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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비목사 2024다니엘기도회 15일차 본문

1. 진리로의 자유케 하심
1-1. 참된 자유와 치유
- (중요) 강연자는 참석자들에게 상처 입은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 전달을 강조함
- 참석자들 중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뉨
- 예수님은 상처와 절박함에서 자유케 하시려고 말씀하심
- 예수님은 진리로써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분임
- 진리는 로고스이신 예수님 그 자체이며, 진리를 아는 사람은 속박에서 자유케 됨
1-2. 진리를 아는 삶의 혜택
- 진리를 알면 속박된 채로 살지 않고 자유케 누릴 수 있음
- 예수님을 알게 되면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음
- 예수님을 바라봄으로써 단번에 치유받고 지속적으로 치유받음
-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은 강연자에게 참된 자유와 평안을 가져다준 계기가 됨
- 예수님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치유받은 강연자의 경험을 공유함
1-3. 참석자들의 감사
- 강연자는 명절 모임에서 상처받은 아내와 아이들의 감사를 언급함
- 강연자의 아내가 울면서, 아이들이 같이 우는 것을 보고 놀라움
- 아내의 아들과 자신의 경험을 헤아려 서로 위로함
- 참석자들의 감사와 감정 표현을 통해 강연자가 느낀 자유와 평안에 대해 공유함
2. 학대받은 아이의 이야기와 심리적 고통 이해
2-1. 고통받은 아이의 인생과 고민
- 학대받은 아이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과잉집착으로 인한 학대 경험을 함
- 어머니가 본인의 은유적인 이야기를 전하며 본인의 심리적 고통을 인지하지 못함
- 상처받은 아이는 학대의 당사자이며, 그 아픔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 없이 자신만의 감정을 간직함
- 상처받은 아이가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도, 공감해줄 사람도 없음
- (중요) 이러한 상황은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영향을 미치며, 아이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는 이를 해결해야 함
2-2. 고통받는 아이의 심리적 반응과 고민
- 학대받은 아이는 상처받은 자신을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힘들게 견뎌야 함
- (중요) 이 과정에서 아이는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을 전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의 부재에 회의감을 느낌
- 이 회의감은 아이의 안정적인 성장과 발달을 저해하며,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침
- 이 경험을 통해 아이는 자신을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대하는 대신, 스스로 견뎌야 함을 깨닫게 됨
2-3. 학대받은 아이의 고통과 고민에 대한 이해
- (중요) 아이의 고통과 고민은 아이의 발달과정에서 필연적인 부분이며, 이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 중요함
- 아이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아이의 안정적인 발달에 기여하며, 고통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치유가 이루어짐
- 과거의 경험을 뒤로하고 현재의 삶에 충실함으로써, 아이는 자신의 고통을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음
- 아이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극복하는 과정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며, 이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장하는 것이 가능함
3. 저자의 사춘기 시절과 깨달음
3-1. 저자의 가난한 가정에서의 생활
- 저자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은혜와 학대에 시달림
-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가정에서 기독교 생활을 혐오하며 자라게 됨
- 탈출을 계획하며 기독교 잡지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되며, 이후에도 기독교를 사교로 선택함
- (중요)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교회를 통해 희망을 찾아나감
3-2. 학창시절의 절망과 자아 파괴
- 부모의 학대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함
- 기독교도들과 입학 목표를 갖춰 가려 했지만, 빈부격차와 정서적인 격차에 절망함
- 교회를 탈출하려고 시도하면서 부모의 거부감과 충돌이 심화됨
- 이 과정에서 자신의 자아를 파괴하고, 시골로 떠나기로 결정함
3-3. 고민과 선택의 순간
- 기독교도들과의 입학 경쟁에서 실패한 후, 부모 앞에서 죽으려고 시도함
- (중요) 이 과정에서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상실감과 절망감에 시달림
- 하지만, 마지막까지 부모에게 복수할 생각을 버리고 기독교를 받아들임
- 은행나무에 인사한 후, 자신이 죽음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으로 목숨을 매려 죽음
4. 고통, 저주, 새로운 삶
4-1. 학대받는 아동 시절
- 강연자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학대로 인해 성장함
- 아버지의 학대와 어머니의 무관심으로 상처받음
- 뿌리를 보고 '신'의 존재를 저주함
- 학대받는 아이로서 자라면서 삶에 대한 통찰을 얻음
- (중요) 예수님의 진심과 통찰이 강연자에게 삶의 방향을 바꿈
4-2. 회심과 새로운 삶
- 강연자는 학대받는 삶에서 회심하고 교회에 다님
- 기숙사 선배의 권유로 고등학교 철없는 신자가 됨
- 자신의 고통과 학대받은 기억을 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감
-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진학했으나 신앙을 갚으려는 마음이 강해짐
- 대학부에 입학했을 때에도 교회의 성장을 목격하고 감동받음
4-3. 새로운 사명
- 강연자는 대학부에서 신앙을 갚으려는 마음이 너무 강해짐
- 교회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고 새로운 사명을 느낌
- 교회 사역을 통해 성공했지만, 자신의 강한 열정은 사라짐
- (중요) 자신의 과거 삶을 반성하며, 강해졌던 열정이 사라지고 스스로를 용서하고 변화시키는 계기가 됨
- 강연자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느낀 점을 강조함
5. 사역과 성령
5-1. 교회와 사역의 동기
- 강사는 신학생 시절을 언급하며 설교 준비 시 꿈에 사로잡혀 고뇌했음
- 꿈에서 받은 외울조각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다른 대학에 재학 중인 듯한 느낌을 받음
- 교회와 사역에 대한 관심과 계획을 설명하며, 고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역을 시작하려는 의지를 밝힘
- 외울조각을 활용하여 인형극을 하며 상대방에게 복음을 전하는 경험을 공유함
- (중요) 강사는 신학생 시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설교를 대신하게 된 계기를 강조함
5-2. 설교 준비 과정
- 강사는 지하철에서 성령의 역사와 설교 준비에 대한 믿음을 가짐
- 성공적으로 외울조각을 외우기 위해 지하철역에서 내려 다님
- 강사는 비장한 각오로 낮 설교를 준비하며, 강의 도중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드림
- 강사는 몸이 굳고 말이 떨리는 경험을 설명하며, 성령의 역사로 인한 변화를 강조함
- (중요) 하나님을 믿는 자의 성실함과 겸손함이 설교에 큰 영향을 미침을 일깨움
5-3. 설교와 믿음의 통달
- 강사는 낮 설교 중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확신하며, 그 경험을 공유함
- 설교 중 하나님을 믿는다는 감정이 몸에 흘러넘쳐 강사의 말이 나옴
- 설교 후에 교회로 가서 믿음을 더 확신하고, 다음 주말을 기다리는 마음이 강해짐
- (중요) 믿음은 자기 삶에 변화를 가져오고, 기적적인 전환을 일으킬 수 있음을 강조함
- 믿음의 힘은 자신의 삶뿐 아니라 다른 이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침을 일깨움
6. 하나님께 받은 치유와 새로운 삶의 시작
6-1. 하나님의 치유와 변화
- 하나님의 치유를 통해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극복함
- (중요)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의 상태가 호전되었음
-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함
- 자신의 상태 변화를 통해 다른 사람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침
6-2. 전도사로서의 삶과 교회 개척
- 하나님의 치유를 통해 전도사로서의 삶을 이어감
- 부흥을 경험하고, 교회 개척에 헌신함
-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전도 활동을 진행, 전도사로서의 역할을 이해함
- (중요) 목회자로서 자신의 역할과 가치를 깨달음
6-3. 감수성과 소명의 인식
- 목회자로서의 삶을 통해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공유함
-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며 그들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음
- (중요) 상처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공감능력이 향상됨
-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통해 다른 사람의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내는 경험을 함
7. 예기부근
7-1. 두려움 극복
- 예기 부근과 자존감 저하로 개척을 거절함
- 지원을 받기 위해 교회 개척을 강요함
- 개척을 거절한 후에도 교회가 계속 지원하자, 개척을 해주겠다고 함
- 헌신과 낙오를 경험하며 현실적인 삶을 선택함
- 개척을 해주겠다는 교회의 약속에 감사함
7-2. 공황장애와 사역
- 공황장애 연구 중, 자신의 경험을 설명함
- 가족과 자녀의 가난을 예기 부근의 결과로 여김
- 경험을 통해 마음의 여유와 두려움, 예기 불안의 존재를 깨달음
- 자신의 사역과 두려움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음
- (중요) 자신의 절박함이 아닌, 현실에 대한 공포로 인한 두려움이었음을 깨달음
7-3. 새로운 삶
- 예기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결단함
- 돈이 없던 시절, 공유 오피스를 통해 기도와 글쓰기를 시작함
- 내 인생에 대한 여유를 갖게 되고, 현실을 직시하게 됨
- 출판사와의 만남을 통해 갑작스러운 기회를 얻음
- 기도실에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감
8. 말씀으로 치유
8-1. 감정에서 벗어나 진리로 나아감
- 강사님의 기도를 통해 환자의 환상을 볼 수 있었음
- (중요) 강사님의 기도는 환자에게 사명을 주심
- 강사님은 환자의 감정을 존중하지 않고, 진리로 나아가라고 하심
- 강사님은 감정이 아닌 진리로 나아가야 함을 강조하심
- 외로움은 감정이며, 예수님은 우리의 감정과 상관없이 항상 함께하심
8-2. 치유를 위한 겸손과 고백
- 강사님은 부름을 받은 목적을 "살려줌"으로 고백하심
- 강사님은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상처 입은 자"를 돕기 위해 이곳에 부름받았다고 고백하심
- 강사님은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받기 위해 기도하심
- 강사님은 치유에 관하여 말하지 말고, 말씀을 전하라고 하심
- 강사님은 믿음으로 말씀을 고백함으로써 치유받기를 원하심
8-3. 진리의 말씀으로 치유
- 하나님은 우리의 결핍을 채우시고, 우리의 믿음을 꺾지 않으심
- 사탄은 우리의 믿음을 꺾고, 거짓말과 질병으로 위협함
- 말씀의 능력으로 치유될 것을 고백하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 기도하심
- 강사님은 감정과 상식을 넘어, 진리의 말씀으로 치유받기를 원하심
-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말씀의 능력으로 치유하심
여러분 반갑습니다. 네, 네 저는 김유비 목사입니다. 여러분 은혜 많이 받고 계신가요? 저도 다니엘 기도회 함께 첫날부터 지금까지 참여하면서 은혜 받고 있습니다. 다니엘 기도회를 통해서 대한민국과 온 세계 디아스포라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설교하지 않습니다. 저는 상처 입은 한 사람을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 오늘 아니면 안 되는 사람 살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사람 저는 그 한 사람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 그 한 사람 오늘 하나님이 살려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내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상처에서 자유케 하리라 불안해서 자유케 하리라 두려움에서 자유케 하리라 외로움에서 자유케 하리라 슬픔에서 자유케 하리라 질병에서 자유케 하리라 하나님께서 치유하여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치유하기 원하십니다. 상처를 치유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치유하실까요? 우리가 읽은 말씀대로 진리로 우리를 치유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진리는 무엇일까요? 여러분 진리는 예수님 그 자체이십니다. 로고스이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자기 자신이 하신 말씀 자기 자신에 관한 말씀 그리고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그 말씀 성경 66권이 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특별히 은혜의 복음이 진리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를 치유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속박에서 자유케댑니다.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진리를 알지 못하면 속박된 채로 삽니다. 절망과 불안 속에서 사는 것이죠. 진리를 아는 삶과 진리를 모르는 삶이 이렇게 극명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진리를 외면하며 살게 될까요? 진리를 알지 모른 채로 살아가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거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안의 결핍 때문입니다.
