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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성 목사 선한목자교회 본문

다니엘기도회/목사 다니엘기도회 간증

유기성 목사 선한목자교회

generalQS 2024. 3. 19.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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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제 이번 부흥의 저녁 집회 마지막인데요.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마음이 다친 것 막힌 것 담이 정말 완전히 무너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한 시간 정도의 설교 시간인데 이 한 시간 정도가 지나고 나면 한 9시 정도쯤 될 것 같으네요. 여러분 안에 모든 맡긴 담이 다 무너졌구나 그것을 여러분 스스로가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또 그렇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주님이 일을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하나님과 사이에 자기가 막힌 담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냅니다. 그냥 열심히 교회 다니고 그리고 교회에서 하라고 하는 대로 그저 잘 지켜 행하면 그게 예수님을 잘 믿는 것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근데 실제로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데 마음은 영적으로 답답하고 너무나 메말라져 있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봅니다. 기쁨도 없고 감사도 없고 사랑도 없고 마음의 평안도 없고 그렇게 교회 열심히 다니는데 왜 그럴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종교 생활을 하고 있는 거죠. 이 종교 생활에 빠진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과 사이에 막힌 담이 생겨버린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삶의 실재가 아닌 거예요. 현실이 아닌 겁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만 자기 삶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닌 것 같은 예수님 성경에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고 오병이의 기적을 행하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그걸 읽으면서도 자신의 삶에는 전혀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이게 정말 무서운 일이거든요. 아 내 안에 영적인 담이 있구나 하나님과 사이에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일단은 담이 무너지는 첫 번째 시작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과 담이 생겼구나 회개함으로 인하여 담이 무너진다고 첫 번째 말씀을 드렸습니다. 근데 무엇을 회개해야 되는 거죠. 오늘 기도해 주신 장로님이신가요? 네 말씀을 너무나 정확하게 요약해서 기도해 주셔서 깜짝 놀랐고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진짜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할 죄는 그런저런 윤리적인 죄뿐만 아니고 진짜 죄는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데도 전혀 주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예수님을 완전히 무시하고 산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면 차라리 믿지 않는 사람이겠지만, 예수님을 영접했으면서도 전혀 주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게 얼마나 주님께는 심각한 죄인지를 모르고 사는 거죠. 이 점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내어놓고 회개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첫째, 날 말씀을 드렸어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무시하지 않고 살겠다고 마음에 고백하고 결심했으면 진짜 믿어야 되는 거죠.

예수님이 내 안에 정말 계시다 나는 죽고 이제 예수님으로 사는 자가 되었다. 이 사실을 정말 믿게 되면 그러면 그동안엔 그렇게 영적으로 답답했던 일 말씀을 읽지만 말씀대로 사라지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만 믿는 것 같지 않았던 삶이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단 하나 믿은 건데 예수님은 진짜 내 안에 계신 여러분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는 이 은혜는 어떤 사람은 받고 어떤 사람은 받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오늘 예배당에 가득 우리 성도들이 모이셨는데 오늘 예수님이 어떤 사람에게는 임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임하지 않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여기 계신 분들 영상으로 지금 이 집회에 참여한 분들까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받은 은혜 예수님이 내 마음에 와 계신 것 믿느냐 안 믿느냐 문제입니다. 저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진짜 영접한 사람과 영접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시라고 그런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예수님을 영접했는데 그 사실을 진짜 믿는 사람이 있고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예수님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삶을 살고 계세요. 자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기도하는 것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에요.

마음에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면 근심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고 싶은 소원이 생기고 어떻든지 예수 안 믿는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들 사람도 예수 믿었으면 좋겠다. 마음에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에요. 찬송을 들으면 은혜가 되고 설교를 들으면 은혜가 되고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 사람에게만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내 마음이 계신 것을 내가 믿는 것인 거예요. 주님 오세요가 아닙니다. 오늘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안 계시기 때문에 주여 지금 나에게 오시옵소서 이럴 사람은 오늘 여기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주님 제가 함께 계신 주님을 믿어지게 하소서 믿어지게 하소서 이 예배당 안에서만 아니고 이제 집에 갈 때도 집에 가서도 내일 아침에도 직장 가서도 학교 가서도 친구 만나서도 혼자 길을 걸을 때도 믿어지게 하소서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 게 믿어지게 하소서 그래서 이제 예수 동행 일기를 쓰면서 예수 동행 운동을 하게 된 이유기도 해요. 이렇게 믿어지면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실 게 믿어지면 그러면 예전 가정이 아닙니다. 예전 내 교회 생활이 아니에요. 직장도 내가 사는 곧도 다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주님과 함께 사는 일이 엄청나고 놀라운 일이에요. 하나님과 사이에 막힌 담이 무너지게 된 거죠. 자 그게 어제 드린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 더 말씀을 드려야 돼요. 정말 중요한 말씀을 오늘 여러분에게 나누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구나. 이 사실이 믿어지면 그다음에 필요한 것이 주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내 마음에 오셨는데 예수님은 나를 도와주러 오신 분이 아니고 예수님은 나의 주님으로 오신 거예요. 왕으로 오신 분입니다. 제가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기 전에는 늘 기도할 때 도와달라고 기도했어요. 주여 저를 도와주세요. 제가 목회를 하는데 도와주세요. 설교를 하게 되는데 도와주세요. 신방을 가는데 도와주세요. 계속 도와달라고 했어요. 입에 아주 베였어요.

