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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채환 탤런트 다니엘기도회 본문

송채환 탤런트 다니엘기도회 제목꞉ 주인 찾기
본문꞉ 시편 139꞉1~24
강사꞉ 송채환 집사 (탤런트, 선인중앙교회 집사)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구약 성경 시편 139편 1절부터 2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 이다.
주께서 내가 안고 일었음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결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귀하니 높아서 내가 능에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수월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 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 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없이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 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빛이나니 주에게는 호감과 빛이 나를 지으심이 땅에 주의 눈이 보 지 그리가 뗄 때 떠날지어다.
늘 있느이다. 하나 선인중앙교회 집사
주인 찾기입니다. 오늘 말씀을 전해주실 때 우리 모두 큰 은혜와 도전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환영의 마음을 담아 힘찬 박수로 환영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송채환 집사입니다.
가끔은 저를 이렇게 소개할 때 틀린 소개를 너무 많이 해서 소개를 내가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 지금 진행을 하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요.
예전에 다 했던 거고요. 그렇습니다. 우선 여러분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가 오늘 여기 한 6시 20분인가 도착을 했어요.
그래서 지하주차장에다 차를 대고 사실 한 두 달 전부터 밥이 안 넘어가는 거예요. 죽을 것 같더라고요. 교회에서 이제 다니엘이 20일 기도회에 대한 연락이 왔을 때 사실 목사님들의 문자를 절대로 답장하지 않았습니다.
안 읽은 척했습니다. 안 본 척했습니다. 세상말로 씹었습니다.
절대로 못하겠더라고요. 근데 어느 날 모르는 번호가 떴어요.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받았더니 모 목사님께서 19일이라고 그러셨어요.
솔직히 묻지도 않으셨어요 그냥 19일이라고 그래서 더 이상은 안 되겠구나.
하나님 제가 할 만큼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집회를 이렇게 다니면서 간증을 하다 보니까
제가 자꾸만 이렇게 포장되어지는 거를 많이 느껴요.
너무 싫은 거예요. 왜냐면 연예인으로 산다는 게 결국은 포장되어지는 게 나도 모 르게 막 생기거든요.
그게 너무 싫어가지고 정말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라서 벗겨내고 벗겨내는데도 안 벗겨져서 정말 검은 피부를 하얗게 만들려고 돌로 피부를 막 문지르든 그런 사람들 처럼 벗겨내려고 하는데도 안 되는 거예요.
근데 집회를 하다 보니까 내가 갖고 있는 것보다 너무 많이 플러스가 되고 플러스 가 돼서 신앙 좋은 집사라고 얘기를 하는 것이 막 여기에 퍽퍽 박히는 거예요. 아파요. 그래서 하나님 나 이거 안 할래요 왜냐하면 너무 무서워요.
여태까지도 너무 무서웠는데 지금도 무서워요. 그래서 도망가고 있는 찰나였어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집회를 하고 났더니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역 사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지치더라고요.
근데 껍데기는 자꾸 씌워져가고 그래서 안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노 목사님께 서 지정하셔서 왔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시편 139편의 말씀은 제가 굉장히 힘들 때 어떤 목사님께서 이 말씀을 전체적으로
쫙 읽어주는데 그 말씀 한 기절 한 구절이 저에게 박히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여러분이 지금 느끼는 여러분의 호흡하고 똑같이 동일하 게 살아계십니다.
저는 아까 여기 들어오기 전에 잠시 화장실을 들렀는데 화장실에 딱 들리면서 하나 님이 너무 무섭게 살아계신 게 막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제가 볼일을 볼 때 주변에 쓰레기가 막 떨어져 있 으면 그걸 다 주어서 담습니다.
제가 들어가 있는 그 공간에 왜냐하면 은밀한 곳에서 보시는 하나님 무서운 거예요. 숨길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화장실이 막 때로는 되게 두렵게 이렇게 될 때가 있어 요.
사람이 많이 올 때 그러면 내가 이걸 그냥 나가려고 치면 막 무서워요.
그럼 휴지를 이렇게 뜯어가지고 이걸 다 정리해서 꾹꾹, 어떨 땐 발로 꾹꾹
누르고 한 번 쓱 닦아놓고 그리고 나가고 세면대도 꼭 한 번 이렇게 다 닦아놓고 이 렇게 나갑니다.
그렇게라도 내가 위로를 삼아야 될 것 같아서 사실 여러분들하고 나누고 싶은 얘기 가 너무 많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10살 때부터 예수를 믿었고 지금 48이면 38년 정도를 예수를 믿은 거 아닙니까? 여러분도 똑같이 여러분이 이 오늘의 주인공 간증자이듯이 저도 그 렇습니다.
제 인생에 저는 저만큼 정확하게 간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하고 어떤 얘기를 나눌까 막 고민을 했는데 저한테 지난주에 기가 막힌 일이 터져버렸어요.
저는 정말 여러분 여러분은 상상 못하실 거예요. 40일 금식 기도를 꿈꾸고요. 왜냐면 이 집회 때문에 너무 힘들어가지고 근데 그게 그렇게 쉽게 안 되더라고요. 얼마나 힘들겠어요 근데 지난주에 갑자기 그닥 친하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아 니 좀 알기는 알지만 오래전에 그냥 우연한 인연으로 알게 된 어떤 언니한테 연락 이 왔어요.
아들이 18살인데 갑자기 열이 나갔고 병원에 갔는데 첫날 대학병원에 갔더니 그냥 감기라고 해서 해열제를 받아오고 둘째 날 다시 또 열이 안 떨어져서 갔더니 또 그 냥 감기라 그래서 해열제를 받아왔어요.
그렇게 감기가 낫기를 기다리고 죽을 끓여서 먹이고 그러던 그날 새벽 월요일 새벽 이었어요.
갑자기 아이가 파랗게 질리면서 힘들어하는 거예요.
그래갖고 급하게 대학병원으로 다시 이 아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이 피 검사를 좀 해봅시다. 아이는 갑자기 엄마 나 다리가 너 무 아파요.
그러니까 엄마가 아들을 구하러 가서 아들을 구해다가 응급실에서 아들 다리에다 가 이렇게 잘 채워줬어요.
그리고 아들한테 괜찮아질 거야 병원에 왔으니까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갑자기 이 아들이 중환자실로 가야 되는 상황이 됐어요.
중환자실로 갔는데 아들이 엄마 나 감기고 열이 나는데 왜 중환자실이에요라고 얘 기를 하니까 나도 모르겠다.
괜찮을 거야. 아무 일 없을 거야
라고 얘기를 했는데 그 아들이 갑자기 유행성 출혈열이라는 병명이 발견된 거예요. 그러면서 그게 심장을 때려버렸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아들이 눈을 감았는데 눈을 못 떠요.
혼수 상태예요. 수능을 며칠 앞두고 지난 월요일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으니까 이 언니는 갑자기 기도하는 예수 믿는 분이거든요.
생각이 나다가 기도를 해달라고 중보를 부탁하고 제발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질 거 야 그렇게 기도를 했어요.
근데 이 아들이 수요일 날 월요일날 새벽에 병원에 입원했고 월화 수요일날 의사 선생님이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전화가 왔어요. 어떻게 마음의 준비를 하래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유행성 출혈열은 찾아봤더니 100명 중에 7명 정도만 치사율이 있는데 그리고 걸릴 확률도 아주 아주 낮은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고 함께 중보를 했어요.
근데 너무너무 답답한 거예요. 그래가지고 제가 잘 아는 어떤 아이가
굉장히 맑은 영을 가지고 있는 크리스천 아이가 있어요.
그래서 기도를 할 때 그 아이하고 같이 이제 물어도 보고 제가 막 그럴 때가 있어서 너무 답답해가지고
그 아이한테 초등학생이에요.
물어봤어요. 지금 이런 이런 상황이 있는데 하나님께 같이 중보해 줄래요 하고 물어 봤어요.
그랬더니 이 친구가 막 기도를 하면서 같이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내가 어떻게 기도를 해줘야 될까 너무 시급해요라고 얘기를 했더니 오늘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건 하나님이 데리고 간다는 뜻이에요라고 얘기를 했더니 하나님께서 오늘 데리고 가지는 않으시는데 다른 기도는 말고 회개와 구원에 관한 기도만 하라고 하세요. 집사님 그러는 거예요. 근데 제가 이 엄마한테 얘기를 전해줘야 되잖아요.
집사님 어떻게 굳이 기도를 해야 돼요? 막 이러는 거예요.
그런데 이 친구가 뭐라 그러냐면 제가 하나님께 시간을 좀 달라고
기도를 하는데요. 하나님께서 니 소원 한 가지를 나한테 주면 내가 그 시간을 연장 시켜줄게라는 이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그래서 자기가 너무 속상하지만 소원을 한
게 내려놨대요.
그 소원이 되게 궁금하잖아요. 도대체 뭐야 저 아이가 소원을 뭘 내려놨을까? 그래 서 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어봤더니 처음엔 대답을 안 하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가 초등학생 이제 3학년 정도 되는데 하나님한테 제가 계속 기도하 는 게 있었어요.
너무나 짝꿍이 되고 싶은 친구랑 4학년 때 같은 짝이 돼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제가 너무 급한 나머지 그걸 내려놨어요.
그랬더니 그러면서 이 아이가 그 얘기를 해서 저는 너무 빵 터졌는데 이 아이는 너 무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습니다.