우리 안의 결핍은 거짓말을 양산해내는 공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핍이 있는 사람은 그 결핍 안에서 무수한 거짓말들이 쏟아져 내리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마귀의 부추김이 있습니다. 마귀도 우리의 결핍을 압니다. 우리의 취약함을 아는 것이죠. 모든 것이 사탄의 역사는 아닙니다. 모든 것이 마귀의 역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마귀가 우리의 결핍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쉽게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통 속에서 우리는 진리를 쉽게 알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러나 진리를 아는 자의 삶의 혜택은 명확합니다. 자유와 기쁨인 것이죠.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알기 원하는 것은 결핍에 속박된 거짓에 사로잡힌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예수 그리스 안의 거함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시는 진심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가 자유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저에게 일어났던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저를 치유하는 과정 속에서 저의 결핍을 아시고 저의 결핍에서 나오는 거짓말이 저를 잔인하게 파괴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치유해 가시는 여정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제가 이 결핍이 있는지도 몰랐고 그리고 이 결핍이 저를 속박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고통받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소를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소를 바라봄으로 단번에 치유되었지만 그리스와 함께 동행함으로 지속적으로 치유되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단번에 치유하셨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치유하시고 그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우리는 완전하게 영화롭게 되어 치유될 것입니다. 그것이 괴롭고 힘들고 더디고 쓸쓸하고 외롭게 느껴지지만 예수님은 그분의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제 얘기를 잠깐 공유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저는 어느 명절날 가족 모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거기엔 저희 어머니도 계셨고 저희 가정도 있었고, 그리고 저희 여동생 가정도 있었습니다. 거기 없었던 유일한 사람은 저희 아버지셨어요. 여러분 명절에 자리를 비우시면 안 됩니다. 가족들이 얘기를 합니다.
그 자리를 꼭 지키셔야 됩니다. 가기 싫어도 안 가도 자기 얘기 나옵니다. 차라리 가서 듣는 게 낫습니다. 그날 명절 모임인데 제 여동생이 결혼을 하고 4년 5년 동안 아이를 못 낳습니다. 저희 가족이 기도 제목이었는데. 너무 예쁜 아이를 낳았어요. 남자아이를 조카였는데 너무 예쁘게 잘 키우고 있었어요. 그 조카가 5살 정도 돼가지고 재롱을 막 부리니까 가족 분위기가 좋았겠죠. 저도 되게 좋아서 같이 웃고 떠들고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갑자기 어머니가 뜬금없이 눈물을 흘리시는 거예요. 근데 분위기에 전혀 안 맞았거든요. 저도 어머니한테 당황해서 어머니 왜 그러세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막 우시면서 갑자기 너희들 어릴 때 이렇게 못 키웠어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좋은 날 과거의 상처가 어머니에게 찾아온 거죠.
저는 어머니를 좀 달래주고 싶어서 어머니 옆에 앉아 가지고 진정을 시키면서 어머니 힘드셨다 최선 다했다. 어머니의 그 희생과 헌신 때문에 우리 가족의 복음이 들어왔고 저도 예수님 믿고 부족하지만 목사가 되어서 복음을 전하고 있지 않냐 어머니 최선 다했다. 그래서 어머니를 진정을 시켰어요. 다 하나님 은혜다라고 말하면서 그래서 수습이 되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뒤에서 흑흑 소리가 또 들리는 거예요. 뒤를 딱 따라보니까 여동생이 울고 있는 거예요. 저는 죄송하지만 어머니를 달래는 거는 괜찮았어요. 근데 여동생을 달래는 거는 안 괜찮았습니다. 저는 좀 겉 속으로는 아 얘 왜 울지 이랬어요. 근데 여동생이 우니까 저는 또 착한 오빠잖아요.
그래서 제가 인자한 말로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그랬더니, 제 여동생이 저한테 짜증을 부리면서 화를 내면서 오빠 다 지난 일로 얘기하지 마 다 지난 일 아니야. 오빠는 어떻게 다 지난 일로 얘길 해 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오빠 기억나 오빠 초등학교 때 아빠한테 밤새도록 맞아서 시체처럼 굳어서 담요에 돌돌 말려 있었어 내 기억에 그게 3번이 넘어 난 오빠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오빠가 죽을까? 봐 너무 두려웠고 오빠랑 같이 학교를 가고 오빠랑 같이 집에 오는 길이 유일한 내 안식처였는데 오빠가 그렇게 저처럼 굳어 있을 때 난 너무 두려웠고 무서웠어 오빠 전 충격을 받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담요에 말려있느라 저를 못 봤거든요. 제 여동생이 그렇게 말하니까 저도 충격받은 거예요. 근데 더 마음이 혼란스러운 거예요. 속으로 야 내가 담요에 말려 있었잖아. 왜 너가 나한테 짜증을 부리는 거야. 근데 저 좋은 오빠잖아요. 그래서 제가 여동생한테 그래 힘들었어 오빠도 쉽지 않았어. 오빠도 사실 지금 진행 중이야 너 서두를 거 없어 천천히 해 오빠가 오래 걸린 만큼 너도 오래 걸릴 거야. 괜찮아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리고 이제 여동생까지 진정시키면서 내적 평화가 밀려왔습니다. 근데 뒤에서 단체로 흑흑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뒤를 돌아보니까 제 아내가 울기 시작하니까 엄마가 우니까 우리 토끼 같은 애기들이 같이 우는 거예요. 제가 아들 딸 딸 셋이거든요. 잘했죠. 네 박수까지요 확실히 쳐주세요. 그러면 네 감사합니다. 아니 그러니까 제가 또 애들을 제 아내를 토닥여주고 왜 애들을 다 감싸주고 다 이렇게 감정을 이렇게 다 위로해 줬어요. 괜찮아 아니 그거 옛날에 할아버지 힘들 때 그랬던 거야. 지금 우리 너무 행복하잖아. 할아버지 재밌잖아. 할아버지 너무 어릴 때 아빠 어릴 때 할아버지도 너무 힘들었었어 그래서 그랬던 거 하고 다 수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있잖아요. 현타가 왔어요.
갑자기 어떤 제가 알 수 없는 감정이 막 밀려드는데 이게 뭐지 어 상처의 당사자는 난데 학대받은 아이는 난데 고통받은 아이는 난데 그 누구도 나에게 사과한 사람도 없고 그것에 대해서 공감해 주는 사람도 없고 왜 나는 다른 사람을 위로해 주고 있지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그 시작이 발단이 돼서 저의 인생을 돌아보게 됐는데 제 인생이 계속 그랬더라고요.
저는 지금 김유비닷컴을 사육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상처 입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처 입은 한 사람에게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따뜻한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매일 아침마다 글을 써서 정말로 밥 짓는 심정으로 상처 입은 한 영혼에게 매일 글을 보내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요 근데 정작 제 얘기를 들어줄 사람은 없는 거예요.