그런데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고 나니까 예수님은 나를 도와주러 오신 분이 아니고 나의 왕으로 오신 분이에요. 그 점을 전혀 몰랐던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을 믿으면서도 실제로 주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삶이 안 되는 거예요. 왜 그러실까 왜 내 안에 계신데, 주님은 역사하지 않으실까 왜 성령님은 내 안에 계신데, 나는 성령 충만함을 누리지는 못하는 걸까 그게 저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큰 숙제였어요. 근데 이유를 깨달았어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만 믿을 게 아니고 거기 진짜 믿었다면 이제는 주님께 순종하고 가야 하는 거죠. 제가 주님께 순종하면 그때부터 제 안에 계신 주님의 역사가 내 삶 속에 나타나게 되는 거예요.

순종하지 않으면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나도 잘 모르고 함께 사는 가족들도 모르고 교인들도 몰라요.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데, 세상에 이런 기가 막힌 일 있나요? 주님은 내 안에 분명히 계신데, 주님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삶을 지금 살고 있는 거예요. 오늘 저녁에도 이렇게 부흥에 오신 것이 예수님 아니시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자 그런데 그냥 부흥에만 나오는 그런 삶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서도 아 주님의 역사가 나타나야 되잖아요. 가정에서는 가정에서 대로 일터에서는 일토에서 주님은 내 안에 계신 역사가 나타나야 되잖아요. 왜 역사를 안 해주실까 역사를 안 하시는 게 아니고 못하시는 거예요. 왜 못하시죠.

순종하지 않으니까 주님께 순종하지 않으니까 사도행전 5장 32절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에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성령 충만을 다 우리가 원합니다. 우리 성결 교회는 특히 성령의 충만함에 대한 갈망이 뜨거운 교회죠 어떻게 하면 성령 충만하지요 성령 충만함을 주시는 것은 주님이 더 원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집회를 할 때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지 못하는 걸까요? 순종히 문제가 있었던 거예요. 그냥 큰소리로 주여라고 부른다고만 성령의 충만함이 오는 게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은사를 경험하거나 능력을 경험하거나 어떤 뜨거운 체험을 하는 게 핵심이 아니에요.

자꾸 그런 체험에다가 초점을 맞추니까 이상하게 흘러가게 되는 성령의 충만함은 성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나를 완전히 지배하시게 되는 그래서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실 뿐만 아니고 나를 통해서 나타나시게 되는 일 그걸 성령에 충만함이라고 나도 알고 내 주변 사람들이 다 알아요. 사람이 성령 충만하구나 그 말은 성령께서 사람을 통하여 나타나시게 된 거예요. 사람들이 다 알게 된 거예요. 근데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냐는 겁니다. 성령님께 순종함으로 드러나시게 되는 거예요. 성령충만의 핵심은 순종에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오늘 나는 이제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리라 무슨 말씀이든지 하세요.

저는 순종하겠습니다라고 여러분이 결단하는 순간에 오늘 저녁에 여러분은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심을 알게 됩니다. 주님과 사이에 막힌 담이 무너진 거죠. 본 리즈라고 하는 사람이 쓴 중국의 예수 가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1920년대 30년대 중국의 예수 가정이라는 지하교회 교회 이야기예요. 그 중국의 예수 가정이라는 책에 보면 칭틴넨이라는 중국 예성 가정교회 지도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칭틴넨 시는 중국의 아주 전통적인 유교 배경에 가문에서 자랐어요. 그러니까 철저하게 유교적인 생각에 젖어있는 사람이죠. 근데 이 사람이 이제 신문물에 공부해야 되겠다.

그런 이제 자각이 생겨서 도시에 나와서 이제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그때 당시에 신문물을 가르치는 학교는 거의 대부분 중국에 온 서양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입니다. 그래서 선교사 학교에 들어가게 돼요. 근데 선교사 학교에 들어가서 기독교를 처음 접하게 됩니다. 성경을 배우게 되고 예배를 드리게 되고 어쩔 수가 없죠 자기는 유교 신자지만 학교에서 공부를 할려면 예배도 드리고 성경도 배우고 그러다가 예수님이 글을 쓰던 시구나. 십자가에 복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거구나 하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마음의 성령께서 주시는 책망이 하나 있었어요. 영적인 탁 걸림이 있었습니다.

내가 진짜 예수를 믿을 거면 이건 반드시 해결돼야 된다는 자책이 있었어요. 그게 뭐냐면 아내를 버린 일입니다. 이 칭티네시가 아내와 결혼을 했는데 뭐 좋은 사람 만나서 연애해서 결혼한 게 아니고 옛날 중국 가정 전통대로 양가가 그저 서로 약조해서 생전 보지도 않았던 그런 여자를 아내로 맞은 거예요. 근데 얼마나 구식 여자인지 옛날 중국 여인들의 전족을 하고 그리고 도무지 말귀도 못 알아듣는 그런 여자와 결혼을 한 거예요. 네 칭틴의 시대가 달라지는 것도 알았고 신문물도 공부해야 되겠다고 깨어있어 생각이 이 여자랑 같이 살아서는 내가 도무지 새로운 시대에 살아갈 수 없겠다.

그래서 그때 당시는 마음에 안 들면 남자가 얼마든지 여자를 버릴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오고 난 내쫓았어요. 그렇게 파혼이 된 거죠. 그리고 자기 혼자 공부하러 이제 나왔는데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니까 내가 아내를 버린 것에 대해서 말씀에 의하여 심각한 책망을 받은 거예요. 에베소서 5장 25절에 내 아내를 사랑하라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말씀 전후를 삿사 지울 때 봤어요. 틀림없이 아내가 이쁘면 사랑하라 말 잘 들으면 사랑하라 아내가 똑똑하면 사랑하라 뭐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아무 이야기가 없는 거예요. 무조건 아내를 사랑하라는 걸 너무너무 고민을 하게 됩니다.

