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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철 목사 4일차 2023다니엘 예수님께서 내를 보셨다 본문

다니엘기도회/목사 다니엘기도회 간증

양진철 목사 4일차 2023다니엘 예수님께서 내를 보셨다

generalQS 2023. 12. 2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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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하루만 볼 수 있다면 딱 하루만 보게 된다면 꼭 하고 싶은 세 가지는 무엇인가요? 태어나서 한 번도 눈으로 본 적이 없던 중딩 고딩 시각장애 청소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사랑하는 엄마와 동생의 얼굴을 기억해서 평생 동안 이렇게 머릿속에 그 이미지를 담아두고 싶고요.
또 두 번째는 사람들이 맨날 너무 이쁘다 너무 진짜 이쁘게 생겼다 이렇게 하는 그 누나들의 얼굴을 한번 직접 보고 싶어요.
되게 이쁜 게 뭔지

되게 궁금해요. 첫 번째는 이제 제 생긴 그런 모습을 이렇게 보고 싶은데 평소에 이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겼다 어떻게 생겼다 이렇게



얘기를 해 주시는데 많이 뭐 그런 거를 듣는 게 아니라 제가 거울로 이렇게 제 얼굴을 보면은 제가 또 제 모습을 또 알 수 있지 않을까 해갖고 이렇게 제 생긴 모습을 보고 싶고요.

첫 번째로 하고 보고 싶은 것은 주변에 구마을 사람들 얼굴인데요.
일단 아무래도 맨날 목소리만 듣다 보면 이 사람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하는 것도 있는데 그거랑 비슷할지 다를지도 궁금하고 평소에 제가 학교에서도 그렇고 보이는 친구들한테 많이 도움을 받는데 오히려 제가 잘 보이게 되면 그런 친구들도 많이 도와주고 저처럼 평소에 그냥 놀던 친구들한테도 많이 좋은 사람이 될 수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싶은데 인터넷에는 아무래도 하루라는 시간 안에 제일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은 인터넷 같아요.
저는 일단 많은 제 많은 정보가 담겨 있고 찾을 수 보고 싶은 것은 무조건 검색하면 바로 사진으로든 영상으로 볼 수 있으니까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을 눈으로 보고 싶다고 남이 아니라 내가 내 얼굴 직접 거울로 보고 싶다고 딱 하루밖에 볼 수 없다면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보고 싶던 것들을 최대한 하루 만에 많이 보겠다고 그렇게 고백한 우리 다시청 친구들의 고백이 마음에 많이 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이 귀한 다음 세대 시각장애 청소년 청년들과 함께 즐겁게 사역하고 있는 양진철 목사입니다.
저는 20대 초반에 시각장애인 사역의 소명을 받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 귀한 길을 걸어오게 하셨습니다.
시각장애인 사역을 하는 저는 목회자인데 오늘 와서 알게 되었는데 저는 시각장애인 사역을 하는 목사이지만 오늘 25분이나 되는 농인 사역 청각장애인 사역을 하시는 우리 농인교회 목사님들이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함께 환영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우리 귀한 우리 25분의 농인교회 목사님들과 또 저와 같은 시각장애인 사역자들이 하나 되어 이 땅에 영적인 눈이 어두운 영적 시각장애인들과 영적 귀가 어두운 영적 청각장애인들의 그들의 영의 눈을 띄어주는 그 사역 우리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입니까? 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저의 부족한 간증과 또 이렇게 말씀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부산에서 태어났는데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불교 종립 고등학교 중에 한 곳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불교 종립 고등학교에서 제일 큰 동아리가 있었는데 그게 뭐냐 하면 불교학생회 동아리였습니다.
저는 그 불교학생회 동아리에 가입되어 있는 학생이었고 그냥 가입된 게 아니라 거기서도 가장 높은 위치의 임원단 활동을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전국 불교학생회 행사와 활동들을 열심히 참석하는 그야말로 저는 그 불교계의 촉망받는 그런 다음 세대였습니다.

여러분 혹시 그 백팔배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나는 백팔배 예전에 좀 하고 오늘 다니엘 기도에 왔다 하시는 분 손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예 꽤 좀 있으신 것 같네요.
저는 이 108배를 거의 10분 만에 거의 거의 매일 아침 운동으로 이렇게 해버리는 그런 학생이었고요.
여러분 혹시 삼천배라고 들어보셨습니까? 3천배 불상 앞에서 저를 3천번 하며 이렇게 발언을 드리는 그렇게 그 3천 배를 저는 9시간에 걸려서 9시간이 넘게 걸려서 했던 그런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불교에도 여러분 캠프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보면 성경학교 캠프, 주일학교 캠프, 청년부 캠프 이런 것처럼 불교도 불교학교 캠프가 있는데요.
아무나 못 가는 캠프가 있는데 이게 임원들만 갈 수 있는 캠프입니다.
전국 불교학생회 임원 수련회가 있는데 거기 가서 수료증 저 받았던 학생이었고요.
불교 사경 공모전이라고 해서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이렇게 이 불경의 한 절 한 절을 묵상하고 음미해서 이것을 받아 쓰고

또 거기다가 이 관세음보살 또 아미타 부처 또 연꽃 같은 거 이런 것들을 정성스럽게 그려서 이렇게 제출하는 그런 대회가 있습니다.
저 그거 매년 나가서 상 받는 학생이었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청소년 집회 때 우리 아이들에게 했더니 그게 말이 되냐고 목사님 저기 있던 분이 어떻게 여기 와서 설교하실 수 있냐고 그게 말이 되냐고 해서 그럼 말이 돼 하면서 제가 PPT로 원래 그때 받았던 상들을 청소년 집회 때 다 가지고 옵니다.
그런데 오늘은 다니엘 기도회이니 여러분 굳이 갖고 나오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오늘은 그냥 나왔습니다.
여러분 혹시 그 반야심경이라고 아십니까? 반야심경 기독교에 주기도문이 있다면 불교에는 반야심경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 반야 신경을 매일매일 읊었던 그런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바냐 신경 끊은 지가 지금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 지금도 다 외웁니다.
그래서 다니엘 기도에 와서 이 바니 신경을 한번 고백해 볼까 하다가

