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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보 목사 간증 본문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 보면은 우리 하나님께서 성전을 섬기는 자 제단을 섬기는 자는 그 제단에서 나오는 것을 먹게 될 거다 구약에 있는 제사장들은 정말 존귀한 직분이었죠. 하나님께서 모세를 도와서 일생수고했던 아론에게 복을 주시고 그 자손들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독점하는 특혜를 베풀었습니다. 수천 년 전에 정말 닭 한 마리 잡아먹기도 어려웠던 이런 시대에 제사장은 송아지 고기 양고기 마음껏 먹을 수 있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면서 정말 특근 중에 특권을 누렸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 너무하다 어떻게 저 제사장들만 저렇게 복을 줄 수 있느냐 할 만큼 왕들도 부러워할 만큼 이 제사장의 특권은 대단했죠. 하느님께서 수고한 아론을 기억하고 위로하기 위해서 그 후손들 모두에게 제사장의 적분을 특별하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주님의 일을 하지만은 주님의 일을 하지만은 그 제사를 지내고 난 다음에 그 막 고기를 먹고 양식을 먹고 살아갈 수 있는 복을 입혀 주셨는데 사도바울은 그 구약의 제사장을 설명하면서 복음 전하는 자들이 바로 이와 같다 복음 전하는 자들은 복음으로 살 거다 제사장이 제단을 섬기는 자들이 그 제단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이런 복음의 특권을 누리고 살게 될 것이다.
저는 이 말이 세상적인 복도 물론 포함되어 있지만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순교하는 이 일은 우리 하나님의 소원이고 하나님의 명령이고 우리 하나님 이 일 때문에 예수님 이 땅에 오셨고 이거는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거고,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천 배나 만 배나 또 소중하고 귀한 것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일을 40년 동안 은혜 한인교회가 이루어 왔으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하게 보실 것이며 우리가 잠시 살다가 이 땅을 떠나게 될 겁니다. 잠시 살다가 이 땅을 떠나게 될 건데 이 땅에서 했던 수많은 일들 중에서 생명을 구한 것보다도 더 귀한 일은 없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 떠주는 것도 내가 결단코 그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하물며 물 한 그릇 떠 주는 것이 아니고 그 생명을 구원해서 그 생명을 지옥불에서 천국으로 인도한 이것은 말로 못하는 하나님의 은혜고 이 복은 실제적입니다. 실제적입니다. 저는 어느 날 이 세계로 교회 와서 20명 정도 모이는 바닷가 어촌교에 와서 전도하다가 거기서 교회를 또 짓고 전도하고, 100명밖에 살지 않는 동네에 200명 300명을 전도해서 정말 그 불모지 땅에 복음을 전했지만은 그러나 여러분 복음 전한다고 다 찬성하는 게 아니잖아요.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제가 완전히 모기 다운돼서 말 한마디도 할 수 없고 말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 어떻게 보면 제가 너무너무나 외롭기도 하고 또 하느님께 이렇게 하느님 열심히 하고 했는데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걸로 고수하고 오히려 모함하는 그런 걸 보면서 막 환멸이 느끼죠 그래서 제가 무책상 기도원이라는 기도원에 가서 일주일 동안 기도를 하는데 말 한마디도 나오지 않으니까 찬성도 못하고 기도도 못하고 다 그냥 입을 닫고 있는데, 금요일 날 새벽에 우리 하나님께서 저에게 어떤 한 광경을 보여주셨어요.
눈을 뜨게 해주셔서 보여주셨는데 너무너무 놀라운 거예요. 그래서 제가 너무너무 놀라운 하나님 저게 뭡니까? 저게 혹시 거룩한성예루살렘 그것입니까? 그랬더니, 우리 예수님께서 이것이 거룩한성 저 멀리 보이는데 너무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그러면서 그 광경을 자 봐라 하면서 그 광경을 그냥 줌으로 당기듯이 쫙 보여주는데 또 쫙 보여주는데 저는 말로 형언할 수가 없는 은혜 감사 감격 정말 궁중에 그냥 날아다니는 것처럼 그렇게 즐거움과 이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귀한지 또 한 생명을 구원해서 살아가는 그 사람들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그 광경을 똑똑히 보여줬어요. 그때부터 저는 복음 전하다가 아 어떤 일을 당하고 수많은 일을 당하고 형패를 당하고 어떤 일을 당해서도 제 마음의 섭섭한 마음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냉수 한 그릇 더 주는 것도 상이 있는데, 생명을 구하는 거는 이 상은요, 영혼에서 영혼까지 이어지는 거예요. 저는 또 제가 할 말이 많이 있지마는 저는 이 복음 전하고 순교하는 이것 말고는 세상에 어떤 것들도 더 중요한 게 있다고 할 때라도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저는 없다고 생각을 해요. 저는 지금 우리 교회가 있는 그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게 태어났는데 우리 아버지는 4살 때 돌아가시고 저희 어머님은 젊은 나이에 인제 과부가 되셔 가지고 저희 4남매를 키우고 제가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정말 집안이 복잡해서 그 당시에 저희 어머님은 그 동네에 큰어머님이 있는 작은 엄마로 첩으로 들어갔어요. 그래서 제가 우리 엄마의 막내로 태어났는데 그러니까 양쪽 집안의 사이도 좋지 않고 같은 마을에 살다가 보니까 집안 분위기는 언제나 어려웠고 또 아버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해주기를 원했지만은 강력하게 반대하고 했기 때문에 저희 어머님은 그냥 남의 집 한 칸 방을 빌려서 그곳에서 우리 4남매를 키우면서 살고 아버지께서 언젠가는 재산도 주고 할게 했지만, 저희 아버님도 젊은 나이에 아무르 세상을 떠났습니다.
떠나고 난 다음에 유언도 남기고 했지만은 저희 어머님에게 땅 한 마지기 주지 않고 정말 돈 천 원도 주지 않고 그냥 빈 틀터리로 애 4명만 키우고 살게 되었죠. 저희 어머님의 이야기를 다 하고자 하면 마음이 아파서 말을 다 못 정말 재산 1도 없는 곳에서 그냥 남의 집에 창고 하나 빌려서 거기다 18년을 살아가면서 부엌도 없고 물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4남매를 키웠는데 제가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도 그 생각을 했어요.
저희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8년 9년이 되었지만은 우리 엄마는 참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우리를 키우고 살았을까? 정말 비행기 타고 올 때부터 제가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그때를 생각해 보니까 저희 어머님의 이야기들이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들이 이제 나이가 들고 나니까 그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우리 엄마가 얼마나 울었을까?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셔서 재산 하나도 없이 4명을 키우고 살아가면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몇 가지의 일을 하면서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아침에 나가면 저녁에 낮에 들어와 본 적이 없을 만큼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면서 이를 악물고 여자 혼자서 그렇게 머리를 키우고 저희 어머님이 말씀하시기를 현보야 나는 돈이 있으면 한번 먹고 죽어보고 싶다. 돈이 있으면 그 돈을 한번 삼켜서 내가 돈 먹고 한번 죽어보고 싶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셨어요.
또 가서 뭐 도화지 하나 사달라 그래도 남의 집에 돈 빌리러 가야 되고 크레용 하나 살라 그래도 빌리러 가야 되고 돈이라는 돈은 일정된 것도 없었어요. 그러나 저희 어머님은 94세 동안에 빨리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오래오래 사셨죠 정말 돈이 있었으면 먹고 돌아가셨을 건데 돈이 하나도 없다 보니까 그렇게 건강하게 사셨다고 저는 생각하고 그때 저희들이 말을 안 들으면은 저희 어머님이 이놈의 자식들아 내가 너희들만 없으면 천리나 말리나 도망을 갔을 건데 하는 그 말을 많이 들었는데 어른들도 생각해 보니까 정말 천번만번 도망가야 되는데 우리 때문에 도망가지 않았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 어머님도 고생을 많이 했지만은 그거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고 저희 큰누나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식모살이 하러 갔어요. 그리고 형도 바로 공장에 갔습니다. 또 제 위에 있는 누나도 바로 공장에 갔어요. 뿔뿔이 흩어져서 그렇게 그렇게 정말 뼈 빠지게 일을 해도 우리는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이제 어떻게 할려고 논 한 마디기 사면은 빚으로 사잖아요. 그래서 저희 어머님이 그렇게 시골에서 나무해서 팔고 남의 집 일에서 팔고 먹지 못해서 팔고 정말 저는 어릴 때 뭐 쌀밥 이런 거 먹어본 적이 없어요.
그 정도로 어렵게 어렵게 살아가면서 우리 누나 형이 그렇게 쪼끔 쪼끔 돈을 모아 와도 그 빚 갚고 빚 갚고 언제나 빚이 있고 이래 살다 보니까 저희 집은 우리 한 120가호 살고 있는 그래도 시골에서는 좀 큰 동네였는데 언제나 가장 가난한 집에 사람이었어요. 가장 가난했어요. 지금 저희 교회는 그 지역이기 때문에 뭐 거기 장로님도 근사님도 집사님들도 다 학교 동기 동창이고 그 사람 많이 했어요. 다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렵게 살았는지 그렇게 살면서 저희 어머님은 늘 저를 데리고 산에 절에 갔어요. 사찰에 올라가서 너는 부처님께 기도해야 된다.
저를 그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내려오고 항상 그렇게 했는데 제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는 어느 날 학교를 갈려고 근데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갈려고 학교 배지라든지 이런 게 다 잘 됐는가 이런 걸 볼려고 그 집 기둥에 못을 하나 박아서 조그마한 거울을 하나 달아라 언제나 그 거울을 보고 학교를 가는데 그 거울을 보는 그 순간에 제가 어느 날 내 눈에서 눈물이 뚝뚝뚝 떨어졌어요. 어떻게 이렇게 눈물이 툭 떨어지는데 내가 그 어린 나이였지만은 아 참 내 인생에는 희망이 없구나 제가 중학교 들어갔을 때에 모든 사람들은 그래도 중학생이니까. 운동화를 다 신고 갔어요. 저만 까만 고무신을 신고 갔어요.
우리는 남녀공학이었는데. 내 옆에 앉았던 여학생 한 줄 알았고 남학생 한 줄 알았는데 내 옆에 앉았던 여학생이 더럽고 냄새나고 그래도 중학교 들어오는 입학 첫날에 까만 고무제 신고 온 저를 보고 자리를 바꿔달라고 선생님한테 울면서 뛰어가는 여학생을 보면서 제 마음에 있는 자존감이라는 자존감은 다 사라지고 그렇게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집안이었어요. 그런데 중학교 2학년 학교 등교하는 그날 거울 속에 있는 제 얼굴을 보면서 내 인생에 정말 희망이 하나도 없구나 이게 막 깨달았어. 눈물이 또르르 흘렸습니다. 우리 엄마 저렇게 일하고 형들 누나 저렇게 일하는데도 정말 너무 이 가난해서 벗어날 수 없겠구나 그래서 그날 그날 제가 교회를 갔어요.
그날 교회를 안 갔으면은 제가 그것도 그냥 지나갔을 겁니다. 근데 그날 저를 늘 교회 가자고 이랬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항상 저에게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현보야 우리 교회 가자 너도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도 아버지 돌아가셨고 느그 엄마 우리 엄마 다 친구인데 내 교회 가니까 너무 좋더라 교회 가자 그 나는 절대로 나는 절대로 교회는 안 간다 하고 안 갔는데 그날 제가 그 친구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그날 교회를 갔는데 교회를 들어가 보니까 시골에 이런 예배당이 아니고 가정집을 하나 빌려서 그 가정집을 이렇게 터가지고 방 두 칸을 터가지고 교회를 만들었기 때문에 옛날 시골에 방이 조그만하니까 크지 않았어요.
