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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 전도사 미주 다니엘기도회 본문

다니엘기도회/기업대표 실업인 다니엘기도회 간증

지선 전도사 미주 다니엘기도회

generalQS 2024. 3. 16.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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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성도들 반갑습니다. 지선전도사라고 합니다. 오늘 이렇게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오늘 이렇게 달라스에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는데, 나와주신 여러분 정말 위대하십니다. 건반이 설치될 때까지 우리 옆에 있는 사람에게 격려의 인사 한번 나눌까요? 오늘 너무 잘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살리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이 자리에 분명히 결단하고 나오셨을 텐데 또한 이 자리에 결단하고 또 앉았습니다. 인생의 여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결단하고 나온 이 자리는 분명히 회복의 셈으로 만드시는 줄 믿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우리 모두를 부흥의 불씨로 삼으신 하나님께 우리 감사하면서 먼저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제 저의 간증을 다니엘 기도회 통해 알고 계시는데 오늘도 모르는 한 분을 향해서 또 제가 간증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는 분들은 또 이제 모르는 척하고 들어주셔야 됩니다. 저는 이렇게 저의 인생이 감사라고 은혜라고 고백하면서 혼자서 이렇게 찬양사를 간지는 벌써 12년째 되어졌습니다. 그리고 아이비 밴드라는 저희 팀으로 또 무명생활까지 합치면 벌써 19년째 찬양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무명생활도 지나고 또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곳을 이제 이렇게 다니면서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똑같은 일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때가 온다는 것을 여러분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똑같은 자리에 똑같이 반복해서 나오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하느님께서 격렬 박수 보내주시는 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박수인 줄 믿습니다.

한국에서는 장윤정이라고 하십니다. 신문 기사에다가 이렇게 사방팔방 잘 돌아다닌다고 장윤청이라고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또 목소리로 저는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방송 사역을 하고 있는데, 또 아무도 잘 모르시지만 9년째 극동방송 전국 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통방송 또 표어 로고송을 매년 부르고 있는데, 올해는 또 특별히 자작곡으로 지금 방송이 흘러가고 있는데, 한번 해볼까요? 박수 후 이렇게 방송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목소리로 뭘 하고 있냐면 작은 신학대학원에서 학생들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2019년에 코로나가 생길 줄 아무도 몰랐던 때에 감사하게 무려 세 개의 대학에서 함께 일을 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늘 니가 하던 방법으로 선택해라 하시는 것 같아서 세 개의 대학 중에 가장 유명하지 않은 곳을 가야겠다는 마음 하나님이 주셨고 가장 규모가 작은 곳을 가서 그동안 내가 돌아다녔던 수많은 시골교회 병원교회 다양한 목회지에서 사역하고 있는 평신도 분들과 목회자분들 응원해 드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찬양인도학과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학교에서 1년에 딱 10명만 뽑아서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서 수많은 목사님 전도사님 사모님들 그리고 청년부터 50대 장로님들까지 저에게 보컬 레슨도 받고 피아노도 배우면서 또 무엇보다 고난이 축복인 것을 노래하는 사역자로 함께 훈련을 한 지 딱 3년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학생들도 가르치면서 또 다음 세대 사역으로 하나님이 월드비전 합창단 대전반을 62년 만에 최초로 만들어 주셔가지고, 지휘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9살 어린이부터 중학생 친구들까지 또 저에게 합창 발성을 배우면서 우리가 노래할 수 없는 곳까지 찾아가 대신 노래를 해드리자 하고 꼬마 사역자들을 음악으로 훈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목소리로 뭘 하고 있냐면 테레비에 한 번 나왔습니다. 어디 나왔냐면 어디 나왔을까요? 미스터트롯에 나왔습니다. 영탁 씨의 코러스를 제가 했는데 영탁 씨가 제가 결승전 무대 때 성악으로 이렇게 코러스를 했으면 좋겠다. 해 가지고 제가 코러스를 했더니, 영닥 씨가 삼 등 할 뻔했는데 땜에 이 등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뮤지컬 음악감독을 전공해 가지고 뒤로는 또 뮤지컬 발성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또 특별히 미국에 왔잖아요. 브루드웨이가 가까운 집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뮤지컬 음악을 하나를 준비했는데 어떠실까요? 그러면 오늘 교회 또 처음 나오신 분들도 계실 수 있으니 교회에서 그런 걸 들을 수 있구나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뮤지컬 발성은 성악이랑 좀 다르거든요. 제가 시민분들에게 이렇게 발성법을 가르칠 때 아주 쉬운 방법으로 성악은 입안에 우리 울림을 가장 많이 올린다고 생각한다면, 뮤지컬 발성은 비강의 울림도 적절하게 믹스를 해야 된다고 제가 설명하면 쉽게 알아들으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한번 성악 발송과 뮤지컬 발송을 좀 섞어서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띵커브미를 한번 열심히 한번 해보겠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앉으셨다 문화 수준이 높은 미국 브로드웨이 옆에 있는 달라스에 왔습니다. 제가 사실은 지금 시차 적응이 하나도 안 돼 가지고 밤을 꼴딱지세고 앉았더니,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지만,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 날이다. 하고 최선을 다해서 한번 목청껏 해봤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발성을 학생들에게 그리고 시민분들에게 가르친 지 벌써 20년 넘게 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발성을 가르치다가 놀라운 사실은 저의 인생이 다 실패이고 저주인 줄 알았는데 이 성대 옆에 다양한 연골이 붙어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나는 울 때 노래를 진짜 잘할 수 있는데, 하나님이 다양한 연골 중에 이제 크라임 창법이라고 뮤지컬에서 쓰는 상법이 있는데, 크라임 창법을 나에게 발전시켜 주시려고 다양한 경험을 주셨던 거였구나 하고 깨달으니까 저의 인생이 실패와 저주가 아니라 발성법을 만드신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알고 다 은혜로 바뀌었습니다. 제가 지금 몇 살인 것 같으세요. 29 정답이라고 하고 싶지만 제가 이제 잘 들어보시면 제 나이를 맞출 수 있습니다.