아니다 아니다 불경을 고백했다가 혹시 불경스럽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아서 이것은 다음에 청소년들이나 청년들 만날 때 목사님 진짜예요 할 때 그때 보여드리도록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물 한잔 마시고 해도 될까요? 네

제가 이토록 이 108배를 제가 이토록 3천배를 제가 이토록 반야심경을 그것을 붙들며 살았던 이유는 그러니까 즉 부처를 이 관세음보살을 붙들고 살았던 이유는 사실 제 안에 참 많은 한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학창시절에 말할 수 없는 그 상처들이 제 안에 가득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 올라갔을 때로 기억을 합니다.
하루는 하고 이렇게 이제 눈을 떴는데 눈이 부시니까 이제 한쪽 눈을 먼저 뜨지 않습니까? 한쪽 눈을 먼저 떴는데 분명히 어제까지 있던 제 방의 책상이 안 보이는 겁니다.
이상하다. 그리고 다음 날도 하고 눈을 떴는데 눈이 부시니까 한쪽 눈을 먼저 뜨지 않습니까? 한쪽 눈을 먼저 떴는데 분명히 어제까지 있던 제 방의 책상이 안 보이는 겁니다.
근데 또 두 눈을 뜨니까 또 보이는 거예요. 이것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계속되면서 뭔가 잘못됐구나

뭔가 이상이 있구나 해서 동네 안과에 가게 되었고 동네 안과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급하게 소견서를 써주시더니 이거 큰 병원 가야 된다고, 이거 대학병원 가야 된다고 해서 대학병원에 갔습니다.
그리고 안과와 관련된 모든 검사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 안과와 관련된 검사를 받은 분들은 잘 알 겁니다.
쉬운 것 같지만 쉽지 않고 힘들고 어렵습니다. 어려운 검사 받았으면 결과라도 좋아야 되는데 그때 나왔던 결과가 뭐냐 하면 이미 우한의 시력은 황반변성으로 인해서 상당 부분 상실하였고 좌안에도 병변이 진행되었으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우한처럼 그렇게 시력을 잃어버릴 수 있는 병입니다라고 그때 교수님께서 고등학생이었던 저에게 그렇게 얘기하셨습니다.
누군가가 누군가가 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1.0 1.0으로 눈이 굉장히 좋았는데 당신은 언젠가 시력을 그렇게 나빠질지 몰라요.
시력을 잃을지 몰라요라는 말을

대학 교수에게서 교수님에게서 들어본 사람은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무섭고 떨리는 건지 모를 겁니다.
저는 지금은 잘 관리를 받고 있고 잘 유지를 하고 있지만 그때 청소년 시기에 제가 받았던 그 병은 아주 희귀한 병이었고 그때 당시에 그 결과를 받고 나서 거의 밤이 되면 잠을 못 잘 정도로 혹시 다음 날 내일 아침에 내가 일어났다가 내 오른쪽 눈 이렇게 된 것처럼 왼쪽 눈도 갑자기 그렇게 되면 어떡하지 아니 혹시라도 잘 때 잘 때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면서 수없이 손 떨며 그렇게 잠을 잤던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함께 읽었으면 좋겠는데요.
요한복음 9장 1절의 말씀입니다.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보신지라.
예수님께서 길을 걸어가실 때에 날 때부터 시각장애인 된 사람을 보셨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랍비어 예수님 이 사람이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이.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일평생 바라볼 수 없고 사랑하는 이의 눈빛조차 바라보지 못하는 이 저주받은 인생으로 태어난 거.
이거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당시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던 이 질문은요.
제가 굳이 이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여러분들에게 설명드리지 않아도 당시 불교를 믿고 있던 저의 생각과 거의 일치했습니다.
양진철. 니 눈에 이런 병이 걸린 거 그거 니가 전생에 지은 업 때문이야.
과거에 지은 죄 때문이야. 양진철. 네 사랑하는 동생이 그 어린 나이에 뇌에 이상이 있어서 심각한 지적장애인 중증 자폐성 발달장애인으로 태어난 거.
그거 네가 전생에 지은 업 때문이야. 과거에 지은 죄 때문이야.
양진철. 니 사랑하는 부모님이 그 어린 나이에 그렇게 끔찍하게 다투시고 그렇게 너희 가정이 한순간에 다 파탄 나버린 거.

그건 니가 전생에 지은 업 때문이야. 과거에 지은 죄 때문이야.
제게는 너무나도 사랑하는 동생이 한 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동생이 태어났을 때 뇌에 심각한 이상이 있어서 심각한 지적장애인 중증 자폐성 발달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올해 나이가 만으로 31살인데 지금도 지능이 3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그런 심각한 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
동생이 태어났을 때 우리 부모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넉넉지 않고 연소했던 그 삶에 아픈 아이가 태어났을 때 특별히 이 가운데 발달장애인 아이를 키우거나 또 아픈 자녀를 아픈 가족과 함께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그 마음 누구보다 잘 아시겠지요 한 가정에 발달장애인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그것은 그 아이 한 명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가족이 짊어져야 할 말할 수 없는 눈물이고 말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겁니다.