거기에 발냄새나는 발로 고무신을 신고 교회 갔는데 그날 첫날 교회를 갔는데 전도사님이 저를 보고 엄청 야단을 쳤어요. 교회를 오는 학생이 깨끗하게 해 와야지 그 발이 뭐냐고 발 사이사이에 비포장 도로에 땀이 나가지고 때가 싹 있는데, 나도 기 부끄러웠지만은 그래도 감추면서 교회 들어갔는데 그 나이 많으신 전도사님이 저를 보고 막 엄청 야단을 치는 거야. 어떻게 이렇게 해서 교회로 왔냐고 제가 진짜 지금 생각해도 믿음이 깨알 만큼만 있었으면 그날부터 교회를 안 갔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 믿음도 없었고 교회가 뭔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 원래 교회는 이런 갑다 그래서 그냥 갔어요.
그리고 그동안에 엄청난 수모라는 수모는 다당해 봤기 때문에 그 말을 들어도 아 교회도 그렇구나 시험이 되지 않더라고요. 그럼에도 교회를 이제 한 몇 개월 다니는데 몇 개월 다니고 나니까 그 교회는 중학생 이상이 20명이 넘지 않는 조그마한 교회였어요. 그런데 한 몇 개월 지나고 나니까 학생회 임원을 뽑는데 총 학생이 5명이었어요. 중고등학생 전부 다가 5명인데 회장 부회장 총무 서기 회계하는데 저는 아직 학습도 안 받았는데 저게 회계가 되었어요. 총 인원이 5명이니까. 그래도 그 돈을 주면서 돈을 잘 관리를 하라고 하면서 1500원 정도를 저한테 주었습니다.
회계청부하고 근데 제가 아무 개념이 없었어요. 학교에 가서 짤짜리를 하는데 제가 돈을 다 잃어버렸어요. 그래서는 제가 집에 가 가지고 1500원 정도 남아있는 헌금을 가져와서 이 헌금을 가지고 짤짜리를 했는데 이 헌금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서 그날부터 교회를 안 갔어요. 그래서 회장 형님하고 부회장 누님이 와가지고 현보야 이 짤짤이해서 돈 잃은 거 다 알고 있다. 다음에 갚으면 되니까. 그때 갚으면 되니까. 지금 교회는 나오라 그래도 제가 그날부터 그분들 만나지 않고 회피하면서 교회를 가지를 않았어요.
그리고 이제 중3이 되었는데 제가 중3 졸업 맞고 공장에 일하러 가야 될 처지인데 제 마음에 그래도 내가 고등학교는 가야지 남들 다 가는데 내가 가야지 그래서 중학교 3학년 때에 보충수업을 방학 때 하면서 방학 동안에 계속 공부를 하고 있다가 마지막 3일 동안 놀려줬는데 그 3일 놀려줄 때에 우리 친구들 몇 명이 모여서 야 우리 어데 갈래 뭐하고 놀래 이랬는데 저를 교회 가지고 또 전도했던 유해건이라고 하는 그 친구가 우리 부산에 우리 누님이 사는데 부산에 가면은 송도 해수욕장이 있는데, 끝내준다. 하더라 해수욕장 한번 가보자는 거 그래 근데 돈 있나 아무도 돈이 없는 거예요. 근데 제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우리 엄마가 산에 가서 산초를 따가지고 이걸 파는데 이 산초를 우리가 내일 하루 가가지고 다 따가지고 우리 엄마한테 팔아서 그 돈 받아 가지고 놀러 가자 그래서 그다음 날 저희들이 도시락을 사서 그 무추산이라는 산에 올라가서 산초를 땄어요. 저희들이 몸이 빠르니까 오전 내내 땄는데 많이 땄어요. 그리고 점심을 먹고 난 다음에 제가 저 위를 보니까 그 산의 골짜기에 바위밖에 없는 골짜기인데 그 골짜기 저 위에 보니까 빨갛게 익은 산초가 있더라 지금은 아직 새파란 참손 산초밖에 없는데 아마 그게 물기가 없어서 그런지 익은 산초가 있길래 야 저게 익은 산초 있다. 익은 산초는 값을 2배나 받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제가 친구들한테 도시락을 맡기고 제가 먼저 뛰어 올라갔어요.
물론 산촌은 다 공룡으로 하지마는 먼저 뛰어 내가 발견해서 먼저 뛰어 올라가서 그것을 딸려고 먼저 뛰어 올라갔는데 그 산초나무 바로 앞에 이 강대상보다 조금 더 적을 만한 이런 큰 바위가 하나 탁 있더라 그 바위를 뛰어넘어야만이 그 산초나무에 갈 수 있고 산초를 딸 수 있어 그래서 제가 그 산초를 딸려고 바위를 딱 뛰어오르려고 바위를 딱 잡고 딱 뛰어오르는 순간에 이 바위가 흔들어가면서 그대로 저를 업고 넘어갔어요.
그 큰 바위 밑에서 깔리는 그 순간에 제 머릿속에 두 가지 생각이 사람이 죽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죽었다라는 생각이 생각이 0.01점으로 팍 떠오르면서 두 번째 생각이 교회 돈 띵가 먹고 벌 받아 이 생각이 딱 떠오르면서 피할 겨를도 없이 제가 공중에 떴는데 바위가 저를 덮쳤기 때문에 그대로 깔려서 완전히 그건 100% 죽는 거죠. 그런데 어떻게든 눈을 떠서 보니까 바위가 굴러가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 바위가 저를 업고 넘어가면서 어떻게 해서 제 몸이 어떤 바위 사이에 들어갔는데 막 충격을 좀 지나갔어요.
그러고 난 다음에 눈이 희미해지면서 죽는구나 하고 있는데, 저를 전도했던 그 친구가 막 뛰어 올라왔어요. 뛰어 올라와서 현보야 하는데 제가 그때 아직 안 죽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혹여나 나 여수 믿는다 니 들었제 이래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죽는다고 딱 생각하는 순간에 어떤 생각이 딱 떠올랐는가 하니까 작년에 교회 몇 개월 다닐 때 저를 첫날부터 교회 갔을 때 야단쳤던 그 전호사님이 제가 보기 싫어서 그분이 설교할 때마다 앉아서 꼼지락거리고 장난치고 해서 그 말씀에 그 말씀이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매일 야단만 맞았어요. 근데 죽는다고 딱 생각하는 순간에 어떤 말씀이 딱 떠올랐는가 하니까 내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합니다. 시인한테 이런 말이 더 떠오르더라 그래서 내가 그 친구한테 혜건아 나 여수 민단이 들었지 하고 죽을라고 했는데 안 죽었어요.
그래서 한마디 더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엄마 꼭 예수 믿어라 그래라 내가 죽는다고 생각할 때에 우리 엄마가 그렇게 고생하고 내가 앞으로 잘 살면은 우리 엄마 꼭 호강시켜줘야지 우리 엄마 꼭 좋은 옷도 해 입혀야지 그게 제 소원이었거든요. 그런데 우리 그 불상너마가 죽어서 지옥 가면은 그래서 혜건아 위험한데 예수 믿어라 그래라 하고 죽을라 그랬는데 안 죽었어요.
그때 친구들이 큰 높은 산에서 저를 업고는 내려오는데 산초공 모시고 도시락이 다 던져버리고 제가 말하는 것 말고는 이 밑으로 전부 다 마비가 돼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고 완전히 축 처지니까 이 친구들이 그 쳐진 글자를 업고 업고 오면서 집에까지 오는데 그 사람들도 고생 말도 못 했고 집에 내려오는데 한여름인데도 몸이 펑벌 떨리니까 얼마나 친구들이 겁이 났는지 저를 그냥 방에 눕혀놓고 떨리니까 이불 덮어놓고는 다 도망 나가버렸어요. 언제나 낮에 들어온 적이 없었던 저희 어머님이 그날 또 밤늦게 캄캄할 때 들어왔어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제가 제가 밥을 해 먹었어요.
우리 엄마가 오면은 우리 엄마 밥을 내가 하고 근데 우리 엄마가 오면서 현보야 왔나 와서 불 켜놓고 안 하고 내가 대답을 못 하고 있으니까 제 어머니 불을 툭툭해 들어와 가지고는 방을 열어보니까 제가 거기서 구토를 했는데 구토를 하는데 그 구토가 참 더 피였어요. 피가 뿜어져 나와 가지고 이불 방 그 조그마한 방이 와 피범벅이 됩니다.
그걸 보고는 저희 어머님이 막 기절 촛불할 만큼 그렇게 해서 설탕물 끓여가지고 따뜻한 물 먹이고 먹이고 얼굴 닦고 이불 다 치우고 그때 온 동네에 어느 저 현부는 돌에 깔려서 그래서 아는 사람들이 와서 문을 열어보고 혀를 차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 제 마음의 하느님 우리 엄마를 봐서라도 나를 살려주십시오. 내가 교회 돈 띵가 먹고 이렇게 죽으면 벌 받아 죽는데 하나님이 내 교회 가게 해주시면, 내 예수 잘 믿겠습니다. 회개 안 할라 그래도 회개가 저절로 다 되더라고. 회계라는 회계는요 저희를 다 되는 거예요.
그 이튿날 또 동네 사람들이 와서 한번 한여름에 보고 해를 차고 가고 저희 어머님은 야 이놈의 자식아 내가 니 하나 믿고 사는데 니 하나 믿고 사는데 내 환갑 때문에 니 내 돼지 두 마리 잡아준다. 안 했나 안 일어나나 일어나라 어 막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저도 제 마음에 하나님 내가 일어날 수만 있으면은 정말 예수님 잘 먹고 살겠습니다. 일어나게 해주시라 그렇게 기도하고, 기도하고, 하다가 며칠이 지나서 주일날 아침 일했는데 새벽 기도 옛날에 종을 치잖아요. 새벽 기도 종을 치는데 제 마음의 하느님 내가 일어나서 교회만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 일어나서 교회 가게 해달라고 그렇기도 하고 잠이 들었는데 더 깨보니까 아침이 되었어요.
그때 제가 제 마음에 아 손가락이라도 움직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손을 싹 이렇게 해보니까 손이 움직이는 거예요. 발을 발이 살짝 움직여요. 다 일어났는데 일어나지는 거예요. 너무 고마워서 하느님께 감사 기도 드리고 그날 제가 교회를 갔어요. 교회를 가서 그 교회 조그만 했기 때문에 항상 제가 강대상 그날부터 강대상 앞에 탁 그리고 전도사님이 설교를 하면요 그 설교하는 침이 전부 다 튀어오면 진짜 제가 tv 침이 안 튀는 것 같아도 앞에 있으면 다 침이 튀겨요 그러면서 하면서도 아메나면 하는데 작년에 교회 갔을 때는 전호사님 말씀이 듣기 싫고 그 귀한 말씀이 귀에 한마디도 안 들어왔거든요.
그런데 그날부터 앉아서 말씀을 듣는데 그 말씀이 진짜 귀에 소서처럼 아멘 아멘 아메 침대 또 침 침도 또 굵은 게 튀겨울 때 닦아가면 아멘 아멘 아메 이렇게 다니면서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듣는 중에 제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됐어요. 아 내가 예수님 믿어서 구원을 받았구나 내가 하느님이 자녀가 되었구나 이걸 아는 순간에요.