근데 나도 아픈데 나도 그런 학대받은 과거를 완전히 뒤로하고 살고 싶지만 그 상처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나도 갚을 때가 있는데, 그리고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내가 그들에게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을 전하고 옆에서 그것을 목격하고 증인된 삶을 살고 함께 치유하는 과정 속에서 보람도 되지만 나도 내 코가 석자인데 나도 너무 힘들 때가 있는데, 나도 무너질 때가 있는데, 나도 연약한데 왜 내 옆엔 아무도 없지 이런 회의감이 막 밀려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예수님한테 이런 말을 해요. 예수님 저는요 예수님 저는요 왜 저는 안 돌아보세요. 왜 저는 안 챙겨주세요. 왜 저는 안 사랑해 주세요. 왜 저는 방치하세요.
저는 이것이 저에게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감정적으로 느껴지지가 않는 거예요. 예수님이 따뜻하지가 않은 거예요. 예수님이 마음에 막 와닿지가 않는 거예요. 여러분 착하시네요. 갑자기 저를 되게 불쌍하게 쳐다보고 계세요. 쟤 불쌍해 죽겠어 어떤 사람을 째려봐요. 목사가 왜 저래 죄송합니다. 여러분 그게 제 처지입니다. 저도 이게 잘못된 건 줄 알았어요. 아니 난 목사인데 제가 목사의 특권 의식이 있는 건 아닌데 내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인데 목회자인데 말씀을 전하는 사람인데 하루 종일 말씀을 목상하고 하루 종일 기도하는 사람인데 왜 내가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줄 아세요. 전 제가 고장 난 줄 알았습니다. 완전히 망가진 줄 알았어요. 사실 그것도 맞죠.
그 제 처지가 너무 딱합니다. 근데 저는 오랫동안 저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어요. 너 왜 그래 너 고장 났어 너 잘못됐어 너 왜 그래 니까짓 게 무슨 목회를 해 너는 목사하면 안 돼 너부터 고쳐 너는 그 자리에 설 자격이 없어 이런 파괴적인 메세지를 진실처럼 받아들이고 살았던 거예요. 그런데 그게 진공 상태에서 나온 게 아니라 저의 결핍이 쏟아내는 거짓말이었던 거예요. 왜 저는 그런 말을 진실처럼 받아들이고 오랜 시간 고통받았을까요? 저는 저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저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을 때 저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어요. 과거에 저는 저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너 왜 그래 너 뭐가 문제야 너 뭐가 잘못됐어 이렇게 질문했어요. 근데 지금 저는 저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니가 모르는 무슨 일을 겪었어 왜 이렇게 무서워하는 거야. 왜 이렇게 불안해 하는 거야.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 하는 거야.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저는 모든 고통을 과거와 연결 짓는 것에 대한 관점에는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수용하는 것에는 굉장한 치료적인 통찰이 있는 거예요. 저는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내가 도려내고 싶지 않은 과거 공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과거의 나도 나고 현재의 나도 나고 미래의 나도 납니다. 내가 싫어하는 나를 예수님이 사랑하셨고 어제의 나를 예수님이 사랑하셨고 오늘의 나를 예수님이 사랑하시고 내일의 나를 예수님이 사랑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 예수님이 과거의 나를 수용하고 사랑하셨다면 내가 미워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싫어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그걸 돌아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예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그 과거의 나도 나고 그 과거의 나도 한번 따뜻하게 바라봐 줄 수 있지 않을까? 여러분 저는요 알코올 중독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술에 취하면 저를 정말로 죽을 때까지 때렸어요. 전 아직도 기억나는 게 5살 때 목부터 발목까지 완전 피멍이었습니다. 검은색 보라색 멍은 때린 지 한참 된 피멍이고 울긋불긋한 건 그 위에 또 때려서 생긴 피멍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가 그 어릴 때부터 그런 매질을 당하면서 컸으니까 아이가 정상일까요?
정상일 리가 없죠 저희 어머니는 젊은 날 그런 남자랑 결혼했으니까 얼마나 인생이 비참했겠습니까? 가정을 지키고 싶었겠죠. 그러나 그 가련한 여인은 자기가 밖으로 나가서 돈을 벌어서 이 아이들을 구출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런 목표를 가지고 집을 나갔어요. 근데 저는 그 당시에 어린 저는 버림받았던 겁니다. 저는 어머니가 처음 집을 나갔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어요. 제가 5살 때였어요. 어머니가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오라고 했습니다. 전 친구네 집에 놀러 갔어요. 순진한 저는 친구네 집에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주길래 훌짝홀짝 빨아먹었죠. 한참 시간이 흘렀을까요? 어 이제 집에 가야겠다. 생각을 해가지고 아이스크림을 핥아 먹으면서 집에 왔습니다. 근데 집에 오는 순간 깜짝 놀랬어요. 도둑이 든 것처럼 집이 쑥대밭이 돼 있던 거예요.
어머니가 저를 친구네 집에 보내고 급하게 짐을 싸서 나간 거죠. 그때 저는 그 충격에 실어증이 왔습니다. 말을 더듬었어요.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겁니다. 지금은 제가 알고 있어요. 그것은 애착 트라우마고 그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쇼크였고 유일한 안전기지가 파괴됐던 겁니다. 그 다음부터 저는 어머니가 집에 들어와도 어머니를 환대하지 않았어요. 애착의 불안이 형성됐던 거죠. 어머니는 수시로 집을 나갔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서 저를 때리면서 엄마를 찾아오라고 했어요. 저는 그 5살 6살 된 아이도 아이라도 동네에 엄마가 없는 걸 알았습니다. 근데 저는 아버지에게 매질을 당해서 정서적으로 너무나 불안한 상황에서 어머니를 찾으면서 울면서 동네를 뱅뱅 돌았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 새벽녘이 되면은 집에 가까이 와봐요. 판자촌이었기 때문에 단칸방이었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면 부스럭부럭 소리가 나면은 들어가면 안 돼요. 아버지한테 또 화풀이 대상이 되는 겁니다. 그럼 아버지가 바스락 소리가 안 나면 조용히 들어가요 그럼 아버지하고 최대한 멀리 떨어진 대각선 방향에 구겨진 채로 잠이 드는 겁니다. 그런 날들이 계속 반복됐어요.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가 당신을 사랑하신다 이게 제가 느껴지겠습니까? 은혜로운 말씀은 저를 스쳐서 지나갑니다. 무서운 말씀은 저를 압도하고, 저를 짓누릅니다.
잘못하면 벌 받는 거는 너무 강렬한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그 은혜의 말씀은 저를 스쳐 지나갑니다. 잠시 은혜 될 뿐 순식간에 사라져요 질문해 보겠습니다. 제 잘못인가요? 제 믿음이 부족한 겁니까? 저도 원치 않습니다. 만약에 제가 원 가족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면 제가 저희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저는 어쩌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선택할 수 있습니까? 주어진 것이죠. 주어진 겁니다. 그냥 그 가정에 태어난 겁니다. 그 학대받은 5살짜리 아이의 유일한 잘못이 있다면 그 집에 태어난 거예요. 그 집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그 일을 안 당한 겁니다. 저는 저를 정지했던 거죠.
저는 지독한 가난에 지독한 학대에 저의 사춘기까지의 모든 시절을 다 보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갑자기 술을 끊고 갑자기 초등학교 5학년 때 갑자기 술을 끊고 갑자기 담배를 끊고 갑자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속성반으로 목사가 됐어요. 여러분 너무 은혜 충만한 거 아니에요. 한국말 끝까지 들어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너무 은혜가 충만해서 조급하신 것 같은데, 감사합니다. 근데 저희 아버지가 정식 신학교를 다닌 게 아니에요. 정식 신학교에선 그렇게 목사가 될 수 없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그냥 세례받자마자 거의 목사가 됐어요. 제가 볼 때는 저희 아버지도 새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가 충만한 나머지 예수님을 닮아가면서 성화되는 과정이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시골에 내려가서 목회를 할려니까 열정은 있는데, 인격은 성숙이 안 됐고 상황은 열악하니까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저는 술 없는 학대를 받은 거예요. 얼마나 절망이 됐을까요? 이젠 사람들이 말합니다. 너희 아버지 변화됐다. 니네 집 기적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 내부에서는 쑥대밭인 겁니다. 저는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목회하고 어머니가 사모하는데 어머니 눈탱이 밤탱이가 돼 있고 집은 완전히 난리법석입니다. 그걸 대충 치우고 예배를 드리니까 제가 어떻게 됐을까요? 저는 중학교 초등학교 졸업하고 예배시간마다 집을 나갔습니다. 저에게 기독교라는 것은 그냥 혐오의 대상이었지 정말 싫었습니다. 너무너무 싫었어요. 너무너무 싫었습니다. 그렇게 방황하고 너무나 괴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하나의 돌파구를 찾게 됐습니다.
제가 어느 날 기독교 잡지를 우연히 단기 선교팀 형들이 집에 두고 간 기독교 잡지를 봤어요. 그때 당시 유명한 기독교 잡지였습니다. 청소년들이 보는 큐티 책이었어요. 근데 거기에서 기독교 학교를 딱 보게 됐는데 사진이 너무 멋있었어요. 운동장이 잔디밭인데 저는 시골 깡시골에서 폐교 지금 폐교됐습니다. 그런 학교만 다니다가 이걸 딱 보니까 와 여기로 탈출해야 되겠다. 저는 공부에 관심이 없었어요. 공부가 되겠어요. 근데 제가 집을 탈출해야 되겠다는 목표 하나를 세우고 비닐하우스에서 흙바닥에서 살 때입니다. 비닐하우스에 스티로폼 하나 깔고 거기 담요 하나 깔고 그게 집이었어요. 거기서 제가 사춘기 민감할 때 2년을 살았습니다. 거기서 저는 그 여러분 아시죠.
