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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아 탤런트 미주다니엘기도회 본문

다니엘기도회/기업대표 실업인 다니엘기도회 간증

오윤아 탤런트 미주다니엘기도회

generalQS 2024. 3. 1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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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안녕하세요. 오윤아입니다. 너무 반갑습니다. 야 정말 와 제가 밑에서부터 계속 눈물이 마르지 않았어요. 너무 감격이 되고 감동이 되고 이 자리가 너무 뜨겁게 느껴져서 제가 진짜 몸살이 날 정도로 정말 너무 마음이 지금 뜨겁습니다. 오늘 제가 용기를 내서 잘 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 많이 도와주시고요. 네 오늘 다니엘 기도의 마지막 시간인데 여러분들의 뜨거운 마음에 더 불을 지필 수 있는 성령의 바람이 가득 차오르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일단 저는 작은 자를 사용하는 저희 작은 자를 사용하시는 주님이라는 제목으로 제가 인제 말씀을 준비해 봤는데요. 저도 1월 일부터 3일까지 진행하는 이유 저희 집회가 있어요.

저희 교회에 거기서 인제 말씀을 듣고 너무나 감동이 돼서 진짜 좀 한번 이런 말씀을 기회가 되면 좀 전하고 싶다. 했는데 그게 다니엘 기도회가 되었습니다. 말씀을 딱 듣는데 저희 아들이 생각이 났어요. 네 저희 아들이 편스타랑을 통해서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유튜브를 촬영을 하면은 저희 미니가 나와야지 레이스가 많이 나올 정도로 정말 저보다도 더 인기가 많은 친구가 되었어요. 저는 그것이 참 하나님의 감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저희에게 주시는 기도하라는 뜻의 의미가 아닌가 이런 기도에 인제 증거를 보여주신 거 같은데요. 저희 아들은 저에게 굉장히 짐이라고만 생각을 했었어요.

어렸을 때 굉장히 힘든 친구였기 때문에 제가 이 아이를 정말 잘 케어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케어할 수 있을까? 늘 자신이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굉장히 불안함이 굉장히 많이 있었고, 제 인생은 정말 미니와 떨어질 수가 없는 그런 인생을 저에게 제가 살고 있었다. 보니까 그 미니가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는 그런 모습들이 굉장히 저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거든요. 저희 미니를 통해서 많은 분들EDM을 보내주세요. 그중에 몇 가지만 소개를 해드리면, 굉장히 외롭게 지내시는 여성분 같았어요.

그분이 저희 위니를 보면서 그냥 보는 순간에 너무 눈물을 흘리면서 이 순수한 모습을 보고 자기가 다시 열심히 힘을 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아이들을 돕고 싶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면서 자기가 인생을 되게 포기하고 싶었을 순간에 저희 미니를 봐 가지고 굉장히 힐링이 됐다고 말씀하신 시고, 또 어떤 저희 민이보다 한 살이 어린 친구가 있었는데, 오빠라고 하면서 저는 민이 오빠보다 한 살이 어린 지금 중학교 뭐 이 학년입니다. 사실 저는 자살을 기도하는 그런 친구였는데요. 오빠를 보고 가진 게 전혀 없고 저렇게 불편함이 있고 심지어 말도 못하고 장애가 있음에도 행복하게 웃는 오빠를 보면서 자기도 웃게 되었다고 이런 말을 하신 하는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와 하나님께서 저희 미니를 정말 사용하시는구나 이런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네 오늘 이 시간에 제가 서 있는 것도 저희 미니가 하나님께 사용되어서 제가 대신 말을 전달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요. 저희 미니 덕분에 제가 전 사실 이렇게 자격이 되는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여러 간증을 할 수 있는 그런 자리도 마련이 마련되는 것 같고요. 전 항상 미니한테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금은 살고 있습니다. 네 이게 이런 마음이 그냥 혼자서만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아무리 아무리 선한 마음을 가져도요 우리 아이 같은 친구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아시겠지만, 정말 절망의 순간에서 이겨내기라는 힘 이겨내기란 정말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순간들이 굉장히 많이 오거든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시고 우리 아이들을 키우시는 부모님들은 굉장히 좌절의 연속으로 살아가시는 분들이 많아요.

근데 같은 경우에는 어렸을 때부터 정말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저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에 저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디고 살아계시다는 그런 강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미니를 그렇게 키워낼 수 있었던 것 같거든요.

지금부터 제가 좀 저의 어린 시절 얘기를 해보면요 사실은 너무 간증을 할 때마다 얘기를 똑같은 스토리로 해 가지고 제가 얘기를 안 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얘기를 해야 될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 저희 어머니가 너무나 어렵게 사시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셨던 분이세요. 아버지는 믿음이 없으셨고 어머니 혼자 저희 삼 남매를 데리고 항상 교회에서 사셨어요. 그렇게 피곤하고 힘든 삶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잊지 않고 늘 하나님과 함께 행복하게 항상 지내실려고 노력하시는 분이셨어요.

그래서 30대 초반이었을 거예요. 아니면 20대 후반 정도 됐을 텐데 그런 분이 세 명의 아이를 데리고 교회를 다니시면서 늘 봉사하고 그리고 헌신하고 늘 어려운 가운데서도 전도하기를 힘쓰셨던 분이셨어요. 그래서 제가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이 저희 엄마가 굉장히 가난한 동네에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계시는 정말 독거노인들만 찾아가서 엄마가 항상 제 손을 혼자 가시기 무서우시니까 저나 저희 언니나 남동생을 데리고 꼭 그곳에 가서 말씀을 전도하셨어요. 그리고 찬양도 많이 했고요.

저는 그게 굉장히 많이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이 혼자 사시는 그때 분들이 좀 뭐 이렇게 양말에 구멍이 나거나 아니면 인제 치아가 다 빠지셨거나 아니면 찬송을 부르실 때 너무 못 부르시거나 이랬을 때 제가 너무 심하게 웃어 가지고 엄마가 항상 옆에 꼬집었던 기억이 너무 나가지고 그거를 잊을 수가 없다고 엄마가 그렇게 말씀하셔서 저도 그때 생각이 너무 많이 나는데요. 그렇게 열심으로 신앙생활 하시다 보니까 저도 뭐 하나님이 계시지만 제가 뭐 만난 제가 뭐 말씀을 들어서 뜨거운 열정이 있고 이러진 않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항상 저희와 함께하신다는 그런 확신한 믿음으로 어렸을 때부터 자라게 되었어요. 그래서 항상 교회와 지 뭐 그리고 모든 놀고 뭐 모든 생활 그 뭐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모든 활동을 거의 교회와 함께 했었어요.