제 인생에서 무슨 허물이 벗어진 다 벗어져 지금까지 사진 하나 찍어도 저 초등학교 졸업사진도 있는데, 찍으라 할 때 항상 제가 들창고라고 사람이 놀리고 냄새나고 더럽다 그래서 큰일을 고개 숙이고 눈만 뜨거든만 이래 다니고 언제나 뭘 해도 남들 뒤에 서서 자존감 1도 없이 그렇게 살았는데 내가 예수 믿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 이걸 아는 순간에 그때부터 저를 얽매이고 있던 모든 생각들이 100% 해방이 다 됐어요. 전혀 염려하거나 걱정할 게 1도 없었습니다.
하느님이 내 아버지고 내가 하느님께 기도하면 하느님 다 들어주시고 세상에서 나보다도 더 부유한 데가 어딨냐 이래 생각하니까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우리 집이 가난한 거는 뭐 옛날에 지금이랑 똑같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부터 입에 찬송이 나오고 내가 하나님 믿어서 하나님의 잔녀가 된 것 자랑스럽기 그지거지 없었어요. 그런데 기도할 때마다 한 가지 너무너무 안타까운 것은 예수 믿어서 100% 감사하고 오늘쯤에는 100% 최고라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잔녀가 된 게 그렇게 좋았는데 예수 안 믿는 우리 엄마는 오늘이라도 만약에 어떤 일로 죽으면은 지옥 가는데 100% 갈아요. 100% 99%도 아니고 100% 지옥하는 걸 생각하면은 기도할 때마다 열심히 돼서 감사하지만은 우리 엄마와 우리 형과 누나를 생각하면 눈에서 눈물이 끊임없이 나오세요. 하느님 우리 엄마 우리 형 우리 누나 어떻게 할 겁니까?
구원해 달라고 그렇게 해서 전도를 하고 하면은 저희 형은 낫을 들고 와서요 제가 잠을 자고 있는데, 술 한잔 먹고 와서 낫을 들고 와서 진짜 이 낫을 가지고 와서는 그냥 바로 찍어 그때마다 흔하게 눈을 떠줘서 이상하게 해서 눈을 뜨면은 낫을 들고 막 낫이 내려오는 순간에 굴러서 피해서 나씨 이불에 꼽히고요. 또 오늘 자다가 이상해서 눈을 떠보면은 장독 단지를 들고 와 가지고는 내 이 새끼 누가 예수입니다라고 찍을라는데 제가 해 가지고 막 완전히 단지가 엉망진창이 되고 다 깨지고 막 된장 간장이 막 그냥 방에 엉망 이런 위기를 넘겨주면서도 예술을 합니다.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저희 어머님 성경책만 보면은 우리 집안은 불교 집안이고 우리가 칠성으로 살아가는데 어디서 예수를 했냐고 그 동네는요 시골에 한 120가구 살아가는데 그 무척 산에 사찰이 20개가 있었어요.
여러분 우리나라에 삼각산이 그렇게 우상이 많은데 제2의 삼각산이라 할 만큼 그 동네 하나의 사찰이 20개 있을 만큼 그렇게 우상을 섬기는 곳이니까. 집안에도 믿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핍박하고 핍박하면서 살다가 제가 중학교 3학년 졸업하기 전에 고등학교 시험을 쳐놓고 난 다음에 무처장 기도원에 집회를 갔습니다. 먹을 게 없어서 그냥 그 겨울에 금식을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어느 날 새벽기도에 새벽기도 강사가 왔는데 저는 습관이 있어서 강내산 앞에 탁 무릎고 앉았습니다. 그때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와요.
어른들이 다 와서 찬양하면서 은혜를 봤는데 제가 강래산 밑에 앉아서 설교를 듣고 있는데, 그 강사님이 새벽 기도 시간에 뭐라 그러는고 하니까 여러분들이 아무리 어렵고 아무리 무능력해도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 여러분들에게 은혜와 능력과 권능을 줄 거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하루에 2시간씩을 기도할 수 있으면은 여러분들이 이 땅에 너네와 복을 받을 것이고. 여러분들에게 권능을 줄 거다 이 이야기를 하는데요.
중학교 3학년인 제 가슴에 그 말씀이 아멘 아면 아면 수많은 사람이 같이 아면 했지만, 저는 그 말씀을 나의 말씀을 그대로 아면 하느님 우리 엄마가 우리 형이 우리 누나가 그렇게 햇볕 빠지게 일을 해도 그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렵는데 내가 만약에 하루에 2시간씩 기도하면은 우리 집안이 살고 우리가 권능을 얻고 잘 된다면은 내가 그 두 시간을 못 하겠습니까? 이 방학이 끝나고 고등학교 들어가면 그 첫날부터 졸업하는 날까지 하나님 내가 하루에 2시간씩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가정을 좀 불쌍히 이고 복을 주시고 우리 가정 구원받게 해달라고 그래서 제가 소원을 드렸어요. 그리고 1980년 3월 2일 날 저녁에 잠을 자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느님 내일부터 고등학교 입학하는 3월 3일부터 마지막 날까지 아 1977년 3월 1일 77년 3월 1일 날 내가 3년 동안 새벽 기도를 하겠습니다. 내일 하느님 저를 깨우주십시오. 첫날입니다. 하고 잠을 잤어요. 잠을 잤는데 그 다음 날 새벽에 제가 눈이 떠졌어요. 눈이 떠졌었는데 그냥 눈이 떠진 것이 아니고 내가 딱 보니까 내가 누워 자는 것이 보이더라고. 내가 누워서 자는 곳이 보이는데 그때 어떤 흰 옷 입은 분이 오시더니, 잠을 자는 나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형부야 일어나라 하며 어깨를 탁 치더라고요. 내가 바딱 일어났는데 보니까 딱 정신이 돌아왔어요. 아무도 없는 캄캄한 밤인 거예요.
그래서 야 신기하다 하면서 성경책을 들고 교회 갔습니다. 저희 집은 동네 최고 밑에 있고 교회는 저 산 밑에 있는데, 옷이 없어가지고 여전히 그냥 체육복 하나만 입고 교회를 가는데 요즘부터 뭐 이런 잔반 이런 게 없다 보니까 팍 떨면서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아무도 없더라고요. 전도사님은 인제 주일 날 설교하고 나면은 월요일 되면 서울에 나이 드셔서 정식 신학교는 아니고 신학교에 다니고 이렇게 하신 분이라서 새벽 기도는 우리가 그냥 각자 알아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새벽 기도 같아서 기도를 하는데 너무 추워가지고 방석을 다 끌어붙이고 다 씌워놓고 그래 가지고 저희 어머님과 우리 형과 누나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 우리 엄마 누나 형 예수 믿고 구원박해 달라고 지금도 예수 안 믿고 죽으면 100% 지옥할 거다 내가 하느님 어떻게 천국 가서 그 불쌍한 우리 엄마하고 누나 형을 볼 수 있겠냐고 간절히 기도하고, 난 다음에 시간이 얼마 됐는가 보니까 한 3분밖에 안 갔더라구요. 그리고 2시간 동안 기도하기로 했는데 산문 기도하니까 기도할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할 수 없이 우리 전도사님 김홍기 전호사님 현희 영혼이 그 애들부터 교회 매매에 있는 사람들 다 이름을 부르고 길게 길게 했는데도 눈을 떠서 그 시계를 보니까 그래 제가 성경책을 꺼내 가지고 그때부터 신약성경을 새벽에 막 읽었는데 그때 저는요 선교사라고 하는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 시골에서 그 조그마한 예비당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요거 하면은 기도가 다 끝나는 그래서 성경을 많이 읽고 읽고 했는데 제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에 하느님은혜로 성경을 성경을 100번 정도를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복이었죠. 사실 기도는 길게 하지를 못했어요. 기도할 기도를 할 게 없더라고. 한 10분 하고 난 다음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더 이상 내가 무슨 기도를 할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는 그날 입학을 하고 저녁에 잠을 자면서 하나님 오늘 새벽에 저를 깨워주신 분이 하느님이시면은 내가 내일 또 못 일어나면 깨우십시오. 하고 그렇게 잠을 잤어요. 근데 그 다음 날 새벽에요. 정말 놀라웠어요. 잠을 자는데 또 눈이 떼졌어요. 보니까 어디와 똑같은 제가 자고 있는 게 보이는데 또 흰 옷 입은 어떤 분이 오더니, 내가 저 뒤에서 보니까 등이 이래 탁 보이더라고요.
팔을 꺼내가지고 잠자고 있는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현보야 일어나라 내가 딱 일어났는데 캄캄한 마음에 아무도 없는 거예요.
그때 제 마음에 와 하면서 제가 머리맡에 두고 잤던 성경의 책을 잡고 일어서는 순간에 제 마음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벽이 팍 올라오면서 울음이 터지는데 요렇게 하고 울었다 그랬더니, 옆방에 주무시던 저희 어머님이 깜짝 놀래서 왜 무슨 일이고 무슨 악몽을 꾸었나 엄마 그게 아니고 그때부터 성경책을 들고 새벽 기도를 가는데 자꾸 울면서 올라가니까 시골에 그게 전부 다 들리잖아요. 그 동네 마음 끝에서 저 산 오르면 울고 울고 하니까 뭐 방음도 안 되고 옛날에는 전부 다 들리니까 집집마다 무슨 일인데 불이 툭툭해요.
그때 와 가서 교회 가서 울고 내려오면서 울고 학교 가면서 울고 학교 가서 울고 너무너무 너무 많이 올랐어요. 급비 좋은 시골 통학차를 타고 가는데도 눈에서 눈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거야. 학교를 갔는데도 선생님 얼굴 보고 있는데, 눈물이 막 끝도 없이 흐르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담임선생님이 저를 보더니, 야 왜 우느냐 저도 모릅니다. 이랬더니, 야 이 새끼야 니가 모르면 누가 아노 너 왜 울어 모릅니다. 이랬더니, 그때는요 제가 실업계 고등학교를 갔는데 선배들이 후배를 엄청 많이 때렸거든요. 누구한테 맞아서 이야기해 봐 안 맞았습니다. 안 맞았는데 왜 울어 모릅니다. 아 이 새끼 봐라 이래 가지고 선생님이 열 받아가 출석부를 가져와서 바로 말해 어떤 놈한테 맞아서 안 맞았습니다. 왜 울어 모릅니다.
이 새끼 봐라 그래가지고 선생님한테 얼마나 얻어맞고 차를 타오면서도 울고 울고 울고 나중에는 눈물을 닦는데요. 눈물을 닦고 닦고 닦다 보니까 나중에는 눈의 껍질이 타버려요 눈을 뗄 수가 없는 거예요.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눈물이 많이 나 저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요 언제나 들었던 이야기는 뭐 잘못하면 야 이 첩의 자식 호로 자식 가난하다고 무시하고 여학생들도 도망나가고 냄새난다 교회 가서 전호사님조차도 저를 야단치고 한 사람도 어떤 단 한 사람도 저에게 따뜻한 말이나 이렇게 해준 사람이 없었어요. 내가 교회를 가기로 작정을 했어도 어떤 누구도 나를 경려줄 아무도 없고 기도를 그렇게 해도 아무도 그렇게 하는 사람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저를 찾아오신 거죠. 현보야 아니 우리 하느님은 나 같은 사람 찾아오면 안 되지 우리 하나님은 저 멀리서 계실 건데 내 이름을 부르다니 저는 하나님이 그때에 나와 함께하고 내 옆에 있고 내 사정을 알고 내 기도를 들어친다는 것을 베풀어 알았어요. 하나님 여기 계시구나.