병아리들 추울 때 이거 전구 켜주는 거 그거 하나 키고 밑에서 공부를 해 가지고 집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어요. 감사합니다. 아니 박 씨를 이렇게 자주 받을지 몰랐는데 자존감이 높아지네요. 저 이제 집에 가도 되겠습니다. 여러분 알아서 은혜 받고 오세요. 네 저 먼저 가겠습니다. 그렇게 불과 탈출하려는 계획을 세운 지 한 3~4개월 만에 저는 집을 탈출해 버렸어요. 고등학교를 들어간 거죠. 그때 제가 왜 그렇게 탈출하고 싶었냐면 이 집을 벗어나면 저는 살 수 있다. 희망적이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탈출해서 기숙사에 갔더니, 전국에서 공부 잘하는 수재들이 기숙사에 다 모여 있어요. 저는 얘가 왜 고등학교를 다니나 싶은 거예요. 왜냐하면, 지금 시험을 봐도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는데, 왜 악세사리처럼 고등학교를 다니지 이런 애들 사이에서 엄청난 열등감을 느꼈고 엄청난 현실의 벽을 느꼈습니다. 저는 입학이 목표였거든요.
그다음에 목표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빈부격차도 느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정서 사랑받은 정서의 격차도 느껴지는 겁니다. 여러분 친구들은 주말에 기숙사니까 집에서 부모님들 데리고 와가지고 막 밥도 사주고 새 옷도 사주고 책도 새 책도 넣어주고 방도 청소해 주고 가는데 저희 부모님은 욕하러 와요. 저희 아버지가 이제 제가 집을 탈출한 것에 대해서 너무 분노가 있었고, 그리고 저희 아버지가 이 정말로 하여튼 건강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아버지가 출장을 오셔 가지고 언어폭력으로 저를 학대했어요. 그러면 기숙사 정문 앞에 꼭 차를 대가지고 절 뒷좌석에 태웁니다. 그리고 너 같은 제가 교양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욕은 안 하겠습니다. 할 뻔했어요. 방송사고 날 뻔했습니다.
너 같은 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 그걸 3시간 동안 듣잖아요. 그러면은 처음에는 속으로 아니야. 아니야. 난 그런 사람 아니야. 아니야. 하다가 그거를 계속 당하잖아요. 그럼 나중에는 이렇게 눈물만 계속 납니다. 계속 나요? 그렇게 반복하니까 안 못 살겠는 거예요. 사람이 왜 죽는 줄 아십니까? 사람이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한지 아세요. 의지가 약해서 아닌 것 같애요. 저마다의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절망하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니까 죽는 거예요.
저도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이제 아무리 노력해도 제 인생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났더니, 하루 종일 눈물이 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교실 뒤에서도 눈물이 나고 수업시간에도 눈물이 나고 야자시간에도 눈물이 나고 그래서 교실에 못 있겠어서 운동장 구퉁이에 갔더니, 거기서도 눈물이 나고 6개월 내내 울다가 제가 결심했습니다. 정말 그러면 안 되는데 정말로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제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결심을 했습니다. 여러분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해 주세요. 그 사춘기 아이의 생각입니다. 그 아이는 부모에게 복수할 생각으로 부모 앞에서 죽으려고 했습니다. 평생 죄책감을 심어주려고 근데 저는 부모하고 애착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릴 때 제가 기대서 혼잣말을 되뇌었던 은행나무가 있었어요. 그니까 은행나무하고 애착이 됐던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그 은행나무를 마지막으로, 보고 인사를 나눈 다음에 부모 앞에서 죽으려고 했어요. 그리고 집에 왔죠 말 없이 그리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근데 부모님은 밥을 차려줬어요. 근데 저희 아버지는 진짜 상투적인 말을 했습니다. 많이 먹어 그럼 저는 못 들은 체하고 밥을 먹으면 되는데 제가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그때는 사람이 미쳐가지고 혼잣말로 많이 먹어 아님 많이 먹어 이게 밥으로 해결이 돼 밥 먹으면 끝나 뭐 이렇게 된 거예요. 혼자 그러니까 이게 완전 병리적으로 됐어요. 그래서 벌떡 일어나서 상을 뒤집어 엎고 막 집을 막 난장판을 만들고 집을 뛰쳐나갔어요. 그리고 제가 울면서 준비한 노끈으로 그 매듭을 지었습니다.
근데 제가 부모 앞에서 죽으려고 했었는데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노끈으로 은행나무에게 인사를 하고 은행나무의 목을 매려고 한 거죠. 그 밤에 야밤에 한 300m 걸어가야 되는데 은행나무까지 막 걸어왔는데 그 밤에 시골이니까.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요. 논밭이에요. 막 우는데 너무 서러운 거예요. 내가 죽어도 아무도 몰라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도 아무도 몰라 그리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면서 행복했던 적이 한 번도 없어 나는 진짜 왜 태어났나 제 자신이 너무 저주스러우니까 그냥 오열하고 울면서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데 말려줄 사람도 하나도 없어요. 칠흑같은 어둠뿐이었습니다. 은행나무에 이제 제가 연습 진짜 많이 했거든요. 매듭 짓는 거 궁금하세요. 여러분 아실 필요 없어요. 제가 매듭 찍는 거 연습을 엄청 많이 했거든요.
그리고 어두운데 더듬더듬 해가지고 딱 준비를 했는데 변수가 있었어요. 하나님이 머리를 너무 크게 창조하셔 가지고 이게 밤에 안 들어가는 거예요. 들어가기만 하면 성공인데 아이 막 안 들어간 짜증이 나는 거예요. 머리 큰 것도 짜증이 났어요. 막 그 아 막 슬픈데 안 들어가니까 막 와 막 이러면서 막 하는데 안 들어가는 거예요. 근데 그러다 보니까 짜증이 나 가지고 너무 서러우니까 막 으악 운 거예요. 나무를 막 치면서 근데 그러다가 정신이 몽롱해지는 거예요. 애가 이게 해리 상태가 된 거예요. 충격이 너무 크니까 해리 상태가 되면서 이게 상상인지 환상인지 기억인지 모호한 상태로 칠흑 같은 밤이니까. 이게 안 보였다니깐요. 요 앞이 시골이니까.
근데 몽롱해지면서 어떤 장면이 확 기억으로 왔냐면은 제가 지하실에서 아버지가 담배를 딱 물고 진짜 속옷만 입으시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담배를 쫙 빨아 땡기는데 붉은색이 쫙 타들어가더라구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저를 때리고 있는 거예요. 근데 저는 이미 거의 반은 죽어가고 있어요. 그러니까 얘를 살려줘야 되는데 얘가 막고 있는데, 아무도 구해주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제가 그 장면에 기억이 또렷이 나면서 오열이 나면서 갑자기 신이라는 존재를 저주한 거예요. 제가 근데 기독교 학교에 있었고, 부모님이 하도 하나님 하나님이 했어. 하니까 제가 하나님이 신이 유일한 신인 줄 알았을 거예요. 저희 부모님이 만약에 이슬람교였으면 저는 알라를 저주했을 거고, 불교 신이었으면 부처를 저주했겠지만, 저희 부모님은 기독교였어요. 저는 그래서 하나님을 저주한 거죠. 저주한다. 당신을 저주한다. 신이 있다면 이럴 수 없다. 신이 있다면 저 아이가 저렇게 학대를 받을 이유가 없다.
막 화를 내고 있는데, 기억 속에서 그 해리적인 기억 속에서 그 다섯 아이 등 뒤에 하얀색 빛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거예요. 전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리고 제가 오열하면서 따지듯이 물었어요. 거기 있었냐 구경하고 있었냐 당신의 존재는 정말 저주스럽다 이렇게 한 거예요. 혼잣말로 근데 갑자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냥 고등학교 철없는 아이고 분노로만 가득 찼고 저는 정말로 생각이 깊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제 마음의 울림이 있는 겁니다. 너무나 선명하게 그게 어제처럼 생생한 거예요. 저의 일생을 동행하는 저에게 들려진 최초의 진리였습니다. 그 예수님의 진심이었어요. 그때 저에게 이런 통찰이 왔습니다.
유비야 미안하다 조금만 견뎌다오 조금만 버텨다오 내가 너를 상처 입은 한 사람에게 보내고자 한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해 다오 그들의 상처를 외면하지 말아주렴 내가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하기 위해 너를 그 가정에 보냈다 저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아이가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이 깊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통찰은 저의 운명을 바꿔주는 통찰이었어요. 그때 저는 주저앉아서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너는 죽어 너 같은 인생은 필요 없어 넌 잘못 태어났어 너는 쓸모없는 운명이야 너가 태어난 건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소 제 결핍이 거짓말을 쏟아내고 사타는 저를 부추겨서 죽으라고 말했습니다.
