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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규선교사 미주 다니엘기도회 “맡김의 여정” 본문

다니엘기도회/선교사 다니엘기도회 간증

이용규선교사 미주 다니엘기도회 “맡김의 여정”

generalQS 2024. 3. 1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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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반갑습니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예전에 그다음에 한인교회 말씀 집회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근데 그때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너무 좋아하시는 집사님이 교회에 계셨는데 집회 은혜를 받으시면 꼭 강사님을 초청해서 물로 끌고 들어가서 잠수를 시키시는 그런 분인데 그때 저와 아내의 를 이제 식사 시간에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스킨스쿠버 다이빙이 얼마나 좋은지를 이제 설명을 하시는데 저희 아내가 넘어갔어요.

그래서 결국 다음날 약속을 잡고 이제 바닷속에 들어갈 준비를 해서 아내와 제가 이제 그 바다 안으로 들어가는데요. 이게 스킨스쿠버 다이빙은 이렇게 또 뒤에 산소통을 메고 산소 호흡기를 입에 물어야 되는데요. 제가 비위도 약하고 긴장을 해서 그런지 그 산소통 그거 입마개를 입에 대는 순간 꼭 하고 헛구역질이 나오는 거예요. 큰일 났다 물속에 들어가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응급 사태잖아요. 갑자기 식은땀이 나면서 못한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근데 옆에 있는 제 아내의 눈을 보니까 나 혼자 못 들어가는데 어떡해 하면서 저를 보는 듯한 그래서 제가 어떡하지 아내를 실망시키면 안 되는데 그러다가 하나님께 잠깐 기도했어요. 하나님 실은 제 마음이 진정이 안 되고 제 육신이 떨리고 두려운데 제가 제 저를 인도해 주시는 이 집사님의 손을 의지해서 들어가겠습니다. 이 집사님의 손을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다는 걸 믿고 이분의 손에 저를 완전히 위탁하겠습니다라고 기도를 했어요. 근데요.


그럭하고 산소 호흡기 입마개에 입을 넣었는데 숨 쉴 만 하더라구요. 그리고 나서 아내와 함께 바닷속으로 들어갔어요. 그곳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더라구요. 그 한 30분 정도를 바닷속에서 온갖 희귀한 물고기들을 보고 그리고 물 밖으로 나왔는데 아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자기가 무서웠는데 그때 내 손을 잡아주고 가는 이 가이드분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했대요 그러니까 결국 같은 기도를 한 거예요.


그런데 둘 다 그렇게 의지하고 물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볼 수 있 있었던 세 개가 있었어요. 우리가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려움과 귀찮은 마음과 불편한 마음을 넘어서야 돼요. 그런데 그때 필요한 것이 온전한 위탁이라는 것을 저는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다른 분들보다는 인생에서 쫌 좀 극단적인 경험을 좀 많이 했던 것 같애요. 예 죽음의 고비를 넘고 그리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렇게 누비고 다니는 그러한 시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오늘 말씀처럼 여호와를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내 길을 그분께 의지했을 때 하나님께서 여신은 새로운 길을 지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 가운데 이해가 안 되는 경우들도 많았어요. 그리고 제가 그리고 있었다는 그림과는 전혀 다른 그러한 길로 저를 인도하신다고 느낄 때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이야기하는 어떤 기준이나 원칙과는 다른 그러한 길로 주님이 저를 인도해 가실 때 저는 주님 저는 내일리를 잘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 손에 내 삶을 온전히 의탁 이렇게 고백하는 여정이었습니다. 제가 몇 가지 예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저를 향한 특별한 요구 그것은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했던 제 전공을 하루아침에 바꿔서 유학 가는 것이었습니다.


실은 제가 유학을 놓고 기도할 때 은밀하게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어떤 그런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근데 그중에 하나가 미국도 좋고 영국도 좋다라는 그런 내용이었어요. 근데 이게 왜 그 내용을 제가 기도 중에 받고 떠올렸는지 저는 그때는 몰랐어요. 근데 전공을 당시에 저는 이제 중국사 전공을 했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나름대로는 제 인생을 계획을 하면서 동양인으로서 중국사를 하고 또 미국의 무대에서 활동을 한다면, 이거는 경쟁력이 있을 거야.

