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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호 목사 쌓아두신 은혜를 경험하라 본문

다니엘기도회/목사 다니엘기도회 간증

김은호 목사 쌓아두신 은혜를 경험하라

generalQS 2024. 3. 1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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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10편 31편 19절 단 10장 1절에서 3절의 말씀을 연이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0편 31편 19절과 다니엘 10장 1절에서 3절을 우리 연주와 함께 봉독을 하겠습니다. 다 같이요.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 거 죽게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파사왕 거래소 제 3년에 한 일이 벨드 사살이라 이름한 단일에게 나타나는데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일을 분명히 알았고 환상을 깨달은 이름 그때나 다니엘이 새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새이레가 차기까지 족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아멘 저는 오늘 어느 때보다도 벅찬 가슴을 안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21일 동안에 이 다니엘의 기도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찹니다.

또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함께하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을 행하실 큰 놀라운 일들을 생각하니 또한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더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유는 세계교회 역사상 유례가 없이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서 공간을 초월하여 6개 나라 1044개 교회가 함께 말씀을 듣고 함께 기도를 할 수 있다는 이 사실 여러분 이 사실이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도 큰 감동이 되는지 모릅니다.

이번에 참여하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쌓아두신 놀라운 은혜를 허락하시므로 참여하는 교회들은 배가 부근케 되어지고 참여하는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을 자랑하는 간증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란 이 기도회 명칭이 다니엘 기도회입니다. 여러분 왜 기도회 명칭이 많이 있는데, 왜 다니엘 세일의 기도회라고 부르죠 그것은 얼본문 이 절과 3절을 보니까 다니엘이 새 이레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기 때문이죠. 이 절과 3절을 잊겠습니다. 다 같이요.

그때의 나 다니엘이 세 이례 동안을 슬퍼하며 새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다니엘이 새이레 21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언제 새일의 기도회를 시작을 했습니까? 법문 이 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때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때는 언제일까요? 그때는 바로 1절을 보게 되면 단일이 환상을 보고 깨달은 때를 말합니다. 자 1절 하반절을 잇겠습니다. 다 같이요.

일이 일이 참되니 자 1절 하반절 다 갖추시자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반한 것이라 다니엘이 일을 분명히 알았고 환상을 깨달은 이들 다니엘은 바사왕 고레스 3년에 하나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근데 놀라운 사실은 환상의 내용이 전쟁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장차 민족과 민족 사이에 또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선한 영들과 악한 영들과의 사이에서 있을 치열한 전쟁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니엘이 일을 분명히 알았고 환상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때 다니엘의 나이가 몇 살인지 아십니까?

학자들의 견해가 다릅니다마는 대부분 80대 후반 90세까지로 봅니다. 여러분 이 정도 나이가 되면 기력이 세해지고, 치매기도 있고 이쯤 되면은 노인정에 가서 장기나 두고 그럴 나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의 의미를 알았고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게 되면 다니엘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굉장한 영성을 가진 바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고령의 나이에도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을 알게 되고 깨달았다는 사실은 여러분 그가 엄청난 영성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단열은 나이가 들어가도 육신인 세하였겠지만, 그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졌습니다. 이 다니엘이 가졌던 영성의 비결이 뭘까? 여러분 어떻게 다니엘은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영성을 소유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다니엘이 깊은 말씀의 묵상과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깊은 말씀의 묵상과 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뛰어난 영성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죠. 단1 9장 2절에 보게 되면 다니엘은 에리에미아 설을 읽다가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이 차게 되면 포로 생활이 끝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씀에 묵상을 통해서 포로 생활 70년이 차게 되면 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죠 9장 2절을 읽겠습니다. 다 같이요.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신 연수를 깨달았나니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요,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깨달은 감동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다니엘은 다시 기도에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임 그래서 사실을 깨달았을 때 금식하며 배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다니엘 9장 3절입니다. 다 같이 있겠습니다.

