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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예정 소프라노 다니엘기도회 본문

다니엘기도회/기업대표 실업인 다니엘기도회 간증

고예정 소프라노 다니엘기도회

generalQS 2024. 2. 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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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네 반갑습니다. 정말 너무 놀랐어요. 이제 저녁 식사를 나누면서 이 기도회가 17년 이 됐다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그 사모함이 너무나 커가지고 그러니까 본당에 들어 오기가 거의 천국에 들어 갈 정도의 그 사후 마음 가지고 엄청난 쟁탈도 있고 그리고 여러 다른 건물에도 꽉 차고 복도까지 이렇게 꽉 차고 이런 얘기를 들었다가 여기서 이제 찬양을 하는데요. 제가 너무 은혜를 받아가지고 그냥 집에 가도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들려오는 그런 소식들이 안 좋은 소식들이 많잖아요.
청년들도 그렇고 젊은이도 그렇고 교회 우리 대한민국에 있는 5만 교회가 교회에 대한 안 좋은 소식 너무 많이 들리고 참 우리 이 나라에 비전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게 기우였던 것 같아요.
제가 여기서 여러분들이 찬양 사모함과 이 기도회를
그 사모한 마음과 그 찬양의 열기 속에서 제가 그 하나님의 임재함을 제가 느끼면 서 우리나라는 아직도 비전이 있구나 너무나도 제가 행복했습니다.
정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올라와서 지금 해야 되는 순서들 있잖아요.
다 까먹어버렸어요. 어떡합니까? 저는 부산에서 태어나서요.
부산에서 자랐어요. 그리고 여전히 부산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촌년이죠. 서울분에서 일어나면 그래서 제가 말이 사투리가 많 이 나와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가뜩이나 제가 말주면이 별로 없는데 음 제가 이제 귀국을 하 고 한국에서 아주 평화롭게 하나님이 주신 축복 아래서 이제 아주 평안한 삶을 이 제 살고 있을 때 무렵이었어요.
이제 성악가니까 레슨 하는 제자들도 많을 거잖아요.
그래서 이제 하루 스케줄이 엄청 났던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수입도 되게 좋았겠 죠.
그래서 제가 이제 스케줄을 딱 준비를 하는데 나 혼자밖에 없었거든요. 레슨실에 근데 음성이 들리는 음성이 너 지금 뭘 하냐는 음성이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뒤를 쳐다봤어요. 아무도 없잖아요.

내가 얘 그러니까 내가 너에게 좋은 것을 많이 줬는데 너 왜 그러고 있냐는 거예요. 근데 제가 그때 딱 생각을 할 때 굉장히 충격을 먹었어요.
왜냐하면 나는 그게 이제 하나님 음성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왜냐하면 내가 지금 이 하나님이 주신 이 삶에 이 축복을 내가 누리면서 내가 매 순간 감사했거든요.
너무너무 감사하고 아침을 나갈 때 감사하고 들어올 때 감사하고 정말 그랬는데 하 나님은 그 삶을 원치 않았던 것 하나님 보시기에 내가 전혀 기뻐하는 삶이 아니었 다라는 게 난 너무 충격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하나님이 부르시면 저는 그러면은 no하지 않고
하겠습니다. 무조건 하겠습니다. 그때 얘기를 했었거든요.
왜냐하면 그때 연주가 막 들어와도요. 제가 레슨이 많다 보니까 연주를 하지 않았 었어요.
오페라를 하게 되면 매일 이제 가서 이제 연습을 해야 되니까 오페라 같은 것도 제 가 한 2년 정도 이제 연주를 그렇게 막 연주 활동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었어요. 그리고 이제 제가 지휘를 교회 성가대에서 지휘를 하는데 이제 우리 목사님께서 굉 장히 즉흥적이셔가지고 이제 들어가기 전에 우리 기도를 하잖아요.
목사님께서 고 선생님 오늘 찬양 하나 하지 막 그러셔요.
내가 목사님이 미리 준비를 하고 찬양 나는 준비를 해야지 찬양을 준비 된 찬양을 해야 된다고 하는 게 나는 그게 겸손인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내가 목이 쉬어도 내가 잠을 자지 않아도 내 몸 상태가 악기 상태가 좋지 않아도 하나님이 하라고 하면 한다.
그리고 이제 그래서 내가 이제 사실은 제가 말주변이 좋지 못하고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게 뭘 시켰냐 면 제가 오케이 하나님 하시겠습니다.
나는 이제 그게 찬양이고 노래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하나님이 간증을 시키시더라 고요.
근데 내가 처음에 간증이 왔을 때 정말 부담스럽고 하기가 싫은데 하나님께서 하라 고 하시니까 제가 노 하지 않고 머뭇거리다 예스 노 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청년들 위주로 학생 위주로 이렇게 간증을 했는데 이제 큰 교회에