누구보다도 내가 잘 할 수 있을 거 같애 중국어도 준비되고 일본어도 준비되고 한문도 준비되고 그렇게 해서 미국에 가게 되면 내가 뭔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경쟁력을 갖겠지라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오랜 시간 동안 아주 기본기를 다지면서 잘 준비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유학을 갈려고 할 때 저희 지도 교수님이 가지 말라는 거예요. 너는 이곳에 남아서 내 밑에서 배워도 충분해 굳이 이 분야는 유학 갈 필요가 없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근데 그러시면서 제 유학을 수용해 주지 않는 거예요. 한국 풍토에서는 지도 교수님의 그러한 이야기에 거부하게 되면 학계에 발을 붙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저는 유학을 놓고 기도하고, 나름대로는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길을 여시지 않는다고 느끼고 당시에 저는 어떻게 생각을 했냐면 지도 교수님의 말이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내 인생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고 지도 교수님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부분을 놓고 이제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저희 지도 교수님이 논문이나 잘 쓰라고 그러면서 독일로 안신경 가셨어요. 근데 중간에 돌아오셨는데 이분이 사이에 교회를 다니시게 됐어요.

그러고서는 저한테 잠깐 학교 와서 보자고 그러셨는데 마음이 바뀌셨던 것 같아요. 뭐라고 이야기하시냐면 자네 굳이 유학을 갈려면 아예 새로운 분야를 해보면 어떻겠나 중동사 이슬람사 이런 거 어떤가 이거는 새로운 분야고 분야를 하고 한국에 오면 여러 가지로 한국에서 필요한 일들이 많을 텐데 아예 전공을 바꿔서 가보지 않겠나 그러시면서 미국도 좋지만 이 분야는 영국도 좋겠는데 말씀을 하시는데 순간 제가 왜 기도 중에 이 말씀이 있었지라고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가 그 순간 똑같은 이야기를 교수님의 입을 통해서 들으면서 뭔가가 있을 수 있겠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기를 원하시나 그런데요.

이거는 너무 큰 도전이에요. 왜냐하면, 7~8년 그렇게 밤잠 안 자고 준비했던 모든 것을 다 버려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미국의 새로운 분야로 어플라이를 하는데 아무런 준비가 없는데 대학교가 받아줄 거라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그리고 그런 전공으로 준비 없이 미국에 가서 서바이벌이 가능할까 저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여러 날 기도하던 중에 어느 날 한 성경 구절이 제 머리를 때렸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장래 유혹으로 받을 곳에 부르심을 받아 갈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다는 성경 구절이었습니다. 근데 그때 제 머리를 쳤던 구절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라는 단어였습니다. 그렇구나 믿음은 다 알고 확인하고 돌다 두드리면서 가는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이 부르신 가운데 다 이해되지 않지만 다 알지 못하지만 자신이 없지만, 그저 나를 맡기고 내 길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거구나 그때 도전이 제게 왔습니다. 그래서 전공을 바꾸기로 결정하고 미국 대학의 어플라이를 했어요.


근데 제가 나중에 중국사로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은 고러한 분야로도 미국 대학이 어플라이 했는데 거기는 다 안 됐어요.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의 저를 받아주게 됐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인제 보니까 하나님께서 작정하고 이런 방식으로 제 인생을 끌고 가시려고 결정하셨던 거 같애요.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게 당시에 너무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가장 준비가 안 된 학생이었거든요. 새롭게 아랍어와 페르시어를 배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 평생의 언어를 너무 많이 해야 됐어요.


제가 이렇게 따져보니까 한 9개가 돼요. 배운 언어가 예 제가 언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닌데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학교에서 예배드릴 때마다 눈물을 흘렸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하나님 제 삶을 주님께 의탁합니다. 여러분 망가질 것 같은 삶을 살 때 맡기기가 더 쉬워요 내가 웬만큼 할 수 있고 잘 나갈 것 같으면 맡긴다는 이야기 안 하죠. 하나님께서 박사 과정 기간 동안에 저의 마음을 많이 낮추셨어요. 그래서 제가 급기하는 이런 결단의 기도를 하게 됐어요.


하나님 제가 이곳에서 무사히 박사 학위를 마치게 되면 제 삶에 인연을 하나님께 헌신하고 선교지에 가서 주님을 섬기는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결단을 했어요. 근데 기도를 하고 나서 보니까 이 기도를 가장 제 서원을 가장 잘 이행할 수 있는 타이밍은 박사 학위 받고 졸업하자마자인 것 같아요. 됐어요. 왜냐하면, 이미 잡을 잡아 버리면 그다음에는 제가 하나님께 서원했던 걸 지킬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박사 학위 졸업할 수 있게 되자마자 몽골로 선교사가 돼서 헌신해서 이제 떠났습니다.