내가 금식하며 배 옷을 입고 제를 덮어 쓰고 추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0장에서도 보게 되면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을 알고 깨달았을 때 그는 곧바로 새일의 기도회를 시작을 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지 않으므로 사자굴 속에 던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다니엘은 전에 하던 대로 집으로 돌아와 예루살렘의 창문을 열고 하루에 세 번씩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은 말씀의 사람이었고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살다 보게 되면 고령의 나이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설교를 듣는 분 가운데 고령의 나이가 들어있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생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람은 단열처럼 깊은 영성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성을 소유할 수 있나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하면 인생의 나이를 초월해서 뛰어난 영성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3이레의 기도회를 시작하게 된 것은 이렇게 환상을 보고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조국에 대한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포로로 잡혀왔던 자들이 조국으로 돌아갔지만 단일은 돌아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은 참담한 소식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다 파괴되고 성문은 불에 타버리고 고국으로 돌아간 이들이 힘을 다해서 성전을 재건하고자 했지만, 그것을 반대하는 자들로부터 무서운 방해를 받아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하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이런 에루살렘에 대한 슬픈 소식을 들었을 때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니에미아가 예루살렘을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슬픈 소식을 들었을 때에 수일 동안 울면서 기도했던 것처럼 다니엘도 예루살렘에 대한 슬픈 소식을 들었을 때에 새 이례를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교회의 참담은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으며 주일학교가 사라지고 있으며 우리 교단만 하더라도 주일 학교가 없는 교회가 68%나 된다고 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까 이제는 목사들끼리 칼부림을 하는 사태도 일어났습니다. 문제가 터졌다고 하면 거기엔 교회의 장로들이 연루돼 있습니다. 한국교회 사모님들의 67%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개척 필패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는 개척을 하면 모두 실패한다는 말이죠. 교회를 나가지 않고 떠도는 가나안 성도가 무려 10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고 삼 학생 20명이 대학에 들어가면 신앙을 지키는 학생은 고작 세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교 대학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단보다 더 무서운 교가 있으며 그것은 한국에 있는 대학교입니다. 그런데 이런 한국교회의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기도의 무릎을 꿇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한국교회 참담한 소식을 우리가 알고도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교회만이 이 시대의 소망이라고 그리고 하나님은 다시 이 땅 가운데 부흥의 불길이 터오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땅의 부흥은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민족의 지약을 자복하면서 지도자들의 지약을 자복하면서 우리의 마음의 옷을 찍고 회개하고 부르지도 기도할 때 이 땅 가운데 다시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신학적 지식이 없어서 이렇게 되었습니까? 교회 안에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되었습니까? 여러분 한국교회 돈이 없어서 이렇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거룩한 예배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무릎을 꿇는 자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1000여 교회가 함께하는 이 기도회를 통해서 우리 한국교회의 영적인 기류가 바뀔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 기도회를 통해서 패배주의는 사라지고 이선과 가식이 사라지고 총교영이 떠나가고 성령께서 강력하게 인재하시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있당 가운데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곳에서 타오르는 성령의 불길이 1044개 교회의 그리고 함께하는 세네갈 베트남 중국 일본 캐나다 미국 2044개 교회의 성령의 불길이 타오르게 될 줄로 믿습니다.