내가 예수를 믿을 꾀면 이 말씀에 순종해야 되고 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예수 믿는 것이 아니게 되고 결국은 이 칭케인 씨가 하나님 앞에 결단해요. 하나님 제가 제 아내를 데려오겠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처가로 가요 그리고 아내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그때 당시의 중국 남자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당신을 버린 것을 용서해 주세요. 다시 내 아내가 되어 주세요. 그 틴티넷 씨의 아내는 사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거예요. 그래서 이제 집으로 가자고 했는데 24키로가 떨어져 있어요.

이 징티넨 씨의 집과 그 처가 거리가 한 24키로 그때 당시에는 뭐 교통수단도 없으니까 다 걸어다니는 24키로를 가야 되는데 아내가 전족을 한 여자라 걸을 수가 없는 거예요. 날이 밝아서 뭐 가마를 타든지 뭐 말을 타든지 그런 도구를 이용하면 좋겠는데 칭피네 씨 마음에는 당장의 이 일을 실천하고 싶은 아내를 데려오라 당장 실천하고 싶어요. 근데 아내는 갈 수 있는 그런 몸이 아닙니다. 그때 칭티네시가 순종하는 결단을 합니다. 아내를 업어요. 그때 당시에 중국 남자가 아내를 업었다 그건 정말 사람 취급을 못 받던 시절 근데 아내를 업어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순종하려고 그리고 24키로가 되는 길을 아내를 업고 갑니다. 한 시간이라도 빨리 주님께 순종했다고 하는 고백을 드리고 싶어서 그리고 24 길로의 길을 걸어서 집 문지방을 딱 넘어서는데 칭티 낸 씨와 아내에게 성령이 임해요. 그 마당에서 성령을 받아요. 두 사람이 그리고 이 두 분이 중국의 예수 가정 지하 교회 아주 훌륭한 지도자가 그 아내가 구식 여자 성령 받기 전에 이야기예요.

성령 받고 난 다음에 얼마나 탁월한 리더가 됐는지 왜 우리는 그렇게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고 살지 못하는 걸까 여러분이 예수를 믿고도 왜 예수님은 역사를 안 해주시나 그러면 여러분의 순종을 점검해 보셔야 돼요. 예수님이 진짜 여러분에게 왕이신가 하는 거예요. 우리는 예수님을 모시고 살지만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왕을 모시고 사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왕이 계세요. 내 안에 그분은 나에게 명령하시는 분이에요. 나는 명령의 토를 달 수가 없는 사람이에요. 주님이 하라고 그러면 하는 겁니다.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완전한 순종밖에 없어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에게 완전한 순종을 드리지를 못하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 여러분에게 무슨 명령을 하시든지 어떤 걸 요구하시든지 완전히 순종하실 마음이 준비되셨습니까? 그런 분이 계시네요. 정말 놀랍네요. 네 자 혹시 제가 대답하신 분 아멘 하신 분을 무시하는 거 아닙니다. 혹시 아멘은 훈련을 너무 잘 받으셨기 때문에 무언가 좋은 말씀인 것 같다 그래 가지고는 아멘이 쑥 튀어나올 수도 혹시 있는 거예요. 네 그래서 이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 아주 심각한 문제예요. 아멘 하셨으면 그렇게 살아야 되는 겁니다. 완전히 혹시라도 제가 충분한 설명을 드리지 못하고 질문을 했기 때문에 그냥 아멘 이렇게 나온 경우라면 취소할 기회를 드릴게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걸 진지하게 받으시면 이제 그분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되는 거예요. 제가 드리는 질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있는 재산 다 바치라 그래도 목숨도 바치라 그래도 자식 바치라고 해도 하여튼 하나님인 나에게 뭘 명령하시든지 간에 나는 무조건 순종합니다. 그렇게 준비가 되셨습니까? 지금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질문을 받으면 일단 겁이 나요? 겁이 난다니까 그게 문제인 거예요. 그게 바로 하나님과 사이에 맡긴 담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을 사랑의 아버지라고 믿어요. 나를 위해서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그러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뭘 아끼시겠어요.

그런 하나님의 사랑 그렇게 믿는다고 고백을 해요. 그런데 실제로 우리 마음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하나님은 두려운 하나님 까다로운 하나님 무서운 하나님 내 좋은 거 다 가져가신 하나님 진짜 하기 어려운 것만 골라서 지키시는 하나님 요렇게 생각한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진짜 어떤 하나님이신가요? 아니 하나님은 너무나 좋으신 하나님이에요. 나에게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 이 사실을 진짜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령하든지 순종하겠습니까? 아멘 뭐가 문제가 돼요.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면 다 나에게 유익한 거죠.

그런데 우리는 마음에 하나님이 나에게 힘든 거 시키면 어떡하지 내가 하고 싶은 거 하지 말라 그러면 어떡하지 내가 꼭 정말 하기 싫은 것을 골라서 또 하라고 하면 어떡하지 어떤 권사님이 자기는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이런 기도를 못하신다는 거예요. 왜 그러시냐 그랬더니, 예수님이 그렇게 기도해 가지고 십자가에 끌려가 죽었잖냐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기도하면 십자가에 끌려가 죽을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는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이런 기도를 못한대 참 대단한 믿음이요. 그러고도 권사 되신 게 참 놀라운 거죠. 네 그런데 사실 권사님을 참 흉보고 할 자격이 있나요?