어린 시절을 그래서 교회 항상 이렇게 봉사하고 찬양하고 이랬던 일들이 저희도 굉장히 익숙했었는데요. 그러던 어머니가 교회를 떠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어요. 저희 어머니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시다가 하나님께서 은혜를 충분하게 부어주셔서 그렇게 어렵게 사시다가 열심히 돈을 벌으셔가지고, 집을 하나 장만하셨어요. 근데 집이 낡아서 집을 건축을 하게 되는 그런 큰 하나님의 은혜로 건축을 하게 되는 그런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축복을 어디 다른 데서 알 뭐 할 할 게 없이 그냥 교회에 건축을 하시는 분이 있다고 해서 그분한테 맡긴 거예요. 근데 거기서 사기를 당하는 그런 슬픈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는데요. 저희 어머니가 무슨 이유 위해선지 상처가 너무 커 가지고 사실 제가 그때 당시였다면은 교회까지 떠날 필요가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 저희 어머니는 너무 상심을 하신 거예요. 돈이 너무나 힘들게 벌으셨던 돈이었기 때문이었겠죠. 모든 인생이 다 걸려있는 그런 돈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그리고 특히 교회에서 그런 사기를 당했다는 것이 어머니는 굉장히 상처였던 거 같애요. 그래서 어머니가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같이 교회와 멀어지는 일이 생기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희가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되었어요. 일단은 첫 번째가 어머니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더라구요. 애기였을 때는 엄마가 항상 웃었던 굉장히 긍정적이고 밝으신 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항상 소리를 지르고 인상을 쓰고 어느 순간 처음부터 엄마는 항상 얼굴에 그늘이 져 있는 모습이었어요. 근데 저희는 어렸을 때 저희가 가난했지만, 부자라고 생각했던 이유가 엄마가 항상 긍정적이셨기 때문에 저희에게 항상 슬픈 느낌을 주지 않으셨어요.

가난히 힘들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저희도 기쁘게 그냥 생활을 했는데 아무렇지 않게 근데 오히려 정말 이후에 엄마가 믿음이 없어진 순간부터는 저희도 너무 괴로운 거예요. 이 가난이 돈이라는 걸 알게 되고 이 가난이 얼마나 슬프고 힘들고 이 종말이 오는 것처럼 정말 한 사람은 정말 이렇게 힘들어지는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거예요.

저희 엄마의 얼굴을 통해서 그리고 10대 때 굉장히 불우하게 자랐기 때문에 저희 자녀들을 굉장히 많이 방해했고 특히 같은 경우에는 공부도 못하고 예체능으로 무용을 하고 있었는데, 무용도 잘 이렇게 하지 못하고 그러니까 뭐 부모님한테 뭐 반학을 해봤자 무슨 뭐 돈이 나올 것도 아니고 하니까 저는 진짜 밖에 나가서 알바를 하고 어린 친구가 그런 생활이 좀 많이 있었던 거 같고, 어렸을 때 정말 어머니는 정말 저희 어머니가 이런 얘기 하는 거 싫어하셔 가지고 제가 웬만하면 안 할려고 하는데 이건 꼭 지금 짚고 넘어가야 되는 일이어가지고 정말 가난하게 살다가 저희 아버지가 또 사기를 당하셔가지구 또 그런 분들한테 이상하게 사기가 참 잘 당해요. 그쵸. 저희 아버지가 또 마음이 너무 좋으시거든요. 신앙은 없으신데, 지금은 있으시지만 그때 당시엔 없으셨지만 사람이 너무 좋으시니까 보증을 잘못 써 가지고 또 사기를 당하신 거예요.

그래서 또 보증금 없는 보증금에 또 이렇게 잘은 모르지만 계속해서 가난에 밑바닥까지 찍었던 정점까지 찍었던 순간까지 오게 되었어요. 그때 제가 또 기억에 나는 것이 어머니가 누워 계시고 아버지는 없는데 제가 인제 백화점에서 알바해서 월급을 받는 날이어서 제 기억으로는 가족들과 맛있는 거라도 한 끼 먹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근데 빚쟁이가 와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 어머니가 진짜 띠를 매시고 누워 계시고 드라마처럼 정말 누워계시고 빚쟁이가 앞에서 정말 가지도 않고 두 분이 앉아 계셨나 세 분이 앉아 계셨나 있었어요. 제가 정말 그분한테 제가 쪼끔 이런 말씀을 드려야 되는지 모르겠 깡이 있었다고 해야 될까 그니까 2월급 봉투를 던졌던 기억이 나요? 그러니까 그게 인제 저도 굉장히 상처가 되었고 엄마가 좀 편하게 좀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어린 마음에 들었을 정도로 굉장히 가난하게 살았는데 저희 어머니가 힘들게 사시면서도 왜 하나님을 안 찾았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끝까지 어머니가 찾지 않으시다가 정말 마지막 순간 정말 없는 집에서도 쫓겨나야 되는 또 사건이 생겨가지고 주인이 보증금을 빼줄 테니까. 나가라고 하는 그런 상황이셨더라구요. 근데 저희들은 다 따로따로 살고 있었고, 근데 어머니 마음에 가족이 굉장히 중요하신 분이었는데. 어머니 마음에 저희가 따로따로 지내는 모습이 너무 싫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같이 화목 가게 같이 살아서 저희가 시집가기 전까지 이제 어머니가 데리고 계시고 싶은 마음이 있으셨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집을 굉장히 빨리 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돈이 없다 보니까 낙심하고 상심하죠. 어디서 돈을 구하겠어요.