너 같은 인생은 살 가치가 없어 그러나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을 저에게 전해주셨습니다. 유비야 살아야 한다. 너는 나의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다. 너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며 내가 너를 고유한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에 보냈다 고통스럽지만 참아다오 내가 너를 사용하기 원한다. 그 아이가 밤새도록 혼자 울고 나서 숨을 들이마시는데 저는 그때 새소리를 인생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꽃향기를 처음 맡아봤어요. 공기가 그렇게 신선한지 몰랐습니다. 저의 폐에 들어오는 공기가 너무나 신선했어요. 그때 제가 학대받았던 사실도 잊어버리고 그때 제가 고통 속에서 살았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부모님이나 원망과 미움도 다 잊어버린 채로 그 순간에 들떠서 집에 갔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밤새 한숨도 못 잔 얼굴로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아들이 밤에 그렇게 하고 집을 나갔는데 찾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때 제가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집에 들어가서 부모님께 큰절을 올렸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죄송합니다. 저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다시 살아 보겠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저는 새 출발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근데 저희 아버지는 그 후에도 자주 찾아오셔서 저를 차 뒤에 태우고 혹독한 말을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달라졌어요. 제가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회심하고요. 교회를 다녀야 되잖아요. 저 교회 안 다녔잖아요.
그래서 기숙사에 가서 교회를 다녀야 되겠는데 이랬습니다. 근데 어떤 선배가 저한테 찾아오더니, 너 교회 찾고 있어 친구 얘기를 엿들었어요. 네 형 우리 교회 가자 갔는데 그냥 상가교회 개척교회예요. 아니 청소년부 사역자도 없어요. 너무 열악해서 근데 형들이 저를 딱 온 날 야 우리 같이 기도할래 고3 그러니까 형들 4명 저 1명 같이 기도할래 뭘 기도해요. 형님 저 세신자인데 처음 왔네 야 지금 우리 교회 심각한 게 있어 우리가 이제 고3이 된단 말이야. 회장 선거를 해야 돼 제가 형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기도하고, 다음 주에 투표할 거야. 아유 기숙사 선배가 얼마나 무서운데요. 제가 다음 주에 갔더니, 너 잠깐 나가 있어 후보는 나가 있어 여러분 박수 한번 크게 쳐주세요. 만장일치로 회장됐습니다.
네 개척교회 감사합니다. 개척교회 진짜 지금 생각이 어이가 없어가지고 그래서 감금당한 채로 회장이 됐어요. 근데 그때 하나님이 저한테 막 그런 열정을 부어주셔가지고, 진짜 신기한 일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교회에서 좋은 선배님들이에요. 그 선배님들이 전면에 나와서 정말 열심히 해주고 청소년 사육제가 없었어요. 열심히 했는데 고등부가 그 상가교에 꽉 차서 120명이 나오는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저는 숫자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렁뚱땅 계속 저희들끼리 사역자가 없었다니깐요. 그래서 저는 뜻하지 않게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그런 은혜를 만끽하고 이제 저는 의리의 사나이예요.
저희 대학의 원서를 4군데 쓸 수 있었거든요. 근데 저는 아 나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는데 나는 목회자가 될 거야. 하고서 원서 하나만 썼어요. 근데 선생님들이 야 그래도 4개를 써서 합격률을 높여야 된다. 선생님 속으로 믿음이 없는 자요 그니까 그때 너무 뜨거웠어요. 고등학교 때 회심하고 죽다 살았잖아요. 선생님 저는 1군데만 쓰겠습니다. 그럼 안 되거든요. 근데 한 군데만 썼어요. 그래서 신학교에 딱 들어갔습니다. 근데 신학교에 들어갔어요. 의리의 사나이니까. 은혜를 갚으려고 했어요. 그때 당시 복음이 뭔지도 모르고 제가 뭐 하나님한테 대출받은 것도 아닌데 제가 갚아드리고 싶었어요. 근데 그렇게 딱 다녔는데 제가 대학부를 이제 나갔는데 그때도 참 신기한 게 대학부가 완전 망해가고 있었거든요. 안산 동산교회 대학부가 믿기지 않겠지만, 어른은 1만 명인데 대학생들은 60명밖에 안 모였어요.
근데 그때 대학부 목사님이 부임을 하셨는데 저도 이제 신학교를 가면 교단에 속한 학교로 다녀야 되기 때문에 갔는데 아니 저는 어리버리 그냥 주일날 예배드리고 구경하면서 걸어다녔는데 그 60명이 800명 대학부로 성장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구경을 한 거예요. 구경 아니 근데 진짜로 그냥 삐약삐약 구경을 했는데 제가 경험한 건 하나님이 역사시면은 이렇게도 되는구나. 그걸 제가 그냥 구경하면서 배웠거든요. 근데요. 여러분 그래서 제가 사역을 하면 당연히 그렇게 될 줄 알았어요. 본대로 될 줄 알았습니다. 일단 먼저 좀 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제가 그런 학대받은 삶을 살다 보니까 사람 앞에서 말을 또박또박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실 안에서 남자애들끼리 있을 때는 편하니까 그냥 친구하고 얘기는 해요.
근데 교실 밖을 나가면은 이게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시선을 어디다 둬야 될지 모르겠는 거예요. 근데 저는 그게 싫은데 애써 태어난 척 하는데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 제가 얼마나 착각이 심했는지 알아요. 남자애들끼리 우리는 그냥 남녀공학이었지만 남자 6반 여자 6반이어서 중간에 교무실 있어가지고 아주 조선시대 같은 학창시절 했거든요. 근데 밥 먹을 때는 다 모였어요. 근데 교실 안에서 남자들끼리 있을 때 괜찮은데 밥 먹으러 갈 때가 문제예요. 저는 진짜 착각했던 게 밥을 먹으러 식판을 이렇게 해가지고 먹잖아요. 그러면은 식판을 갖다 놔야 되는데 퇴식구가 여자애들 쪽이에요. 근데 저는 지금 확신하거든요. 그때도 확신했고 지금도 확신하는데 저를 여자애들이 보지 않아요. 절 왜 봐요.
아니 자매님들 저 왜 설교니까 보내죠 지나갈 때 봐요. 안 보잖아요. 근데 저는 보면 안 되니까. 눈 마주치게 부드러우니까 이렇게 얼굴을 가리고 식판을 이렇게 들고 이렇게 가는 거예요. 근데 어느 날 된장국이 나왔는데 너무 입맛에 안 맞는 거예요. 거기 청국장도 막 섞여 있는데, 근데 제가 입맛에 안겨 써서 거의 남겼거든요. 그날도 이렇게 이렇게 가는데 기둥에 박았어요. 그래 가지고 식판이 이렇게 뒤집히면서 밀려가 뒤집혀서 기둥 다 뒤집었으니까 그때는 다 보죠. 그때는 여자애들이 다 쳐다봤어요. 그래서 얼굴 새빨개지고 근데 여러분 제 얼굴이 한 손으로 가려져요 안타깝게도 이 머리 크기 때문에 살아남았는데 감사하지만 그땐 감사하지가 않더라고요. 두 손으로도 안 가려지잖아요. 안 가려지잖아요.
망신당했습니다. 그게 저한테 너무 큰 고통이었어요. 그러니까 쭈뿅쭈뿅 있는 거예요. 쭈뿅쭈뿅 근데 신학교에 딱 들어갔는데 아 은혜 받는 자리에 그냥 섣불리 앉아 있으면 안 되는데 그때 총 신학교 1학년 때 감비아에서 사역했던 선교사님이 오셨는데 여기 수염이 나 있는 이재원 선교사님이신데, 도전을 하는데 신학생들 신학만 하지 말고 공부만 하지 말고 한 명도 전도 못하면서 나는 신학교 다닐 때 단 하루도 복음을 전하지 않는 날이 없다. 니네들 복음을 전해야 된다. 이렇게 설교를 하신 거예요. 근데 제가 근데 이상하게 은혜를 받은 거예요. 그래 가지고 제가 그걸 실천해야 되겠다. 근데 사람을 보면 겁이 나는데 해는 하기는 해야 되겠다. 그래서 기숙사에서 똘래똘래 나와 가지고 주변을 서성거리는데 우리 학교는 다 신학생들이잖아요. 어떻게 해요. 그때 당시에 편의점도 이렇게 많지도 않았어요. 밤늦게까지 하는 데가 없어요.
가만히 계단에 학교 나가서 조금 내려가면은 거기 좀 이렇게 허름한 상가들 몇 개 있는데, 거기 그냥 담배 가게 앞에 앉아있는 거예요. 그럼 아저씨들이 밤에 담배 사러 오잖아요. 그럼 제가 덩치가 이만한데 아저씨 깜짝 놀래는 거예요. 제가 막 벌벌벌 떨면서 말이 안 오는데 아저씨 근데요. 교회 다니세요. 그러고 오는 거예요. 아 그 아저씨가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꿈에 나왔을 것 같애요. 제가 근데 제가 그게 너무 고통스러운 거예요. 나는 신학교였는데 이제 목사가 돼야 되는데 설교를 해야 되는데 내가 설교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엉망진창이죠. 얼마나 고통스럽겠냐고요. 그래서 제가 일단 사영예를 하나 샀어요. 외웠어요. 그냥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면 당신이 놀라운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막 외웠어요. 5분 만에 5분 동안 할 수 있게 외웠는데 외우면 뭐합니까?