그렇게 연소하고 넉넉지 않았던 부모님들은 쉽지 않은 삶에 서로에게 원치 않는 그런 또 함부로 하는 말들도 어쩔 수 없이 하셨겠죠.
그렇게 자주 다투기를 또 많이 하셨고 그러다가 어느 날은 심각하게 정말로 모든 유리가 다 깨지고 집에 있던 모든 유리창이 깨지고 피가 낭자하던 그날 밤 어머니가 모든 짐을 싸들고 그렇게 집을 나가실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하루아침에 제가 동생을 보살펴야 되는 그런 부모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때 동생 나이가 만으로 7살이었고 저는 중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당시에 저희 아버지는 노동을 하시는 일을 하셨기 때문에 뭐 몇 주일 있다가 며칠 있다가 들어오는 일을 하셨기 때문에 제가 보살펴야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제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다음 날 선생님에게 그 사정을 말씀드리면서 선생님 제가 동생을 보살펴야 돼가지고 제가 내일부터는 조금 늦게 등교해도 될까요?

왜냐하면 동생은 학교를 보내야 돼서 다른 친구들보다 좀 늦게 등교를 하고 좀 빨리 학교를 해도 될까요라고 물어봤더니 선생님이 그렇게 해도 된다고 해서 그다음 날부터는 우리 동생 아침에 이제 깨워가지고 화장실에 데리고 가가지고 이놈 얼굴 씻기고 그러고 나서 로션 바르고 그러고 나서 옷 입히고 그러고 나서 이제 김에다가 밥 싸가지고 입에다 넣어주면 안 먹으면 막 이렇게 쳐 넣어가지고 그래가지고 이렇게 학교를 보내면서 잘 들어가면 잘 들어갔네 하면서 이렇게 헐레벌떡 또 이렇게 뛰어서 학교로 가고 그리고 다른 친구들보다 좀 빨리 하교해서 그렇게 동생을 데리고 오는 생활을 그렇게 중학교 시절 동안 보냈었더랬습니다.
솔직히 참 쉽지 않았고 참 어려웠음을 고백합니다.
근데 저 안에 어떤 생각이 있었냐면 그래도 그래도 내가 공부 열심히 해가지고 좋은 대학 가가지고 성공하면 우리 동생 이렇게 아파도 동생 데리고 해외 여행 다니면서 잘 살 수 있지.

그래도 내가 공부 열심히 해가지고 좋은 대학 가가지고 성공하면 우리 집 이래 가난해도 더 좋은 집에서 잘 살 수 있지 이런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를 했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더니 제 중학교 3학년 때는 거의 1 2등을 놓친 적이 없는 그런 학생이 되었었습니다.
제가 다른 말 하려는 것이 아니고요. 하니까 된다는 걸 하니까 된다는 걸 아니까 막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상황과 환경은 쉽지 않았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걸 아니까 정말 최선을 다해서 진수 학교 보내고 나면 막 영어 단어 외우면서 헐레벌떡 학교 가고 또 다시 영어 단어 외우면서 막 진수 데리고 오면서 열심히 공부했었습니다.
그렇게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몇 년 지나지 않아서 황반변성의 일종으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눈 나빠질지 몰라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사람이 이렇게 뭔가 열심히 하다가 내 힘으로 되지 않는 걸 경험했을 때

이 줄이 땡땡하게 담겨 있다가 탱 하면 한 번에 와락 무너지는 것처럼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살았던 내 모든 것들이 그 자리에서 멘탈이 다 무너지는 겁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전에 중학교는 개근을 했었습니다.
근데 그 진단을 받자마자 고등학교 때는 학교를 밥 먹듯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수업하세요. 저는 그냥 잘게요. 그런 마음으로 그냥 엎드려 가지고 그렇게 있었을 했습니다.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이런 아픔과 눈물의 이야기가 자기에게 닥치면 사람들은 이 사람이 이렇게밖에 살 수 없었을 그의 눈물과 아픔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그의 눈물과 그 과정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 이렇게밖에 될 수 없었던 이유가 있는 거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거지 하면서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조롱합니다.
그때 저의 삶은 참 많은 조롱과 아픔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이야기를 주목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그런 저를 다르게 봐준 친구가 있었습니다. 어떤 친구가 제가 엎드려 있는데 이렇게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쳐라 하면서 저를 깨우는 겁니다.
뭔데 하고 눈을 떴죠 그랬더니 이거 한번 들어봐라 하면서 자기가 듣고 있던 이어폰을 저에게 꼽아주는 겁니다.
그래서 뭔데 하고 들어봤죠? 들어봤더니 이 노래는 제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난생 처음 들어봤던 노래였습니다.
누군가가 나라는 사람의 인생을 알고 만든 노래 같았습니다.
그 노래가 뭐였냐면 이거였습니다. 나 남이 가진



나 남이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그 음성이라는 걸 들었고, 나남이 받지 못한 그 사랑을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그걸 깨달았네.
여러분 래퍼가 레비키에 막 확 박힌다 그러잖아요.
완전히 제 얘기인 겁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저희 집 정말 가난했었거든요.
정말로 쉽지 않은 넉넉지 않은 삶 속에 얼마나 많은 힘든 일들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공부해서 뭐 합니까? 혹시라도 공부 열심히 했다가 눈 더 나빠지면 어떡해 공부 안 했죠? 그래서 고등학교 때 제 성적은 거의 바닥이었습니다.
나 남에게 있는 건강했지 않으나 저는 이런 병에 걸렸죠.
내 동생은 죽을 때까지 봉양해야 되는 양육해야 되는 중증 자폐성 발달장애인으로 태어났죠.
우리 아버지는 살 수 있으셨을까요? 집구석이라고 이렇게 딱 찾아오면 있는 놈이