하나님 여기 있구나 예수 믿어서 너무 좋아서 구원받은 거 너무 감사했는데 그 하나님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여기 있네 내가 기도하니까 들었다 내가 이 두루노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면 여기서도 내 기도를 들으시네 저는 그게 너무너무 너무너무 감사하나님이 여기 계신 하나님 내 기도를 들으신다 하나님이 내 신분이나 이런 걸 보지 않으시고 내 기도를 들으시는구나 저는 그것이 얼마나 고맙고 얼마나 내 인생에서 너 너무너무 좋았어. 우리 하나님 내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4살 때 돌아왔기 때문에 아버지라는 이름을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 그때부터는 아버지라고 부르는 거 아버지만 불러도 지금도 그래 기도 시작하면은 너는 30분은 딱 한 가지만 하나님 아버지 내 아버지 나를 불쌍해 나를 불쌍히 해주십시오. 매일 새벽마다 30분 이 기도 아무리 기도가 많고 교회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느님 내 아버지 지금도 여기 계시고 내 기도를 놓친 아버지 나를 불쌍해 주십시오. 내 어릴 때 그 불쌍한 나를 구해주고 임대해 주신 것처럼 하나님 오늘도 날 불쌍히 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은행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면서 제가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교회에서 주일 학교를 맡아서 막 전도를 하면서 주일학교가 몇 배나 부흥하는 기적들이 일어나고 그런데도 저희 어머님이나 저희 형 저희 누나는요 성경책 보면 지져서 불 다 때고 이 아이의 새끼가 얼마나 반대하고 반대하는데 저는 이제 술 먹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게 너무 좋아서 예배 시간은요, 빠져본 적이 없어요. 수요일 날이고 밤이고 수요일이고 학교 공부해서 공부하다가도 수요일 날은요, 그냥 나와 선생님 야 어디 가 교회 갑니다. 야 이 새끼 공부 안 해 저는 교회 갑니다. 나가자도 와서 예배 드리고 또 새벽에 기도하고, 학교 갔다 오면은 교회 탐시설에서 기도하고, 집으로 내려가고 예배드리면, 너무 좋았어요.
토요일날 1번 있는 구역 예배도 전호사님이 서울에 공부하러 갔기 때문에 금요일 날 내려오면 토요일 날 시골이 조그만하니까 돌아가면서 한 집에서 구역 예배를 드렸는데 항상 참석했어요. 그럼 거기 있는 할매들이 저를 얼마나 핍박하는지 몰라요. 전호사님 왔다고 막 계란 삶아서 전호사님 드시라 그러면은 전호사님 내가 불쌍하다고 손자재 계란 먹으라 하면 나는 주는 대로 다 먹었거든. 먹으면 옆에 있는 할매들이 저렇게 잡아먹을라 하는 거예요. 어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여기까지 와서 다 주는 대로 다 처먹고 있다고 합니다. 이 할머니들은 막 있는 그대로 노골적으로 저래 해도 저는 뭐 전사님이 줄여서 먹었지마는 저는 정말 예배가 좋았어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 내 아버지를 예배하는 것 그분이 날 구원해주시고 그분을 예배하는 것 너무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제가 실업계 고등학교를 갔는데 그 고등학교는요 자격증을 따야 되는데 그때는 학교마다 경쟁이 붙어가지고 어느 학교가 몇 프로 몇 프로냐 이런 걸 하는데 저는 주일마다 이 자격증 시험을 주일날 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주일날 시험을 안 쳤어요. 한 번 안 치고 두 번 안 쳤더니, 학교 교장이 직접 나와서 잘라라 그때는 다 짤렸습니다. 그때는 교장이 짤르면 짤리는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저희 어머님을 데려오라고 하는 저희 어머님을 데리고 학교에 갔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아무것도 모르고 갔거든.
선생님이 당신 아들이 일요일이라고 교회 간다고 시험을 안 치는데 지금까지 안 쳤다 이번에도 다음 주 월요일 날 시험인데 아 주일 날 일요일 날 시험인데 또 원서를 안 낸다 그래서 학교 방침해서 자른다 그러니까 여기에 자퇴서를 쓰고 사인하라 제가 자퇴서를 쓰고 사인해서 그랬더니, 저희 어머님이요.
선생님 있는 앞에서의 야 이씨 혀가 만발이나 빠져 죽을 놈아 이놈의 자식아 네가 이제 예수 믿다가 고등학교 졸업을 중퇴하고 이놈의 자식아 네가 그래 가지고 앞으로 얼굴 들고 살래 예수 아이고 예수 예수 믿는다고 학교도 중퇴하고 이놈의 자식아 내 니 하나 믿고 사는데 막 울더라 그리고 우리 담임 선생님도 저를 데려다가 옆 교실로 가가지고는 엎드려 받쳐가지고 옛날에 몽둥이 있잖아요. 시험 멈춰 이름만 치고 나 이름만 쓰고 나와 저는 안 저는 안 섭니다. 저는 그날 예배 드릴 겁니다. 윤홍모 자식아 예배는 매일 했는데 한 번 빠지면 안 돼 저는 나를 구해주신 그 주님 부활하신 날 그분 예배할 겁니다. 이래서 선생님 막 때리는데요.
내 눈에 참 눈물이 막 펑펑 나오는 아파서 우는 게 아니고 제 마음에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해서 예배해 드리기 위해서 학교 자퇴서를 내고 선생님한테 맞을 수 있는 은혜를 내게 주십니까 저는 그게 너무 저는 항상 그런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 당시에 일제시대 때 순교한 그런 분들의 전기를 보면서 야 이 기안예수님 때문에 일제시대 태어났으면 내가 순교할 건데 그러다가 밥 먹을 때 기도하면서도 항상 짧은 기도도 하느니 꼭 순교하게 해 주십시오. 이랬는데 일제시대는 지나갔잖아요. 또 제가 6.25 때도 기억이 나더라고. 아니 6.25 때 손영웅 모둠처럼 끌려와서 이렇게 예순일곱 복음 지나다가 내가 숨겨서 이런 복인데 그때는 막 그게 막 불이 붙었거든요. 근데 6.25도 지나가 버렸잖아.
이제 내가 죽지는 못하지만은 하느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내가 자퇴서를 내고 맞이할 수 있는 것 이 은혜를 주신 거 감사합니다. 하고 막 펑펑 울고 있으니까 선생님이 저를 구제불능이라고 그냥 자퇴서 해가지고 저희 어머니만 보냈어요. 돌아가시라고 차를 타고 가는데 그 김해에서 시골 우리 집까지 갈라 그러면은 차가 10분도 넘게 정차를 해 사람을 태우고 내려오고 하는데 저희 어머님이 얼마나 화가 나는지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타면 아이고 우리 아들 좀 보소 저놈이요. 예수 믿다가 학교도 중퇴하고요.
아이고 저게 예수 믿는 놈이라고 막 욕을 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데 또 다음 동네 가서 또 차가 서면 또 욕을 하고 욕을 하고 막 그러고는 자퇴 설레고 집에서 있었어요. 그때는 왜 전화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한참 지나고 났더니, 일주일인가 지나고 났더니, 친구 한 사람이 찾아왔더라고. 내일부터 학교 오라 하니까 왜 취학했는데 왜 가는데 했더니, 아니 우리가 화공과잖아. 그런데 우리가 시험 칠려고 국가자격증 시험 칠려고 세팅해 놓은 그 실험실이 시험 치는 날 주일날 아침에 불이 나버렸다는 거야. 그리고 시험 날짜가 변경돼 가지고 월요일날 다른 마산 공고에서 치게 됐기 때문에 너를 퇴학시킬 수가 없다고 해서 오라 가라는 거예요.
그렇게 가서 월요일날 시험 치는 데가 시험을 치고 그래서 졸업을 할 수가 있었는데, 저는 정말 예배 하느님께 예배 드리는 것 이거는 우리 내 삶에서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영광 중에 영광인 줄로입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그 거룩하시고 나의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그 주님이 날 위해서 이 땅에 오시고 그분이 부활하신 그날 예배하는 이날 내가 이날 평생을 내가 예배드리고 살아야지 그렇게 살았거든. 근데 어느 날 아침을 먹는데 제 어머님이 현부야 오늘 일요일이지 이 또 교회 간다 그러면 안 된다. 오늘은 우리가 논에 일하러 가야 된다.
내가 딱 준비해 놨으니까 오늘은 반드시 일을 하고 저녁에 가든지 알아서 니가 해라 근데 저는 그럴 마음이 1도 없었어요. 말은 안 했지만, 그리고 저희 어머님이 준비하고 있는 사이에 그냥 교회 갔습니다. 주일 학교 오전 예배를 인도하고, 시골이라서 고등학생인 제가 주일 학교 설거를 했거든요. 하고 어른 예배 드리고 또 주일 학교 오후 또 예배 인도하고, 또 저녁 예배가 있는데, 저녁까지 너무 배가 고파서 못 기다리겠더라고. 집에 갈라 그랬더니, 또 집에 갔다 우리 엄마한테 야단들을 거고, 기다리려고 그러니까 밥 하나 주름도 없는데 이렇게 저녁까지 기다리기 그렇고 그래서 해가 넘어가기 전에 저희 집에 살짝 들어갔습니다. 들어갔더니, 저희 어머니도 보고 계시더라고요. 갔는데 내가 대문을 열라고 했는데 저희 어머니가 앞에 계시더라고.
깜짝 놀랄게 서 있었더니, 와 교회는 밥 안 주잖아.
저는 이 자식아 하면 저희 어머님이 막 제 가슴을 치면서 이놈의 자식아 니가 인간이가 응 내가 10까지 다 100까지 니 다 좋은데 여수 몇 년 한 가지 이 엄마가 이렇게 일요일날 일하는데 하루 쉬는 일요일 날 엄마 안 도와주고 이놈의 자식아 내가 니 하나 믿고 사는데 이놈의 자식아 니가 나를 잃을 수 있냐 교육원에 막 가슴을 치면서 한다는데 100% 이해가 다 들어 100% 이해가 되지만은 엄마 그래도 주일날 예배드려야지 이놈의 자식아 예배는 무슨 예배 그래 와가지고 방에서 앉아있으니까 저희 어머님이 밥을 가져왔다 밥은 막내니까 밥은 또 욕을 하면서 밥은 주자 밥을 가져왔는데 저희 어머님이 밥을 먹으면서 아이고 남편 보고 넘느니 아들 복도 없어 자식 복도 없다.
이놈의 자식 하나 믿고 사는데 이놈의 자식이야 여수한테 미쳐가지고 막 욕을 하면서 그러면서 막 한 번만 또 교회 가면 내가 오늘 이 다리 몽둥이를 안 뿌려면 내가 인간이 아니다. 막 하는데 얼마나 제 어머니는 판을 들고 막 그 막 부들부들 때는지 내가 밥을 들고 국에 말아가 들고 이제 먹고 이제 눈치를 보고 있는데, 저희 어머니 부엌에 살짝 가늘 때 내가 밖에 나와서 밖에 나와서 신발을 부엌에 밑에 마루층 밑에서 신발을 딱 신고 있으니까 저희 어머님이 부엌에 문을 열면서 어떡하노 교회 가는데 이랬더니, 제 어머님 마루에 뛰어오더만 이놈의 자식아 또 교회 간다고 하면서 욕을 하는데 이제는 저를 욕을 해서는 안 되니까. 하나님을 욕을 하는 거예요.