그러니까 그런 뭐 큰 집은 뭐 고사하고 그냥 이사가 그냥 그만한 집으로 이사 가기에도 굉장히 부족한 돈이었는데. 어머니가 항상 벼룩시장 있죠. 벼룩시장 그라고 아세요. 무슨 신문지 같은 거 있잖아요. 예전에는 그랬죠 그때는 SNS나 이런 게 없었으니까 그런 데서 보고 방을 구하고 직업을 구하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신문지를 늘 손에 쥐고 다니셨는데 어머니가 그날도 버스에서 인제 신문지를 보고 진짜 뭐 어디를 가야 되나 이러면서 고민을 하고 인제 일하는 곳에 가셨는데. 그때 당시에 갈마터널에 있는 인제 어떤 주유소에서 밥 짓는 인제 일을 하시고 계셨는데 설거지를 하시다가 창문 밖에 인제 분양한다는 큰 낱말이 이렇게 보인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가 거기를 쓱 보고 끝나고 한번 거기를 가봐야 되겠다. 해서 갔는데 집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니까 집이 생각 지금 생각하면 별로 안 좋아요.

근데 어머니 눈에는 너무 좋아 보였던 거예요. 집이 그리고 늘 지하실에서 살다 보니까 위에 내 4층이 딱 하나 남아있는데, 4층이 너무너무 좋아 보이더래요. 그래서 인제 아유 사지는 못하고 물어 보니까 너무 비싸서 사지는 못하지만 구경이래도 하고 가라 그래가지고 그 아저씨가 이제 들어와서 인제 구경하라고 이거 이 집 하나밖에 안 남았으니까 집 싸게 드릴 테니까. 이사 오라고 이렇게 하는데 저희 엄마가 너무 터무니없이 돈이 부족한데 어떻게 이사 가냐고 근데 아이 그냥 보고 가시고 나중에 이거 그냥 싸게 드릴 테니까. 그냥 오시라고 이렇게 하면서 집을 보고 가라고 키를 맡기고 가셨대요 그래 가지고 인제 집을 보는데 제 방 쪽이었을 거예요. 제 방 쪽에 제가 다니던 교회인데 십자가가 크게 인제 보였던 거죠.

저의 방 쪽에 어머니가 십자가를 보고 딱 허벅지를 치고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이 계신데, 내가 왜 이러고 있었나 그러면서 무릎을 꿇고 눈물에 회개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한 두 시간 동안 계속 하나님께 정말 회개 기도를 하시면서 나중에 저희 어머니가 어렸을 때 쌍코피가 굉장히 많이 많이 나셨어요. 그러니까 너무 과로를 많이 하셔가지고, 그랬던 것 같은데, 코피를 흘리실 정도로 코피가 났는데도 그냥 코피가 뭐 그냥 콧물인 줄 알고 닦으면서 계속 기도를 하셨는데 눈을 떠보니까 이게 흥건하게 피가 있을 정도로 정말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기도를 하시면서 어머니가 제가 이 집에 이4만 온다면 정말 다시 하나님 열심으로 믿고 하나님께 순종한 삶 살겠다고 기도를 그렇게 하셨대요 그런데 어떻게 역사하셨을까?

하느님 하나님이 바로 집으로 이사 오게 해주셨어요. 네 그래서 그런 기도를 딱 하셨을 때 하나님이 어머니를 부르셨다는 생각이 난 들었어요. 저는 그렇게 고생 끝에 참 사람이 참 신기한 게 하나님을 떠나고 나서 다시 하나님을 믿기란 너무 힘들거나 우리 엄마를 보면서 알게 됐어요. 예 그렇게까지 고생을 하는데도 하나님이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내 스스로 할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내 스스로 모든 걸 해낼 수 있을 거다 잘 할 수 있을 거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다 해주셔야 되는데 근데 그거를 몰라요. 생각이 안 나요? 내가 중심적인 삶을 살다 보면은 그게 생각이 안 나게 되잖아요. 근데 어머니가 그때 땅을 치고 하나님이 그냥 싸인을 보낸 거죠. 너 나 찾아와 이 십자가를 보고 무릎 꿇어 이렇게 하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간증이 제 마음속에 너무나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확신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더 웃긴 거는 그 집이 들어오려면은 몇천만 원의 빚을지고 이제 들어와야 되는데 저희 어머니가 일용직을 하시는 분인데 어떻게 몇천만 원의 돈을 갚겠어요. 그리고 그때 제가 연행을 하는 상태도 아니었고 정말 어떻게 돈을 빌려서 겨우 보증금 정도에 마련해서 계약금 정도만 받고 정말 운 좋게 그때는 대출이 많이 됐으니까 대출을 받아서 왔는데 이후에 어떻게 할 거예요. 그래서 저희 아버지가 굉장히 어머님께 핍박을 한 거예요. 어떻게 할려고 여기 이사 왔냐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사 왔냐 근데 엄마는 믿음이 인제 살아온 숨쉬니까 하나님이 다 일해주시고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데 저에게 하나님이 기회를 그니까 저에게 모든 일을 또 저를 통해서 또 그걸 해결하시더라고요.

제가 그때는 모델 일을 하면서 제가 돈을 벌고 있었고, 저도 인제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하다 보니까 꿈도 없고 소망도 없고 그냥 빨리 돈을 모아서 시집이라도 가면 되는데 시집도 정말 알코올 중독자나 이런 사람 만나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늘 이렇게 항상 그런 마음으로 살았어요. 저는 그래 조금이라도 좀 잘 나가는 남자를 좀 만나서 좀 어떻게 좀 잘 살자 좀 고쳐봐야겠다. 약간 이런 느낌으로 약간 살 때도 있었고, 암튼 20살 때이고 어릴 때니까 뭐 별 그런 생각만 했겠죠. 그래서 인제 모델도 그냥 뭐 사실은 전문직이 아니잖아요. 모델 일이라는 것이 거의 인제 뭐 그냥 프리랜서 직업이기 때문에 열심히 돈을 벌어서 잘 모아서 시집 잘 가야지 뭐 이런 마음으로 인제 살았는데 계속 저에게 자꾸 이 연예인의 러버콜이 들어오는 거예요. 계속 캐스팅 제이가 들어왔어요.