며칠 있다가 힘들게 일해서 작업복 입고 집에 오면은 있는 놈이라고는 둘째 아들은 어버버 어버버 하면서 그 깜깜한 방에 머리를 처박으면서 그렇게 자폐성 특유의 성향의 행동을 하고 있고, 첫째 아들이라는 믿었던 첫째 아들은 거의 반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는 그 자식들의 모습을 보며 아빠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렇게 아빠는 그렇게 일주일에 술을 9번 10번씩 드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셨고, 그렇게 제가 아버지를 모시러 수없이 파출소에 가서 그 약주에 취하신 그 아버지를 모시고 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더랬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싶지 않은 그런 인생들 속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할 수 없는 은혜들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사실은 제가 원래 이러지 않는데 오늘 이 자리에 제 동생도 나와 있고 저희 가족들이 오다 보니까 제가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제가 설교 많이 하는데 지금 아무 생각이 안 나고 지금 멍해져 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말할 수 없는 그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제가 이 노래를 듣고 나니까 갑자기 제 안에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저희 학교에는 법당이 있었습니다. 법당이 그런데 이 법당은 마룻바닥으로 돼가지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습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는데요.

죄송합니다. 잠깐 이상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이 노래가 너무 좋아가지고 항상 그 법당에 가서 이 노래를 들어 드렸습니다.
뭐라고 들었냐면 공평하신 부처님이 나 남이 가진 건 없지만 공평하신 부처님이 나 남이 없는 거 같게 하셨네.
도저히 하나님이라고는 못하겠는 거예요. 부처님한테 받은 게 하도 많아가지고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말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저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제 딸이 지금 현재 첫째는 4살이고 4학년이고 저거 오늘 왜 이러지 어우 진짜 죄송합니다.
야 저 진짜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야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정말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를 잘 아실 겁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네 이게 지금 생방송입니까? 큰일 났네.
이거 녹화 방송이었으면 좋겠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첫째 아이가 이유식을 이렇게 먹일 때 우리 아내가 이유식을 먹일 때 제가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도 나에게 그렇게 이유식과 같은 그런 음식을 나에게 먹여주셨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더랬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 이런 적이 정말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다니엘 기도의 역사상 이런 적 단 한 번도 없었지 저도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제가 어떻게 하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이 시간 제 마음속에 함께해 주시고 하나님 저의 이 마음을 주님이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저는 늘 불교학생회로 있다가 법당에서 항상 이 찬양을 들으며 그렇게 생활을 했었더랬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제가 이제 대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갔더니
대학에서 동생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렇게 전화가 오는 거예요.
무슨 전화였냐면 따르릉 따르릉하고 전화가 왔는데 형 있다.
나 오늘 이렇게 다큐로 하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형 있다라고 전화가 온 겁니다. 그래서 진수야 그래 형 있어 형 없다 아니야 그럼 진수야 형 없다.
아니야 형 있어 다시 조금만 마음을 가져도 될까요?
안 벗어도 될까?
그렇게 동생이 제가 대학을 가게 되었고 동생이 그렇게 늘 전화가 왔었습니다.
형 딸이랑 딸랑 보면 항상 동생이었는데 그 형 있다라는 전화였고 진수야 형 없다 아니야 형 늘 같이 있어.
응 하면은 진수가 전화를 끊었고 또 진수야 형 있어 해야 진수가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요. 하나님 오늘 이 시 그렇게 진수의 전화를 받으면 저는 도저히 학교 생활을 하기가 너무 힘들었고 한 달 정도 아니 그래 한 학기만 버티고그래

내려오자 한 학기만 버티고 내려오자 그 마음으로 학교를 다녔었습니다.
그러다가 저의 이런 사정을 알고 어떤 친구들이 저에게 와가지고는 쳐라.
내가 니 사정을 알았어.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해 줄게.
아니 니 동생을 위해 기도해줄게라고 말하며 저에게 저를 데리고 어떤 동아리 방에 가게 되었고 알고 보니 그 동아리 방은 CCC 대학생 선교회의 친구들이 있는 그런 동아리 방이었습니다.
그 동아리 방에 봤더니 제가 난생 처음 봤던 친구들이 기도를 하면서 내 동생을 위해 기도해 주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위로가 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면서 이 기도가 정말 우리 진수에게 흘러가고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조금씩 하나님은 그때 제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열어가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서

함께 갔던 그 대학생 선교회 캠프 만 명 정도 청년들이 모이는 캠프였는데요.
그 캠프가 워낙 청년들이 많이 모이니까 이렇게 안에서 예배를 드리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밖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때 밖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하늘에서 주룩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겁니다.
하필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그때 그거 아십니까? 그때 밖에서 그 예배를 드리며 내리는 비를 맞으며 그때 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십자가 고통당하사 짓밟힌 장미꽃처럼 나를 위해 죽으셨던 그 예수님이 내 안에 온몸으로 들어오면서 내가 오래전 그 법당에서 이것이 나의 죄 때문입니까? 이것이 나의 업 때문입니까라며 수없이 하나님 앞에 내뱉었을 때, 그런 순간에도 십자가 고통당하사 나를 위해 죽으셨던 예수님은 그때도 함께 계셨고 동생하고 함께 있으며 수없이 밤늦은 시간에 둘이 벌벌 떨며 울던 그 순간에도

십자가 고통당하사 나를 위해 죽으신 그 예수님은 그때도 함께 계셨고, 그리고 지금 이 비 내리는 예배의 순간에도 지금도 함께하고 계시며, 이후에 이후에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도 함께 하신다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음성에 아멘으로 고백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저에게 정말 관건적으로 저에게 임하시며 진철이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진철이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진철이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냐라는 이 말씀을 통해서 아멘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복음이 내 안에 들어오니까 이 복음을 이제 더 이상 나만 못 갖고 있겠는 겁니다.
어떻게든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야겠다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이 복음을 어떻게든 전하고 싶어서 누구에게 전하게 됐냐면 제 불교 학생의 후배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우리 불교 학생의 후배들에게 찾아가서