제가 14살에 서울에 살고 있을 때 저희 아빠가 1947년에 태어나셨는데 당시에 음악을 굉장히 전공하는 걸 반대하시는 할아버지 밑에서 저희 아빠가 플룻이라는 악기를 전공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빠가 친구네 집에 이제 쫓겨나 가지고 집에서는 딴따라 소리 듣고 친구네 집에서 연습을 하기 시작했는데 친구는 여러분 너무 잘하시는 금난세 아저씨 혹시 아세요. 아저씨네 집이 그 당시에 정릉집이셨는데 집에서 아빠가 함께 훈련도 받고 연습도 하면서 유학을 계획하셨습니다. 아빠가 유학을 이제 아저씨와 함께 갈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유학 가던 날 저희 아빠는 할아버지가 끝까지 반대하셔 가지고 한국에 남게 되었고 아저씨는 유학을 가자마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휘자가 되셨습니다. 저희 아빠 한국에 남아서 KBS 관현악단을 들어가셨는데.

당시에 관현악단이 뭘 했냐면 전국 아빠 이거를 이제 고품격 음악 프로그램이니까. 관현악단이 불었습니다. 저희 아빠는 한량같이 이렇게 티비에만 나오는 음악가로 생활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늘 친구가 부러워 가지고 유학도 안 가 안 갔다 온 몸으로 연주자가 아니라 지휘자가 너무너무 되고 싶으시니까 오케스트라를 세 개나 만드셨어요. 아시는 분 아시겠지만, 단원의 수가 100명이 넘어가던 어느 날 모든 단원의 월급이 저희 집에 빚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차렸던 피아노 학원이 쫄딱 망하면서 저희 집이 마지막 이사 간 곳이 서울의 신월동이라는 곳이었는데. 새로운 달동네라는 뜻을 가진 동네였습니다.

반지하 빌라 사람들이 창문을 열면 걸어다니는 발이 다 보이는 아주 낮은 저지대에 10이 평 정도 되는 아주 작은 빌라에 마지막 이사를 가는데 저희 엄마가 그때부터 아빠가 만들어 놓은 빚을 갚기 위해서 공장을 다니기 시작하던 어느 날 저희 아빠가 평생 바람을 피고 사셨는데 할렐루야 저희 엄마가 누구랑 바람을 피는지 다 알 정도였는데 우리 엄마에게 고마워해도 모자를 판에 어느 날 술을 드시고 온 어느 날 저희 아빠의 의처증이 너무 심해진 어느 날 제가 잠을 자고 일어났다 그랬더니, 우리 집이 그냥 엄마 아빠가 싸운 정도가 아니라 지옥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엄마가 밤새 생명의 위협을 느끼시고 칼들을 보자기에 싸서 보일러실에 던져놨고 뒤에서 얼마나 맞으셨는지 뒤통수가 없어졌고 눈알이 다 튀어나와 있고 입술은 다물어지지 않고 옷걸이 다리미 유리과 온갖 물건으로 밤새 만신 차이가 된 채로 맞으신 엄마를 본 그날 저는 하나님을 모르는 아이였기 때문에 감정의 선택을 잘 못 했던 것 같아요. 아빠를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희한한 감정이 찾아왔습니다. 이 모든 일이 다 나 때문에 나 때문이다. 내가 엄마를 밤새 지켜주지 못해서 이렇게 됐다. 내가 잠을 자지 않았더라면 죄책감이 쌓이기 시작하고 6학년짜리 남동생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림만 그리기 시작하더니, 초기 자폐 증상 이상하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내 동생도 우리 엄마도 내가 책임져야 되는 거구나 이상한 책임감이 생겼던 어느 날 저의 인생에 첫 번째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엄마를 이 집에서 탈출을 시켜야겠다. 엄마가 하루만 맞은 게 아니라 며칠을 맞으셨기 때문에 날계란으로 온몸에 멍을 빼주던 어느 날 엄마 집을 나가서 아빠가 절대 못 찾는 곳으로 도망간 다음에 전화도 하지 마 그랬더니, 정말로 엄마가 제가 싸 놓은 짐을 갖고 집을 나가셔서 14살부터 저는 엄마 없이 자라게 돼요.

이었습니다.

아빠가 며칠을 키우시다가 못 키우니까 저와 남동생을 무궁화호 기차를 태우러 서울역을 데려가신 그날 가장 부자인 친척집에 내려가라고 하셔서 저는 울며 겨자 먹기로 눈물을 머금고 큰 트렁크 가방 하나를 가지고 남동생과 함께 가장 부자인 친척집인 대전에 내려가 살게 돼서 대전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의 삶이 낯선 땅에서 대전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어떻게 이곳에서 살게 됐는지 저는 잘 모르지만 다양한 사연으로 지금 이곳

계신 줄 믿습니다.

저는 원하지 않던 낯선 땅에서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다 이곳에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정말 부잣집인 큰집에서 한 번도 제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무서운 큰아버 그리고 또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옛날엔 도시락을 싸갖고 다녀게 됐었는데

도시락을 안 싸주셔서 배가 너무 고프다가 배가 너무 아프다가 장티푸스가 걸리기 시작하는데 병원을 갈 수 없는 신세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의료보험 카드가 옛날에 있어야 병원을 갈 수 있었는데, 동거인으로 저희를 등록을 해 놓으셔서 병원을 갈 수 없는 처지가 된 거란 그날 마음에 한이 맺히기 시작하고 의료보험 카드 하나 만드는 것이 저의 유일한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고 있던 어느 날 제가 사실은 친구들이 때린 게 아니라 한 집에 살고 있는 큰집 아들이 저를 너무너무 미워했기 때문에 코피가 멈추지 않던 어느 날 영양실조가 찾아오기 시작했고, 배가 너무 고프고 배가 아프다가 지금까지 영양실조 후유증이 하나가 탁 남아있는데, 이제 왼쪽 귀에 2명이 저의 친구가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걱정하시는 것 같아서 텍사스 스테이크를 먹었더니, 괜찮습니다. 그저께 먹었습니다. 소고기를 먹으면 조금 괜찮고 여기 유스타키오간에 혈관에 혈액이 잘 못 올라오는 2명이 있어서 모니터 스피커가 없으면은 좀 힘든 그리고 집회가 끝나면 이렇게 귀가 다 막혀있는 것 같은 2명이 저에게 친구로 남아있지만 이게 20년 넘었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옛날에는 앞도 잘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고 어디 문제가 생기면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속으로 다 삭히는 아이였기 때문에 저는 이러다가 죽는 줄 알았습니다. 오늘 살아 있으면 내일은 죽는 거겠구나 그렇게 살고 있던 어느 날 겨우겨우 고등학생이 되었는데 드디어 한 분이 저를 발견해 주셨습니다. 이분은 어렸을 때 가난한 상황에서 성악을 전공하시고 그리고 결국은 개척교회 사모님이 되신 선생님이셨습니다.