단일이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3이레의 기도회를 시작했을 때 놀랍게도 하나님은 첫날에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12절의 말씀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해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깨달으려 하여 내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내 말이 응답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냐 기도를 시작한 첫날에 하나님이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첫날에 네 말이 응답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요, 다니엘의 기도를 어떻게 평가하셨습니까? 스스로 겸백해 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여러분 제가 단일 기도할 때마다 이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오래 했을지라도 기도에 물음을 꿇지 않은 자는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자입니다. 기도는 누가 할 수 있습니까? 스스로 겸백히 한 자들 스스로 겸손해진 자들만이 하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자가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일이 기도를 시작했을 때 하나님은 첫날에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응답을 가지고 다니엘을 찾아왔지만 사탄의 방해로 21일 동안이나 지체되었습니다. 13절을 있겠습니다. 다 같이요.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21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줌으로 이제 내가 왔다는 것입니다. 21일 동안의 영적 전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지만 여러분 기도에 응답이 현실로 내게 임할 때까지 20일간의 영적인 전투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단일 기도회는 첫날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음날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이 첫날에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백히 하기로 결심하고 기도의 무릎을 꿇고 우리가 하늘의 아버지 앞에 부르짖어 기도할 때 우리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에는 치열한 영적인 전쟁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서 합심으로 기도를 드립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 보게 되면 시간 낭비처럼 보입니다. 우리 각자가 각자 집에서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정한 시간에 함께 기도를 드리면, 얼마나 편하고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오늘 우리는 5시 반부터 줄을 서서 6시 반에 입장을 하고 무려 이 시간까지 앉아서 그리고 들어오지 못한 많은 분들이 밖에서 공간 다른 공간에서 여러분 이렇게 합심하에 모여서 기도회를 갔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것이 더 성경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모일지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예수님이 분명히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 말은 한 사람이 기도하는 현장에는 주님이 역사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골방에 들어가 혼자 기도할 때도 들으십니다. 이 말씀은 나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 자리에 모여서 합심으로 기도하는 것을 주님이 더 원하시고 더 주님이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합심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였다는 얘기는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계급장을 떼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상의 지위를 내려놓고 내 지식도 내려놓고 내가 가지고 있는 선행과 의로움도 다 내려놓고 오직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힘입어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합심으로 기도하는 것은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게 되면 마홀로 기도하는 것보다 함께 모여 한마음으로 기도할 때 더 폭발적인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역사도 120명의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한마음으로 기도할 때 일어났습니다. 사돈2 2장 1절을 잊겠습니다. 다 같이요.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그러므로, 여러분 할 수만 있으면 우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여서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무리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모였을지라도 서로 다른 마음을 품고 기도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한 곳에 모여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해야 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만 집중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 하반절을 읽습니다. 다 같이 온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사도형전 사장을 보게 되면 초등학교의 성도들은 할 수만 있으면 언제나 함께 모여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 24절을 읽겠습니다. 다 같이요.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서리를 높여 이르되 그렇게 한 자리에 모여서 한마음으로 기도할 때 모인 곳이 진동할 만큼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진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2장을 보게 되면 온 교회가 함께 모여 간절히기도했더니, 베드로가 옥에서 구출되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합심 기도를 강조하셨고 땅에서 합심하여 기도하면 기도를 들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9절을 함께 읽습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할렐루야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 자리에 모여서 합심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합심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는 혼자 해야 할 때도 있지만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공동체를 위한 기도는 한 자리에 모여서 합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합심 기도의 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나타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목사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두 사람이 합심으로 기도하면 두 사람이 기도하는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네 사람이 기도하는 정도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죠. 여러분 10명이 모여서 기도하면 100명이 기도하는 것과 같은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1000명이 모여서 합심으로 기도하면 100만 명이 모여서 합심으로 기도하는 것과 같은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10만 명이 모여 함께 기도하게 되면 100억의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것과 같은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합심 기도의 이력입니다. 우리가 한 자리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한마음으로 기도할 때 여러분 우리의 마음들이 예수 안에서 하나로 꼬여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꽈배기 아시죠.

꽈배기처럼 꼬여져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한 자리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한마음으로 기도할 때 여러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마음들이 꽈배기처럼 꼬여져서 하나가 되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환화되게 되면 사탄이 여러 번 비집고 들어올 틈이 사라지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합심 기도만큼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기도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초등학교의 성도들은 늘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한 자리에 모여서 한마음으로 합심으로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지금 한 자리에 모여서 합심으로 다니엘 세이레의 기도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합심으로 21일 동안 기도하며 나갈 때에 하나님은 은혜 보호자 앞에 쌓아두신 은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면서 그냥 은혜라고 말하지 않고 쌓아두신 은혜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10편 31편 19절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다 같이요.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 곧 죽게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따라서 합시다. 쌓아두신 은혜 여러분 이 쌓아두신 은혜는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다 하나님의 은혜가 넉넉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쌓아두신 은혜를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라고 노래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많았으면 쌓아둘 정도가 되었겠습니까? 저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여러분 이때쯤 되면 지금 추수를 해서 거두어들인 때잖아요. 그래서 노적간이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쌓아둔 곡식더미를 말하는데요.