그런데 저는 정말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전 못한다고 저는 안 한다고 저는 그럴 만한 깜냥이 안 된다고 다른 사람 알아보시라고 하는데도 계속 저한테 계속 명함을 계속 주면서 이거 진짜 사기 아니다. 한번 꼭 해봐라 꼭 만나보자 이러면서 저한테 계속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좀 무섭잖아요. 사기꾼도 많고 그리고 저는 아유 빨리 이렇게 돈을 모아서 시집가야 되는데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어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뭐야? 이러면서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아니 이 얘기가 약간 너무 들리니까 저도 약간 고민이 되는 거예요. 아이 하고 싶잖아요. 안 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어요. 20대 여자 젊은 여자가 근데 저는 진짜 정도로 자신이 없었어요.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했고 가진 게 없고 저는 학교도 진짜 일찌감치 포기해가지고 좀 뭐 대학도 간 적도 없고 뭐 그런 뭐 연기자의 꿈도 꿔본 적도 없고 심지어 저는 어렸을 때 정말 드라마에 나오시는 분을 굉장히 동경했어요. 증말 저런 사람은 진짜 이슬만 먹고 살까 약간 이런 마음으로 티비를 봤던 사람이기 때문에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나 어깨를 나란히 하냐? 나 같은 사람이 그런 식으로 생각했던 사람이었는데. 계속 머브콜이 오니까 뭐 어떡하지 엄마한테 한번 물어봤어 그랬더니, 엄마가 탁 치면서 무조건 해보라고 이러는 거예요. 엄마 돈도 많이 들고 뭐 우리 아는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다 해주실 거니까 무조건 하라는 거야. 그래서 저는 아유 우리 엄마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어 그러면서 속으로 인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어떠어떻게 하다가 어떤 회사랑 계약까지 하게 된 거예요. 제가 그래서 이거 큰일 났다 이 마음의 근심이 너무 생기는 거예요.

이걸 하게 되면은 내가 일을 쉬어야 되고 일을 쉬면은 얼마가 마이너스인데 내가 이걸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약간 이 생각부터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너무 이게 고민스러워서 이거 어떡하지 계속 이러고 있을 타이밍에 저희 집에 혼자 살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똑똑 이렇게 두드리시더니, 내 누가 혼자 사니까 인제 이 문고리 있잖아요. 그래서 누구세요. 이랬더니, 어떤 권사님이 그때 신도시였거든요. 예수님 믿으라고 전단지를 이렇게 주시는 거예요. 근데 제가 그때 전단지 그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제가 그때 느꼈다는 거 제가 그런 고민스러운 찰나에 딱 전단지를 보고 하나님 믿어야겠다. 하나님께 물어봐야겠다. 내가 집에를 들어가서 교회를 다녀야겠다. 이런 마음이 드는 거예요.

엄마 말은 듣지도 않다가 전단지를 보니까 뭔가 하나님이 나한테 싸인한 것 같은 그런 느낌 약간 끌리는 느낌 그래서 제가 그 길로 바로 짐을 다 싸가지고 집을 내놓은 보증금을 가지고 그리고 집에 들어가서 연습 연습생 생활을 하게 되는 거죠. 인제 그래 가지고 그때부터 인제 마음의 준비를 하고 하나님을 믿어야겠다. 그래 가지고 인제 엄마랑 같이 새벽 기도였던 것 같애요. 그때 딱 교회를 가는 순간에 처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거예요. 목사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시는데 설교하시는데 말씀이 꼭 저한테 하는 거 같고, 다 그런 경험 있으시죠. 진짜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눈에선 눈물이 나오구요.

그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셨던 말씀이 내가 너의 고난을 다 안다 그때 10대였 10대가 전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저는 누구한테 말도 못 해요. 뭐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어요. 학폭부터 시작해서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있었거든요. 근데 그런 얘기들을 하나도 누구한테 한 적이 없어요. 근데 하나님이 내가 너를 다 안다 너의 고난을 다 안다 너의 아픔을 다 안다고 말씀해 주시죠. 순간 제가 너무 놀래 가지고 허 이게 뭐지 이러면서 말씀을 너무 달게 받고 그리고 찬양을 하는데 찬양의 기쁨이 넘쳐흐르면서 기도하는 시간에 새벽 기도니까 기도를 오래 하잖아요. 기도를 하는데 저는 한 번도 기도를 해본 적이 없어요. 그렇게 진심으로 근데 기도를 하는데요.

정말 제가 잘못했던 거 그동안 제가 실수했던 거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제가 위험 천만이 겪었던 순간을 다 보여주시면서 그때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하나님이 이 순간에도 나와 함께하고 계셨구나 그리고 제가 침대에서 하나님 하나님 진짜 너무 힘들어해 했던 그런 순간순간의 모습들도 저에게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이 기도까지도 들어주셨구나 저는 하나님 교회도 나가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나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구나라는 그런 확신의 믿음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제가 열심으로 신나게 교회를 다녔어요를 신나게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께 서원이라는 것도 알지도 못했거든요. 누구한테 듣지도 못했는데 서원 기도를 하게 되는 거예요. 제가 하나님 연예인 이렇게 누가 하라고 하는데요.

제가 만약에 제 길이 연예인 길이 아니면은 한 달 안에 그만두게 해주시구요. 만약에 제 길이라면은 우리 교회 굉장히 조그마한 교회였긴 했어요. 제가 이 교회에서 11종 제일 많이 하는 사람 되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했는데 세상에 6개월도 안 돼서 그게 십을 조금 제가 제일 많이 하고 있는 거예요. 그니까 하나님이 제가 떠나실까 봐 계속 알바로 서브 모델 같은 거라고 하거든요. CF 모델 할 때 뒤에 나오는 사람들 있잖아요. 이렇게 잠깐 나오고 하는 그것도 돈을 예전에는 좀 많이 줬었어요. 근데 제가 그만둘까 봐 하나님이 그렇게 이렇게 물질적으로 저를 다 채워주시고, 또 연기자료를 대비를 했던 순간부터 하나님이 계시니까요? 어떤 일이 생기냐면요 담대해지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이 계신데, 누가 나한테 뭐라고 해 무섭지가 않은 거예요. 눈치를 안 보는 거예요.