근데 저는 이 년만 헌신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선교사로서의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선교 훈련이란 것도 안 받았구요. 예 왜냐하면, 빨리 하고 돌아와야 되니까. 그리고 뭐 신학교를 가본 적도 없고 그냥 교회에서 여러분들과 똑같이 그냥 신앙생활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선교지로 옮긴 것밖에 없어요. 후원도 모으지를 않았어요. 왜 그러냐면 물가가 비싼 보스턴 땅에서도 8년 동안 우리 네 가족을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신 것에 대한 간증이 있었기 때문에 그 물가 싼 몽골에서 이 년을 있는 동안 하나님이 굶기실 거라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그래서 후원도 모으지 않고 들어갔습니다. 좋은 일이다. 잘했다라고 말씀드리는 건 아니구요. 제 나름대로 믿음의 결단이긴 했는데 어차피 인연이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만 가지고 살아보겠습니다라는 마음으로 이제 몽골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근데 들어가자마자 대학교에서 교수로 가르치는 일과 또 선교사님이 두고 떠난 교회를 맡아서 목회해야 되는 이제 부담이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당장 제가 들어간 주일부터 강단에서 설교를 해야 됐어요. 저는 몽골어를 몰랐어요. 그리고 몽골 사람들의 마음을 모르겠더라고요.


여기 교인들의 그 뭐랄까 문화라든가 사고 구조에 대한 이해가 없이 그냥 통역을 끼고 주부터 설교하면서 그렇게 몽골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제가 맡은 교회의 교인들을 보면 너무너무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가난했냐면 몽골은 영하 30도 40도까지 쉽게 내려가는 그런 나라입니다. 그리고 겨울이 길어요. 한 1년에 8개월 정도 영하권이에요. 그런 그래서 심지어는 이 사람들이 너무 추우면 시베리아로 추위를 피해서 왜냐하면, 시베리아가 훨씬 따뜻하니까 예, 예 그런 곳이었어요.

근데 거기서 영하 30도에 우리 교회 청년들이 뗄감이 없어서 벌벌 떨고 있는 거예요. 제가 그걸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도 저는 저희 집도 굉장히 험불해서 보통 단기선교팀이 오면 우리 학교에서 사람 집으로 보내자고 할 정도로 험불한 집이긴 했지만, 그래도 난방은 됐었거든요. 근데 난방이 안 되는 우리 교인들의 집을 보면서 제가 마음이 너무 아파서 뭔가를 해주고 싶었어요. 근데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은 사람들 니가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거예요. 함부로 재정 지원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 돈이 있는데, 그리고 빵에 사람 힘든 거 아는데 안 도와주는 거 쉽지 않습니다. 제가 어떤 때는 떼굴떼굴 굴러야 됐어요. 그런데 또 하루는 저희 교인 중의 한 아이가 걔는 소녀 가장이에요. 밑에 동생이 네 명이 있고 중학교 3학년 아이인데 한겨울에 얼음물을 깨가지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 밥 해 먹이고 학교 보내고 자기도 학교 가고 그러는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저한테 와서 교회에서 잘 수 없녜요 왜 굳이 교회에서 자니 교회는 너 재워주는 데 아닌데 그랬더니, 얘가 선생님 저희 외삼촌이 시골에서 왔는데 저를 겁탈하려고 해요. 그런데 할머니가 그걸 보고도 못 본 체한대요 저 좀 도와달라고 그래서 아이를 교회에 재워놓고 너무 착잡한 거예요. 내가 이 사람들에 대해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거예요. 제가 무슨 설교를 한다고 이 사람들이 바뀔 것 같지도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날 밤에 교회에서 기도하면서 이렇게 탄식하고 있는데, 하나님 저를 왜 여기 보내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사역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하고 가슴을 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동물의 울음소리 같은 어떤 비통한 울음소리를 들려주신다고 느꼈어요. 그 울음 가운데 하나님 이게 무슨 소리죠 하나님께 물으며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세요. 울음은 이 100성을 향해 울고 있는 나의 울음이다.


너도 이 울음으로 같이 울어줄 수 있겠니


그게 하나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사역이었어요. 제가 다른 건 못해도 그냥 우는 건 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님께 주님 저도 울음에 동참해서 그저 함께 울겠습니다. 고백을 했어요. 그렇게 몽골 시절이 지나갔어요. 그런데요.


저는 그리고 나서 이제 몽골 땅을 떠난 다음에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한 5~6년 전에 제가 시드니의 말씀 전할 일이 있어서 가게 됐을 때 거기서 우리 몽골 지체들한테서 연락이 오는 거예요. 보니까 거기서 공부하는 학생이 두 명이고 선교사가 돼서 선교 훈련 받는 친구가 한 명 있었어요. 정말 가난하나 하고 어려웠던 애들인데 제가 이렇게 보니까 한국에 와서 석박사 한 친구도 있고 세계 곳곳에 나가서 공부하고 있는 거예요. 아니 이렇게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놈들이 어떻게 이렇게 곳곳에 가서 공부하고 이러고 살고 있지 그때 제게 깨달음이 왔어요.