이 선생님이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니까 너무 감사해서 이걸 나만 누리면 안 되겠다. 나 같은 아이를 찾아서 나눠줘야겠다고 결단을 하신 거예요. 저는 절을 다니는 사람도 보고 무당을 찾아가는 사람도 봤지만 우리 선생님처럼 하나님 믿는 사람을 처음 봤습니다. 저의 어린 마음속에 세상 신을 믿는 사람들은 내가 잘 먹고 잘 살으려고 신을 선택하는 것만 봤지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내가 받은 구원의 기쁨을 남에게 생판 모르는 남에게 나눠주는 사람들이구나 오늘 그런 분들 다 모이신 좀 있습니다.

그런 우리 선생님 한 분에 크리스찬의 결단으로 저는 발견되어져서 무료로 공짜로 밥을 먹여주시고 무료로 성악 레슨을 1년 동안 시켜주셔서 선생님이 나온 대전에 있는 목원대학교의 원서 합의를 써주셔가지고, 합격 그래서 성악과 학생이 딱 돼가지고 의료보험공단을 갔는데 당연히 의료본 카드를 만들 줄 알았더니, 우리 아빠 이름을 치자마자 우리 아빠가 만들어 놓은 엄청난 빚이 저에게 다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빠가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잘 살아보고 싶었거든요. 다 망치는 것 같았는데 학교를 휴학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집에 찾아왔던 빨간 딱지를 붙였던 사람들이 학교까지 와서 붙일까?

봐 너무 무서워가지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겁을 먹고 돈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학교에 휴학계로 낼려고 갔더니, 그 학기 성적표가 4.5 가 나왔어 안 믿으실까 봐 오늘도 갖고 왔습니다. 할렐리아 제가 4.5 를 맞았는데 전 과목에서 자꾸 성실하다고 저를 봐주셔가지고, 수많은 교수님들이 쟤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애 근데 저는 그냥 집이 없어가지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는데, 수많은 교수님들이 저를 성실하다고 봐주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난데없이 교수님이 독일 유학 준비를 시켜주시기 시작한 어느 날 성악하는 학생으로는 최고의 길을 안내받기 시작하고 이 년 동안 독일 유학 준비를 하는데 어느 날 엄마의 소식을 듣게 되고 그때부터 행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서울 뚝섬 근처에서 어떤 아저씨를 만나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재혼했다는 것을 안 그날 어린 마음에 엄마에 대한 배신감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더 큰 자격증과 피해의식이 생겼습니다. 아빠가 성인이 된 저를 찾아오셔서 저를 은행으로 데려가시고 제 이름으로 대출을 자꾸 받기 시작하셔서 저는 그냥 나를 아무도 이 세상에선 지켜주는 분이 없다라는 더 큰 자격지심을 가지고 마지막 유학 준비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있던 어느 날 드디어 유학을 가기 1주일 전이 되었는데 드디어 저에게 처음으로 예수님 믿는 분들이 느끼는 감동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밥 먹기 전에 기도를 하는 사람들 차를 사면 운전대를 붙잡고 기도하는 사람들 먼저 기도부터 하는 크리스찬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떠올랐습니다.

내 하나님은 없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생님의 하나님께 한 번은 기도하고, 유학 가자 그래서 다음날 평일이라서 열린 예배 딱 하나 새벽 예배 갔다가 드디어 망가진 저의 귀를 뚫고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마음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날 자꾸 목사님이 하나님이 내 아빠라고 설교를 해주시는 거예요. 안 믿겨져서 이 일 3일 계속해서 가다가 소망이라는 게 생겨 가지고 글쎄 저에게 인생의 두 두 번째 결단을 하나님이 하게 해주셨습니다. 앞이 너무너무 잘 보이는 유학길이 시시해 보이기 시작하고 앞이 너무 잘 보이니까. 이대로 걸어가다가 이렇게 너무 시시해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도 앞이 보이지 않는 내 새벽 예배 가는 길이 너무 멋있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앞이 안 보이니까.

그날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답을 얻어 하루를 걸어가고 또 답을 얻어 하루를 걸어가는 나의 새벽 예배 가는 길이 너무 신령해 보여서 교수님께 찾아가 유학을 포기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새벽 예배 1년을 학교처럼 다니고 싶다고 한 그날 우리 교수님이 아주 우아하게 저에게 미쳤구나 돌아왔구나 너 어디 이단에 빠졌냐 난리가 나신 거예요. 교수님이 미련하다 소리를 1년 동안 해주시면서 저는 유학 대신 1년 동안 미련하게 365일 새벽 작정을 22살에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벽 예매를 마치고 365일 작정을 마쳤는데 하나님이 광고 하나를 보여주셨어요. 대전시립 합창단이 10년 만에 소프라노를 뽑는다는 거예요. 친구가 제 손을 붙잡고 시험 보러 갔다가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그날따라 하이소프라노를 뽑는데요.

제가 하이가 났습니다. 그래 가지고 글쎄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합격 유학 갔다 오신 분들이랑 경쟁을 해 가지고 글쎄 시골에 어느 청치마 입은 제가 합격을 한 기가 막힌 놀라운 사실이 되었습니다. 글쎄 대전시립 합창단인 구 급 공무원을 시켜주는 거예요. 노래를 하는데 월급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년을 돌아봤어요. 레슨을 받은 적도 없고 여전히 가난하고 외롭고 배고팠는데 상황과 환경의 개혁이 먼저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은 나의 심령의 개혁이 먼저라는 것을 알려주신 순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상황과 환경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지만 저의 심령이 어린아이가 되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하나님 사랑을 1년 동안 의심하지 않고 누리고 있었습니다.