이 써먹지를 못하는데 근데 제가 그때 신학교에서 제가 다니는 교회까지 4호선을 타고 다녔어요. 한 50분 탔어요. 본건이 있어가지고 꿈은 야무져 가지고 여기서 연습하면 되겠네 지하철에서 근데 평소에 탈 때는요 편안하게 다녔거든요. 창밖에 보면서 근데 여러분 뭘 하려고 하고 타보세요. 사람 미칩니다. 거기서도 말을 한다. 4호선에 여러분 대공원역 있고 경마공원 있구요. 주말에 꽉 찹니다. 제가 그걸 타고 다니는데 외웠어요. 일단 제가 비장한 각오를 지하철에 탔습니다. 그리고 딱 섰어요. 맨 첫 칸으로 갔습니다.
왜냐면, 나는 끝까지 갈 거니까 맨 첫 칸에 타서 이렇게 하고 집에 왔어요. 끝까지 갔어요. 그냥 아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예요. 심장만 뛰고 식은땀만 나고 뭐 쟤는 뭐냐 도대체 얼마나 자괴감이 드는 거예요. 쟤가 근데 저는 또 성실해요. 그러니까 사용액 꼭 챙기고 지하철 텐데 꼭 외워가지고 지하철을 딱 콩닥콩닥 걸면서 문이 열리면 또 비장한 걸로 사람들을 딱 쳐다보고 그리고 다음 칸으로 가고 다음 칸으로 그러다가 운명의 날을 맞이했습니다.
그날 딱 갔는데 그때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분을 만났는데 손풍선에다가 밀가루 반죽 넣어서 비벼 가지고 눈 코 입 붙인 다음에 만득이 인형이라는 게 있었어요. 그걸 파는데 천 원에 팔았거든요. 근데 제가 생각할 때는 그거 좀 가져놓으면 굳어가지고 버려야 되는데 그 만득이 인형을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장난감으로 막 프레젠테이션 하는 거예요. 근데 사람들이 막 사요 근데 갑자기 제 안에 막 열정이 생기는 거예요. 야 저런 싸구려 장난감 파는 사람도 저렇게 담대한데 나는 그 주 예수 그레스의 복음을 아는 자로서 이걸 전하지 못하고 있구나 나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아저씨를 딱 자신 있게 쳐다보고 길을 받아가지고, 다음 칸으로 딱 가서 또 조용히 갔어요.
완전 포기했어요. 그러니까 안 된다. 나는 모캐 못한다. 이제 말은 못 한다. 이건 할 수는 없다. 나는 그리고서 이제 포기하고 1달이 지났어요. 어느 날 대학부 청년부 사역을 막 하고 있는데, 너무 사역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그날 어느 날 너무 늦게 막차에 가까운 막차였던 것 같아요. 막차를 타고 이제 교회에서 학교로 다시 오는데 너무 피곤해서 의자에 이렇게 기대가지고 좀비처럼 멍 때리고 오는데 갑자기 제 마음에 평안히 밀려오는 거예요. 주변을 살피니까 저 구석에 어떤 아저씨가 술에 취해셔서 의자에 누워서 주무시더라고요. 아 지하철은 똑같은데, 제가 그 아저씨한테 살짝 갔어요. 의심받을 행동을 하면 안 되니까.
그래서 제가 건너편에 앉아서 그 아저씨를 5분 동안 쳐다보고 있었어요. 자나 깼나 아저씨 그랬어요. 근데 대답이 없어요. 그래서 아저씨 했거든요. 대답이 없는 거예요. 거기 서 가지고 아저씨 잘 들으세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약간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짜자자잔 우와 그때 진짜 우와 하나님 너무 감사합니다. 한 거예요. 근데 그래가지고 계속 코 골고 주무셨어요. 야 그때 마가의 다락방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뭔지 알겠더라고요. 베드로가 어떻게 그렇게 설교했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다음 칸으로 딱 갔더니, 3명이 있는데, 다 주님을 만나서 제정신이 아니에요.
자 자 여러분 관심이 없어요. 의식이 없어 일단 제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은 5분 동안 자자자작 했어요. 그리고 의자에 앉아가지고, 렐루야 하렐루야 할렐루야 너무 막 감사한 거예요. 제가 기숙사에 와서 자는데 나도 할 수 있다. 하나님 살아계시다 이랬어요. 그리고 다음 주 주말을 기다렸죠 비장한 각오로 난 낮에도 한번 해봐야겠다. 낮에 딱 갔죠 그날 진짜 꽉 찼어요. 하필이면 그래 가지고 내가 얘기를 해야 되는데 사람이 여기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 번 하면 그 사람 어우 막 이렇게 놀래는 분위기 여기 있어요. 여기 큰일 났다 근데 좀 뭐 저는 성실해요. 전 그냥 성실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제가 눈을 감고 어 막 이러면서 다리가 막 벌벌 떨리는 거예요. 벌벌 떨리고 손도 어디다 대야 될지 모르겠고 막 난리가 난 거예요. 막 말은 막 지금 막 더듬고 말이 안 막 몸은 굳구 제가 제가 했던 말이 처음에 뭔지 아세요. 저는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총신대학교 1학년 신학생인데 사람과 눈을 못 마주칩니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데 제가 어떻게 설교를 하겠습니까? 여러분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딱 5분만 제 귀를 들어주십시오. 그리고서 제가 당신아 사랑하십니다.
이랬는데 몸에 전율이 흐르더니, 몸이 풀리는 거예요. 그러면서 말이 나오는 겁니다. 근데 사람들이 듣다가 박수를 막 쳐주는 거예요. 근데 오더니, 허그해 주고 학생 할 수 있어 학생 교회 어디야 나 그 교회 갈게 막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너무 하나님께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겁니다. 다음 칸에 가서 했고요. 다음 칸에 가서 했고요. 다음 칸에 가서 하는데 발걸음이 가벼워지면서 말이 줄줄 나오는 겁니다. 오늘 제가 원고 없이 어떻게 이렇게 설교하고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저의 고통과 상처를 아시고 치유해 주신 겁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 올리겠습니다.
혀를 풀어주신 하나님 앉은 자를 일으키십니다. 눈먼 자에 눈을 뜨게 하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최소한 눈은 작지만 눈을 교감하면서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겁니다. 지금 제가 말하는 이동화는 제가 아닌 거예요. 일상생활에서 저를 만나면 저는 조용히 도망다닙니다. 아주 특별한 시간인 거예요. 제가 그렇게 말을 하게 됐잖아요. 그래서 제가 전도사를 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부흥을 경험했잖아요. 저는 확신에 처해 있었습니다. 성령이 없사시면 불가능이 없다. 이제 나는 말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제가 교회가 개척될 때 안산 동산교회에서 교회 개척을 운동하는 첫 번째 교회 개척 멤버로 합류를 했습니다. 그런데 담임 목사님께서 부서를 주셨는데 너 어느 부서 할래 그래서 제가 그냥 맡겨주시는 거 하겠습니다. 근데 저는 고등학교 때 회심을 해서 고등부를 맡아서 애들을 한번 살려보고 싶습니다. 그럼 넌 고등부 해라 네 목사님 고등학생들 어딨나요? 없어 전도에 할 수 있어 제가 근데 저는 이상하게 흥분이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신 일을 목격했기 때문에 그렇게 될 줄 안 거죠. 근데 여러분 제가 말을 하고 싶은데 성녀의 역사로 말도 할 수 있게 됐는데 말할 애가 없는 거예요. 1년 동안 그래서 중등부 옆에 꼽사리 끓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얼마나 비참한 줄 아세요. 그럼 저는 애들을 그냥 오기를 기다렸냐 그게 아니에요. 저는 성실합니다.
미친 듯이 동네로 쑤시고 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됐냐면 거의 고등학교 하나인데 300명이에요. 전교생 근데 애들이 저를 다 압니다. 다 알아요. 저 지나가면 전도사님 지나간다 전도사님 막 이러면 제가 피시방 가서 애들 만나고 그냥 햄버거 사주고 별짓 다 했어요. 나중에는 너무 안 오는 거예요. 애들이 너무 안 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어떻게 했냐면은 전도사인데 매일 교회를 출근했어요. 새벽 예배 딱 드리고 집사님한테 권사님 집사님들한테 부탁해서 제 키만한 보온병 3개를 구해다 주세요. 그래가지고 거기다가 새벽 예배 들어갈 때 그러니까 밤에 와서 자정에 꽂아놓고 새벽 예배 딱 끝나면은 끌어요. 그게 그걸 승합차에다가 딱 실어가지고 코코아 300잔을 그리고 선생님 교사용을 믹스를 타가지고 3개월 제가 교문 앞에서 애들 코코아를 3개월 동안 타줬어요. 근데 손이 3개월을 겨울에 코코아를 타주잖아요.
그럼 손이 다 불을 터요 다 터서 쓰라는데 로션 발라도 안 돼요. 근데 놀라운 건 코코아만 처먹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화가 안 풀렸어요. 이게 제가 치유받아야 돼 지금 이게 제가 그때 치유 안 됐어요. 보니까 죄송합니다. 애들이 코코아만 처먹고 교회는 안 오는 거예요. 어 전사님 맛있어요. 하고 야금야금 홀짝홀짝 잘 처먹고 교회는 안 오는 거예요. 성이 난 거예요. 제가 저는 대표님 그거 내가 한 게 아니구나 나 묻어간구나 진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내가 또 거기서 파괴적인 결핍이 저의 결핍이 파괴적인 메시지를 주는 거예요. 야 니가 무슨 목회를 하냐? 니가 무슨 전도사냐 니가 무슨 교회를 하냐? 니가 무슨 사역을 하냐?