서 저를 이제 초청을 한 거예요.
그런데 제가 뭐뭐 그리다 예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고 나서 제가 뭐라고 그랬 냐면요.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그랬어요. 너무 부담스러운 거예요.
하나님이 왜 이러십니까? 정말 저는 너무 부족한데 자꾸 하나님께서 그런 자리에 이렇게 내
물론 저는 친구를 만나고 제자를 만나면 레슨 시간에도 하나님을 증거하고 간증하 기도 하고 막 그렇게 하거든요.
근데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는 거를 굉장히 부담스러워했어요.
근데 하나님께서 내가 왜 이렇습니까? 이렇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 씀이 너 삶에 너 인생에 나를 증가할 것이 없느냐 그러시더라고요.
많죠. 그러면서 그러고 나서 침묵하시는 거예요.
그때 제가 또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 항상 제 뒤통수를 강하게 때리세요.
제가 느낀 거예요. 하나님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 나를 본 게 아니구나 나는 나를 봤거든요.
내 삶을 봤거든요. 정말 목사님처럼 거룩하게 아침부터 저녁 말씀에 쌓이고 기도 이게 아니었거든요.
근데 하나님께서는 나는 나를 보고 나는 부족합니다 했는데 하나님은 나를 본 게 아닌 거예요.
정말 형편없지만 너가 형편없지만 너 삶에 너 형편없는 너 삶에 하나님께서 함께하 신거
그 증거를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찬양을 하든 간증을 하 든 항상 낮은 마음으로 제가 교만한 거를 굉장히 두려워하는데 그 순간에 제가 얼 마나 교만한지 제가 느낀 거예요.
내가 교만했구나 나는 나를 봤구나 정말 우리의 행위로 거룩할 수는 없잖아요. 여러분 그죠? 24시간 기도해도 우리가 행위로는 거룩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그 이름 때문에 우리가 칭함을 얻고 그 리고 거룩하다는 걸 봤는데 우리는 착각 속에 살고 있어요.
내가 새벽 기도 좀 열심히 하고 기도 열심히 하면 그래서 제가 모든 하나님의 부르 심에 예스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오늘 이 자리도 굉장히 부담스러운 자리입니다.

이 기도회가 어떤 기도입니까? 그렇죠 굉장히 기도한데 하나님 그 말씀에 순종하 고 정말 낮은 마음으로 지금 머릿속이 하얗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오늘 간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아까 부산에서 태어나서 계속 부산에 있었다고 그랬죠.
제가 살았던 곳이요. 어릴 때 부산에서 좀 못 살았던 동네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동네에서 저희 집이 조금 잘 살았었어요.
그러니까 그 당시 때는 이제 수세식이라는 화장실을 찾아보기가 힘들었어요.
그 당시 때 이게 양쪽이 양동이처럼 들고 다니면서 똥푸소 하면서 이렇게 다니는 똥 이렇게 이렇게 쥐고 다니는 아저씨들이 있었거든요.
조금 발전해서 나중에 똥차들이 막 많이 다녔었죠.
그런 상태에서 거의 재래식 화장실이 많아졌어요.
그러니까 그런 얘기 있잖아요. 빨간 종이 줄까 바란 종이 줄까 이런 얘기가 그 당시 때 막 나왔었거든요.
왜 그래 무서웠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환경에서 저희 집에는 뭐가 있었냐면요. 양변기가 있었어요. 그때 조금 살았죠. 그리고 학교마다 이제 음악 시간이 되면은 풍금 있잖아요.
다 떨어진 풍금 그거 하나 가지고 애들이 막 들고 가서 음악 시간 저 교실 가고 2교 실 가고 막 이럴 때였었거든요.
근데 우리 집에 뭐가 있었냐면요. 피아노가 있었었어요.
그리고 조금 살았죠. 그리고 그 당시 때 애들이 밥을 못 먹는 애들이 많았었어요. 그때 잡곡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고 잡곡 보리밥 막 섞어 먹고 막 이럴 때 도시락 못 싸오는 애들이 되게 많았었거든요.
반찬 조금 잘 살면은 계란 후라이 그리고 조금 더 잘 사면 소시지 이런 거 조금 넣 어주고 그랬는데 내 친구들이 예전에 이 반찬 뭐야 이러면 그 돈가스 막 그래서 조 금 잘 살았던 것 같아요.
저희 집이 지금들도 동기를 만나면 초등학교 동기를 만나면 예정가 너 있는 곳에는 양지 해가 돋고 자기들은 응달이 있었대요.
그 정도로 그리고 우리 학교 합창 연습을 우리 집 마루에서 했었어요.
우리 집 마루에서 했었었고 그때 막 개울에서 목욕할 때 있잖아요.
개울에서 목욕하고 이제 바깥에서 막 이제 물 틀어가지고 애들 막 목욕할 때

우리집에 뭐가 있었냐면
욕실에 그죠? 바스가 욕실이 있었었어요. 탕이 있죠.
탕목욕을 할 수 있는 그런 게 있었었고 또 뭐가 있었지 그리고 그때 정지가 부엌이 아니고 정지라고 그랬었어요.
정지 그래가지고 이제 신발 신고 나와가지고 음식을 해가지고 장에 들고 와가지고 왜 높은 데 계단 올라가지고 방에서 먹는데 저희 집은 파란색 빨간색 타일이 깔려 있는 싱크대가 있었었어요.
그리고 막 거의 1층집인데 2층 집에 안에 마루 있잖아요.
3층에는 기도실이 딱 있었었고 제가 이 모태 신앙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이제 저는 제 세상이요. 이 세상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줄 알았어 요.
그래서 내가 죽으면 이 세상은 그냥 사라지는 줄 알았어요.
정말로 그리 믿었었어요. 초등학교 때 그래서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못됐던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막 지나가는 할머니들 뭣도 모르고 이제 쌀로 쌀 막 퍼다주고 막 그랬던 것 같아요. 그렇게 조금 이렇게 잘 사는 환경 속에서 이제 어린이 찬양대를 이제 했었었고요. 이제 제가
처음 엄마의 노래를 들은 게 찬송가였었어요. 엄마가 계속 독창을 하는 거를 내가 보고 너무 이렇게 아름답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관심을 그때부터 가지기 시작했고 어린이 찬양 때부터 내가 찬양을 계 속하게 되니까 하나님께서 그 찬양에 대한 달란트를 주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사모함도 같이 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굉장히 그런 환경에서 잘 살아오다가 하나님께서 이제 터치하기 시작하시더라고요.
근데 제가 사춘기가 올 무렵에 내 피아노가 팔려나가는 걸 봤어요.
팔려나가고 집에 빨간 딱지 같은 거 있잖아요. 아시는 분 아실 거예요.
빨간 딱지들 이렇게 막 붙더라고요. 좀 돈 나가는 가구들 이런 데 있잖아요. 그래서 어린 나이에 그게 뭔지 몰랐지만 일단 내가 누리는 부모님은 잘 모르겠어. 내가 누리는 그 소유가 이제 하나둘씩 이렇게 없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런 환경이 바뀌니깐 학교 선생님들도