저는 사람들 앞에서 맨날 말도 못하고 맨날 이렇게 삐쭉삐뚤대고 말도 못 했는데 갑자기 내가 너무 눈치를 안 보고 내가 할 것만 잘하는 거예요. 내가 준비한 오디션에 있는 대본 열심히 하고요. 가서 감독님이나 이런 분들이 있으면 떨리지만 무서운 떨림이 아니라 그냥 좋은 긴장감을 떨리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무서움이 없고 당돌하니까 감독님들이 이렇게 하다가 캐스팅이 계속 됐어요. 근데 저는 그게 거짓말처럼 너무나 순탄하게 이렇게 저를 누가 끌고 오는 것처럼 그런 느낌이 들었거든요. 저 예전에 같이 일했던 언니의 친한 언니가 여기 달랐어요. 사셔 가지고 제가 엊그저께 만나서 간증을 같이 나누면서 얘기했는데 언니 나 알잖아. 아니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돼 내가 공채 탈렌트도 아니고 정말 어디 뭐 이렇게 연습생 어렸을 때부터 꿈꿨던 사람도 아닌데 그냥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렇게 가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이 하신 거 아니건 누가 얘기를 할 수가 있어요. 이런 저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저에게 기름을 너무 충만하게 부어주셨다고 생각을 해요. 저는 정말 하나님한테 힘들다고 말하지 않아도 돼요. 사실은 할 자격이 없어요. 하나님께서 그만큼 저에겐 너무 너무나 기름을 많이 부어주셨고 너무나 하나님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순간을 저에게 너무나 느끼게 해주셨기 때문에 저는 사실 연기할 때도 연기를 제가 뭘 알겠어요. 저는 하나님한테 기도만 하는 거예요. 힘든 일 생 힘든 씬 맡으면 이거 대본을 외우면서도 하나님 제가 이거 감당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밤을 새도록 대본을 봐요. 그리고 기도해요. 하나님 제가 이렇게 대본을 봤는데도 저는 못해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담대하게 제가 이것을 잘하게 해주시고 그리고 더 잘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게 해주세요. 그런 연기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러면요 정말 신기할 정도로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에서 일을 해주세요. 저는 그런 마음으로 늘 일을 하거든요. 매 순간 느끼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하나님을 떠날 수가 없어요. 네 어려운 일이 생길 수 있죠. 너무나 어려운 일이 많아요. 지금도 어려운 일이 일이 있구요. 늘 어련이 많지만 모든 거를 제가 하나님을 해서 하나님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해 나간다는 게 너무 감사해요. 그런 마음을 주신 것이 그래서 하나님 살아계셨는데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여러분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게 맞아요. 네 그래서 저는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오늘도 이렇게 달려왔는데 그래서 우리 어머니하고 우리 어머니가 인제 빚 때문에 고민하시고 그렇게 됐던 그런 사건들 있잖아요. 다 해결이 됐어요. 한 이 년 3년 만에 그게 다 해결이 된 거예요.

제가 빚을 다 갚았고 또 저희 어머니가 일도 안 하게 되셨고 힘들게 좀 사지 않은 그러니까 숨통이 인제 튀어지신 거죠. 하나님이 일을 하시면요 정말 실패가 없어요. 진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게 가장 완벽하고 확실하다는 것을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이 보여주셨어요. 네 그래서 저는 항상 믿음 안에서 이렇게 살고 있었는데, 근데 제가 딱 일을 너무 열심히 하고 있고 진짜 뭐 하느님께서 기름도 충분하게 부어주셔서 제가 작품도 진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가 결혼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는 거예요. 이유는 제가 레이싱과 출신인데요. 쫌 남 그 남자들의 약간 시선이 제가 너무 부담스러웠었어요.

연기를 너무 잘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영기적으로 저를 보는 게 아니라 외모적인 거를 먼저 보게 되고 실제로 정말 야한 영화들이나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들어왔었구요. 근데 저는 그게 너무 싫어서 다 안 했어요. 정말 좋은 작품도 많았었는데 제가 안 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보시면 저도 은하 씨가 노출 이런 거 많이 안 하셨던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시는 게 굉장히 많이 들어왔는데 제가 어렸을 때 그거를 지금 담대하잖아요. 신인 때 누가 대감독님들한테 그런 얘기를 해 해요. 못한다고 안 한다고 맨날 매니저랑 싸우고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되게 인제 그런 것들이 그렇게 겉모습을 보여지는 게 싫어가지고 제가 좀 빨리 결혼을 선택을 했어요.

그래서 어머니도 되게 놀랬고 제 주변 지금도 엊그저께도 예지원 언니라고 저랑 올드미스 다이어리 촬영했던 언니를 만났는데 그때 저한테 우리 다 뜯어 말렸는데 니가 그때 귀가 안 들려 가지고 니가 이렇게 됐다. 이러면서 말씀하셨는데 맞아요. 진짜 귀에 안 들리더라구요. 뭐가 안 들리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충분히 저는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정말 축복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했지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이 어떤 거를 좋아하실지 그런 걸 묻질 않았던 것 같애요. 그냥 그냥 어리고 정말 그런 마음이 있으니까 뭐 이렇게 사람들이 저를 이렇게 보는 것도 싫고 이런 마음이 있으니까 빨리 결혼을 하게 되더라구요. 근데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저에게 민의를 주시기 위해서 이 결혼도 하시게 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 저는 그래서 모든 게 하나님 섭리가 있기 때문에 저한테 안 좋은 일을 통해서라도 하나님께서 뭔가 하시고 하자 하는 그런 일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누구도 원망하지 않아요. 저는 제 삶의 선택에 잘못됐다. 뭐 후회도 사실 별로 안 하고요. 어쨌든 제 삶을 또 열심히 살아가면 되는 거니깐요. 네 그래서 인제 제가 저희 민이를 만나게 되고 민희가 태어나고 돌이 지나고 나서부터 거기에 좀 많이 좀 힘들었어요. 그리고 민희가 돌 지나고 탈장 수술을 하게 되는데요.

제가 촬영을 갔다 왔는데 어느 날 제가 어느 정도로 바빴냐면요 미니를 놔두고 집 앞 그때 당시에 바람의 나라라는 드라마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당시만 해도요 늘 지방 완도 그때 중국 차량도 있었고, 로케이션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코로나 전이었으니까 그래서 제가 너무 미니 때문에 못하는 스케줄이었는데. 그거를 하게 되는 상황들이 늘 생겨 가지고 늘 조바심을 가지고 인제 아이를 못 케어를 못 해 가지고 늘 마음이 항상 뭐 이거 연기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보는 것도 아니고 항상 중간에 껴가지고 이렇게 되게 붕뜬 삶을 살고 있었을 틈이 취미였는데 마음이 조급하다 보니까 빨리 촬영 끝나고 바로 집에 오는 게 일쑤였어요. 완도에서도 늘 집에 오구요. 얼마나 매니저가 힘들었겠어요. 매일매일 거기서 자고 숙소에서 한 1주일을 생활해야 되는데 저는 그걸 매일 출동을 했어요.