예수 아니 예수 혀가 만발에 빠지 죽을 예수가 어디도 예수 예수 새가 맘바르바 죽을 예수야 하면서 예수를 막 욕을 하는 거 그것도 안 되는 하나님 에 나 내 주먹을 믿어라 하나님이 어디 있노 하나님이 어딨노 막 이제는 저를 요구해도 안 되니까. 예수님 하나님을 막 욕을 하는데 제가 마루 정밑에서 신발을 끈을 묶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저희 어머님이 마루층 위에서 욕을 하고 있는데, 제 어머님을 다 업었어요. 딱 업고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뛰어나가더니, 저희 어머님이 아무것도 모르고 욕을 하다가 업혀가지고 어디 가노 엄마는 교회를 한 번도 안 가보고 교회를 욕했지 엄마 오늘 교회 함 가보자 하면서 제가 업고 가니까 저희 어머니 이놈의 여자가 안 내려놓는다 하면서 발버둥을 치는데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제가 얼마나 내리지 못하게 다리를 꽉 쪼아서 뛰어서 교회까지 올라갔어요. 올라가는데 저희 집에서 교회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가도 한 거의 한 10분 정도 걸리거든요. 동네 최고 밑에 있고 교회는 최고 위에 있는데, 막 올라가는 저희 어머니 막 제 뒤에 업해가지고는 나를 안 내려놓았냐 하면서 고함을 치면서 동네 사람들 보고 막 지나가면 내 좀 내려주소 하는데도 제가 그냥 업고 올라갔어요. 교회가 점점 가까이 되니까. 저희 어머님이 발광을 하면서 저의 머리를 막 잡고 막 흔들고 정말 교회가 이제 앞에 가까이 한 40~50 몇 앞에 오니까요?
제 얼굴을 막 깔집 뜯는 거 안 내려와라 하는데 제가 저도 제 마음의 하느님 우리 엄마 평생에 처음 교회 갑니다. 꼭 그냥 한번 발이나 티득해 주십사 하고 더 막 저희 어머니를 꽉 쪼아가지고, 그대로 업고 신발을 벗고 교회 예비당을 들어가야 되는데 신발 벗는다고 내리면 안 되니까. 그들 신발 벗은 채로 아 신은 채로 예비당을 들어가서 앉혀왔어요. 그리고 제 마음이 하나님 우리 엄마 교회 왔습니다. 하나님 책임입니다. 예 나가든 안 나가든 뭐 어디 우리 엄마가 당장 일어나서 나가겠죠. 그렇지만은 하나님 교회 왔습니다. 했는데 딱 내려놨는데 저희 어머님이 딱 앉으면은 가만히 있더라고요. 예배 끝날 때까지 그래서 전도사님이 예배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조그마하니까 아이고 어머님 어떤 일이 있으세요. 하니까 낳았소마 그때서야 나갔어요.
저는 언제나 우리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안 일어나고 끝까지 들었을까? 얘기를 드렸을까? 나중에 알았어요. 저희 어머님이 우리 아들한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내가 그날 너그 하바이한테 업혀 가가지고 뛰어넘으려고 하는데 얼마나 다리를 쭉 알았대요 찌가 나가지고 또 찍어 놓으니까 꼼짝도 못하고 예배를 드렸더라고요. 그러고 난 다음에 그날부터 저희 어머님이 그날 내려오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놈의 자식아 앞으로 니 교회 가는 거 내가 말 안 할게 다시는 업고는 가지 마라 그래 가지고 그날부터 교회 가는 것에 대해서는 제재를 안 받았어요. 그러나 제 마음에는 그렇게 기도하는데도 기도가 응답이 안 되는 거야. 안 믿는 거예요.
더 욕을 하고 어느 날 저희 아부지 제삿날이 되었어요. 제사는 큰집에서 지내죠 큰엄마가 이제 큰집에서 지내는데 저녁을 우리 집에서 먹고 이제 우리는 갈려고 저녁을 먹는데 저녁을 먹는데 우리 형이 옆에서 교회 주부를 하나 더 찾아요. 등살기로 밀어주부를 덮었는데 이 주부에 11조라네 11조 소년부 이래 나왔더니, 안 그래도 교회 가는 걸 그렇게 비빠가 막 날 죽일려고 했더니, 형이 아이고 11조 내네 아들이 11조를 내네 아니 요새 교회가 말이야. 11조 아들 보고 돈 내러 가라고 교회가 또 막 욕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형 11조는 내가지고 가난한 자 돕고 어려운 사람 돕고 하는 거기 때문에 11조는 다 이어내야지 세상 사람들은 기부도 하는데 그랬더니, 무슨 그런 소리를 하냐면 애들한테도 11조 내려가라고 교회가 돈밖에 모르면 막 욕을 하는 거야. 우리 형과 우리 누나 두 분과 우리 엄마는 내가 교회에 나가는 것 때문에 야단쳤지 나머지는요 저에 대한 자부심이 어마어마해요. 저는 동네 사람 예수 믿고 난 다음부터는요 10번만 10번 인사를 다 했어요. 예수 믿으니까 그리 좋더라고. 동네 사람들 보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다 사람들마다 아이고 세상에 산정댁의 아들은 저렇게 또 주일 아침에 새벽 기도 갔다 오면요 동네에 있는 애들 다 중학생들 고등학생 다 깨워가지고요.
동네 그 중간에 흐르는 내 채널 깨끗이 청소 다 하고 그다음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창녕에 부곡 하와이가 생겼다고 온천이 생겼는데 거기에 고등학생인 제가 주관을 해 가지고 동네 집집마다 쌀을 쌀 5대씩 이렇게 다 가져오게 우리 친구들 다 보내서 가져와서 그것을 부산에서 팔아가지고,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동네 사람들 부고 하와이 여행을 다 시켜주고 이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제 어머님은 눈 다 좋은데 예수님네 하나만 안 좋다는 거야. 그래 내가 우리 형이 이렇게 막 교회를 욕하기에 엄마 우리 교회가 조그마한 교회지만은 그래도 남을 돕고 하는 걸 잘 알고 있제 이랬더니, 마 이거 알기를 뭐야? 새가 만발의뻐 죽을 예수 믿는데 막 욕을 하는 거예요. 내가 우리 누나한테 누나 맞다. 니가 이랬더니, 누나들도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편을 안 들어주는 거예요. 그때 제 마음에 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제시대는 지나갔고 유교도 지나갔고 내가 우리 가정 복원만을 위해서 내가 진짜 죽어야 되겠구나. 딱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데 그날 이야기해서 형 형 잘 들어라 저는 우리 집은 다 이 말을 낮춰서 제가 했거든요. 오늘부터 형하고 엄마하고 누나하고 예수 안 믿으면은 내가 굶어 죽을 거다 내가 굶어 죽고 나면 내가 왜 죽었는가 생각하고 교회를 가봐라 오늘부터 내가 금식하고 내가 굶어 죽을 거다 이렇게 이야기했더니, 우리 형이 아이고 자식아 어디서 협박 공간을 기지라 이 자식아 막 욕을 합니다. 그러고 남들은 제사를 지내고 가고 저는 그 다음 날 새벽에도 와서 학교를 그냥 갔어요. 학교 가서 하루 굶고 집에 왔더니, 집에 아무도 없더라고. 내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가놓고 기도하고, 한참 지나고 난 뒤에 어머님 들어왔어요.
형부 왔나 어 나 왔는데 그럼 밥이라고 불 안 켜놓고 뭐하노 엄마 오늘부터 엄마 예수 할머니 굶어 죽을 거다 이랬더니, 이놈의 자식아 굶어 죽어 굶어 죽어라 뭐 예수할머니네 굶어 죽어라 너 하나 죽으면 우리 다 산다 죽어라 밥을 하루에 몇 끼씩 먹는데 죽어라 자식이야 그러면 사욕을 하시더니, 그래도 한 밥을 먹고 난 다음에 밥 먹으러 안 나오나 엄마 예수 안 믿으면 굶어 죽는다 안 그래야 되나 어 나 굶어 죽어라 그리고 그 다음 날 또 새벽에 두고 왔다가 그냥 학교 갔어요.
갔다 오니까 또 저녁에 똑같더니, 밥 안 먹나 엄마 여수 믿어야지 일 오느냐 굶어 죽어라 3일째 되는 또 학교 갔다 왔어 밥 안 먹나 문 열어라 밥 안 먹나 엄마 예수한테 굶어줄 거 같애 저희 어머님이 이놈의 자식아 하나님이 어디 있노 하나님이 있으면 나를 이렇게 하나 하나님 없다.
하나님이 있으면 하나님이 내 사정 정도는 알아줘야지 엄마 하나님 다 알고 계신다 예수 믿으면 다 해결해 주신다 예수 믿어야지 나는 못 믿지 난 안 믿어 밥 안 먹을래 밥 안 먹나 엄마 예수함 안 믿으면 굶어 죽나 그래 그래 굶어 죽어라 이래 하고 있다가 또 한참 뒤에 와서 밥 안 먹나 그러더니, 저희 어머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 니가 그렇게 기도하고, 기도하니까 언녀가 안 믿겠나 밥부터 먹어라 엄마 엄마가 열심히 있는 거 바위야 파먹지 난 그럼 죽을 거다 엄마 너무너무 어렵게 살아왔는데 이렇게 살다가 엄마가 지옥 가면은 어떻게 할래 나는 그게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내가 천국을 100% 믿고 있는데, 지옥은 100% 싫지 않은 거예요.
우리 엄마가 지옥 가면은 우리 엄마가 지옥 가면은 내려서 우리 엄마가 지옥 가면은 어떻게 되지 나는 생각만 해도요 생각만 해도 오이레트의 눈물이 터졌어요. 엄마 엄마 예수할 믿음 내 진짜 굶어 죽을 거다 내 죽고 나면은 엄마라도 꼭 교회 가라이 근데 그러고 잠이 들어왔어요. 그다음 날 아침에 힘이 없어서 새벽 기도를 못 갔어요. 새벽 기도를 못 갔는데 저희 누워있는데, 오토바이 소리가 부르고 그래 밖에서 우리 전호사님이 오토바이를 시골에 오토바이 타고 손 소장 나오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밖에 딱 나갔더니, 저희 어머님이 생각하시더라고.
너 금식하고 있다며 밥 먹어라 이러 전호사님 우리 엄마 여수아 믿으면 내 진짜 굶어 죽을 겁니다. 그 전호사님이 우리 동네 출신인데 늦게 신학을 해서 목사 그때 전호사님이었거든. 나이가 들었는데도 전호사님 우리 엄마 고생한 거 다 알죠 우리 엄마 예수입니다. 천국 가야 됩니다. 안 가면 내 그냥 굶어 죽을 겁니다. 그랬더니, 밥 먹어 오늘 엄마가 새벽 예배 왔거든. 그 저희 어머님이 새벽에 예배를 가신 거예요. 그래서 전도사님을 붙들고 전도사님 우리 아들이 직원을 쳐놓으면 고집이 세다 진짜 굶어 죽을 놈인데 내가 예수 믿을 거니까 가서 우리 아들한테 이야기해서 밥 먹으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오토바이 타고 오셨다 그때 전도사님이 기도를 해 주시고 가시고 저희 어머님이 흰죽을 많이 굶었기 때문에 백솥에다가 한 반 정도를 끓여왔더라 그래 왔는데 내가 앉아서요 한 7그릇을 내가 엇갈아서 다 먹어 그러고 난 다음에 주일날 예배를 드리러 갈려고 내가 준비를 다 하고 엄마 이제 교회 가야지 교회 가지 이랬더니, 저희 어머님이 너 밥 먹었제 나는 교회 못 간다 내 니 굶어 죽을까 싶어서 내가 오늘 새벽에 교회 갔다 근데 지난번에 너한테 업혀서 한번 갔고 오늘 네 발로 니 죽을까 싶어서 내가 갔다 나는 못 간다 내가 평생 데려 다니는데 내가 교회 못 가고 이 동네에 누가 교회 가노 다 모자란 조금 미친 듯 그런 사람만 교회 가는 거 아니가 나는 못 간다 제가 그날은요, 힘이 없어 주일 학교 설계도 못하고 그냥 오전 저녁 예배 데리고 왔다가 그 다음 날 잠을 자다 새벽에 눈을 딱 깼는데 새벽에도 가기가 싫은 거예요.