여러분 안에는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다 사라지셨나요? 제가 신학교 다닐 때 그때 졸업반이에요. 학급 예배를 드리는데 이제 하루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간단히 찬송 하나 하고 성경 말씀 보고 기도하고, 학급 경건회를 늘 매일 했습니다. 그 전도사님들이 이제 돌아가면서 하루씩 기도회를 인도했는데 어느 날 기도회를 인도하시는 전도사님이 323장 부른바다 나선의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찬송을 부르자고 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뒤에 있는 누가 제발 찬송은 좀 부르지 맙시다 그래 가지고 다른 찬송을 부른 적이 있어요. 그 신학교 졸업반 금지곡이에요. 보륜바다 나서니 뭐 어디든지 가오리다 여러분 이해하시죠.

여러분의 자녀가 지금 신학생이라고 생각해 봐요. 어 여러분 사위 될 사람이 신학생이라고 생각해 보래니까 불운 바다 나서니 뭐 어디든지 가야 됩니까? 신촌 송별교회 같은 데 와야죠 아니 지금 신학교 졸업반 공부는 같이 하지만 이제 요 학년만 끝나면 다 임시 찾아서 떠나요? 어느 전도사님은 신전 성별교회 같은 교회 가서 사역하고 어떤 전도사님은 아*골작 빈들에 가서 사에 가고 신전송결교회의 부름 받은 전도사님은 하나님이 사랑하고 복을 주신 전도사님 아*골작 빈대레 간 전도사는 저주받은 전도사지 그때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축복하시는 그런 사람은 임지 좋은 교회 갈 거예요.

예배당도 있고 교인도 있고 대우도 잘해주고 교인들도 너무나 좋은 그런 교회 다 가고 싶 아골골짝 빈 그들의 교인이냐 있나요? 예배당도 있나요? 생활비는 누가 줘요 그런 곳에 누가 갑니까? 여러분 아들이 지금 목사라고 해봅시다 여러분 사위가 목사라고 해봅시다 그런데 푸른 바다 나사님은 어디든지 가오리다 그러면 여러분 말릴 거예요. 안 말릴 거예요. 아니 아골골작은 가지 말아야지 조금만 더 기도해 봐 신전성결교에서 연락 올 거야. 여러분은 안 그러시겠어요. 진짜 그런 마음이 드라니까 그때 저라도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느냐 아니 우리가 다 주의 종인데 푸른 바다 나섰으니 어디든지 가야지요 주님이 가라 하시면 그래야 되는데 저도 말을 안 했어요.

저도 큰 교회 목사 되고 싶은 마음 이왕신학교 가서 목사 되는 거 큰 교회 목사 되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저에게도 있어요. 주님 뜻대로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 말은 무슨 뜻인가 무지 고생하는 삶을 사는 꼭 그렇게 연결이 되는 거예요. 그게 너무 두려운 거예요. 이게 우리들의 문제인 거야. 우리는 도대체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는 거야. 완전한 순종이 왜 겁이 나는 거죠. 제자 훈련하면서 여러분 지갑 가져오셨습니까? 꺼내 보세요. 그랬더니, 아니 성균 공부하다가 왜 지갑은 꺼내라고 하나 그래서 인제 지갑을 다 꺼내더라고. 그래서 여러분 지갑 누구 겁니까?

우리 한국 교인들은요, 정답 찾는 덴 선수예요. 주님 거래요. 네, 뭐 성경 공부 시간이에요. 지갑 꺼내라고 목사가 질문했어요. 답이 뭐겠어요. 우리도 주님 건데 내 지갑도 당연히 주님 거지 근데 10명 중에 꼭 한두 명 정도는 손만 바들바들 떨구요. 이거 오늘 왜 돈을 이렇게 많이 가져왔을까? 이거 지갑 주님 거라 그러면 다 뽑아서 바치라 그래도 할 말이 없는 거잖아요. 그죠 꼭 그런 느낌인 것 같애요. 지갑은 넣으시고 그러면 금방 다 넣어요. 주님 거라고 그래 놓고도 다 금방 다 넣어 자 여러분 집에 통장이 있습니까? 뭐 얼굴이 하얘져요 지갑하고 통장하곤 또 다른가 봐 통장은 누구 겁니까?

지갑은 주님 거라고 했던 사람도 통장이 누구 거냐고 물을 때는 묵비권 행사로 대답을 안 하셔 만약 통장도 하나님 거라 그러면 오늘 다 뽑아서 헌금하세요. 그러면 이게 입장 곤란하다 이런 생각이 드나 봐요. 집문서 있습니까? 다들 이를 악물어요. 이 부러지겠다. 이런 느낌이 들 정도로 조심해야 돼 지금 이 순간에 정말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 다 그런 느낌이에요.

목사님이 우리 교회 부채가 많다더니, 다 제자훈련한다고 해서 모아놓고 집 문서 땅 문서 다 바치게 하는구나 꼭 그런 느낌인 것 분위기가 여러분 혹시 여러분도 그런 느낌으로 주님 을 생각한다면, 주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고 주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진짜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다 주셨어요. 그분이 하나님이세요.