자기가 하나님한테 얘기를 했으니까요. 하나님은 참 멋지세요.
초등학교 3학년짜리한테 기도를 요할 때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안 하 십니다.
그 아이가 갖고 있는 그 작은 소원 하나를 하나님 앞에 올려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거를 받으세요.
기가 막힌 건 수요일날 마음의 준비를 하라 그러고 이제 다 가족들이 준비를 하고 그러는 찰나에 시간이 연장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날 갑자기 동공이 다시 제자리를 찾고 심장이 막 좀 좋아지고 그렇다 그러는 거 예요.
그래가지고 제가 또 막 같이 기도를 했어요. 그리고 또 물어봤어요.
전화를 해서 미안하지만 내가 지금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우리 같이 기도할래요 어떻게 기도하면 될까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소망하라 고 그 기도만 해주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어머니한테 얘기를 했어요. 언니 다른 거는 모르겠고 회개하세요. 그리고 구원받기를 구원의 길에 이르기를 소망한다고 얘기해 주세요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처음에는 좀 화가 나죠. 왜냐하면 죽을 아들을 옆에 두고 지금 정신을 못 차렸는데 회개하라 그러니까 얼마나 화가 나겠어요
그게 떨어지겠어요. 회개를 하면 자기도 회개할 게 있지만 내 아들은 왜 내 아들은 아니라 이거죠.
내 아들은 너무 근사한 아들이라 이거죠. 왜 내 아들은 너무 착한 일도 많이 하고 이제 18살짜리가 무슨 죄를 졌겠냐 이거죠.
그러면서 막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근데 중부했어요.
하나님 해결하게 하시고 하나님 하나님 어떤 식으로 가든 주님 구원에 이를 수 있 도록 이 친구에게 하나님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믿음으로 기도를 하고 그랬어요. 근데 여러분 제가 약간 임종을 많이 했었어요. 제가 그런 일을 좀 맡아서 예전에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돌아가시는 분을 많이 봤어요. 저는 돌아가신 분 손 잡고 시체랑 한 2시간 같이 있고 이런 일이 전혀 안 무서워요.
두렵지가 않아요. 이제 주인이 오기 전까지 이렇게 시체랑 같이 있고 이래봤거든요. 근데 정말 죽을 때 보면 알아요.
이분의 모습을 보면 그래서 장의사들이 이렇게 염하시는 분들이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하나님이 계신 분 그들은 안 돼요.
안 돼요. 그래서 저도 좀 죽는 사람은 하도 많이 봐서 웬만한 거는 그냥 음 해요. 근데 이 친구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깜짝 놀랐어요.
손 발 입 코 모든 게 다 썩어가고 있는 거예요. 그 짧은 시간 내에 그래서 제가 그 친구 귀에다 대고 계속 기도했어요.
당신의 육이 지금 죽어가고 있지만 당신의 영은 지금 분명히 지금 이 상태는 아닐 것이다.
당신의 영으로 하나님께 회개해라. 하나님께 회개해라.
당신을 낱낱이 고하. 정말 당신만이 아는 누구도 누구에게도 비밀로 지키고 싶었던 그 많은 죄들을 하나님께 빨리 지금 회개해라.
그리고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매달려라. 하나님 나 구원받길 원합니다.
하나님 나 천국 가길 원합니다 하고 기도하라고 애원을 했어요.
이 친구는 미동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상상을 초월하는 그러한 모습을 띠고 있었습니다.
겨우겨우 그렇게 그렇게 엄마한테 얘기를 했어요.
엄마도 들어가서 울고 불고 귀에다 대고 얘기하고 듣든 안 듣든 얘기를 하고 근데 이 어머니가 그날 저녁 회개의 영이 터졌어요.
그러더니 아빠하고 엄마하고 밤새 하나님께 회개를 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리고 봤더니 자기가 잘못한 게 너무나 많다는 거예요.
너무나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언니 잘했다고 또 잘했다고 얘기를 하고 그랬는데 주일날 아침에 연락이 왔어요.
이젠 도저히 못 버틸 것 같다고 그래서 또 물어봤어요.
같이 어떻게 기도할까요? 그랬더니 회개와 구원을 놓고 기도하라고 그래서 또 회 개와 구원을 놓고 기도했는데 일요일날 숨이 끊어지면 장례 절차가 너무 복잡하잖 아요.
그래서 주일이니까 그래서 어떻게 기도를 할까 하다가 회개와 구원에 대한 기도를 막 같이 하면서 하나님 주일은 넘기게 해주세요.
더 이상 약 투여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답니다.
주일은 넘기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를 했어요. 그날 저도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하 면서 하나님께 매달렸어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정말 너무 감사하게 그날 0시 20분 이번 주죠.
0시 20분 연락이 왔어요. 이제 더 이상 못 버틸 거라고 그래서 제가 중환자실을 달 려가서 0시 59분에 심장이 멈추고 거기서 제가 임종 예배를 드리고 그 방을 빠져나 왔습니다.
그럼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무릎 꿇게 하셨어요.
너희들에게 내가 자녀를 줬는데 너희들에게 그 귀하디 귀한 생명들을 줬는데 너네 들 지금 너네 자녀들을 위해서 어떡하고 있느냐 어떻게 하고 있느냐 예수를 믿는다 는 사람들은 수백만 수천만이라고 하고 기독교인이 얼마나 된다고 하지만 지금의
우리 자녀 세대, 다음 세대라고 일컫는 이 자녀들이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느냐 라는 메시지가 저의 심장에 박히기 시작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요한 세례 받고 그냥 예수를 믿고 이렇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니라고 정말 진정한 크리스찬 정말 나를 주인으 로 찾고 있는 내가 주인 된 그 자는 그곳을 변화시키는데 지금 우리가 말하는 크리 스찬 저를 비롯한 우리가 세상을 얼마나 변화시키는가 하물며 내 자식 하나도 변화 시키지 못하는 나를 볼 때 나를 볼 때 하나님께서 회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무릎 꿇기를 원하셨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있는 식구들이 참 은혜 받기 가 어렵습니다.
왜 나의 앉음과 나의 생각, 내가 무얼 먹고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너무나 기가 막히게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장로고 내가 집사고 내가 안수 집사님이고 내가 너무너무 예수를 열심 히 믿어서 50년, 30년 20년을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자녀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는 지 내 자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 시기에 우리는 되짚어봐야 합니다.
저는 한 3년 전부터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는 메시지가 그거였어요. 하나님 나라와 민족 세계 복음화 하나님 땅 끝까지 하나님 주님의 말씀 복음 기도 를 할 때
내 자신과 내 아이들을 위해서 울라라는 말씀이 저의 심장에 파고들기 시 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늘 말씀하셨습니다. 가정 예배를 회복해라.
집에서 예배를 드려라. 근데 기가 막힌 게 아이들 입술에서 엄마 가정 예배 드렸으 면 좋겠어요.
엄마 가정 예배 드렸으면 좋겠어요 하더라고요. 무진장 어려워요.
근데 지금 이 시대는 여러분 지금 이 시대는요. 주일날 한 번 나와서 예배드리고 그 냥 내가 은혜 받고 나가고 그걸로 못 버팁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맞습니다. 제가 저도 너무나 연단을 많이 받은 사람인데 여러분 저는 예수 믿은 지가 한 38년 됐다 그랬잖아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부산으로 제가 5살 때 갔어요.
우리 집은 진짜 가난했어요. 진짜 가난해서 어렸을 때 제가 기억나는 건 먹을 게 늘 없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저는 4남매인데 오빠가 둘이고 제가 셋째고 여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4남매예요. 근데 아버지는 버스 운전기사셨고 엄마는 그냥 가정주부셨어요. 그래서 이제 부산으로 갔는데 부산으로 가게 된 계기가 저 5살 때 우리 어머니가 되게 아팠어요.
그래서 병원에 입원을 해서 수술을 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괜찮을 거라 그랬는데 우 리 엄마가 갑자기 중환자실에 들어간 거야.
배를 열었는데 수술이 잘못돼서 여기에 염증이 생기고 균이 들어가면서 재수술을 해야 되는 상태인데 피를 너무 많이 쏟아서 혼수 상태가 된 거예요.
그 상태에서 저는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어릴 때니까 5살이니까.
근데 아버지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당신 부인 힘드니까 빨리 오라고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운전하던 걸 멈추고 엄마한테 갔는데 갈 때 오빠 둘을 데리고 갔어요. 오빠 둘을 데리고 가 가지고 니 엄마 죽을지도 모른다고 오빠는 저 위로 3살 많고 5 살 많아요.
그 오빠들은 저보다는 철이 들었잖아요. 그래서 데리고 가가지고
엄마 죽는다고 그러니까 오빠들은 거기서 하염없이 울고 아버지도 이제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왜 병원에서 죽는다고 하니까 그런 상태에서 어찌어찌 어찌어찌 우여곡 절 끝에 저희 어머님이 다시 소생했어요.
그래서 희한한 건 아주 오랜 기간 병원에 있다가 나오셨는데 우리 어머니가 완전히 그냥 우리 어머니의 얼굴이 아니었던 기억이 나요.
저는 5살 때 일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50이 넘은 저희 오빠가 505 때는 저희 오빠가 우리 어머니한테 이렇게 앉으면 엄마 엄마가 그때 죽지 않아서 너무 고마워요.
엄마가 살아줘서 너무 고마워요.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면서 옛날 얘기를 오빠가 쭉 해요. 그때 엄마가 그렇게 돌아가셨으면 우리가 어떻게 될 뻔했어 우리는 고아원으로 버려졌을 거예요.