얘들에게 얘들아 내가 너희들에게 정말 복음을 전한다 너희들 꼭 예수님 믿었으면 좋겠어 하면서 그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렇게 그 아이들이 장난으로 들었을 것 같지만 아니 그 아이들 정말 진중하게 들어주는 아이들이 있었고 그 이야기를 듣고 실제 예수를 믿게 된 우리 불교 학생의 후배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렇게 동생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는데 그때 동생 나이가 몇 살이었냐면 초등학교 6학년이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졸업반이었는데요. 졸업반이었던 동생을 데리고 서울 종로에 있는 안국역 쪽에 있는 한 종로구 특수학교에 이제 동생을 입학시키게 되었고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반지하 세 방을 구해서 동생과 둘만의 그렇게 서울 생활이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전혀 그 이전의 생활과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니까 괜찮던데요.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니까 견딜 만하던데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동생과 함께 지내는 가운데 동생과 함께 저기 발달장애인 부서가 있는 그런 장애인 부서가 있는 곳에 함께 이렇게 다닐 수 있게 또 교회를 함께 다니고 또 평일에는 동생 보살피면서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들이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네 그렇게 시작되게 되었고요.

그렇게 동생과의 생활을 시작하면서 제 안에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혹시라도 내 오른쪽 눈이 갑자기 이렇게 나빠진 것처럼 내 왼쪽 눈도 갑자기 나빠지면 내 동생은 누가 책임져주지 아니 아니 그건 아니더라도 그럼 나는 누가 책임져주지 그 마음 때문에 너무너무 갑자기 불안한 증상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그래서 시력을 잃어가는 시력을 잃어가는 그 고통을 아는 사람이 전하는 그 말씀을 듣고 싶었고 시각장애인들이 있는 그 공동체에 너무너무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진수의 손을 잡고 만 20살 때 애능중앙교회라고 하는 한 작은 시각장애인 교회에 가게 됐습니다.
가자마자 바로 터져나왔습니다. 어떻게 세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아름다운 찬양을 부를 수 있지 거기 교회가 이제 우리가 교회가 크지가 않으니까 복도가 좁으니까 시각장애인들이 이렇게 가다가 부딪혀요.
부딪히면 아이고 부딪혔네요.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그들의 그 아름다운 미소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때 회장도 시각장애인이었는데요. 이쪽을 음식이 이쪽에 있는데 이쪽을 가리키면서 얼른 먹으라고 하는데, 제가 이쪽에서 이 음식을 먹으며 이것을 눈물로 먹는지 콧물로 먹는지 몰랐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말할 수 없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셨고, 사랑하는 목사님께 거기서 세례를 받고 그리고 그곳에서 청년부 임원으로 청소년부 교사로 활동을 하면서 그 어린 나이에 어린 나이에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신경 위축으로 눈에 생긴 암으로 뇌종양으로 그런 각자의 사연과 원인은 다르지만 각자 그 어리고 예민한 나이에 실명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철이 네가 그 아이들에게 예수 복음 전하라고 그 친구들에게 예수가 필요하다고 하는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네 하나님 제가 그 길 가겠습니다.
그 순종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이 다음 세대 시각장애 청소년 청년 사역을 감당하는 목사로 이렇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역하라고

하나님께서 이 귀한 은혜의 사역하라고 나에게 말할 수 없는 이 눈물의 이야기를 주셨다는 것을 그때 처음 그렇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사역을 오랫동안 이렇게 함께하다 보니까 어느새 하나님께서는 참 많은 좋은 열매들을 주셨습니다.
청소년 시기에 만났던 제자들이 어느새 청년이 되어서 우리 함께하는 청소년부 교사로 섬기고 있고, 또 어떤 친구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은사를 가지고 찬양대 리더로 또 섬기고 있고, 또 어떤 친구는 또 자신들이 갖고 있는 각자의 재능과 은사들을 가지고 열심히 섬기면서 또 그 가운데는 또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시는 아이들로 자라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게 우리 아이들과 이렇게 즐겁게 사역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고요.

그렇게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하나님께서 참 많은 그런 은혜의 이야기들을 저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보신지라.
예수님께서 길을 걸어가시다가 날 때부터 시각장애인 된 사람을 보셨답니다.
여러분 맹인은 여기 나와 있는 본문 속 맹인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맹인은 앞이 보이지 않으니 세상을 볼 수 없었습니다.
맹인은 세상을 볼 수 없었기에 당연히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맹인은 예수님을 볼 수 없었지만, 예수께서 맹인을 보신지라.
맹인은 예수님을 볼 수 없었지만 예수님께서 맹인을 보셨답니다.
예수께서 맹인을 보셨다라는 것은 그냥 보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평생 맹인으로 살아가며 홀로 흘렸을 그의 눈물을 보셨다는 겁니다.
일평생 맹인으로 살아가며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가지고 있는 그의 눈물의 이야기를 보셨다는 겁니다.