이거였구나 그 친구들한테 정말 필요했던 건 뗄감이 아니었어요. 먹을 것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살았던 삶의 본을 그들이 보고 나도 선생님처럼 저렇게 한번 하나님께 구하며 살아봐야지라는 소망을 갖게 했던 거였구나 그것 때문에 이 녀석들이 그렇게 환경적으로는 도대체 상상할 수 없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 이렇게 길들을 찾아서 세계 곳곳에 나와서 공부하고 배우고 있는 거구나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씨를 뿌려야 됩니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 때로는 내가 이 땅을 떠나서야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 아내의 경우는 몽골에 들어갈 때 박사 논문을 끝내지 못한 상태로 들어갔습니다. 몽골에서 박사 논문을 쓰려고 생각을 했다가 결국은 박사 논문을 포기하게 됐어요.


그리고 아내가 했던 일은 아내를 파송해 준 오병이어 선교회와 함께 몽골의 과기대 우리로 말하면 카이스트 같은 그런 대학교에 영양연구소를 세우고 거기서 특별히 그 몽골에 어린이들의 영양 개선을 위해서 초중고등학교 급식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왜 그게 필요했냐면요 몽골 사람들이 식습관이 고기만 먹어요. 야채는 동물들이 먹는 거예요. 사람은 동물을 먹어야지 동물이 먹는 야채를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50대면 노인이에요. 40대 50대 성인병으로 많이 죽어요.


그래서 이 나라가 어느 정도 건강하게 나라를 유지하려면 제일 중요한 게 이 수명을 늘려줘야 되는데 수명을 늘리고 건강하게 살 수 있게 해주려면 어린아이들 때부터 식습관을 고쳐야 되고 그래서 야채가 들어간 음식을 초중고등학교 때 급식으로 먹여야 된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렇게 해서 급식 프로젝트를 하는데 정부가 안 도와줘요 오히려 뭐 관세 물리고 이런저런 세금 물리고 굉장히 어렵게 하면서 아내가 많이 울면서 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하다가 결국은 아내와 저는 몽골 땅을 떠나게 됐죠 그리고 나서는 더 이상 소식을 못 들었었어요. 그런데요.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아내가 연구원으로 데리고 있던 사람들을 지금 과기대 안에서 학장이 돼 있고 학과장이 돼 있고 영양학을 몽골에 세워가는 데 있어서 충추적인 역할을 하는 분들이 돼 있었어요. 그리고 몽골 정부가 학교 급식을 법제화하고 국책사업으로 진행하면서 몽골 정부가 재원이 없으니까 한국의 코이카에 요청해서 단일 국가 지원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재정이 사업에 투입돼서 정부가 주관하는 굉장히 큰 프로젝트가 돼버렸어요.

아내는 도대체 왜 헌신을 해야 되는지 하나님께서 왜 이 자리에서 이것을 하게 해야 하시는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하고 울면서 씨를 뿌렸을 뿐이에요. 그런데 돌아보니까 한 나라의 정책과 방향성에 영향을 주는 일을 한 거였구나라는 거를 몽골을 떠나고 한참 지나서 배우게 되는 겁니다. 실은 제가 이 년만 몽골에서 헌신하겠다고 했는데 1년이 지나고 이제 어떤 학교들에서 한번 이제 우리한테 어플라이 해보지 않겠냐는 그런 요청이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부터는 내가 몽골을 떠나서 갈 다음 행보를 위해서 기도해야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진지하게 이제 결단하는 기도를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 다음 행보를 물으며 이렇게 또 인도하심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그런 마음이 드는 거예요. 얘 너 여기 좀 더 있어주지 않을래 근데요. 초청이 너무 달콤한 거예요. 제가 1년 동안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을 경험을 했잖아요. 그러고 나서 보니까 여러분 성경 말씀에 이런 말씀이죠.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 맛을 본 사람은요, 맛의 중독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몽골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한국의 맛에 중독이 돼서 벗어나질 못해요. 한국의 맛 그러면 뭐냐 김치 삼겹살 그다음에 신 한국의 맛도 중독성이 있지만 하나님의 맛은 훨씬 강력해요. 제가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어요. 하나님 더 있어 달라고요. 괜찮은 오퍼인데요. 더 있어 볼게요 근데요.