막 이런 얘기를 해요. 그래서 저는 그때를 대이고 대내이는데
엄마 그래갖고 집에 와가지고 거의 한 1년 만에 집에 오셔서 이렇게 딱 집에 계신 데 이제 살 만해졌다.
엄마가 오니까 괜찮겠지 하고 이제 엄마를 병간호하고 어머니 회복 돕고 있는데 우
리 아버지가 버스 타는 운전 우리 아버지 버스가 한강대교 다리 위에서 불러버렸어 요.
겨울에 그래서 우리 아버지 차가 빠져버린 거예요.
그래갖고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큰 사고가 났어요.
그래갖고 미끄럼 그때 겨울이니까 그래갖고 하반신이 다 되고 그래서 이 다리 쪽을 다 이식 수술을 하고 머리나 얼굴 쪽 이쪽도 다 이식 수술을 하고 그러셨어요. 그래서 1년을 꼬박 병원에서 대소변을 다 받아내면서 엄마 만신창이 됐죠.
아버지 만신창이 됐죠. 아버지가 1년 동안 병원에서 그러고 계시고 나오니까 서울 이 지긋지긋한 거예요.
그래서 부산으로 떴어요. 그래서 저희 집 식구들 다 부산으로 갔는데 아무것도 가 진 거 없이 부산으로 가서 부산에서도 진짜 가난한 사람들만 살고 있다는 부산 범 일동
똥천강 지금은 동천강이라고 얘기하는데 그때 똥천강이었어요.
그 다리개 밑에 넝마주의들이 살았어요. 그 옆에 정말 이렇게 지대가 낮은데 사람 들이 이렇게 모여 살았어요.
거기로 집을 틀고 들어간 거예요. 방이 한 칸이었어요.
여섯 식구가 정말 지그지그로 잘 정도로 작은 방이었고 부엌을 6가정에 다 쓰는 정 말 옛날 달동대라는 그런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집에서 살았던 기억이 제가 나요.
근데 저는 어릴 때부터도 고난과 역경과 아픔과 슬픔이 너무 많은데도 얼굴은 너무 밝아요.
지금도 여러분이 보시면 알겠지만 제가 어디 고생한 얼굴로 보 고생 전혀 안 한 얼 굴로 보이잖아요.
근데 아무튼 그 나이 때 그랬어요. 근데 저는 되게 밝았어요.
왜 밝았냐면 엄마가 살아있잖아요. 아버지가 살아있잖아요.
전 그게 그렇게 좋았어요.
그래가지고 이제 그때 아버지랑 엄마랑 막 그렇게 재미있게 사는데 아버지는 할 게 없는 거야.
우리 아버지가 그래서 경남버스라고 다시 이제 운전대를 잡는데 우리 아버지가 서 울에서는 시내버스를 운전했고 부산에 가서 경남버스 운전을 하는데 2박 3일 3박
4일 강릉을 포항으로 이제 차를 운전을 하니까 집을 많이 비우시잖아요.
근데 이제 집을 비우고 그러니까 저희 집에는 늘 엄마가 아프다 괜찮다 아프다 괜 찮다를 반복 어 그래서 저는 아주 일찍부터 한 8살 7살 이때부터 집안일을 도맡아 했어요.
그래서 웬만한 셰프보다는 제가 음식을 잘합니다.
네 칼질도 잘합니다. 그래갖고 아무튼 드라마에서 칼질하는 역할 이런 거 저만큼 잘할 사람이 없어요.
지금은 한물간 배우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기억 못하실지 몰라도 옛날에 오기 이모 라든지 첫사랑이라든지 이런 드라마에서 제가 칼질을 하고 막 이러면 감독님들이 티업을 했어요.
트럭이라는 거 여기서 손부터 이렇게 울리는 거예요.
보통은 손을 대역을 쓰거든요. 저 대역도 안 써요.
저는 산 닭도 잘 잡아요. 제가 살던 동네에 닭 튀기는 데가 있어서 닭 죽여놓으면 그거 털 뽑아주고 그러면서 닭 얻어먹고 그랬어요.
그러니 뭐 그게 어렵겠어요. 목 비틀어갖고 그냥 잡으면 되지.
어렸을 때 그렇게 산 저의 흔적이 저는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나에게는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고 저는 그것이 참 좋았어요.
그래서 늘 어릴 때 저는 그랬어요. 나는 크면 엄마 아빠 내가 모시고 살 거야. 오빠가 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시고 살 거야 그랬어요.
커가지고 제가 오빠들이 장가를 가고 제가 이제 있을 때 엄마 아빠 내가 모실 테니 까 오빠들 양보해 그랬더니 우리 오빠들이 양보를 쉽게 하더라고요.
전혀 고민을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부모님을 제가 지금 모시고 삽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튼 그래서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그렇게 보냈는데 하나님은 몰랐 어요.
근데 제가 10살 되던 해 우리 어머니가 다시 아팠어요.
그래서 부산 메리놀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 한 달, 두 달, 석 달 넉 달이 있어도 우리 어머니 변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이렇게 붓기 시작했고 물을 넘기지도 못할 정도로 심각해졌고 의사들은 포기를 해가고 있고 의사들이 포기할쯤 저희 아버지도 포기, 아 아버지가 포기할 쯤 부모님들도 포기하고 어머니를 낳아준 어머니도 포기를 하고 우리 어머니는 죽
은 산 송장처럼 되어버리고 있었어요.
그때 제가 어머니한테 달려갔어요. 우리 친할머니는 그때 어머니가 아직 숨도 거두 지 않았는데 새 엄마를 찾으러 다 기억이 나요.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엄마한테 매달렸어요. 살아나라고 죽지 마라고 살아나라고
그리고 어머니를 살려보겠다고 그 판자촌 동네에서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니네 엄마 살리고 싶으면 저 무당집 가서 구해. 니네 엄마 살리고 싶으면 저 무당집 가서 구해.
그럼 저는 그 저 집을 쫓아다니면서 굿을 했어요. 저는 8살 10살부터 집안을 다 책 임지는 집안의 대빵이었거든요.
아버지가 돈을 주시고 저한테 장을 보라 그러시고 그랬기 때문에 늘 저는 돈 관리 를 굉장히 잘했습니다.
그렇게 이 집 저 집 무당집을 쫓아다니고 이거를 해먹이면 되게 좋다 저거를 해먹 이면 좋다 해서 그 어린 나이에 안 해본 게 없습니다.
근데 어머니는 여전히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어요.
병원에 계시기 싫다고 죽어도 집에서 죽고 싶다. 그래서 산 송장 같은 어머니를 집 으로 모시고 왔고 저희 어머니는 집에 오셔가지고 저에게 물도 떠먹이며 물이 주르 르 흐르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물이 잘 안 넘어가서
링거를 계속 꽂고 있었어요. 요즘에는 집에서 링거를 못 맞지만 예전에는 집에서 링거를 맞춰줬습니다.
약국에 계신 아주머니들이 와서 주삿반을 꽂아주고 가고 그랬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집 안에 다 부족 그런 것들이 막 붙어 있었어요.
제가 막 무당 불러다 붓도 하고 그랬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저를 찾았어 요.
저 부적이나 이런 것들 다 공이에 집어넣으라고 그래서 돈 주고 있는데 비싼데 왜 집어넣냐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전 어릴 때부터 착했어요.
그래서 시키는 대로 잘해요. 그래서 그 부적들을 다 집어넣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나 교회 가고 싶다 그러는 거예요.
기절할 일이죠. 왜냐면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데 교회를 가고 싶다잖아요. 그래서 이게 무슨 소리야 그렇지만 저는 착한 딸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오빠들을 꼬셨어요. 엄마가 교회 가고 싶단다.
우리 엄마 데리고 교회 가자. 오빠 애들이 미쳤나 그래도 해보자.
어머니가 그때는 새벽이면 울려퍼지는 그 교회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가 있었습니 다.
그 종소리를 듣고 어머니가 교회 가기를 소망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어머니랑 저랑 오빠들이랑 새벽녘에 어머니가 깨우셨어요.
그래서 어머니를 모시고 새벽 기도를 갔습니다. 저는 주일 학교를 모르고 새벽 예 배부터 시작한 사람입니다.
새벽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우리 어머니는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저 기둥 뒤에 저 기둥이 그때도 교회가 있어 부산에 범일동에 성동교회라고 제가 그 교회도 집회를 갔다 왔는데 거기 갔더니 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 거예요.
천보 약국이라고 약국 약사님이 아주 멋진 노인이 되셔가지고 저한테 그러는 거예 요.
니가 새벽마다 우리 약국 두들겼던 거 생각나나 그러더라고요.
저를 부둥켜안고 우시고 그러셨습니다. 우리 어머니랑 저 기둥 뒤에서 어머니가 울 고 계셨어요.
하나님 살려주세요. 내가 잘못했습니다.
너무 남루한 복장이어서 우리 어머니를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법한 그러한 복 장으로 그러한 병색으로 우리 어머니는 와 계셨고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어머니 대 에서 어머니가 오니까 따라오는 딸이었어요.
그렇게 새벽 예배를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금요일날 담요 한 장을 챙기라 그러더니 교회를 가자 그러시는 거예요.
주일 예배를 다니기도 전에 저는 금요 철야를 갔습니다.