근데 어느 날 12시쯤에 들어왔는데 분장도 안 주고 들어왔는데 애가 고환 밑으로 뭐가 튀어나와 있는 거예요. 근데 엄마도 못 보고 저만 본 거예요. 그날 시간에 엄마 이게 뭐야? 그랬더니, 모르겠어 어떻게 그래서 제가 애를 들고 인제 뛰었죠. 병원을 갔어요. 탈장이 됐다는 거예요. 탈장이 됐는데 뭐 방법이 없는 거예요. 탈장이 되면은 의사 선생님이 손으로 이렇게 밀어넣는 것밖에 방법이 없대요 근데 어린아이가 밀어 넣었는데 자지러지는데 엄마를 찾고 끌어당기는데 엄마는 손을 잡아주지도 않고 할머니는 할머니도 손을 잡는 데 할머니도 손을 잡아주지 않고 이러니까 애가 너무 배신감과 충격이 엄청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 내가 안아주려고 이렇게 끝나고 나서 안으려고 했더니, 저를 밀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 살 반밖에 안 됐는데 힘이 얼마나 센지요 제가 이렇게 밀쳤어요. 그때 마음이 쿵 내려앉더라구요.

그때 사실은 제가 남편분께서 좀 금전적인 그런 힘듦도 있었고, 이래 가지고 일을 꼭 해야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마음이 너무 아픈 거예요. 그리고 엄마한테 가는데 옆에 있는 분이 어머 쟤는 왜 엄마한테 안 갈려고 해 이 얘기를 듣는데 마음이 너무 출렁 내려앉더라구요. 어떡하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지 나 우리 민이 너무 사랑하는데 우리 민이를 위해서 진짜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있는 사람인데 내가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 게 맞나 이러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뤘고 그러면서 인제 그런 무거운 마음으로 어쩔 수 없는 현실은 어쩔 수가 없으니까 또 계속 일을 하는 가운데 아이가 폐렴이 걸리고 너무 아픈 거예요. 그래 가지구 안 되겠다. 좀 쉬어야 되나 그러고선 이제 일을 좀 이거 끝나면 쉬어야겠다.

생각을 했는데 몸이 제가 이상한 게 몸이 안 좋다고 생각이 되는데 카메라가 감독님이 저를 딱 보면서 야 너 목이 좀 이상한 거 같애 이러는 거예요. 네 일로 와봐 일로 와서 카메라 봐봐 녹화된 걸 보여주는데 여기 왜 이래 임파선도 아닌데 여기가 이러는 거야. 몰라요. 나 왜 목이 왜 이러지 그때 너무 바빠서 제 몸을 이렇게 챙길 시간이 없었거든요. 이상하다 그래서 다음날 병원을 갔더니, 조직 검사를 해 보래는 거예요. 그래 가지구 네 조직 검사요 그걸 어디서 해야 돼 큰 병원 가서 해야 된다는 거야. 갑상선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그래서 갑상선이 뭐예요? 난 갑상선이 뭔지도 몰랐거든요. 그때 그래가지구 가서 조직검사를 했는데 제가 갑상선암 판정을 받은 거예요. 근데 저는 이 스트레스가 그만큼 무섭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갑상선암이 걸리고 제가 인제 아이가 아프고 하면서 이런 걸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다 몸으로 인제 버티다 보니까 젊은 아이였는데도 인제 스트레스로 암이 생긴 거죠. 그래서 제가 한 6~7개월 동안 일을 이제 못하고 목소리도 안 나오고 인제 그러다 보니까 일을 못 하고 아이를 케어하는 그런 시간들이 있었고, 이제 암이 걸리고 아이를 케어하면서 이렇게 쭉 보니까 제가 이 결혼 생활이 너무 힘들 것 같다라는 생각이 너무 들었어요. 그래서 혼자 그러니까 남편의 눈치 보고 일을 하고 이런 것도 너무 힘들었고 해서 그냥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을 해서 아이를 인제 혼자 케어를 하게 되었는데 처음엔 정말 자신 있었거든요. 정말 잘 키울 수 있다. 자신 있었는데, 아이가 인제 아픈 것이 이게 발달장애인이라는 기본적인 어떤 레퍼런스 그니까 뭐 보고 볼 수 있는 예시를 저는 본 적이 없었어요. 자 여러분들 그게 되게 문제예요.

제가 우리 미니를 세상 밖으로 자꾸 내보낼려고 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우리 미니 같은 자폐 스태프럼의 아이들이 어떤 모습인지 사실 한국 사람들은 잘 몰랐어요. 그때 당시 저도 그랬거든요. 왜냐하면, 잘 못 봤거든요. 서울에서 그래서 잘 못 봤기 때문AI가 이 병이 어떤 건지에 대한 구체적으로 알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고 영상이나 다큐멘터리나 책이나 이런 걸 통해서 인제 아이를 아이의 병에 대해서 인제 알게 됐는데 그때마다 끝까지 볼 수가 없는 거예요. 아니야. 그러면서 계속 끝까지 영상도 못 보고 다 꺼버리고 아니야. 우리 아이 아냐 하나님 우리 아이 하나님이 키워주신 아이고 어렸을 때부터 태어난 순간부터 나는 하나님한테 맡겼고 하나님이 다 이 아이를 케어해 주실 건데 이 아이가 정말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병원에서도 판정도 그렇게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정말 그때부터 열심으로 미니를 케어하면 아이가 잘 클 거라고 생각을 했죠. 그래서 늘 부흥애니 뭐니 기도원이니 늘 가서 기도를 매일 했어요. 매일매일 하고 혼자 있을 때도 더 매일매일 기도하고, 저희 아이들이 한 키워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네 살 5살 6살 7살 너무 힘들어요. 말을 못 하니까 맨날 울기만 하거든요. 자해만 하거든요. 그니까 우는 게 그냥 우는 게 아니라 정말 진이 다 빠지도록 울어요. 그러면은 애가 땀이 흥건하고 눈이 튕팅 부어있고 머리를 때리고 이래서 여기 머리가 다 부어있고 이러는데 아무리 해도 뭐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도 같이 울고 또 뭐 사람들이 있는 데서 그렇게 하면 애를 데리고 와서 업구 다시 지나가 다시 집에 가가지고 같이 끓여안고 울구 그런 일이 늘 일상이었죠.

