게 쌓여 있는데 이 사람들은 왜 뼈를 거기에 쌓아놓냐면 이 사람들의 세계관이 있습니다.
자손들은 조상의 뼈가 있는 곳에 모여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뼈를 거기다 두면
멧돼지의 자손들이 그 주변에 모여 살기 때문에 사냥감이 많을 거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멧돼지 뼈를 약탈당하고 나서 멧돼지가 없어진 겁니다.
제가 볼 때는 숲이 파괴돼서 환경 문제로 멧돼지 개체 수가 줄어들어서 없어진 거라고 생각을 하지만 이 사람들은 멧돼지 뼈를 약탈당해서 사냥감이 없어졌다고 단단히 믿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제 저희가 그곳에서 그 환자들을 치료해 주는데 어떤 아이가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고기를 못 먹어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의 영양 상태가 완전 나쁜데 그 아이도 영양 상태가 너무 나빠서 탈장이 있었는데 온 장이 탈장으로 다 빠져나왔습니다.
이 아이를 수술해야 되겠다고 하니까 아주 저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잖아요.
그래서 닥터리가 수술해줘라 이렇게 이제 뭘 하든지 제가 얘를 수술을 하든지 뭘 하든지 그냥 저한테 맡기는 겁니다.
근데 저희가 이제 마취를 설명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 아이가 너무 어려서 마취를 전신마취를 할 건데 우리가 마취를 하면 이 아이는 잠이 들 것이다.
잠을 자고 통증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수술을 하고 잠시 후에 애가 깨어서 올 것이다 이렇게 설명을 했더니 엄마가 깜짝 놀래서 아이를 안고 도망가는 거예요.
이게 무슨 일이지 저희도 영문을 몰랐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이 와서 웅성웅성해서 내가 설명 다시 했습니다.
우리가 마취를 설명했는데 그 엄마가 애를 안고 숲으로 도망가 버렸다.
근데 나중에 한참 설득을 해서 판다하라가 이제 수술을 맡겼는데 도망간 이유가 뭐냐면 제가 설명 이 사람들은 통증을 모르는 깊은 잠 그게 죽음이에요.
죽음. 그래서 제가 이 사람들 말로 어떻게 해석되었을까 이렇게 통역을 해드리면 내가 이 아이를 죽여서 통증이 없게 하고 수술한 다음에 다시 살려서 보내줄게 이렇게 설명을 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엄마가 놀란 거예요.
그런데 이제 한참 설명을 했더니 그 추장이 판다하라가 죽든지 살든지 닥터리니가 마음대로 해라 그래서 이제 수술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가 무사히 잘 살아서 돌아오니까 동네 사람들이 막 박수를 치고 난리가 났어요.
그리고 이제 진료가 끝나고 우리가 이제 돌아가려고 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저한테 이렇게 한마디 하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요한복음 3장과 1장의 말씀을 합쳐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해서 그의 아들을 보냈는데 그 아들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줬다.
요약하면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이 판다라 족장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노래를 하는 겁니다.
노래가 다 끝나고 하는 얘기가 오늘 닥터리가 이야기한 그 신이 우리 숲에 왔다.
첫 번째 두 번째 닥터리는 지금부터 내 아들이다. 그래서 제가 미케아 족속의 이제 한 멤버로 편입이 됐습니다.
그때부터는 제가 아무 때나 숲에 가도 아무도 경계를 하지 않고 또 이 사람들도 언제든지 저한테 와서 뭘 달라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됐습니다.
어느 날 판다라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저희가 진료팀을 꾸려서 가려고 하는데 시간이 좀 지체됐습니다.
시간이 지체되는 동안 판다라가 돌아가셨습니다.
저희가 갔을 때는 판다라 족속의 한 반절은 숲으로 가 있고 자녀들과 동생들, 부인들 이렇게 직계 자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저는 판다라 무덤 곁에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가 부활한 이야기를 이들에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판다라가 숲속에서 닥터리가 전했던 그 신 예수를 믿기로 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그중에는 판다하라가 노래하고 춤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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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았던 증인들도 있어서 그들이 그 사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씩 당신들은 그 판다라가 말한 그 신을 믿겠느냐 했을 때 이 사람들이 다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손들고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 새로운 신을 문비아사가 없어서 어떻게 섬기는지 모른다 무당이 없어서 어떻게 섬기는지 모른다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그 판다라 가족을 위한 사경회를 했습니다.
주누르 목사와 제가 일주일간 가르치고 안자베트룽구에 있는 교회가 매주 예배가 끝나면 이 미케아 사람들에게 가서 성경을 가르쳐주기로 했습니다.
안자베트룽구 사람들이 이 미케아 교인들한테 안자베트룽구 교회로 와서 예배를 드리면 어떠냐 권유를 했는데 사람을 꺼려하는 이 사람들이 안 갔습니다.
그래서 미케아인을 위한 교회를 짓기로 했습니다.
코로나가 시작된 지 1년 반이 지나고 저희가 한국에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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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에 있는 한 교회 집사님을 만났습니다. 이분들은 인도에 교회를 지으려고 하고 있었던 분인데 인도의 교회 지을 길이 막혀가지고 저희를 만나서 마다가스카르의 교회를 하나 짓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 미케아 교회를 지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그렇게 이동 진료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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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을 돕기도 했지만 알겠습니다. 저희가 이제 마다가스카르 대학병원을 위해서도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에는 마다가스카 코로나 대응 사업을 했고요.
그 덕분에 마다가스카르 대통령을 만나서 제가 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알려주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자기도 마다가스카 오지의 이동 진료를 통해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은데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와 같은 사람을 300명 키우도록 허락해달라고 부탁을 해서 대통령께서 바로 비서실장한테 이렇게 연락을 해서 대학 학장님하고 의과대학 학장님하고 보건부 장관님을 불러서 닥터리가 말한 프로젝트를 해라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희는 코이카의 지원을 받아서 저와 같은 의사를 양성하는 교육과정 개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교육과정 개발 사업이 끝나면 양성 사업을 해서 마다가스카르 114개 디스트릭트에 약 300명의 의사들을 양육하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앞으로 이런 일들을 더 잘하기 위해서 플랫폼 사역을 하려고 합니다.
제가 300명의 제자를 키우려고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300명을 키울 수 있는 선교사 300명을 섬기는 게 훨씬 더 이득이겠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들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다 동원해서 선교사들이나 단기 봉사자들이나 중장기 봉사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 사역을 하려고 합니다.
정리하고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게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께서 저의 인생에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너의 믿음은 가짜야라고 시작한 저의 인생이 하나님께서 일일이 일일이 간섭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저는 느끼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끼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베드로처럼 투신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러한 투신이 길이 우리에게 오게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환경과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우리를 정금같이 싸는 옷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예수 그리스도라 생각하시고 여러분들이 일하시면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아버지 하나님 부족한 제가 오늘 주님께서 인도하신 것을 이렇게 나눴는데 주님께서 함께하여 주셔서 우리 다니엘 기도회에 참석하시는 모든 분들이 매일매일 인도하시는 주님의 세세한 인도하심을 느끼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고 날마다 승리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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