하늘 사랑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누리기 시작하니까 저에게 있던 빚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 갚은 것도 아닌데 갚아 나가 한다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2월급을 조금씩 모아서 드디어 내 집 마련하게 해주셨습니다. 토론 월셋집 마련했습니다. 군대에서 돌아올 남동생과 함께 살 멋진 집을 마련해서 우리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꺼내먹는 놀라운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선풍기를 마음대로 틀 수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 어느 날 영안의 눈까지 열어주셔서 교회에서 북을 치는데 마귀가 떠나가게 하는 드럼 오빠랑 결혼을 했습니다. 할렘루야 한국의 희망 달라스의 희망 뉴욕의 희망 LA의 희망은 교회 오빠입니다. 정말입니다.

세상에 나간 오빠들은요, 자기 자랑만 하는데 교회에 온 오빠들은 손을 멋지게 들고 눈물도 흘리고 하나님께 항복하는 멋진 오빠들 안경에 낀 때조차 신령해 보이는 멋진 오빠들 오늘도 많이 모이셨는데 박수 한번 쳐주세요. 우리 브라더 우리 오빠들 너무 감사한데 그중에 제일 멋있는 오빠는 드럼 오빠입니다. 우리 드럼 오빠는 당시에 유희열의 스케치북 윤도현의 러브레터 바비킴 휘성 바이브 박효신 뭐 이런 사람들의 드러머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남편은 6학년 때부터 홀어머니 모시고 힘들게 드럼치며 살고 있었고, 저는 친정도 없는 사람이잖아요. 저희가 결혼을 한 게 너무 감사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한번 따라 해 보실까요?

감사하면 결단해야지 하나님이 기도를 하게 해주신 그날 제가 이렇게 얘기했어요. 오빠 우리 이렇게 결혼한 거 너무 감사한데 오늘부터 우리 교회 꽃꽂이 우리가 하자 이거 했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이 있는 거예요. 오빠 교회에 건반이 고장 났 때 우리가 바꾸자 바꿨는데도 다시 채워 꼬지지가 않는 거예요. 근데 제 입에서 어느 날 오빠 세상에서 드럼 치는 거를 그만두자 미쳤구나 미친 게 아니라 세상에서 드럼 치는 게 나빠서 그만두자고 한 게 아니라 모든 것에 달란트까지도 죽거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게 하시면 하는 거고, 하나님이 가게 하시면 가는 거고, 이 모든 주권을 주인을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돌려드리자 하는 마음으로 금그르든 그릇 아니어도 깨끗한 그릇이면 하나님이 사용하신다고 하니까 저희 합창단 아주 작은 월급을 가지고 우리 홀어머니 시어머니와 군대에서 돌아온 저희 남동생 희한한 사돈과의 조합이 시작되어져서 아주 가난하게 신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딱 7년이 지나 하나님이 더 놀라운 기도를 하게 해주셨어요. 따라해 보실까요? 하나님 무슨 일을 만나도 감사할래요. 이 기도를 한 그날 기도 제목 주권도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니까 내가 원해서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은 제 입술에서 내 가장 좋은 달란트는 피아노 노래 아니라 감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감사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기도하던 어느 날 3개월이 지나 9월 15일 우리 두 명의 아이가 감기가 폐렴으로 변해서 한 병실에다 입원을 시켰는데 무려 30일 동안 폐렴이 안 나서 한 병실에다 입원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딱 한 달이 지나 10월 15일 우리 두 명의 아이가 태어나는 행복한 날 집에 오랜만에 데리고 와서 첫째, 5살짜리 우리 은찬이를 씻기고 둘째, 딸을 씻기고 있는데, 밖에서 신나게 놀던 은찬이가 정적이 흐르는 것처럼 조용해졌습니다. 은찬이를 찾으러 방문을 열고 탁 들어갔더니, 방 안에 연기가 가득 차 있고 우리는 자니가 온몸에 물이 묻은 채로 물 묻은 젓가락을 한꺼번에 220 볼트에 집어넣어서 전기 감전이 돼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젓가락이 하나는 꽂혀있고 하나는 나와 있고 숨을 안 쉬고 있는 은찬이의 심장을 누르고 인공호흡하는데 안 일어나면서 몸 안에서 터지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러자 마지막에 팍 터지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몸 안에서 대소변이 와르락 쏟아져 나오는데 몸 안에 전기가 있을 땐 숨을 안 쉬고 있다가 전기가 빠져나갔는지 글쎄 애가 들숨을 크게 쉴라고 할 때 다시 인공호흡을 하고 심장을 누르는데 온몸에 전기 맞은 사람의 모습을 다 보여주면서 은찬이의 숨이 다시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119에다 전화를 걸어 가지고 젓가락을 넣었다고 얘기를 해야 되는데 얘가 죽었다 살았어요. 죽었다 살았어요. 그랬더니, 소방관 선생님이 그냥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알라고 난리를 치시는 하는 거예요. 전기가 이 젓가락 하나만 넣어도 뇌가 찌그러지는데 그냥 눈을 뜨고 얘가 눈동자로 돌아가는 걸 보더니, 너무 깜짝 놀래시는 거예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그런데 얘가 너무 젓가락을 오래 잡고 있었다는 거예요. 런닝 셔츠 하나를 벗겼는데 젓가락이 하나가 가슴 바깥쪽 스치고만 갔는데도 이 도 화상이 크게 나 있는 상태였습니다.