금요철하는 여러분 요즘에는 일찍 끝나지만 예전에는 밤을 꼼빡 샜어요.
그리고 새벽에 또 예배를 드렸어요. 기억하실 겁니다.
그렇게 교회에서 버티기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도 바라봐 주시고 성도님도 바라 봐 주셨지만 그 누구도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저희를 위해서 그 누군가가 기도를 해주시는 것 같았어요.
이름도 성도 모르지만 그분들은 너무나 병이 완연한 저희 어머니를 보고 그냥 지나 칠 수 없으니까 앉아갖고 기도해 주시고 같이 울어주시고 그러셨어요.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학교에서 돌아온 저를 부르셨고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내가 물이 넘어간다. 내가 물이 넘어간다. 물을 한 숟가락 넣어주면 입안에 머금다 가 버리는 게 거진 다였는데 이게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그러시는 거예요.
그렇게 차츰차츰 저희 어머니는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 나이 10살 때 하나님 살아계시다 왜 우리 엄마가 죽을 거라고 병원 의사 선생님도 얘기를 해서 준비를 하라 그랬고 하물며 우리 엄마를 낳아주신 우리 아버지, 우리 엄마의 엄마도 내 딸은 죽을 거야라고 하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왔다 가 다녀가셨고 엄마의 형제간들도 엄마를 포기했건만 하물며 같이 사는 남편도 포 기했건만 하나님은 어머니가 살려달라고 하는 그 음성을 들으신 거예요.
그리고 어머니가 고침을 받았어요. 저는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도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끔 돌았나 이럴지는 모르는데 저는 중얼중얼 잘거려요.
하나님 있잖아요. 제가 오늘요. 어디를 가는데요? 하고 중얼중얼 잘거려요.
그때도 그랬어요. 그래갖고 이제 그때 제가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이렇게 얘기를 하 고 다녔어요.
얼마나 신났겠어요 생상 무서운 게 없지. 그래서 이제 막 하나님은 살아있다고 얘 기를 하고 동생하고 저하고는 열심히 교회를 다녔어요.
어머님이 몸이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어머님도 교회에 다녔고 병원 의사 선생님은 어머니를 보고 화들짝 놀랐고 그때 정말 조그마한 뭐가 나올 정도로 이렇게 뉴스처 럼 이렇게 뭐가 나올 정도로 어머니의 이야기가 그때 당시 그 주변에서는 화두가 됐었습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어머니가 이제 예수를 믿게 됐는데 어머니한테 물어봤죠. 무당 불러다 굿타고 뭐 하고 뭐 하고 뭐
가만히 있더니 왜 갑자기 그거 다 버리라 그러고 예수 믿자 그랬냐 그랬더니 어머 니가 서울에 사실 때 은평구 응암동에서 응암교회를 다니셨대요.
그래서 예수를 믿었는데 우리 친할머니가 거의 반 무당 같은 분이셨어요.
니가 예수를 믿으면 우리 집에서 나가라. 그래서 집에서 쫓겨났대요.
근데 진짜 쫓겨났대요. 집에 못 갔대요. 시댁에 들어갈 수가 없었대요. 아버지를 보러 들어갈 수가 없었대요. 할머니가 때렸대요.
죽일 듯이 미워했대요. 아버지가 핍박하셨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그냥 모든 걸 다 놓고 예수는 몰라요.
그냥 남편 순종하고 어머니 그냥 순종하면서 그렇게 사신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병한이 찾아왔고 우리 어머니는 그때 새벽 얘에 울려퍼지는 그 교 회 종소리에 내가 하나님 앞에 잘못했다고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면 하나 님께서 고쳐주리라는 그냥 막연한 기대감으로 우리 어머니가 예배당을 찾은 거였 어요.
그래서 저는 우리 집이 너무나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새벽 재단의 그 사모함을 저는 압니다.
여러분 새벽을 한번 사모해 보세요. 정말 기가 막힌 은혜가 있습니다.
정말 여러분 상상을 초월할 은혜가 있습니다. 저는 그래가지고요.
그때부터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막 기뻤어요. 저희 어머니는 안 한 일이 없습니다.
워낙 초등학교도 못 나오시고 공부를 못하셔서 저희 4남매 대학 공부시키겠다고 정말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그 아픈 몸을 이끌고도 남의 집 일부터 시작해서 안 해본 일이 없으세요? 길거리에 앉아서 노점에서 수구레라는 장사도 하시고 여러분은 수구레가 뭔지 모르죠? 새우 소고기 껍질 가죽하고 가장 가까운 거죽을 수구레라고 합니다.
그거를 떼어다가 그 똥천강 다리에서 어머니가 수구레를 팔고 그러셨어요.
그럼 저는 학교 끝나고 엄마 옆에서 수구레 파는 걸 도와드리고 그랬어요.
그렇게 하면서 저는 이제 우리 집이 가난한지를 잘 몰랐어요.
왜냐면 주변이 다 가난하니까 그러던 어느 날 중학생이 됐습니다.
중학생이 돼가지고 이제 제가 대리사 요직을 다녔어요.
부산 이제 중학생이 되니까 학군이 이제 바뀌니까 거기는 이제 좀 잘 사는 애들도 있고 그랬나 봐요.
근데 우리 반 반장이 되게 부잣집 아이가 있었나 봐요.
부산에 지금 여성병원이라고 하는데 그때는 다른 이름이었어요.
병원장 딸내미가 우리 반 반장이었어요. 어느 날 그 아이가 반장이 되더니 자기네 집에 초대를 하는 거예요.
저를 지목을 해서 같이 가재요. 그 집에 가고 눈이 깜짝 떠졌어요.
이렇게 부자들도 있구나. 제가 사는 거하고는 완전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제일 놀라웠던 건 그 집의 냉장고를 보고 너무 놀랐어요.
우리 집은 아이스박스인데 예전에는 아이스박스에 얼음 채워놓고 살았잖아요. 근데 걔네 집은 냉장고고 냉장고에서 얼음이 쫙 하고 나오는 거예요.
얼마나 부러워요
그래서 그 집에서 나오면서 하늘을 보면서 기도했어.
하나님 우리 집에 냉장고가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하나님 난 냉장고가 너무 부럽습니다. 전 지금 주택에서 사는데 저희 집에 냉장고 가 6대 있어요.
여러분은 냉장고 보고 기도하십니까? 전 냉장고를 볼 때마다 기도합니다.
잊을 수가 없어요. 그 중학교 때 냉장고를 보고 너무 부러워해서 기도했던 그 기도 그 기도에 응답하신 그 하나님 우리 집에 있는 기도뿐 아니라 어떤 냉장고를 봐도 저는 은혜가 됩니다.
그래서 청년부나 누구나 결혼한다 그러면 제일 첫마디가 냉장고 사줄까 그럽니다. 전 냉장고 선물할 때가 제일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중학교를 그렇 게 다니면서 공부를 못했어요.
집안일을 하면서 부모님을 돌보고 어떻게 공부를 잘할 수 있었겠어요? 오빠들 도 시락을 싸고 동생 도시락을 싸주고 그리고 중학교를 다녔거든요.
공부를 너무 못하니까 저보고 여생을 가래요. 그것도 야간을
주간에는 뭐 하냐 그러니까 주간에는 국제 상사가 갖고 신발 만드는 공장 국제빌딩. 예전에 국제 상사라고 여러분 부산에는 신발 공장이 되게 많았습니다.
거기에 낮에 가서 일을 하라는 거예요. 그때 프로스펙스를 만들었어요.
거기서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공부를 못하는 이로서니 낮에 공장 가 서 일을 하라니 국제상사 앞에 가 갖고 얘기했어요.
망해라 망해라. 진짜 망했어요. 몇 년 한 10여 년 된 것 같습니다.
부산 국제영화제 때문에 부산을 가면서 제가 국제상사 옛날 자리를 찾아갔잖아요. 회개하러 하나님 그때는 그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공부를 못하고 그러니까 저는 참 서글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를 하는데 서울로 가면 왠지 모르게 내가 출세를 할 것 같은 거 예요.
그래서 서울을 가겠다고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이 들어갈 무렵 어머니한테
떼를 썼어요.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그때 이제 김밥도 말아주고 남의 집살이도 하시고 참 저희 집 가난했거든요.
식당에서 일도 하시고 그랬는데 저희 어머니 30만 원을 어디서 꼭 왔어요? 일수를 찍기로 하고 제 아버지하고 오빠들한테 얘기했더니 웃기고 있네.
니가 서울 가고 뭐 하려고 미쳤나 그러더라고요. 내 갈 거다 가갖고 내 출세할 거다. 그러니까 웃기지 마라 그러더라고요. 안 웃긴다 내 될 거다 다 반대하는 거예요.
왜 제가 집안의 식모였어요? 여러분 제가 없어지면 오빠들부터 얼마나 불편하겠어 요? 반대를 하는데 저희 어머니가 30만 원을 제 손에 쥐어주더니 가라 그러더라고 요.
가서 니가 하고 싶은 거 해라 그러더라고요. 저는 중학교 3학년 마치고 방학 때 서 울로 왔습니다.
진짜 열차를 타고 왔습니다. 종이 쪽지에다가 낭곡 입구 해갖고 저 주소를 적어서 저희 외숙모네가 낭곡 입구 저 신림동에 살았거든요.
그 주소 한 장을 들고 그 집으로 더부살이를 하러 간 거예요.
그 집에는 자식이 5명이었고 외숙모 외할머니 외삼촌은 총 8명이 살았어요.