그리고 한 번은 저는 재롱자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근데 한 6살 땐가 이제 좀 컸으니까 재롱잔치를 하는 데를 초대를 받은 거예요. 너무 기쁜 마음에 저희 아빠랑 엄마랑 이제 저랑 갔죠 저도 예쁘게 하고 가구 우리 아들도 예쁘게 옷을 입혀서 갔어요. 근데 시간이 됐는데 핸드폰을 보고 있던 핸드폰을 뺏고 민아 인제 올 순서 됐으니까 올라가서 인제 해보자 그래서 잘할 수 있지 하면서 웃으면서 할려고 하는데 애가 그때부터 또 발작이 시작된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인제 난리가 난 거죠.

핸드폰을 뺏었다고 그리고 소리를 지르면서 사람들 앞에서 한 두 시간을 아이랑 실랑이를 하고 머리끄댕이를 잡혀 가지고 머리가 엉망이 되고 몸이 다 엉망이 되고 집에 가자고 하는데도 안 가고 계속 떼쓰면서 온몸을 진짜 진짜 온몸으로 진짜 저를 거부하면서 괴로움을 저한테 다 쏟아내는데 그때는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던 게 저희 부모님 앞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처음으로 저희 아버지도 그런 모습을 보게 돼서 너무나 마음이 힘든 거예요. 그래갖고 인제 집에 가서 정말 문을 닫고 혼자 이렇게 누워서 기도를 했죠. 기도밖에 안 나와요. 누워서 눈물로 계속 기도를 하는 거예요.

하나님 도대체 내가 언제까지 이거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이러면서 우리 아들도 너무 불쌍하고 제가 너무 안쓰러워서 제 모습을 누구한테 들키고 싶지 않아 가지고 비계를 맞고 운 적도 많았구요. 다윗이 가슴을 찢고 통성 울 그렇게 진짜 울어 울었던 것처럼 진짜 통곡했다는 그런 구절이 많이 나오는데 제가 그런 기도를 흘리면서 그런 통곡을 하면서 기도를 했던 적이 너무나 많았어요. 그리고 한 10년을 고쳐달라고 기도를 했지만, 고쳐지지가 않더라구요. 근데 그때부터는 이상하게 인제 고쳐달라는 기도보다는 뭔가 우리 민희가 좀 행복한 아이로 자랄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우리 민희에게 주님이 친구가 돼주세요.

이런 기도를 많이 했어요. 그리고 우리 민희가 저의 아들로 태어나서 행복할 수 있게 해주세요. 인제 그런 기도가 바뀌었어요. 그래서 이런 문제가 인제 저에게는 사실은 한 10년 동안의 기도들이 안 들어주는 걸 보면서 이제 그거를 포기했죠. 그리고 다시 기도의 방법을 바꾸고 민희의 행복을 위해서 기도하고, 리니가 우리 하나님이 우리 민희의 진정한 아버지시고 그리고 나의 아버지시고 나에게 하나님께서 주셨던 그런 축복을 우리 아이한테 줄 거라는 믿음이 있고 전 확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더니, 저희 미니가 이런 모습으로 모든 사람들한테 사랑을 많이 받게 되고 또 힐링을 주는 아이로 성장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너무 들어요. 저는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아요. 간증거리가 정말 많거든요.

정말 나이가 먹어서도요 정말 우리 민희는 저에게 항상 겸손함을 줘요 왜냐하면,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들섭게 하는 행동들을 좀 많이 하거든요. 제가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다닐 수가 없어요. 항상 이렇게 눈치를 보고 어떻게 해야 돼 그런 것도 전 은혜라고 생각해요. 하나님께서 제가 연예인으로 하나님이 세워주셨지만 늘 그걸 착각해요. 어느 날 갑자기 제가 조금만 잘 되면요 제가 나와요. 저두요 하나님의 자리에 제가 앉아 있어요. 그리고 늘 그렇게 말도 안 되게 멍청한 짓들을 하고 실수를 해요. 그리고 늘 후회하는데 제가 너무 다행인 것은 그때마다 하느님한테 회개한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 전심으로 잘못됐다고 영서를 구하고 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또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또 하나님 안에서 또 하나님이 또 축복을 또 주시고 다시 이런 이렇게 넘어졌다 일어났다 넘어졌다 일어났다 하는 것을 계속 반복을 시켜요 지금 제가 그런 나이인 거 같아요. 지금 여기 앉아 계신 분들도 그런 분들이 많으신 것 같은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금 문제를 만났을 때는 뭐 의사의 상담도 받아오면 회복될 수 있고 약을 먹어도 치료가 될 수 있고 어쩌면 사람을 잘 만나면 위로가 되기도 하고 뭐 그렇죠. 근데 이 큰 문제에서는 하나님 말고는 답이 없어요. 이제 확신해요. 그거는 그래서 제가 큰 문제가 만나면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무언가를 해결하려고 하시는가 보다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최근에도 일도 너무 많았어요. 그리고 우리 아이가 인제 에버랜드에 억 저번에 인제 한 두 한 세 달 전 네 달 전에 11월 달쯤에 에버랜드를 갔었는데 오랜만에 에버랜드를 가니까 아이가 눈을 깜박깜빡 거리면서 되게 불안해 하는 거예요. 불안해 하더라구요. 그래서 얘가 왜 이렇게 불안해하지 예전하고 너무 다른데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근데 쫌 나도 긴장을 해야겠다. 생각을 했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학교 우리 미니 또래 친구들이 소풍을 많이 온 거예요. 그쪽으로 근데 우리 민이가 뭐가 변화가 됐냐면 덩치가 커지고 자기가 키가 커지니까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랑 자기가 다른 걸 느끼는 것 같애요. 그래서 가기 싫어하는 거 같애요. 친구들 번나기 싫어하고 오히려 작은 아이들이 있으면 안 그런데 자기 또래 아이들만 있으면 약간 피하더라고요. 그리고 텐트럼 이렇게 코 이렇게 하고 혼자 이렇게 있는 게 있는데, 그거를 너무 많이 반복을 하는 거예요.