차별 같은 거 있잖아요. 이렇게 사회 좀 그런 것도 있었었고 참 이렇게 상처를 좀 많이 받고 사춘기를 이제 지났던 것 같아요.
근데 제 장점이 뭐냐 하면 굉장히 긍정적이었어요.
어릴 때 우리 방 오빠가 있었고 제 여동생이 있었거든요.
방이 다 따로 있을 정도로 잘 살았었는데 나중에 어느 정도까지 힘들어졌냐면 방 한 칸에 이제 온 가족이 이제 사는 거예요.
근데 제가 그때 12장을 보면 중학생이었나 12장을 보면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작은 방에 온 가족이 살게 허락하신 것은 이렇게 가족들의 가족 애를 좀 더 느끼라 고 이런 환경을 허락하셨나 보다 항상 긍정적이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지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춘기에서 오는 그런 반항심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이제 내 안의 자아가 다시 이제 만들어지면서 그런 데 이제 내가 하나님께 막 부르짖고 하나님을 더 찾고 막 그러지 못했었어요.
대개 정말
몇 대 믿음이 있는 그런 가정을 제외하고 모태 신앙이 모태 신앙이잖아요.
좀 은근 좀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고 막 이런 신앙이었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뿌리는 있습니다. 모태 신앙 무시하지 마세요.
뿌리는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희 어머니가 찬양을 너무 좋아해서 우리 오빠는 찬양을 하는 성악가로 키워야겠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오빠는 성악을 하게 했었어요.
근데 저는 이제 못하게 했던 거죠. 근데 내가 이 사모함을 하나님이 계속 주시더라 고요.
그래서 제가 사실은 음악을 전공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전혀 못 됐었어요.
그런데 이제 계속 그 사모함이 가지니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셔서 이제 부산대 학교 성악학과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3개월 레슨 받고 들어갔었어요.
3개월 레슨 해봐야 한 열몇 번 레슨을 받았죠. 근데 이제 이태리 가고 하나 독일 가 고 하나 두 가지만 이제 열심히 해가지고 입학을 하긴 했는데 예고 나온 이런 친구 들은 옆방에서 책 한 권을 떼는 거예요.
근데 저는 정말 부끄러워가지고 연습도 못하고 입도 뻥긋 못하고 막 그랬었거든요.

근데 나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제 대학교를 이제 졸업을 하게 됐습니다.
정말 예전에 그 단칸방에 살 때 이제 그렇게 부유하게 살다가 어느 정도까지 어렵 게 살았냐면 밀가루로 한 달을 살 정도로 그래 밀가루를 하다.
근데 이게요. 어릴 때부터 못 자랐던 친구들은 별로 힘들지가 않아요.
여러분 근데 어릴 때 막 이렇게 누리다가 그러니까 정말 몇 배로 더 힘든 삶을 참 하나님이 나한테 고달픈 삶을 이렇게 허락하셨어요.
일찍이 그런데 이제 제가 놀이를 계속하고 싶어서 유학을 이제 가야 되는데
대학교도 이제 정말 이제 저희 오빠도 성악을 하죠.
저도 성악을 하죠. 제 동생도 이제 대학을 이제 공부를 해야 되는 게 정말 부모 힘 든 가운데 정말 헌신적으로 저희들이 이제 공부를 허락하고 저희들도 열심히 이제 돈도 벌고 했지만 학교도 보고 했지만 유학할 형편이 전혀 되지 않았었어요. 그런데 이제 그냥 무작정 나는 졸업하면 유학 간다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희 어머니도 무슨 믿음이든지 그래 유학을 가라 내가 힘껏 이렇게 해주겠 다 이렇게 해서 유학길에 오르게 됐습니다.
그게 한 996년도 4월 23일 날 제가 이태리 유학을 갔는데요.
유학을 가면 보통 한 12월이나 1월달에 가요. 왜냐하면 4월 30일에 원서를 넣고 6 월달에 입시 시험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일찍 가는데 저는 상황이 그렇게 되지 않아 서 조금 늦게 갔죠.
정말 임박해서 23일날 도착해서 원서를 이제 넣으려고 그러니까
거기에 미리 와 계신 선배님들이 한 1년 정도 와 계신 선배님들이 너 이태리 말도 하지 못하면서 지금 입학해서 어떻게 하겠느냐 1년을 내가 어학 공부를 하고 시험 을 치라는 거예요.
그 말도 맞잖아요. 그래서 내가 1년을 이제 두고 해야겠다 했는데 한 2~30일이 원 서 마감인데 29일 되는 날 너무 조마조마한 거예요.
내 형편도 좋지 않은데 시간이 아깝고 일단 내가 되든 안 되든 시험을 일단 치고 봐 야겠다 그래 원서를 마지막에 이제 원서를 넣었어요.
그래가지고 이제 6월달에 시험이니까 한 달 정도의 기간이 있잖아요.
거기도 보면은 제가 처음 간 곳이 이제 물론 학교는 로마 국립음악원을 졸업했지만 빼로지라는 것 알죠.