내 기도를 한번 들어주시고 하나님 내가 매일 새벽에 기도하고, 죽일 학교 얼마나 동네 동네 다니면서 전도해 가지고 이렇게 어 열 몇 명 모이던 주일 학교 애들도 80명 90명 모이고 교회가 시골 교회가 차고는 막 이렇게 놀라고 했는데 우리 엄마 여수 믿는다고 해놓고, 또 못하도록 그렇게 하십니까? 하면 그날 새벽 기도를 가기 싫게 생각했어요. 안 갈라고 했었는데 마음에 지금까지 갔는데 3년 동안 가기로 했는데 일어났습니다. 교회에 갔어요. 가서 방석을 놓고 무릎을 턱 꿇었습니다. 기도가 하나 생각이 안 나더라고. 그래 무릎을 턱 꿇고 2초 3초 한 몇 초 10초 이내도 안 지났는데 탁 지났는데 내 눈에 보이는 겁니다.
언덕이 있고 거기에 계단이 다 있는데, 그 계단 위에 뾰족한 십자가 탑이 두 개 있는 고딕 건물로 되어있는 큰 예비당이 서가 있고 거기에 계단이 쫙 있는데, 그 밑에 계단에 내가 서가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 밑에 계단 밑에 서서 그 교회를 바라보고 있는데, 내 귀에 이런 말씀이 들리는 거예요. 저기 예배를 마치고 사람들이 내려올 건데 저 예배를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 중에 나를 믿는 자가 있는지를 니가 한번 물어봐라 이래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아니 예배를 드리고 오는데 예수를 안 믿고 내려올까요? 하고 있으니까 저 위에 사람들 예배를 마쳤는지 막 성경책 옛날에 성경 참석 2개 있는 걸 들고 막 내려오시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앞에 양복이 있는 사람부터 먼저 물었어요. 예수님 믿죠 이랬더니, 그분이 하는 말이 무슨 예수 하는 거예요.
아니 우리 교회들은 예수님 있는 거 아니고 나 몰라 그때부터 사람들이 내려오는데 사람들 붙들고 예수님 믿습니까? 예수님입니까? 예수님입니까? 물었는데 전부 다 예수를 모른대요 예수를 모른다는 거야. 내가 너무 답답해서 아니 예비를 뒤로 오는데 예수님을 뭘 믿습니까? 아 몰라 예수 몰라 내려 계단 내려오는 사람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님 믿습니까? 예수인 예수를 안 믿는데요. 그때 내가 사람들이 다 빠져가고 난 다음에 그 계단 밑에 서서 너무너무 멀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렇게 막 큰 교회 예수 믿었다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요. 어떻게 예술을 안 믿습니까? 예수를 그렇게 울면서 있다가 보니까 앞에 보이던 그 예배당은 사라지고요.
그 예배당에 있던 그 자리에서 지옥에서 심판하는 그 광경을 눈으로 보여주는데 눈을 뜨고 볼 수가 없는 예배당은 사라지고 거기에 불 붙는 곳에서 사람들이 악우성을 치는 그 광경을 그냥 프라이팬에 그냥 살아있는 것을 튀기듯이 그런 광경을 보여주는데 하느님 하느님 나는 못 보겠습니다. 못 보겠어요. 하느님 그만하세요. 그만하세요. 눈을 감았는데도 보이네 안 볼 수가 없네 그래서 하느님 하느님 그만하세요. 하는데 내 느낌에 이런 느낌이 들더라고. 이런 음성이 들리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느낌 너도 나를 못 믿지 이런 느낌들이 나는 믿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믿습니다.
그만 보여줘 그만 하는데 눈이 턱 떠지는데 아니 방금 엎드려서 기도할라고 앉았는데 그 광경을 봐 저는 지금도 생각해요. 저는 그때부터 전도를 안 하고 나온 적이 없어요. 어느 궤가든지 전도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하고 내가 다른 이야기를 해보니 다른 이야기를 할 마음이 없어요. 사람들은 똑같은 이야기 아는 이야기 전도 이야기 또 전도하라는구나 세상에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죠.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습니까? 교회가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중요한 것을 안전하는 거예요. 왜 안전할까요? 저는 느낌마다 라고 예술을 합니다니까 정말 지옥의 맛을 5분만 보여주면은 정말 그걸 믿으면 전도 안 하겠습니까?
자기가 예수님이 날 위해 십자가 죽었다는 걸 믿는다면은 복음 전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때부터 김해에서 시골로 오면은 중간에 내려서 언제나 전도지를 꺼내서 동네마다 다 나눠줬어요. 토요일날엔 특별히 교회가 없는 동네 애들을 모아놨어요. 매일 애를 모아서 예비하고 찬송가 가리키고 사탕 두 개를 하니까 애들이 한 동네에는 한 40명 모이고 한 동네는 한 20명 정도 매일 그렇게 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큰 예배를 드렸습니다. 나중에는 저희 어머님이 그 사실을 알았어요. 이놈의 자식아 니가 학교 수업 마치면은 동네마다 전도하고, 다니면서 집에 온다며 늦게 온다며 제가 한 2~3~4시간은 막 동네마다 전도하고, 그러다가 집에 왔어요.
토요일 되면은 그 교회 없는 동네 애들 그 시간에 모아 가지고 논바닥에서 게임도 하고 찬송도 하고 예배도 하고 다 그래 이놈의 자식아 니가 미쳤나 니가 목사가 니가 전호사가 니가 미쳤나 이놈의 자식아 니가 와 그라노 니가 미친 놈 아이가 그때는 시골에요. 이런 사람이 있었어요. 왜 술 믿었어요. 미친 사람 진짜 있었다니까 니가 미친놈 아이가 니가 와 그러노 니가 니 학생 아이가 엄마 나 신학대학 가서 목사 될 거야. 이놈의 자식아 목사 목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저는 그때부터 딱 처음에 여수민 됐을 때 중학교 3학년 때 목사가 돼야지 하는 결심을 했는데 다 까먹고 있다가 아 목사가 돼야 되겠구나.
평생을 복음 지나고 살아야지 그러면서 기도를 하고 제가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왔지만은 예비고사 시험을 쳐서 고신대학에 부산에 있는 우리 교단의 고신대학에 합격을 했어요. 그런데 집에서는 돈 세 번도 도와줄 돈이 없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그때도 먹고 죽을라 그래도 돈이 없으니까 내가 새벽 기도 가서 그 조그마한 예배당 앞에 앉아서 기도를 합니다. 쥐어줄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기도를 했더니, 우리 방 요 앞에 있던 전도사님이 요거 1m도 안 되거든요. 전도사님은 강래상 앞에서 기도 나는 요 앞에서 기도하고, 막 기도하니까 쟤를 손자재 소저제 이리 와봐라고 그래 내가 물어볼게요 생각했더니, 손자생 신학 간다고 돈 있나 돈은 없습니다.
손 사정 알제 우리 교회도 나도 내 사례도 다 못 봤는데 우리 교회는 니가 시나카도 못 도와준다. 전 사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제게 해주지 가게 해주지만 그래도 꼭 목사가 돼야만 하느님 일을 다하는 건 아니지 너 집에 돈 있나 돈 없지 우리도 돈 없지 전도사님 그래도 하나님 줄 겁니다. 그래 안 그래 하나님은 기도하면 주지 주지마는 꼭 니가 목사가 돼야 되는 거 아니지 알겠습니다. 그 다음 날에서 또 막히는 주요 살아계자 나라는 줄 줄을 믿습니다. 아내 직인대주 믿습니다. 그 다음에 조도사님 부르는 거예요. 손 선생 어제 이야기 안 하더나 그럼 우리 변호사님은요, 내가 너무너무 걱정돼요. 제가 너무 순진하게 100% 믿고 계세요. 나는 100% 믿을 거예요.
100% 아 나는 100% 믿었으니까 그래 우리 전사님이 아 지나가 신학교 못 가면 무슨 일이 생기는 거 아닌가 이래 가지고 손자재 고 목사가 돼야 하는 뜻이 아니다. 이걸 막 설득을 계속 하는데 그런데 이제 드디어 내일이 등록 마감이 내일이 등록 마감이 되는데 오늘 새벽 기회가 기도를 했어요. 주요 내일이 마감합니다. 주님은 사랑해야 될 줄줄로 믿습니다. 막 그렇게 했더니, 전사님이 손 선생님이 이리 와 봐봐 그러는 거예요. 많이 하고 열심히 사는 시간 다 하는데 그러나 우리는 돈이 하나도 없다. 아이가 전도사님 그래도 하나는 주실 겁니다.
아 그래 치지 그래도 꼭 이가 목사가 돼야 되는 건 아니다. 그것도 알겠습니다. 뭐 전도사님 전혀 걱정하지 말아 주실 겁니다. 그리고 집에 갔어요. 집에 갔더니, 저희 어머님이 제가 교회 가는 것도 반기지 않고 다 안 반겼지만은 제가 대학 간다는 것에 대해서 돈이 없어서 못 간다는데 신학대학이든 돈이 없어서 못 간다는 데 대해서 저희 어머님이 마음 아파하시는 것 같아요. 우리 아버지 밑에 큰 집에는요 자녀가 7명입니다. 그리고 굉장히 부자였어요. 그 당시에 제가 어릴 때 그 당시에 집에 차가 있었습니다. 화물차가 있어서 거기다가 뭘 끼워 넣어 가지고 막 돌리면은 차 시동이 걸려와서 운수업을 하는 그러니까 그 당시에 굉장히 부자였거든요. 그래서 그 집에는 먹을 게 많고 땅도 많고 했기 때문에 대학 갈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저는 대학 아무도 안 갔습니다.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해서 대학을 아무도 안 갔어요. 그 내가 대학 가면은 우리 저 집에 7명 우리 집에 4명 11명 중에서 유일하게 내가 대학 가는 되는데 우리 엄마는 그래도 그 자존심이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대학을 친할 때 그건 안 좋지만은 우리 아들이 대학 간다는 거는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잖아요. 그러더니, 새벽에도 갔던 나를 끌고 한번 가보자 우리 삼촌 집에 갔습니다. 삼촌도요 논이 백마지기 있는 부자였어요. 그래가지고 저희 어머님이 저를 댁으로 가가지고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우리 아가요 신학대학 간대요 아이고 이러면서 돈도 없는데 신학대학 간다고 그러니까 저희 어머님은 그래도 큰 부자니까 삼촌이 등록금이라도 한번 대주면은 이렇게 생각을 하고 저를 데려가고 그 말을 한 거 같애 그랬더니, 저희 삼촌이 하시는 말씀이 저를 보더니, 니가 대학 간다고 니가 대학 가면은 내 손가락에 불캐가 하늘을 올라갈게 우리 아들 대학 갔는데 논 30마지기 있어야 애 대학 하나 보내는데 니가 어떻게 대학 간다고 제가 얼마나 열을 받았는지 제가 삼촌한테 삼촌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저는 대학 갑니다. 삼촌이 안 도와주고 갑니다.