대전에서 치료할 수 없어서 서울에 있는 화상전문병원 한강성심병원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기가 관통한 은찬이를 이 주 동안 뇌와 장기의 손상 부위를 계속해서 찾아내려고 하는데 정말 희한하게 손상이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고 안타깝게 손가락만 열 손가락이 뜨거운 물을 붓고 찬물을 부어도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그날 이 주 만에 열 손가락 신경과 관절이 끊어진 장애 판정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새끼손가락은 한마디가 늘러붙어 없어졌고 네 번째 손가락은 한 마디 뼈가 보이고 있는데, 이 뼈가 점점 시커매지더니, 뼈에도 수분이 있다는 것을 저는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수분이 쫙 빠진 어느 날 모양만 남아있는 은찬이 손가락을 의사 선생님이 툭 치고 하고 부르니까 내 눈앞에서 내 아이의 한 마디의 뼈가 가루가 되어 바스라져 없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엄마랑 헤어질 때 흘리던 눈물이 가장 깊은 눈물인 줄 알았는데 내 아이의 한마디에 뼈가 없어지는 걸 본 그날 배꼽부터 오열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은찬이 남아있는 손가락 살려주세요. 기도하고, 싶은데 하나님이 저에게서 황당한 기도를 나오게 해주셨습니다. 걸어다니는 병실에 있는 사람들 중에 마른뼈 같은 사람이 너무 많은 거예요. 수분이 빠져있고 생기가 없고 아무 의미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말씀을 들었는데 감동이 없어요. 심장이 죽어서 뛰지 않아요. 말씀에 반응하지 못하는 사람들 찬양을 부르는데 눈물이 나지 않는 사람들 전도를 받았는데 교회 가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을 받는데 도와주고 싶지 않아요.

하나님 우리가 감정으로 살아가지 않게 하시고 이성으로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감동으로 살아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기 시작한 어느 날 한 번도 기도하지 않았던 북한의 아이들을 하나님이 감동을 주셔서 북한의 아이들을 살려달라고 하나님이 기도를 지키셨습니다. 황당한 기도를 하기 시작한 어느 날 은찬이의 손가락은 안중근 선생님과 똑같은 모양이 되어져서 남아있는 뼈라도 살려야 된다고 배꼽 옆을 뚫고 심는 대수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엉덩이에서 살을 계속해서 떼다가 열 손가락에 이식하고 네 번째 손가락 심고 이식하고 가슴 바깥쪽 두 군데 이식해서 엉덩이에서 피가 마를 날이 없고 살이 다시 나면 간지러워서 항의 비타민제와 해열제를 수십 일간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낙심 대신 갖고 들어간 성경책으로 다시 저에게 감동을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성경처럼 꾹 짜면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나오는 병원 일기를 써야겠다. 이 일기를 나중에 은찬이가 보고 나쁜 기억이 아니라 하나님과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소망 하나를 가지고 세 번째 인생의 결단을 하고 다시는 보고 싶 쉽지 않은 장면까지 사진을 다 찍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의 작은 결단을 기뻐하셨던 것 같아요. 10년 뒤에 만날 귀한 성도님들을 예약해 놓으셔서 오늘 이곳에서 귀한 성도님들과도 사진을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번 같이 보실까요? 다시 태어난 지 하루도 안 됐을 때 사진이구요. 다음 사진 보시면 대수술을 처음 한 날 찍은 사진입니다. 이때부터 온몸이 붕대로 감겨져서 일자로 누워 지내기 때문에 누워서 대소변을 받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사진 보시면 링거 바늘은 아시는 분 계시겠지만, 5일마다 최소 5일마다 한 번씩은 갈아줘야 되니까. 혈관을 계속 찌르다 보니까 혈관이 다 숨어서 찌를 데가 없어져서 목에 있는 혈관의 링거를 막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사진 보시면 겉에 있는 붕대를 풀었더니, 얼굴 빼고 온몸이 은 붕대인 은찬이를 짓게 되었소 있습니다. 다음 사진 보시면 이제 주부와 함께 은찬이 사진을 찍었는데 한강성심병원은 꼭대기에 교회가 있더라고요. 이 교회에 있는 목사님이 저를 찾아오시더니, 최악의 환자가 입원했다고 들었는데 얼굴이 애같이 밝은 엄마가 있다고 소문을 들으셨다는 거예요. 이 엄마가 미친 엄마인지 충만한 엄마인지 보고 싶다. 오셔가지고, 글쎄 저를 보시더니, 특송을 한 번만 하래요.

화상 환자들을 다 모아놨다고 그래서 제가 특송을 하러 위로 올라갔는데 주부와 함께 은찬이를 사진을 찍고 내 앞에 있는 수많은 재난 현장 화재 현장에서 사고를 만나 화상 환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무슨 노래를 하죠. 기도할려고 하는데 내 안에 저장해 놓으셨던 이사해서 43장 말씀이 딱 떠올랐습니다. 니가 어디서 노래해도 나는 상관이 없어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부르지 않았냐 세상에 얘기했다. 나는 니꺼 난 너는 내 거라고 너는 나의 영광이고 너도 나의 영광이다.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주차 봉사를 하는 자리면 자리에서 설거지를 하는 자리면 자리에서 그냥 내가 심겨진 것을 봐 보기만 해도 기뻐하시는 하나님 지으신 목적대로 영광받으신 하나님 앞에 나의 인생에 처음으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는 찬양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찬양을 하고 눈을 떠서 나의 가장 좋은 무대는 예술의 전당이 아니라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 곳임을 나에게 가장 큰 기쁨임을 확인시켜 주신 그날 항상 하나님은 눈앞이 보여서 결단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먼저 결단을 먼저 시키신 하나님 앞에 전도 여행을 떠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이 한 사람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하다가 10년 동안 열심히 다닌 합창단 지금도 한국에서는 20 수를 해서 들어가는 합창단에 사직서를 내고 저는 당당하게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은찬이 병원 들어오기 딱 3개월 전에 제가 새벽 예배 마치고 아무 데서나 전화 오는 데서 글쎄 우리 은찬이 보험을 들어놨더라구요. 이분이 전화 오셔가지고, 어머니 보험 씨 5시작됐어요. 이제 받으셔도 돼요. 하는데 제가 은찬이 지금 화상으로 입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분이 더 깜짝 놀래시는 거예요.

제가 아무거나 들은 보험이 어린이 화상 특혜보험이래요. 제가 전화를 받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한번 같이 외쳐보실까요? 여호와 이래 우리 하나님은 감당할 수 있으니까 주시는 거구나 다 준비시켜 놓으셨으니까 그건 내가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인생의 모든 슬픔과 아픔을 다하신 하나님이 먼저 진거를 겪으시고 내가 이 길을 기쁘게 순종하며 걸어가길 원하시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여호와 이름임을 드디어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월 보험회사에서 돈을 받아 은찬이 대수술을 세 번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사진 한번 보실까요? 안타깝게 대수술을 세 번을 했더니, 합병증이 찾아오기 시작해서 합병증을 막으려고 소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독을 하려면 하루 전날 금식하고 다음날 전신마취제를 맞아요.