안정환 축구 빼로지아라는 곳에 외국인 어학 대학이 있어요.
거기서 이제 어학을 공부를 하러 이제 저희 오빠랑 저랑 저희 이제 오빠 이제 와이 프
올케 언니랑 이렇게 3명이서 같이 유학을 갔습니다.
그러니까 저희 어머니 아버지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3명을 또 공부시켜야 되고 우 리 동생은 또 같은 대학교의 성악과를 또 다니고 우리 셋 다 성악가예요.
넷 다 성악가구나 그랬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참 힘든 가운데서 어머니 아버님 헌 신적으로 정말 그분의 삶은 떠나서 우리 굉장히 헌신적으로 이렇게 해주셨는데 물 론 저희들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원서를 넣고 있는데 페루지아에도 한인 교회가 있어요.
거의 다 이제 한국 사람이고 입시생들이죠. 입시생들이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제 먼저 온 친구들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중에 한 명이 이제 저를 위해서 이제 좀 많이 도와주는 친구가 있습니다.
저는 갓 이제 들어왔으니까 6개월 먼저 온 이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예정 씨 그 산타 세틀리에 시험을 치려면
레슨을 받는 친구들이 있대요. 1년 전부터 그 교수님한테 레슨을 받는 게 있으니까 한번 가서 예지도 한번 받아보세요.
그러더라고요. 너무 저도 이제 한번 테스트를 받고 싶잖아요.
내 목소리가 어떤지 그런데 이제 저도 좀 부탁을 할게요.
그러면은 그랬더니 나중에 들려오는 대답이 뭐냐 하면 TO가 다 차버려서 이제 받아 줄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말을 듣고 TO가 다 차서 못 받아 수호 소리 한 번 들어달라는데 못 받아준다라는 거는 내 생각에 그러면 입학할 친구들이 다 정해져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굉장히 어린 마음에 속이 상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무렵에 또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그중에 또 무슨 소리를 듣냐면 제 친구가 동기가 1년 전에 먼저 유학 간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어떤 콩쿨에 나와가지고 3등을 했다는 거예요.
그러면 엄청난 거거든요. 여러분 유학 가서 1년 만에 3등을 했다는 건 엄청난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부럽기도 하고 저는 그냥 그냥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 같아요.
내 환경은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갑자기 그 순간에 내 환경이 보이는 거예요.
돈도 없죠. 레슨 받을 만한 돈을 붙여줄 수가 없어졌어요.
생활비 빠듯하게 그러니까 레슨을 받을 수 없고 제가 이때까지 이태리에서 레슨 받 은 거는 돈 주고 레슨 받은 건 열 손가락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말 좌절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그날 저녁에 하나님께 하나님 하나님을 바라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런 열정을 주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내가 지금 이 환경이 정말 어둡고 좌절한 이 순간이지만 하나님이 나에게 길을 열 어주셔서 합격하게 해주세요.
나에게 길을 열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기도를 해야 되는데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어요. 제가 하나님께 이랬어요. 하나님 친구는 벌써 와가지고요.
벌써 콩쿠르 3등을 했답니다. 솔직히 너무 부럽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정말 내가 돈이 없지만 한 번 가가지고 교수한테 내 이제 상태가 어 땠는지 한 번 점검해보려는데 TO 다 차서 하나님 안 받아준답니다.
그러면 저는 학교도 입학 못하고 돈도 없으니까 레슨을 못하니까 제가 지금 할 게 없는 거예요.
입학을 못하면 갑자기 앞이 캄캄한 거예요. 옆도 안 보이고 앞도 안 보이고 내가 해 야 될 게 하나도 없으면서 캄캄해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냥 하나님께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눈물이 한 방울 이렇게 뚝 떨어지더라고요.
그리고 그냥 잤어요. 그냥 잊어버렸어요. 그 일을 잊어버렸는데 학교 그 친구가 6개 월 먼저 온 친구가 어느 날 나한테 온 거예요.
예정 씨 산다지 칠리아 예정시 합격한 거 아세요?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벌써 발표가 났어요. 그러니까 발표가 난 게 아니고 그 받았던 친구 있잖아요.
레슨 받았던 친구 소개해 주신 분이 이제 먼저 발표 나기 전에 알아볼 수 있잖아요.

그걸 알아봐서 어떻게 됐냐고 그랬더니 그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랑 똑같은 노 래 부른 한국 여자애가 있는데 걔가 노래를 너무 잘해서 미안하지만 니가 떨어지고 걔가 합격을 했다고 이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그래서 나는 얼떨떨해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냥 그냥 감사했어요.
그리고 이제 흘러갔는데 이제 합격을 해놓고 11월달에 이제 입학을 해야 되잖아요. 11월달에 입학을 해야 되는데 기간이 좀 있었었어요.
근데 여름 무렵에 8월달에 로마에 계신 성악가 한 분이 이제 휴가차 로마가 워낙 더우니까요.
페르지아에 이제 오신 거예요. 그래서 이제 오셨는데 오신 김에 이제 코스라고 그 러죠.
애들 이제 한 4~5일 동안 집중해서 레슨 해 주는 걸 한다는 거예요.
우리 동네에서 아주 저렴한 가격이에요.
내가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잖아요. 그래가지고 정말 돈 빡빡 끌어 모아가지고 제 가 그걸 신청해서 했었어요.
근데 이제 그 선생님께서 레슨을 하는 가운데 뭐라 하셨냐면 너 9월달에 무슨 무슨 콩쿨이 있대요.
근데 그 콩쿨에 나와 봐라 하면서 그러는 거예요. 그래 내가 말도 못하는데 무슨 콩 쿨 나갑니까?
그리고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신다고 내가 이제 그걸 했는데 주위에서 이제 먼 저 오신 분들 선생님이 나가보라는데 한번 나가보세요.
이래서 정말 말도 못하는데 내가 국제 미아가 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그 종이조각 그러니까 뭐죠?
차표 끊어주는 데 있잖아요. 기차표 끊어주는 데 주소를 주면서 여기를 어떻게 가 면 되냐고 그러니까 아저씨가 굉장히 친절하게 다 써주시더라고요.
어디에서 내려서 기차를 타고 어디에서 또 갈아타고 뭐 이렇게 해 주는데 근데 진 짜 그 종이쪼가리 이러면 전 국제미아가 되는 거예요.
말을 못하니까 그래서 그걸 가지고
이제 콩에 이제 겁도 없이 나갔어요. 지금 같았으면 못했을 텐데 지금 그들 일단은 갔어요.
갔는데 이제 그 콩쿠르 이탈리는요. 콩쿠르를 어떻게 하냐면요.