더 있는다는 의미는 뭐냐면 제가 이제는 더 이상 내가 계획했던 커리어를 유지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새로운 길로 접어드는 거를 의미했어요. 제가 십몇 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학계에서 이름을 내는 학자가 되고 교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많은 시간을 몰두했던 건데 이제 하나님께서 길을 바꾸시는 거예요. 아까운 생각도 들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공부한 분야는 워낙 많은 언어가 필요해 한 영역이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도 분야를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기 때문에 하여간 계속하면 이름을 내는 거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그런 그리고 그것을 하기 위한 모든 기본 준비를 마친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쉬울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과 함께 했던 1년은 제가 스스로 제 삶을 개척하기 위해서 살았던 십수년의 삶을 포기하고도 남을 정도로 가치 있다고 느껴졌어요.


그렇게 몽골에서 계속 남아서 잘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몽골에서 아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몽골의 유력자분들 뭐 대통령하고도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니까. 이제는 여기가 홈그라운드가 되고 여기서는 뭐든지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본격적으로 여 이 나라를 위해서 내가 열심히 섬겨보자 하던 시기에 기도 중에 하나님이 계속 불편한 마음을 주시기 시작해요. 떠나야 된다는 거예요. 처음엔 세미한 음성이었는데. 음성과 씨름하면서 제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여러 번 하나님께 질문을 했어요.

하나님 그럼 하나님이 뭔가 그럼 다른 계획이 있으신 거예요. 제가 여기를 떠나면 어디로 가야 되죠. 여러분 보통 여러분이 떠나기 전에 집을 구하더래도 내가 집 떠나는 게 먼저가 아니라 살 집을 먼저 확보해 놓고 그리고 자기 집을 정리할 생각을 하잖아요. 어디 옮길 때 갈 곳을 먼저 생각하잖아요. 그것이 사람이 일반적으로 계획하는 방식이죠. 예 저도 그런 삶이 훨씬 익숙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갈 곳은 보여주시지 않아요. 그러면서 떠나야 된다는 부담만 계속 주시는 거예요.


그런 가운데 몇 가지 제가 하나님께 확증을 구했고 확증이 제게 주어졌을 때 떠나기로 결단을 합니다. 그리고 미국에 나와서 안식년을 하는 기간에 고때 인도네시아에서 대학 사역을 위해서 들어와 달라는 그러한 초청을 받았습니다. 인도네시아는요 저는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서 살던 사람인데 인도네시아는 1년 내내 영상 30도가 넘는 날씨를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예 차이가 70도 이상 나요? 제가 배워본 적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약에 인도네시아에 대해서 자세히 알았으면 아마 나라로 가겠다고 선택을 못 했을 것 같애요. 몰랐기 때문에 간 거예요.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의 삶 가운데 모든 걸 다 보여주시지 않아요. 제가 만약에 인도네시아에서 제가 겪어야 될 일들을 미리 알 수 있었다면 아마 선택하는 게 너무너무 고통스럽고 어려웠을 거 같애요. 어쨌든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네시아로 부르신다는 확신을 받았고 그곳에서 대학 사역을 시작하라고 하는 마음을 받고 그곳으로 이제 들어가게 됐습니다. 근데요. 처음에는 내가 하나님께 순종했으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이니까.


저는 가서 불을 던질 준비를 하고 할려고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방식은 자 아브라함이 하란 땅을 떠난 이후에 가나안 땅에서 처음으로 만난 건 기근이었어요. 그리고 기근을 통해서 자신의 모든 약한 모습들이 다 드러나죠. 자신에게 인간적인 모습들이 다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도네시아로 들어간 저에게 사역을 주신 게 아니라 뺑땡이 돌리시는 일을 하셨던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주어졌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을 시키실 때 4명과 함께 고속도로를 열어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마라톤 경주를 뛰게 하시면서 손과 발을 묶어 주세요. 제가 인도네시아에 가고 난 다음에 췌장에 혹이 있는 걸 알게 됐고 그거를 수술하고 나서 합병증이 왔는데 그 당시에 상황이 지속되면 저는 절대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나라에서는 살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또 안신경 기관에 하나님이 또 넷째를 주셔가지고, 아내도 손발이 묶이게 됐구요.


그런가 하면 그 하나님께서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가정을 꽁꽁꽁 동아줄로 묶어서 달아 놓으시는 듯한 그런 시간을 지나야 됐습니다. 인도네시아는요 세계 최대의 무슬림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외국인에 대해 굉장히 다양한 규제가 있기 때문에 외국계가 들어와서 학교 기관을 세운 예가 역사적으로 없어요. 화란 시대 빼고는 그래서 모든 면에서 쉽게 가기 어려운 몽골하고는 전혀 다른 환경 속에 똑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즉 저와 함께 동역하겠다고 팀도 와 있는데, 우리가 말똥말똥 오늘은 뭐 하지 오늘 할 게 보이지가 않는 그런 시간들을 보내야 돼서 거기다가 비자에 문제가 생겨서 온 팀원들이 계속해서 해외로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떠돌이 신세를 해야 되는 상황이 됐고요. 재정도 없었고요.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의지했던 분들로부터 또 저희를 하나씩 끊으시는 것을 또 보게 됐습니다. 그게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시는 방식인 것 같아요.