스르르 잠이 들면 음압실까지 애를 끌고 끌고 내려가는 길이 천 리길 갔습니다. 스르르 잠이 들면 얘를 들여보내고 바깥에서 말씀을 읽으며 애타게 은찬이를 기다리고 있다가 온몸에 소독을 하고 나오면 눈을 뜰 때까지도 애타게 기다립니다. 드디어 눈을 뜨면 반나절을 놀아주다가 반나절 뒤에 입에 물 한 방울 넣어주면 그날 하루에 소독이 끝나는 것을 이틀에 한 번씩 20번 넘게 하게 되었습니다. 거의 매일 전신마취제를 맞을 때 낙심하기 딱 좋을 때 은찬 입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엄마 나 수술실에 혼자 안 들어가잖아요. 나랑 의사 선생님이랑 예수님이 1004 네 명 넘게 들어가요 어떤 천사는 어떻게 생겼고 어떤 천사는 어떻게 생겼고 1004의 모양이 다르다는 것은 자네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는 그날 뒤통수를 한데 맞는 것 같았어요.

내 자녀에게 가장 좋은 보호자는 내가 아니라 수술실에도 한번 밖에 들어가시는 하나님 한 분뿐이시구나. 인생 끝나는 무덤 가는 그날까지 인생과 함께하는 유일한 보호자는 세상 어떤 신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우리 하나님 한 분뿐이신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믿으니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은찬이의 얼굴이 글쎄 죽기보다 보기 싫은 아빠 얼굴로 보이는 기적이 일어났어 저한테는 이게 정말 기적이거든요. 많은 분들이 아빠를 어떻게 용서했냐 거짓말 아니냐 오은영 박사님을 만났냐 저한테 얘기하시는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자녀에게 가장 좋은 보호자이신 하나님을 안 그날 엄마 아빠에게도 보호자이신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내가 보는 엄마 아빠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는 엄마 아빠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자녀들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보는 엄마 아빠를 발견하시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은찬이 입술에서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빠를 찾기로 결단을 하고 은찬이가 어느 날 저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엄마 나는 소풍을 왔어요. 이게 왜 소풍이야 그랬더니, 엄마랑 하루 종일 같이 있으니까 소풍을 다니고 있는 것 같아요. 금식 안 하는 날은 바로 앞에 영등포 시장에 유모차를 일자로 개조해서 떡볶이 사 먹고 순대 사 먹고 다시 들어와서 링거를 다시 갈아끼고 눈을 뜨면 엄마가 보이고 눈을 감아도 엄마 보이고 엄마랑 하루종일 같이 있으니까 소풍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그날 은샤녀와 이렇게 외쳤습니다. 한번 따라해 보실까요?

소풍이면 누려야지 인생의 보호자가 함께하고 있는 것을 알면 인생은 나그네 길이 아니라 소풍길이구나 그러면 푸른 초장이 병원 밖이 아니라 하나님 함께 계시는 이 병상에서도 푸른 초장이 될 수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 날이 되어져서 소풍기를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은찬이는 더 최악의 상황이 되어져서 다음 사진 보시면 열 손가락에 철심을 넣게 되었고 더 좋아질 게 없어서 갑자기 퇴원을 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전신마취제를 이대로 맞다가는 전신마취제 때문에 사망할 수 있다. 그래 가지고 갑자기 걷는 재활 훈련을 했습니다. 걷기 시작한 날 그것이 응답이라고 생각하고 철심을 다시 빼고 네 번째 손가락을 보여주셨는데 뼈가 다 보이는 거예요. 집에 가가지고 한 이 정도까지 시리면 그때 병원을 다시 오래요.

왼팔을 그날 절단하자고 하시더라구요. 최악의 상황으로 오른손에 붕대를 풀고 마지막 퇴원 준비를 마쳤는데 글쎄 오른손의 붕대를 푸른 그날 안 믿으실 수도 있지만 은치하니 오른손가락이 까딱까딱 움직이는 놀라운 일을 보게 돼요. 노란 풍선에 막대기를 껴서 잡아보라고 하시는데 간지럽다고 외치는 은찬이의 손가락을 확인한 그날 은찬이의 손가락이 붕대 안에서 어느 날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하나님이 살려놓고 계신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의사 선생님들의 노력과 1000명의 기도 군대와 하나님이 삼겹줄이 되어 주셔서 은찬이의 손가락이 살아난 걸 본 그날 눈으로만 봐야 응답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붕대 안에 있을 때 안 보일 때도 여전히 멈추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응답인 줄 믿습니다.

한 번도 멈추지 않은 하나님이 왼손의 아랫둥이도 살려주시고 글쎄 엄지 검지를 완벽하게 살려주셔서 장애 판정이 취소되는 억울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개가 통째로, 살아나서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얘기했어요. 얘는 군대를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손가락이 탄생했는데 한번 같이 보실까요? 이 손가락이 탄생했습니다. 이 세 개의 손가락은 맨 위에 마디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아랫마디부터 꺾여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이 손가락을 가지고 다시 예배당으로 온 날 성찬식이 열렸습니다. 여러분 해보셔서 아시겠지만, 하나의 떡과 하나의 포도주를 온 성도가 함께 나누어 먹는 날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애요.

함께 나누는 그날 이 먼지 같은 우리를 여러분 비행기 다 타보셔서 아시겠지만, 땅을 내려다보면 제일 먼저 안 보이는 이 사람을 이 먼지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찾아내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찾아내셔서 오늘 영상을 보고 계시고 이 자리에 앉아 계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찾아내셔서 이 먼지 같은 사람의 몸으로 지은 죄 마음으로 지은 죄를 글쎄 수천 년 전에 미리 아시고 물가피를 탔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살려주신 다음에 부활을 하시고 그것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이 땅에 다시 올 것이다. 안 보일 때 믿는 믿음이 더 큰 믿음이다. 기다려라 말씀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내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 땅이 팔리고 합격하는 것으로 십자가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은찬이 손가락 같은 연약함으로 십자가를 붙들면 나는 약하지만 주님만 강하신 분입니다. 라고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는 놀라운 복음의 통로로 우리에게 연약함을 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 연약함을 주신 주님께 가장 크게 엉망의 박수 올려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은찬이의 손가락은 십자가를 붙을 수 있는 하나님이 강하심을 드러내게 할 수 있는 놀라운 복음의 통로가 되었다는 것을 믿고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의 손가락을 창피해하거나 숨긴 적 없는 멋진 교회 오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남편을 통해 음반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나와서 네 번째 결단을 씁니다.