근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내 통장이 누구 거냐 내 집문서는 누구 거냐 그렇게 물으실 때 여러분의 마음이 경직이 되고 만약에 그게 두렵다면 우리 주님은 어떤 마음이실까 아유 그래도 목사님 아유 그게 어떤 돈인데 내가 어떻게 모은 건데 내가 앞으로 살아갈려면 그거 없인 안 되는데 그걸 어떻게 다 하나님께 바쳐요 충분히 점에 이해가 돼요. 근데 아셔야 돼요. 하나님이 가져가시려고 물으신 게 아니라는 거예요. 통장 누구 거냐 주님 겁니다. 그러면 바쳐 집 문서 누구 거냐 이것도 주님 겁니다. 그러면 바쳐 이러시려고 물으신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뭘 이렇게 너 나 그거 나에게 줄 수 있냐 아 그러면 가져가시고 안 돼요.

하나님 이건 손대지 마세요. 그러면 또 못 가져가시고 여러분은 하나님을 그렇게 앓고 계세요. 하나님은 우리 허락이 필요 없어요. 여러분은 어떤 걸 가졌다가 없어졌다가 그래본 경험 없으십니까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세요. 여러분의 목숨 다칠 수 있다. 없다. 여러분에게 무슨 권한이 있어요. 오늘 저녁에라도 주님이 여러분의 생명을 거둬 가시려면 허락 없이 가져가시는 거예요. 자식은 못 봤죠 자식은 하나님 자식은 손대지 마세요. 여러분 병원 응급실 앞에서 통곡하고 우는 사람 못 보셨나요? 주님이 우리 자식들 우리 가족들 허락 맡고 데려가셨어요. 그냥 데려가실 때 그냥 데려가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당신의 마음대로 하시는 분이세요. 어 그러면 그냥 가져가시지 묻기는 왜 물어보세요. 속 뒤집어지게 아니 가져갔을 때 가져가시지 뭘 통장이 누구 거냐 집문서 누구 거냐 자식 받을 수 있느냐 왜 그렇게 물어보세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물으시는 것은 까닭이 있어요. 모든 것이 하나님 마음대로시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마음대로 하실 수 없는 게 있어요. 그게 우리의 마음이에요. 우리의 마음만큼은 우리가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이 가져가실 수 없어요.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을 바치라 그렇게 말씀하셨을 뿐이에요.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는가? 그걸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지켜보시는 거죠.

이삭도 바치려고 진짜 하니까 하나님이 오히려 막으셨어요. 다 급하게 아브라함의 손을 붙잡으셨어요. 하나님은 우리 것을 필요하신 하나님이 아니세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주신 건데 단 하나 우리의 마음이 어떤가를 알고 싶으신 거예요. 여러분이 이거 누구 거냐 하나님 겁니다. 하나님이 다 주신 건데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가져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지요. 그러시면 오냐 그리고 다 가져가실 것 같습니까? 그렇게 주님께 드리겠다는데도 오히려 내게 더 주시는 분이시기도 하고 안 돼요. 이것만큼은 절대로 안 돼요. 그래도 참 냉정하시게 싹 다 가져가시기도 하시고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분명해져야 돼요.

여러분 이제부터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너 나에게 완전히 순종할 수 있겠냐 이런 질문을 받으실 때 그게 어떤 상황인지를 정확히 아셔야 돼요. 그게 프러포즈예요. 하나님의 프러포즈예요. 여러분 어떤 공원에 젊은 남녀가 이렇게 앉아서 뭐라고 이야기를 해요.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까 남자가 자매에게 결혼을 해달라고 청혼을 하는 거야. 나와 결혼해줘 자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시다. 그럴 때 여러분 어떤 느낌이에요. 진짜 무섭다 진짜 날강도네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어 그런 느낌이에요.

분위기가 너무 좋아 그죠 밤 전등 밑에 거기서 남녀가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나와 결혼해 달라고 청혼하는 분위기를 그걸 무섭다 살벌하다 끔찍하다 이런 느낄 사람이 누가 있어요. 야 참 보기 아름답다 정말 좋은 때다 그런 거지요 그러나 실제로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결혼을 해달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죠. 실제로는 여자의 모든 것을 달라는 거예요. 이제는 당신에게는 다른 여자가 없어요. 당신의 삶은 다 나에게 이젠 생각해보면 진짜 무서운 일인 거죠. 그런데도 그때 청혼을 받는 여자의 얼굴 표정이 어떨까요? 정말 황홀한 거죠.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라면 그리스닥 결혼하셨잖아요. 그죠 몰라요.

그러면서 다 결혼을 하셨잖아요. 그죠 성운 받았을 때 그게 그렇게 마음에 떨리고 그렇게 너무 좋고 그래서 한 남자에게 내 인생을 다 맡기고 결혼들 하셨잖아. 근데 결혼하고 난 다음에 어땠어요.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 내가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 그때 내가 정신 차렸어야 되는데 혹시 그런 느낌이신 분도 있으실 거예요. 그래도 진짜 믿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믿을 수 있어요.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당신 손에 물 안 묻히게 해 주겠다고 당신 눈에 절대로 눈물 흘리는 일이 없게 해 주겠다고 그렇게 약속한다고 그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마음은 그렇다 하더라도 능력이 없는 게 사람이잖아요.

그런데도 청원을 받으면 그렇게 좋았는데 아니 하나님이야말로 진짜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분입니다. 나를 책임져 줄 수 있는 분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요구하시는 거예요. 결혼해 달라는 나와 결혼하자 그런데 왜 그거는 부담된다고 이야기하는 하나님 왜 이러세요. 아니 교회는 나갔게요 왜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세요. 아니 이건 너무 심해요. 1*조까지는 내가 드릴게요. 선경금 이번에 건축원금도 제가 드리기는 할게요 근데 이건 절대로 손대지 마세요. 이거는 낸 노후자금이요. 아니 하나님과 사이에는 왜 이런 식으로 거래를 할려고 하지요 눈이 안 뜨이는 거예요.