일주일 동안 콩쿨을 합니다. 1차를 이틀 동안 하고요.
2차를 또 이틀 동안 하고 상을 못하면 일주일치를 호텔비와 먹는 거를 다 돈을 내 야 돼요.
그러니까 돈이 없으면 콩클도 못 나가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제가 콩쿠르를 그렇 게 많이 나가지는 못했지만 본선까지만 올라가면은 장학금을 주는 콩쿨 위주로 갔 었어요.
그럼 장학금을 받으면 상을 못 타도 장학금을 받으면 어느 정도 세이브는 되니까 그런 콩쿨만 찾아서 나갔었는데 아무튼 그 첫 콩쿨은 그 교수님이 나가보라고 해서 나갔었어요.
근데 제가 그 콩쿠르에서 서바이벌이죠. 1차 이틀 지나고 나면 반이 이제 없어져요. 그 호텔이 바가바 그리고 또 이틀 지나면 또 없어지고 한 본서는 한 7명에서 10명 정도 이렇게 올라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콩쿠르에서 1등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요. 제가 그때 너무 감사해서 그냥 그 상금이 있잖아요.
상금이 있으면 제가 생활을 할 수가 있는데 엄마가 이제 송금을 안 해주셔도 되는 데 내가 너무 감사해가지고 제가 긍정적이고 좀 비만 이런 거 사가지고 그래가지고 하나님 너무 감사합니다.
내 첫 열매인데 이에 대해서 내가 이거를 하나님께 헌금을 다 하겠습니다.
정말 기쁜 마음 그래서 엄마한테 이제 양해를 구해야 되잖아요.
엄마는 어떻게든 중 그거를 생활비 하면 엄마 좀 편할 텐데 엄마 이걸 내가 이렇게 했는데 하나님께 내가 다 헌금을 하고 싶다.
첫 열매니까 그냥 엄마가 쾌히 그래 그렇게 해라 하면서 엄마도 기뻐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제 헌금을 했습니다. 아주 기쁜 마음으로 정말 꿈만 같아요.
1등을 했다라는 게 근데 하나님께서요. 그냥 안 받으시고 한 4년 후에 2년마다 한 번씩 늘리는 엘리코카르소라는 콩쿨이 있어요.
그 콩쿠르에서 제가 1등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동양인 최초로 제가 1등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 상금이 그때 내가 받은 상금보다 10배 이상의 상금을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있으시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때는 몰랐어요. 세월이 지나고 나니까 제가 알게 된 거예요.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요. 제가 우리 친구가 나와서 그 3등 했던 그 콩쿠르 있잖아 요.
알고 보니까 제가 1등 했던 처음에 1등 했던 그 콩쿨이 내 친구가 3등 했던 콩쿨 똑 같은 콩쿨이였더라고요.
하나님께서 내가 너무 속상해하시니까 하나님도 마음 아파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3등 줘도 되는데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마음이 아프셨던 것 같아요.
우리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눈물 흘릴 때 해달라고 떼쓰지 않 아도 내 마음에 하나님께서 더 아파하시는 걸 저는 종종 느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저를 이렇게 보상을 해주시더라고요.
제가 지금 오늘 보니까 젊은 청년들이 되게 많아요.
제가 우리 교회도 그렇고 교회마다 청년들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왜냐하면은 지금 이 청년들이 이렇게 뜨겁게 찬양하고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안다는 건요.
하나님이 이들을 통해서 하실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저는요.
그 나이 때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지금처럼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 나이에 어린 중고등부 대학부에 정말 하나님에 대한 그 열정을 가지고 하는 청년들을 보면 은 너무 사랑스럽고요.
너무 정말 부러워요. 그래서 저는 이제 정말 하나님이 끄집어 당겨서 끄집어 당겨 서 이 자리에 오게 하셨었어요.
내가 막 차고 내가 막 어떻게 하러 다니고 이런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끌 고 끌고 이 자리까지 왔었거든.
그래서 교회에 제가 그 당시 때 교회를 이 자리에서 잘 나가지 않았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교회 가니까 너무 못된 사람들 너무 많은 거예요.
보면은
왜 넓은 이태리의 넓은 로마의 작은 한인 사회잖아요.
그러니까 서로 똑같은 거의 전공이 같아요. 그러니까 서로 막 이렇게 위로해주기보 다는 이제 서로 막 이렇게 이간질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고 그런 거에 이제 너무 내 의에 차 있었던 거죠.
내 이제 어린 생각에 저런 사람이 예배 안 간다. 내 믿음 지키기 위해서 난 안 간다. 집에서 예배드리지 막 이랬었었거든요. 아주 교만했었습니다.