근데 좀 만만한 일을 맡겨주시고 그러면 상관이 없는데 이슬람권에서 선교의 교두보가 되는 교육사역을 하고 대학을 세우는 일은 어마어마한 재정이 들고 어마어마한 인력과 수많은 사람들의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이렇게 손발을 묶으시는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았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극적으로 몸이 회복이 그래서 다시 인도네시아 땅으로 들어갔을 때 그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때 현지인 청년들이 앞에 나와서 찬양을 합니다.


주품에 품으소서 제가 찬양을 들을 때 그냥 넋두리로 하나님 저도 좀 안아주시면 안 될까요? 저도 좀요 그렇게 하고 있는데, 왠지 제 마음속에 뒤에서 날갯짓 하는 소리가 들리는 느낌이었어요. 물론 뒤를 돌아봐도 아무도 없죠 근데 제 마음 가운데 문득 주님 당신이세요. 나의 작은 탄식에 주님이 반응해 주시고 제 뒤로 찾아와 주신 건가요? 그때 제 눈에서 눈물이 퍽 터졌어요.


제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울림이 있었어요. 니가 지금 다람쥐 책바퀴 도는 삶 가운데 갇혀있는 거 같고, 여기서 아무런 돌파를 기대할 수 없을 것 같고, 그렇게 너의 소중한 기회와 인생이 다 허비되는 것 같은 시간을 지날지라도 너 여전히 나와 함께 가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니 근데 제가 그때요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어요. 하나님 이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저는 사역의 성공을 바라고 이 자리에 있지 않겠습니다. 그죠 하나님과의 동행을 즐거워하며 온전히 이 시간들을 누리고 가려고 맞먹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는요 사역의 성공은 제 우선순위가 아니었어요. 그거는 하나님의 영역이에요. 어차피 제가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거는 하나님이 해 주시면 좋고 안 해 주신다 하더래도 제가 그곳에서 주님께 순종해서 걸어가는 걸음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나서부터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기 시작합니다. 제가 이 사역을 하면서 이거는 불가능한 열두 가지 이유가 있다라고 제가 예 못을 박았어요.


이게 이상하게 될 수가 없는 열두 가지 이유 근데 그중에 굉장히 많은 부분은 정부 허가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요. 하나님께서 하나씩 정부 허가의 빗장을 풀어가십니다. 국회에서 새로운 법이 통과돼서 초중고등학교를 기독교 학교로 시작할 수 있도록 허용이 되고 정부가 이슬람 학교와 비슷한 수준으로 집중적으로 기독교인들을 교육하고 양성하는 특수 초중고등학교를 세울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줘서 우리가 출액으로 학교가를 받았는데 그 학교에서는 성경을 50%를 가르치래요.

너무 많다고 선교사들이 오히려 정부한테 좀 적게 가르치게 해달라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하는 말이 야 이슬람 학교는 다 정도 해 왜 니들은 그거 못한다고 그러냐 저희가 대학교를 세울 때 고등교육부 국장이 저희 학교에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까지 십몇 년간 우리 정부에서 신규 대학 허가를 해준 적이 없었습니다. 당신 내가 첫 사례입니다. 우리가 그만큼 당신들한테 기대하고 있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요. 외국계가 세운 걸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그리고 학교가 종합대학으로 이 년 전에 승격이 됐어요. 보통은 종합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한 2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데 4년 만에 저희 첫 졸업생들이요. 정말 눈물로 기도했어요. 자기들이 졸업하기 전에 자카르타 국제대학교라는 이름으로 졸업장 받을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런데 결재권자가 막판에 대통령 수행하면서 미국 순방길에 들어가는 바 그 사람에 포기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사람이 극적으로 돌아오자마자 당일날 사인을 해줘서 학생들이 졸업식 하기 5일 전에 종합 대학 허가가 난 거예요.