그 집에 가고 제가 살아남는 길은 딱 하나 집안일을 열심히 해드리는 거였어요. 그래서 더부살이하는 주제니까 얼마나 열심히 눈치를 보면서 일을 했겠습니까? 딱 6개월 버티니까 못 버티겠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니한테 얘기를 했어요. 엄마 엄마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내가 엄마 혼자 자취를 한번 해볼게 그랬더니 우리 어머니가 저를 믿는다 그러셨거 든요.
우리 어머니는 다른 말 한마디도 안 하셨어요 내는 너를 믿는다.
그리고 난 우리 엄마가 너무 고마운 게 그거예요. 초등학교도 못 나온 엄마인데 내 가 수태 거짓말을 하고 수태 엄마한테 미운 짓을 했는데 우리 엄마는 그때마다 저 를 믿는다 그랬어요.
그리고 꼭 한마디를 더 붙여서 너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우리 어머니는 지금 80이 에요.
근데도 우리 어머니는 저를 위해서 엄청나게 기도하세요.
정말 무릎이 굽히지 않은 우리 어머니는 배를 여러 번 네 번 열었습니다.
배를 4번을 열었어요. 어머니는 다른 기도 안 하세요 기도하십니다.
저는 제가 어머니를 잘 모셔서 우리 어머니가 여든까지 살아계신 줄 알았어요. 아니요. 어머니가 기도의 용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직 어머니를 버티게 하고 계십니다.
우리 어머니는 간에 암이 있습니다. 본인은 모르십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희한하게 버티게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그래서 제가 서울을 왔어요. 자취방을 하나 구했는데 자취방이 정말 여러분 과장 아닙니다.
정말 싼 집을 구했는데 이 문 석관동 그쪽에 연탄 삼천리 연탄공장이 있었어요.
그 연탄공장에 보면 옛날에 연탄광에 연탄을 이렇게 쟁겨놓고 한 겨울을 났잖아요. 그 연탄광을 개조한 방이 하나 있었어요. 그 방에 제가 이제 들어가게 된 거.
근데 그 방이 얼마나 정말 좁았냐면 지금도 저는 저희 아이들에게 그 얘기를 하는 데 제가 딱 눕잖아요.
그럼 거짓말 아니에요? 여기서 요 정도밖에 안 돼요.
넓이가 왜냐하면 제가 딱 누워갖고 이쪽에서 이쪽으로 온전하게 한 바퀴를 돌려 그 러면 안 돌아줘요.
이쪽 벽에 몸이 탁 부딪혀요. 근데 쓸모없이 기럭지는 길어요.
그리고 천정은 제가 지금 키가 160인데 제가 고등학교 때 키가 160이에요.
1cm도 안 컸어요. 그때 그 천정이 15 한 4 정도 됐던 것 같아요.
그 방에서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 방으로 자취방을 딱 구하고 제가 엄마 아플 때 본 게 뭐예요? 이제 진짜로 서울 이 하늘 아래 저 하나잖아요.
아무도 제가 의지할 데가 없잖아요.
외숙모 외할머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외삼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빠들이 있는 것 도 아니고 아무도 없잖아요.
그 연탄강을 개조해서 드르륵드르륵 내일을 넣는 그 방 그 방을 얻고 제일 먼저 한 것이 막 거리를 뛰쳐나가서 교회를 한 군데 정했습니다.
작은 개척교회였어요. 교회에 등록을 하고 저는 그다음 날부터 새벽 재단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한 3년 가까운 세월을 새벽 재단을 빼먹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거의 하루도 빼먹지 않은 걸로 기억을 합니다. 저는 시험 공부는 안 했을지라도 새벽 예배는 드렸습니다.
그리고 새벽 예배드리면서 세 가지 기도를 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아세요? 우리 엄마 우리 아버지 오래 살게 해주세요.
왜 엄마가 아픈 걸 너무나 많이 보고 자랐어요. 그리고 엄마 아버지 내가 모시고 살 게 해주세요.
그리고 또 하나는 엄마 아버지 우리 집 부자 되게 해주세요.
이 세 가지 기도를 했어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 세 가지 기도에 응답을 하시려 고
갑자기 고등학교 3학년이 가까운 시점에 뭐를 하고 먹고 살아야 되나 해서 저는 유 치원 선생님 이런 거를 꿈꾸고 있었어요.
어느 날 수학 선생님이 연극표 한 장을 줘서 친구들하고 다 연극을 보러 대학로를 딱 해서 앉아있는 순간 배우해야 되겠다 그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부산에다가 엄마 아버지를 찾았어요. 엄마 아빠 내가 오늘 꿈을 찾았다. 내가 배운해갖고 엄마 아버지 호강시킬 거니까 기다리라.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가 니가 미쳤나 배우가 되려면 돈도 많아야 되고 백도 있어야 되고 얼굴도 이뻐야 되는데 우리 집은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얼굴만 이뻐갖고 어떻 게 배우가 되냐고 난리가 난 거예요.
제가 지금은 망가졌지만 옛날엔 이뻤습니다. 그렇게 다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 우 리 어머니가 내 은혜를 믿는다 기도해 줄게 그러시는 거예요.
그때는 이렇게 억수로 사투리를 쓸 때입니다. 그래갖고 내가 고등학교 때 일어나고 책을 읽거나 내가 국어 책을 읽거나 영어를 읽으면 다 웃었어요.
폴리스 이랬으니까 진짜로 그리고 말이 다 사투리인데 이 사투리를 어떻게 대학을 갑니까? 목까지 말도 안 되지 배우다 할 수가 없죠.
근데 미친 듯이 말을 바꿨어요. 그랬더니 그냥 표준어가 되더라고요.
정말 기가 막히게 그 억센 사투리를 고치더라고요.
그랬더니 서울예대에 합격을 한 거예요. 희한하죠.
여러분 서울여대 무시할 거 아닙니다. 부산 총것이 아무런 트레이너를 받지 않고도 어떻게 입학을 해요? 그것도 연극과에 그래서 제가 연극과 입학을 했어요.
입학을 했는데 집에서는 저를 갖다 도와줄 수가 없으니까 돈을 벌면서 학교를 다녀
야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새벽 예배 딱 끝나면 시청 호아마트로 가서 전단지를 받아서 1시간을 시청 앞에서 쫙 뿌렸어요.
그러면 시청 지하철역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전단지를 1시간 쫙 받아요.
그러면 5천 원에서 6천원 정도 받았어요. 그리고 포스터 100장을 닦았고 그때 학교 가 명동이었거든요.
서울여대가 남산에 있었거든요. 그러면 그 포스터를 갖고 학교를 올라가요. 올라가서 학교에서 특수 치고 내려올 때 명동 벽지에다 맨 포스터를 붙이는 거예요. 한 장당 60원 40원 이렇게 줬어요. 그러니까 하루에 보통 만 5천 원 정도를 벌면서 학교를 다닌 거예요.
그렇게 죽으라 하고 공부해야지 장학금을 받잖아요.
왜 등록금도 대줄 수 없잖아요. 왜냐하면 나는 여산 가야 되는데 근데 제가 새벽 예 배를 끝나고 그렇게 정말 열히 열심히 돈을 벌면서 학교를 다녔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이제 정말 대학 다닐 때 예수밖에 몰랐던 것 같아요.
여러분 막 mt도 안 가고 주의를 지키느라고
다 미쳤다 그랬어요. 그리고 mt를 갔더라도 주일 때문에 다시 교회를 왔어야 했고 그때는 토요일날 교회에서 아이들 막 밥도 해주고 막 그랬었어요.
떡볶이 해주고 아이들 가정 방문도 하고 막 그랬어요.
주일 학교 교사들이 그러던 어느 날 이제 서울여대 졸업할 때가 돼서 하나님 나를 서울여대에 붙여놨으면 나를 출세를 시켜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런데 학교 공고가 딱 뜬 거예요.
MBC 19기 탤런트 모집하고 MBC 19기 때는 그때만 해도 기수 탤렌트가 되면 재벌 되는 느낌이었어요.
그래갖고 MBC 19이 텔렌트 모집 딱 보는 순간 어떻게 마음이 들었냐면 MBC 19기 탤런트 제 본명이 권소연이거든요.
권소연 합격하고 보이는 거예요. 제가 그때 하늘산 기도원에 기도를 하러 갔어요.
기도를 하러 갈 때 어떤 목적으로 갔냐면 하나님 나를 그냥 데리고 가든지 아니면 나를 배우를 만드세요 이렇게 기도를 했어요.
그냥 나를 데리고 가라 그랬어요. 아니면 배우를 만들든지 2박 3일 막 기도하는 전
도사님 모시고 막 올라갔는데 예전에는 진짜 그 겨울에 그 나무를 붙들고 얼마나 기도를 했어요.
정말 막 부흥의 역사가 대단했잖아요. 이 성령의 역사가 막 그렇게 기도를 하고 2 박 3일이 다 돼 가는데 나한테 메시지가 안 떨어지는 거예요.
애들은 막 고3 애들은 제가 고3을 가르칠 때였거든요.
교회에서 애들은 막 은혜받았고 막 난리가 났는데 저는 막 주유만 붙들고 있는 거 예요.
근데 전도사님이 주일날 새벽에 본교회 가서 예배를 드려야 되니까 토요일날 새벽 에 이제 저희를 데리고 이제 주일날 예배드려야 되니까 가자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내려오기 힘든 몸을 지탱을 하고 이러고 봉고차를 탔어요.