이것은 맹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은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맹인이어서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영적인 맹인인 우리는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영적인 맹인이었던 당신을 보신지라, 영적인 맹인이었던 나를 보신지라 그리고 수많은 눈물과 아픔 가운데 켜켜이 쌓아놓은 나의 눈물과 아픔을 보시고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요한복음 9장 2절의 시선은 그런 신의 시선과는 전혀 다른 시선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요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까 자인일까 그의 부모일까?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던 이 질문은요.
이 시대가 맹인을 바라보는 이 시선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이 시대는 이 매인과 아픈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평가합니다.
이 사람 이렇게 밖에 태어나지 못한 이유가 있는 거지,

이 사람 이렇게밖에 살 수 없었던 이유가 있는 거지 하면서 함부로 평가하고 함부로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소리 앞에 얼마나 많이 무너지고 얼마나 많이 깨졌었습니까? 오늘 이 시간 그러나 여러분 그런 소리 앞에 우리는 살았지만 9장 3절에 우리 예수님의 음성을 주목하시길 원합니다.
9장 3절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아멘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바라보십니다.
일평생 아프고 슬픔 가운데 살아갔던 우리였지만, 세상은 모두가 우리한테 함부로 말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은혜로 우리에게 이렇게 칭해주신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저를 한번 따라 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듣보잡이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듣보잡이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듣보잡이입니다.
나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고 잡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보고 잡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고 잡고 살았던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소리, 그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보고 자고 살다 보니 이토록 무너지고 이토록 깨졌었나 봅니다.
우리 모두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보고 잡고 살아가는 은혜의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제게는 하나님이 레마로 주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로마서 5장 8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로마서 5장 8절을 레마로 주셨습니다.
같이 함께 읽어볼까요? 시작

아멘 제가 이 말씀을 묵상을 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어쩌면 이 세상은 우리가 무엇인가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우리가 뭔가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어쩌면 이 세상은 쓸모가 없어지면 죄인 아닌 죄인이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내 사랑하는 자식을 바라보며 내 사랑하는 자식이 이것을 너무너무 하고 싶은데 그것을 해주지 못하면 부모는 그게 잘못은 아닌데 죄인 아닌 죄인이 되고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원하는 것을 해주지 못하면 그것이 잘못은 아닌데 죄인 아닌 죄인이 됩니다.
우리는

그리고 직장인은 그렇지 않습니까? 직장인은 능력이 없으면 그게 죄는 아닌데 죄인 아닌 죄인이 되고 그리고 학생도 공부를 못하면 그게 죄는 아닌데 죄인 아닌 죄인이 됩니다.
그 소리 앞에 우리가 얼마나 많이 무너지고 깨졌습니까?

그런데 유진 피터슨이라고 하는 사람도 똑같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라는 말을 이렇게 의역을 번역을 하더라고요.
우리가 그분께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께 아무 쓸모가 없을 때에 당신의 아들을 희생적 죽음에 내어주심으로 그렇게 우리를 위해 당신의 사랑을 아낌없이 내놓으셨습니다.
유진 피터스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라는 말을 우리가 그분께 아무 쓸모 없을 때라고 의욕을 번역을 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보면서 이 기사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12 달러 금붕어 위에 오백 달러 쓴 여성 같이 있는 일 이 기사가 어떤 건지 한번 읽어드릴게요.
호주의 한 여성이 12달러에 12달러를 주고 금붕어를 한 마리 삽니다.
근데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만 5천 원 정도 주고 금붕어를 산 거죠.
만 5천 원 정도 주고 금붕어를 샀는데 이 금붕어가 너무 예뻐서 이제 이 수초도 사고 또 여러 가지들을 샀겠죠.
그런 것들을 사서

이렇게 어항에다가 그 금붕어를 키우면서 그렇게 그 금붕어를 키우고 1년 동안 키웠는데 그 금보어가 갑자기 이렇게 막 이렇게 어항 속에 있다가 갑자기 돌멩이를 삼켜버린 겁니다.
그래가지고 금붕어가 죽기 일부 직전이 되어서 그 금붕어를 데리고 그 동물병원으로 갑니다.
그래서 동물병원에 갔다가 급하게 동물병원으로 가게 되는데 그 동물병원에서

이 금붕어를 고치기 위해서 들었던 비용이 우리 돈으로
총 500달러가 듭니다. 그러니까 12달러 주고 산 금붕어를 500달러를 주고 고쳤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게 이해가 되십니까? 이게 납득이 되십니까? 근데 저는 그것이 납득이 되더라고요.
왜냐하면 이 금붕어는 그냥 금붕어가 아니라 내 금붕어 내 정복이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기사를 읽으면서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그게 누구였냐면 제 동생이었습니다. 제 동생은 장애가 좀 많이 심했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우리 진수 같은 아이들은 거의 갈 데가 많지 않습니다.
갈 데가 많지 않아서 보호작업장이 됐든 센터가 됐든 시설이 됐든 이런 데를 보내야 되는데 갈 데가 많지 않아서 겨우겨우 수소문을 해서 다른 보호작업장을 보냈더니 그 보호작업장에서 처음에 퇴출을 당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또 다른 곳을 수소문해서 또 그곳에 보냈더니 거기서도 퇴출을 당하게 되고 또 다른 곳을 수소문해서 보냈더니 거기서도 퇴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경험하면서 제 안에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장애인으로 태어나 가지고 장애인 기관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내 동생을 바라보면서 너무 마음이 너무너무 아팠습니다.
그렇지만 그 동생을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면 바로 접니다. 왜냐하면 제 동생은 제 하나밖에 없는 너무나도 소중한 동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께 아무 쓸모가 없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냐라고 말하는 이 로마서 5장 8절에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일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을 때에 세상은 우리를 퇴출시키고 우리를 버리지만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께서는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그 믿음을 잊지 않으시기를 원합니다.
이제 제가 한 사람의 이야기만 전해드리고 오늘 설교를 오늘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다니엘 기도의 역사상 이런 엄청난 아픔을 드려 죄송합니다.
제게는 장모님이 계십니다. 제 장모님은 태어날 제 장모님은
저에게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위
나는 어릴 때 되게 예뻤고 되게 귀여웠어 그런 말씀을 종종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루는 우리 장모님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가 영호가 엄마가 저녁 식사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저기 가가지고 좀 놀다 왔나 했더니 우리 장모님이 네 알겠어요 하고는 이제 혼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기 보니까 뭔가 이렇게 폭탄 만들기 좋은 뭔가 이렇게 그릇 만들기 좋은 뭔가가 있어가지고 가가지고 그것을 가지고 와서 돌에다가 팍팍팍 쳤더니 갑자기 그것이 펑하고 터지더니 그것이 온몸에 사정없이 바뀌기 시작했답니다.
알고 보니 그것이 폭탄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 폭탄이 온몸에 박히고 또 손에 박히고 얼굴에 박히고 가장 가슴 아픈 건 눈에 박혀서 그렇게 엄마는 그 장모님을 업고 내 딸 살려야 된다고 내 딸 살려야 된다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게 되었고 그렇지만 너무나도 심하게 박힌 폭탄으로 인해서 손가락의 상당 부분들을 잘라내지 않을 수 없었고