고딩 하나 전도도 못하는 니가 실패의 그림자가 저를 뒤덮는 겁니다. 저는 그냥 끝난 거예요. 사역 1년 만에 근데 전 성실하잖아요. 그니까 기도를 하는데 그냥 매달렸어요. 근데 나중에 가슴만 막 치니까 나중에 여기가 멍이 들 정도로 아픈 거예요. 너무 분해가지고 죄송한데 이 고딩이 코코아만 처먹고 내 나 알바해서 애들 니네 떡볶이 맛있냐 막 이렇게 한 거예요. 그때 25살이에요. 25살 얼마나 제가 열정적이었겠어요. 아 근데 제가 기도하는데 저는 극단적으로 끝까지 기도하거든요. 근데 하나님께서 갑자기 물어보시는 것 같은 거예요. 너 이 아이들을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했냐 저는 심플하니까 1년 됐잖아요.
1년 했잖아요. 나는 이 땅을 향한 수천 년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너의 열정을 알지만 니가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 내가 한용운을 보내줄 테니 목숨을 다해 사랑해라 이러시는 것 같은 거예요. 제 통찰로 근데 제가 좀 놀랬어요. 너무 제가 얄팍하게 느껴졌던 거예요. 그 순간에 근데 저는 또 헷갈리는 게 그럼 내가 코코아를 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래서 저는 오기가 생겼기 때문에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코코아 안 타자 일주일 동안 정말 편하게 아무것도 안 해봤어요. 이런 극단적인 신앙은 위험합니다.
근데 저는 지쳐가지고 될 대로 돼라 그리고 이제 제가 그냥 주일날이 됐는데 기대감도 없었어요. 내가 헛것을 들었지 뭐 이렇게 하고 중등부 예비 꼽사리 껴서 앉아있었는데, 그 사과농장의 교회가 개척돼 가지고 시내에선 3km를 걸어와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애들이 안 올 법도 한데 저는 그거를 용납을 못했어요. 거리 하나님이 역사시며 불가능이 무엇이냐 이거였던 거예요. 근데 그래서 제가 사과 농장이 산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보면은 그 길에 이렇게 보잖아요. 그러면은 사람이 오는 게 보여요. 그래서 예배 시간 시작할 때 이렇게 보면 30분 걸리기 때문에 그때 안 오면 땡이에요. 제가 이렇게 보니까 안 왔어 없어요. 성이 났죠. 예배 이렇게 뒤에 드리고 있는데, 아 나 여기 오늘 여기 사표 써왔으니까 예배 끝나고 사표 내고 다른 길을 가야겠다. 난 이건 진짜 안 된다.
생각을 했는데 예배 설교 다 끝날 때쯤에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는 거예요. 제가 딱 봤더니, 길에서 제가 만났던 고딩이에요. 그래서 제가 다가가서 좀 너무 당황해 가지고 야 너 왜 왔어 제가 이랬어요. 그러니까 걔가 눈을 또 깜빡깜빡하더니, 저는 사람이 오라매요 내가 너무 당황해 가지고 아니 근데 왜 왔냐고 너 안 왔으면 나 사표 쓰고 오늘 끝인데 걔가 천사님 오라매요 어색하게 있다가 제가 갑자기 감정이 격해져서 눈물이 막 나면서 그 애를 끄라는 거예요. 남학생이었어요. 근데 어안이 벙벙해서 지가 오래 가지고 왔는데 왜 이렇게 된 거냐 근데 진짜 신기한 게 1명씩 1명씩 보내주시는 거예요. 저 정말 한용운 사랑하면서 12년이 싹 지나갔어요.
그냥 한 교회에서 12년 동안 한용운 사랑했어요. 한용운 그러니까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다듬어 가시면서 한용운의 소중함을 계속 주셨어요. 특별히 상처 입은 한용운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주셨어요. 왜냐하면, 제가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저는 상처 입은 한용운을 외면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 한용운만 바라보고 목회를 했는데 제가 엉겁결에 김유비 닷컴을 시작하고 만 겁니다. 여러분 이런 질문이 있을 수 있어요. 쟤는 얼마나 자존감이 높길래 지 뒤에 닷컴을 붙이고 사역을 하냐? 그게 아니구요. 어쩌다 이렇게 된 겁니다. 저는 12년 동안 사육했는데 교회가 너무 사랑이 많아요. 저는 목회를 할 자격이 없대서 그만둘 생각은 해봤는데 교회를 옮길 생각은 못 해봤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님들이 너무 부족한 저를 사랑하고 아껴주셨어요. 그래서 저는 원 없는 사랑을 받았어요. 너무 감사하게 근데 그릇이 안 돼서 교회 개척을 못하겠는 거예요.
마지막에 12년 정도 됐을 때 8년 차 정도 됐을 때부터 교회에서 개척을 준비해라 그럼 개척을 준비한다는 것은 그거에 대한 서포트를 같이 의미하는 거거든요. 근데 저는 자존감이 너무 낮고 두려우니까 제 결핍에서 나는 그걸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되게 은혜스럽게 양보를 했어요. 다음 사람이 파송을 받고 그랬어요. 4년이 됐는데 제 순서가 없는데 도저히 안 되겠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 얘기를 했습니다. 저는 상처 입은 환영을 위해서 하역하겠습니다. 주변에서 대수롭지 않게 당회가 목사님과 당회가 대수롭지 않게 하세요. 개척해서 아니 그게 아니고 제가 블로그를 운영 블로그 말이 안 통하는 거예요. 저는 근데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어리석었던 거죠. 그래서 여러분 제가 낙오자가 된 거예요.
제가 그걸 다 거절하고 교회 개척을 거절하고 길거리에서 제가 목회를 할려고 교회를 설득을 했어요. 아 지원해 준다. 개척해라 지원해 줄게 사람 보내주고 재정 줄게 근데 제가 거절하고 거절했는데 나중엔 어떤 얘기가 나왔냐면 너무 감사하게도 너 그러면 쓸데없는 짓 안 할 것 같으니까 교회에서 너를 5년 10년 너의 사역을 지금 받는 사례비로 지원을 해주는 걸 논의해 보겠다. 이렇게 된 거예요. 근데 제가 너무 감사해서 울었어요. 근데 집에 가서 기도하는데 기쁨이 없는 거예요. 평안함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전 괜찮습니다. 빈 몸으로 나가겠습니다. 너 스폰서가 있니 너 뭐 로또가 된 거야. 제가 근데 하나님께서 저를 다루시는데 저 안에서 막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저는 현실적인 사람이에요. 진짜로 그래서 그런 뜬구림 잡는 얘기를 하지 않는데 제가 사역을 하면서 한용운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고 제가 느끼고 제가 바라보는 어떤 사역의 방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그 사역을 하기 위해서 제가 빈몸땡이로 나왔어요. 모든 서포트를 다 거절하고 빈몸으로 나왔습니다. 근데 그 다음에 제가 완전히 무너졌어요. 아니 그걸 다 거절하고 나왔으면 당당하게 사육을 해야 되는데 제가 거기서 어떻게 하고 있냐면 제 결핍이 너의 잘못된 선택으로 너의 인생은 망했어. 너의 잘못된 선택으로 너의 가족과 너의 자녀들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거야. 너의 그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너의 인생은 끝났어 이렇게 된 거예요.
공황장애를 연구하고 있었거든요. 어 공황장애가 이런 거구나 근데 주님께서 저한테 유비야 책으로 배울 수 없어 경험하자 체험하자 공항에 오는데 식은땀이 팍 나면서 숨이 딱 먹고 딱 주저앉아서 딱 죽을 지경이 되는 거예요.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렇게 계속 되는 거예요. 끝났어요. 저는 목회 누가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근데 진짜 신기한 게 그렇게 절망 속에 있는데, 그 밤의 새벽에 제 마음속에 예수님이 또 진실을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너의 실수가 아니다. 내가 널 인도할 거다 내가 널 돕는 자를 보낼 것이다. 상추 입은 한용혼을 보내줄 것이다. 또 이러시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때 그런 거 있잖아요. 무의식이 얘기하는 거 내가 절박하니까 무의식이 얘기한다. 그렇게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게 정말 주님이 얘기한 걸까 내가 절박해서 내가 듣고 싶은 대로 해석한 것 아닐까 이렇게 된 거예요. 근데 희한한 게 그런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나니까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뭘 내가 두려워하고 있지 내가 무슨 일을 겪었을까? 저는 평범하고 안전된 상황에서도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걸 예기 불안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저의 결핍에서 나온 겁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공포로 저는 죽음의 고통을 느껴요 삽시간에 반전이 될 수가 있기 때문에 방금 전에 아버지가 여기 계셨는데 고개를 돌리고 다시 봤는데 뺨을 맞을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일들이 저한테 있었으니까 저한테는 그런 예기 불안이 있는 겁니다. 근데 그때 마음이 담대해지면서 내가 뭘 두려워하는 걸까 한번 두려워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이거일까?