그 전도사님이 운전을 하고 제가 옆자리 타고 뒤에 8명 정도 고3 아이들이 탔어요.
그래서 얼마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그때 거기가 비포장 도로였 다.
그리고 난간이 없었어요. 나무가 이렇게 쑥 치고 되게 그게 해발이 꽤 높아요.
근데 조금 내려오는데 우리 전도사님이 갑자기 날 보고 권 선생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는다 이러는 거예요.
근데 딱 보니까 이 차가 낭떠러지를 향해서 이러고 가고 있는 거예요.
그래갖고 눈이 포슬포슬하게 왔거든요. 그래서 내가 그 낭떠러지를 이렇게 보고 주 요 나 이제 갑니다.
진짜입니다. 왜냐면 내가 그 기도를 갖고 갔잖아요.
하나님 내를 배우시켜주든지 아니면 날 데리고 가보이소 그랬잖아요.
근데 낭떨어진 거 보니까 데리고 가겠다는 거고 응답은 못 받은 것 같고 그래갖고 주요 나 이제 갑니다를 두 번 외쳤어요.
그랬더니 우리 전도사님 저거 미쳤는가 보다.
근데 차가 툭하고 걸린 거예요. 툭하고 진짜 전도사님이 갑자기 뒤에 있는 아이들 은 뭣도 모르고 있는데 빨리 내리라고 소리를 팍 지르니까 애들이 뒤에서 정말 총 알같이 뛰쳐나왔어요.
그리고 전도사님하고 나하고 둘이 앞자리에 딱 이거 앉아 있는 거야 그랬더니 전도 사님이 그때 경상도 분이었는데 내리라고 빨리 권 선생 내리라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아닙니다. 전도사님부터 내리소. 빨리 퍼뜩 내려라.
전도사님 퍼뜩 내리소 그랬더니 갑자기 전도사님 소리를 팍 지르면서 니가 내려야
지 내가 내릴 거 아이가 그러는 거예요.
뭔 소리인가 봤더니 전도사님 문 열면 거기 낭떠러지라 낭떠러지예요.
근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전도사님부터 내리라고 그게 왜 전도사님 화가 나셨겠어 요? 그냥 내가 내리고 전도사님 내리고 아이들이 내리고 난 뒤 하나님께 살려주심 에 너무 감사드리고 그 타이어 한쪽 걸려 있고 이렇게 된 데다가 무릎을 꿇고 기도 를 했습니다.
그때 나는 그랬습니다. 하나님 내 배우 시켜줄 거 맞죠?
데리고 가라 했는데 시키잖아 살렸으니까 그러고 난 뒤에 이제 본교 우리 교회 조 그마한 교회였거든요.
개척교회 난리가 났습니다. 그 교회에서 전도사님 와서 울면서 간증하고 어머니들 은 죽을 만한 자식들 살려주신 하나님 감사하고 그때부터 우리는 다시 태어났다 막 이러고 난리가 났어요.
그때 저는 그때 계속 하나님 언제 배우 시켜줄 겁니까? 그러는 찰나에 MBC 19 모 집이라고 공고를 떴으니 당연히 저기 제가 합격이죠.
그것 때문에 내가 살았는데 그러니까 막 난리가 났죠.
근데 그 많은 학교 MBC 19기 그게 굉장히 높습니다.
비율이 애들이 정말 많이 지금 무슨 케이팝 스타 이런 것처럼 오디션에 공개를 애 들이 응모를 하잖아요.
그래갖고 이제 KBS 그때는 SBS가 없을 때고 KBS하고 MBC만 있을 때
그래 해갖고 이제 됐으니 1차 합격했다고 연락이 오고 1차에도 많이 떨어뜨리거든 요.
그래서 제가 1차 합격했다고 연락 오니까 학교에서는 니는 될 거다 막 이러고 막 이랬는데 2차 또 합격을 해버린 거예요.
2차 합격했는데 몇 명 안 됐어요? 몇 명 됐냐면 저희 학교 전체에서 6명인가 7명 됐어요.
그중에 내가 포함된 거야. 근데 그중에도 또 유일하게 니는 될 거야 했던 게 저였어 요.
저는 완전 된 거야. 그래갖고 MBC 들어가면 누구 국장님을 소개해 줄게 어쩌고 저 쩌고 얘기하니까 저는 완전히 완전히 기고만장 부산에다 연락했죠.
아버지 버떡대리 차 아프고 빨리 오소. 내가 이제 배우 MBC 들어간다.
아버지 내 2차까지 합격했는데 이제 3차 면접만 보면 땡이다 버티고 온다니까 우 리 아버지는 또 말도 잘 들어요.
와요. 서울로 올 돈이 없으니까 어디로 가냐면 부천 고강동 열립으로 와요.
지하 열립. 거기는 비행기가 다니는 길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쌌어요.
아버지가 오빠야 둘은 냅두고 여동생하고 이제 왔어요.
왔는데 우리 아버지가 와갖고 딕보니까에 제가 이제 시험 본다고 왔다 갔다 갔다 갔다 3차 본다고 막 그럴 때였습니다.
아버지가 600번 공항버스 거기에 다시 취직을 하셨어요.
어쨌든 간에 제가 이제 벌 때까지는 하신다고 그때도 저희 어머님이 안 좋으셨거든 요.
몸이 그래갖고 이제 왔다 갔다 갔다 갔다 그러고 있는데 내가 이제 됐다 됐다 하고 막 있는데 MBC 1기 마무리 3차 면접 딱 봤는데 마지막까지 남은 6명 중에 하나가 떨어지고 다 된 거예요.
저만 떨어지고 다 된 거예요. 저만 붙을 줄 알았어요.
저만 떨어진 거야 떨어지니까 무섭대요. 아버지가 내를 외면하는데 우리 뭐 때문에 여기 왔는데 진짜 민망하대요.
그거 그래가지고 갈 데도 없고 안 해본 게 없습니다.
꽃장사부터 붕어빵 장사
그다음에 군고구마 이런 거 다 팔아봤어요. 저 돈 되게 잘 벌었어요.
그때도 나가기만 하면 일하고 이거 갖고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제일 잘하는 게 뭡니까? 집안일 옛날에는 시청에 직업 소개서가 많이 붙어 있었어요.
시청 쪽은 바삭합니다. 왜 학교가 거기였잖아요.
그리고 맨날 걸어다녔거든 포스터 이거 전단지 뿌리느라고 그 직업소개서를 찾아 갔어요.
찾아갔더니 저보고 그러대요. 뭐 잘하노? 저는 집안일을 되게 잘합니다.
월급을 제대로 줄 수 있는 집을 좀 소개시켜주면 제가 그 집에 식모로 들어가려고 마음을 딱 먹고 왜 엄마 아버지 호강시켜주고 싶어 미치겠는데 도저히 모을 수가 없는 거예요.
안 되겠다 해갖고 이제 집에다가 얘기 안 하고 내가 아무튼 간에 나가서 일한다 하
면서 왜냐하면 연극 바닥을 막 돌아다니고 연극해갖고 돈 못 벌겠더라고요. 그랬더니
그 직업 속에서 사장님께서 저한테 그랬어요. 두 번 다시 직업 속에서는 찾아오지 말고 니가 그렇게 돈을 벌어야 된다면 내가 소개해 줄 데가 한 군데 있다고 그러면 서 저기 삼양동에 있는 청수탕을 소개해줬어요.
그 청수탕에 미스인 아가씨 한 분이 떼를 밀어갖고 돈을 무진장 벌어서 아파트를 샀대요.
그러면서 그분 제자로 저를 소개시켜준 거예요. 그래서 제가 찾아갔잖아요. 찾아가가지고 제가 여차차차 이렇게 돼서 엄청나게 제가 잘 될 줄 알고 부산에서 부모님을 오시라고 그랬는데 저는 지금 너무 절망입니다.
나 좀 일 좀 다 가르쳐주면 목욕탕에 가서 그거 하는 거 보니까 돈을 진짜 잘 버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직업소개소 분이 정말 돈 많이 벌 수 있으니까 해보라 그래서 사정을 했더 니 그분이 너무 흔쾌히 정말 그분은 되게 예쁘신 분이었어요.
허락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목욕탕으로 이제 출석을 하는 거예요.
집에다가 얘기 안 하고 그래서 이제 머리 감기는 거 때미는 거 떼도 결대로 밀어야 돼요.
여러분 저는 지금도 이제 제가 어머니 때를 이렇게 밀어드리면 우리 엄마가 그래요. 철없이 너는 어떻게 떼도 잘 미노 그때 배웠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 크게 공고가 났습니다. 장군의 아들 2 여자 주인공을 뽑는 다고 장군의 아들 완이 그때 세상을 시끄럽게 했고 박상민이라는 친구가 장군의 아 들 완으로 스타가 됐죠.
장군의 아들 2에서는 여자 주인공을 뽑는다. 그러니까 여자들하고 이제 응모를 하 라고 그랬는데 그때 2천 몇백 대 1이었을 거예요.
아마 저도 응모를 안 하려고 그랬는데 여러분 목욕탕에는 신문이 많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떼밀리 스승 언니가 저를 자꾸 꼬데기는 거야.
여기 시험 한번 봐라 니
배우하고 싶다며 이러고요. 그래서 제가 그때 학교 다니면서 리포터를 잠깐 잠깐 했었어요.