학생들이 사실을 알고 하나님이 자신들의 기도에 응답하는 방식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학교 모습 한번 좀 보여드릴까요? 우리 영상장 저렇게 생겼어요. 저게 이제 우리가 첫 건물 지었을 때 의 모습이에요. 첫 건물을 지을 때 재정이 한 50억 원 정도 필요했어요. 근데 저희 수중에 5억 원도 없었어요. 건축회사와 계약을 하면 1년 안에 건축이 진행되게 되고 1년 안에 재정을 갚아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셨어요. 계속해서 전진하라고 하나님 그럼 45억 하나님 어떻게 해결해 주실 거예요. 하나님은 노 터닝 벨 힙 고잉 사인을 계속 주셨어요. 그리고 나서 공사가 시작이 됐는데 제 책상에 계속해서 이 인보이스가 쌓이는 거예요. 그리고 결제 허가를 해달라고 하는 그러한 서류들이 제 책상에 계속 쌓여요. 제가 혼자 독박 쓴 느낌이었어요. 하나님께 따졌어요. 하나님 제 보스가 하나님 맞죠.

근데 정작 왜 결재는 다 제가 해야 돼요. 이거 결제 이거 제대로 못하고 대금 지급 못해서 혹시 감옥 갈 일이 생기게 돼도 제가 가지 하나님이 가는 거 아니잖아요. 그러면 제가 보스지 어떻게 하나님이 보스예요. 책임지는 사람이 보스지 제가 하나님께 따졌어요. 하나님이 보스면 이것 좀 받아주세요. 하고 이렇게 하늘로 올리면 다시 땅에 떨어져요 제 책상에 또 떨어져요 내가 보스 맞네, 그러고 있는데, 하나님 저는 올해 연말 오는 것도 기쁘지 않구요. 크리스마스도 안 않았으면 좋겠고요. 하여간 시간이 안 갔으면 좋겠어요. 또 투덜거리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이런 마음을 주세요.


예 너 기왕이면 부담 가운데서라도 좀 웃으면서 가져올 수 없겠니 여러분 한 50억 비치고 웃어지세요. 근데요. 제가 그때 순간적으로 깨달음이 왔어요. 하나님은 날 힘들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구나 그래서 재정을 공급하시는 손을 늦추시는 게 아니구나 하나님은 내가 여기서 웃으면서 가길 원하시는구나 그렇게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한번 그렇게 해볼게요 저는 원래 이렇게 학자 출신이다.

보니까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일을 하는 건 너무 어려워요 그런데 하나님이 저를 쓰시는 방식은 이렇게 와일드한 사업을 하는 그런 사람처럼 굴리세요. 근데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뭘까요? 훈련이 목적인 거예요. 나는 너의 모습 그대로는 사용하기가 너무 불편해 내 방식에 너를 좀 맞춰줄 수 없겠니 그러시면서 휘저어 놓으시는 거예요. 저는 제 스스로는 불안해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굳건히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도전 가운데 믿음으로 반응을 하면 그렇게 사라지더라구요.


그때부터 제가 돈을 써보기로 결심했어요. 예 그럼 저도 웃으면서 써볼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 사학자들 다 밥 먹으러 가자 해서 때려먹고 그다음에 아내 불러서 우리 좋은 데 가서 데이트하자 그때부터 웃으면서 살아보기로 했어요. 근데 그렇게 사라지더라고요. 하나님께서 굉장히 놀라운 방식으로 재정을 보내셨어요. 그때 저는 좀 이해가 안 됐어요. 왜 그러냐면 뭐 시기가 한국 교회가 선교의 동력을 잃고 대형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있을 때였어요.

또 자신도 사형 관한 이야기를 다니면서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어요. 교회로부터는 재정이 올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님 교회 중에 도울 교회가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게 주시는 마음은 새로운 재정을 내가 일으킬 거다라는 마음을 주세요. 그 재정은 해외에 나와 있는 디아스포라 크리스찬 사업가들로부터 나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어요. 저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숨어 있는데, 이분들이 저를 찾아서 와서 연결을 해줘요 그러면서 많은 것들을 헌신해 주기 시작해요.


또 캐나다에 있는 할머니 한 분이 집이 두 채 있는데, 어느 날 말씀을 듣던 중에 너무 강력하게 그거 너 집 한 채 남은 거 팔아서 자카르타로 후원하라는 그런 마음을 주시는 거야. 이분이 세 번째 기도하고, 세 번 다 하나님이 자신에게만 주시는 응답을 받았대요 거기 이렇게 쓰셨어요. 선교사님 사후 대책만 확실하다면 노후 대책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결단을 하셨어요. 저는 여러분한테 그런 결단하라고 이런 메시지 하는 거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하나님이 공급하시기로 작정하시면 하나님이 숨겨놓은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거예요. 제가 해야 될 일은 뭐였냐면 광야 한복판에서 깃발 들고 서 있는 거였어요. 제가 누가 언제 어떻게 올지를 결정할 수는 없어요. 근데 저희 부르심은 뭐였냐면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내가 너를 부른 현장에서 깃발을 들고 버텨주지 않겠니 그것이란 걸 알게 됐어요. 두 번째 건물 사진 좀 보여주시겠어요. 예 이게 제가 받았던 땅이에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 땅에서 처음엔 좀 두려웠어요.