마당에도 곡식더미가 쌓여있고 그리고 여러분 농협에서 운영하는 창고가 있는데, 창고를 들여다보게 되면 수매가 끝난 벼들이 산더미처럼 쌓이는 것을 보았어요. 여러분 그런 창고를 보신 적이 있나요? 창고에 엄청난 여러분 벼들이 쌓여 있어요.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베푸실 은혜가 쌓아두신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되 여러분 찔끔찔끔 마지못해 억지로 주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때 쏟아부으십니다. 하나님은 쌓아두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찾아가서 도움을 구하면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아줘 가진 게 없어서 또 지금은 불경기라서 힘들어서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은혜가 쌓여 있습니다. 언제나 풍성하게 쌓여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받을 은혜를 쌓아두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은혜가 있다는 말이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제도 안의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실 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미 하나님은 모리아산의 수풀에 순양을 예비해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번에 다니엘 세이레의 기도회를 시작하실 때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여러분 1044개 교회와 모든 성도들에게 부어주실 은혜를 쌓아두셨습니다. 여러분 쌓아두시고 하나님께서 이 다니엘 기도회를 시작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요, 이미 우리에게 베푸실 은혜를 쌓아두셨습니다. 그러면 그런데 여러분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누구에게나 이 은혜를 주실까요? 누구에게나 마구 이 은혜를 퍼주시지는 않습니다. 누가 이 쌓아두신 은혜를 누리게 될까요? 10편 31편 19절에 보게 되면 해답이 나옵니다. 다 같이겠습니다.

시작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 곧 죽게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하나님은 누구에게 이 쌓아두신 은혜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까? 주를 두려워하는 자 주께  피하는 자입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라는 말과 죽게 피하는 자 라는 말은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이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쌓아두셨지만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이 쌓아두신 은혜를 마구 퍼주지 않습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 주를 두려워하는 자가 누굽니까 죽게 피하는 자입니다. 세상에는 주의 낯을 피하는 자가 있고 그리고 주를 세상에는 죽게 피하는 자가 있고 주를 피하는 자가 있습니다. 주께로 피하는 자가 있습니다. 성경에도 그렇죠.

아브라함은 범죄하고 난 다음에 주의 낯을 피하였습니다. 여러분 요나도 죄의 낯을 피하여 도망을 갔죠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던 다윗은 어려운 일을 만나면 주님께로 피하였습니다. 주의 낯을 피하는 자가 있고 여러분 주께로 피하는 자가 있습니다. 오늘 이 다니엘 기도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은 주의 낯을 피하는 자가 아닌 바로 다니엘처럼 다이처럼 죽게 피하는 자인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주게 피합니까? 자신의 약함을 아는 자가 주님께로 피합니다.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자가 오직 주님만이 내 인생의 해담임을 깨닫은 자가 여러분 주님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오직 주만이 나의 상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실 수임을 믿는 자가 여러분 추님을 향하여 달리 올려가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질병을 치료해 주실 수 있음을 믿는 자가 죽게 피하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강박한 마음을 깨뜨리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는 자가 여러분 강팍한 마음을 가지고 죽게로 피하는 것입니다. 오직 주만이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을 제거해 주시고 평안을 주실 수 있는 분을 믿는 자가 여러분 주게 피하는 것입니다. 오직 주만이 나의 부모를 구원해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 자가 주게 피하는 것입니다. 오직 주만이 나에 묶인 것들을 풀어주실 수 있는 문심을 믿는 자가 주께로 피하는 것입니다. 오직 주만이 내 남편과 내 자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 자가 주께로 피하는 것입니다.