앤드류 머레이가 부활의 주와 함께하라 책에서 어느 날 아침에 하나님께서 물으시더래요. 너에게 있어서 나는 어떤 존재냐 그렇게 물으시더래요. 그래서 앤드류 머랭이가 대답을 했답니다. 주님은 저에게 늘 첫째이십니다. 자기는 정말 대답을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늘 옛 하나님이 당신에게 첫째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같지 않더래요. 하루 종일 고민이 되었어요. 내가 무슨 대답을 잘못했을까? 저녁쯤 가서 깨달았어요. 내가 잘못했구나 대답을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은 저의 모든 것이십니다. 그때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셨다 책에 글을 쓰셨어요.

여러분 하나님이 나에게 첫째가 되시는 거하고 전부가 되시는 거하고 차이를 아시겠어요. 자 만약에 남편이 아내에게 이제 어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다고 합시다. 여보 나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예요. 남편이 당신을 언제나 쳤죠 첫째야 나에게 그러면 기분이 좋으실까요? 아우 내가 첫째래 이 사람에게 항상 나는 첫째래 미스킴은 둘째고 미쓰리는 셋째고 좋기도 하겠어요. 그죠 아우 난 첫째래 늘 첫째래 말도 안 되는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에는요 첫째, 둘째가 없어요. 그게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예요. 모든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러셨다니까요?

독생새까지 내어주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있어서 첫째, 둘째, 셋째, 개념이 없어요. 모든 것이라니까 그러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모든 것을 원하시는 거예요.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 속에 들어가자는 겁니다. 오늘 이 시간에 내가 그동안의 하나님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 순종하면 고생하지 않을까? 하나님께 순종하겠다고 하면 내 좋은 거 뺏기지 않을까? 하지 진짜 하고 싶지 않은 거 하라고 하지 않을까? 뭐 여러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순종에 대한 결단을 못하신 분들 그게 벽이에요. 그래서 주님은 역사를 못 하시고 계셨던 거 안 하시는 게 아니에요.

내가 순종함으로 반응을 하지 않으니 예수님은 내 삶의 왕이 아니신 거죠. 저는 신학교 졸업할 때 아까 말씀 말씀드린 것처럼 아고 얼굴짝 빈들의 도무지 못 가겠다. 그때 느낌이었어요. 이왕이면 좋은 교회 갔으면 좋겠다. 그런 수준이었어요. 근데 하나님은 그런 제 마음을 계속 추적하셨어요. 제가 대학원 공부할 때입니다. 이제 4분의 3 학기 마치고 이제 마지막 논문학기가 남았어요. 근데 그때 제가 부목사로 있었고, 교구 담당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는 허락을 해 주셔서 대학원 공부는 하곤 있었지만 교구 신방도 해야 되고 대학원 논문도 써야 되고 둘 다를 하기가 참 어렵더라고.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이제 논문만 쓰면 이제 대학원 공부가 끝납니다. 이번 학기도 신방도 잘하고 논문도 잘 쓸 수 있게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그리 기도했어요. 근데 어느 날 새벽에 주님이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너 왜 고민하냐? 신방도 해야 되고 논문 더 써야 되고 힘들면 그럼 대학원 석사 학위를 내게 바치면 되잖아. 벌떡 일어서 나왔어요. 이건 응답이 아니잖아요. 둘 다 잘하게 해달라고 그러면 둘 다 잘하게 해주셔야 응답이지 하나 포기하라고 그러면 이게 무슨 응답이에요. 근데 내내 말씀이 제 마음속에 계속 내 마음속에 떠도는 거예요. 너 대학원 공부 다 했잖아. 논문 개요 다 써냈잖아.

논문 준비 이제 쓰기만 하면 다 되는 거잖아. 남은 거는 학위 하나 남은 건데 그거 포기하면 그러면 너 신방 열심히 하고 교구 목계 열심히 할 수 있잖아. 너 그거 나에게 바치라 제가 목사가 되고 주의 종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께 뭘 바친 게 없더라구요. 말씀을 듣고 보니까 사준이와께 달라고만 했고 받은 것만 있지 주위의 종이면서도 바친 게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나에게 대학원 석사학위를 바치라는데 내가 왜 이리 어떻게 고민이 되나 아버님에게 의논을 드렸어요. 아버님 하나님이 대학원 포기하렵니다. 아버님이 막 펄쩍 뛰시는 거예요. 야 그거 너 지나치게 생각하는 거야.

석사가 문제가 아니고 이젠 박사가 필요해 이제 목회할려면 정말 공부해야 될 게 많아 저는 공부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그날 제 마음속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말고 더 의지하는 게 있다는 것이 이게 하나님 앞에 드러난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근데 마음이 안 잡히는 거예요. 대학원 졸업도 못한 목사 앞으로 어느 교회에 가서 목회할 수 있어요. 토요일 인제 토요일이면 등록 마감 날입니다. 근데 금요 저녁 철야 기도회 시간에 교회 가서 철야 기도를 드려야 되는데 온몸에 열이 나는 거예요. 자리에 누웠어요.