저는 그들 스스로 교만하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았었어요.
근데 알고 보니까 그게 교만했던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제 집에서 성경을 보고 이 제 찬양도 하고 이제 기도도 하고 이랬었는데 어느 날 제가 이제 기도 제목이 있어 서 기도를 딱 했는데요.
하나님께서 갑자기 흑백 필름으로 내 어릴 때부터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씩 이렇게 딱 보여주시는 거예요.
내 혼자서 너무 힘들어서 막 눈물 흘리고 울 때
예수님께서 그 옆에 계셨던 거예요. 그런 모습들을 이렇게 보여주는데 내가 하나님 그때도 하나님께서 같이 같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게 끝나기 무섭게 또 다른 화면을 보여주시면서 계속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정말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거의 1시간 이상 제가 그러면서 내가 왜 이 기도하려고 했는 게 아닌 게 왜 자꾸 내가 이게 나오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제가 계속 그런 적이 있었을 거 예요.
그러고 나서 제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이제 그때 이제 만났었습니다.
귀국하기 전에 그런데 이제 사실은 졸업을 하고 제가 거기서 콩쿨도 입상을 하고 독일이나 유럽을 다니면서 좀 더 활동 소통을 했었어야 되는데 저희 어머니가 이제 한 번도 힘들다고 하신 적이 없는데 이제 좀 이렇게
너라도 좀 들어왔으면 좋겠다 이렇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모든 걸 포기하고 이제 한국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태리에 있을 때 조금 이제 한국 유학생이 저한테 레슨을 좀 왔었었 거든요.
그래서 이제 십일조를 할 수가 있었어요. 피아노 의자 위에 항상 십일조 봉투가 있었었 거든요.
작은 돈이지만 내가 처음으로 벌어가지고 내가 그 십일조를 하는 그 기쁨이 있잖아 요.
너무 이제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그래갖고 십일조 봉투에 입을 맞추면서요.
내가 정말 이제 그렇게 드리고 그랬었거든요. 근데 한국에 이제 귀국을 하고 나서 처음에 이제 보니까 이제 집에 내가 상상은 했지만 빛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처음에 십일조가 제가 기억나는 데 8만 원을 했었었거든요.

그것도 귀국하고 큰 거예요. 여러분 이제 다른 선배님들이 너 벽을 보고 한 2년을 있으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거기서 그렇게 이제 돈을 벌어야 되는 상황이고 막 이랬었는데
하나님께서 제가 이제 돈을 어쨌든 간에 이제 십일조 8만 원을 했잖아요.
근데 그 8만 원을 너무 감사하게 저는 했어요. 근데 그게 어느 날 이제 100만 원이 되고 이렇게 10만 원이 되고 30만 원이 되고 300만 원 500원의 수입이 조금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더라고요.
근데 제가 콩쿨을 제가 이제 몇 군데 몇 군데 얼마 안 나간 콩쿠르이지만 거의 1등 을 많이 했었었거든요.
그게 여러분 대단한 겁니다. 왜냐하면요. 국제 콩쿨리잖아요.
그러면 본선에 7명에서 10명 정도 올라오는 그 본선에 올라오는 사람들은 다 잘해 요.
그리고 이제 이런 얘기가 있어요. 저 콩쿠르 나가려면 조 교수한테 2년 3년은 배워 야 돼 그래야지 상을 하나 탈 수 있어 이런 얘기들 있잖아요.
그게 헛소문일 수도 있지만 그런 루머들이 굉장히 많았었어요.
그런 루머 앞에 내가 굉장히 위축할 수밖에 없었겠죠.
왜냐하면 너는 저는 레슨 받을 돈이 없었으니깐요.
그런데 그 콘크리에 나가면은 그 교수들이 자기 제자 수제자들 한 명씩 데리고 오 거든요.
거기서 이제 1등을 하는 거는 정말 쉽지가 않아요.
저는 선생을 끼지 않고 1등을 한다라는 거는 그 구색을 맞춰야 되잖아요.
1등 2등 3등을 주는데 유럽에 하나 이탈리아에 하나 줘야 되잖아요.
그리고 동양권 또 서양권 이렇게 중에 굉장히 치열하거든요.
근데 거기서 제가 1등을 한다는 거는 진짜 하나님 은혜가 아니면 기적과 같은 거예 요.
저에게는 그래서 제가 그 말을 제가 꼭 해야 되는데 그래서 제가 정말 이제 그때 하 나님께서 나에게 그때 그 순간순간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혜를 나중에 내가 돼 서 알게 됐지만 제가 한국 와서 그 빚을 이제 갚게 되는데 하나님이 빚을 갚을 수 있는 그런 환경을 열어주시더라고요.
전기가 여러분 몇 달 밀려야 끊기는 줄 아십니까? 아시네요.