하나님 제 목소리가 북한에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갈 수 없으면 목소리라도 가게 해주세요. 그리고 남편을 통해 음반을 만들게 되었고 생각지도 못한 작곡가가 나타났습니다. 저희 남편의 사랑하는 제자 한 사람이 작곡을 저에게 계속해서 해주고 그리고 최근에는 목사님이 되면서 만든 찬양 은혜라는 찬양을 함께 부르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시간에 이 찬양을 부를 텐데 글쎄 우리 하나님께서는 아직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결단한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결단하고 나온 이 자리에 우리는 놀랍게도 동역자를 만났습니다.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인생에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동역자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공동체로 복음의 공동체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이곳에 여기 살아계시는 줄 믿습니다.

그것을 경험하고 저는 음반이만 들어지게 되었고 다 만들어졌을 때 글쎄 놀라운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7~8년 동안 안 나왔던 7~8년 동안 찾아도 안 나왔던 아빠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만나자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아빠의 전화를 받은 그날 아빠가 아주 차갑게 저한테 이렇게 얘기하셨어요. 니가 나를 어떻게 용서하냐? 그러시는 거예요. 근데 저는 이제 드디 드디어 아빠의 본심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나 좀 용서해 줄래 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맞아서도 울어보고 배고파서도 울어보고 돈 없다고도 울어봤는데 아빠와 함께 가장 맛있는 회복의 눈물을 흘리고 저는 찬양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해 주셨습니다.

내가 가는 곳에서 만나는 귀한 성도인들에게서 내가 맛보니 맛있는 회복의 눈물을 함께 맛보게 하리라 약속하신 하나님이 오늘 이 자리에 저를 붙잡고 여기 오신 줄 믿습니다. 이 시간 회복의 셈이 터질쯤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니라 썩어질 기쁨이 아니라 나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구원해 주실 영생의 기쁨을 가지고 이 시간 노래할 때 우리에게서 놀라운 부흥이 시작될쯤 있습니다. 우리 그렇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 올려드리고 찬양하겠습니다.

우리를 이 낯선 땅에서 복음의 덤거로사고 심어가는 게 우리 영마의 방수 우리를 구원해 주셨음을 감격하면서 함께 찬양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나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영광의 박수 올려드립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때가 있는 좀 있습니다. 오늘 내가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을 수 있으며 오늘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때인 좀 있습니다. 저는 은혜 때에 아빠를 만났고 그리고 음반이 나오기 한 달 전에 엄마랑 같이 살고 있는 아저씨도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아저씨가 자기 발로 교회를 가서 영접 기도를 받으시고 짧게 얘기하자면 다음날 돌아가셨습니다. 배에 복수가 있는 걸 모르셨다가 기가 막힌 하나님 했대 예수님 영접하시고 그다음날 본인도 몰랐던 복수가 다 터지셔서 글쎄요 어제 붙잡은 목사님 손을 붙잡고 지옥이 아니라 천국으로 아멘 하고 입성하셨습니다. 저희 엄마가 천국 있다. 절대 믿지 않는 엄마였는데 아저씨의 마지막 얼굴이 딱 1004 같더래요.

너무 행복한 얼굴 20여 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저씨의 마지막 얼굴을 보고 다 천국 가야 된다고 외치는 복음 전도자가 되셨습니다. 저희 엄마가 혼자가 되어져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대전으로 모시고 오게 되었고 또 어떻게 할까 기도하다가 아빠를 소개시켜 드렸습니다. 23년 만에 하나님을 만난 딸 때문에 낯선 대전 땅에서 엄마 아빠가 한상에서 밥을 먹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서로를 너무 걱정해주고 배려해주고 과거를 완전히 잊어버리신 우리 엄마 아빠가 아직 한 집에 살진 않으셔서 저는 아직도 친정은 없습니다. 제가 가운데 동네에 살고 엄마 아빠가 양쪽 동네 원룸에 사세요. 그런데 옛날엔 너무너무 슬펐거든요. 나는 왜 친정이 없을까? 어디 갔다 돌아오면 나도 친정 있었으면 좋겠다. 김치 한번 먹어보고 싶다.

늘 슬픈 날이었지만 이제는 절대 슬프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야 될 친정이 1000국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다 천국 가시잖아요. 할렐루야 그럼 다 저랑 친척입니다. 언니 오빠 다 모였어요. 그래서 저의 주제곡이 있는데, 한번 같이 불러봤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정 주지 마시고 천국에 정을 주시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우리 은찬인 5살이었는데. 올해 18살이 되었습니다. 여기 18살에 혹시 있을까요? 내가 니 엄마다 18살이 되었는데 옛날에는 목소리가 예뻤는데 지금은 무섭습니다. 엄마 꿈이 생겼습니다. 재작년에 베이스 기타를 전공하겠습니다. 너무 깜짝 놀랬어요.

손가락 걱정이 됐는데 베이스 기타를 교회에 있는 걸 딱 잡자마자 남들처럼 연주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포기할 줄 알았는데 정말로 피가 나는 연습을 하기 시작하더니, 관절염도 오고 세 번째 손가락은 휘고 있었는데, 조금 더위기 시작하고 포기할 줄 알았는데 글쎄 세상이 정해놓은 주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환경을 자신의 주법으로 만들어서 하나님이 주신 방법으로 멋지게 연주를 하는 은찬이는 베이시스 교회 오빠가 되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불러주시면 은찬이와 함께 오도록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은찬이가 나중에 지금 이제 사역을 하면서 은찬이가 사역자가 돼서 여기 오면 반갑게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은찬이 밑에 두 명의 아이가 더 있습니다.