그리고 몸에 흉터가 나지 않을 수 없었고 가장 가슴이 아픈 것은 눈에 심하게 박힌 이 폭탄 파편으로 인해서 안구를 적출하지 않으면 안 됐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우리 저희 장모님 조금 이따 같이 밥 먹자 했던 그 엄마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실명자가 된 겁니다.
그 아이도 얼마나 힘들었던지 얼마나 아팠던지 몇 년 동안 누군가의 손을 잡지 않고는 밖을 나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아빠의 손을 잡고 한 미션스쿨 맹학교를 가게 되었고, 그 맹학교에서 시각장애인들이 배우는 안마라는 기술을 배우고 또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예수라는 분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을 졸업하고 나서 같은 시각장애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그리고 나서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은혜로 임신을 하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달, 두 달, 세 달, 네 달, 다섯 달, 여섯 달 배가 불러오면서 이렇게 기도하셨대요.
열 달 뒤에 태어날 내 아이는 우리 부부처럼 눈 안 보이지 않고 눈 나쁘지 않고 눈 좋게 태어나게 해주세요.
열 달 뒤에 태어날 내 아이는 하나님 잘 믿는 그런 믿음의 딸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믿음의 자녀로 태어나게 해서 그렇게 기도하셨대요.
그리고 열 달이 지나고 응애응애 응애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보니까 딸이었답니다. 사람들이 말해요. 아우 딸 너무 예뻐요.
딸 너무 귀여워요. 그런데 정작 그 아이를 자신의 뱃속으로 잉태하고 낳았던 엄마는 그 아이의 얼굴을 전혀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자라나고 자라나서 이렇게 아장아장 걸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다리에 방울이라는 걸 달았대요.

다리에 방울을 달아가지고 이 딸랑딸랑 소리가 여기 계단 쪽에 날라치면 계단 위험하다 위험하다 하면서 그 아이를 데리고 오고 딸랑딸랑딸랑 소리가 저기 가스렌지 쪽에 날라치면 불 위험해 불위험해 하면서 이 아이를 정말 애지중지 사랑으로 키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키가 자라나서 엄마랑 키가 비슷해졌을 때쯤 애능중앙교회라고 하는 이 시각장애인 교회를 엄마랑 같이 이렇게 오게 되었는데요.
그러면서 함께 성가대로 섬기고 이것저것 섬기다가 거기서 너무나도 자기 운명과도 같은 한 멋진 오빠를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누구였을까요? 바로 접니다.
오늘 이 엄청난 사고를 친 접니다. 저도 우리 아내를 보고 너무너무 서로 좋아하게 되었고 사랑하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그 여리고 여린 초등학교 4학년짜리에게 닥쳤던 그 폭탄과도 같은 고통은

그녀의 모든 삶의 인생을 완전히 뒤덮어버렸고, 그 이후로 맹인으로 살아갔던 그녀의 삶은 너무나도 고통과 아픔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이렇게 가족들끼리 이렇게 오손도손 앉아 있는 자리에서 장로님이 이렇게 얘기하시더라고요.
사위 내가 만난 예수님은 내가 만난 하나님은 내가 그때 그 폭탄 사고를 겪고 나서 그 이후에 겪었던 맹인으로 살아갔던 그 엄청난 아픔과 고통보다 더 높으신 분이셨고, 내가 만난 하나님은 예수님은 우리 장모님이 혼자서 두 딸을 키우셨어요.
남편 없이 혼자서 두 딸을 키우며 걸어갔던 그 말도 안 되는 그 아픔과 삶 속에서 들었던 그 수많은 고통보다 더 넓으신 분이셔서 나 이렇게 너희들 앞에서 너희들 앞에서 감사하다고 이렇게 간증하고 하나님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고 그래서 하나님을 너무 사랑했던 한 맹인이 믿었던 그 믿음은 그녀 한 명에게서 끝난 것이 아니라 그의 딸인 세미에게 이어지고 또 그의 사위인 저에게 이어지고 그의 손녀에게까지 이어져서

한 맹인이 믿었던 그 믿음이 온 가정을 예수 믿는 믿음의 가정으로 변하게 하는 그래서 오늘 본문에 뭐라고 했죠?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은 맹인이 된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그래서 저는 이 말씀에 이 맹인으로 살아가는 이 귀한 은혜의 주인공과 함께 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장로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우리 애능중학교회, 우리 믿음의 선배님들, 우리 믿음의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삶의 이야기입니다.
얻은 눈을 가지고 한 주일 그 예배를 드리기 위해 저기 원주에서 저기 동두천에서 저기 경상도에서 개인을 짚어가며 그렇게 한 주의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아와 내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내 사랑하는 성도들을 위해 그렇게 눈물로 기도하는 성도들이, 그리고 그러한 목사님과 우리 사역자들과 믿음의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이렇게 함께 있고요.