3개월이 밀리면 전기가 끊겨요. 그래서 끊기기 전에 한 달 탁 내고 막 이랬었었거 든요.
그런데 이제 빛 독촉 전화가 이제 올 거잖아요. 그걸 내가 보면서 빚을 이제 내 들 어온 수입으로 빚을 다 갔는데 이제 너무 감사한 거예요.
저는 감사만 했던 것 같아요. 그니까 내가 300만 원을 벌어도 나를 위해서 옷 하나 사지 않아도 너무 감사한 거예요.
엄마가 독촉을 안 받으니까. 그리고 감사만 했고 정말 그 피아노 위에 십일조 봉투에 입을 맞추면서요.
제가 이제 그거를 감사를 하고 빚을 갚고 막 이러던 차에 하나님께서 첫 등급 십일조 의 10배 이상으로 하나님이 나중에 채워주시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그러던 와중에 저희 집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그 5층 집에 저희 아버지 가 이제 그 집이 좁으니까 이제 침대도 좀 이렇게 열악하고 이제 그런 상황에서 내 가 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집을 하나 사야겠다 그래 생각했어요. 근데 제 수준에 돈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돈 들어오기 나가 모습이 나가니까 그런데 제가 부모님 너무 고생하니까 집을 하나 사야겠다 그래서 제가 이제 우리 동생이랑 새벽 기도를 가면서 제가 하나님 제가 집을 사야겠습니다.
집을 좀 사주세요. 내가 그랬어요. 내가 이때까지 살면서 하나님께 뭐 이렇게 해달 라고 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뭐 좀 해주세요 이런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뭐 힘든 일이 있어도 친 구들한테 가가지고 힘든 일을 얘기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하나님께 얘기를 했죠 하나님 내 이렇습니다.
이렇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했고 왜냐하면 제가 그걸 알아요.
친구들이 힘들 때 저한테 와서 조언을 많이 받거든요.
그냥 조언을 해주지만 결국에는 자기가 해결해야 된다는 걸 많이 느꼈었어요. 결국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았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께 얘기를 했지 사람한테 얘기한 적이 없었 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집을 하나 사야겠습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 올해 안에 사주게 해주세요. 내가 그랬거든 그래서 내가 우리 동생 보고 오 면서 내가 지금 집을 사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 동생이 하는 얘기예요. 언니야 올해 안에 산다고 하면 지금 10월달인 데 두 달밖에 안 남았다 이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야 하나님 하시는데 두 달이 뭐고 내가 그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정말요? 하나님 하시는 두 달이 뭐고 나는 애 자신 있게 얘기를 했어요.
근데 내 수준에는 100만 원도 없었거든요. 그리고 이제 가는데 주일날 교회를 마치 고 예배 마치고 딱 가는데 저 앞에 분양 이렇게 미분양 이렇게 딱 서 있더라고요. 그저에 가자 가보자 하면서 엄마랑 갔는데 집이 너 너무너무너무 마음에 드는 거예 요.
그래가지고 내가 가서 이제 만나봤죠. 그 사람 그래서
돈을 돈이라는 돈을 다 끌어 모아도 탭도 없는 거예요.
집을 사기에는 근데 그 사람도 굉장히 지금 집이 안 나와서 굉장히 힘들어하는 상 황입니다.
내가 너무 반가운 거예요. 그래가지고 내 조건을 얘기했죠.
내 조건을 이렇게 하겠다. 그 사람들도 최대한 나한테 다 맞춰주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여러분 제가 언제 이사한 줄 아십니까?
맞출 수 있는 분은 제 CD 한 장 주십니다. 제가 12월 26일 날 이사를 했습니다. 이게 진짜 하나님 은혜 아닙니까? 1월달에 이사해도 감사한데 하나님이 그 딱 지 키시는 거예요.
크리스마스 그 뒤에 12월 26일에 집을 사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1월달에 이제 나머지 잔금을 천만 원을 이렇게 치러야 되는데 천만 원이 없 었잖아요.
그래서 일단 들어가 보자 하면서 들어갔어요. 들어갔는데 이제 1월달에 돈 걱정도 이상 걱정이 안 되더라고요.
1월달에 돈을 이제 이렇게 하는데 그때 수입이 천만 원이 딱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남한테 10원짜리 한 장 안 빌리고 집을 이제 구입하게 돼서 저 이제 내가 어 떻게 보면 제 꿈이었거든요.
어릴 때 그렇게 잘 살다가 우리 부모님이 이렇게 나한테 이렇게 헌신을 했는데 아 버지 이름으로 내가 집 한 채 사드려야겠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마음

을 보시고 그렇게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간증 이게 참 많은데요. 제가 또 찬양도 해야 되고 참 저는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제 지금 신앙의 그릇이요.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요. 정말 애기가 걸음걸이 이렇게 기어다니다가 걷다가 뛰 다가 나중에 부모님의 이제 효도도 하게 되고 이런 모습들이 있잖아요.
하나님께서 나를 한 걸음 한 걸음 정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 은혜라 이렇게 얘기 할 정도로 그 삶속에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좋은 것만 주시지 않더라고요. 정말 힘든 상황도 주시고요.
가장 힘든 게 뭐였냐면 내 상황이 정말 힘든데 하나님 더 한 번
힘 흔드시는데요. 그중에서 가장 힘든 게 뭐냐 하면 하나님 침묵하실 때가 힘들더 라고 내가 힘들어도요.
상황이 정말 힘들어도 하나님이 기쁨을 주실 때 있잖아요.
여러분도 느끼시죠? 그럴 때 있어요. 정말 그런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럴 때는 괜 찮은데 기도를 해도 그렇고 정말 힘들면 기도도 안 되더라고요.
정말 힘들면 기도도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한 번은 그랬었어요.
하나님 내 지금 이 상황이 너무 힘든데 나는 아시지 않습니까?
친구한테도 얘기하지 않고 누가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줍니까?
누가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줍니까? 근데 나가 기도가 안 돼요.
너무 힘드니까 제가 기도가 안 됩니다. 누가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줍니까?
너무 서글프고요. 너무 힘들더라고요. 조금 힘들면요.
교회 가가지고 부르짖고 막 하겠는데 사방이 다 막히고 하나님마저도 축복하실 때 제가 너무 힘들더라고 그때 정말 안 믿는 사람들은요.
왜 이렇게 자살도 하잖아요.
정말 그런 생각 내가 믿으니까 못하는 거지. 그런데 그런 상황까지 하나님께서 그 런데 침묵하시더라고요.
누가 날 위해서 기도해 줍니까? 그렇게 하니까 하나님께서 찬양을 하나 저에게 주 시더라고요.
그 찬양 지금 들려드리겠습니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 마음이 무너질때...