철야기도도 못 나가고 너무 고민이 돼서 그런지 열병이 막 엄청난 열병 소병이 나는 걸 철회 예배가 진행되는 것을 듣고 그냥 누워만 있을 수 없어서 이불 위에 무릎을 꿇었어요. 기도를 해야 되겠다. 근데 기도가 안 나와요. 입을 열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석사하기 바치겠습니다.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시는 것 같아요. 근데 말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너무너무 힘들어요. 그러나 숨이 막히는 것 같아요. 하나님이 바로 내 면전에서 저를 보고 계신 것 같애 그래서 주여라고 입을 여는 순간에 나도 모르게 석사하기를 바치겠습니다. 그렇게 그냥 토해내고 꼬꾸라졌어요. 이불에 꼬꾸라져서 울었어요. 그 고백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거예요.

이불을 쥐어 뜯으면서 울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챙피한 일이에요. 그게 그렇게 울 일인가 싶은데 그때는 이제는 내 목회는 이렇게 끝나나 보다 하나님이 나를 정상적인 교회에서 목회한 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시는 모양이다. 아니 뭐 신학 대학교 졸업 정도의 학위만 가지고 앞으로 나는 어디 가서 목회하겠냐 말이에요. 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그렇게 울고 신기하게 열이 싹 내린 거예요. 그렇게 열이 나서 교회도 못 나가겠더니, 그러면서 마음에 잘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 같았어요. 그래서 다음날 학교 가서 사퇴를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무슨 일이냐 이제 논문만 써내면 졸업인데 설명을 할 방법이 없었어요. 그날 사정이 있어서 제가 자퇴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인제 자퇴를 하고 저는 더 이상 석사 학위도 없는 목사예요. 그러니까 당연히 유학도 못 가게 된 거죠. 그런데 부산에 있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감리교회에서 담임 목사님이 예배당 권축 끝내시고 갑자기 돌아가신 교회에서 청빙이 왔어요. 처음에는 교회에서 담임자 조건이 나이는 마흔 이상 대학원 졸업 이상 그게 인제 기본적인 조건인데 저는 나이도 34살에 대학원 졸업도 못 했잖아요. 근데 저를 담임자로 청빙을 하신 거예요.

이거 참 저는 목회할 길이 안 열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뜻밖인 거죠. 그래서 담임 목사님 허락을 받고 교회로 부임을 가는 그날이 졸업식이에요. 대학원 졸업식 그날 저는 부산으로 부임을 해 갔습니다. 그리고 지금 사실 이렇게 목회를 마치고 여기 이렇게 서 있어요. 제가 제 말씀을 여러분에게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어떤 일에 대해서 명령하실 때가 여러분에게도 다 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분 안에 주님이 정말 계시다면 가만히 지켜보려고 계신 거 아니에요. 여러분의 삶을 이끄실려고 오신 거예요. 주님으로서 왕으로서 그때 여러분이 무조건 순종인 거예요.

예수님을 영접했으면 그러면 주님과 사이에 담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하시고 싶은 엄청난 일을 다 하실 수 있어요. 근데 안 돼요. 주님 못하겠어요. 주님 그런 순간에 주님은 여러분의 삶 속에 아무것도 못 하세요. 그러니까 답답한 거예요. 예수를 믿어도 답답하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거예요. 제가 선언목적위에서 목회를 하다가 예수 동행 일기를 쓰는 사역을 2011년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13년 전이에요. 제가 예수 동의 일기를 교우들에게 쓰라고 할 때 제 마음에는 교인들이 너무 기뻐할 줄 알았어요.

오늘 이 시간에서 선한 목적 위에 원로 목사 중부기도 팀들이 오늘 이 자리에도 여기에 와서 같이 집회에 참석 분석하고 계신데, 저는 교인들이 너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늘 저에게 그랬거든요. 목사님 예수님과 동행하라고 목사님이 설교하시는데 그게 안 돼요. 주님과 동행하고 싶은데 그게 안 돼요. 늘 그랬거든요. 그래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방법을 찾은 거예요. 매일 일기를 쓰고 그리고 그것을 다른 교인들하고 같이 나눔 방에서 일기를 나누며 살아보세요. 그러면 주님과 동행하는 눈이 뜨이게 될 겁니다. 교인들이 그렇게 좋은 방법이 있었군요. 목사님 너무너무 감사해요. 그럴 줄 알았다니까 저는 근데 일기를 쓰시라고 권했더니, 그때부터 반응이 얼마나 쌀쌀한지 일기 아 무슨 생뚱 같은 일기를 쓰라는 거야.

그것도 다른 사람과 일기를 나누라고 교인들의 반응이 너무 차가운 거예요. 순간에 내가 이게 뭘 큰 실수를 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 부목사님들하고 우리 일기를 같이 씁시다 부 목사님들이 교회를 떠나야 되나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담임 목사님하고 일기를 같이 쓰다니 이건 말도 안 돼 그러시는 거 같애요. 제가 목개 잘하다가 갑자기 내가 이게 무슨 엉뚱한 짓을 한 거야. 이런 느낌이 확 들더라고요. 그렇게 교인들에게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훈련시켜 드리려고 했는데도 반응이 너무 안 좋은 거예요. 그리고 실제로 일기 쓰는 사람이 생각보다 너무 적고 처음에는 진짜 안 되는 것 같았어요. 여러 목사님들에게 소개하면 반응이 없으세요. 목사님들이 관심이 없으세요. 무슨 일기를 다 쓰나 이런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근데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세요. 너 실패할 거다 깜짝 놀랐어요. 실패할 들 거라는 걸 일기를 써가면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훈련을 하는 것을 실패할 거래요. 안될거래요. 그 힘이 쫙 빠지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이 또 물으세요. 그래서 안 할 거냐 이것도 무슨 이야기예요. 실패할 거라면서 실패할 거면 당연히 안 하는 거죠. 실패할 걸 왜 해요. 그런데 그래서 안 할 거냐 그때 마음에 실패해도 해야 되는 게 있나 그런 생각이 딱 들어요. 실패해도 해야 되는 게 있나 그럴 리가 있더라고요. 나는 실패하겠지만, 예수님은 실패가 아닌 일이 있더라고요. 저는 뭐 100년도 못 사는 거죠. 제가 사는 동안에는 열매가 없어요.