오직 주만이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 자가 게 피하는 것입니다. 아무나 주입게 피하는 게 아닙니다. 내 자신의 한계를 아는 자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한계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경험하는 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한계입니다. 매일 금요일 많은 성도들을 만나 상담도 하고 기도도 합니다. 그들의 어려움을 공감합니다. 어떻게 이런 아픔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 정말 이해가 안 될 때도 많이 있습니다. 아픔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함께 울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문제를 내 힘으로는 해결해 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부모로서 자녀들의 아픔을 알고 울어줄 수는 있지만 그들의 눈물을 그들이 흘리는 눈물을 내 자녀들의 눈물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병든 자를 위하여 함께 아파하며 밤을 새워서 간호할 수는 있지만 병을 고칠 능력은 없습니다. 한계를 느낍니다. 한계를 실감하는 자가 주님의 보좌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임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가운데 죽게 피함으로 쌓아두신 은혜를 가장 많이 경험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다윗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입니다. 왜 다윗과 다니엘은 쌓아두신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경험했을까요? 그의 인생이 평범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많은 배신을 경험하고 누구보다도 즐겁게 인생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고난과 고통 가운데 인생을 살았기에 여호와께 피하였고 여호와께 피함으로 쌓아두신 은혜를 누구보다 많이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께 피한다는 게 뭐겠습니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기도의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쌓아두신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은혜의 보호자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찬송을 드리며 주의 얼굴을 구하며 부르짖어 기도해야 됩니다. 왜 은혜 그네 보좌패 쌓아두신 은혜 예비해 주신 은혜가 많기 때문이죠. 다윗은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죽게 피하여 하나님께 피하므로 자기가 겪고 있는 시련과는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차고 넘치는 풍성하니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의 합한 자였던 다윗이 경험한 쌓아두신 은혜는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했습니다. 10편 31편 20절을 읽겠습니다. 다 같이요. 주께서 그들을 뒤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다윗이 춥게 피하였더니, 주님께서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얘기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군가에 쫓기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번 단일 기도회 기간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시 편 31편 21절을 읽겠습니다. 다 같이요.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내게 보이셨으니로다 여호와께 피하였더니, 그의 놀라운 사랑을 하나님이 내게 보이셨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여러분 이번 다니엘 기도회 기간에 하나님 앞에서 부르지도 기도하므로 은혜에 보좌 앞에 달려나가므로 하나님께서 쌓아두신 두 번째 은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정말 신앙생활 하면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몰라소 차가운 신념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이번 다니엘 기도회 기간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기도의 응답을 경험했습니다.

10편 31편 22절을 읽겠습니다. 다 같이요. 내가 죽게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강부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다윗이 여호와께 피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다고 말합니까?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다라고 말합니다. 무슨 얘기죠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다는 얘기입니다. 네 번째로, 강하고 담대함을 얻었습니다. 10편 31편 24절입니다. 다 같이요.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다윗은 여호와 함께 피하므로 쌓아두신 은혜를 경험했는데 첫 번째 쌓아두신 은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음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세 번째로는 기도에 응답을 받았습니다. 네 번째는 강하고 담대함에 축복을 누렸습니다.

이번에는 다니엘이 받은 쌓아두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첫째로, 다니엘은 하나님께 피하여 부르짖어 기도하므로 새 이래를 금식하여 기도하므로 쌓아두신 첫 번째 은혜는 첫 번째 쌓아두신 은혜는 영광의 주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영광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단열 10장 5절과 6절을 있겠습니다. 다 같이요. 그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 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띠를 띄었더라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햇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녹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그분은 바로 인간의 몸을 잊고 이 땅에 찾아오시기 전에 우리 주님이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 1장 13절 15절에서 천상에서 만난 주님을 오늘 본문에 나오는 동일한 모습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금식하며 조국을 위해서 기도하다가 영광스러운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근본 단열 기도의 기간에 여러분 우리 중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영광의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을 만나야 됩니다.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것임 두 번째로, 다니엘은 주님의 어루만지심을 경험했습니다. 영광의 환상만을 보고 끝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주님의 어루만지심을 경험했습니다.