할렐리야 이것은 축복인 것이 맞습니다. 저희의 세 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하나님이 제가 이사역을 계속해서 할 수 있을까요? 밥도 잘 못 해주고 생일도 못 챙겨주는데 어떻게 할까요? 기도하는데 재작년에 우리 둘째, 딸을 통해서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습니다. 12살이었던 우리 딸이 집 앞에서 걸어가다가 손목이 두 동강이 난 거예요. 넘어졌는데 철심 큰 거를 놓고 대수술을 했는데 수십 바늘을 꼬맨 자국을 모시고 선생님이 이거 상처 평생 없어지지 않을 거야. 하고 쉽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우리 딸이 얘기만 들은 거예요. 엄마 제 상처 평생 안 없어져요 선생님 상처 평생 안 없어져요 선생님이 무슨 얘기를 해야 되나 고민하고 있는데, 우리 딸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것도 우리 엄마가 간증하면 돼요. 팔를랴 오빠 간증만 해서 서운했는데 이제 내 간증도 할 수 있어요.

저희 아이들을 보고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아이를 못 키운다고 이거 슬퍼할 일이 아니었구나 나에게만 주신 상황을 가지고 나에게만 주신 방법으로 아이들을 비교하지 않고 키우면 하나님이 가정 안에서 주시는 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 엄마는 무슨 일만 생기면 하나님을 자랑하는 사람 여러분 옆에 사람에게 얘기해 주실까요? 간증하면 되지 뭘 걱정하십니까? 간증의 주인공 되세요.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다 함께 나오는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영상 함께 보시면서 저희 가족만 보지 마시고 여러분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손을 지금도 붙잡고 함께 걸어가고 있는

확인하는 영상으로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 올려드리고 찬양하겠습니다.

우리 은찬이와 제가 붙잡은 붙잡고 계십니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며 하나님의 손이 되어줍니다. 그래서 다시 살아갈 용기와 힘을 주는 좀 있습니다. 우리 어색하지만 옆에 사람 손 붙잡고 함께 갑시다 이것이 소풍입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사진을 찍고 계시는 좀 있습니다.

하나님이 언제 사진을 찍을지 모르기 때문에 여러분 준비하세요. 하나 슬픈 일이 올 때는 단조의 노래를 부르면 됩니다. 기쁜 날이 올 때는 장조의 노래가 있습니다. 하나님 모든 순간을 통해 우리에게 찬양밖에 앞당한 보내신 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앵콜은 안 하셨지만, 앵콜 마지막으로, 하고 마치겠습니다. 찬양이 두 곡이 있는데, 시간이 벌써 많이 가서 한 곡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곡을 다 하고 싶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아프리카 르완다를 다녀왔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에 가장 최고의 신앙의 경지가 있다면 저는 야구 보석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과부와 고아를 돌보고 세상에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을 내가 도와주는 것이 찬양사역의 경지라는 마음이 들어서 아프리카 루한다를 결단하고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프리카 갈려고 결단하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들어가기 두 달 전에 우리 손목이 다친 둘째, 딸이 집에서 넘어졌는데 발가락이 부러지는 희한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다음에 이 주가 지나 우리 막내가 똑같이 발가락이 부러지는 희한한 일이 일어나서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짠 너무 드라마 같은 일이 하나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제가 르완다를 들어가라는 것입니까? 말라는 것입니까? 기도하고, 있는데, 르완다 들어가기 5일 전 우리 남편이 운동하다가 다쳤는데 무릎에 십자인대가 다 끊어져서 대수술을 하게 된 거예요. 나사 한 알은 평생 넣고 하나는 1년 뒤에 빼는 대수술을 했습니다.

하나님 어떡하자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저에게 딱 이런 마음을 주셨어요. 아주 가난하고 곤고하고 하나님만이 우리 가정의 주인이십니다. 간절하게 외치던 그날 이렇게 외쳤습니다만 따라해 보실까요? 찬양하기 딱 좋은 때 선교하기 딱 좋은 때 하나님이 저에게 20년을 허락해 주셔 가지고 한국의 삼 남매를 놓고 아프리카 르완다를 들어갔더니, 기적처럼 하나님이 아프리카 르완다 고아 삼 남매를 만나게 해주셔가지고, 아이들을 보자마자 이 아이들은 내 아이들이라 강동이 오는 그날 엄마가 되고 싶어져서 아이들을 제가 후원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사진 보시면 우리 가족이 완성했습니다. 한번 같이 보실까요? 저는 육 남매가 되었습니다. 알렐루야 저희 남편이 55살이거든요.

할렐루야 저도 50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근데 하나님이 감사 보톡스를 맞춰주셔서 피부과로 한 번도 안 다녔는데 아직 주름이 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남편의 입술을 통해서 이렇게 얘기하게 해주셨어요. 다산의 축복 임했구려 55세 이렇게 다산의 축복이 다 임하시는 2024년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의 눈이 얼려져서 내가 발견하는 사람을 발견하셔서 손을 붙잡고 함께 이 소품길을 초청하시는 복음의 주인공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함께 찬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결단하실 성도님들에게 이찬양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면 열하와 같은 상원에 힘입어 마지막 칸을 하나 함께 올려드리겠습니다. 오늘 애쓰기에서 37장 5절 6절 말씀을 갖고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제가 표준어 세 번역으로 읽어드릴게요. 나주 하나님이 뼈들에게 말한다. 내가 다시 너희를 살아나게 할 것이다. 살까치로 덮고 생기를 불어넣어 다시 살아나게 할 것이다. 너희가 그때야 비로소 내가 주인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좀 있습니다. 마름뼈 같은 인생에 우리를 다시 살리신 주님께 고통의 순간을 인간에게 왜 주시냐고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 여러분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고통의 순간에 고난의 순간에 저와 우리 가정에 하신 일은 우리를 힘들게 하시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누리게 하시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면 우리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누리게 하시는 수많은 다양한 일에 여러분 초청받으셔서 성경 말씀을 책으로만이 아니라 삼 가운데 체험하는 놀라운 기회 놀라운 사랑을 주신 하나님을 발견하시는 한 해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렇게 미주 땅에서 역사 하셨나님께 영광의 박수 올려드리고 마지막 전화하겠습니다.

지뢰 역사 영광 위해 산과 마지막으로, 다 함께 찬양합니다.
여러분 승리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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