원래 놀러 오면은 시각이 충족이 돼서 안 그러거든요. 너무 그래요. 그래서 애가 이 사람도 많아서 불안한가 보다 해 가지고 장애인들 이렇게 기다렸다가 타는 그런 그거를 끊어가지고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시간 되면 정시에 가야지 해서 갔는데 직원이랑 커뮤니케이션 잘못돼 가지고 저희 아들이 줄을 서야 되는 상황이 생긴 거예요. 이제 그때 뭐가 해결이 안 되면 아이들이 짜증이 갑자기 확 오거든요. 그래서 머리를 때리고 거기서 진정이 안 되니까. 더 못 들어간다고 인제 직원이 얘기를 한 바람에 아이가 난리가 난 거예요. 그래서 어느 정도로 난리가 났냐면 정말 독수레처럼 어떤 사람 잡히기만 하고 그냥 머리꾸대기에서 잡고 근데 난리가 저도 처음 보는 광경이어서 진짜 너무너무 당황스러워서 어떡하지 그러면서 제가 하나님 계속 기도하면서 제가 맨날 기도하거든요. 하나님 제발 도와주세요.

제가 지금 사람들 앞에서 지금 일로 안 돼요. 제발 도와주세요. 계속 그런 기도를 했어요.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근데 사람들은 다 전 줄 알잖아요. 제가 좀 튀게 하고 다니는 경향일 수 있어요. 또 모르게 좀 하고 다니면 되는데 제가 지금 쳐요 그래서 사람들 다 알아요. 근데 또 우리 미니까지 공개를 하다 보니까 더 알죠 근데 딱 보니까 미니야 뭐야? 우리 민이가 티비에 나왔을 때 1004인 줄만 알았는데 쟤 왜 저래 왜 저래 수군수근 대는 소리가 나는데 거의 한 시간을 그렇게 실 난리가 났어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진정이 안 돼 가지고 저도 진정할려고 노력했고 옆에 있는 사람들도 왔고 진행 요원들이나 이런 분들도 다 오셔가지고, 말리는데도 잘 안 되는 거예요.

결국에는 어떤 아이 머리채를 딱 잡아가지고, 아이가 인제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제가 딱 끌어안고 탁 잡고 제가 완전히 몸을 막으니까 이제 미니가 인제 물어 가지고 이제 상처도 크게 나고 그랬는데 그러면 이제 집에 와야 되잖아요. 제가 근데 전 집에를 안 가요 그리고 저는 미네에게 미안한 마음을 줘요 그리고 계속 얘기해요. 민아 봤지 너 사람들한테 저렇게 피해주면 엄마도 너무 힘들고 챙피하고 그까 피하는 게 답은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그렇게 하면서 저도 걸어가면서 하나님한테 기도를 해요. 하나님 도대체 이 타이밍에 저도 시간 내서 어렵게 왔는데 이렇게 기분이 안 좋고 왜 이런 상황들을 하나님들 만드실까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마음을 주시는 거예요.

어떤 누군가가 또 우리의 민희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자기의 삶에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까? 저렇게 미니의 말할 수 없는 자기가 제어가 안 되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제어할 수 있는 자기 몸을 갖고 있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감사함을 느낄까 이런 마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저에게 약간 되게 비전처럼 소망처럼 이런 게 생긴 게 세상에 좀 우리 미니 같은 친구들이 많이 나와서 많은 사람들이 친구들을 도와주면서 힐링을 얻고 또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우리 아이들 같은 친구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고 그리고 본인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작은 자리를 사용할 수 있는 짐이라고 말씀을 드렸던 게 저희 민이 같은 친구를 통해서도 그런 마음 주시는데 여러분들한테는 어떤 4명을 주실까 네 정말 저희가 보잘 것 없다고 생각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사용하신다고 저희에게 말씀으로 약속하셨고 저희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으신 거예요. 저희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너무 다르신 거죠. 근데 저는 지금도 너무 힘든 순간이 많아요. 큰 문제도 많고 작은 문제도 많고 우리 민희는 아직도 갈 길이 멀고 오늘 사실은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근데 못 봤어요. 역시 저희 민이가 시차에 적응을 못 하더라고요. 지금 너무 꿀잠을 자고 있어요.

그리고 굉장히 이 여기 와서 좀 텐트럼이 심해져가지고, 몇 번 인제 그런 좀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금방 잠재워 주셔가지고, 이제 또 발작 증세가 조금 줄어들었고 그래서 저는 아이 우리 아이를 통해서 이렇게 보시면은 아실 거예요. 이게 덩치가 커지고 정말 감당 여자 혼자 어떻게 저걸 감당하지 근데 저는 제가 감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이 아이를 감당해 주시는 걸 제가 느끼거든요. 근데 죽는 순간까지도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감당해 주실 거예요. 그래서 듣고 나서 이 아이가 어떡하지 나 없으면 어떡하지 전 그런 생각 안 해요.

저는 최선을 다해서 미니를 케어하고 최선을 다해서 민이를 행복하게 지내고 최선을 다해서 민이랑 행복하게 최선을 다해서 민이랑 끝까지 친구처럼 잘 지내다가 딱 죽는 순간까지 우리 민요와 사랑한다고 인사하고 죽고 나서 이후의 삶은 하나님이 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네 하나님께서 해주셔야죠 제가 하나님 믿고 이렇게 살았는데 네 하나님 믿고 이렇게 일어났고 하나님 믿고 살아계시고 하나님 하나님이 저에게 역사하셔서 제가 이 모든 걸 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저는 다 하나님이 하셨다고 생각해요. 그게 확실히 하시네요. 저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런 저에게 우리 민희도 꽃같이 감당해 주실 거라는 그런 믿음으로 네 살고 있습니다. 네 한순간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구요. 저는 힘든 순간에도 제가 10년 동안 가슴에 통곡을 하면서 울면서 이 아이를 고쳐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 응답이 없으셨어요. 그렇지만 저는 하나님 떠나지 않았어요.

하나님 떠나지 않을 거예요. 네 이유는 저에게 하나님 살아계심을 확실하게 보여주셨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계획이 있다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네 제가 말씀을 하나 준비했어요. 네 한번 읽어볼까요? 네 한번 같이 읽어주시죠. 예 이 다윗의 고백처럼 저희도 늘 이런 고백을 하면서 사는 삶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오늘 이렇게 늦은 시간 저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구요.

사실 굉장히 길게 하고 싶었는데, 뭐 마지막 날이잖아요. 여러분들 기도 많이 하시고 각자의 삶에 진짜 간증의 주인공이 꼭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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