그랬더니, 저희 삼촌이 이 새벽마다 또 해가지고 동네 다 깨우고 노래 부르고 찬송하면 니가 왔다 갔다 그래 하는데 와 니가 그래도 기도하면은 하나님 있으면 하늘에 돈을 뚝뚝 떨어줘야 되지 않나 하나님을 모욕하더라 그래서 제가 엄마 가자 삼촌 하나님 저를 대학 가게 해줄 겁니다. 삼촌 안 줘도 저를 갈 겁니다. 엄마 가자 집에 왔는데 저희 어머님 집에 와가지고는 마루층에 앉아서 펑펑 우시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아 못난 엄마 만나서 니가 그렇게 기도하고, 갈라고 하는데 돈이 없어서 니를 못해주고 막 우시더라고요. 내가 엄마 걱정하지 마라 하느님은 살아계셔서 다 돈이고 뭐지 다 준다.
걱정하지 마라 아무 걱정하지 마라 그랬더니, 윤홍무 자식아 세상에 하나님 어디 있노 너 상처라는 거 봤지 니 도와줄 아 사람이 어디 있노 아무도 없다. 엄마 하나님 지금도 우리 하는 이야기 듣고 내 기도를 다 듣고 이렇게 하고는 저희 어머님은 일하러 가시고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너 저도 좀 답답하더라고요. 교회 가서 기도할라 그러니까 또 전도사님 부담이잖아요. 내일 등록 마감인데 돈도 없는데 집에 있으려고 하니까 또 그것도 그렇고 동네도 돌아다니고 그래서 제가 옛날엔 학생 회수권 할인권이 있었거든요. 그걸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 산에 한 두 번 갔는데 그 산에 올라가는 중간에 길에 절이 있어요.
절이 그래서 발음도 싫게 사람도 나 모르는 데 가서 갔다가 발음도 쐬고 와야 되겠다. 그래 차 타고 김해 가서 김해에서 부산 가는 차 타고 거기 산 밑에 내려서 올라갔습니다. 절을 거쳐서 올라가는데 마침 그 절에서 일하는 아줌마가 살기는 동네에 살면서 낮에는 절에 와서 허드레 일을 해주고 하는데 그분이 저를 알아보고 있는 학생 그 어쩐 일이고 놀러 왔다 그러니까 아 그래 하고 있는데, 스님이 오시더라고요. 선생님께도 보더만은 그래 너 그래 너 지난번에 뭐 대학 간다고 그러더만은 시험 쳤나 어디 쳤는데 신학대학 쳤습니다.
내가 왜 그래도 그 절에 있었냐고 하니까 고등학교 때 산에 한번 갔을 때 그 스님 절을 탁 보는데 그 절에 마당에 우물이 있었는데요. 우물물을 길어가지고 친구 안 하고 둘이서 물을 먹고 있는데, 스님이 부르더라고. 그때 보더니, 저를 보더니, 학생 내 동자 할래 이래 했거든요. 그래서 옆에 있는 서철수라는 친구가 아 야는 별명이 목사고요. 신합대학 갈 건데 동자는 무슨 동자요 그랬더니, 스님이 그래 놀다가 그러더니, 절에 한번 그 2분 같은 스님하고 안면이 있었는데, 그날 갔더니, 스님이 시험을 쳤나요? 그리고 요새는 등록금이 비싸게 60만 원 어이구 비싸네, 그러고 난 다음에 그래 놀다 가라 알겠습니다. 그 제가 저 뒤에 골짜기 올라가서 한 2시간 동안 큰 이렇게 됐어요.
하느님 엘리야기는 깜마귀를 먹이시고 다 했잖아요. 우리 엄마가 하나님을 못 믿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요. 삼촌도 못 믿고 하나님도 못 믿습니다. 하나님 살아계심을 보여주십시오. 저는 신학대학 가서 목사가 되어서 복음 전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집에 가야죠 그래서 집에 가려고 내려오는데 그 절 옆을 지나가는데 마침 그 아줌마가 또 있더라고요.
학생 그러니까 아줌마 왜요 그랬더니, 아이고 그래도 스님한테 인사를 드리고 가야지 나 그냥 갈렵니다. 했더니, 아 그래도 왔으면은 스님한테 인사를 드리고 가야지 그냥 가면 되느냐고 그 예의가 아니지 막 이래서 왔더라고. 그래서 내가 뭐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예의는 무슨 예의 하면서도 하도 아줌마가 아 그래도 스님한테 인사를 드리고 와야지 그래서 내가 스님 문 앞에 가서 스님 저 갑니다. 이랬더니, 스님 문을 턱 열더만 들어오라는 거야. 그래 내가 아이 발에 냄새 나서 안 들어갈랍니다. 들어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들어가 가지고 발에 신발 벗으면 냄새가 너무 많이 나가지고 옛날에 운동화 하나를 갖고 신지도 않고 개가 막 냄새가 꼬린내가 나가 그래 내가 신발을 벗고 올라가 가지고 발은 밖에 내놓고 몸만 엎드려 가지고 꾸부당하게 해 가지고 했더니, 스님이 저를 딱 보더니, 너는 그 등록금 못 내지 이러더라고요. 내가 가만히 있었어 가만히 있었더니, 스님이 봉투를 하나 더 꺼내가지고 이거 가지고 등록을 하라는 겁니까? 니 아까 등록금 60만 원도 안 했나 그래서 내가 스님 저는 받아도 갚을 돈도 없고 저는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랬더니, 그냥 주는 거니까 받아라 몇 번 거절했는데 스님이 그래서 제가 그것을 스님께 60만 원을 받아 가지고 바로 고신대학 신학과에 가서 등록을 하루 남겨놓고 등록을 하고 그다음에 밤늦게 집에 가서 마지막 차를 타고 이제 집에 갔어요. 집에 갔더니, 저희 어머님이 낮에 돈도 못 빌렸지 삼촌한테 그랬지 내가 사라지고 그때는 전화기 없으니까 야가 어디 갔노 막 하고 있는데, 내가 밤에 밤 한 9시 마지막 차를 치고 그래 가는데 마지막 차를 타고 들어갔더니, 집에 항상 내가 집에 들어가면 엄마 하고 들어가거든요.
엄마하고 들어왔더니, 저희 어머님 그대로 뛰는 이 노무자 지금 어디로 갔던데 뭐 했노 어디 갔는데 연락도 없이 막 그러길래 엄마 내가 저 부산에 있는 그 불연사 절에 갔는데 그 절에 스님이 등록금을 대줘서 등록을 하고 오는 길이다. 그랬더니, 무슨 소리고 그래서 내가 설명해 주더니, 제 어머님 마루친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는 그대로 뛰어 내려와 가지고 마당에서 저 모호남 지리라는 사찰을 보고 아이고 나무관세 엄마 나무관세음보살이 아니고 봐라 하느님만 살아계시나 막 내가 설명했더니, 저희 어머님이 너무 좋아가지고, 부처님이고 하나님이고 너를 도와줘서 고맙다고 막 그래 샀다 그래 가지고 1980년도 3월 3일 날에 80년도 3월 3일 날 고신대학에 입학 예배를 드렸습니다.
입학 예배를 드렸는데 이제 기숙사 갈 사람은 기숙사 가고 통학할 사람 없으면 집으로 갔겠고 버튼 저는 갈 데가 없는 거예요. 집으로 가면은 집이 너무 멀어서 못 오고 잘 데도 없고 호집을 돈도 없고 그래서 제가 예배를 마치고 와서 가방을 교회에서 내가 신학생 됐다고 점사님이 가방을 1만 원짜리 가방을 하나 사줬는데 그런 책도 없고 아무것도 돈이 하나도 없으니까 그러다 손가락에 가방을 끼워서 가방을 돌리고 하나님 오늘 입학 예배 잘 데리고 입학을 했는데 먹을 데도 없고 잘 데도 없고 하느님 하고 있는데, 또 생각나기를 내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 그래 전에 스님이 또 생각나더라고요.
그 사람 말고는 아는 사람이 아무 사람도 없으니까 그래서 내가 그 빈 가방을 들고 아 재량 가봐야 되겠다. 그래서 빈 가방을 들고 재량 갔어요. 내가 솔직히 내 마음이 이런 생각이 들더라 아 그래도 스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또 들었는데 어떡하니까 마침 스님 마당에 또 계시더라고. 그래서 내가 스님 안녕하세요. 그랬더니, 그래 니가 어쩐 일이고 하는 네 오늘 스님 덕분에 예배 잘 마치고 왔습니다. 그랬더니, 스님이 그래 오늘 입학했나 네 입학 예배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 그 누구 집은 저 멀리 거기 있는데, 어디서 자노 이러고 묻더라 스님 지금까지 정해진 데는 없습니다.
이랬더니, 스님이 저를 또 보시더니, 그러면은 막 우리 절에서 다닐래 그래서 제가 갈 데도 없고 먹을 데도 없는데 제가 뭐 다르게 할 말이 없잖아요. 그랬더니, 그 일하는 아줌마를 해서 방을 안내를 해주더라 마침 그때에 그 절에서 부속 건물을 지었어요. 밑에는 방이 여러 개 있고 위에는 통으로 다락이 있는데, 말이 다락이지 엄청 크죠 황토로 나무로 통나무를 확 지은 위에는 기와로 딱 해내는 부속 건물인데 거기서 다락에 올라갔더니, 자 그래 감사 기도하고, 앉아있는데, 일하는 아주머니가 막 과일하고 막 가져왔더라 과일이요. 얼마나 좋은지 옛날에 사직구제 같은 거 지나면요 제가 등록금 60만 원이었는데.
그 당시에 사직구제라고 하는 자기 아버지나 엄마나 천국 극락가라고 하는 그 제사를 지내는 사주 구제 지내면요 그때 과일값만 그 불교 신자들은 60만 원씩 들였어요. 그 과일 같은 거 다 차려 가지고 하는데 그런 과일을 가져왔다 파인애플 바나나 사과 배 이만한 거 이만한 거 진짜 요만한 거 큰 거 최고 좋은 거 그래서 내가 꿀꺽 먹고 싶었지마는 내가 아줌마한테 아주머니 저는 이런 거 안 먹습니다. 가져가라 그랬더니, 아주머니가 왜 안 먹는데 묻더라고요. 저는요 귀신들한테 제사 드린 음식은 안 먹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했더니, 아주머니가 저를 막 도와주다시피 많이 했는데 열 받아 가지고 얻어먹는 주제에 온갖 것 다 가리고 있네 하면서 가져가더라고. 그리고는 제가 저녁에 잠을 자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내가 재래 있지만은 새벽 기도는 혹시나 또 이게 남의 집에 있다가 첫날 뭐 잘못 이게 긴장해서 새벽에도 도착하니까 내일 아침에 깨워달라고 그래 하고는 잠을 잤는데 아 그 다음 날 나는 원래 4시에 새벽에 들어가는데 쉐시어지를 스님이 깨워주더라고. 3시만 되면은 스님은 매일 3시만 되면 똑딱뚝딱 예불을 드려요 예불 아침마다 예불을 드리는 거예요. 이 3신이 되는 거예요. 그 예불 끝나고 나면은 제가 순경찬송을 들고 밑에 주례교회라고 옛날에 이인근 목사님이라고 계셨는데 그게 예배를 새벽교도 드리고 또 올라오고 그래서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 새벽교 다닐 때 늘 목이 터지라고 찬송을 하고 다녔거든요.