이제 선생님들이 좀 교수님들이 이뻐해 주셔갖고 아르바이트 근데 리포터도 돈이 안 돼요.
정말 근데 저보고 자꾸만 장군 아들 시험을 보라. 그래서 제가 그 목욕탕 주소로 장 군 아들 원서를 넣었어요.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하고 근데 1차 합격했대요.
그래서 또 비밀로 왜 MBC 19기 때 그렇게 시끄럽게 했잖아 이번에는 비밀로 아무 도 모르게 딱 한 사람만 알게 근데 마지막 2600대 14대 1인가 아무튼 그랬던 것 같 아요.
거기서 1등을 뽑는데 그 1등이 저였어요. 근데 여러분 임권택 감독님이 지금 연세 많으신데 그때도 감독님께서 약간 말을 더듬으셨어요.
그래서 제가 뽑혀가지고 막 뉴스에도 나오고 신문에도 나고 막 그랬어요.
그랬는데
그때 저희 집에서 저를 텔레비에 나온 거를 못 보고 누구 사람들이 얘기를 해줬나 봐요.
그 집 딸하고 억수로 비슷한 아가 됐다고 제가 집에다 얘기를 안 했잖아요.
되고 난 뒤에도 그때 떨어졌을 때 한이 너무너무 많이 맺혀가지고 나중에 이제 우 리 아버지한테 내가 얘기를 했더니 우리 아버지가 갑자기 또 돌변하더니 너는 될 줄 알았다.
장군의 아들 두 여자 주인공이 됐을 때 나는 선포했습니다.
기자들이 막 싫어했어요.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저 같은 아이들 이렇게 뽑혀주시고 그래서 막 그러니까 기자들이 또 쓸 때 그 얘기 를 싹 빼요.
지들끼리만 예수 얘기 좀 그만하라고 그렇게 해서 저는 이제 장군의 아들도 여자 주인공이 되면서 하루아침에 정말 바닥에서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정말 걷잡 을 수 없더라고요.
그쯤 되니까 나랑 MBC 시국에 같이 시험 봤던 애들이 궁금하잖아요.
여러분 어떻게 됐는지 궁금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알아봤더니 그들은 지나가는 포졸 완 아낙네 일
이러고 있는데 저는 그때 대우전자 CF부터 시작해서 박상원 씨하고 광고를 한 6~7 개 이렇게 했던 것 같아요.
걔가 갑자기 이제 돈을 많이 벌게 됐죠. 돈을 많이 벌게 되고 제가 그때 요즘에도 큰 돈인데 그때 당시 굉장히 큰 돈이었어요.
여러분 사인에 1시간씩 하면 현금으로 500만 원씩 줬었어요.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이 걷잡을 수 없는 돈이 막 들어오는 거예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서운했거든요. 하나님 내가 돈 벌면 이 모든 돈은 하나님께 하 나님 나라를 위해서 다 쓰겠습니다.
제가 막 얼마나 막 하나님 앞에 큰 소리를 쳤겠어요 그리고 방송하면서도 사람들이 그랬어요.
참 뭐가 도와주는 것 같다고 저는 남들보다 연기도 열심히 안 했어요.
솔직히 대본도 많이 안 봤어요. 솔직히 근데 항상 저는 연기를 참 잘한다는 말을 들 었어요.
저는 다 쉬웠어요. 너무 쉬웠어. 근데 제가 놓친 게 있었어요.
여러분
그렇게 해서 저의 그 파란만장한 우여곡절 정말 그지같이 사는 저의 삶에 광명이 딱 비추고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정말 돌린 것처럼 행동을 했는데 제가 돈 을 벌기 시작하고 수억을 벌고 수십억을 벌고 어마어마하게 벌었습니다.
근데 저는 그 돈을 하나님한테 쓰지 않았어요. 정말 여러분 안 그럴 것 같죠? 여러 분 돈 벌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쓸 것 같죠 그리고 여러분 출세하면 하나님 나라 를 위해서 그 출세한 그 영광을 올려드릴 것 같죠 그게 안 되더라고요.
제가 기독교 방송 새롭게 하소서도 진행을 하고 공개적으로는 굉장히 신앙이 좋은 사람처럼 가장이 돼 있지만 사실 저는 껍데기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 자신이 알잖아요. 저는 하나님보다 돈이 좋았고 하나님보다 사치 가 좋았고 하나님보다 유명해지는 게 좋았어요.
그리고 하나님보다 뭐든지 세상의 것들이 좋은 게 많았어요. 근데 교회에 와서는 하나님이 제일 좋은 척했어요.
정말 그리고 신앙이 제일 좋은 척했어요.
저는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 해도 예수 믿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가 너무나 많이 벌어놨던 그 돈이 하루아침에 와르르르르 무너지 면서 모든 돈을 다 잃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너무나 큰 돈 정말 죽는 것 같았어요. 저는 죽으려고 결심을 했어요. 자살을 하려고 했어요.
여러분이 상상하지 못하는 짓거리를 너무나 많이 했어요. 죽으려고 왜 돈을 잃어버리고 나니까 살 소망이 없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몰랐어요.
대충 주일 예배 드렸고 대충 헌금도 잘했고, 헛될 때는 내가 좀 많다 할 정도로도 하나님 앞에 올려드렸고, 주일 예배 빼먹지 않고 웬만큼 다 했는데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이 와야 되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하나님이 미웠어요. 원망했어요. 그 세월이 길었습니다.
그때까지도 몰랐습니다. 내가 왜 이런 상황에 처해야 되는지 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되게 사랑합니다. 지금도 부모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망한 거를 보여주기 싫었어요.
형제들에게도 망한 거를 얘기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정말 외톨이가 됐고 정말 구석으로 막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죽기만 딱 남은 그 상황에 죽기 일보 직전 저는 이런 거를 얘기해도 될지 모르겠지 만 생명보험을 어마어마하게 들었었어요.
죽기 위한 준비를 했던 거죠. 그러던 어느 날 교회 예배당에 근접도 하기 싫었던 어 느 날, 정말 죽으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한 번만 들어가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다 라고 생각을 하고 교회 예배당을 찾아왔습니다.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소리를 내어 울었고, 그러던 어느 시간에 어떤 분이 저에게 와서 아는 척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저를 아는 척하는 게 싫어요. 왜 나 너무 망했으니까 안 망했을 때는 아는 척하는 게 좋은데 망했을 때는 아는 척하는 게 너무 싫어요.
근데 그분이 성찬 씨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아는 척 좀 하지 마세요.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냥 가만히 계시더라고 그래서 한없 이 울었어요.
내가 이제 죽을 건데요. 내가 이제 죽을 건데요 하고 얘기를 막 하면서 울었는데 그 분이 제가 울고 있는 옆에서 오더니 저를 꼭 껴안더니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러는 거예요. 저도 모르게 그분한테 고백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얼마나 그지 같은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이 그지 같은 아이를 하나님께서 어떻
게 역사하셨고 정말 내가 숨쉬는 이 숨소리보다 먼저 앞서서 내가 숨을 잘 쉴 수 있 도록 귀까지 다 뚫어준 그 하나님을 내가 어떻게 배신했고 어떻게 가장을 하고 어 떻게 포장을 하고 어떻게 거짓을 하고 가짜로 산 그 나만이 알고 있는 크리스찬 그 가짜 크리스찬인 내 모습을 토해내면서 그분에게 매달려서 울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분께 고백해서 이런 나는 하나님을 믿을 자격이 없다고
그랬더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한다고 얘기했어요.
그래서 나는 아니라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맞대요.
그랬더니 그분이 그날부터 저희 집에 저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매일같이 예 배를 드리러 와주셨어요.
정말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분이 그러더니 예배를 드려주시고 같이 울어주시고 같 이 울부어주시고 그러던 어느 날 저에게 봉투를 하나 내밀었는데 그 봉투에는 100 만 원의 큰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죽고 싶을 때 다른 데 가지 말고 이걸로 차 위에서 예배당을 오래는 거예요.
죽고 싶을 때 다른 데 가지 말고 이 돈으로 차비해서 예배당을 오라고 새벽 2시 3시 요즘에 많이 괴롭혔습니다.
아주 많은 수면제를 장기간 복용을 했고요. 우울증 약도 아주 장기간 복용을 했습 니다.
근데 너무 죽고 싶다고 느껴질 때 새벽 2시 반 3시 반 마당에 가서 한없이 울었습니 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가짜인 거 용서해 주십시오.
가짜인 거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기 시작했는데 하나님은 너무나도 입을 꽉 다물고 계셨 어요.
예전 같으면 너무 자주 자주 저에게 말씀해 주셨고 알려주셨거든요.
7개월을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날도 새벽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고 돌아오 는데 넉다운이 돼서 어떻게 주체할 수도 없는 내 몸이 그냥 이러고 앉아 있는데 내 깊은 저곳에서 무릎을 꿇어라라는 주님의 음성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어떻게 기도했는지 기억이 안 나요.
정말 기억이 안 나요. 그냥 하나님께 부르짖었어요.
미친 듯이 부르짖었고 어떤 소리로 어떤 기도를 올려들었던 것이 기억이 안 나요. 그 기도는 정말 하나님께서만 하시는 기도 같았어요.