그러나 열매가 결국은 제가 죽고 난 다음이든지 200년 300년 뒤에든지 열매가 맺어지면 예수님께는 성공인 거죠. 스데반 집사가 생각이 나요? 스데반 집사는 부활의 주님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어요. 실패지요 예수님 부활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다니까 그러면 예수 믿을 사람 누가 있어요. 부활의 예수님을 전하고 싶은 사람 누가 있어요. 돌에 맞아 죽는데 시대반 집사로서는 진짜 실패로 끝난 것 같아요. 그러나 다 아시죠. 스데반 집사의 순교로 인하여 사도 바울이 나왔고 복음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온 유대와 사마리와 땅끝까지 전해지는 계기가 됐잖아요. 예수님께는 대성공인 거죠.

내가 실패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구나 주님이 기뻐하냐? 아니냐 그게 중요한 거구나 그래서 주님 실패할지라도 저는 계속 하겠습니다. 그때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 실패하는 길을 가야 되는 거 이건 진짜 어려운 느낌이다. 그렇지만 마음의 하나님이 저에게 다짐을 주셨어요. 그리고 13년이 지나고 제가 은퇴하고 지금 예수 동행 운동을 하는데 아마 여러분 중에도 마 동해 일기를 쓰시는 분들이 있으실 거예요. 가는 데마다 일기를 쓰는 성도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그렇게 처음에는 반응이 없더니, 교회교회마다 예수님 바라보고 주님과 동행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의 갈망을 가지고 와서 도와달라 우리 교회에 와서 교인들을 좀 훈련시켜 달라 그런 요청이 너무너무 많이 와요.

지금 예수 동행운동 위드 지저스 미니스트리 사역이 해를 거듭할수록 사역이 어떤 깊이나 어떤 넓이가 엄청나게 늘어나 분명히 실패할 거라고 그러셨는데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근데 깨달았어요. 실패할 거라도 그대로 나는 순종하겠다. 그랬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예요. 만약에 잘 될 줄로 알았다면 아마 저는 중간에 포기했을 거예요. 반응이 없는 거예요. 반응이 안 되나 봐 목사님들하고 세미나 하면 100명 모이면 한 명 두 명 정도 쓸까 거의 대부분 안 쓰세요. 해야 돼요. 말아야 돼요. 실패하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으면 못 했을 거예요. 근데 실패해도 순종하겠다.

그랬기 때문에 반응이 있든 없든 상관이 없었어요. 그들이 지금 이런 역사가 일어난 거예요. 사랑하는 우리 신촌 성결교회 교 여러분 그리고 오늘 저녁에 이 집회에 오신 분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은 우리보다 주님이 더 원하세요. 없이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수 없음을 주님이 하세요. 그래서 주님이 성령의 충만음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예루살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열쇠가 있어요. 우리가 해야 될 일이 있어요.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한 거라는 걸 잊으면 안 돼요. 내게 오신 예수님은 나의 왕이세요. 내 인생 전체를 책임 맡으실 뿐이에요.

그러면 주님의 역사가 반드시 나타나요? 나는 죽고 이제는 예수로 사는 거예요. 주님 말씀하시면 나는 무조건 순종이에요. 이것이 지혜예요. 이것이 여러분이 승리하는 길이에요. 자 오늘 저녁 이제 여러분에게 주님과의 관계 열쇠가 여러분에게 있어요. 주님은 여러분에게 오셨어요. 이미 주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은 다 하신 거라니까 오늘 여러분에게 주님이 어떻게 더 역사하실 수 있는 게 뭐 있겠어요. 여러분 안에 오셨는데 이젠 여러분의 반응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저는 주님 말씀하시면 무조건 순손입니다. 그럴 수 있겠습니까? 고백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제는 진짜 예수님으로 살고 싶습니다.

예수님 나의 생명이고 내 왕이 되시는 삶을 내가 살고 싶습니다. 주여 저를 도와주세요. 제가 정말 주님으로 살고 싶습 이제는 하나님과 사이에 막힌 담이 다 무너지는 삶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성경에 있는 내용이 내 삶 속에 그대로 이루어지는 삶을 내가 살고 싶습니다. 우리 신촌 성결 교회가 한국 교회 위기인 건 다 아시죠. 누가 살려낼 겁니까? 한국 교회를 누가 살려낼 겁니까? 이 서울의 가장 중심 정말 내노라는 대학들이 있는 이 한복판에 있는 신천 선교 교회 하나님의 임재가 이 교회에 가득한 그러면 이건 폭발력이 있는 거예요. 근데 그런 역사가 어떻게 일을 할 수 있는 겁니까?

여러분들이 주님께 완전히 순종을 결단할 수 있을 때 그때부터 주님은 이제 일하기 시작 여러분이 정말 순종할 거라 결단하고 깨달으면 순종하고 깨달으면 순종하면 하나님은 이 교회를 살리 것뿐만 아니고 한국 교회를 살렸네 지금 우리 기도하는 시간을 좀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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