그래서 또 절에서도 내려갈 때 찬송 부르고 내려갔다가 또 절에 올라가면 찬송 부르고 막 막 이래 갔더니, 동네 사람들 인제 소문이 와전돼서 우리 스님이 요새 뭐 목사님을 한 사람 데려와 가지고 같이 있고 목사님 새벽 기도 가고 스님은 뭐 불공무대로 이렇게 이상하게 되었다. 내려가지고 사람들이 막 전에도요 운영위원회 이런 게 있거든요. 운영위원회 총무도 오고 회장도 오고 이래 다 오더라고. 그래 와서 아침을 먹으면 제가 항상 기도를 합니다. 스님하고 밥을 저는 항상 우리는 당연히 기도하죠. 기도하면 스님이 항상 야야 야 뭐하노 기도합니다. 누구한테 기도하는데 하나님께 기도하죠.
내가 니 학비 교통비 책값 보낸다고 내가 매일마다 두드리고 내가 아는데 니 어디 기도하노 스님 스님도 다 하느님 언어로 사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서 내가 복음을 전하고 했는데 제가 지금은 시간을 말씀 못 드리지만 이게요 나중에는 내가 저를 알게 됐어요. 책도 쓰고요. 인터넷에 들어가면 그 내용도 있는데요.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절에 있는 스님들도 이번에도 우리가 팬데믹 가운데도 1년에 네 번 세례 받는데 이번에 수백 명이 받았는데 그때도 스님 한 분 세례를 받았어요. 지난번에도 스님이 두 번이나 스님도요 10분만 딱 이하면 외수를 믿는 거예요.
그 이유를 제가 알게 됐는데 그래서 그 절에 있으면서 밤에 다락에 올라가면은 또 막 맛있는 거 갖다 놔요 내가 아줌마를 불러서 아주머니 안 먹는다고 그랬잖아요. 이러면은 학생이 제사 음식 안 먹는다. 그래서 스님한테 이야기를 했더니, 스님이 제사 드리기 전에 갖다 놔라고 그래서 제사 드리기 전에 그 절에서 그 맛있는 과일 먹고 저는 쌀밥을 먹어본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근데 절에 있는 그 밥은요, 100% 쌀밥 100% 쌀밥은 얼마나 맛있는지 그냥 된장에만 찍어서만 먹어도 꿀떡꿀떡하고 간장에 찍으면 내가 지금도 우리 집에서도 반찬을 우리 집사람들이 있지만 반찬 두 가지 이상을 안 먹어요.
쌀밥 딱 해가지고 그 쌀밥을 된장 잘게 내가 쌀밥 먹고 된장 하나 먹고 쌀밥 먹고 이게 최고 맛있어요. 그다음에 간장에 고추장 넣고 고추 좀 썰어 가지고 매운 고추 해 가지고 밥 한 숟가락 먹고 그 매운 고추 하나 먹고 이게 최고 맛있어요. 근데 막 그 절에 갔더니, 절에 된장을 많이 하잖아요. 된장에다가 쌀밥 그러면 너무너무 그래서 등록금도 대주고 학비도 대고 교통비도 다 대주고 다니다.
있다 보니까 한 6개월 정도 지나고 난 다음에 저희 어머님이 집에 갔더니, 예술을 먹였대요 그래서 엄마 어쩐 일을 했대 니가 그렇게 하느님 살아계시다고 이야기하고 기도를 하는데 너그 삼촌도 안 도와주고 이 동네 누구도 안 도와줄 때 어떻게 그 스님이 너를 알아서 등록금 대주고 교통비 해주고 먹여주고 다 하겠노 이게 하나님이 없으면 될 일인가 하면서 예수를 믿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 어머니 예수를 믿었어요. 예수를 믿고 집사가 되고 저를 그렇게 때려 죽으려고 했던 우리 형은 내보다도 먼저 또 신학을 해서 목사가 되고 우리 큰누나도 전도사가 되고 작은 누나도 근사님으로 있고 집안이 다 예술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가 예수님을 믿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 생각하면 너무너무 감사해요. 제가 하나님의 어떤 존재나 하나님이 함께하심에 대해서 내가 1%도 의심해 본 적 내가 하나님 뜻대로 다 못 사는 건 많이 있지마는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 내 기도를 안 들었을 거다 하나님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 이런 거는 1%도 없어요. 그런데 그 놀러 오신 하느님께 예배하라는데 권력자들이 와서 교회 문을 닫는다 예배를 못 드리게 한다. 나는 그때 생각했습니다. 아 내가 죽어야 되겠구나.
일제시대 지나갔고 6.25 시대 지나갔고 나 정말 그렇게 생각했거든. 너 목회 하나면 어때 우리 규회 하나 사라지면 어때 어설프게 교회 문 닫았고 6만 개 교회가 낄 소리 못하고 문 닫을 때 나는 내 하나가 투쟁하고 헌신하다가 우리 교회 하나 없어지고 그때는 무기한 폐쇄잖아요. 그래서 교회가 무기한 폐쇄를 했잖아요. 기한도 없이 우리 하나 교회 없어져도 된다. 수많은 교회 중에서 우리 하나 없어진다고 무슨 일 있겠냐 그러나 하나님께 예배 드려야 된다고 하는 것 우리 하나님께 예배 드리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우리 교회 하나는 보여줘야지 우리 다 같이 죽자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헌신하고 복음 변하는 건 귀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코로나 시대에 세 가지를 해결했습니다. 압박이 오면 더욱더 모여서 예배해야 된다. 다 일정적으로 전도해야 된다. 그리고 자기가 가진 게 있으면 하느님 곁들여서 하느님 복음 위에 서야 된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더라도 지금 그래서는 안 된다. 강력하게 지금이야말로 기회다 더 예배드리고 더 정도하고, 헌신하고 조금이라도 먹고 사는 것 말고 남은 물질 있으면 하나를 곁들이자 그때부터요 교회가요 겉으로는 엄청나게 압박을 받아 진짜 압박을 받았거든요.
42주를 교회 문을 닫고 연기 연기 연기를 그러니까 2주씩을 한 번 기간을 잡아서 2주 연기 2주 연기 이걸 47번 했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계속 예배를 들으니까 우리를 고발을 20번 해서 지금 재판이 20개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그런데 시골에 돈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소송비부터 시작해서 이거 헌법소원도 하고 헌법소원 두 개 모두 좋다. 우리 재산 다 팔아서 교회 하나 없어져도 좋다. 이러면서 시작을 했거든요. 그런데 교인들이요. 은혜를 받고 그리고 헌신하는 사람들을 보내주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 믿고 사는 것보다도 이거는 제가 설교를 하는 게 아니고요. 예수 믿고 사는 우리가 이 세상은 짧잖아요. 제가 지난번에 왔을 때 김광식 목사님을 만났어요. 근데 오늘 와서 뵈니까 휠체어를 타고 차에도 잘 못 오르시는 걸 봤어요. 다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아프지만은 우리 인생에 가는 길이 그 길이잖아요. 그리고 젊었을 때 제일 서는 데서 헌신하고 그 영광이잖아요. 그게 영광입니다.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하느님 나라 가면은 나는 그런 오늘 아침 밥을 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한국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엄청나게 앞으로 교회가 생존하기 어려울 때가 오는데 이때야말로 적극적으로 해야 된다.
적극적으로 저도 교회처럼 그래서 실제로요 집이 두 채 있는 사람은 한 채를 팔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보험에서 내놔야죠 어떻게 해서든지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 믿게 하고 복음자리라는 교회가 되어서 어려울 때일수록 초대교회처럼 왕성한 기적이 일어나야 세상의 물결을 바꿀 거다 저희 교회도요 이 코로나 때문에 예배도 못하고 어려운데 전도가 어떻게 아파트는 전도를 다녀서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190명 200명이 매주 와서 했더니, 천문대는 저게 미쳤나 나중에 그랬잖아요. 어떤 분이 그 금의 헌금을 하시다 천명에게 복음을 전할 물질을 하늘에게 드렸어요.
이 코로나 시대도요 그 물질을 들여가지고 온 교인들이 나가서 전도하니까요? 지금 우리들이 실시간 늘 방송 나오잖아요. 유튜브 보면은 한 주에 30명 40명이 등록을 하는데요. 이게요 이 다른 교회 문 닫았는데 가능합니까? 그런 헌신된 사람들이 목사님 이 물질을 가지고 쓰러져 간 한국 교회를 너무 멋지더라고. 내가 그때 생각이 들더라고. 며칠 주최 있으면 한테 팔아가지고, 이런 일을 해야지 저는 어느 교회 가든지 헌금에 대한 설계 1도 안 하거든요. 지난번에 왔을 때도 헌금 하나도 안 나왔을 겁니다. 왜 난 안 하니까 근데 이 팬데믹을 맞이하면서 그 생각이 들더라고.
가장 어려울 때인데 이때 진짜 6.25도 지나가고 일제시대 지나고 이때 헌신할 기회인데 이런 사람들이 몇 사람이 생겼어요. 그리고 코로나 걸린 사람들요 우리 교회 거의 다 걸렸거든요. 우리 교회는 거의 다 걸렸어요. 그런데 교육자 100% 다 걸리고 직원들 100% 다 걸리면 내 혼자만 안 걸렸어요. 내 원자가 그래서 야 목사님은 슈퍼 항체 모르지 지나간지 뭐 앞으로 걸릴지 모르지마는 그런데 코로나 걸린 사람 한 사람 걸리면은 한국이 어려웠잖아요. 그런데 고기를 끝나고 나면 이거 막 고기를 사들이고 그 다음에 20만 원씩을 다 축하합니다. 코로나 시대에 코로나도 안 걸리고 말이야. 이런 독종이 어디 있습니까? 코로나 시대에 코로나 예배들이나 걸린 거 당신 축하합니다. 교인들 다 걸렸거든요. 저 선물 다 주고요.
그다음에 어려울 때요 장례 치르는데 어떤 사람들은 장례만 있고 사람이 없는 거예요. 장례 비천액을 다 대줬어요. 전부 다 한 집마다 500만 원 700만 그러니까 코로나가 끝나가는 시점에 그냥 하느님께서 교회를요 얼마나 기쁘다고 하는 것을 굉장히 다 느꼈는가 하느님과 기적을 베푸시는 거예요. 저는 이런 말을 하고는 안 했지만, 여러분 중에도 그런 게 있습니다. 목사님 차별 금지법을 위해서도 목숨을 걸고 싸우잖아요. 어떤 분이 와서 그런 발언했다고 총으로 쏴버리면 어떻게 할 겁니까? 진짜 위기입니다. 저도요 제가 막 인터뷰하고 이랬더니요.
뒷조사 다 하고 인터뷰 다 하고 온갖 난리를 치는데 이때 우리가 더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이 한인 지역 같으면 한인 지역을 그냥 삭색해버려야지 진짜 우리가 천국을 알고 지옥을 바로 안다면은 세상에서 얼마나 더 먹을까? 얼마나 더 가질까 이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 하루 사는 게 감사하고 감사하고 주님께 예배드리는 게 감사하고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게 감사하고 헌신할 수 있는 게 감사하잖아요. 감사한거죠. 은혜 한인교회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귀족으로 이끌어왔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헌신하신 목사님들과 숭도들이 있는 거죠.
헌신한 사람에게는 천국의 상이 있고 그 상은 그냥 상이 아니고 실제 하는 상이고 그걸 안다면은 그걸 안다면은 아 들어서라도 어떻게 그 일을 하지 않겠습니까? 복음 위에서 헌신하고 복음 전하고 선교하는데 힘을 다하고 하나님 이름을 만방에 드러내는 저와 여러분들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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