성경의 뭐가 되면 다니엘은 세 번 세 번의 어루마지심을 경험하지요 자 단열서 10장 10절 상반절을 먼저 읽습니다. 다 같이요.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단열 10장 16절을 읽습니다. 다 같이요. 인자와 같은 이가 있어 내 입술을 만진지라 입술을 만질 때에 말문이 열렸습니다. 단열 10장 18절을 읽습니다. 다 같이요. 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나를 만지며 알을 근건하게 하여 세 번의 어루만지심이 있었습니다. 입술을 만질 때에 말문이 열렸습니다. 그의 몸을 어루만질 때에 강건해졌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 세일의 기도의 기간에 주님께서 피 묻은 손으로 여러분의 연약한 부분들을 어루만져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이 터치하시면 반드시 치료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이 만지시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터치하실 수 있도록 여러분의 자아를 버리고 주님께 여러분의 인생을 드리시길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11절 상반절을 잊겠습니다. 다 같이요. 내게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12절입니다. 다 같이요. 그가 내게 이르되 다리해라 두려워하지 말라 19절을 잊겠습니다. 다 같이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며 내가 곧 힘이 나서 할렐루야 다니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큰 은총을 받은 사람 하나님은 다니엘을 향하여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다니엘만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 세언약의 백성인 우리는 다니엘보다 더 큰 은총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큰 은총을 받은 저와 여러분에게 오늘 주님께서 들려주고 싶은 간절한 주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큰 은총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크는 총을 받은 저와 여러분에게 간절히 들려주고 싶은 주님의 음성입니다. 단열이 이 음성을 들었을 때 뭐라고 말합니까?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났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힘이 납니다.

여러분 이곳에서 선포되는 강사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21일 동안 얼마나 힘듭니까 그렇지만 여러분 새임을 우리는 공급받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드리면, 여러분 우리는 새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을 얻어야 독수리처럼 날아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제가 얼마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날개가 있다고 다 오르는 게 아니라고 오히려 날개가 거추장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힘이 없으면 우리의 날개가 더 거추장스럽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커다란 날개가 있어도 여러분 날개짓을 할 수 있는 힘이 없으면 날아오를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 30년 모태신앙 자랑하지 마세요. 신앙의 연수가 있다고 날아오르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힘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기름 부어주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여러분 우리가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됐습니다. 14절을 읽겠습니다. 다 같이요.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내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다니엘이 새 이레 에 금식하며 기도할 때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조국에 대한 미래의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새 이레를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의 응답을 가지고 온 천사가 말합니다.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내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무슨 얘기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나와 내 가정을 향한 나의 미래를 향한 직장을 향한 그리고 이미 민족과 몸낸 교회를 향한 하나님이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근데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기도 영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다니엘 세일의 기도에 놀라운 은혜를 쌓아두셨습니다. 함께 참여하는 1044개 교회뿐만 아니라 여러분 참여하는 모든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놀라운 은혜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그런데 누가 이 쌓아두신 은혜를 받아들입니까? 여러분 하나님께 피하는 자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심을 믿고 내 인생의 한계를 깨닫고 그 하나님의 보좌를 향하여 달려가는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 두 손 들고 주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고백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쌓아두신 은혜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 부어주셨던 은혜 다니엘은 영광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어루만지심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음으로 기도에 응답을 경험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피함으로 받은 쌓아두시 놀라운 노래 다니엘이 세이레를 금식하며 기도하므로 받은 싸두신 이 놀라운 네 가지의 은혜 이번 단열 기도회 기간에 우리 모두가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함께 기도해 주 앞에 나와 지금 이 시간 여러분 세뇌갈 베트남 중국 일본 그리고 미국 캐나다 그리고 1044개 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공간을 초월해서 우리가 함께 은혜의 보호자 앞에 있습니다. 우리 함께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우리가 하늘을 양해 두 손 들고 하늘

기도할 때에 사냥을 드릴 때에 하늘의 문이 열리고 놀라운 은의 빗줄기가 쌓아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폭포수처럼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 은혜를 갈망하면서 우리 두 손을 들고 우리 모두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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