수많은 공격이 있을 텐데 공격들을 다 감당하면서 위에 뭔가를 올리는 것이 가능할까 제가 하나님께 기도했었어요. 하나님 딴 건 모르겠는데 우리 사역자들 중에 단 한 명이라도 공격받아서 다치는 일이 있게 되면 전 그때 손톱니다. 예 이사역 접습니다. 그랬는데요. 코로나 기간에 우리 학생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너무 수업 퍼포먼스가 떨어지니까. 다 캠퍼스로 불렀는데 이제 코로나가 번지면서 우리 사역자 중의 한 명이 응급실에 가게 됐어요.


생명이 위협받는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제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이 옛날에 제가 했던 기도를 떠오르게 하세요. 너 그때 기도했던 거 기억나니 너 기도 바꿔보지 않겠니 그때 제가 이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어떤 희생이 주어지더라도 이 자리를 지키고 버티겠습니다. 기도가 있고 나서 비로소 이 친구 하나님께서 데려가시지 않겠구나 확신이 오더라고요. 순서가 바뀌면 안 돼요.

하나님께서 저의 사역의 한쪽으로는 저의 연약함과 아픔과 결핍과 부담을 안겨주십니다. 그런데 또 한쪽에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과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주십니다. 이게 수레바퀴의 두 축이에요. 하나님 제가 왜 이렇게 많은 부담을 져야 될까요? 하나님께 물었던 적이 있었어요. 두 번째 건물 짓고 세 번째 건물 짓고 건물 짓는 거에서 끝나지가 않아요. 운영을 하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재정이 들어요. 근데 저는 수중에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끊임없이 구하고 기도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가야 돼요. 이슬람권의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녹록지는 않아요. 그런데 여정 중에서 왜 그런 부담을 왜 이렇게 남들은 지지 않아도 되는 부담을 하나님이 내게 안 계실까 제가 아는 어느 한 선교사님이 저한테 기도 편지를 보냈는데 1년 동안 모금해야 될 2000만 원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대요 근데 제가 하나님 이분 참 좋겠네요. 저도 이렇게 부담이 경감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근데 왜 저한테 이런 부담을 많이 안겨주세요. 물어봤었어요.

떠오르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었어요. 달란트 비유 아시죠. 여러분 이 달란트는요 어마어마하게 큰 재정이에요.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16억 정도 되는 큰돈이에요. 이것은 서구교에서는 이걸 재능으로 해석을 했지만, 제가 볼 때는 이것은 재능이 아니에요. 그것은 종들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큰 부담이었어요. 주인이 종들에게 부담을 준 이유가 있어요. 주인이 다시 와서 땅을 통치하게 될 때 자기와 같은 마음으로 통치할 공동통치자를 찾고 있었던 거예요.


주님 저를 특별하게 생각하시고 제가 주님과 함께 새하늘과 새 땅에서 통치할 날을 기다리시면서 이 시간들을 제게 선물로 주시는 거군요. 그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되고 나니까 사역하다가 역살을 잡혀도 괜찮구요. 두들겨 맞을 뻔한 일을 당해도 괜찮구요. 뭐 이민국에 푹 뚫려 있어도 괜찮구요.


또 남들은 안 당해도 될 것 같은 뭐 어떤 여러 가지 비방과 공격과 욕설을 당할 때도 있어도 하나님 이게 훈련 과정이군요. 그리고 넘어갈 수 있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보니까 저의 약함과 저의 결핍 그 부담이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과 은혜를 더 빛나게 만드는

하나님의 주요한 이것이 나의 자원이었구나라는 것을 배우고 고백하게 됩니다. 기도하시죠.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서 우리를 너무 귀하게 보셔서 허락하시는 선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선물이 내 계획 내가 원했던 거와는 다른 거일 때가 있어요.


그 속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심어주신 연약함과 결핍과 부담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이게 하는 우리의 중요한 자원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내가 원했던 길이 아니지만, 주님이 나를 위해서 예비하신 길 가운데 나를 온전히 의탁했어요.

하나님이 나의 부족함을 들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하시는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제가 짧게 기도하고, 마칩니다.


하나님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묻어두신 자원들이 낭비되지 않게 하시고 내 생각과 내 길이 아닌 주님의 생각과 주님의 길이 우리를 압도하게 하시고 주님께서 새로운 길로 초청하실 때 온전한 맡김으로 또 기대감으로 기쁨으로 길을 대면할 수 있도록 주님 축복해 주십시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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