그리고 제가 그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제 안에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이렇게 교회를 지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믿음의 선배들을 바라보며 이제 나도 우리 다음 세대 시각장애 우리 제자들에게 이 귀한 믿음의 선배들의 믿음을 전해주는 그런 사역을 해야 되지 않겠나 그런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 제자들과 함께 지저 사이즈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육신의 눈은 어둡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은 누구보다 밝은 사람, 즉 예수님의 눈을 가진 사람 되어 이제는 우리가 이 예수님의 눈이 머무는 곳으로 나아가는 그런 주님의 사명자, 그런 예수님의 선교자, 예수님의 기도자 되자 그 마음 가지고 이 귀한 믿음의 사역들 우리 함께 걸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어느새 그 시각장애 제자들이 각자의 캠퍼스와 또 직장과 학교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하는 기도의 운동을 시작했고요.

이제 내년부터는 우리 귀한 제자들과 함께 이 함께 연합하여 우리 시각장애 청년들이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연합의 기도회 운동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시각장애인 친구들이 청년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 얼마나 많은 은혜의 역사를 이루어 주실까요? 이 땅에 육신의 눈은 보일지 몰라도 영적인 눈이 어두운 그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 귀한 믿음의 친구들이 그 은혜를 선포하는 역사들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특별히 오늘 이 시간 이 자리 이곳에 나온 너무나도 귀한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이 찬양 함께 부르며 저의 간증을 마치려고 하는데요.
여러분 오늘 제가 여러 가지 많이 실수하고 갑자기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제가 봤을 때 이게 갑자기 나타난 공황 같은 증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렇게 연약한 사람입니다. 저 진짜 이렇게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연약한 사람을 하나님이 이 말도 안 되는 곳에 세워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연약하고 쓸모없는 존재 같은 모습으로 느껴질 때가 있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께 아무 쓸모가 없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저는 이제 돌아가면 얼마나 한국교회에 엄청난 이 그걸 받을까요? 제 옛날 설교 다 찾아보겠죠 양진철 목사님이 진짜 이렇게 설교하나 이제 막 제 옛날 설교 조회에서 엄청 올라가겠네요.
정말로 제가 이런 공항이 갑자기 올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누가 뭐라 해도 제 솔직한 중심을 제 이 연약한 중심을 우리 예수님이 제일 잘 아시고 그럼에도 이곳에 세워주셔서 간증하게 하셨으니 제가 이곳에 앞에 나와 말로만 번듯한 사역자 아니라 저 내일 또 돌아가면 우리 시각장애인 성도님들 만날 거고 인생의 아픔을 가진 제자들 만날 거고 수많은 눈물을 가진 사람들 만날 텐데

오늘 제가 설교는 말이 전혀 번듯하지 못했고 온갖 식은땀과 이런 설교를 저도 태어나서 할 줄 몰랐지만 그러나 제가 내일부터 돌아갈 내 사역의 현장 속에는 내가 만날 사람들 속에는 삶으로 설교할 겁니다.
정직하게 사랑할 거고 중도에 실명하고 수많은 아픔의 인생길을 걸어가고 수많은 가슴의 찢어짐을 겪고 있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과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 또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솔직한 삶으로 말로 번듯한 달변이 아니라 정말 삶으로 그들을 안아주는 사역자 되겠습니다.
오늘의 이 모습 여러분 잘 오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정말 기억하십시오. 이제 마지막으로 딱 제가 이십 년 전에 이십 년 전에 이 찬양 처음 들었어요.
제 나이가 이제 어느 정도 가늠이 되죠. 고등학교 때 맨 뒷자리에서 엎드려 있을 때 저에게 찾아와가지고 가장 힘들었던 나에게 들려주었던 이 찬양, 혼자 골방에서 혼자 법당에서 혼자 교실에서 이 노래가 너무 저어 들었던 이 찬양 참 많이 찬양인지도 모르고 들었던 이 노래

이제 딱 20년이 지났습니다. 20년이 지나서 이 말도 안 되는 자리에서 홀로 눈물 흘리며 불렀던 이 노래를 하나님께서 이제 너 혼자가 아니라 여기 모인 수많은 믿음의 기도의 용사들과 함께 공평하신 하나님을 높여 올려드리라고, 오늘 이 찬양 함께 부르라고 하나님 오늘 이 시간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제가 20년 전에 가장 눈물 흘리고 아플 때 하나님이 나에게 이유식처럼 떠먹여주셨던 이 찬양, 이제는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 정말 믿음의 마음으로 우리 이 찬양 함께 하나님께 올려드립시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짓이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이지 않으나
사람에게 있는 건강이 지 않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본것을 보았고
남이 못 본 것을 보고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공평하신 하나님이
공평하신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당신께 우리가 이 세상 가운데 아무 쓸모가 없을 때에 세상은 우리를 퇴출시키고 세상은 우리를 받아주지 않지만, 그러나 내가 믿는 신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 쓸모가 없을 때에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셨답니다.
그렇게 우리를 위하여 사랑해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 땅 살아가며 요한복음 9장 2절에 나를 죽이는 그 수많은 사람들의 소리를 우리가 붙들고 살았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무너지고 깨졌었나 봅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가 이제 요한복음 9장 3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만을 붙들고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이 그 누가 뭐라 한다 할지라도 나를 부르시고 나와 함께하시고 나와 영원토록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음성만을 듣고 보고 잡고 살아가는 그런 주님의 자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공평하신 하나님이
난 남이 가진 것 없다 할지라도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암이 없는 것을 갖게 하셨음을 고백하는 그런 은혜의 사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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