근데 갑자기 1시간이나 지났을까요? 온몸이 땀과 물로 범벅이 됐는데 누가 나를 콱 꿰는 거예요 그래서 제 생각에 우리 딸이 드디어 미쳤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저 희 친정 아버지가 나를 껴안는다고 생각을 했는데 정말 꼼짝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누구지 이러는데 정말 음성이 내 안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했어요.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여러분 아니라 그랬어요 저 아니에요. 하나님 나를 어떻게 사랑해요? 그랬더니 우리 하나님께서 뭐라 그랬냐면 첫째 첫 째 아이가 쏘이고 둘째 아이가 예성입니다.
니가 너의 딸 소리와 예성이를 사랑함보다 내가 너를 사랑함이 더 크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이 어미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그러셨어요. 비교할 때가 안 되니까 니가 너의 딸 아들을 사랑함 보다 내가 너를 사랑함이 더 크다.
할렐루야 그 음성은 진짜였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하나님 앞에 뒹굴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하나님 앞에 다시금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라고 이제 고백이 되어지기 시 작했어요.
여러분 주님 뜻대로 살겠다고 아까 고백하셨죠 찬양으로 뒤돌아서지 않겠다고 고 백하셨죠? 근데 뒤돌아서면요.
돌아오는 길은 갑절로 힘듭니다.
기돗줄은 그렇습니다. 기돗줄은 잡을 수 있을 때 잡아야 됩니다.
여러분 지금 다니엘 20일 기도라는 게 오늘까지 19일 이 기도 줄을 20일이 끝났다. 그래서 놓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녀와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올 때입니다.
우리가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럴 때 맞죠 하지만 내 자녀들이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여러분 아셔야 됩니다.
내 자녀들이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것처럼 저렇게 갑자기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 서 불러서 데리고 갈 때 그 아이가 어느 문을 향할 수 있을지 여러분 한번 기도해 보십시오.
자신 있습니까? 오늘 밤 여러분을 데리고 가신다면 여러분 자신 있습니까? 제가 그래서 다시 무릎 꿇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이 아이들을 정말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 생명으로 키워내기를 원합
니다.
여러분 아이는 학교에서 키우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서 키우는 것도 아니고 가정에 서 키우는 겁니다.
부모가 키우는 겁니다.
우리 다음 세대들이 어떻게 가는지 여러분 아십니까? 지금 어디를 향해서 달려가 는지 여러분 아십니까? 내 아이는 안 그럴 거라고요 영으로 기도해 보십시오.
내 자녀를 놓고 기도해 보십시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요번에 이런 일을 겪으면서 아이들 앞에 다시 무릎을 꿇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우리 딸 아이가 지금은 초등학교 5학년인데 이 딸아이가 5살 때 말을 했어요.
5살 때 말을 하고 터졌을 때 저한테 한 말이 그거예요.
엄마 저는 애기가 말이 너무 늦어가지고 문제가 있나 보다 하고 이 아이 어릴 때 제 가 엄청 힘들었을 그 과정이었기 때문에 딸 아이가 말을 안 해서 기억도 못할 줄 알 았는데, 이 딸 아이가 5살이 지나고 얘기를 할 때 여러분 저한테 고백할 때 어떤 고 백을 했는지 아세요? 엄마 이 세상 살기가 너무 힘들더라도 우리보다 먼저 죽겠다 는 말은 하지 마.
이게 이 아이의 고백이었어요.
이 아이 4살 때 말을 못할 때 이 아이가 그냥 잠들어 있을 때 너무 살기가 힘들어서 제가 한 얘기예요.
근데 이 아이는 그거를 기억을 해냈나 봐요. 그리고 아이가 얘기를 하는 거예요. 엄마 사는 게 너무 힘들더라도 엄마 나보다 먼저 죽겠다는 얘기하지 마.
여러분 우리 연예인들 공인들 자살에 음란에 돈에 이 더러운 영들이 얼마나 붙어 있는지 압니까? 정말 물리치고 싶어서 하고 나가도 나가는 순간 또 달라붙습니다. 이 얘기만 하고 나갈게요. 여러분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시작하자마자 가르쳐주는 게 있어요.
쉬지 말고 범사에 항상 쉬지 말고 뭐 하라 그러죠 기도 범사에 뭐 하라 그러죠 항상 뭐 하라 그러죠.
근데 잘 들어보세요. 여러분은 자꾸 틈을 줘요. 어떤 틈 항상은 빼고 쉬지 말고도 빼고 항상도 빼먹어요.
그리고 기도는 해요. 그리고 감사도 해요. 그리고 대충 기뻐해요.
하지만 지금의 악한 무리들은 항상의 틈을 타고 쉬지 말고의 틈을 타고 범사의 틈 을 탑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거를 놓치면 안 돼요. 왜 굳이 항상을 집어넣고 왜 굳이 쉬지 말고 를 집어넣었고 왜 굳이 범사를 집어넣었는지 여러분이 아셔야 합니다.
저는 참 우리 하나님 멋지다고 생각하는 게 뭔지 아세요? 하나님은 정답을 다 가르 쳐주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근데 우리는 꼭 다른 길을 헤맵니다. 다른 길을 돌아다니면서 하나님 왜 나에게 정 답을 안 가르쳐주시고 나만 이렇게 하나님은 사실 여러분 고요하게 만드는 게 더 쉬우세요.
폭풍 치는 거 하나님 싫어하세요 왜 사랑의 하나님 평화의 하나님, 평강의 하나님 하지만 우리가 그 폭풍을 때로는 맞을 때가 필요해요.
그거 없이도 우리가 가짜를 못 벗어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막 뜨겁게 19일 기도하고 22일 기도했다고 해서 우리가 다음이 보장됐다고 아무도 얘기 안 합니다. 못합니다. 항상 쉬지 말고 범사가 붙어야 됩니다.
그게 없이는 아니 됩니다. 저는 지금 감히 고백할 게 하나 있습니다.
저는 망한 자입니다. 하지만 망해서 기쁜 자입니다.
제가 망하지 않고 지금 제가 지금도 내가 잘 나가는 연예인 그 자리에 서 있었다면 저는 지금 어느 위치에 있을지 제가 너무 잘 압니다.
그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솔직히 재미가 없어서 일을 못하고 있습 니다.
하자고 합니다.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홈쇼핑에서 물건이나 팔고 그러면서 끼니 를 잘 때우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제 내려갈 건데 누구보다도 진풍과 짝퉁은 자신이 압니다.
근데 내가 나로 인해서 주변이 변화되지 않고 나로 인해서 가정이 회복되지 않았다 면 그건 짝퉁입니다.
그건 분명히 짝퉁입니다. 저도 아직도 진품이 아닙니다.
저희 집도 아직 회복되지 않은 영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품 되고자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항상가 범사와 그리고 쉬지 말고를 놓지 마십시오.
그걸 놓는 순간 여러분은 또 뒤돌아서게 될 겁니다.
제가 되게 은혜를 받은 게 시편 139편입니다. 제가 이거 한 번만 여러분께 왜냐하 면 이렇게 살아계시고 이렇게 기가 막히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렇게 만지시는 그 하나님을 여러분이 한번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만져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져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걸 한번 읽어드릴게요. 여러분 그냥 눈을 감고 들으시든 눈을 뜨고 들으시 든 한번 들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분위기 있는 음악 좀 띄워주세요.
여호와여 주께서는 지금까지 나를 살피셨으니 주는 나를 알고 계십니다.
주는 내가 언제 안고 언제 일어서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주는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아십니다. 주는 내가 나가고 눕는 것을 아십니다.
주는 나의 모든 길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십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여호와여 주는 그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주는 앞뒤로 나를 둘러싸고 계십니다. 주는 주의 손으로 나라를 붙잡고 계십니다. 이것을 안다는 것은 내게 너무나도 엄청난 일입니다.
그런 지식은 내가 알기에는 너무나 깊고 너무나 오묘합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내가 주가 계신 곳을 떠나 어디로 도망갈 수 있겠습니까? 만일 내가 하늘 위로 올라간다 해도 주님은 거기 계십니다. 내가 깊은 곳에 눕는다 해도 주는 거기에 계십니다.
만일 내가 새벽에 날개 위에 오른다 해도, 내가 바다의 저 끝쪽에 자리를 잡는다 해 도
주의 손이 거기서 나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굳게 잡으실 것입 니다.
만일 내가 어두움이 확실하게 나를 숨겨줄 것이다라고 말한다 해도 빛이 내 주위에 는 밤이 된다 말한다 해도 어두움이 주께는 어둡지 않을 것입니다.
밤이 낮처럼 빛날 것입니다. 이는 어두움이 주께는 빛과 같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나의 가장 깊은 곳을 지으셨으며 나의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를 만드셨습니 다.
내가 주를 찬양합니다. 이는 내가 신기하고 놀랍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하신 일들은 놀랍습니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내 몸은 주께로부터 피하여 숨을 수 없습니다. 이는 내가 은밀한 곳에서 만들어질 때 그러했습니다.
내가 땅에 깊은 곳에서 만들어졌을 때, 주의 눈이 아직 형태를 갖추지 않을 내 몸을 주님은 보셨습니다.
내가 정해진 모든 날들이 주의 책 속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날들의 하루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기록되었습니다. 주님, 하나님
주위의 생각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요. 그것들이 얼마나 크고 많은지요. 만일 내가 그것들을 셀 수만 있다면 아마 모래알의 숫자보다 더 많을 겁니다. 내가 잠에서 깰 때도 나는 여전히 주와 함께 있습니다.
아멘 여러분 이거는 여러분이 믿는 말씀 속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간 찬양받으신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 올려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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