이것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 뭐지 더 최악의 상황이 뭘까? 더 최악의 상황이 뭘까? 더 끔찍한 일은 뭘까? 하고 최악의 상황을 그려봤는데 제가 마주한 건 뭐냐면 아침에 우유 배달을 하고 신문 배달을 해요. 그리고 인력시장 앞에서 그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차를 탑승해가지고 인력시장에서 일을 하고 그리고 저녁이 오면 샤워하고 애들하고 같이 저녁을 먹고 기도해주고 축복해준 다음에 대리운전하러 가는 거예요. 그리고 집에 들어와서 쪽잠을 자고 다시 그 일을 반복하는데 저는 이렇게 된 거예요. 이게 최악입니다. 근데 이게 뭐가 두려울까 나 할 수 있는데, 나의 20대 나의 청춘은 너무나 고통스러운데 내가 다시 하기 싫은 거지 이게 뭐가 어려울까 생각을 하니까 평안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하나도 돈이 없었어요. 통장을 바리바리 하니까 두 달 정도 생활비가 있더라고요. 근데 그때 공유 오피스가 막 한국에 상륙한다고 그랬어요.
근데 제주지의 강남역 고층 빌딩에서 아메리카노를 홀짝거리면서 일을 할 수가 있는 시대가 된 거예요. 그래서 제가 돈 모아서 2달 공유 오피스 계약을 하고 2달 동안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 나는 그동안 마음껏 책을 읽고 사색하고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동안 내 인생에 그런 여유가 하나도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바로 그 공유 오피스 두 달 계약하고 나서 두 달이 끝이에요. 두 달 끝나면 제가 두려워하는 현실이 돼 가지고 제가 두 달 지나면 바로 그렇게 살아야 돼요. 근데 저는 그 두 달이라는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제가 문방구에 가가지고 달력을 사서 60 59 58에서 이렇게 해가지고 1 0을 쓰고 책상에 딱 놨어요. 나에게 남은 2달의 시간 나에게 최고의 선물을 준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일이 현실이 될 것이고. 나는 그럼 묵묵하게 그 일을 간다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우유를 하고 신문을 배달하면서 여러분 나쁜 소식 들어서 뭐합니까?
주의 복음을 들으세요. 하고 기도해주고 집집마다 우유 주면서 이거 먹고 건강해지세요. 근데 복음을 들으셔야 됩니다. 기도해주고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하고 차에 한번 탑승하고 노동의 신성한 노동을 같이 하면서 세계 선교가 가능하겠구나 그래서 노가다 하다 참 나오면은 떡을 떼주면서 애찬식을 하면서 포도주스를 따라주면서 이것은 예수님의 피다 살이다 하면서 애들 전도하고, 대리운전하면 다른 주님을 섬기는 고객들에게 제가 진정으로 이동식 상담을 제가 해주면 되는 거 아니에요. 평안하니까 그냥 맞이했어요. 그거는 현실 되면 난 한다. 근데 2달 동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한다. 그리고 딱 출근하는데 여러분 60이 그냥 지워져요 그냥 영화처럼 따다닥 따다닥 하고 1987654 전화가 왔어요. 네, 네 말귀를 못 알아들었어요. 제가 어디서 전화 왔는지 아세요.
출판사에서 전화가 온 거예요. 거기 어디예요. 저희 규장출판사인데요. 어쩌고저쩌고 어쩌고 저쩌고 어쩌고 죄송한데 실장님 제가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은데, 제가 지금 책을 내자는 얘기세요. 목사님 저희 출판사에요. 음반 내시고 싶으세요. 제가 갑자기 너무 당황해서 제가 책을 내요 다음 주에 뵈면 좋겠습니다. 대표님이랑 그래서 대표님을 뵈러 갔는데 대표님이 간증을 하시는 거예요. 아니 우리 실장님이 김유비닷컴 들어가버려서 갔더니, 아무것도 없더라 그래서 5층에 기도실이 있어요. 기도실 가서 하나님 부담 주지 마세요. 우리 선교단체 아닙니다. 우리 사회복지단체 아닙니다. 그냥 기도해 줄게요 그리고 부담 주지 마세요. 이랬대요 근데 기도 중에 대표님한테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돕는 자로 보냈으니 그의 사욕을 자세히 들어보고 그를 지원하라 이렇게 하셨대요 대표님 간증에 제가 공황장애 겪으면서 살려달라고 말했을 때 말씀하신 게 헛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고 이루시는 과정이었던 거예요. 대표님이 목사님 원고 써서 원고 있으세요. 아니 저 없는데 써서 갖고 오세요. 그리고 여기 사인부터 하시고 출판 계약부터 맺고 요즘 뭐 하세요. 할 거 없는데 그럼 저희 오셔서 설교 좀 해주세요. 그래서 제가 갑필풀 가서 설교를 하는 것으로 김유리닷컴의 사업이 시작이 된 겁니다. 하나님이 압도적인 은혜를 주셨어요. 죽을 지경까지 몰아가시고 은혜를 두시고 죽을 지경까지 몰아가시고 은혜를 주시는 거예요. 여러분 죄송한데 여기 강사님들 너무 훌륭하신 분입니다. 근데 여러분 김유비닷컴 아세요. 저 아셨어요.
여기 착하신 분이 있는데, 알아요. 라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물론 여기 다 하나님 은혜로 서신 거죠. 근데 저는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 저는 저에게 맡겨주신 상처 입은 한 영혼 때문에 제가 오늘 이곳에 초대를 받았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이곳에 상추 입은 한 영혼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내 안에 혼자라는 감정 내 안에 실패했다는 감정 내 안에 절망이라는 감정 감정입니다. 감정을 무시하라는 게 아니에요. 감정에서 멈추지 말고 그 감정에서 진리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 진리로 나아갔을 때 그 감정을 뛰어넘어 진실을 알게 됐을 때 그곳에 참된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얼마나 외로운지 몰라요.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그러나 저는 이제 압니다. 난 외로와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 난 예수님한테 버림받은 것 같애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어주셔도 내 얘기는 들어주시지 않는 것 같애 예수님은 나를 방치해 예수님은 내가 잘못하면 벌만 주시지 예수님은 나를 인격적으로 사랑하지 않아 난 혼자니까 예수님이 멀리 계신 것 같으니까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으니까 난 외로우니까 혼자야 하지만 저는 이제 저의 외로움을 향해 이렇게 선포합니다. 외로움은 감정이다.
예수님은 내 감정과 상관없이 지금 여기 나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다 내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난 혼자라고 생각이 든다. 내 옆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그래 그런 감정을 내가 느낄 수는 있지 그러나 예수님은 내 감정과 상관없이 지금 여기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것이 저의 고백입니다. 실패라는 감정 불안이라는 감정 절망이라는 감정 그 감정을 존중합니다. 그 감정을 수용하십시오. 그러나 그 감정에서 멈추지 말고 그 감정 그대로 예수님에게 나아가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널 책임질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내가 너를 살려 줄 것이다. 너의 도전이 멈출지라도 너의 도전이 실패할지라도 내가 너를 살려낼 것이다.
내가 살아나면 너의 도전도 살아나고 내가 살아나면 너의 사업도 일어서고 내가 살아나면 너의 육체 질병도 치유될 것이다. 이것이 감정에서 멈추지 않는 진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치유하길 원하십니다. 오늘 이곳에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제가 제가 이렇게 부족한데 하나님께서 왜 저를 부르셨냐고 절규하며 주님께 물었습니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저의 실존적인 고백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신 것은 치유에 관해 말하지 말고 가서 나의 능력의 말씀을 전하라 그 말씀이 병든 자를 치유할 것이다. 그 말씀이 상처 입은 자를 치유할 것이다. 오늘 제가 여기에 부름받은 목적은 저의 언변과 저의 말과 저의 경험으로 여러분의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이 말씀을 믿음으로 이 말씀을 고백하므로 오늘 여러분들은 치유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살려주시길 원합니다.
우리 같이 기도할 때 감정에 의존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치유될 것 같은 느낌으로 기도하는 게 아닙니다. 선곡할 것 같은 느낌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이 고쳐질 것 같은 감정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차분하게 침착하게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서 그 말씀을 입으로 고백하면서 그리스의 능력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내게 주노니 나사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일어나 걸어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이 말씀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아무 감정 없을지라도 그 말씀을 되뇌이면서 주님 저를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에게 치유의 능력을 행하여 주시옵소서 의사가 말했습니다. 3개월밖에 안 남았다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오래 살 수 없을 거라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을 거라고 압니다. 상식입니다. 그러나 주님 저의 믿음에 상식에서 멈추지 않게 해주시고 이 상식을 존중하고 수용하나 이 상식을 넘어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예수님이 너는 산다 너는 치유된다. 너는 고쳐진다 말씀하시면 우리는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감정을 넘어서서 상식을 넘어서서 진리로 나아가서 진리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결핍은 우리를 속입니다. 우리는 속박됩니다. 우리의 결핍은 수없는 거짓말을 양산해내면서 나를 파괴하려 되려고 합니다. 사탄이 같이 역사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꺾습니다.
이 시간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예수께서 진리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면 감정을 넘어 진리로 치유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면 상식을 넘어 육체의 질병이 치유될 것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일어나 걸어라 이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여러분에게 각자의 소망의 말씀을 되뇌이며 붙잡으십시오. 우리의 감정은 상관없습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치유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치유되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주님 앞에 나아가서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이 시간에 우리가 간절히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치유하시고 우리의 놀라운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를 고쳐내주시고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여 주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여 주시고 하나님이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지연에 찾아가 만나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병화와 싸우는 한용운이 있습니다. 경마어사 만영혼을 치유하여 주시고 하나님 말씀의 능력으로 고쳐주시기를 원합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치유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정말로 시안부 이승을 아버지는 선고받고 울부짖는 기도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님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도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시고 하나님께도 고쳐주시고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서 기도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 능력으로 고쳐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여 주시옵도서 하나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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