저는 이 찬양을 있잖아요. 교회 지위를 오래하고 잘 알았거든요.
근데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한 애가 예수님인 줄 몰랐었어요.
근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연단시키기 위해서 침묵하시지만은 내가 가슴을 찢고 너 무 힘들 때 하나님은 나보다 더 가슴을 찢고 나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종 보신다는 걸 알았었어요.
제가 이 얘기는 잠깐 할게요. 시간이 없지만 제가 너무 가슴을 찢고 아픈 적이 있었 었거든요.
그래서 근데 하나님께서 내가 저는 긍정적이라고 했잖아요.
어떤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았다고 생각 저는 제 신앙이 굉장히 좀 깊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추수 감사 전날 나에게 굉장히 그 상황도 어려운데 더 한 번 힘 든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인데 제가 지휘자에 딱 자리에 앉아서 제가 예전에 이태리에서 교회를 잘 안 나갔다고 그랬잖아요.
근데 하나님 만나고 나서 내가 하나님께 뭘 해드릴 수 있을까 고민한 적이 있었어 요.
돈을 드릴까? 하나님 돈이 많으시잖아요. 내가 드릴 게 없는 거예요.
왜냐면 하나님 다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근데 제가 딱 하나 생각나는 게 예배구나. 하나님 내가 드릴 수 있는 게 예배구나. 그래서 예배의 부름 처음 시작되잖아요. 아직도 감동받습니다. 눈물 속에 그 예배가 너무너무 이제 좋은 거예요.
그런데 추수 감사지 그 감사하는 그 자리에 있잖아요.
감사가 안 되는 거예요. 예배 딱 시작하는 내가 하나님 감사가 안 나옵니다.
내 신앙이 이거밖에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제가 감사가 안 나와요. 지휘도 찬양을 지휘하는데 저는 이렇게 가증스러운 걸 싫 어했어.
내가 지휘도 그만두려고 그랬었어요. 왜냐하면 이 마음 상태로 지휘를 할 수가 없 는 상황이었었거든요.
내가 너무 힘드니까 하나님 우리 동생이 미국에 있는데요.
하나님 왜 그랬을까 그러더라고요. 하나님 나를 죽이시려고 그러는데

하나님 나 대신 안으시는데 이렇게 하는 거는 밥도 못 먹고 물도 못 먹고요.
정말 죽을 상황이 된 거예요. 내가 사망의 늪에 빠져 있는데 아무도 나를 건져줄 사 람이 없게 느껴지더라고요.
기도도 안 되고요. 그러니까 너무 힘들고 내가 피가 마르고 뼈가 상하고 막 이러니 까 제가 예전에 순천의 교회 가서 간증할 수 있었는데 2년 전에 거기서 이제 저희 간증하고 식사 사주신 집사님이 계셨는데 그 집사님이 이제 그 하나님 음성을 대언 하시는 분인 것 같아요.
어느날 전화가 온 거예요. 연락을 안 했거든요. 2년 동안 하나님께서 고 선생님 위 해서 기도를 시키시는데 무슨 일 있으십니까?
대충 얘기를 하기 싫어서 그냥 대충 그냥 얘기했는데 하나님 지금 바로 기도하시라 하십니다.
기도를 해 주시는데 기도 가운데 하나님 음성을 들려주시는데 왜냐하면 그 사실은 하나님과 나만 아는데 그분이 이걸 통해서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님이 너 마음이 그렇게 아팠느냐 내 마음이 찢어졌노라
그러시면서 이제 나중에 하나님이 내가 너에게 평안을 주노라 이렇게 하시는데요. 정말 신기하게요. 제가 이제 간증을 다니고 까 목사님들이 아는 분이 많거든요. 그런 사건이 있었을 때 목사님이 저한테 위로를 해주는데 사실은 목사님 위로도요. 그때뿐이더라고요. 그런데 하나님이 주는 위로는 그거는요.
내가 너무 신기하게요. 정말 가만히 있어도 눈물 나고 생각하면 미치고 막 잠도 못 자고 막 그런 상황인데 그게 생각을 하려고 해도 생각이 싹 사라지는 거예요.
내 몸 안에서 아픔을 다 뺏어간 거예요. 하나님 너무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하나님이 주신 위로는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예수님께서 내가 힘들 때 침묵하실 때도 나를 위해서 정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까 이제는 어떤 어려움도 기쁘게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가 있게 된 거예요.
그런데 그러고 나서 제가 1년 후에요. 화장실을 이제 이제 욕실에서 나오면서 또 그 일이 생각나면서 가슴이 조금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님 오늘
그때 그 일이 있었던 일인데요. 제가 조금 슬픕니다.
잊고 있었지만 눈물이 조금 이렇게 나와가지고 제가 하나님 용서하세요.

이제 아 아파라고 했는데 생각나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뭐라 하셨냐면요.
니 마음 안다 아주 부드러운 음성 안다. 그런데 걔를 위해서 아파하지 말고 죽어가 는 영혼을 위해서 아파해라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그때 마음이 너무 아팠거든요.
하나님 하나님 이렇게 아팠습니까?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서 하나님 이렇게 아파하 십니까?
나 하나님 마음을 몰라 그 정도는 몰랐었어요. 나가서 전도는 하죠.
근데 하나님은 한 영혼을 위해서 정말 가슴을 찢고 내가 얼마큼 아픈 걸 내가 경험 을 해보니까 하나님 그 마음이 느껴지잖아요.
우리 하나님이 너무 불쌍하신 거예요. 그냥 이제
형식적으로 물론 이제 하지만 그 영혼을 위해서 주만을 위해서 탄식 가슴을 찢고 울면서 기도하고 하지는 않았거든요.
최선을 다해서 전도는 했지만 근데 하나님 마음은 그렇더라고요.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고 그걸 가르쳐 주실 때 1년이 되고 10년이 되 고 하나님 나중에 이제 그 뜻을 이제 가르쳐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시간이 많이 됐고 10분 후에 끝났는데 5분이 남았습니다.
제가 가는 곳곳마다 제가 찬양합니다. 여러분 그 삶 속에서도 항상 하나님 은혜가 있지 않습니까?
나의 나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그 찬양에 앞서 가을밤에 제가 찬양 말고 우리 한 국 가곡이요 아리아리랑 한 곡을 하고 하나님 은혜 연속해서 들려드리고 제 시간을 마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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